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24회)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24회) 1 연달아 휘몰아친 태풍 때문에 불안함 속에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한 달이 넘게 가뭄이 이어졌습니다. 그 가뭄 끝에 오래간만에 가을비가 내리는 날, 스물네 번째 방송을 시작합니다. 날씨와 세상은 미쳐서 돌아가고 있지만, 오늘은 반가운 빗소리를 들으면서 조금은 감상적인 방송을 진행해볼까요? ㅋㅋㅋ 가을비가 내리는 늦은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 한 곡 듣겠습니다. 묻지 말아요 내 나이는 묻지 말아요 올 가을엔 사랑할꺼야 나 홀로 가는 길은 너무 쓸쓸해 너무 쓸쓸해 창밖에 눈물짓는 나를 닮은 단풍잎 하나 아~ 가을은 소리 없이 본체만체 흘러만 가는데 울지 말아요 오늘 밤만은 울지 말아요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그대가 없이 가는 길을 쓸쓸해 너무 쓸쓸해 애타게 떠오르는 떠나간 그리운 사람 아~ 그래도 다시 언젠가는 사랑을 할꺼야 사랑 할꺼야 방미가 부른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라는 노래였습니다. 제 나이 또래이신 분들에게는 가을만 되면 들려오던 익숙한 노래 중의 하나인데, 요즘에는 방송에서 잘 나오지 않는 노래가 돼버렸습니다. 노처녀가 창밖의 단풍을 바라보면서 다시 사랑을 하고 싶다는 내용의 유치찬란한 노래이기는 하지만, 가을만 되면 이 노래를 들으면서 달콤한 사랑을 기대해보곤 했었는데... 하하하하 오래간만에 이 노래를 듣다보니 “사랑하고 싶다”라는 로맨틱한 감정을 가져본지도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쳐서 돌아가는 살벌한 세상을 살다보니 “사랑하고 싶다”라는 달콤한 희망보다는 “살고 싶다”는 절박한 절망만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나봅니다. 절망을 잊기 위해서 육체적 사랑은 수없이 갈구하지만, 희망을 품기 위한 정서적 사랑을 잊어가고 있는 내 모습... 아~ 다시 사랑을 꿈꿀 수 있을까요? 2 예전에 제가 울산에서 인터넷 신문 기자로 있을 때 어느 구립 어린이집 선생님 두 분이 해고된 일이 있었습니다. 해고 이유는 단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는 노동자들을 워낙 많이 봐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덤덤하게 기자로서 이 사안을 취재했습니다. 취재하면서 상황을 보니 지노위 판정이 나오기까지 2~3달만 고생하면 이길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별로 걱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미리 결론을 얘기하면, 두 분은 해고된 지 넉 달 만에 지노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이 나서 복직이 됐습니다. 처음 한 달 정도 해고자를 중심으로 복직투쟁을 취재하다보니까 그들의 상황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한나라당 출신 구청장을 비롯한 지역의 유지들을 든든한 빽으로 삼고 있었던 원장은 완전 또라이였고, 해고자 이외의 다른 보육교사들은 원장 눈치만 보면서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입한 보육노조는 전국에 걸쳐 조직된 소산별 노조였는데, 울산은 이제 막 조직화가 시작된 단계라서 조합원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고요. 두 분의 해고자는 당시 40대 초반과 30대 후반의 여성이었는데, 한 분은 아들이 고3 수험생이었고, 또 한 분은 둘째를 임신한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조직력도 없고 노동조합 경험도 없는 상황에서 노조에서는 두 분이 복직투쟁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한 분은 노조위원장이었는데, 울산 출신이 아닌데다가 보육노조가 전국에 걸쳐 조직돼 있다 보니 혼자서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울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또 한 분은 지역에서 간부로 활동하시는 분이었는데, 상근비가 나올 수 없는 열악한 노조였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었고, 나이가 어린 두 명의 아이 중에 하나는 정서장애가 있는 상태였고, 팔순의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구청을 끼고 있는 또라이 원장을 상대로 싸움을 하는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이더라고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 투쟁에 달라붙어버렸습니다. 선전물을 쓸 사람이 없으면 기사를 쓰고 나서 선전물을 만들고 집회나 선전전에 동원할 사람이 없으면 여기저기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하고 해고자들이 흔들리고 있으면 다독여도 주고 지역의 노조나 단체들을 돌아다니면서 연대를 부탁하기도 하고 기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버린 것이지요. 그 때문에 다른 취재거리를 놓치기도 했지만, 그 하나만 붙잡고 다른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길 확률이 아무리 높은 단순한 투쟁이라고 해도 해고자들의 투쟁이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달이 넘게 그들의 투쟁에 달라붙으면서 제 몸과 마음도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회의와 투쟁준비와 현장취재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하다 보니 숨은 턱에 차오르고 워낙 조직력이 없기 때문에 아주 세밀한 것까지 다 챙기느라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생각처럼 잘 움직이지 못하는 해고자를 다독이면서 투정도 받아주다 보니 짜증이 나기도 하고 면담이나 투쟁현장에서는 기자 신분이다 보니 고함도 지르지 못한 채 속으로 삭혀야만 하고 밤에는 이런 저런 걱정들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자라는 신분 뒤에 서서 관찰자로만 그들의 힘겨움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그들과 손을 맞잡고 그 힘겨움을 같이 느끼면서 함께 버티는 그 시간들이 좋았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제 삶의 고민들은 조용히 사라져버렸고 제 마음 속에서 뭔가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투쟁이 끝난 후 저는 1cm 정도 변한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그게 사랑이었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일정을 끝내고 혼자서 집으로 걸어오다 보면 뒷목은 뻐근하고 머릿속은 오만 것들도 꽉 차 있습니다. 그때 조용히 흥얼거리곤 했던 노래가 있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에 나하고 웃어라  웃어라  들장미 소녀야 바보같이 우는 건 이제 그만 캔디 캔디야 3 쌍용자동차 노동자 스물두 명이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다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짧은 한숨이 나왔었습니다. 그 삶의 무거움이 저를 짓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발버둥 치다가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스물두 명 이후 더 이상의 죽음이 이어지지 않는 걸 보니 조금 더 발버둥 칠 힘이 생겼나봅니다. 세상은 절대로 만만하지 않지만 그런 세상 속에서 발버둥치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연대와 투쟁의 힘이겠지요. 얼마 전에 제게 전해졌던 메일 하나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이 방송을 보시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힘겹게 발버둥 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사랑합니다, 함께 삽시다! -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1백일 국민실천 - 한국사회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지 오래입니다. 노인들이, 어린 학생들이,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고통과 절망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던지고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벌였던 경쟁과 갈등이, 이제는 삶의 근본인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국민들이 나서야 합니다. 삶에 지치고 고단한 이웃들에게 ‘사랑합니다, 함께 삽시다’라고 따뜻이 말 건네며, 손 내밀어 주십시오. 오늘부터 우리는 1백일 동안 밥나눔, 마음나눔, 시간나눔을 통해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그 시작을 스물 두 분의 고귀한 목숨이 희생된 쌍용자동차에서 먼저 하겠습니다. 수영이는 유난히 다리가 긴 아이에요. 부자는 아니지만 가족들과 행복했답니다. 아빠가 회사에서 2009년 해고되시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힘든 일상을 견디지 못한 엄마가, 뒤를 이어 아빠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매만 남겨둔 채로. 쌍용자동차에서 2,646명을 해고한 그날부터 이렇게 무너져 내린 가정이 너무나 많답니다. 지금도 그 고통은 계속되고 있구요. 수영이는 이제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답니다. 부모 없는 입학식을 해야 하는 수영의 손을 잡아주세요. 수영의 어깨를 꼬옥 안아주었으면 해요. 그래도 아직 세상은 따뜻하다는 걸 수영이가 느낄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할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쌍용차에서 생명살림의 문화가 시작되도록 당신의 손을 내밀어 주세요. 사랑합니다, 함께 삽시다! @ 밥나눔 생명살림 다이어트 함께 해요!! 아침이면 가족을 위해 밥 짓는 냄새가 나는 집,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리는 집, 저녁이면 새가 둥지에 깃들 듯 지친 가족들이 하나둘 문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집! 쌍용차 가족들은 그런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마주하는 그 일상을 말이지요. - 기간 : 2012년 9월17일 ~ 2012 년 12월 24일 - 모금계좌 : 가톨릭 : 신협 131-015-488861 천주교서울대교구유지재단 / 신협 131-014-997956 정의평화위원회 개신교 : 신한은행 100-010-127479 (예금주 : 한국기독교연합사업유지재단) 원불교 : 신한은행 100-026-257245 (예금주 : (재)원불교) 천도교 : 우리은행 1005-601-799819 (예금주 : 천도교중앙총부) 불교 : 농협 301-0115-9943-61 (예금주 : 아름다운동행) - 동참방법 : 홈페이지 접속후 무통장 입금, 핸드폰 소액결제 등 간편하게 동참 가능 한끼를 굶으시면 5,000원의 생명살림다이어트 기금이 마련됩니다. 1백일동안 한주 한 끼를 굶으시면 8만원을, 열흘마다 한끼를 굶으시면 5만원을 모금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생명평화다이어트에 동참하여 보내주시는 후원금은 3년에 걸친 투쟁으로 일차적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들에게 생활지원금과 자녀들 장학금, 생필품 등으로 전달됩니다. 십시일반의 작은 관심이 그들에게는 큰 위로이자 희망이 됩니다. @ 마음나눔 ① 함께 기도해요! 기도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종교가 달라도, 종교가 없어도 간절한 바람은 나눌 수 있습니다. 이제, 하루 한 번 그들의 눈에 눈물이 멈추길 기원합니다. 기원의 힘을 모아 주세요. 그 기원의 힘이 생명살림의 물결이 됩니다. ② 온라인 서명에 동참해요! http://www.avaaz.org/kr/petition/saranghabnida_hamgge_sabsida - 대통령 후보와 정당은 생명살림의 정치를 약속해 주세요. - 회사측과 노동조합은 조건 없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 주세요. -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이웃의 삶과 고통을 나로부터 살피겠습니다. ③ 세 명의 지인에게 캠페인 동참을 권유해주세요. 타인의 아픔을 돌보는 것은 곧 내 아픔을 돌보는 일입니다. 우리, 함께 살아야합니다. 사람이기에, 사람이기 때문에. 세 명의 지인에게 캠페인 동참을 권유해주세요. @ 시간나눔 ① “꽃을 들고 걸어요” 생명살림 국민행진 서울시청광장 ➜ 정부청사 ➜ 충정로 ➜ 마포대교 ➜ 국회의사당 ➜ 여의도공원(약 10km) 1차 : 10월 20일 2차 : 11월 3일 3차 : 11월 17일 4차 : 12월 1일 5차 : 12월 15일 격주 토 11시~3시 꽃을 들고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② 절나눔 100일 정진 대한문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는 지난 9월부터 현재 릴레이로 매일 1천배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를 낮추어 모두가 사는 절입니다. 매일 현장에 동참해도 좋고, 집에서 함께 해도 좋습니다. 대중이 동참하는 108배 행사가 세 차례 열립니다. 4 네가 사랑을 하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즉 사랑으로서의 너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네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너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너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무력하며 하나의 불행이다. 맑스의 글입니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 감상에 젖어 사랑을 얘기하다보니 이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사랑에 대한 무수한 글들 중에 하필 가장 건조하고 냉소적인 글이 떠오르다니... 이 방송을 진행하는 저의 정서적 상태가 이 모양입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맑스 얘기했던 ‘무력하며 불행한 사랑’을 몸으로 절감하고 있습니다. 수 백 권의 책을 공유한다면서 많은 이들에게 나눠줬지만 제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싸늘한 반응만이 돌아왔습니다. 구속된 이들에게 책과 글들을 보내면서 연대의 마음을 전했지만 그들은 출소 후 저의 존재를 잊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투쟁하는 이들과 연대하자면서 후원을 요청하는 글들을 보면 꼬박꼬박 후원금을 보냈지만 부모님에게 타서 쓰는 용돈만 축날 뿐입니다. 뭔가를 바라고 했던 일들은 아니지만 “사랑을 하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나의 사랑은 무력하며 불행할 뿐입니다. 그래서 맑스의 글을 떠올리는 지금 저는 더더욱 무력하며 불행합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사람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꿈꾸면서 가슴 뜨거워지는 사랑을 생각해자고 시작한 방송이 또 자기 연민으로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허망하겠지만... 달콤한 사랑을 꿈꾸려고 합니다. 그렇게라도 몸부림쳐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줄을 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손풍금을 울리면서 사랑노래 불렀었지 공 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 흰 분칠에 빨간 코로 사랑얘기 들려줬지 영원히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죽어도 변치말자~~ 언약했었지 울어 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어릿광대의 서글픈 사랑~~~ 줄을 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손풍금을 울리면서 사랑노래 불렀었지. 영원히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죽어도 변치말자~~ 언약했었지 울어 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어릿광대의 서글픈 사랑~~~ 공 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 흰 분칠에 빨간 코로 사랑얘기 들려줬지 랄~~라~~랄~~라~~ 5 사십대 중반이 되도록 저는 이성과의 가슴 떨리는 사랑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히히히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사랑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사랑이 찾아오면 이런 데이트를 해보고 싶습니다. 아는 이의 소개로 혜정씨를 만났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조금 긴장했었는데 오히려 혜정씨 성격이 서글서글해서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나이가 있다 보니 이런 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간 딸 때문에 이런 저런 고민이 많다는 얘기를 웃으면서 하는데 그 웃음 속에서 여러 가지 힘겨움이 느껴졌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그 힘겨움을 쓰다듬어줬습니다. 편안한 첫 만남 이후 서로 문자메시지를 몇 번 주고받다가 두 번째 만남을 가졌습니다. 가벼운 술자리도 하면서 조금 더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혜정씨가 지난번에 자기 얘기만 했다면서 이번에는 내 얘기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듣는 이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수준에서 내가 살아왔던 얘기를 했습니다. 내 얘기를 들으면서 혜정씨는 애써 나를 위로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오래간만에 갖는 술자리라서 그런지 내가 기분이 좋아서 혼자서 말을 좀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이런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첫 만남보다 더 편하고 즐거운 술자리가 끝나고 헤어질 때 “다음에 바다에 한 번 가지 않을래요?”라면서 혜정씨가 데이트를 신청했습니다. 혜정씨와 헤어지고 나서 일부러 두 정거장을 걸었습니다. 가슴이 부풀어 왔는데, 부푼 가슴이 터지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도록 손을 꼭 쥐었습니다. 감정이 부풀어 올라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눈물에 그 행복이 묻혀 내려갈 거 같아서 울지 않고 참았습니다. 며칠 후 혜정씨와 조그만 해수욕장을 찾았습니다. 정말 깨끗하고 푸른 바다에 물결이 잔잔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하얀 모래와 중간 중간 보이는 검은 바위가 편안하게 어울려 있었고 작은 슈퍼와 철지난 파라솔이 몇 군데 있었고 그 위로는 더 맑고 파란 하늘이 바다와 땅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손을 잡고 걷고 싶지만 혜정씨가 쑥스러워할 것 같아서 그냥 나란히 걸었습니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벤치에 앉았습니다. 가을 바다가 조금 쌀쌀하기는 했지만 마음은 너무 따뜻하기만 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용기를 내서 mp3플레이어와 이어폰을 꺼내고는 약간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노래 들을래요?”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떡이는 혜정씨의 한쪽 귀에 이어폰을 끼워주고 나머지 하나는 내 귀에 끼우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습니다. 어색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그 정도의 틈으로 혜정씨의 화장품 냄새가 연하게 풍겨왔습니다. 눈을 감고 그 냄새에 모든 것을 집중했습니다. 바람이 약하게 불어와서 내가 그 냄새와 함께 날아가 버릴 것 같았습니다. 살며시 혜정씨 손을 잡았습니다.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떨림이 내 손가락으로 전해졌습니다. 내 심장도 그에 맞춰서 가볍게 뛰었습니다. 잠시 후 혜정씨 손이 편안하게 내 손에 감싸입니다. 맞잡은 두 손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습니다. 내 심장이 다시 편안해졌습니다. “이제는 혼자 외로워하지도 말고 힘들어하지도 마세요.” 혜정씨가 바다를 바라보면 작은 소리로 얘기했습니다. “혜정씨, 고맙습니다.” 겨우 한 마디를 했는데 눈물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울지 마세요. 우는 얼굴 보고 싶지 않아요.” 혜정씨는 그대로 바다를 보면서 역시 작은 소리로 얘기했습니다. “혜정씨, 스킨십 좀 해도 돼요?” 내 목소리가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안돼요.” 혜정씨의 목소리도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노래를 들었습니다. 조용한 밤이었어요 너무나 조용했어요 창가에 소녀 혼자서 외로이 서있었지요 밤하늘 바라보았죠 별 하나 없는 하늘을 그리곤 울어버렸죠 아무도 모르게요 창밖에 가로등불은 내 맘을 알고 있을까 괜시리 슬퍼지는 이 밤에 창백한 가로등만이 소녀를 달래주네요 조용한 이 밤에 슬픔에 지친 소녀를 살며시 달래주네요 창밖에 가로등불은 내 맘을 알고 있을까 괜시리 슬퍼지는 이 밤에 창백한 가로등만이 소녀를 달래주네요 조용한 이 밤에 슬픔에 지친 소녀를 살며시 달래주네요 ------------------------------------------------ 오늘 방송에서 들려드렸던 노래는 방미의 ‘올 가을에는 사랑할거야’ ‘들장미 소녀 캔디’ 박경애의 ‘곡예사의 첫사랑’ 진미령의 ‘소녀와 가로등’ 이었습니다. ------------------------------------------------- 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성민이 <A href="mailto:mk102938@hanmail.net">mk102938@hanmail.net</A>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