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양심 - 생명 이상의 것(김성한 <바비도>)/ 김붕래
역사를 통해 볼 때 용감했던 사람들은 권력의 훨씬 저쪽의 민중이었다. 동학혁명에서 그것의 진수를 접할 수 있다. 앞 장에서 이야기 했던 돌아온 탕아는 생각하느라고 스스로의 용기를 고갈시켰을지도 모른다. 혹은 최악의 경우 돌아올 형의 집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변두리에서 완전할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여기서 살펴볼 바비도는 노동자 재봉공일 따름이고 소박한 신앙이 있을 뿐이다. 그는 타협해서 도달할 어떤 목표도 스스로 설정하지 않을 만큼 단순하다. 순간과 순간이 양심과 함께 이어져 있는 순박한 사람이다.
일찍이 위대했던 것들은 이제 부패하였다. 사제는 토끼 사냥에 바쁘고 신부는 회계와 순례를 팔아 별장을 장만했다. - <바비도>는 이렇게 시작된다. 재봉공인 바비도는 영어로 번역된 성격을 읽었다는 죄로 종교 재판을 받는다. 15세기 당시 성서는 성직자만이 읽을 수 있었고 라틴어 아닌 다른 말로 번역되어 평신도들에게 읽히는 것이 금해졌다. 종교적 횡포가 극심했던 영국 헨리 4세 당시였다. 바비도는 함께 비밀 독회에서 성직자들의 위선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동료들이 재판정에서 영역 성경을 읽은 것은 잘못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회계하여 목숨을 건지던 일을 생각했다. 선택의 자유는 이미 배제돼 있다. 죽음이냐 굴복이냐가 남아 있을 뿐이다. 옳고 그른 것의 문제가 아니라 강하고 약한 것이 문제다. 힘이다. 저들이 가진 것도 힘이고 내게 없는 것도 힘이다. 힘은 진리를 창조하고 변경하고 이것을 자기 집 문지기 개로 이용한다. 힘이여 저주받아라.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바비도에게 사제가 아주 다정한 얼굴로 묻는다. “그대는 밤에 몰래 영역 성경을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는가?” “우리말로 성경을 읽는 것이 왜 옳지 못합니까?” “교회가 금하기 때문이지.” “교회가 하는 일은 다 옳습니까?” “암, 교회는 성 베드로부터 시작되니까.” “당신과 이러니, 저러니 말하고 싶지도 않지만 간통죄를 용서하고 돈을 받은 것도 그리스도의 명령인가요?” “독선도 유분수지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제 옆집 프란시스코의 처가 지난 번 당신한테서 그런 판결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가 이 자리에 계시다면 당신과 나는 자리를 바꾸어 앉아야 할 것입니다.” 나졸들이 바비도의 입을 틀어막는 것을 인자한 척 사교는 손짓으로 제지한다. “바비도, 한 마디로 회개한다고 말할 수 없느냐?” “당신은 내게 강요하는 것을 당신의 양심으로 옳다고 확신하십니까?” “나는 교회라는 조직에 봉사하는 사람이다. 내게는 교회의 명령이 있을 뿐, 양심은 문제가 안 된다.네가 회개한다고 한 마디만 하면 얼마든지 살 길이 있는데 구태여 죽으려는 네 심사를 모르겠다.” “산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죠. 당신 같은 썩은 사람은 살아 있지도 않고, 살 가망도 없습니다. 나는 이대로 인간사를 폐업하렵니다. 이 인간사를 뛰어넘는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이 재판을 지켜보던 태자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바비도에게 다시 한 번 회개할 것을 권했으나 그는 거절한다. “내 스스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심정으로 떠나는 길이니 염려할 건 없습니다. 이미 동정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닌가 합니다.” “할 수 없구나! 잘 가거라. 나는 오늘날까지 양심이란 비겁한 놈들의 겉치장이요, 정의는 권력의 독버섯인 줄로만 알았더니 그것들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네가 무섭구나.…….”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사 푸른 하늘이 있다.(중략)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 신석정 <들길에 서서(1939. 문장)>
15세기 종교적 암흑 시기나 일제치하 36년은 다르지 않게 현실은 어둡고 암담하지만 바비도 같이 양심에 부끄럼 없는 삶을 이야기 하는 의로운 사람이 있기에 역사는 진보하고 세대는 발전해온 것이다. 이 푸른 별은 생활이 지워주는 의무를 다한 그날의 소임이 끝난 길 위에서 바라보는 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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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수업시간에 신석정님에 시를 낭송하며
그 분의 관한 여러가지 사건들을 접했습니다
교수님에 글에서 따듯한 감성을 느낍니다
건강해 지셔서 너무 기뻤습니다
부안 선생님의 생가를 찾았을 때
소박하고 정갈한 선생님의 체취가 남아 있는 듯
깔끔하게 정돈된 선생님의 서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가을에 하는 공부는 모두 보석이 되어 귀에 꽂히겠습니다.
종교가 사랑과 평화를 가르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안위와
명성만을 드높게 하는 세태는 예나 지금이나 인가 합니다
교수님의 글앞에 신이 났습니다 ㅎ^*^
바비도의 항변이 1950년대말기의 혼돈을 점잔케 이야기 한 것이라면
그 보다 십여냔 후 김지하는 <오적>이란 시를 발표하여 세상을 뒤집어 놓습니다.
신이 난 사람이 한 분 있으니 나도 신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