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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불트만(R. Bultmann)과 콘첼만(H. Conzelmann)이 신약 신학을 실존주의적 방법으로 접근하였다면,
요아킴 예레미야스는 신약신학을 역사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요아킴 예레미야스의 신학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실존주의적 방법을 가지고
신약신학을 접근하였을때에 간과하기 쉬운 "역사적 예수"를 고찰하는데에 큰 유익을 줄수가 있다. 이 과제(assignment)에서는 요아킴
예레미야스의 신학 사상을 고찰하는데에 목적이 있는데, 그의 대표적 저서인 [신약 성서신학 제1부]를 요약 정리해 나가면서 그의 신학적인 사상을 살펴보려고 한다.
Ⅱ. 생애및 주요
사상
1. 생애
요아킴 예레미야스( JOACHIM JEREMIAS)는 1900년 9월 20일에 독일 작슨 지방의 수도 드레센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루터교회의 파견목사인 그의 아버지를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修學했다. 이때문에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 언어, 역사와 문화에 해박하였다. 그는 20세에 다시 독일의 경건주의의 본거지인 작슨 지방 헤르후트으로 돌아와서 성경선생으로 일했다. 그후 헤르너 연구소, 베를린, 그라이스발트를 거쳐 1935년 이래 1979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괴팅엔대학교 신학부 신약학 교수로서 강의했으며 수 많은 저서를 집필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서로는 [예수의 비유],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예수의 성찬어록], [알려지지 않은 예수의 말씀들], [예수의 기도], [신약성서신학 제 1부] 등이 있다.
그는 신약학자로서 역사적 예수의 말을 찾는데에 노력을 하였다.
2. 사상
요아킴 예레미야스( JOACHIM JEREMIAS)의 사상은 불트만(R. Bultmann)의 사상과의 비교를 할때에 더 분명하게 알수가 있다. 이 두사람은 같은 20세기 신약학계의 거장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인 입장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적 예수연구"에 관한 견해의 차이다.
불트만은 그의 대표적인 책 [신약성서신학]에서 역사적 예수는 신약성서 신학의 연구대상이 될수가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불트만은 공관복음 자체가 역사적 사실기록문서가 아닌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의 산물이라고 본다. 즉 그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가 역사적인 예수가 아니라, 초대교회의 신앙 속에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불트만 그에게는 역사적인 예수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예레미야스는 이런 불트만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대한다. 예레미야스도 복음서들이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적 문헌임을 인정하나, 그 속에는 지상적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올라가는 오래된 "예수 전승(Jesus-Überlieferung)"둘이 상당부분 내포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즉 복음서에 기록되어있는 예수의 말씀들이 블트만이 말처럼 초대교회의 필요와 요청으로 교회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중 상당부분이 실제로 지상적인 역사적인 에수의 입에서 선포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신학적인 견해아래 복음서 속에 "전승(Tradition)"과 "해석(Interpretation)"의 층이
있음을 중시하고, Perrin등의 학자들이 일부 사용한 방버들을 신중히 적용하여서 초대교회의 신학적인 해석층과 예수의 전승을 구별해낼수가 있다고 강조했다. 즉 예레미야스의 신학적 사상으 가장 큰 특징은 "역사적인 예수"에 관심을 갖았다는 것이다.
Ⅲ. 예레미아스( J. JEREMIAS)의 신학사상
- [신약성서신학 제 1부]를 중심으로 -
1. [신약성서신학 제 1부]의 개요
이 책은 앞서 말한 예레미야스의 주된 사상인 역사적 예수의 공생애 연구만을 철처히 다루고있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되어있다. 먼저 1장에서 그는 왜 역사적 예수의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이유가 "자료평가의 문제점"이라고 본다. 즉 우리가 역사적인 예수의 선포와 그의 기본 사상을 선포할수 있는 역사적으로 믿을만한 자료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역사적인 예수를 찾을수 있는 믿을만한 자료들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예레미야스는 1장에서 역사적인 예수의 선포와 사상을 찾을수있는 신빙성 있는 "언어적-문체적 분석연구"등의 여러방법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는 1장의 이런 기초작업을 전제로 해서 2장에서 6장까지의 예수의 공생애에 관한 예레미야스의 신학사상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각 장의 제목을 살펴보면, 2장은 "에수의 사명", 3장은 "구원의 때의 여명" , 4은 "은헤의 시대", 5장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 6장은 "자신의 사명에 대한 에수 자신의 증거", 7장은 "부활의 날"이다. 즉 예레미야스는 이 책에서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을
목적으로 쓴 복음서에서 역사적인 에수전승을 찾는 여러방법들을 조심스럽게 사용하여, 예수의 가르침과 활동, 그의 메시아적 자의식, 수난과 부활등의
문제에 대해 예레미야스 나름대로의 신학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2. 예수의 말씀의 전승은 얼마나 신뢰할만한가?
예레미야스는 [신약성서신학 제 1부]의 제1장에서 역사적 예수의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근거인 자료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이 문제를 다룰수 밖에 없는 이유를 두 가지 이류를 들어서 말하고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우리들에게 "예수 자신이 기록한 글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전승이 얼마나 신뢰성이 있게 전해져왔는가"이다.
예레미야스는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역사적인 예수에 관한 자료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한 방법으로서 그는 첫째로 페린(N.Perrin)이 제시한 비교방법을 들고 있다. 즉 이 방법은 소위 '부동성의 표준(criterion of dissimilarity)"의 방법으로서, 하나의 말이나 사상이 유대주의나 초대교회에서 도저히 유래될수 없는 최초의 전승을 찾아, 바로 그것이 역사적 예수의 전승이라고 볼수있다는 방법론이다. 그러나 이 방법에 약점이 있음도 그는 말하고 있다. 즉 팔레스틴 유대주의 및 초대교회의 종교적 개념의 비교가 너무나 일방적으로 독창성의 원리에 기초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방법론은 아주 일부분의 예수 전승에만 적용을 할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또 다른 역사적 예수를 찾을수있는 또 다른 방법도 필요하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 방법론이 "언어와 문체"를 고찰하는 방법론이다. 1장에서 예레미아스는 주로 "언어와 문체"를 고찰을 통해서 역사적 예수를 찾는 방법론을 설명하고 있다.
예레미야스는 "언어와 문체"를 고찰을 통해 역사적인 예수를 찾는 방법 3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예수의
어록의 아람어적 근거를 통해서 역사적 예수를 찾아가는 방법이고, 둘째는 예수가 선호한 화법을 밝히므로써 역사적 예수를 찾아가는 접근이고,
셋째로는 "예수의 실제 음성의 언어적 특성"을 고찰해 나가므로써 역사적인 예수를 찾아가는 방법론이다.
① 예수의 어록(ՋץՃՉՁ)의 아람어적 근거
예수의 어록(ՋץՃՉՁ)의
아람어적 근거를 통해서 역사적 예수를 찾아가는 방법은 예수의 모국어가 "서방 아람어의 갈릴리역(譯)"이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성경 속에
나와있는 이 방언을 찾으므로써 역사적인 예수에 관한 어록을 찾을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달리다굼(ՔՁՋדՈ֤ ՊՏՌ),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Ջד ׃Ջד ՋՅՌ֤ ՓՁՂՁՈ֢ՍՉ) 등이 복음서에 들어있는 예수의 어록이다. 또 원래의아람어뿐만 아니라, 히브리어나
헬라어에서는 생소하게 보여지는 표현들 속에도 역사적인 예수의 어록의 증거들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가령 히브리어인지 아람어인지 논란이 되고있는
에바다(ִՖՖՁՈ֢)등을 들수가 있다. 즉 이 접근
방법은 예수 말씀이 아람어를 배경으로 가졌다는 것과 당시의 유대주의에 유행했던 셈어들의 특징과 대조해서 역사적 예수를 찾아가는
방법이다.
② 예수가 선호하는 화법
예레미아스는 예수가 선호하는 어법이 당시의 사용하는 어법과 비교해볼때에 매우 도특한 것임을 발견하고, 그 특징을 사용하여서 역사적인 예수를 찾으려고 하였다. 예레미아스가 발견한 예수만의 독특한 화법으로는 신적인 수동형, 반위적 평행법, 운율, 두운·유운·문자의 기교이다.
예수의 신적인 수동형이란 하나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다양한 완곡어법으로 하나님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에수의 말씀에 신적인 수동형이 약100번 가량 나타나고 있다.
반위적 평행법이란 명사, 동사, 형용사 등을 반대적으로 (보통 한쌍의 반대어를 통하여) 사용함으로써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를 들수가 있다. 그런데, 예수의 반위적 평행법은 대체로 둘볁 항목에 강세가 있다. 예수의 말씀에는 구약의 예언적 말들에 있는 운율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고 예레미아스는 말한다. 예수가 사용한 운율은 두박자 운율, 세박자 운율, 네박자 운율, 키나 운율을 들수가 있다.
또 에수님이 선호하는 화법으로 두운·유운·문자의 기교가 있다. 이것은 예수의 말씀을 다시 예수가 사용하신 아람어를
번역을 할때에 두운·유운·문자의 기교가 나타남을 통해서 밝혀진 것이다.
③ 예수의 실제 음성의 언어적 특성
예수의 실제 음성의 언어적 특성은 예수께서 사용하신 비유, 수수께끼, 하나님의 통치, 아멘, 아바를 잘 사용하셨다 점을 근거로 해서 역사적인 에수를 찾아나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방법들로 인해 찾은 것들이 모두 역사적인 예수의 실제적인 말씀이라고는 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에수의 진정성을(authenticity)의 실마리를 우리에게 줄수 있다.
3. 예수의 사명
예리미아스는 이 장에서 세례 요한과 예수의 관계를 비춤으로써 예수의 사명을 진술하고 있다. 먼저 우리는 예수의 선포를 설명함에 있어서 어디를 출발점으로 삼는가를 잘 생각해 보아야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예수가 어떻게 출현하여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기때문이다. 이 문제는 먼저 세례요한과 예수의 관계를 통해서 살펴보아야 할것이다. 성경만을 볼때에 예수와 세례 요한의 조우는 예수의 세례 순간으로 압축도어있다. 예레미아스는 이에대한 이유가 세례 요한에 대한 예수의 종속이나 동등됨을 가능한 멀리 피하기 위해서 성경에 그렇게 기록했다고 보고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가 세례 요한에 대해서 놀라운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성경에서 보고 있다. 또 예수는 여러면에서 세레 요한을 따랐다 예수는 요한과 같이 공중들 앞에서 설교를 하였고, 요한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하기를 선포하였다. 이런 점에서는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 종속되었다는 의견을 개진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요한과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요한은 금욕적인데에 반해, 예수는 세상에 대해서 포용적이었다. 또 요한 심판을 주장한데에 반해, 에수는 하나님의 통치가 가까옴을 주장하였다. 즉 우리는 세례 요한과 에수 사이에 많은 유사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다른점이 있어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는 요한으로부터 세레를 받을때에 소명을 체험하였다. 우리는 이 예수의 역사적인 체험을 의심할수가 없다. 또 예수는 세례 요한을 통해서 세례를 받았을때에, 우리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영의 전달'이 있었다는 것과 '와의 즉위가 아닌 종의 영역으로의 이끌림'의 결과가 있었던 것도 알수가 있다. 즉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을때 체험했던 소명"이 그의 사역의 출발점인 것이다.
에수의 세례 이외에 예수님의 사명을 이해하는데에 이해되는 구절이 마11:27, 눅10:22의 말씀이다. 즉 이 구절들 속에서 우리는 계시의 전달자로서의 예수를 살펴볼수가 있다. 예수님의 의식 속에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수령자요 중개자라는 의식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예수님의 사명을 이해하는데에 이해데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것은 예수께서 하나님께 대해서 "아바"라는 호칭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대주의에서 하나님이 '아바'라는 말로 한번도 불려진 예가 없는 반면에, 예수님 자신의 기도 가운데에는 항상 '아바'라고 부른 사실을 들어 특이한 것임 알수가 있다. 예수의 '아바'호칭의 사용은 예수의 사명의 궁극적인 신비를 표현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권세를 가졌음을 의식하는 말이다.
에수님의 사명은 곧 사탄의 시험에 응답해야만 했다. 그런데 사탄의 시험은 궁극적으로 보면 '정치적 메시야로서의
예수의 출현'에 대한 유혹이었음을 알수가있다. 그러나 에수는 이 유혹에 대해서 거부를 하였다.
이 의미는 유혹에 대한 승리일뿐만 아니라, '사명에 대한 예수 자신의 응답'의 의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구약의 위대한 인물들이
자신의 신앙을 시련으로써 증명했듯이 예수도 그런한 것이다. 또한 예수의 시련은 종말론적인 의미로 해석할수도 있다. 즉 예수님의 승리는 곧 구원의
여명의 의미한다는 것으로 볼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에수는 그러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4. 구원의 때의 여명
예레미아스는 이 장에서 예수님의 말씀 선포의 가장 큰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예수의 사명에 대해서 항상 많은 점에서 모호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말씀과 행동을 통하여서 분명한 정보들을 얻을 수가 있다. 첫째로 알수가 있는 정보가 예수님을 통해서 끊어진 영들이 회복하는 것을 알수가 있다. 예수는 그가 영을 소유하였다고 여러 차례 말하고있다. 이런 영 회복의 의미는 심판의 때가 끝나고 은혜의 때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이 있는 곳마다 이중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수가있다.
이것은 사탄의 통치의 정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당시는 질병과 귀신이 성행하였다. 그래서 귀신을 두려워하고 숭배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즉 악이 최고 절정에 이르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시대에 예수가 사탄을 쫓음으로써 사탄의 멸망을 도래케하였다.
이러므로써 하나님의 통치의 여명이 열린 것이다. 대표적인 성경 구절인 누가복음 7:22 이하에서 볼수가 곧 이것은
가난한 자의 복음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난한 자'란 의미는 '돈 없는 자'라는 의미가 아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라는 의미이다. 예수께서는 말씀과 행동으로써 오직 그들에게만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임을
선포하셨다. 바로 이것이 예수께서 열어놓으신 구원의 여명인 것이다.
5. 은혜의 시대
예수는 구원의 여명을 열어놓으셨을뿐만 아니라, 그것을 충분히 드러낼수있는 재앙도 선포하셨다. 복음은 심판에 앞선 마지막 유예기간을 선포한다는것 이라고도 할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 이전에 재앙이 임할것이고,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재앙이 언제 임할 것인지는 거부하셨다. 다만, 바실레이아 선언, 제자들의 부르심, 선교의 말씀들, 회개에의 부르심, ׃ ՃՅՍՅ֢ Ձ؆ՔՇ(이 세대 말씀들), 고난과 위로의 말씀들,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는 말씀, 겟세마네 기도 등을 통하여서 재앙의 임박 성을 말씀하신다.
또한 이와 함께 예수께서는 화(禍)를 이야기하고 계신다. 즉 동시대인들의 화, 제사장·서기관·바리새인들에 대한
화에 대해서 언급하시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경건을 결의법적인 형식으로 단호히 지적하신다. 이런 화에 대해서 언급하시므로써 예수는
사람들이 멸망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고있다. 따라서 죄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때의 도전의 말씀을 주신다. 그것은 바로 '회개'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는 죄 뉘우침 그 이상의 것이다. 심지어 예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다시 어린이가 되기를
요구하신다. 회개에 관해서는 세례 요한도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세례요한의 회개는 '심판의
두려움에 인한' 회개라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개'는 동기에 있어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의 체험'이다. 즉 동기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개는 탕자가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는 것과 같은 기쁨이 있는 회개인 것이다. 회개를 통해서 생명을 얻음과
동시에 다시 자녀가 되는 기쁨을 누릴수가있는 것이다.
6.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
'나를 따라 오너라"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도전의 말씀이다. 에수님의 도전의 말씀 중의 가장 큰 것은 하나님의 믿음의 말씀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은 '이적에 대한 단순한 믿음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믿음은 가족이나 소유, 심지어 자기 생명까지도 바치는 믿음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아주 큰 믿음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다. 예수는 또한 약한 자의 믿음과 대표적인 믿음도 존중을 하였다.
이런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가진 공동체를 예수님게서는 그이 가족보다도 귀히 여기셨다. 예수의 전체활동의 유일한 의미는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백성을 모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그룹을 모았던 것이 예수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예수의 자녀 됨이 다른 그룹들과는 구분되는 '은혜의 무한성과 무조건성'을 가진 예수의 메세지에 있는 것이다. 즉, 예수께서 모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의 주요한 성격은 그들이 하나님 은혜의 무한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새로운 관계를 갖는 것이다. 복음서를 통해 하나님의 이미지를 보면, 경배하는 무조건 주나, 창조의 주가 아니라 '너희의 아버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또한 이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속되는 것이다. 또한 이 하나님 아버지는 항상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심지어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게 하시는 분이다.
자녀들은 아버지와 대화를 할수가 있는데, 바로 그것이 '기도'이다. 예수는 그 당시의 유대 기도와는 새로운 기도를 보여주셨다. 첫째로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에서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가르치셨다는 것이다. 예수는 기존의 형식과 내용을 산산조각내어 버린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서 은밀하고, 짧게 기도하여야 하며, 용서할 준비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에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은 마치 마라나타와도 같은 종말론적인 기도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에게는 '제자의 생활'을 생각할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즉 옛 시대는 새로운 것을 대체되어야 하는 것이다. 에수님은 구약의 율법이나 구전을 비판하시고, 사랑의 계명을 새생활의 윤리로
주셨다. 이 사랑의 특징은 무한성이다. 이 사랑의 율법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넘쳐나오는데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예수는 또한 구체적인 생활 속의 윤리도 제시하고 계신다.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말의 훈련된 사용, 모든 소유를 포기하는 삶, 여자를 남자와 동등한
인격으로 취급하는 것, 어린이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것, 의식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등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신다. 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 하여야 할일은 하나님의 사자가 되는 것이다. 에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업격한 금지와 함께
가르침과 위임과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그들은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종말론적인 고통의 때가 지나면
승리한다. 즉 전환점을 통하여서 하나님 통치하는 시대가 다가온다. 이때에 창조와 구속이 완성되어진다.
7. 자신의 사명에 대한 예수 자신의 증거
이 장에서 예레미아스는 예수의 자의식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예수는 먼저 구원을 가져오는자로 자의식을 가졌다. 이것은 예수께서 구원을 상징하는 말들을 사용하시면서, 강조적 용법인 "ִբ؇"를 사용하셨다. 에수는 자신이 구원을 가져오는 자라는 사실을 공적인 선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에수는 '인자'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유대에서는 인자라는 사상이 묵시전승으로 계속해서 내려왔다. 이 유다 사상 속에 있는 인자의 의미는 '나의(하나님) 종이라는 뜻이다. 예수는 인자를 삼인칭으로 항상 말하고 있으며, '온 세상을 위하여 구원을 가져오는 자'라는 의미로 사용하셨다. 이러므로써 예수는 자신과 인자의 관계를 신비한 관계로 묘사하였다.
에수의 자신을 이해할때에 꼭 지적해야 할 것은 예수 자신이 죽음을 어떤 의미로 부여하고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3번 언급하고 있다. 에수는 자신의 죽음이 곧 일어날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또 우리는 예수 자신의 죽음 이해를
"성찬의 말씀들",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 "칼에 관한 말씀", "엘리야에 관한 말씀", "넘기워짐", "목자에 관한 말씀",
"죄인들을 위한 중재"를 통해서 살펴볼수가 있다. 이것을 통해서 알수있는 예수가 가지셨던 죽음에 대한 자의식은 죄없는, 자발적인, 고난이며
힘겹게 힘을 지는, 하나님이 뜻하시는 고난으로 이해하셨다. 그래서 여기에서 주어지는 생명은 하나님과 더불어 그리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기
때문에, 이러한 죽음은 무제한의 속죄능력 능력을 갖는 것이다.
8. 부활의 날
우리는 문서상 수난의 문제와 부활의 이야기 속에서 차이가 있음을 보게된다. 부활의 이야기는 관련된 사람도 약간은
다르고, 장소도 다양함을 보게된다. 이것은 부활의 이야기가 손질되었다는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이유 4가지의 부활의 형성동기들 가운데에서
찾을수가 있다. 즉 부활하신 자의 말씀들에 의해서, 부활을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변증법적인 동기에서, 교회 안에서의 발전에서, 당시의
이야기체 Style에서 찾을수가 있다. 예수의 부활은 '여인들이 부활의 날 아침에 방문을 때'라는데에 일치를 보고있다. 또 이때에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데에, 여인이 천사를 만났다는 것이다. 즉 예수의 부활은 사람들에 의해 직접적인 체험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 부활에 대한 경험은
그의 왕위에 등극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즉, 역사의 과정 속에의 그들은 파루시아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즉 이로서 "지금 여기에서 세상의 완성
속에서"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Ⅳ. 맺는
말
예레미아스는 철저히 역사적 자료를 중시하므로써 역사적인 예수의 말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예수가 초대교회에 사정에 가려져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교회의 상황에 따라서 예수의 말과 행동을 재해석하였다. 그래서 그는 경전 중에서 예수의 말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즉 그의 가장 중심된 사상은 역사적인 에수를 찾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당시의 케뤼그마 에수를 찾는 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견해이었다. 즉 그의 사상의 독특한 점은 다른 것보다도 예수에 대해서 다른 어떤 학자들과는 달리 역사적 예수를 찾는데에 동기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레미아는 이런 독특한 차원에서 예수에 대해서 접근하였다. 그가 말한 예수의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자 이었고, 가난한 자에게 구원을 전하는 자이었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시고,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에게 생활윤리를 가르쳐주시고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분명히 아시는 분으로 서술해 놓았다.
예레미야스의 이상과 같은 역사적 예수를 향한 신학적인 접근법은 우리가 성서신학을 하면서 배워야할 방법론인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신약 성서신학 2부를]을 쓰지 못하고 예레미아스가 죽은 것이다.
참 고 문
헌
1. 성종현, [신약총론], 서울: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4.
2. 레온하르트 고펠트 [신약 신학Ⅰ], 서울: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
3. 요아킴 예레미아스 [신약 신학], 서울:새순출판사, 1993.
4. [예수의 비유], 서울:분도출판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