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249호. 이 일대는 낮은 구릉지대로 석성천·연화천·마름내 등의 강줄기를 끼고 들판이 펼쳐져 있어 청동기시대 집터에 알맞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유적 언저리에는 선사시대뿐 아니라 백제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도 많이 있고, 가까이에 있는 소사리·산직리에는 비슷한 성격의 청동기시대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유적을 찾게 된 것은 밭갈이 도중 돌상자무덤과 무덤의 껴묻거리로 비파형동검이 나오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1975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시작하여 1987년까지 7차에 걸쳐 발굴했다. 발굴 결과 청동기시대 움집터·돌상자무덤·독무덤 등이 드러났다. 집자리는 모두 31기가 조사되어 모죽임긴네모꼴과 둥근꼴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둥근꼴은 13기가 나왔는데, 지름은 340~530㎝, 움깊이는 30~150㎝이며, 비탈면을 파고들어가 낮은 쪽으로 나들이를 내고 집바닥에 진흙을 깔거나 다져놓았다. 집터 한가운데에는 큰 기둥을 세우고 둘레에 작은 기둥을 세워 원뿔 모양의 집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네모꼴 집자리는 18기가 있는데 20~40㎝ 움을 파고 기둥을 세운 뒤 서까래를 올린 우진각지붕의 집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벽에는 나무판자를 세워 벽체를 만들었으며, 바닥에 질그릇을 박아놓고 불씨를 저장해두는 곳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집의 넓이는 24~28㎡로 둥근 꼴의 집보다 넓은 편이고 집에 딸린 부속건물이 있는 경우도 있다. 집자리에서 나온 유물들은 송국리형 질그릇으로 불리는 바리들이 많고 붉은간그릇도 있다. 석기로는 도끼·대패날·끌·홈자귀·돌검·반달칼·돌낫·숫돌 등 다양한 생산도구들이 보인다. 돌검과 돌낫에 나무자루가 달린 채 나온 것도 있다. 둥근꼴과 네모꼴의 집자리에서 나오는 유물들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시기 차이는 없는 듯하다.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 둥근꼴은 많지 않은데, 송국리유적,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 광주광역시 남구 송암동 등 서남부지역의 유적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뚜렷한 유구인 돌상자무덤에서는 중부이남지역에서 처음으로 비파형동검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 화강암 풍화층을 파고 판돌로 4벽을 세운 뒤 바닥에도 판돌을 깔았는데 무덤 길이는 205㎝, 너비는 100㎝, 높이가 80~90㎝인 크기이다. 무덤의 껴묻거리로는 비파형동검과 함께 돌살촉·간돌검·대롱옥·청동끌이 들어 있었다. 독무덤도 4기가 드러났는데 구덩을 깊이 파고 독널을 세운 뒤 돌로 뚜껑을 덮었다. 독은 송국리형 질그릇과 같은 생김새이며 독크기는 30~57㎝, 입지름 20~32㎝로 어린이를 묻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54지구 1호 집자리에서는 집자리바닥에서 불탄 쌀이 300여 점 나왔다. 식생활자료는 쌀 이외에 나온 것이 없고 유적의 입지조건이 농사에 알맞는 것으로 보아 당시 생업으로는 벼농사를 주로 했다고 생각된다. 유적의 연대는 BC 5세기로 추정하는데 54지구 집터에서 나온 나무숯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값이 2,565~2,665BP(BC 700~600)로 나와 더 이른 시기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