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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오투리조트에서 보낸 2박 3일간(8월 9일부터 11일)의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아직 15일까지 무려 4일이나 휴가가 남아 이 여유로운 시간을 이용해서 남원에 내려가려고 며칠 전부터 묘책을 짰다.
우선 교통편으로 열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하려 했는데 견두산에 올라갈 장비와 벌초할 때 사용할 작업 도구를 운반하기엔 불편할 것 같았다.
나혼자 가기 때문에 구지 K7을 가져갈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K7 대신 마티즈를 타고 가면 유류대와 통행료를 절약할 수 있어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했다.
우선 출발하기 전에 목사님께 이번 주일에 교회에 못 가게 된다고 말씀드리고 가져갈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매주 주일 오전 6시부터 7시 30분까지 교회 예배당과 허브 카페를 청소했던 관계로 사전에 말씀을 드리지 않으면 청소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를 보게 될 것 같아 그렇게 했다.
벌초에 사용할 도구로 대형, 소형 전지 가위를 준비하고 견두산에서 하룻밤 지낼 물건으로 텐트, 세면도구, 겨울철 등산복, 수건 2개, 동두천에서 사놓은 비상 식냥(seal) 2세트, 랜턴, 코펠과 바나, 망치, 모기향, 손수건, 사진기, 예비용 휴대폰 배터리, 휴대폰과 사진기 충전기를 배낭에 꾸리고 배낭에 들어가지 않은 것들은 별도 농협 하나로 쇼핑백에 넣었다.
집에서는 떨떠름하게 생각해서 도와주지도 않고 그 어떤 반응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이것 저것 챙겨서 아파트 현관을 나선 때가 금요일 오전 11시 30분 정도 되었다.
지하 2층에 파킹해 놓은 마티즈에 물건을 싣고 아파트를 빠져나와 강변북로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강변북로가 많이 막혔다. 기름 게이지는 중간 정도를 가르키고 있어 남원에 도착하기 전에 한번 더 주유를 해야할 것 같았다. 쉬지 않고 내려와서 광양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접어들자 기름이 앵꼬되어 간다고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이런 아무리 달려도 휴게소가 나오지 않는다. 아마 남원까지 휴게소가 없을 거다. 관촌쯤엔가 휴게소 부지가 있지만 아직 건물이 들어서지 않아 잘못하다간 중간에서 멈출 수도 있을 것 같아 상관 톨게이트로 나와 전주에서 남원으로 가는 일반국도를 타고 가다 5만원어치 기름을 넣고 그대로 국도로 달렸다.
남원에 도착해서 현대아파트 앞에 있는 남원농협 농기구마트에 들려 조선낫, 왜낫, 코팅된 장갑 10족과 호미를 사서 트렁크에 싣고, 다시 노암동에 있는 한마음 마트에서 라면 5봉과 1.8리터 음료수 2병과 과자 3봉을 사서 차에 실었다.
대충 필요한 물건을 산 후 바로 송동면 흑송리에 있는 장인 산소로 갔다. 비가 온 뒤라 농로가 물이 고여 있고 풀에 물기가 젖어 미끄러웠다. 산소로 들어가는 길 깊숙히 차를 힘들게 겨우 파킹해 놓고 곧바로 장인 산소로 올라갔다.
저번 7월 하순에 왔을 때 봉분에 자라고 있는 고사리만 손으로 뽑아주고 갔는데 봉분과 그 주변이 잡풀로 개판이 되어 있었다. 아직 근처 산소 모두 벌초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원래 시골 집에 들려 예초기를 가져다 벌초를 하려고 했는데 예초기를 운반할 마땅한 수단이 없어 아예 농협 농기계 마트에서 낫을 사서 손으로 벌초를 하려고 곧장 바로 왔다.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주변까지 다 깎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4시가 다되어 도착해서 6시 정도에 끝났으니까. 논뚝에서 산소로 올라오는 집입로까지 깎으려니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낫으로 대충 후려치고 겨우 사람이 다닐 정도만 벴다. 잠시 숨좀 고르고 산소 앞쪽을 깎고 있는데 뭐가 뜨끔했다. 후다닥 뒤로 물러나 자세히 보니 땅벌이 벌써 두 방을 손에 날렸다. 이제 그만하라는 신호인가 보다고 생각해서 작업 도구를 거두어 내려와 차를 와이프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로 몰았다.
어허 이게 웬일인가? 예전에 산소로 올라가던 진입로는 없어지고 아예 까뭉개서 절벽을 만들어 놓았네. 참 그 사람 불쌍한 사람이네. 심뽀가 왜 이 모양이야? 그 동네 사람들이 모두 다 알고 있던데.
내가 남원에 근무할 때인 2007년도인가에 30~40년 전에 처가쪽에서 짝귀아저씨(용주사? 소유자)가 절을 짓는데 자금을 대주었다고 한다. 그 댓가로 자기 산 일부(200여 평)을 넘겨 받아 이전은 하지 못하고 측량을 해서 매매문서를 작성해서 장인에게 넘겼는데 당사자들이 모두 고인이 되어 할 수 없이 1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특별조치법에 따라 동네분들로 구성된 토지위원들에게 확인을 받아 겨우 처남 명의로 이전을 마쳤는데 그에 대한 앙갚음으로 그렇게 한 것 같았다.
일단 주위를 살펴보니 개판이었다. 칡넝쿨이 봉분을 지나가고 예전에 콩을 심었던 밭은 잡초와 잡목이 키를 넘게 자라고 있어 황무지로 변해 있었다. 일단 봉분부터 깎기 시작해서 점점 더 주위를 넓혀갔다. 해가 저물어 주위가 컴컴한데도 아직도 깎을 곳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온 김에 다 해치우고 가야지 내일 다시 온다는 게 쉽지 않아 계속 깎아댔다. 다행인 게 내일이 보름이어서 달빛이 휘엉청 밝아 달빛만으로도 충분히 주위를 식별할 수 있었다. 대충 다 깎고 나니 8시 45분 정도 되었다.
얼른 차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속 옷부터 모두 갈아입고 남원시청 앞에 있는 콩나물국밥 식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균식이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그 주변에서 아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면서 바로 왔다. 만나 얘기좀 하고 균식이 차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고 바로 시골로 가서 피곤한 몸을 시원한 작은 방에 뉘였다. 시골 내려가는 첫날은 이렇게 마감을 했다.
둘째날(8월 13일[토]) 오전은 형님 내외와 함께 학골에 있는 밭에 가서 고추를 따고 참깨 순을 잘라주었다. 올해는 고추가 너무 잘 되었단다. 건조기에 매일 건조를 시키고 있는데도 물량을 다 처리할 수 없어 아랫방에 불을 지펴서 건조를 시키고 있었다. 오는 길에 가지도 반 가마를 따서 내려 왔다.
마을로 돌아오니 정자에 몇 사람이 쉬고 있었다. 오늘이 말복이니 회관에서 복달음을 한다고 함께 가서 점심을 먹으란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오리불고기로 점심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중 몇 분은 전혀 모르는 분도 계셨다. 아마 요 근래 우리 마을로 이사를 오신 분인 것 같다. 세상 참 좋아졌다. 예전에는 술메기라고 해서 일년에 겨우 한 차례 동네 잔치를 했었는데 요즘은 걸핏하면 동네분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고 있으니.
점심을 회관에서 먹고 나서 작업 도구를 챙겨 아버지 어머니 산소로 갔다. 지난 7월 22일 남원에 왔을 때 예초기로 다 깎아서 봉분 주위는 더 이상 작업할 게 없었다. 그렇지만 산소 좌우로 칡넝쿨과 잡목이 자라고 있어 아예 그곳까지 낫으로 정리를 했다. 그리고 산소 아래쪽 잔디도 너무 웃자라서 싸복싸복 깎아주었다. 모두 깎으려니 면적이 너무 넓고 힘이 들어 일부를 남겨두고 왔다. 내려오는 도중에 올라가는 진입로 주변 잡목과 가시넝쿨을 잘라주면서 내려왔다. 이번에는 시골 형님께서 별도로 벌초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마을로 돌아오니 5시가 넘었다. 정자에서 다시 동네분들이 회관으로 가란다. 거기서 저녁도 함께 먹고 가라고. 그래서 저녁을 잽싸게 먹고 견두산에 오르려고 준비를 했다. 아직 산 정상 부근에는 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대충 정리를 하고 필요없는 물건을 과감하게 차에다 놓고 꼭 필요한 물건만 배낭에 챙겨 넣었다. 작년에는 8월 1일 올라갔었다. 올라가는 시간도 이쯤 되었을 거다. 올해는 2주 정도 늦어 해가 더 일찍 넘어갈 것 같다. 예전처럼 신덕전원교회 주차장에 차를 파킹해 놓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니 길이 없어지고 잡초만 무성한 곳이 나왔다.
이걸 어쩌나 그 잡초와 넝쿨을 헤치고 반바지 차림으로 올라가니 온통 종아리에는 상처투성이로 변했고 반바지와 신발은 물기가 스며들어 아주 물에 푹 빠진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겨우겨우 비탈을 기어 올라와 견두산으로 오르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길이 개판이다.
작년에는 등산로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었는데 올해는 전혀 깎아놓지 않아 풀이 가슴까지 자라고 온갖 넝쿨이 길을 뒤덮고 있었다. 주차장을 떠난지 17분 정도 되니까 산판 도로가 나왔다. 작년에는 이 길이 잡초가 너무 많이 자라고 있었는데 일부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었다. 다음에는 양촌에서 이 길로 와야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모든 것을 배낭에 집어넣고 톱, 낫과 호미도 매낭에 단단히 매달아 놓고 오로지 손에는 마실 물통 하나만 들고 쉬지 않고 천천히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중간중간에 시간을 체크하면서 올라갔는데 작년보다 느린지 빠른지 알 수가 없었다. 3~4년 전에 강희와 균식이랑 함께 양촌으로 올라오던 길과 홈실에서 올라가는 길이 마주친 곳까지 대략 45분 정도 걸렸다. 이제 2/3는 올라온 모양이다. 여기까지 오면 안심이 된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 너무 늦게 출발한 것도 있고 또 비가 온 뒤라 길이 미끄러워 올라가는 속도가 예전보다 못했다. 벌써 주위가 어두워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구름이 잔뜩 끼어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서워할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계속 올라갔다. 시간을 보려면 휴대폰을 꺼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무조건 올라갔다. 나중에는 너무 어두워 올라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랜턴이라도 꺼내서 비추고 가야하는데 꺼내려면 또 배낭을 풀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손으로 더듬으면서 올라갔다. 와~~~ 이번이 세 번째로 견두산에서 밤을 지새게 되는데 지금까지 가장 힘들게 올라가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너무 미끄러운 바위가 나와 거의 두 손을 더듬어서 올라갔다.
정상 부근에는 바로 마애불로 가는 곳과 정상으로 가는 곳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하려고 마애불로 가는 길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아 그냥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이 갈대로 뒤덮혀 있어 두 손으로 헤치면서 올라갔다.
오~~~ 이제 정상이다. 8시 20분이다. 무려 1시간 50분이 소요되었다.
커다란 우유병에 담아온 물병이 1/5만 남았다. 너무 구름이 잔뜩 끼어 정상 부근만 보이고 나머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상에서 마애불로 내려가는 길도 잘 보이지 않고 바위도 미끄럽고 발과 손으로 더듬으면서 내려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다니기 편했는데 금년에는 홈실에서 올라오는 길도 그렇고 정상 능선의 등산로도 잡풀로 뒤덮혀 다니기가 무척 힘들었다.
드디어 야영지에 도착했다. 만세~~ 만만세~~~ 8시 30분이었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실컷 들이키고 한숨을 돌렸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짙은 구름이 지나가서 나뭇잎에 물기가 많이 뭍어있어 바람이 불면 물방울이 비오듯 떨어졌다. 얼른 배낭을 풀어 우선 헤드랜턴을 켜고 텐트를 조립해서 세웠다. 신발과 옷과 모자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온통 빗물과 땀으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우선 신발과 모든 옷을 훌러덩 벗어버리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텐트 속에서 물건을 정리했다. 헤드랜턴을 텐트 천정에 매달아 놓으니 내부가 꼭 조그만 방처럼 아늑했다. 혼자 있었지만 전혀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마음이 푹 놓였다.
이런 기분 때문에 여기에 올라오는가 보다. 일단 짐을 정리하고 침낭 속에 속옷 바람으로 누워보니 여기가 낙원처럼 느껴졌다. 시간을 보니 9시 10분 정도 되었다.
우선 스마트 폰으로 몇 사람에게 문자로 도착했다는 내용을 보내고 볼륨을 확 죽였다. 이런 곳에서 가장 섬뜩한 것은 사람 목소리다. 그래서 소리가 들리지 않은 문자로 의사소통을 하기로 했다.
내일 일출을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혹시 몰라 일출 시간이라도 알아보려고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5시 30분 전후였다. 5시에 모닝콜을 맞춰놓고 일찍 자려고 주변을 정리하고 침낭 속으로 몸을 넣었다. 너무 너무 기분이 좋았다. 바로 아래가 맨땅인데 그 촉감이 너무 좋았다. 차갑지도 더웁지도 않았다.
중간에 바람이 불면 나뭇잎에 모여있던 물방울이 텐트로 떨어지는 소리가 꼭 소나기가 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오늘 저녁이 보름 하루 전이라 달이 무척 밝을텐데 구름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출도 좋고 운무도 좋지만 여기서 하룻밤 지내는 것도 얼마나 즐거운가. 잠이나 싫컷 자자. 일출을 볼 수 없으면 오전 내내 잠이나 자자.
그렇지만 중간 중간에 눈이 띄였다. 2시쯤 다시 4시쯤에 깼는데 아직 구름이 너무 많이 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침낭 속에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이런!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바람소리도 아니고 비오는 소리도 아니고 새소리도 아닌 사람의 목소리였다.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침낭에서 나와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저쪽 암능 쪽에서 나는 소리다. 누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여기에 오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한참을 있으니 마애불을 둘러보기 위해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들어보인 부부였다. 구례 쪽에서 밤재를 출발해서 오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밤을 지냈냐고 묻기에 어제 저녁에 올라와 하룻밤을 이 곳에서 혼자 지냈다고 하니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말투를 보니 광주 아니면 전남에 사시는 분 같았다. 두 분이 너무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참 행복하게 보였다. 홈실로 내려가는 길로 가려고 해서 견두산 정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떠나면서 좋은 수양하시고 가시라는 말을 해주었다. 조금 후에 정상에서 오랫 동안 소리가 들렸는데 10여 분 후에 조용해졌다. 아마 정상에서 머물면서 사방을 둘러보고 한참을 있다 가는 것 같았다. 이 시간에 여기에 도착할 정도였으면 적어도 밤재에서 5시 30분쯤에는 출발해야 했을텐데. 참 대단한 분들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그보다 더한 놈이지만.
정상 부근이 조용해지자 우선 낫과 톱만 가지고 다시 견두산 정상으로 갔다. 모처럼 시간도 많고 또 구름이 잔뜩 끼고 거기다 이른 시간이어서 벌초하기에 아주 좋았다. 우선 봉분부터 깎기 시작해서 점점 주변을 넓혀서 정상 부근 모든 곳을 깎았다. 예전에는 잔디는 놔두고 길다랗게 솟은 풀만 베주었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많아 아예 웃자란 잔디까지 꼼꼼하게 깎았다. 무려 3시간 정도 걸렸다. 다 깎고 나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정상 부근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이 되어 정상에서 조망하는데 방해가 되는 밤나무 가지를 잘라냈다. 그리고 마애불로 내려가는 곳에서 구례쪽 방향으로 시야를 가리는 잡목을 깨끗하게 잘라주고 등산로를 막고 있는 넝쿨과 도토리 나무를 톱으로 잘라 주었다. 이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다시 텐트가 있는 야영지로 내려와 쉬고 있는데 이번에는 참새떼처럼 사람 목소리가 끊임없이 시끌벌적하게 들려왔다. 이번에도 암릉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일부는 이정표를 보고 마애불로 내려와 마애불을 한 번 보고 가는 사람도 있고 몇 사람은 마애불을 보며 연신 고개를 굽신거리면서 <ㅇㅇ사장님 돈 많이 벌게 해주시고 나도 건강하고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라고 두 손을 합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서 딱 한 분이 내가 있는 쪽으로 왔다. 남원 쪽을 촬영하고 가면서 여기서 야영을 했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대단하십니다. 수련 잘 하고 가세요.>라고 하면서 정상으로 올라갔다.
이제 또 정상 부근이 조용해서 라면을 하나 꺼내 끓여서 먹었다. 원래 5봉지를 샀었는데 작년에 경험해 보니 되가져간 게 많아 아예 한 봉지만 가져왔다. 그렇지만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seal을 동두천에서 몇 봉지 사왔는데 꺼내보지도 못하고 그냥 되가져갔다. 다음 번에는 라면 대신 꼭 이걸 한 번 먹어봐야지.
라면을 하나 끓여먹고 잠시 쉬고 나서 12시가 넘어 야영지에서 만복대 쪽으로 보이는 잡목과 잡풀을 제게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 야영지도 잡목과 죽은 나무가 여기저기 나뒹굴어 사람이 쉴 수 없는 곳이었다. 내가 맨처음 견두산에 올랐던 2007년도부터 조금씩 쓰러져 나뒹굴고 있는 죽은 나무를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 바닥에 너저분하게 뻗고 있는 가지들을 다듬어 주고 쭉쭉 자랄 수 있도록 사람 키 높이까지 가지를 잘라주고 빽빽하게 가늘고 어설프게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베어주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넓직한 공간이 되었다. 처음에 왔을 때는 밀림처럼 앞이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넝쿨들이 나무를 감고 있어 사람이 들어갈 수도 없고 습기가 너무 많아 마애불만 보고 남원 쪽은 바라보지도 못하고 가버린 곳이다.
아직도 아무렇게나 뻗은 나뭇가지가 앞을 가리고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그래서 만복대를 볼 수 있도록 그리고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정돈을 해주었다. 이 작업을 하는 것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야영지에서 만복대 쪽으로 끝트머리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데 엄청나게 큰 넝쿨이 소나무를 휘감고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무가 고사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오늘은 시간도 없고 힘이 다 소진되어 그 넝쿨을 제거할 수 없었다. 다음에 올라올 때 잘라주어야지. 오늘은 동쪽으로 바위가 나오는 곳까지만 아주 시원하게 잡목과 잡풀을 제거해 주었다.
한참 작업을 하고 있는데 또 다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암릉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쪽을 보니 빨간 상의를 입은 여자분과 남자 한 분이 암릉 꼭대기에서 쉬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뒤에 마애불 이정표를 보고 정상 부근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워서 대화를 나눈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는데 따님이 아버지를 모시고 올라온 것 같다. 정상에서 한참을 머물다 다시 내려와 아까 내가 잡목을 정리해 놓은 곳에서 점심과 과일을 먹으면서 구례 산동 쪽을 바라보고 쉬고 있었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 마애불을 둘러보기 위해 내 쪽으로 내려왔다. 마애불을 설명한 안내표지판을 다 읽고나더니 한참 마애불을 쳐다보다 내 텐트 쪽으로 다가왔다.
텐트 앞으로 나와 남원 쪽을 바라보면서 그 여자분이 <아빠, 어 우리 집이 안보이네>했다. 그래서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덕촌이란다. 야영지에서는 계척봉 때문에 말고리와 덕촌, 배촌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덕촌으로 가는 모릉안만 보인다. 보아하니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따님과 70대 중후반에서 8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잠시 대화를 나누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 갔다. 아주 더디게 서서히 가면서 전망이 좋은 곳에서는 오랫 동안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가는 모습이 아주 정겹게 보였다. 그분들이 여기에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냐고 물었다. 아마 예전에 견두산 정상 부근에 샘이 있다는 얘길 들었던 모양이다. 나도 동네에 가면 동네분들이 예전에 정상 부근에 샘이 있었다는데 난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그 두 부녀를 끝으로 오는 등산객은 없었다. 잠시 쉬다 이제는 마애불 아래에 지저분하게 낙엽과 돌멩이가 나뒹굴고 있는 것을 깨끗하게 청소하기 시작했다. 아마 수십년 전에 이곳에서 쉬다가 간 사람 중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쓰레기를 바위 틈새에 끼워넣거나 땅에 파묻고 간 걸 캐냈다. 쓰레기가 제법 많이 나왔다. 라면봉지, 은박지, 캔, 유리병 등등. 일단 캐내서 야영지에서 햇볕에 말려 태워버릴 생각이다. 마애불 아래 청소도 두서너 시간 걸렸다. 이제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마른 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는데 잘 붙지 않았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가며 겨우 살린 불씨에 쓰레기를 태웠는데 너무 더디게 탔다. 다 태우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곡성 쪽에서 요란한 천둥 소리와 번개가 번쩍거렸다. 점차 검은 구름이 이 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원래 5시쯤에 내려가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5시가 가까이 되니 소나기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후다닥 물건을 정돈해서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다. 습기를 머금어 말리고 있던 옷가지와 침낭을 거두어 배낭에 꾸려넣었다.
너무 급한 나머지 부랴부랴 되는대로 뭉뚱그려 배낭에 처넣었다. 맨 위에 돗자리를 매달아 배낭이 빗물을 피하게 꾸렸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자동차 키를 텐트 속에 쳐넣고 그냥 배낭을 묶어버렸으니. 비는 점차 거세지는데. 할 수 없이 다시 짐을 풀어헤져 차 키를 끄집어냈다. 이제는 패킹할 시간도 없이 되는대로 배낭에 쑤셔 처넣었다. 단단히 신발 끈을 다시 매서 정상으로 가지 않고 지름길 택해 홈실 쪽으로 내려왔다. 올라갈 때보다는 가벼웠지만 아직 길이 젖어 있어 미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보폭으로 내려오다보니 주차장까지 1시간 15분 정도가 걸렸다. 후다닥 배낭을 차에 싣고 집으로 향했다. 실은 어제 산을 오른 이래 오늘 12시쯤에 라면 하나 먹고 지금까지 지냈다. 당시엔 배가 고픈지를 몰랐지만 막상 집에 오니 허기가 졌다.
평소에는 한 그릇을 다 못 먹었는데 오늘은 두 그릇이나 비웠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풋고추와 가지 나물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대충 짐을 챙겨 어제 딴 가지를 받아들고 시골을 떠났다. 시간이 6시 5분이었다. 오수 톨게이트를 이용하려고 시내를 통과하여 광치동에 있는 주유소에서 만땅으로 기름을 넣고 이제 달리기만 하면 된다.
천안까지는 잘 왔는데 천안에서부터 기흥까지 엄청 막혔다. 상암동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짐은 내리지도 않고 몸만 빠져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제 피곤이 몰려온다. 그렇게 가고 싶어서 온갖 술수를 다 써서 겨우 다녀온 길인데. 내가 피곤하다고 하면 되겠는가? 우선 샤워부터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긴장이 풀리니 온 몸이 가렵다. 너무 힘들게 작업을 해서 온 몸이 욱신거리고, 반팔과 반바지만 입은 채 벌초와 작업을 해서인지 온 몸이 가렵고 진물까지 나기 시작한다. 그래도 난 좋다. 내년에도 또 갈 거다. 견두산 꼭대기에 말이다. 또 하룻밤을 지내다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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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고생을 다 하면서도 견두산이 그리 좋은가. 대단 하구먼...
견두산 메니아 파이팅... 나는 그때 부산 기장으로 해서 동해안을 한바퀴 돌아 삼척에서 올라 왔는데
오는 길이 얼마나 밀리는지 도로가 주차장 같더라.
난 죽기 전에 거기서 좀 살아야겠다. 집은 지을 수 없을지라도 튼튼한 텐트나 유목민들이 사용하는 천막 정도로 생활 공간을 만들어 딱 몇 년만 살고 싶다. 한번 가봐라. 가서 며칠 밤을 지새봐라. 아마 그곳에서 살고 싶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