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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강세미나 22.06.11(토)
할렐루야. 후사님들 평안하신 줄 믿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이제 그 사도 바울과 바나바 또 사도의 사역과 선지자 유다와 실라의 사역을 통해서 이 복음시대에 두 증인, 두 촛대, 두 감람나무의 계시를 제가 알려 드렸습니다. 그런데 율법시대에도 두 증인, 두 촛대, 두 감람나무의 계시를 엘리야와 엘리사의 두 선지사의 사역과 그들의 신분의 정체성을 따라서 계시된 것을 제가 증거 했는데 오늘도 계속해서 이 두 증인에 대한 부분이 너무 너무 중요한 부분이고 그래서 제가 성령께서 계속 이곳에 머무르면서 지금 말씀을 주셔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마지막 대 희년의 세대입니다. 대 희년의 세대라는 의미는 이제 이 세대가 이제 거의 하나님의 추수가 완성되는 때입니다. 그래서 그 세대에 우리가 왔는데 이 때에는 모든 육체 이 세상 밭에 있는 모든 육체에 이 늦은 비 성령의 단비가 내려야 됩니다. 내리면 이제 열매가 나오는데 이 열매가 두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열매가. 마지막 때 거두는 두 증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저에게 하나님께서 두 증인 리빌드라는 것은 두 증인에 대한 신비에 가려져 있던 그것이 드러났다는 리빌드라는 그 책을 성령께서 세 권을 쓰게 해서 제가 두 증인 리빌드 1, 2, 3권을 출간했는데 그런데 이 두 증인은 성경의 전체 핵심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의. 다 둘러 파면 두 증인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도 두 증인. 사도와 선지자도 두 증인.
다 두 증인인데 오늘 계시록 11장 3~4절의 말씀. 또 두 증인에 대해서 더 깊은 영역들이 열리기 때문에 이제 함께 나누어보기를 원합니다. 요한계시록 11장 3~4절의 말씀.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에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다. 이 두 증인이라는 핵심은 예수님이 재림하는 즉 이 땅에 재림을 하셨을 때 주님 앞에 서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는 것입니다. 두 증인의 실체가. 그런데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는데 주는 이 권세가 어떤 권세인가? 이 두 증인에게 임하는 권세가 바로 사도와 선지자의 권세입니다. 사도와 선지자의 권세. 그러면 우리가 지금 이 땅에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는 다 나왔는데 어떻게 사도가 있습니까? 이른 비 때에는 열두 사도 생명나무에 열두 가지가 나와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택하는 것입니다. 그 제자 중에 열한 제자는 유대인에게서 나오게 되고 그 다음에 마지막 한 가지는 갸룟 유다였는데 갸룟 유다는 예수님을 파는 마귀의 자녀였기 때문에 그 가지는 꺾입니다. 꺾기고 거기에 이방 사도로 부름 받은 사도 바울이 접목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 안에 하나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그래서 이방 사도로 부르는 사도 바울이 이방 땅에 이제 이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그런데 이들이 복음을 전했더니 늦은 비 때가 되었을 때 이른 비 때 이들이 전하는 천국복음이었습니다. 천국복음이었는데 이 복음이 이들 역시도 비유로 예수님이 오셔서 창세전에 감춰진 모든 하나님의 비밀을 비유로 증거 하셨는데, 이 사도들도 전부 다 예수님이 비유했던 그 비유를 비유로 계시했습니다. 전부. 그래서 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 두 증인입니다. 다 두 증인인데 내 양. 다른 양. 양과 염소. 다 두 증인인데 이렇게 비유로 풀어버리니까 이른 비 때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 그 복음서에 있는 그 천국의 비밀들이 복음서를 통해서 이제 확장되어서 나왔는데 말씀들이 확장되어 나와서 이제 로마서도 나오고 사도행전, 고린도전서 다 풀어져 나오면서 계시록까지 풀어졌는데 확장되어 나왔지만 그 역시도 비유로 풀어졌다는 것입니다. 비유로. 그러니까 이 땅의 신학을 가진 지식으로는, 문자적인 해석으로는 이 성경을 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속 비유.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지 않고서는 성경을 풀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문자로 풀면, 문자로 푼다는 것은 성경의 비밀을 짜 매어서 실타래를 더 엉키게 해서 영원히 못 풀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을 완전히 풀지 못하게 만드는 사단의 계략입니다. 그것이 사단의 계략. 자꾸 사람의 지식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사람의 지식.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조심해라. 그것을 먹으면 너희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 그런데 계속 이 땅의 종교 철학을 가지고 종교 교리를 가지고 계속 이 땅의 지식으로, 교리로, 또 종교 철학으로 해서 푸니까 성경에 대해서는 지금 풀어져 있는 성경은 신학자들이 푸는 성경은 전혀 다른 데 가 있습니다. 하나님하고 관계없이 저기 가 있습니다. 종교 철학으로는.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그것은 종교 철학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다 버려라. 배설물로 여기고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또 사도 바울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이야기 한 적 없는데 다 사도 바울의 신앙 위에 신학을 세웠다고 합니다. 교회를.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때 늦은 비가 임할 때는 영원한 복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 이 영원한 복음은 무엇인가 하면 천국복음과 영원한 복음은 같습니다. 동일한 것이지만 이 영원한 무엇입니까? 마지막 때 영원히 구원을 이루는 복음. 이 영원한 복음은 성경 전체 감춰진 하나님나라의 비밀이 다 열리는 것이 영원한 복음입니다. 그래서 알파와 오메가이신 모든 예수님이 비유로 하셨던 또 예언했던 하나님이 예언했던 이런 것들이 다 구약과 신약의 모든 것이 다 풀어지는데 신구약이 한 맥으로 연결되어서 풀어지는 것이 영원한 복음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풀어도 동일한 하나님의 구속사. 하나님나라를 완성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것이 당신의 뜻입니다. 출애굽기를 열어도 하나님나라 완성. 모든 이사야를 풀어도 하나님나라 완성. 모든 선지서부터 시작해서 구약과 신약을 다 풀면 예수님이 말씀한 사복음서 안에 모든 비밀이 다 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에 열리는 것이 계시록입니다. 구약시대의 계시록은 다니엘서입니다. 다니엘서를 풀면 다니엘서를 푸는데 계시록이 풀어집니다. 다니엘서가 안 풀리면 계시록이 안 풀어집니다. 계시록만 가지고 풀려고 하면 두 증인을 보면 안 보입니다. 다니엘서가 풀어져야 계시록이 풀리는 것입니다. 다 연관되었기 때문에 같이 맞물려서 가기 때문에 예수님은 알파요 오메가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동일한 것입니다. 창세기를 열어도 계시록이 풀어지고 모든 것이 다 동일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두 증인에게 주었던 권세가 무엇인가 하면 이 마지막 때 이 열두 가지에 실과들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실과. 이 실과들은 바로 무엇입니까? 빛의 아들들입니다. 빛의 아들들. 열두 가지에 사도가 다르고 거기 가지에 열리는 실과는 성분이 다른 것이 아니고 동일한 것입니다. 가지는 실과를 맺기 위한 bridge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bridge 역할. 그 가지가 있어야 실과가 열립니다. 또 그 가지가 있어야 거기에 생명나무 잎사귀가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연합이. 그러니까 이 가지가 먼저 생명나무는 예수님인데 그 가지가 없이는 실과도 안 열리고 잎사귀도 안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잎사귀와 실과는 마지막 추수 때 다 열리는 것입니다. 추수 때. 그래서 생명나무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서 이제 두 증인의 권세라는 것은 계시록 11장 5~6절. 그 다음 절에 나옵니다.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두 증인 안에서 저희라고 하면 그 두 증인 안에서 한 증인인데 이 두 증인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증인인데 무엇을 증인하는가? 하나님을 증거 하는데 무엇을 증거 하는가 하면 하나님은 이 땅에 두 언약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율법과 복음이라는 그 언약을 제정해 주었는데 이 두 증인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 율법과 복음의 증거자들입니다. 증거자들. 율법과 복음을 증거 하는 증인들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계명을 믿음으로는 증거를 받은 자. 그렇지만 첫 언약의 증인들은 율법의 계명을 믿음으로는 증거를 받았지만 성령의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의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증인의 실체가 그래서 권세가 무엇인가 하면 이 입에서 불이 나가는 그들은 영원한 복음이 다시 예언되는 자들입니다. 입에서 불이 나간다고 하니까 공룡 입에서 나가는 것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불과 검을 주러 왔다. 예수님이 숯불을 던집니까? 불과 검을 주러왔는데 주면 남편과 아내가 싸우고 가정에서 밭에서 열매들이 정체성들이 드러나는데 그 불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 임한 자들 엘리야가 기도해서 내린 불은 첫 언약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 받지 못하는 자들인데 하늘의 불의 말씀이 떨어질 때 그들이 구원의 표를 받아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불을 받아버립니다. 성령의 불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속함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몸에 연합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원한 복음을 다시 예언하는.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예언하셨듯이 우리는 다시 예수님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 분의 흐르는 생명수를 받아서 우리 입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영생하는 영원한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종들에게서는 이 복음이 전파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 복음을 먹고는 묵은 곡식을 버리고 새 곡식으로 갈아입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는 것입니다. 굵은 베옷. 우리는 성령으로 인을 치면 바로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빛의 갑옷을 입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그리스도화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이 불이 나가는 자들이 원수들을 소멸하고 나서. 소멸한다는 것은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 이 변개해서 세상의 지식으로 신학으로 세워 놓은 이것을 진리가 나와서 터져버리면 신학이 무너져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왜? 진리가 아닌 것을 예수님이 오셨을 때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대적자입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하나로 연합하는 자입니까? 대적자입니다. 예수님이 저들은 지옥 자식 만드는 자들이라고 아주 예수님이 대노해 버립니다. 그래서 이 진리가 나오면 부분적으로 예언되고 해석되었던 것들이 다 소멸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뜻이. 할렐루야. 여기 있는데 불이 나가서 태워 죽인다는 것이 아니고 소화전 갖고 다니면서 화염방사기 가지고 다니면서 쏜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입에서 영원한 복음이 예언 될 때 이 땅은 부분적인 해석으로 가지고 밥을 먹고 사는 자들이 다 드러나서 다 소멸되어 버리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창수가 나매 그리스도 반석에 세워져 있지 않은 모래 위에 세운 집들은 다 무너진다는 계시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누구든지 그 진리를 전하는 그 불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해하려 말씀을 훼방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는데 무엇으로 죽임을 당합니까? 성령훼방 죄로 멸망당해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훼방 죄가 여기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대적한다고 그냥 죽여 버리는 것이 아니고 멸망 심판 받아버린다는 것입니다. 성령훼방 죄로. 오는 세상과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죄 사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지옥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지옥 간다는 이야기. 죽이는 것이 아니고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죠?
그런데 또 저희가 할 때는 두 증인 중에 이제 율법의 옷을 입고 있는 이 종들 율법 아래에 있는 여자의 자손들 그들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이 율법 아래 첫 선지자가 누구인가 하면 모세입니다. 율법의 첫 선지자는 모세. 마지막 선지자는 누구입니까? 세례 요한. 세례 요한을 예수님은 엘리야라고 합니다. 엘리야가 왔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을 보고. 그랬을 때 이 두 권세는 하늘을 닫아 예언을 하는 날, 비가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누구입니까? 엘리야입니다. 그 다음에 또 권세 가진 자가 물을 변하여서 피가 되게 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모세. 그래서 엘리야와 모세는 율법의 첫 선지자와 마지막 선지자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권세. 선지자의 권세를 왜 주는가? 마지막 때. 모세 때 홍해 바다 건넜으면 되었지, 요단강은 여호수아와 출애굽 2세대가 건넜는데 대제사장 예수님을 예표 하는 여호수아가 건넜는데 무슨 마지막 시대에 건널 것이 또 있나? 광야로 홍해 바다 건너서 왔는데 또 건널 것이 있나? 건널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건너야 됩니까? 탈 교회를 해야 됩니다. 이 땅에 일곱 교회 밭에서 이제 탈 교회를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 이 땅의 일곱 교회는 귀신의 처소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음녀 제단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광야의 음녀 제단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 곳에 탈출을 해야 되는데 이 탈출을 하는 자들이 다시 두 선지자가 나옵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권능을 받은 이 여자의 사명자들. 이 자들이 나와야 우리는 휴거되고 나면 이 땅에 남은 자들이 그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됩니까? 광야로 도망가야 됩니다. 광야로. 왜 광야로 도망갑니까? 광야에 무엇이 있습니까? 피난처. 피난처가 왜 필요합니까? 초막이 필요합니다. 출애굽 때 광야로 나갔을 때 광야에 그냥 있으면 다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고 초막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막과 초막 안에 있어야 됩니다. 마지막 때 후 삼년 반 피난처로 도망갔을 때 성막이 있어야 됩니다. 그 성막이 바로 무엇입니까? 성막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영원한 복음이 샘솟아야 됩니다. 영원한 복음. 그런데 그들은 어디에 들어가 있어야 됩니까? 초막에 들어가 있어야 됩니다. 초막에는 누가 들어가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자손과 에서의 자손이 들어가 있습니다. 들어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초막에 들어가 있어야 광야에서 하나님이 후 삼년 반 동안에 그들을 양육하고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초막이 필요한가? 그 때에 시온 산에 예수님이 지상 재림할 때 144000 이마에 인 맞은 자들이 그 때에 여자의 부활생명으로 들어가고 나면 초막에 누가 남습니까? 에서의 남은 자손이 남아야 됩니다. 그래서 초막절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초막절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금은 초막을 지어야 됩니다. 피난처를 예비해야 됩니다. 이것이 요셉의 단의 사명입니다. 화목직책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이 사도들과 선지자의 권세가 다른 것입니다. 두 증인의 권세가 다른 것입니다. 이 선자자의 권세는 회개하는 전파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회개. 다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어야 됩니다. 이제 다 벗어야 됩니다. 왜? 탈 교회를 해야 되니까. 탈 교회. 이제 휴거되고 나면 남은 자가 피난처로 도망을 가야되는데 그 때 이 선지자들이 이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또 많은 자가 순교를 당합니다. 그것이 계시록의 계시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이 두 증인의 직분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고린도후서 3장 6~9절의 말씀을 가면, 새 언약의 일꾼이 나오는데 이 새 언약의 일꾼은 율법 첫 언약의 일꾼처럼 의문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첫 언약의 일꾼들은 율법의 계명을 믿음으로는 증거를 받았지만 하늘의 비밀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입니까? 그 모세오경부터 시작해서 그 모든 구약성경이 의문의 문서입니다. 의문의 문서. 이것을 보아도 보지 못합니다. 들어도 듣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새 언약의 일꾼 예수님이 오셔서 복음의 빛을 안 전해주었기 때문에 율법을 가지고 아무리 그래서 제가 모세를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띵. 말씀을 받고 내려왔는데도 띵.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내 산에도 안 갔는데 성령이 인을 치니까 우리는 다 알게 됩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을 다 알게 됩니다. 우리는 뿅입니다. 띵이 아니고. 그래서 우리는 의문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 영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있었던 의문은 죽게 되고 내 안에 있는 영은 살아나게 됩니다. 그 때 육은 죽고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의문 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안에 의문 안에 있다는 것은 영이 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류를 할 수가 없습니다. 교통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무엇입니까? 육적인 소욕을 좇아가게 되고 이 땅의 지식을 좇아가게 되고 지정의를 좇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잘못이 아닙니다. 이들은 혼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속 지식만 발달하게 됩니다. 지식. 계속. 갖다가 철학으로 갖다 붙이면 결국 무엇입니까? 맘몬 신을 붙이는 것입니다. 계속. 전부. 이제 여러분들이 분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모세에게 주었던 증거 판 십계명 돌을 주었더니 예수님은 산 돌인데 이 돌을 주었더니 그 돌에 새겨 있는 것은 새긴 주께 하는 의문의 직분 이 돌에 새겨 있는 십계명을 보아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이 땅의 육적으로 착하게 살라고 하면 됩니다. 착하게 살고, 부모 말씀 잘 듣고, 도적질 하지 말라고 하면 도적질 안 하고. 그런데 예수님은 너는 생각만 했어도 도적질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 도적질 했습니까? 생각만 해도 도적질 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은 속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육은 속일 수 있습니다. 제가 언제 했습니까? 아무도 없을 때 했어도 내가 언제 했습니까? 오리발, 닭발이 잘 나옵니다. 그런데 영은 내가 언제 했습니까? 하는데 성령이 했지 않은가? 하면 다 드러납니다. 다 드러나 버립니다. 감출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 감춰보십시오. 감춰지나.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돌에 써서 주께 하는 의문의 직분. 이 의문의 직분. 율법을 제정 받은 이 모세부터 이 선지자 그들도 의문의 문서를 가졌지만 그 직분에게도 영광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 영광이 없으면 모세부터 엘리야는 구속함을 못 받습니다. 이 땅에 살다가 이 땅에 있다가 다 불구덩이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 첫 언약도 하나님이 제정해 주셨기 때문에 그 첫 언약을 제정한 율법, 율법으로는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지만 그 율법 아래에서도 이스라엘의 남은 자 야곱의 남은 자손 이들은 회개하고 합당한 구원의 표를 받은 자는 거기서 야곱의 남은 자손으로 건져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은 이마에 구약시대에는 성결의 표가 있어야 되고 신약시대에는 구원의 표가 이마에 인 쳐져 있어야 됩니다. 그 인은 누가 치는가 하면 천사가 칩니다. 천사. 우리는 천사가 칩니까? 성령이 칩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은 성령이 인을 치는 것입니다. 성령이. 할렐루야. 그자들은 어떤 자인가 하면, 의의 직분의 영광의 면류관을 받은 자. 정죄의 직분과 의의 직분의 두 부류가 있는데 이 정죄의 직분과 의의 직분의 영광도 바로 두 증인에게 주는 영광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우편과 좌편 보좌의 연합을 이루는 자들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굉장히 어려운 부분 같지만 우리가 이 비밀을 알게 되면 확연히 구별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종교 지도자 이러면 그분들은 무조건 종이니까 높고 우리는 항상 그 밑에서 딸랑딸랑 다니는 이런 것이니까 생각이 늘 무엇입니까? 돌쇠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돌쇠. 마당쇠 같았습니다. 우리는 마당쇠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대감님입니다. 대감님. 왕입니다. 왕이 싫으신 분? 그래도 자기는 종으로 가고 싶다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자기는 돌쇠 같이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것도 굵직한 맛은 있습니다. 돌쇠가.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정죄의 직분, 의의 직분. 이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첫 언약과 새 언약. 왜냐하면 율법도 하나님이 제정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율법도 복음을 통해서 온전함을 이루기 때문에 그 율법이 없이는 복음이 올 수가 없습니다. 율법과 복음이 항상 연동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완성할 수 있는 분은 오직 복음으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천국 말씀이 바로 이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율법 안에 있었던 우리가 이 성령이 인을 치니까 우리는 무엇입니까? 복음으로 완성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는 종이 아니고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아들이면 반드시 우리 안에는 아들의 영이 임해 있습니다. 그 아들의 영은 성령을 이야기합니다. 성령. 그 아들의 영이 임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종들이 아버지라고 하면 큰 일 납니다. 내가 언제 네 아버지냐? 하나님한테 얻어맞습니다. 종이 주인어른한테 아버지라고 그러면 이조시대 때 종이 마당의 돌쇠가 대감님에게 아버지라고 하면 생명을 부지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개판으로 사는 탕자 같은 것도 대감님 아들이면 저것이 어떻게 사람 되겠나 해도 그것이 또 아버지라고 하면 맞다고 합니다. 우리가 탕자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맞지요 아버지라고 하면 맞다고 합니다. 목이 곧은 종들은 아버지라고 하면 한 대 맞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죠?
이 두 증인을 두 감람나무 두 촛대라고 했는데 이 두 감람나무를 사도 요한이 성령으로 쳐서 두 감람나무 두 촛대. 이 땅에 주 앞에 서는 두 감람나무. 우리가 이 땅에 주 앞에 어디 서는 것입니까? 새 예루살렘 성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다고 해서 성 안에 가만히 멀뚱하게 서 있다는 것이 아니고 우편 보좌와 좌편 보좌의 연합을 이룬다. 두 증인이. 그런데 이 두 감람나무의 본질이 주의 재림 때 새 예루살렘 성에 지성소와 성소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는 자들인데 이 두 감람나무는 기름 부음 받은 나무입니다. 기름 부음 올리브 받은 나무. 이 두 감람나무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에덴동산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완성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에덴동산의 완성이 새 하늘과 새 땅.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죠? 그래서 에덴동산만 풀어도 제가 10년 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마지막 때는 창수가 나기 때문에 에덴동산이라고 하면 계시록이 열려야 됩니다. 에덴동산은 에덴동산이고 또 계시록은 계시록이 아니고 이제는 이렇게 급속도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제는 많이 기름 부어져 있으니까 에덴동산을 이야기하면 계시록이 머릿속에 돌아가야 됩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죠? 사복음서와 같이 돌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러면 에덴동산의 두 감람나무의 본질이 무엇인가? 창세기 2장 9절에 가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에덴동산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 이 에덴동산은 하늘 3천 층 하늘보좌에 있습니까? 아니면 지구 땅에 있습니까? 에덴동산이 3천 층에 있습니까? 1천 층 지구 땅에 있습니까? 지구 땅에. 3천 층에 있으면 첫 아담을 짓고 3천 층에 올려버립니까? 예수님이 올 시간도 없습니다. 끝났습니다. 아담만 짓고 올라가면 끝났습니다. 예수님이 무엇 하러 오십니까? 다 끝났는데. 이 1천 층 지구 땅. 그러면 이 지구 땅에 하나님이 임재 하는 최초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이. 그런데 그 에덴동산 안에 동산 중앙에 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한다는 것은 이 하나님의 하늘나라의 모형으로 예비 되는 이 땅의 성전의 중앙이라고 하면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지역이구나.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는 성막의 구조에 대한 것을 하나님께 율법 제정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쓸 때는 자기가 쓴 것이 아니고 성령이 썼기 때문에 이 말에 비유와 계시가 다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그러면 우리는 지금까지는 에덴동산이라고 하면 아담이 옷 벗고 하와와 다니고 사과 먹고 다니고 나 잡아봐라 뛰어다니고 이런 것만 봤습니다. 이런 것만 생각합니다. 나 잡아봐라 하고 뛰어다니고 그림도 이상한 것 그리고. 음란한 그림 이런 것.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성전. 이 안에 계시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장차 하나님나라를 완성하는 비밀한 계시가 이 안에 다 함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 열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다 열려 버립니다.
그래서 그러면 그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라는 나무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이 두 나무가 있구나. 그런데 이 생명나무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생명나무라는 것은 생명을 주는 나무입니다. 생명을 주는 것이니까 영생하는 나무입니다. 그러면 이 예수님은 이 땅에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인데 이 예수님은 하늘보좌에 생명나무로 계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생명나무에는 생명나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생명수가 필요합니다. 생명수. 예수님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영생하는 생명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내 안에는 영원한 영생하는 샘이 솟는다고 합니다. 이 샘물을 먹으면 너희가 영생한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생명나무인데 이 생명나무가 영생을 하려면 본인 자신도 영생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됩니까? 새 언약의 말씀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기 때문에 그 말씀이 당신을 성육신하게도 하고 잉태하게도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이 예수님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천국복음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천국복음의 말씀이 생명수처럼 생명수 강처럼 흐릅니다. 이 강이 우리한테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채워지면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나무와 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열두 가지에 실과로 맺혀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생명나무의 실과입니다. 실과. 이 실과는 생명나무와 생명나무 열두 가지에 흐르는 생명수를 공급 받아야지만 실과가 추수 때에 맺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나무와 열두 가지를 예비 한 이유와 목적은 이 실과를 거두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이 실과 생명나무의 실과를 걷기 위해서 보내셨고 예수님이 오셔서 열두 제자들 택한 것도 장차 마지막 때 이 실과들을 거두기 위해서 열두 가지 열두 제자들 택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누구를 위해서? 전부 다 우리입니다. 성경의 모든 성경의 가장 주역은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것을 다 회복하고 가셨지만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명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때는 진짜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본인의 정체성도 모르지만 대단하십니다. 자기가 얼마나 복 받았는지도 잘 모르는데도 대단하십니다. 몰라도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이끌어 가니까. 우리는 공동체로 끌려가면 됩니다. 들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생명나무에는 이제 이 생명나무 안에는 새 언약의 말씀이 계속 공급되는 것입니다. 공급되다 보니까 생명나무에는 오직 생명나무의 열두 가지하고 실과만 맺힙니다. 이 선악과나무가 거기에 다릅니다. 종류가. 생명나무가 있고 선악과가 다른데 생명나무 안에 선악에 있는 열매가 맺히면 안 됩니다. 선악과나무가 먹는 양식은 생명나무가 먹는 양식과 다르다. 할렐루야. 그래서 이 생명나무에 열두 가지에서 맺혀지는 실과들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그 열매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면 성령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이 새 언약의 말씀이 기름 부어졌습니다. 이 새 언약의 말씀이 기름 부어졌는데 이 새 언약의 말씀은 하늘의 비밀입니다. 하늘의 비밀인데 이 하늘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영의 생명. 그래서 영과 영이 교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의 생명만이 영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영의 생명만이 하나님의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영의 생명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왜 이들을 예비해서 이 땅에 열매로 거두는가 하면 이 예수님이 전한 이 천국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파해야 되기 때문에. 마지막 때는 영원한 복음을 다시 예언해야 되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입니다. 우리는 화목직책의 사명이기 때문에 이것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통해서. 그러면 이것이 전해지게 되면 무슨 결과가 생기는가 하면, 이 선악과나무에서 열리는 선과 악의 선악과는 선의 열매도 맺히고 악의 열매도 맺힙니다. 이 선악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선과 악. 죄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이 없이는 우리가 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노아 홍수 때 율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이 죄가 죄인지 몰랐습니다. 에덴동산에 아담과 이 여자가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 했던 행동은 무엇인가 하면 자기들이 벌거벗고 다녔는데 자기들이 벗을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무엇인가? 자기들이 죄 가운데 지금 죄 가운데 올무가 매어 있는데 그 죄를 몰랐기 때문에 자기들이 벌거벗고 있는데도 벌거벗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안 입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옷이 안 입혀졌다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복음의 옷이 안 입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벌거벗고 다녀도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뱀을 통해서 여자에게 선악과를 먹이고 아담에게 먹일 때 그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무엇입니까? 이들은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화과는 제사장나라의 백성을 계시합니다. 무화과나무 옷으로 갈아입은 그 옷은 무엇인가 하면, 제사장의 옷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이들은 회개해야지만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생명나무에 열리는 실과는 회개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생명수를 공급 받는 순간 그리스도화가 되어 버립니다. 예수님과 몸이 연합되어 버립니다. 하늘에 속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이 영의 생명 하나님의 아들 빛의 아들들에게는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화목직책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왜? 이들은 영생하는 그 남자의 머리가 되는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러면 그들은 어디 있었느냐? 그들은 이 지구 땅에 이 물질세계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고 그들은 어디 있었는가 하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생명이었다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있었던 씨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씨입니다. 이 좋은 씨는 바로 복음의 씨를 이야기합니다. 복음의 씨. 이 복음의 씨는 무엇입니까? 생명나무의 실과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의 본질이 바로 복음의 씨였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이 성령의 기름 부음 받고 나니까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우리가 지금 알았습니까? 창세전부터 알았습니까? 이 정도 센스는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기름 부음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창조주의 생명으로서 천지를 창조하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었던 생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생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 할렐루야. 그런데 우리는 그 복음을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우리는 피조물의 육신을 가진 죄인의 모습으로 있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죄인에게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죄인이 무슨 죄를 사합니까?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떻게 있습니까?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해질 것이다. 성령 받아라. 그 성령은 성령의 약속을 받은 자에게만이 임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고자 해서 받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이 귀하시다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그렇게 귀한 것은 아닌데 속사람이 강건하시다는 것입니다. 위로가 되시죠? 저도 똑같습니다. 저도. 제가 무슨 하늘나라 왕자같이 생겼습니까? 헐렁이 같이 생겼지. 그런데 속사람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속사람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부활의 생명으로 휴거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이 창세기 3장 22절에 가보면 22절에 그 실체를 이야기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 이 사람은 누구를 이야기합니까? 첫 아담. 에덴동산에 지금 사람이라고는 첫 아담 하나 들어가 있습니다. 첫 아담. 애가 지금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인데 우리 중에 하나 같이 아담도 우리가 이야기하는 선악을 알게 되었다. 왜 알게 되었을까? 아담은 피조물로 육신으로 지었는데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율법을 제정 받았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 먹어 버렸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 먹으면 죽습니까? 삽니까? 죽습니다. 죽는데 무엇이 죽습니까? 율법을 제정 받으면 무엇이 죽습니까? 죄가 드러나니까 내가 사망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율법을 제정 받으면 율법은 사망의 권능이 바로 율법인데 율법을 제정 받는 순간 우리는 죄 때문에 죽어 버립니다. 그런데 죽었는데 그를 살리려면 반드시 생명수가 있어야 됩니다. 생명수. 천국복음이 새 양식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를 껍데기를 벗겨서 묵은 곡식을 먹고 가면 죽는데 다 걷어내고 새 곡식으로 입혀서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에 합당한 구원의 표를 가지고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나무 중에 선의 열매가 구속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종은 영의 생명이 아니고 혼의 생명입니다. 혼의 생명. 모세, 엘리야. 혼의 생명입니까? 영의 생명입니까? 혼의 생명. 그들은 죽었어도 아브라함의 품에 가 있어야 됩니다. 하늘보좌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었어도 영의 생명입니까? 혼의 생명입니까? 예수님은 죽어서 부활하니까 어디로 갑니까? 하늘보좌로 갑니다. 하늘보좌로 가셨는데 가실 때 몸이 연합이 되어서 올라가니까 우리 예수님의 지체인 몸이 이름이 제정되어 있는 그들이 딸려가 버렸습니다. 첫 이삭의 한 단이 다 들어가 버렸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여러분들의 영은 보좌에서 움직입니다. 보좌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영과 영이 교통이 일어납니다.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예배가 아니고 영과 영의 교통은 보좌에서 교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이 땅에서 30분 예배하고, 뉴스 나온 것 이야기하고, 이 땅에 무엇하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하고 30분하면 너무 지겹다고 해서 20분만 하고, 해서 오늘 메뉴가 점심 메뉴가 무엇인가. 이런 것.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이 예배입니까? 영과 영이 교통을 해서 보좌가 움직이는데, 하나님은 영이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영이시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만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 자들과 교통을 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자를 영적 예배자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보의 영역입니다. 중보의 영역. 대화가 좀 되니까 가끔 슬쩍 슬쩍 들어가도 대화가 됩니다. 안 그러면 또 갑자기 멍 때리고 있으면 저도 좀 답답하고 하니까 아시겠죠?
그래서 지금 갔더니 이 지금 아담은 율법을 제정 받아버렸기 때문에 선악을 아는데 그가 선악을 아니까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도 살고 싶은 것입니다. 왜 살고 싶습니까? 죄 가운데 임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는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아니지.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옵소서. 첫 아담이 저를 살려주시옵소서. 소리가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안 들리죠? 여러분. 저는 지금 막 들립니다. 왜냐하면 이 지금 아담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 먹으려고 손을 올립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실과로 가야지만 영생하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아담에게는 왜 그 마음을 주시는가하면 그는 a living soul 산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지만 산 영을 받았는데 자기 자신으로는 부활할 수가 없습니다. 이 생명나무에 접목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는 생명나무의 실과가 될 수가 없습니다. 생명나무의 실과는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따 먹을 수 없습니다. 따 먹으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내쫓아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따 먹으려고 했는데 실과로는 못 먹는데 무엇으로 갑니까? 잎사귀로 연합되는 것입니다. 잎사귀로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나마 잎사귀라도 열어 주어서 감사할 줄 알아야지. 잎사귀 없었으면 그냥 예수님이 생명나무와 가지와 실과만 있으면 되지 구차하게 잎사귀가 무엇이 필요하겠나? 이랬으면 끝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런데 생명나무는 푸른 나무도 있고.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다 저주 받아서 죽어야 되는데 예수님은 푸른 나무도 있는데 저기 다 말라서 마른 나무도 있고 푸른 나무도 있는데 저들이 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저들이 당할 고난이 얼마나 힘들까?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후 삼년 반을 통과해야 됩니다. 잎사귀들은. 푸른 나무 실과가 열매가 푸르러야지 잎사귀가 푸른 것입니다. 그 무화과나무 잎의 회복을 이야기합니다. 종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종들. 아시겠지요?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실과입니다. 아담처럼 따 먹으려고 안 해도 그냥 실과입니다. 왜? 성령과 교통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이 기름 부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이 엄청난 복음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나무의 실과는 어디에 있었나? 사도 바울은 영의 생명과 혼의 생명 이 하늘의 비밀들을 풀었지 이 땅의 신학이 바울의 신학 아닙니다. 바울은 그런 이야기한 적 없습니다. 이 땅의 자기네들이 바울 신학이라고 합니다. 바울 형님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다시 풀면 바울 형님은 에덴동산 비밀을 열어줍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율법과 복음의 비밀을 열어줍니다. 여자와 남자의 부활생명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비밀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는 여자가 남자인지 무엇인지. 뭐가 무엇인지. 여자들은 조심하라고 하고 남자들 말 안 들으면 알아서 하라고 하고. 여자 목사는 없어. 이렇게 해서 여자분들 굉장히 고생하셨습니다. 핍박하지 마세요. 우리와 동등하니까. 거기 가서 핍박 받고 여기서 앉아서 구박하지 말라고. 다 우리는 동일한 남자입니다. 남자라는 의미는 이 땅의 육신의 성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나라에 예수님 남자의 머리되시는 지체이기 때문에 남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약속을 받은 우리 여기 계신 분은 남자의 부활생명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 계신 분은 어디 여기 남자냐고? 이 분이 여자이지. 이러면 맞다고 하고 그러세요 하고 가셔야 됩니다. 더 이상 거기서 분쟁하면 안 됩니다.
이 아들들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면 에베소서 1장 3~5절에 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었습니다. 말씀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로 그 사랑 안에서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해서 예수그리스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 이것이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1장 3~5절을 기록할 때 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것을 경험하고 나서는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필요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어떻게 창세전에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이었나. 이 진리를 알아버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신앙은 이것이지 종교 철학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다고 거기서 나오라고 하는 이 신앙이지 이 지금 종교 철학으로 따라가는 것이 사도 바울의 신앙이 아닙니다. 정신들을 바짝 차리셔야 됩니다. 지금은 우는 사자가 막 물어갑니다. 정신들을 바짝 차리셔야 됩니다.
그 좋은 씨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사야서 53장 10절에 그를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끌고 가셔서 상하게 하고 질고를 당하게 합니다. 그래서 화목제, 대속제, 속건 제물로 드려가지고 그 속건 제물로 드려서 그 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그 분 안에 있는 씨가 나오는 것입니다. 씨. 이 씨가 그 분 안에 있었던 생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씨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좋은 씨라고 합니다. 이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 있었던 생명이었는데 영원 전부터 있었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십자가에 그 화목제물의 그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려졌을 때 물과 피를 흘려야지만 그 분 안에 있던 생명이 이 땅에 새 생명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장차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 이 땅의 피조물이 아니고 새로운 피조물. 그 이야기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은 이 땅의 피조물이 아니고 하늘에서 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난 자들.
그래서 이 사도 요한이나 바울이나 사도들 선지서에서도 선지자들이 하나님이 기름을 부을 때 이 마지막 때 영원한 복음에 대한 비밀을 풀었는데 그들은 말씀은 받아 적었지만 그 뜻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로서 그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혼의 생명이기 때문에. 결국 이것은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이것을 다 풀어주어야지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다 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 씨 하나님 안에 있던 씨 요한일서 3장 9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들은 율법과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선악과나무의 실과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씨가 왜 짓지 못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씨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해 버립니다. 사도 요한은 바로 갖다 증거 해 버립니다. 그래서 그 안에 하나님 안에 말씀 안에 있었기 때문에 저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분도 하나님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독생자로.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은 범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로 났기 때문에. 그래서 거룩한 몸이기 때문에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로 거룩한 성물로 보내는 것입니다. 이 땅에. 참 놀라운 비밀입니다. 놀라운 비밀. 그래서 그 자녀야지만 예수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그 예수의 영접은 생명나무와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남자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이것이 영접입니다. 영접. 예수 믿고 영접되었지. 예수만 믿으면 영접이지 그것이 아니냐고 또 헛소리들을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기 때문에 영접할 수 있고 또 그가 영접하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가 됩니다. 자녀가 되는 권세. 하나님의 아들들은 혈통이나 육정으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입니다. 이것이 어마어마한 은혜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이렇게 있었는데 피조물과 같이 있었는데 너희는 그것이 아니고 창세전부터 창조주의 생명으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였고 우리는 그 분의 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 안에 있었던 씨였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이 땅에 오셔서 그 씨를 끄집어내서 우리에게 새 생명으로 우리를 탄생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이 임할 때 우리 몸이 성육신된다는 것입니다. 육을 가졌던 우리가 성령이 임할 수 있는 거룩한 몸이 되어버립니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이런 우리 예수님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이 성육신되는 이 몸이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느냐? 하나님은 너희 죄를 불법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는 회개하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왜? 율법 아래 있을 때 이 복음이 나오기 전에는 너희가 이 땅에 속한 자와 같이 삶을 가졌지만 이 복음을 인치고 나고 이 비밀을 알고 나서 너희는 무엇입니까?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고 하나님께로 난 자. 하나님께로 난 자라는 의미는 너희는 죄를 지을 수 없는 몸. 왜? 죄를 짓지 못하는가하면 너희 안에는 이미 말씀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충만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대적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의 비밀을 알아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아들들. 이 놀라운 그 복음이 영원한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명과 이 모든 것들은 이 말씀 안에 이미 언약되어 있는 그 언약이 우리에게 성령이 인을 치면 그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언약이 되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임했던 횃불언약과 할례언약이 우리에게 임했고, 그 언약이 제정되니까 우리에게도 똑같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삶같이 삶을 살 수밖에 없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십자가를 지고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십자가 큰 것 지어서 여기서 열 몇 명씩 지고 땀을 뻘뻘 내고 갈 때 사람들이 볼 때 이러는 십자가가 아니고 내 안에 그 십자가는 바로 무엇입니까?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이 그 그리스도의 할례가 임하는 것입니다. 할례. 모든 것을 다 정결하게 해 버립니다. 성령의 말씀으로 기름을 부어서 다 씻어내는 것입니다. 전부 다. 우리가 육을 갖고 있어도 우리가 이제 이 말씀이 임하기 시작하면 저와 여러분은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내 안에 이 땅에 육을 갖고 있었던 모든 삶이 다 씻어져 나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임했으니까. 약속대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납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일어나서 내 안이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세워지고 생명수가 흘러나갈 때 되면 하나님의 뜻을 다 알게 되는 장성한 자가 되면 그 때부터 무엇이 됩니까? 그를 통해 마지막 화목직책의 사명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천국복음과 영원한 복음의 핵심은 영의 생명들에게 주는 화목직책의 사명입니다. 그 말씀 안에 약속되어 있는 환난의 마지막 노아의 때는 방주와 식물을 저축하지만, 요셉의 때는 고센 땅과 식물을 공급하지만, 마지막 때는 피난처 환난의 피난처 광야에 환난의 피난처와 식물을 공급하는 이 사명이 그 권세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그것을 이루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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