갈채다방
박무형
80년대 초반 즈음, 어느 여름날 늦은 오후였다. 일찍 퇴근한 나는 세종문화회관 뒤편 골목길로 들어섰다. ‘갈채’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다방이었다. 그레이스 켈리, 빙 크로스비가 나오는 음악영화 <갈채>가 떠올랐다. 그러잖아도 벌건 대낮에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기가 아쉽던 참이었다. 연일 직무에 시달리던 머리도 식힐 겸 차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다방 안은 고즈넉하고 침침했다. 창가엔 두꺼운 천으로 된 커튼이 젖혀져 있었고, 투박한 천 소파에 좀 낡아 보이는 나무 탁자, 그 위에 설탕통과 성냥갑, 하얀 사기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다방 입구 카운터에는 배우 같은 예쁜 마담이 앉아 있었고 그 옆 벽면에는 메모판이 붙어 있었다. 커다란 어항도 눈에 띄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레지가 왔다.
“무슨 차 드실 거예요?”
“커피.”
“저도 한잔하면 안 될까요?”
“OK!”
레지가 쟁반에 두 개의 찻잔과 커피포트를 가져와서 맞은편에 앉았다. 찻잔에 뜨거운 커피를 부으며 설탕과 프리마 양을 물었다.
“설탕 둘, 프리마 둘.”
티스푼으로 커피잔을 젓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다방의 간판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궁금한 질문이었다.
“갈채, 이 다방 이름 언제부터 썼지요?”
“저는 몰라요, 6개월 전에 여길 왔거든요. 왜 그러시는데요?”
참 별걸 다 물어본다는 듯 쳐다봤다.
고운 한복차림으로 홀 안을 누비던 마담이 내게로 와 옆자리에 살포시 앉았다. 계란형 얼굴에 오뚝한 콧날, 초롱초롱한 눈매가 영리해 보였다. 4, 50대로 보였고, 탤런트 김영애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방이 있는 내수동은 인근 내자동과 적선동과 더불어 한옥이 대부분인 동네였다. 부근에는 중앙관청이 즐비했고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갈채’를 많이 이용할 것이었다. 당연히 그들을 상대하는 마담은 지적 수준도 높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담에게
특별히 쌍화차를 쏘았다. 내심이나마 영화 <갈채>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사과와 수박은 쪼개봐야 속을 아는 것인가. 다방 이름의 연유에 대한 마담의 대답은 내 기대에 못 미쳤다. 수년 전 다방을 인수할 때의 상호 ‘갈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갈채>라는 영화 자체를 모른다는 김빠지는 말도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데도 보지 못해 아쉽다는 말도, 내 추억을 공유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도 보탰다.
두 여인을 상대로 나는 영화의 스토리를 들려줬다. 왕년의 뮤지컬 톱스타(빙 크로스비 분)가 아내(그레이스 켈리 분)의 헌신적인 내조와 무대감독(윌리엄 홀덴 분)의 집념 어린 설득으로 상실감과 내적갈등을 이겨내고 재기에 성공한다는 약간은 진부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세 사람 간의 오해와 갈등, 감정과 심리 전개는 압권이고, 절제된 삼각관계가 깨끗한 여운을 남기는 명화인데 그것은 세 배우의 탁월한 연기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영화는 1950년대 할리우드에 신성처럼 나타난 그레이스 켈리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고, 각본상도 함께 받은, 나에겐 각별히 추억에 남는 고전 영화라는 것과 나와 같이 그 영화의 향수를 가진 올드팬이라면 누구라도 ‘갈채’라는 간판을 보면 들어올 것이라고도 말했다.
나는 마담이 그 영화에서 지적이면서 정숙한 이미지로 나오는 그레이스 켈리를 닮았다고 농담을 건네며 만약에 마담이 <갈채> 마니아라면 그 영화의 올드팬 고객에게 훨씬 멋진 이미지의 마담으로 비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면 영화 <갈채>에 대해 공부를 좀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도 했다. 평소에 나답지 않은 오지랖이었지만, 다행히도 마담은 눈을 반짝이며 허투루 듣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 후로도 한동안 나는 갈채다방을 자주 드나들었다. 혼자 가기도 했고 지인들과 가기도 했다. ‘갈채’라는 이름이 아니었더라도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옛 다방의 풍치를 그대로 지니고 있어 호감이 갔던 것이다. 당시 서울 도심은 다방을 대신해 카페나 커피하우스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때였다.
직장 인사이동으로 한때 지방에서 근무하게 되어 갈채다방을 잊고 지냈다. 두 해 만에 서울로 복귀하게 되어 그 다방을 찾았다. 마담이 전보다 더 반색하며 나를 맞이했다. 마담이 앉아 있는 카운터 뒤 벽면에는 영화 <갈채>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그 옆에 그레이스 켈리의 상반신 인물 사진도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동안 나같이 영화 <갈채>에 관심을 보이는 손님이 간혹 있어 영화 테이프도 구하여 보고 그레이스 켈리가 나오는 다른 영화도 여러 편 보았다는 것이다. 그 영화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쌓다 보니 손님들과의 대화도 재미있고 풍요로워졌다는 것이다. 마담은 그 고마움을 내게 위스키 티 한 잔으로 보답하면서 얘기를 이어 갔다.
<갈채> 영화를 기억하는 시니어 고객들은 영화 얘기로 대화를 이끌어 가면 흥미를 느끼고 호응하더라는 것이었다. 몇몇은 일행도 데리고 오곤 해서 매출도 쏠쏠하다고 농담 비슷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예 <갈채>의 포스터를 패널로 맞춤 주문해서 벽에 걸었다고 했다. 창과 창 사이의 벽에 걸린 패널을 보니 내가 다 뿌듯했다. 그것은 벽 곳곳에 걸린 동양화나 붓글씨 액자보다 훨씬 세련되어 보였고 ‘갈채’라는 이름과 썩 어울렸다. 그래서 그런지 마담이 정말 그레이스 켈리를 닮아 보였다.
그 얼마 후, 나는 정년을 맞아 광화문을 떠났다. 몇 년 지방에서 공기업의 임원으로 근무하다가 임기를 마치고 서울집으로 돌아왔다. 그새 갈채다방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 다방이 있던 곳은 지구단위계획 사업으로 고층 빌딩 숲으로 바뀌고 있었다. 거대한 초고속 허리케인이 단란했던 초가삼간을 흔적도 없이 쓸어간 듯했다.
영화 <갈채>의 추억을 불러일으켰던 갈채다방이 아련히 그립다. 그 그리움 속에 영화 포스터를 배경으로 고운 웃음 흩날리던 그레이스 켈리를 닮았던 마담도 떠오른다.
※ 박무형(朴武亨) 프로필
경남 사천시(삼천포) 출생.
부산 동래고, 국제대 경제학과, 연세대 교육대학원 졸업.
교육부, 서울시교육청, 국립대학교, 중등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교육행정 공무원으로 33년간 재직.
한국학술진흥재단 기획실장, 경상대학병원 상임감사 역임.
2010년·《에세이 21》 등단. (사)한국수필 문학진흥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산영수필문학회, 남강 문학회 회원.
수필집 《아버지의 마지막 춤》, 그 외 공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