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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초학력을 갖추지 못하는가?”
김태은(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수학습연구실장)
최근 기초학력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기초학력 보장법이 제정 중에 있고, 법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개념 정립의 문제가 불거졌다. 도대체 기초학력은 무엇인가? 기초학력을 보장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놓고 여전히 설전 중이다. 교육부의 기초학력 향상 내실화 방안(2019.3.29)이 발표되자 논쟁은 더 거세졌다. 개념이 어떻게 정립되느냐에 따라 보장 가능 여부가 결정되다 보니 개념의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기초학력의 개념이 보편적으로 사용된 시점이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의 결과(우수/보통/기초/기초미달)를 제시하기 위한 용어였다는 점으로 볼 때, 개념이 규정되더라도 측정도구에 의한 간극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추측도 있다. 어찌되었던 학교 현장은 그간 개념을 몰라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을 지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단 현상을 공유하면 기초학력의 개념은 어느 정도 정리가 가능해질 것 같다. 기초학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다음과 같은 학생들은 거의 모든 교실에서 최소 한 명 이상씩 발견된다. ♠초등학교 4학년 준호. 수학시간에 곱셈은 재미있지만 나눗셈은 어렵다. 수학시간마다 화가 날 정도로 수학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다. 음악시간은 좋지만, 리코더 연주는 힘들다. 방금 읽은 내용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하며, 알림장을 쓰는데 몇 가지 선택한 단어만을 적는다. ♠ 초등학교 6학년 상준. 영어 수업 시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수학 수업에서 덧셈 뺄셈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며, 기초적인 나눗셈을 하지 못한다. 영어와 수학 공부에서 높은 강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누가 도와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중학교 2학년 연희. 수학은 분수의 계산에서부터 막혔고, 영어는 무슨 말인지를 모르니까 집중이 안 된다. 영어와 수학은 포기했고 다른 과목을 잘해보기 위해 학원을 알아본다고 한다. 그래도 과학, 수학 중 한 과목에서 만 점 한 번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 학생들은 왜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의 학습과정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들과 마주하게 된다. 1. 학습을 해본 적이 없다. (제대로)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일단 학습을 따라오지 못한다.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안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학습을 안 한다. 학습을 못한다.’라고 평가된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학습을 ‘안 하고 못 하는’것이 아니라‘해본 적이 없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한 번이라도 맛을 봐야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데, 맛을 본 적이 없다. 왜 맛을 본 적이 없을까? 學習(학습)은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그런데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學을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學을 하려면 일단 궁금해야 한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거 궁금하지? 안 궁금하단다. 여러 번 물어도 안 궁금하다고 대답한다. 다른 아이들은 궁금해 하는데 왜 이 아이는 안 궁금할까? 아이들과 좀 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유가 드러난다. 궁금할 필요가 없었거나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강화를 받지 못한 상태의 지속, 그로 인한 습관 형성. 더 큰 문제는 다른 친구들은 별 무리 없이 그냥 다 해내는 것 같은데 나만 못하고 있다는 정서적 상처. 어차피 안 될 것 같으니까 지레짐작하여 포기해버리는 습관. 엎드려 있는 것이 일 년에 200일 이상 반복되다보니 안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안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 즉, 아무것도 안 배웠다보다 더 무서운 ‘무기력을 배워버린 상태’에 이른다. 학습을 하면서 궁금했던 적, 재미있었던 적이 없었을까? 그 무기력의 악순환을 끊어줄 계기가 그렇게 없었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된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지속하면 가정에서의 결핍이 확인된다. 아이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관심, 궁금한 것을 물어봐 줄 여유, 아이의 학습을 관찰해 주고 격려해 주는 시간의 결핍이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이유는 항상 가정에서의 결핍과 맞닿는다. 관심과 여유와 시간의 결핍은 가정의 경제 사정과 연결되어 버린다. 그래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의 대부분은 교육복지 지원 대상과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아기들이 이유식을 시작할 때 부모는 정성스레 준비한다. 사과를 긁어 먹이면서 어떤 맛을 느끼는지 표정을 살피고, 야채를 다져 넣으면서 잘 넘길 수 있는 크기인지 확인한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관찰하다 보면 이 학생들의 학습이 이유식을 시작하는 아기들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섬세해야 한다. 제대로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기회,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리고 궁금해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물어야 한다. “난 네가 왜 안 궁금한지가 궁금해.”
2. 시간이 없다. (천천히 배울 수 있는) 學習, 배웠으면, 익혀야 한다. 習을 발음해보면 무엇인가를 들이마시는 소리가 난다. 스~읍~.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習이 되면 아이들은 신호를 보낸다.“아~~”. 그런데 이 신호를 보기가 참으로 어렵다. 일단 시간이 많이 걸린다. 習이 일어나는 과정은 어떻게든 자기 방식으로 연결을 시키는 것이고, 연결이 되는 순간 이해가 되는 것인데, 이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學도 오래 걸리는데다가 習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아이들의 일과를 살펴보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일단 學이 안 되니까 반복적인 學을 시도하는 프로그램들에 투입된다. 수업 시간에 배우고(학), 방과 후에 다시 배우고(학), 학원에 가서 또 배우고(학). (하루 종일 學,學,學 배우느라 숨이 차다.) 習이 일어날 틈이 없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한 사업의 예산들이 여러 갈래로 내려오는데, 사업별로 출석 도장을 찍어주기 위해 돌아다녀야 한다. 소위 인기 많은 학생이 된다. 한 개를 배우더라도 제대로 씹어서 삼키는지 살펴봐주어야 하는데, 반복적으로 먹으라고만 한다. 반복하다보면 언젠가는 될 수 있으니까... 그 사이에 아이들은 지겹고, 재미없고, 질려버린다. 맛을 못 느끼니 學에 대한 기억이 안 좋다. 지금 수학을 못한다고 5년 후에도 못하리. 어느 교육 평론가의 말이다. 천천히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다른 아이들의 속도로 먹어야 하니까 매번 체한다. 한 개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시간이 충분하면 학습이 되는 학생들인데, 속도전에 적응하지 못해 기초학력이 부족해진다면, 이는 점검해 봐야 할 문제이다.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시간이라면, 교사의 시간이 충분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사들에게 아이의 학습을 지켜봐 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한가?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효율적인 것은 없다. 이들은 더디다. 더딘 시간을 견뎌주어야 아이도 견뎌낸다.
3. 사람이 없다. (들여다봐주는) EBS 다큐 중에 아기 성장 보고서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생후 36개월 정도 되는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노는 장면(나무판에 새겨진 도형에 같은 모양의 원기둥, 별기둥, 세모기둥, 네모기둥을 맞춰보는 놀이)을 관찰하는데, 엄마들의 특징이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직접 틀린 것을 수정해주는 부모와 아이가 원 모양에 별기둥을 넣어보려고 할 때 한 걸음 뒤로 빠져서 지켜봐주는 부모. 실험의 목적은 나중에 누가 더 놀이를 지속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론은 후자. 전자의 아이들은 그 놀이를 다시 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의 놀이가 아니라 엄마의 놀이였기 때문에.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관찰하면서 이들에게는 후자의 엄마처럼 ‘들여다봐준 사람’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이 학습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봐주고, 맘껏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 시간을 내어 여유를 가지고 관찰해주면서 학생의 사고를 따라가는 것. 이것이 들여다보기이다.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고 시키는 것도 아니다. ‘넌 공부해라 난 설거지를 할게.’, ‘넌 문제를 풀어라 난 밀린 업무를 처리할게.’는 곁에 두고 감시하는 것이지 들여다보기는 아니다. 사실 개별 학생의 학습을 들여다보기는 정말 쉽지 않다. 다른 학생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바빠서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 한번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다. 아이의 학습과정이 눈에 들어오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아~ 이 아이는 이렇게 이해하는구나. 가르침에 대한 전문성이, 전문가로서의 임상이 쌓이는 기분이다. 아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매일매일 모든 것에 대한 들여다봄은 아니다. 학습에 대해 맛을 한 번 볼 수 있을 때까지의 들여다봄이다. 習의 조건이 어떻게든 자기 방식으로 연결을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학습의 맛을 제대로 본 학생들은 들여다봄 없이 혼자 해낸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초기 학습의 맛을 볼 때까지의 친절하게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가장 필요하다. 과거 대규모 학습보조인턴교사 사업이 운영되던 시절, 아이들은 전문성이 부족한 교사라도 자신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래서 학습을 시작했다. 초‧중학교 전환기 학생들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에게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지를 물었더니, 1, 2, 3, 4, 5학년으로 대답은 다양한데 이유는 동일하다.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 친절했어요.” 어느 중학교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사회선생님이 좋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선생님은 우리가 첫 번째예요.”교무실에 찾아가면 하시던 일을 덮어 버리고 몸을 돌려“그래~ 왔니?”하면서 자신들을 맞이해준다고 한다. 수학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한 중학생에게 왜 자는지를 물었다. 전날 밤에 게임을 많이 했단다. 선생님이 너한테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깨워달란다. 그래도 깨우는 선생님은 관심이 있는 거라면서.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원인 제공은 스스로 했으나, 그건 모르겠고 일단 관심을 좀 달라고 한다. 중학생이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중학생이 아니다. 어리다. 이들이 논리적 사고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접근하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아이들의 감정적 기억은 인지적 기억보다 강하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감정을 만져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기초학력은 배울 수 있는 힘, 학습력이다. 근육이 있어야 아령이라도 들 수 있고, 다른 운동도 시작할 수가 있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근육이 없다. 그래서 기초학력에 대한 지원은 근육 만들기와 같다. 헬스장의 Personal Trainer처럼 개개인의 몸을 유심히 관찰하며 다리 근육 어디에 힘을 주어야 하는지 손가락으로 짚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개별화 지도를 위한 노력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여러 차원의 점검과 촘촘한 지원이 요구된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기 시작했다는 공통적인 시점이‘분수’였다. 중학교 수학교사들은 아이들이 제발 분수의 사칙연산만큼은 제대로 하고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초등학교에서 분수의 사칙연산을 완벽하게 숙달시키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남학생의 글씨는 인내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무슨 내용인지 조금 이해가 된다. 연필을 잡는 힘이 없고, 쓰는 것 자체가 싫은 아이들이다. 누구의 말처럼 쓰기가 형벌 같다. 재미있는 현상은 리코더 연주도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운지법을 알아야 하고, 악보를 봐야 하고, 손가락 번호와 도레미를 연결해야 하는, 리코더 연주는 어쩌면 꽤나 복합적인 사고 작용을 요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리코더 연주를 해낸다는 사실이 이들에게는 더 좌절이다. 영어가 아랍어 같다. 소리 내어 읽기라도 해야 하는데, 무슨 발음이 나는지를 알지 못하니 중학생이 됨과 동시에 영어에 대한 학습 의지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지 오래다. 사회수업 시간에 나오는 용어들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고 한다. 체육시간만 좋단다. 사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 중에는 몸으로 배우는 학생들이 많다. 직접 손에 무엇인가를 쥐고 만지면서 학습해야 하는데, 이들에게 교구를 직접 잡아보는 기회가 쉽사리 제공되지는 않는다. 연구 자료를 찾다보면 쉬운 내용을 학습하는 과정에 대한 논문들은 어려운 내용을 학습하는 과정에 대한 논문에 비해 매우 적음을 발견한다. 우리는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하는 것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 교사대를 졸업하는 예비교사들은 너무 우수하고 엘리트라서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대학에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에 대한 지도방법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이처럼 학생들이 기초학력을 갖추지 못하는 현상과 그 이유는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난감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유가 많으면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많아지는 것이라고 위로를 해본다. 기초학력을 보장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첩첩산중이지만, 드러나는 현상을 세분화하여 하나씩 안전장치를 만든다면 해볼 만한 일, 의미 있는 보람을 느낄만한 일, 새롭게 개척할 일이 많은 분야이다. 못하는 학생을 잘 가르치기 위해 교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기초학력이 3D 기피 업무가 아닌, 재미있는 업무라서 열정을 쏟고 싶은 교사가 많아지는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손이 많이 가는 이 아이들을 위해 손을 많이 뻗을 수 있도록 예산도 풍요로워 지기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이글에 제시된 학생들의 사례는 초·중학생 학습부진학생의 성장에 대한 연구(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17년~2020년까지 진행되는 4년 단기 종단 연구)에서 수집한 자료 증 일부를 발췌한 것이며, 제시된 학생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김태은 ♣ 김태은 실장은 현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교수학습연구실장을 맡고 있다. 또한, 한국교육심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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