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평가가 있다. 한번에 200명 가량의 부하를 동원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사업에 전념하면서 주먹계를 떠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는 정부 고위직을 지낸 민주당 P의원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북지역에 위치한 동대문의 한 대형 상가의 간부인 김아무개는 실제 서방파의 조직원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기도 하는 등의 동대문 이권 상가의 다 툼에서 주 춤 하기도 한 그는 바로 아래의 후배 부두목급이 서방파의 폭행을 당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아파 실세로 통한다. 문씨 직계인 그는 1990년대 초 ‘범죄와의 전쟁’ 당시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상가 분양 등으로 수백억원대의 재산가가 됐다.
역시 P의원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계보상’ 동아파 두목인 또다른 문아무개씨(50대·건물입대업)는 얼마 전 검찰에 구속됐다.
주먹계에 따르면 3대 패밀리 조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두목들이 오랜 수감생활 또는 해외도피로 조직을 관리하지 못한데다 중간 간부들이 독자적인 길을 걷기 때문이다. 3대 패밀리의 위력이 통하는 곳은 교도소뿐이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교도소에서는 아직도 조양은이나 김태촌이라는 이름이 통한다고 한다.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는 10여 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다. 출소예정일은 2004년 10월.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는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1988년 양은이파 계열인 순천시민파에 의해 불구가 되도록 난자 당한 OB파 두목 이동재씨는 미국 뉴욕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긴 해도 3대 패밀리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양은이파 조직원이었던 한아무개씨는 강남 모 호텔의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수백억원대의 돈을 벌었다. 유명 여가수 U씨의 매니저를 맡기도 했다 . 그밖에 서울에서 활동하는 3대 패밀리의 후예 중 주목할 만한 사람으로는 강아무개, 조아무개, 나아무개, 박아무개씨 등이 있다. 이들 또한 모두 사업가로 변신했다.
무교동에 자리잡았던 오씨는 조양은씨의 직계 선배다. 1976년 3월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후문 주차장에서 김태촌씨 부하들의 칼에 맞아 불구가 된 이후 병원 침 대에서는 하도 칼의 상처가 많아서 눕힐 수도 바로 세워놓고 누울 수도 없다고 해서 붕 대로 공중에 그냥 한 동안 칭칭 감 아 놓고 있었다 고 그러함.. 사실상 주먹계에서 은퇴했다. 조양은씨와 김태촌씨 간에 벌어진 ‘3년 전쟁’의 계기가 바로 오씨 피습사건이다. 신상사의 자 서 전에서는 그들의 내분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엘리트 공부 출신의 정학모 태권도 주 먹인 그 는 김 대중 아들과도 친해서 대 기업 스포츠 간 부 대 표 이사를 지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 다. 엘지 스포츠 구 단 사장 이다 .이 때 학 모가 정학모는 종철이를 상당히 고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은 머리로 승 부 하는 모 사 형 타 입 이고 종철이는 현 장에서 몸으로만 떼우는 스타일의 주먹으로써 평 상시에서도 학 모가 종 철이를 매 우 안 좋게 생각을 하고 있던 터 였다.
이 말의 신 빙성이 있는 이유를 우리가 한 번 더 들여다보도록 하자. 난생 처럼 공 짜를 좋아하던 이 목사라는 분이 있는데 이것도 야매로 목 사 안 수 직을 받 고 나서 태촌이 회장에게 팽을 한 번 당하던 자로 축출이 된 사람인데 내가 이 의류 선물을 한국에서 가장 크게 운영을 하는 광교와 수원과 판교를 잇고 있는 전 국의 옷이라는 옷은 전 부 가 져 오시는 분이신데 이 분의 매장 채 광 식 사장이 나허고 매우 절 친 한데 그 밑의 동료 겸 친 한 친 구의 곽 남 욱 부 장이 도 맡아서 온 갖 의류와 한 물 지 나간 명풍 의류를 다루고 있는데 실 제 살려고만 마음만 먹으면 그냥 가져오기도 하고 자신의 지갑을 까서 구 매를 할라고 치면 매우 비 싼 값나가는 옷들이다. 날 얼마나 신뢰하느냐 하면 한 번은 초 겨울에 걸 쳐 입을만한 옷의 영국제 닥 스의 75만원짜리의 겨울 옷 좋은 것을 내가 단 얼마 내고 입 고 나가는데 에서도 이 신의와 그 신뢰 때문에 채 사장님과 곽 부장은 아무소리 안 하시고 그냥 입 으라 라 는 눈 치 이 시다.
이런 옷을 줘도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하나 하지 못하는 정 신 적으로 다 소 문 제가 있으신 분이신데 뭐 서방파 부두목의 손 하 성이가 태 촌이 죽일라고 양복안에 왼쪽에 휴 대용 도끼를 들 고 다니더라 해서 조직에 한 동안 발칵 뒤집히기도 하였다.
이 때 한 번은 아니 그 오종철이라는 그 분 께서는 신상사의 대부가 태촌 회장에게 시켜서 그리 된 거라네요 한 번 슬 쩍 띄워 보니 이분의 말 이 웃기 고 있 네..... 걔들이 린치를 가한 것을 시 킨 다는 것으로 알 고 있다니 ... 웃 기는 소리들 하 고 있 네 ! 그러는 것 입 니다.
광주 출신 주먹의 대부는 박영O씨다. 서열상 박종O씨 바로 아래로 원래 광주 동아파 소속이다. 전 국회의원 신아무개씨의 사위이기도 한 그는 후배 김태촌씨를 도와 신우회 자문을 맡았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때 구속됐을 당시 언론은 그를 ‘국내 최대 폭력조직 서방파의 전신인 동아파의 대부’라고 소개했다.
정치권 인사들과 교분이 두터운 그는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사건’에 관련됐다. 당시 신민당 비주류측의 요청을 받아 김태촌씨를 비롯한 직계 ‘동생’들을 이끌고 전당대회에 참석해 주류측에 폭력을 행사한 혐의다. 오기준 등의 서방파 두목이 김태촌씨 석방운동을 펼치고 목포파 두목 강아무개씨의 배후 노릇을 했다는 소문도 있다. 주먹계에서는 박종O, 박영O 두 박씨의 영향력이 지금도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방파는 광주시 서방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따 만든 조직이다. 뒷날 김태촌씨가 범서방파로 발전시킨 이 조직의 최초 두목은 건설업자 김성O다. 김씨의 뒤를 이어 서방파를 이끈 사람이 바로 ‘정현준 게이트’로 널리 알려진 오기준씨다. 목포 출신인 오씨는 김태촌씨의 직계 선배로 1977년 구속된 적이 있다.
당대 최고의 호남주먹들
신우회 회장(검찰 자료에는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김태촌씨와는 가까운 사이. 훗날 오랜 장 기 징역생활과 절대 무관하다고 볼 수만 없는 이용만 하다 버린 김씨를 서울로 불러들인 사람도 오씨다. 본인이 형님이면 두목이지만 미리 부두목으로 손 써둔 채 전 면에 김 태촌을 내세우기만을 바 빠 온갖 더러운 일과 좋지 않은 점을 모조리 끌어안은 김씨이다. 하지만 김씨는 평소 그를 ‘존경하는 선배’로 깍듯이 대접했다.
하지만 보도와 언론이 다 가 아니듯 조양은 씨는 조숭식 기자의 대한민국의 조폭 이라는 책 말미에서 젊은 시절과 학창시절에 절친으로 알려진 "태촌이는 선 배 들에게 이용을 당했다."라고 회고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 다.
박종O, 박영O씨와 마찬가지로 오씨 또한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정치권에 발이 넓어 나름대로 주먹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준 게이트’가 터진 직후 미국으로 도피한 후 귀국하지 않고 있는데, 이경자씨에게 고위층을 연결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LA에서 룸살롱을 개업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고위층 인척인 차아무개씨와 밀접한 관계다.
오씨와 같은 시기 광주에서 활동한 주먹으로 김제O씨가 있다. 구OB파 두목인 김씨는 한때 광주 주먹계를 통일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그밑의 하수인의 더러운을 도 맡아서 처리해온 동생들도 다 하나같이 가족들이 있는터라 자기 가족을 등지면서 까지 한 물 간 못난 형 님을 모실 리 만 무 하다 ‘ 지금 세상이 어떠한 가. 가딱하다가는 다 구속이다.정치인들의 친 인척 친 분 있는 자들도 다 구속이 되는 세상이다. 동생’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탓이다. 그후 서울로 올라와 조그만한 카페 겸 술집을 운영했다.
당시 대전교도소에는 양은이파의 조양은 과 함께 현재 여권 실세인 정치권 인사들과 김태촌, 오기준씨 등 거물 주먹이 모여 있었다. 김태촌 직 계 선 배이기도 한 오 기 준 그는 조양은 앞에서는 힘을 잘 못쓰는 것으로 전 해 진다. 계보가 다르고 실력 등의 차이가 워낙에 큰 탓이다. 후 일 장충동의 한 룸사롱에서 단란 주점에서 만 난 것으로도 전 해 진다. 묵묵히 아무소리 없이 술 잔만 기울이고 마시다가 헤어졌다는 후 문이다. 목포를 떠나 20년 이상 대전에서 살아온 김씨는 이 지역 일간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대전 목포내기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김아무개씨는 김옥O씨의 선배다. 평소 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해온 그는 최근 고위층의 ‘경고’를 받고 국외로 나갔다. 진O파 두목 김진O씨는 올초 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됐으나 무죄로 석방됐다. 1990년 ‘대전 판·검사 술자리 폭로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월급쟁이인 그들은 돈이 별로 없다 .공무원 출신인 탓이다. 신 분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부유층의 신분 상승으로는 그 만인 부자의 라인에 손을 쉽게 대거나 이들과 관 계를 튼다는 점에서는 우리 나라 사회가 아직도 갈 길이 멀 다거나 하는 등등의 아직까지의 어 두 운 구 석이 많이 있어 상황과 잘 이용만 한다면 돈 벌기 용이하다거나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이러한 종합적인 편 법과 불 법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조폭 전 문 검사의 나는 깡패만 보면 잠 이 오다말다 한 다던 조승식 전 검사의 인 터뷰 전 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상경한 광주 출신 주먹으로 정아무개, 추아무개씨 등이 있다. 정씨는 무도인(태권도) 출신이다. 김태촌의 직 계 선 배로 수사기관에서는 서방파 행동대장으로 등재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원유통의 사장출신이다. 전국의 술 집의 술과 맥주와 소 주가 이 진원유통에서 주문을 받고 계약받고 운 영 한다는 업 계의 소 문이 파다하다. 전국의 유 흥 업 과 업 소가 진원유통에서 나오는만큼 술로써 거래량은 매출이 중견 중 소 기업 수 준이다.
광주에서 칼을 맞고 서울로 올라온 추씨는 서울역 부근 P다방을 근거지로 삼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랜 세월 민주화투쟁을 함께 한 K 전의원과 친분이 깊다. 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목포 출신 주먹으로는 아마추어복싱 라이트급 챔피언을 지낸 이 아무개씨가 있다.
그밖에 특정 조직에 몸담지 않은 이 지역 출신 주먹으로 호 남의 대 표적인 후 견 인 과 가장 체계적인 조직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 고 있는 김태촌 선 배 의 송 아무개, 조아무개씨 등이 있다. 송씨는 오종O씨와 더불어 무교동에 터를 잡았는데, 그의 도움으로 상당수 호남주먹이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는데 몇 년 전 고혈압으로 사망했다.
주먹계의 한 관계자는 “번개파 수장격인 송태준씨는 무척 야물었다(실력이 좋은 주먹을 가리켜 ‘야물다’고 한다)”며 “ 주먹계에서 호 남 후 견인 노릇을 하 면서 상당한 위치를 하다가 몸이 좋지 않아 세상을 등지게 된 것 ”이라고 말했다. 조씨도 송씨처럼 독자적으로 활동한 주먹이다. 싸움도 잘 할라 치면 이 기 술과 대가리가 특 히 이 머리가 좋아야 된다. 힘으로 승부만 할려다만 보면 헬스의 웨이트트레이닝만 천 시 간 그 이상을 투지를 발 휘하면서 까지 시간 투자 하였을 것 이다.
‘패밀리’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주먹 실력을 뽐냈다고 한다.
서울로 진출한 호남주먹 중에는 광주·목포 출신 외에도 뛰어난 주먹이 많다. 종 로 서산파의 종로의 안 상 민씨와 4 대 문안 그리고 역 도 부의 대표출신의 정치 깡패의 목 사 안 수 받은 김용남씨 일 명 용팔이의 안 기 부 조작 정치 사 건 에 가 담 하기도 하였으며 뛰어난 주목의 이 또한 대표적인 이가 벌교 출신의 문아무개씨. 양은이파의 수석 행동대장격인 싸움에서는 거의 져 본 적 없는 그도 강영신 도 순천출신인(영화보스의 보스로부터도 가장 신임받던 2인자의 독고영재의 주연역할!) 그는 한때 건달 생활 이전에는 도 내에서는 매우 유명한 도민체전에 매 개최마다 출전하다시피 체조 선수로도 각광을 받던 인 물이었다. 보다시피 권 투 만 복 싱만 싸움을 잘 할 수 있는 기술만 배우는 것은 아닌 것이다. 권투를 해도 태권도에 안되고 유 도 부 에 안되는 것을 많이 봐 와 온 탓이다. 바로 이런 순발력 ! 빤 지 인 것이다. (빤 지= 손목의힘.) 이글을 쓰고 있는 필 자 역 시 서울체전 7회 연 속 출 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서울대표 구기종목 그 만 둔 이후....
원로주먹 유지광씨와 동 세대인 그는 당대 최고 주먹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경기도의 한 소도시에서 건물임대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희생양으로 형장에서 생을 마감한 연예인 주먹 임화수 와 형 장의 이슬에서 죽은 이정재 라 인 이 다.
광양 출신의 ‘닷소(별명)’는 박종O씨의 윗세대로 호남주먹 가운데 가장 먼저 명동에 진출한 사람이다. 신도호텔이 근거지였는데 유명 가수 조아무개씨의 매니저로도 활약했다.
보성 출신 주먹으로는 이육O씨가 가장 유명하다. 한 때 양은이파의 고문 내지 자문역으로 활동하던 그 는 1989년 부산의 100억원대 매립지 이권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될 당시 언론에 ‘3대 패밀리의 대부’로 소개됐다. OB파 두목 이동재씨와 가까운 친척이다. 이승O씨가 조직한 호청련(호국청년연합회)에서 고위간부로도 활동했다. 김태촌의 나의 이야기의 등에서 도 기 록 ~ 송태준 선배는 4·19혁명 이후 이정재·임화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난 다음 가장 체계적인 조직을 이끌던 2세대 호남파 총두목이었는데, 유신정권 때 일제 단속에 걸려들었다. 광주의 전 설 로 꼽히는 전휘장 -심백학도 거물원로들이시다. 카지노 대부 전낙원 파라다이스그룹 회장과의 마찰로 인해 호남파 식구 10여 명과 함께 검거된 것이다.
동아파 박영장 선배도 당시 송태준 선배와 공범이었다. 두 선배는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재판받은 후 고향인 광주교도소로 이감되었다가 그 해 8월15일 석방되었다 라고 하면서 정중히 인사를 올 리면서 출 소 하실적에 찾 아 뵙고나서 서울에 마땅한 친척이나 집 이 없어 송 태준 선배의 서울 집으로 본격적으로 모 시 기 시작하였다 라고 회 고 한다.
호남주먹은 그 뿌리가 매우 깊고 단단하다. 표면적으로는 위에 언급한 60대 주먹들이 서울을 장악하고 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선배주먹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비결은 바로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과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온 인간관계다. 호남주먹은 크게 전남 주먹과 전북 주먹으로 구분되는데, 대대로 전남 주먹이 우위를 보였다. 전남 주먹의 양대 본산지는 목포와 광주다. 전통적으로 광주보다는 80년 대는 3 대 패밀리로 인해서 아무래도 광 주의 시 대 였다면 90년 대는 목포의 시 대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목 포 라인에 물 량과 대 형 건설사와 건설업 쪽의 하청 계약과 많이 몰려있으면서도 온 갖 부조리한 일 을 처리하기에는 훨씬 빠르고 정확한 것이 주먹들이지만 시 도 의원 과 국회의원이 나설 수는 감 히 없는 노릇! 라고 하기도 한다. 목포 쪽이 드세고 걸출한 주먹도 많이 배출됐다.
호남주먹이 서울로 진출한 시기는 1960년대 중반이다. 먼저 자리를 다진 쪽은 목포 주먹. 박종O, 오종O씨 등이 상경 1세대 주먹이다.
번개라는 별명으로 한 시절을 주름잡았던 박씨의 주 활동무대는 북창동 일대였다. 계보상 김태촌씨의 대선배로 1989년 김씨가 조직한 신우회의 고문(검찰 자료에는 회장)을 맡는 등 호남주먹계의 대부로 활동해 왔는데 늘 범 호 남파(오종철파 그밑이 정학모 와 조양은 행동대장_) 에 밀리게 되었다. 둥지를 틀 고서 무엇인가를 하기에는 상당한 애를 먹었다라는 것의 원로의 한 전 언 이다.
명동 신상사의 일원이기도 박 종0은 한 그는 역 대 가 장 큰 사 건 가운데 에서 기린아로 성장한 일약 스 타 덤에 앉은 조모씨의 활약과 대조적으로는 그와 함 께 호남출신이면서 더 명동 싸보이 명동호텔 사 건에 그 자리에도 송년회에 참 석해 있었던 것으로 알 고 있 다. 신상사파의 신상현 씨의 부탁으로 소 개 해 준 것도 이 박 종0 인데 김태촌을 소 개 해 준 인 물 이다.
그는 1988년 국내 최대 폭력조직의 하나인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O씨, 수원 주먹계 대부 최창O씨 등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야쿠자 조직과 우의를 다지는 행사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모 스포츠협회의 고위직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