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에서 제외, 자취만 남은 ‘선원마을’
1990년대 초반 이곡동 일대의 논과 밭이 성서택지지구로 개발되면서 대부분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지만 제척지로 두어 옛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는 동네가 있다. 국민연금공단 네거리에서 불미골네거리 방향 우측에 보이는 ‘선원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김해허씨 허재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한 이후 허씨(許氏)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는데, 마을의 이름은 그곳 출신인 상무헌 허득량의 스승이었던 선원(仙源) 김상용의 호를 따서 지어졌다. 그 후 지금까지 약 460년 동안 선원마을이라 불리고 있다. 이곳을 근원으로 김해 허씨는 자손대대로 집성촌을 이뤄 성서 일대 선원, 망정, 장동, 갈산에 수백호로 널리 퍼져 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선원마을에는 옛 모습을 기억할 만한 건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선원로, 선원공원으로 이름 붙여진 명칭이 선원마을의 기억을 되짚어 주고 있다. 선원마을 앞동산 건너 안산은 시장과 관공서가 들어섰고, 뒷 솔밭은 아파트가 자리를 하고 있다. 또 선원 못에는 이곡초중학교가 세워졌으며, 동네 앞 문전옥답은 상가 네거리가 돼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가 됐다. 또 나지막하게 옹기종기 모여 지내던 마을의 집들은 인근도시개발과 발맞춰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룸과 다세대주택으로 변했는데, 60세대 정도가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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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선원마을 출신으로 선원은 김해허씨 집성촌이었습니다.
압도적 스코어로 저희 성씨가 많았습니다.
옛날엔 논밭이었고 이맘때면 보리타작을 하고 모내기를 하곤 하였지요.
뻐국이가 뻐국뻐국 하면 농번기가 다가왔다는 신호이기도 하였고 기계화가 되기 전의 시대라 모두가 몸으로 농삿일을 했던 아련한 추억입니다.
요즘 같으면 그렇게 뼈빠지게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그 당시에는 다들 그렇게 사노라 생각했죠.
정말 상전벽해!!!1!!!
불과 25전의 일인데 기억조차 까마득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시에는 성주(벽진)이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다가 전쟁통에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고 주민 모두가 전멸하였는데,
그 이후 허재라는 분이 마을을 다시 개척하였고 그 이후 후세들이 망정 갈산등으로 이주하면서 성서지역에는 타지역에 비하여 허씨들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성서에서 큰 동네라고 하는 갈산 신당 등이 있으나 허씨의 근원은 바로 선원동네입니다.
즉 제일 큰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갈산 망정같은 동네에는 비슷한 나이인데도 저에게는 할배,증조부,고조부 등의 항렬이 많습니다.
우리 동심회에도 저보다 후배가 항렬로는 할배인 회원분이 몇분 계십니다.
얼마전 김해김,김해허,인천이씨 등을 통틀어 가락종친회라고 하는 모임을 가봤습니다.
구케구디이(국회의원 4명) 군수1명,구청장1명,야당유력후보1명 등이 참석하였는데,
연혁보고에서 발표자가 가락종친이
전체 인구 중 약770만명의 동일 본 최대를 자랑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해허는 김해김씨와 같은 족속으로서 과거에는 동성동본으로 결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희귀성이라는 허씨는 희귀가 아닌 아주 흔한 김해김씨와 같은 대한민국 최대성씨임을 이 대목에서 알려 드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허씨 화이팅!
자기 마을 자기 성씨 유래에 대하여 이만큼 아는 사람도 많지 않는데
역시 카페지기 허안구 씨는 많이 알고 있네요. 단 허씨 성서 입향유래와
묵제공(허승립),취와공, 상무헌공,낙암공에 대한 자료는 기회가 되면 내가
넘겨 드리지요. 자기 문중에 대한 전문 식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