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편지
묵은 씨앗을 뿌린 탓에 드물게 나온 달랑무가
뜨거운 여름 사랑을 홀로 차지한 탓인지
달랑무라고 하기엔 너무 커버린 작은 절구공이 만한 무를 뽑아 놓고보니
가을 해끝은 쉬이 저물어 블루문이 뜨고 황홀한 저녁이 지고 있습니다.
고요함이 깃든 노을 뒤로 자연이 그려놓은 화폭은
단풍과 어우러진 채색의 아름다움이 그 누구도 흉내 낼수 없는 풍경화,
나의 미래도 저토록 화려하고 곱게 피어나고 싶을 뿐입니다.
아차산 기슭 산아래 기름진 햇살은 오곡백과가 여물어 엽서 속 그림처럼
도시 농부들의 가슴에도 풍요를 이루고 저문 가을을 따라
텅 비어 아득한 하늘과 동색이 되었으니,
올해도 다 갔다 싶지만 덧없이 가는 계절에
시작과 끝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연이 옷을 벗은 것이 아니라 자기 필요한 절기를 찾아간 것이니
기다림과 설레임이 있을 뿐 이겠지요
올 봄에 전지해서 시원하게 가지를 뻗은 놀이터 나무에
새 두마리 앉아 서쪽 하늘을 끝나고
바라보고 있는 모습과 불규칙하고
제멋대로 흔드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니
세속의 아우성이 금새 잊혀지고
마음엔 텅빈 적요가 찾아와 괜히 이 한가로움을 깨뜨릴까
꼼짝도 않고 있었더니 한기가 느껴져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나서야 편안함을 다시 찾았으니
계절만 가을 건너 겨울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도 하지를 지나 동지로 향하고 있다는 표시 아니겠어요?
아래층 GS24시에 놀러온 젊은 커플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굳이 저 시절로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얼굴 마주보는 것만으로 저렇게 즐거워 한다는 것은
사실 부러운 일입니다, 나도 분명 저런 시절이 있었다 싶은데 말입니다,
또 모를 일이지요
저렇게 좋던 사이가 틀어져 누구나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그리움 되어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긴긴 여운으로 맺혀서
나처럼 이렇게 좋은 날에 남들 다 가는 단풍구경 한번 못가고
집에서 이게 뭐냐고 푸념이나 하다가 배가 고프니 아침에 끓였던
국을 덥혀 밥 한 주걱 퍼 담고 김치 통 하나 꺼내서 간에 기별만 하고는
수상해진 날씨를 핑계로 장자못 걷기를 포기하고
의자에 몸을 의지하고 지는 석양이나 바라보며 흘러가는 가을이 아쉽다고
투덜거리는 뻔하고 뻔한 인생을 살게 될지 말입니다,
하늘은 올려다볼 때마다 높아지고 멋대로 채색된 붉은 구름이 멍하니 위로
향한 시선을 잡는데 봄에 옮겨 심은 대국이 추석이 지나고 시월이 다
기울어도 꽃 소식이 없더니 서리가 내리는 상강을 지나서야 작은 봉우리를 매달고
곧 겨울이 도래 했으나 거침없이 꽃대를 올리고 있으니
눈 내리는 겨울이 되면 정말 “불쌍해서 어쩌나”입니다,
분명 가을 꽃을 보고 싶었는데 때 늦은 꽃은 아직도
봉우리만 소복하니 저 국화는 이번생은 춥게 생겼지요
“식물들은 뿌리를 땅에 박고 살므로 그 씨나 뿌리가 땅 속에
심어지면 시절의 인연을 따라 싹이 트고 자라날” 것이기에
내년을 기약할 수 있지만,
잊을수 없는 꽃다운 나이에 스러진 젊은 친구들의 10월의 마지막은
또 어느생을 기다려서 청춘의 꽃을 피울지 애석한 마음입니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깨끝하고 청초한 가을 꽃들이 피어나고
여기 저기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축제의 향연이
그동한 침체되어 펼치지 못했던 순간들을 밀처내고
11월 하고도 5일인 오늘 가을과 겨울 사이를 달아오르게 합니다.
이달은 문화생활로 "바람따라 흔들리는 풀잎처럼" 이라는
출판기념부터 시작했으니 부디
이 가을도 허공처럼 깊어진 심지의 안락과 부귀 영화를 허락하시기 바랍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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