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공양왕릉(恭讓王陵)은 고려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제34대, 재위기간 1389-1392)과 그의 아들 왕석(王奭), 왕우(王瑀) 등 3부자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양왕은 왕조의 몰락과 함께 폐위되어 왕자 석(奭), 우(瑀)와 함께 원주와 간성을 거쳐 삼척에서 조선조 태조 3년(1394)에 교살되었다고 전한다.
왕릉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 현종 3년(1837) 삼척부사(三陟府使) 이규헌(李奎憲)이 개축하였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많은 사연을 가슴에 품은 채 그저 천추의 한을 품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묘소는 1942년 면장 김기덕과 이 지방인사들이 다시 개축하고 1977년6월 면장 최문갑이 봉축하였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공양왕릉이 두 군데 있는데 이 곳 궁촌리와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 남아있다. 경기도에 있는 공양왕릉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나 이 곳 삼척의 공양왕릉은 민간에 오랫동안 구전되어 왔다. 현재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공양왕릉은 가장 규모가 크고 그 옆은 왕자 나머지는 시 녀 또는 왕이 타던 말 무덤이라고 전한다.
<태조실록>과 <양촌집> 등에는 조선조 태조 4년(1395)에 고려 왕조의 왕씨를 위해 삼척, 강화, 거제에서 수륙제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이 곳의 지명 유래에 따르면 궁촌은 임금이 유배된 속이라 하고 마을 뒷길 고돌산에 공양왕이 살해되었다는 살해재가 있다. 또한 공양왕의 맏아들 왕석이 살았다는 궁터, 말을 매던 마리방이라는 지명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