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김영선
긴 담장이 잘려 나간 곳에 붉게 녹슨 철 대문이 서 있다
썩어가는 몸을 웃자란 넝쿨이 부축하고 있다
비릿한 그 문을 열고 들어선다
문바람 한 자락에 시간이 뒷걸음질 치고
보름달 닮은 여인이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고 있다
이제 나는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돌아 나오는 시야에 손 흔들며 배웅하는 녹슨 대문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하회탈 얼굴 위로 비가 내린다
그 붉은 미소가 싸늘한 바람 되어 심장을 할퀴고 지나간다
삭아가는 그녀 몸을 옛 기억의 덩굴이 부여잡고 있다
지켜오던 것들을 모두 떠나보낸 후
기약 없는 기다림이 뼈가 되어 버티고 있다
다시 보니 오랫동안 생각 없이 넘나들었던 철 대문은
앙상해진 내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서 있다
첫댓글 대문
그리고 글
참 좋으네요.
의미가 크게 다가옵니다.
다시 읽어 봐도 깊이가 느껴집니다.
생각없이 넘나들었던
앙상해진 내
어머니...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이 대문은 제가 1살도 되기전부터 살았던 집의 대문이예요.
이제 그집터가 조막 조막 잘려 마을로 개발되면서 그 대문이 곧 사라질거라고 고국에 사는 언니가 대문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네요.
대문에게 작별인사를 고하다보니 어머니 생각이 들어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