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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경제소득이 높은 것에 비해 국민의 행복지수는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소득이 높지만 국민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가 무엇이고,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쓰시오.
(1,000자 내외)
행복을 새기는 문기둥/조효준
25년 전의 일이다. 시장 다녀 오시던 엄마가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고 신원미상으로 집에서 꽤 먼 병원의 응급실에 방치된 채 생사를 오가는 사고를 당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그 사고로 삶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려버렸다. 우선 휴학을 해야 했고 일정기간 동안 가족을 위해 학업을 병행하며 가족들 뒷바라지와 5년간의 사고관련 민사재판을 쫓아다녀야 했다. 아버지가 계셨음에도 갑자기 닥친 그 일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겁고 힘든 날들이었다. 대법원까지 갔던 길고 긴 재판에서 승소해서 물질적 정신적 보상은 받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 내가 정신적으로 겪어야 했던 진통은 상당했다.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나도 어찌 보면 재판과정을 통해 만났던 자기보호나 이익을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던 그들과 다름없는 인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엔 엄마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온전히 엄마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엄마가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조금씩 차도를 보이기 시작하자, 내 눈엔 아무 일 없이 신나게 사는 친구는 물론 다른 가족, 친척들까지 원망스러웠으며 그 상황을 슬프게만 생각했다.
다행인 것은 이런 마음 속 폭풍우가 몰아친 뒤 난 현실인식과 냉정, 평안을 찾고 무엇보다 값진 깨달음과 함께 전과 다른 행복을 선물 받았다. 우선 기적적으로 새로 태어난 엄마와 그 소중한 엄마에게 뭔가를 해 드릴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선물인지 알았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물론 행복을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갖춰야 하는 제도, 개인적으로 충족해야 할 물질적 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행복은 자신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박노해 시인의 ‘삶의 나이’라는 시 속의 어느 마을처럼 진짜 삶의 나이를 새겨가며 살아가고 싶다. 그 마을은, 깊이 사랑하고 의미있게 산 삶의 경험 횟수를 문기둥에 새겼다가 묘비에 그 숫자들을 기록해준다고 한다. 선물로 주어진 나의 오늘을 어제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의미 있게 살아내서 문기둥에 금을 많이 긋는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야겠다.
공동체 안에서 행복 찾기/ 조은영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절망은 세상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다는 지독한 외로움이지 않을까.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낯선 구리에서 첫아이를 낳고 집밖에 나가지 못했던 시기. 하루 종일 남편밖에 기다릴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은 나를 무척이나 괴롭혔다.
그때 경험은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준 인생 수업이었다. 특히 파편화, 개별화 된 현대인에게 공동체 회복은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더 절실하다.
거창한 공동체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서 공동체와 더불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내가 살고 있는 마을로 눈을 돌려 다양한 공동체를 찾아보다.
평생학습 수업, 다양한 취미 동아리, 생활협동조함, 시민단체 활동, 학부모 모임 들 크고 작은 다양한 공동체가 있다. 혼자하는 취미는 자족으로 끝나지만 함께하는 취미는 소통의 기쁨, 격려의 즐거움을 동반한다.
둘째, 갈등을 피하지 말고 즐겨야 한다. 특히 여성들은 수없이 모임을 만들고 깨트리곤 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결국 ‘함께 하는 것’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사람도 있다. 갈등은 ‘인간’(사람들 사이)의 천형일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갈등을 통해 사람관계가 돈독해지고, 발전하게 된다. 갈등을 잘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와 개인들이 더불어 성장 할 수 있다. 따라서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갈등해결방법을 훈련하고 공부해야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 활동이 사회적 선과 연계 되어야한다.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 느낄 때 보람을 느낀다. 봉사활동, 아이들 안전, 마을공동체 등 작더라도 사회와 연계된다면 보람이 더 커질 것이다.
이기주의, 개인주의, 시장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이지만 주변의 크고 작은 공동체와 함께한다면 삶의 질이 향상되고 행복지수도 올라갈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정답이다/ 왕은경
며칠 전, 아버지와 일 때문에 시골에 다녀온 일이 있다. 내가 생활하는 이곳에서는 추운 것도, 눈이 오는 것도 못 견디게 싫은 것들인데 시골의 차가운 공기와 눈으로 덮인 풍경, 낮은 한옥들, 빛바래고 앙상해진 나무들까지 눈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주는 것들이었다. 사람들이 이래서 전원생활을 하는구나 싶었다. 모태 도시녀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그동안 정말 힘들었나보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꼈다.
성공과 일,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나는, 최근 4년 동안 온전히 두 아이의 엄마로만 살아왔다. 그러면서 행복감과 기쁨도 점점 작아졌다. 육아와 집안 일, 대학원 공부, 시어머니와의 갈등까지 생겨 스트레스와 예민함이 극에 달한 나는 마음의 병에 이어 몸의 병까지 생겼다. 지옥 같은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예전에는 예쁘다는 인상 좋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웃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행복은 마음에서 오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나에게 있어 그저 교과서적 이야기일 뿐이다.
정보화 시대, 물질만능주의 시대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면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과하게 행복을 좇고 있다. 실제로 행복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다 정말 내가 죽지’하는 생각에 벽을 깨고 나오기를 마음을 먹었다. 4년 동안 쌓여 오 것들이 쉽게 풀리지 않았지만, 우연히 책 한권으로 ‘행복해지는 게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에 대한 연구를 해 온 코칭심리학자 앤서니 그랜트 박사의 저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통해 행복지수를 올리기 위해 신체활동, 식생활의 변화 수면습관의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되었다.
남들은 아이를 키우고 남편 사랑 받으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동안 행복을 위해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또 많은 것을 하려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무시했던 내가 정말 안쓰럽게 느껴지며 좋은 엄마가 되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밥상부터 바꿔야겠구나 하는 주부적인 생각을 해본다.
사소함이 주는 소중한 기쁨/ 이현진
최근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크게 인기를 끌었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가 있다. 흥행을 보증한다는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것도,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도 아니었다. 강원도 산골에서 70년 동안 함께 살아온 어느 노부부의 실제 이야기였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대부분 자리를 뜨지 못할 만큼 가슴 먹먹한 감동과 눈물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누구나 생각해보게 되는 한 마디가 있다.
‘아하, 행복이란…….’
사람은 누구나 남들보다 더 잘 살고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다 보면 환하게 웃는 얼굴보다 그늘지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더 자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화려한 집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가진 것이 많지 않았던 영화 속 노부부의 행복한 삶의 여유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바로 생활 속 사소함이 주는 소중함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노부부는 행복할 수 있었다. 수수함이 묻어나는 하야 한복을 서로 맞춰 입고, 항상 어디를 가든 꼭 잡은 두 손을 놓지 않고 걸으며, 어느 가을 쓸던 낙엽을 서로에게 뿌리며 장난을 칠 수 있는 사소한 일상이 바로 노부부를 행복하게 만든 보물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항상 멀리 있는 중요한 것들만 바라보며 살기 때문에 주변의 사소함을 무시해 버린다. 그래서 항상 남과 비교하고, 큰 것을 기대하며, 늘 후회하면서 서로에게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내 눈앞에 스쳐가는 사소한 일상들을 돌아보며 소중히 여긴다면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수선한 집안일을 모두 마치고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 이웃 아줌마들과의 정겨운 수다, 서로 밉다며 싸우다가도 돌아서 깔깔대며 웃는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 친구들 모임에 나갔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내를 위해 해장국을 끓이는 남편… 어느덧 불속을 훌쩍 넘긴 아줌마로 살고 있는 나의 사소한 일상들이다. 사소한 것,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나의 행복의 이유인 것이다.
엄마표 상담사/ 박미향
아이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앞머리 한쪽 끝을 아래로 처지게해 눈을 볼 수 없게 가리며, 가방을 짊어진 추욱 처진 어깨 분노로 가득 찬 무표정과 부릅뜬 눈동자, 여러 가지 형태이다.
정신 분석 이론을 주장한 프로이드는 인간의 모든 행동, 사고, 감정은 신체적 긴장 상태에 의해 유발되는 무의식적인 심적 본능과 공격적 본능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보았으며, 인간은 이러한 본능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 아이들은 무엇을 해소시키려 하였을까? 누가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 놨을까? 우리 어른들은 깊이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다. 최근에 미술심리 상담을 한 청소년이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은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물고기 가족화를 그리는데 엄마 물고기가 없어서 엄마가 없는데 물었더니, 그러내요. 하며 그리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아이들은 말을 하면 작게라도 그리는데 모르는 척하였다. 엄마와 함께 살고 있지만 부모님을 원망하며 존재감이 없는 심각한 일이었다. 회기를 거듭하며 좋아지는 모습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례였다. 나는 8년차 상담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센터의 아이들은 거칠고, 싸움이 끊이질 않았으며, 온갖 욕설과 파괴로 하루가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고등학생 형을 따라다니며 놀다가 흡연과 본드 흡입으로 적발되어 상담을 하게 되었다. 어떤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꼬맹이는 한부모 가정의 방치된 아동이었다. 하지만 돌봐줄 수 있는 기관이 한 군데도 없어서 대한민국 원망했던 때였다. 그 어떤 곳에서도 해결 방법을 찾아주지 안아서 결국 전학을 보내며 가슴에 묻었다.
나는 엄마이자 상담사이다. 아픈 아이들 앞에서 내가 더 아파할 수는 없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힘든 아이들도 웃으면서 살아가야 할 권리가 있다. 어른들 모두가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들을 봐준다면 비행 청소년이 없는 미래를 생각하며 삶을 설계하는 힘이 생길 것이다. 환경은 어렵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뒷받침이 되어 웃는 얼굴을 만들 것이다. 앞으로도 난 46명의 센터 아이들과 사랑의 주파수를 보내며 살 것이다.
행복은 마음의 여유에 있다/ 심선희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를 양육하느라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수유를 하느라 밤새워 서너 번은 자다 깨다를 반복해야 했고, 식사도 대충 국에 말아 먹어야 했다. 그 와중에도 모든 것이 정해진 자리에 있어야 마음이 편해서 청소기를 돌리고 선반이나 책상에 티끌 하나 없이 깔끔을 떨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와 함께 블록놀이, 미술놀이, 책읽어주기 등을 하다가 아이가 잠들어야 겨우 커피 한 잔을 마실 여유를 누릴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도 특별한 이유 없는 짜증을 터트리기 일쑤였다. 생각해 보니 생전 처음 맡은 엄마의 역할이 버거웠고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틀에 얽매여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행한 삶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육아서를 통해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다’라는 글을 접했고, 그 순간 내 삶이 처음부터 잘못 들어선 길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변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 변해보자고, 먼저 식사 후 바로바로 해야만 했던 설거지부터 미뤄보는 연습을 해봤다. 그 짧은 시간의 여유라는 걸 느껴본 것이다.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안달하는 마음을 향해 ‘괜찮아’를 외치며 삶의 틀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노력했다. 아이가 졸린 시간이면 기다렸다는 듯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 산책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음미하며 음악에 맞춰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책도 읽는 여유를 가져 보았다. 그 시간이 힐링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그동안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행복을 느꼈다. 내 기분이 좋아지니 남편이 퇴근해서 옷을 던져 놓아도, 양말을 벗은 채로 놓아도 그대로 받아주는 여유가 생겼다. 자연스레 다툼도 줄어들었고, 별일 아닌 것으로 힘들어 했던 관계도 가까워졌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요즘 내 삶을 짚어 본다. 어느덧 아이 둘을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자기계발을 위해 역사수업, 부모교육, 독서논술수업을 듣는 여유를 누려본다.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활용하니 너무나도 뿌듯하고 행복하다. 역시 행복은 마음의 여유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열정이 행복지수를 높인다/ 이미경
9년 동안 주부로 살면서 나를 잊어버렸다. 집안일, 애들 돌보기, 남편 내조 등 쳇바퀴 돌듯이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며 삶의 의미마저 상실한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삶의 만족감을 찾지 못한 채 투털이맘으로 살고 있었다. 내 안의 웅크리고 있는 투털이맘 때문에 가족들도 힘들어 하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귀를 자극하는 소리에 발길을 멈췄다. 피아노 소리였다.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내 안의 변화가 일어나니까 표정으로 드러났나 보다.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좀더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자기야, 나 피아노 배우고 싶어.” 텔레비전에 눈을 두고 있던 남편이 내 말을 잘못 알아듣고 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려고 그러냐 묻는다. “아니, 내가 피아노 배우고 싶다고….” 남편은 귀를 의심하더니 재차 확인하듯 묻는다. “정말 배우고 싶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재차 내 뜻을 밝혔더니 남편이 그대로 수긍을 해준다. “정말 하고 싶으면 배워야지. 대신 열심히 해 봐.”라며 격려까지 해준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면 절대로 “노!”라는 말을 하지 않는 남편이다. 생각해 보니 항상 나를 지지해 주는 남편에게 한번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 맘 속에는 항상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교육원을 다니며 낮선 사람들과의 소통을 배우고 남을 인정하는 법도 배워가며 삶의 의미도 조금씩 찾아간다. 피아노는 나의 열정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동안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내 발걸음은 항상 가벼웠다. 차가운 날씨에도 마냥 달콤함을 느끼며 몸속에 어딘가에 용광로처럼 끓고 있는 열정을 느끼곤 했다.
그 열정이 내게 행복감을 일깨워주고 있다.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는 어쩌면 자기 속에 잠재되어 있는 열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먼저 자기 안의 열정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 열정을 찾는다면 삶의 만족감도 훨씬 높아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 안의 열정을 찾아 교육원으로 행복한 발길을 옮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임현숙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아이의 미래를 위하여'라는 부모들의 욕심이 빚은 과잉 교육열로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히고 있다. 바로 지금 마음껏 뛰어놀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꿈과 열정을 발산해야 할 시기에 학원으로 과외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의 욕심은 아이들의 자신감을 사라지게 만들고, 어려서부터 경쟁만을 강요받으며 행복을 누릴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런 아이들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들의 행복지수는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빼앗긴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아지는 현실에서 높은 행복지수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기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뭘까?” 아이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요!”라고 때 묻지 않은 대답을 들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진정 가족을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가? 가족이 내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자녀에게 얼마만큼의 선택의 기회를 주고 있는가?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는 착각으로 현재의 행복을 빼앗고 있지는 않는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일이다.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무엇보다 먼저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행복의 조건으로 물질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챙겨 보아야 한다. 어렸을 때는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우선인데, 어른이 되면서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행복을 찾으려 한 것은 아닌가 반성해 봐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어렸을 때 버릇이 평생을 간다는 것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아이는 그것이 습관이 되어 여든이 되어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좋다. 주체적인 삶을 살게 하고, 경쟁을 강요하며 타인과 비교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합리적이고 건전한 소비습관을 들여가며 지금 당장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천을 앞세워야 한다/ 신삼은
오늘 아침 인터넷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곧이어 카카오스토리며 각종 밴드, 카카오톡 대화방이 떠들썩했다. 인천 송도의 한 어린이집에서 4살 난 아이가 급식반찬으로 나온 김치를 남겼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를 때려 아이가 나가 떨어지며 한참을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주변의 다른 아이들은 무릎을 꿇은 채 겁에 질려 있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부모들이 CCTV를 확인한 결과 드러난 사건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에게도 4살 난 딸아이가 있고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아직 제대로 자신의 의사 표현을 잘 하지 못하며 감정표현도 서툴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직접적인 현실이라 몸이 떨릴 정도다. 그나마 큰아이 학교 친구 엄마가 담임교사라 믿고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매번 이런 문제를 접할 때면 늘 이 사회가 불행한 길로 빠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 내가 이런 일들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것인지 자책하게 되고 그 방법을 찾지 못해 그저 화가 난다.
‘행복하다’는 것은 사회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결코 나만 행복하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가 관심을 갖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관리감독을 잘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해 ‘세월호’사건이며 ‘땅콩회항’ 사건에서도 많은 이들이 두 손 놓고 안타까워만 했다. 과연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사건들이다.
먼저 작은 일에서부터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옳은 일에 맞다고 말할 수 있으며 틀린 것에 아니라고 답할 수 있어야겠다. 행복은 생각과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아야겠다. 경제적 부와 더불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분위기 형성과 가치관 확립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는 자세/ 이명자
어느 노인학교에서 죽음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각자 유서를 쓰고 관에 들어가 누운 다음 가족들을 초청하여 마지막 인사를 하게 했다. 대부분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죽음을 생각하자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남은 생애를 의미있게 설계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거치게 되어 있다. 미케란젤로는 “삶이 즐겁다면 죽음도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같은 주인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창조주가 인간의 삶을 즐겁게 창조하셨다면 죽음도 분명 보다 나은 행복한 삶의 관문으로 창조했다는 것이다. 죽음은 분명 우리의 삶을 옥조이는 사슬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욕망에서 해방하고 참된 삶을 지향하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축복이다.
따라서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죽음은 결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생각을 달리하면 이생의 여정 속에 있는 지극히 당연한 ‘마음 정류장’에 불과하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겁 먹지 않는다면 인생이란 정말 로 멋진 삶이 될 것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죽음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내 삶이 그만큼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면 죽음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죽음을 접하며 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생각할 기회도 갖는다. 따라서 이왕이면 죽음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을 벗어버리고 삶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죽음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면 그 속에서 나름대로 행복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순간순간의 행복 찾기/ 서경숙
행복은 최고의 가치이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우리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인이 정말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타인의 기대치나 믿음에 ‘꼭, 반드시, ~해야 한다’ 생각하며 막연히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직장 멋진 몸매 이렇게 되면 행복해 질 거야’라며 자신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의미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혹은 더 나은 20대를 위해 더 나은 30대를 위해 더 나은 노년을 위해서 그렇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즉 현재의 나보다 미래에 더 행복해 질 나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혹은 열심히 노력해서 목표를 달성하고도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공허함을 느끼며 지나 온 시간을 안타깝게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사진을 정리한 적이 있다. 어린 나, 젊은 우리 엄마아빠, 꽃같이 예쁜 친구들, 그리고 천사 같은 우리 아이들 그렇게 혼자 웃고 즐거워하며 추억에 흠뻑 빠져버렸다. 누구도 대신 할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나만의 추억, 행복했던 순간, 그 순간을 돌이키며 행복해 하는 현재의 내 모습은 어떤 물질적인 것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물질적인 행복은 금방 익숙해져서 더 큰 욕심을 바라게 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행복은 언제나 작은 것에도 만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따라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물질적인 것보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의 행복을 챙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물질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사랑하는 이들과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챙겨볼 필요가 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진정으로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주변의 많은 것들을 놓칠 수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복의 원천인 소중한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즐거움을 찾아보자. 행복은 그렇게 순간순간 습관을 들일 때 더욱 가까이 찾아온다.
행복지수 높이기/ 정순애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에 집중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일, 고민한다고 해결되지도 않는 일,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 때문에 고민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하는데,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 ‘현재의 일’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시간도,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현재’에 집중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대한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워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나 역시 과거 일에 연연해하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아까운 시간들을 그냥 흘려 보내온 적이 많다. 이런 모습에 심한 자괴감마저 들 정도였다. 그래서 무엇이든 작심삼일에 그치기 일쑤였지만, 이른 모습에 벗어나기 위해 3개월 단위로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면 작은 목표 하나씩 추가해서 실천하는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 목표는 최소 주5일 새벽에 산에 가는 것이었다. 매일 새벽 6시 따뜻한 이불 속 유혹을 뿌리치고 나오는 게 힘든 날도 있었지만 이것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3개월째 접어든 지금까지 계획대로 잘 하고 있다. 이렇게 작은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기 시작하니까 하루가 활기차고 자신감마저 생겼다. 다음에는 ‘아침 드라마 안보기’라는 또 작은 목표를 추가할 예정이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1년에 4가지 좋은 생활습관이 생기고, 변화된 생활습관이 좀 더 나은 생활을 만들고, 나아가 멋진 삶을 만들 것이라 확신한다.
작은 목표를 세워 하나씩 실천을 하다 보면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들이 풀리면서 과거와 미래의 일에 대한 생각으로 허비했던 에너지를 ‘현재’에 쏟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행복도 우리들 옆에서 웃음 짓고 있을 것이다.
열정적으로 사는 것도 행복지수는 높이는 방법이다/ 이현숙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라 본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등산을 즐기는 열정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이지만 결혼 25년 동안 주부 생활만 하던 나에겐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었다. 자꾸만 움츠러든 어깨를 펴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소극적인 성격인 내가 이렇게 변한 것은 68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는 오감놀이 강사님을 만나고부터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부러울 따름이다. 그는 준비해야 기회가 왔을 때 붙잡을 수 있다며 100세 시대 행복한 노후를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열정이 넘치는 많은 분들을 만나 자극도 받고 희망의 불씨를 켜는 것이 행복하다.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 그것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해결 방법을 찾으려 하는데, 싫어하는 일이라면 핑계거리만 찾게 된다고 한다. 무슨 문제든 핑계거리를 찾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웬만한 일들은 열정적으로 좋아할 줄 알아야겠다. 그 열정을 찾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배움에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즐거운 일을 찾아 배우고, 도저히 못할 것 같았던 독서논술수업도 이런 저런 핑계대지 않고 열심히 수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가다보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닌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또 다른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내가 꿈꾸던 멋진 삶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의미 있는 소중한 시간을 보고 있다. 열정적이고 지혜로운 수강생들과 소중한 인연을 차곡차곡 쌓다보니 나의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 지고 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이처럼 열정적으로 살 때 행복은 가까이서 미소를 짓는다. 사람들이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정적으로 살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의미있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김혜련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행복은 다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 의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법을 아는 것이다.
2년 전에 디스크 때문에 시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동안 집안일, 공부방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어서 이참에 허리를 고치고, 2주 동안 병원에서 편히 쉬자는 마음도 있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삼시 세끼 시간 맞춰 나오는 밥을 먹으며 그동안 못 읽었던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TV도 보면서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과 아이들이 밥을 잘 먹는지 회사나 학교는 늦지 않고 잘 가는지 빨래는 어떻게 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또 5년 동안 꾸준히 해왔던 운동도 못하고, 낮에 고작 1시간의 물리치료가 활동량이 전부이다 보니 평소에는 초저녁부터 졸음과 싸워야 했던 내가 병원에 있으면서 불면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러한 병원 생활이 일주일 째 계속 되어 가면서 일에서 벗어나보려던 처음 생각과는 달리 점점 그 일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낮에 물리치료를 받고 난 후 외출증을 끊어서 잠깐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집에 들어서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그동안 내가 무심히 지나쳤던 모든 것들이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2주가 지나가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했다. 예전과 같이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남편을 출근시키고, 운동을 갔다 와서 공부방을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면서 집안일을 하는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다. 때로는 공부방의 아이들이 말을 안 듣고, 남편 때문에 화나는 일도 있어 힘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일들이 나만 가질 수 있는 재산들임을 알았다.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돌볼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 할 수 있는 것 같다.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타인에 의한 가르침과 지시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의미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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