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노동으로 얻게 된, 의외의 소득들
(주혜 김정숙 / 수필가)
지천명(50세)의 나이에 이르니, 내 몸의 여기저기가 많이 아파왔다. 뭔가 대책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20~30대에는 조깅과 마라톤을 좋아해서 야외에서 곧잘 달리곤 했다. 그때 알았다. 헬스장 같은 실내운동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실내에서 운동을 하면 답답하여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운동을 그렇게 좋아했지만,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부터는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아니 내가 좀 더 게을러졌을 것이다. 피곤해서 시간만 나면 그냥 마냥 쉬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몸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세월이 조금 흘러, 이젠 아이들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챙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는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더 아팠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몸 운동이나 육체노동’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있었다. 계속 소화가 안 되어 밥을 거의 못 먹게 되고, 구토증세까지 생긴 것이다. 두려운 마음에 결국 위내시경 전문병원을 예약하여 검사를 받게 되었다. 무척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위가 나이가 들어 그 기능이 많이 약화된 것이라 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뭔가 확실한 대책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왜냐하면 새벽에 일어날 때 다리 저림이나 종아리에 갑자기 쥐가 나는 증세도 생겼다. 또 심장도 가끔 숨쉬기 힘들 만큼 찌릿찌릿 아플 때도 있었다. 그리고 오십견이 온 것처럼 팔을 돌릴 때마다 어깨에서 미세한 마찰음 소리가 났다. 목 뒤쪽도 돌덩이 같은 것이 많이 뭉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살이 조금 더 찌니 허리디스크 통증도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우울감으로 다가왔다.
그런 이유들이 생기자, 어떻게 하면 주기적으로 몸을 움직여 몸 운동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야외 조깅을 좋아하지만 이젠 무릎 때문에 달리는 것도 무리가 있음을 안다. 그런데 그냥 걷는 것은 재미가 없다. 왜냐하면 땀이 잘 안 나기 때문에 운동하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무척 달리고 싶은데, 무릎관절이 20~30대보다 많이 약해졌다고 병원에서는 달리는 것은 자제하라고 했다. 그래서 사면초가에 빠진 느낌이었다.
그런 고민들을 하던 터에 나에게 딱 맞는 아르바이트 구인 소식이 들려왔다. 아파트 청소를 하는 미화원 일이었다. 내가 청소를 시작하면 꼼꼼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의 소개였다. 현재 청소하는 사람들이 꼼꼼하게 일을 하지 못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내가 하면 잘할 것 같다는 것이다.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덜컥 겁부터 났다. 내가 그런 육체노동들을 견뎌 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 두려움은 그 일을 하게 되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장기 계획적인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까 봐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또 반대로 유혹되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내 몸을 위해서는 지금 이때 몸 운동과 육체노동을 반드시,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이었다. 그렇지 않고 이대로 내 몸을 방치했다가는 내 몸이 더 심각해질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졌다. 또한 우선 음식물이라도 제대로 소화시키고 싶었다. 밥공기의 1/3 정도도 제대로 소화시키기 힘든 이 상황이 좀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두 번째 이유는, 새벽 5~6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매일 하루 3시간씩만 일하면 된다는 조건이 오히려 나를 유혹했다. 나의 짜뚜리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조건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내 귀를 솔깃하게 했다. 내 몸의 건강을 위해서도 딱 적당한 노동시간이었다.
세 번째 이유는, 내가 평소 아끼던 지인 두 사람도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었다는데, 내가 그 일을 이야기하자마자, 내가 시작하면 같이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도 성품이 선하고, 모두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셋은 초보미화원 3총사가 되어 아파트 청소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두들 처음 해본 일이라, 일을 하고 나면 집에서 끙끙 앓기 일쑤였다. 우리 셋은 모두 팔 통증에 시달렸기에 동전파스를 다같이 애용했다. 초기에 나는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한의원을 드나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힘들어하는 서로를 다독이며 애써 위로했다.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하면, 적어도 3개월 정도는 적응 기간이 필요한 것이라며, 서로서로 버티자고 격려하곤 했다.
그렇게 해서 5개월 정도 지나고 난 지금, 잃는 것 보다는 얻는 게 훨씬 많아졌다. 우선 내 몸의 컨디션이 참 많이 좋아졌다. 나는 점심때부터는 다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새벽 시간에 그 미화업무를 했다.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는 게 몹시 힘들게 느껴졌는데, 이젠 주기적으로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새벽운동을 하는 느낌이다. 또한 운동이 아니라 업무니까 강제성을 띄고 있어서 선택적인 운동처럼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매일 규칙적으로 일어나 3시간씩 열심히 노동을 하니, 내 몸이 근육형으로 적당히 단련되었다. 요즘엔 다리 쥐내림도 거의 못느끼고 있고, 심장의 통증도 거의 못 느끼고 산다. 그리고 어깨 뭉침이나 어깨에서 소리가 나는 것도 어느 순간 없어졌음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소화가 잘 되어, 언제 그랬냐 싶게 음식을 참 야무지게 잘 먹게 되었다. 새벽일로 인해, 적어도 매일 5,000~6,000보는 기본적으로 걷게 되니, 살도 4~5kg정도가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허리디스크 통증도 많이 없어졌고, 활동하기에도 딱 좋은 몸무게가 된 것 같다. 게다가 소일거리로 하게 된 일이, 집안 경제에도 조금 도움이 되고 있고, 내가 배우고 싶은 교육들도 조금씩 더 받을 수 있게 되어 자기계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내가 가장 놀랐던 일은, 최근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혈중 HDL-콜레스테롤이 표준범위보다 높다는 것이다. 빨간색으로 색칠된 숫자에 잠깐은 긴장했다. 그런데 “혈중HDL-콜레스테롤은 동맥경화의 예방인자이며, 수치가 높을수록 동맥경화, 심근경색, 고혈압 등의 질환예방에 도움이 됩니다.“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정상범위의 HDL은 35~65라고 표기되어 있었으며, 나는 72.5라고 나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건강검진을 계속 주기적으로 받아왔지만, HDL이 표준보다 높은 수치로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새벽일을 하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를 수치로 명확하게 보는 것 같아서 정말 뿌듯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한 가지가 있다. 도서<핑(ping)>에서 발견한 명언이었는데, “태도(attitude)가 곧 성취(altitude)다.”라는 문구였다. 나는 미화업무를 하면서 그 말이 참 명언임을 깨달았다. 내가 미화업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성실하고자 하는 그 태도 자체가 곧 성취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성심을 다했다. 그리고 만나는 주민들에게 계속 <안녕하세요!>라고 정중히 인사했다. 또한 나에게 <수고하세요!>라고 말씀해주시는 주민분들에게는 꼭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응대했다.
그랬더니 처음엔 딱딱했던 아파트 주민분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더욱 정감있게 인사해주셨고 여러 가지 칭찬의 말씀들을 해주시기 시작했다. “예전에 다른 사람이 할때는 깨끗하다는 느낌을 잘 못 받았는데, 정말 청소를 깨끗하게 잘 해주시는 것 같아요”라든지, “성격이 정말 꼼꼼하신가봐요”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비교적 젊어 보이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자꾸 드링크나 음료수를 한두 개씩 전달해 주시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칭찬은, 젊은 20대 후반 아가씨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에게 한 말이었다. “솔직히 우리 집 거실보다 아파트 복도가 더 깨끗한 것 같다고 저희들끼리(자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눴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내가 들은 칭찬 중에 가장 진정성있고 감동적인 칭찬이었다. 그 칭찬은 나를 정말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도 그분께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 하나를 구입해서 감사의 선물로 드리게 되었다.
삶은 참 오묘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예전에는 내가 꺼리고 두려웠던 일들이, 나의 절박한 필요에 의해 그것이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일들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여러 가지 다양한 페르소나(개인이 사회적 요구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밖으로 표출하는, 서로 다른 공적 얼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매력적인 부분이 있구나.>라는 삶의 성찰과 깨달음도 주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의 건강을 위해서는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일이 되니까, 세상의 시선이 전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이래서, “인생은 아직도 매력적이고 살만하나 보다.”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몸이 아파 우울감이 엄습했지만, 그로 인해 또 다른 인생을 경험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오늘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다.
첫댓글 주혜님, 역시나 적극적이고 성실하며 긍정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그 모습이 귀감이 됩니다. 그분께서 그걸 아시고 늘 밝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 같군요. 언제나 응원합니다💕
귀한 댓글로 진심의 응원을 해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Beatrix님도 늘 건강하시길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