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07/08 로그100, 7년차 다이버의 필리핀 슬루씨 항해기 Sulu Sea, Tristar Dive Trip Diary
2000년 6월, 동경하던 다이빙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째로 접어든다. 그동안 해외로 몇 번 다이빙 투어를 다녀왔지만 늘 짧은 기간에 마이크로 생물을 관찰할 기회 뿐, 소망하던 대물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번 슬루씨 여행길은 몇 년을 벼르고 별러서 어렵게 떠나오게 되었다. 필리핀으로 가는 5번 째 다이빙 투어였다.
황금연휴로 인해 비행기 티켓을 확보하기 어려웠던지 전체 23명의 일행들은 몇 개의 조로 흩어져 마닐라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저녁 8시 20분 출발인 PR469편으로 꿈에 그리던 슬루씨 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조명이 환하게 들어온 인천 공항의 화려한 실루엣을 배경으로 한 비행기의 날개가 마치 새의 깃털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난기류가 심한 편이어서 잠시 방심한 탓에 비행기 멀미를 심하게 했다. 본의 아니게 옆 자리에 앉은 일행에게 민폐를 끼치고 말아 몹시 면구스러웠다.
3시간 반 가량의 비행 후 마닐라 공항에서 모두 모인 일행들은 마닐라의 펄 가든 호텔(Manila Pearl Garden Hotel)로 이동하여 1박을 하게 되었다. 여행 첫 날 밤을 그냥 보내기 서운했지만 호텔 주변의 한국 식당에서 가볍게 라면을 먹는 것으로 때우게 되었다. 우리네 지방 소도시, 한산한 읍내길처럼 소박한 동네였는데 마닐라에서는 번화가에 속한다고 한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잘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시간 가량이어서 그만 두기로 했다. 같은 방의 룸메이트 역시 자는 둥 마는 둥했던 것 같다.
둘째 날, 아침 일찍 호텔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마닐라 공항의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하여 팔라완(Palawan) 섬의 푸에르토 프린세사(Puerto Princesa)로 떠나는 PR 195편을 타고 1시간 반을 다시 날았다. 팔라완 공항에는 이번 투어에 이용하게 될 리브어보드 보트 트라이스타(Tristar)의 스탭들이 마중나왔는데 그 중에는 다이브 마스터 비오(Vio)도 있었다. 그와는 이번이 4번 째 만남으로 날 알아보고 몹시 반가워하며 손을 힘껏 쥐어 주었다. 예전에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아주 친한 친구를 만난 기분이어서 행복했다.
매년 슬루씨 투어에 나서는 트라이스타 호
푸에르토 프린세사 항구에는 일전에 레이테(Leyte) 지역을 여행할 때 탑승했던 트라이스타가 예쁘게 정박해 있었다. 아직 출항 준비가 끝나지 않아 선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트라이스타를 처음 타보는 일행들과는 달리 내부구조를 상세히 알고 있어서 기쁜 마음에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니 아래층 선실에 내 이름이 예쁜 글씨로 적혀 있어서 반가웠다. 바로 짐을 부릴 수 있었다. 룸메이트는 광주에서 오신 예쁜 김영희 씨였다. 그녀의 첫 인상이 몹시 동안이어서 틀림없이 나보다 어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알고 보니 오히려 언니여서 내심 놀랐다.
일행이 다들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어서 진신 사장님의 주도로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는데 의외로 커플이 여럿이어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는 SDDI 진신 사장님을 비롯하여 신풍우 회장님과 우대혁 사장님, TDI 정의욱 본부장님, 오경철 강사님, 고종원 강사님 등 여러분이 오셨고 광주에서 오신 엄기봉 강사님, 오상근 강사님 팀, LA에서 오신 신현구 강사님 팀, 대부분 다이빙 경력이 오래되신 분들로 일행은 모두 23명이었다.
출항은 저녁 7시란다. 오전에 도착했는데 종일 할 일이 없어져 조금은 맥빠진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다들 필리핀의 토속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푸에르토 프린세사에서 가장 크다는 SM 백화점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간 필리핀 음식은 특별히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산미구엘(San miguel) 맥주만은 전 세계 4대 맥주에 든다는 호평이 있었다. 광주에서 오신 김영범 씨가 전날 밤 빠찡고에서 번 돈으로 일행들에게 맛있는 점심식사를 쏘아 필리핀식 해산물 요리와 랍스터, 참치회 등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뒤섞여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음식도 좋았지만 필리핀 토속 음식점의 내부장식과 구조가 독특해서 직업의식이 발동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서울에 이런 음식점을 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급하게 짐을 꾸린 관계로 빼먹은 필수품들을 살 요량으로 백화점의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돌아다녔는데 물건 가격이 너무나 싸고 좋은 디자인이 많아서 놀라웠다. 1000페소가 약 21달러라고 하는데 체감물가가 20배 이상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우리 돈으로 1200원 하는 검정 비취슬리퍼(60페소)와 아들 녀석을 위해 예쁜 민소매 티셔츠(90페소), 열대어 그림의 주황색 모자(120페소)를 사서 몹시 알뜰하게 쇼핑했다는 흡족함에 배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저녁 노을이 물들 무렵 배가 출항했다. 우리가 자고 있는 동안 트라이스타는 14시간을 밤새도록 항해해서 목적지인 투바타하 리이프(Tubbataha Reef)로 이동하게 된다. 다들 식당에 모여 저녁식사를 끝내고 산미구엘 맥주 한병 씩을 손에 들고 상갑판으로 올랐다.
거기에는 놀라운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태평양의 밤하늘은 잡지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별들로 가득했다. 일전에 트라이스타를 탔을 때는 알아보지 못했던 남십자성을 찾았다. 북반구의 중위도인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별자리이지만 필리핀에서는 북두칠성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묘미가 있다. 밤 하늘의 로맨틱한 정경과 바다를 다정히 어루만지는 하현달의 고요한 미소 속에서 누가 누군지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이 서로에게 섞여 우리는 그저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난 수행자가 되었다. 화려한 밤하늘 배경으로 선 사람들의 검은 그림자들, 바다 위로 퍼지는 웃음소리들…. 우리가 늘 말하는 낭만이란 이런 것이겠지. 시간이 흘러도 오늘 본 장면을 잊고 싶지 않았다. 별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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