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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 칠드런 액트 - The Children Act >
- 완벽한 것만 같았던 일과 사랑,
그리고 꿈,
이 우아한 일상 속 모든 것을 강렬하게 뒤흔든 파장.
' 나의 결정이 소년을 위한 최선의 길이 되길...'
법정에서 '마이 레이디'(My Lady)라 불리며,
사회적 신망이 두터운 여성 판사 피오나 메이
(엠마 톰슨 분),
그녀는 법이 삶을 지배할 정도로 무엇보다
일을 중시하는 법조인입니다.
대학에서 플로베르의 인생론, '생각에 담긴 시선의
자유로움'에 대해 강의하는 교수 남편 잭 메이
(스탠리 투치 분),
그는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려 하지만
아내 피오나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하지요.
퇴근 후, 집에서도 산더미같은 재판관련 서류에
얼굴을 파묻은 채 일에 몰두하는,
아내로서의 자기 자신을 뒤로 미루는 게
습관이 된 피오나를 마주하며,
그녀와의 행복했던 시절이 그리워져만 가는 잭...
그는 급기야 청천벽력의 선전포고를 토해냅니다.
" 뭐라 말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나 바람 피울 것 같아!"
운명처럼 사랑했으며,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아내이지만,
잠자리는 물론 키스를 나눈지도 너무 오래됐다며,
부부 아닌 남매 같은 생활에 지쳤다는 잭...
믿었던 남편의 도발이자 폭발은 그녀를 송두리째
흔들어대며 크나큰 충격의 상심에 빠지게 합니다.
잭을 붙들고 싶은 마음이 바닥에서부터 차고
올라오지만,
이성어린 자존심을 애써 유지한 채 피오나는
그가 짐을 싸서 나가는 걸 지켜보고 열쇠를
바꿔버리죠.
그러던 어느날,
피오나는 백혈병에 걸렸음에도 종교적인
신념으로 수혈을 거부하는,
법적 성인 시점(18세)을 불과 3개월 앞둔
애덤(핀 화이트헤드 분)의 재판을 맡게 됩니다.
존경받는 판사로서 나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온
주인공의 일상에 불현듯 찾아온 결혼생활의
위기...
그리고 오롯이 판결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중대한 재판이 동시에 주어진 것이죠.
세상의 관심이 집중된 법정에서 병원 측은
“당장 수혈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채근하지만,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애덤과 그의 부모는
“생명의 선물이요, 또 다른 영혼인 생명의 피를
남의 피와 섞게 하는 것은 타락을 부르는 행위”라며
첨예하게 맞섭니다.
하여, “치료 거부는 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한
기본권”이라는 애덤의 변호사와,
“미성년자인 애덤에게는 목숨을 구할 치료를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병원 측 변호사 간의
법적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지요.
피오나는 소년 애덤이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또한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법정이 어떻게
권한을 행사할지에 대한 답을 얻고자 직접
애덤을 만나보기로 합니다.
그날의 만남은 두 사람의 삶에 예기치 않은
파열음을 일으킵니다만...
피오나가 정말 병실에 오자 소년 애덤은 천사라도
만난 듯 너무 기뻐 어쩔 줄을 몰라하지요.
"수혈 거부가 너희 부모님의 영향으로 보일 수도
있어" 라며,
"더욱이 뇌질환이나 시력 상실 등의 치명적인 부작용도
견딜 수가 있겠냐"는 피오나의 걱정어린 말에,
아이는 자못 진지하게 묻습니다.
"저를 설득할려고,
제 생각을 바꿔 볼려고 오셨나요?"
애덤의 혈관은 피를 만들지 못하고
폐는 숨을 잘 쉬지 못하는데도
피오나와의 대화로 그의 눈은 더욱 눈부시게
반짝이지요.
더욱이 '다운 셀리 바이 더 로즈 가든' 노래를
부르는 피오나에게 해맑은 미소의 애덤은
무방비적으로 빠져듭니다.
그렇게, 소년을 면담한 피오나는 고심 끝에
판결을 내리게되지요.
" A는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나이에
근접해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다는 사실은
그 믿음이 얼마나 심오한지 증명해주고 있지요.
또한 그의 부모가 끔찍이 사랑하는 자식을
신앙을 위해 희생시킬 각오를 한다는 사실은
'여호와의 증인'이 고수하는 교리의 힘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 힘때문에 저는 멈춰 서게 됩니다.
왜냐하면 A는 17세가 되도록 종교적, 철학적
사고라는 격변하는 영역에서 다른 표본을 접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지요.
저는 A의 정신, 견해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는 아동기 내내 강력한 하나의 세계관에
단색으로, 중단없이 노출된 채 살아왔고,
그런 배경이 삶의 조건을 좌우하지 않았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불필요한 죽음을 감수하는 것,
그리하여 신앙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것이
'아동 A의 복지'를 도모하는 길은 아닐 것이죠.
A는 그의 '종교'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아동법(The Children Act)'을 소재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듯
했던 영화는 이때부터 새로운 길로 접어듭니다.
카메라는 선고 전에 있었던 피오나와 애덤의
만남이 두 사람의 일상에 미치는 파문을 응시하기
시작하지요.
하여, 100 여분의 러닝타임은 피오나가 선고를
내리기까지의 과정과 판결 이후의 이야기로
정확히 양분됩니다.
'마이 레이디, 피오나 판사'와의 단 한 번의 만남,
그리고 한 번의 판결은 애담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 게지요.
그는 대책없는 스토커처럼 피오나의 곁을
맴돌며 삶의 궁금증과 사랑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 마이 레이디!
전 판사님과 함께 유조선을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얘길 나누는 엉뚱한 공상
('I am the monarch of the sea')을 해요."
하지만 피오나는 마치 엄마처럼 이런 애덤의
행동을 걱정하며 아직 어린 그가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수혈을 거부'했던 애덤은
'자신을 거부'하는 피오나에게 따져 묻지요.
" 왜 병원에 찾아와 저의 인생을 판단하고
끼어들려고 했나요? "
뉴캐슬을 향한 열차에서 애덤의 편지를 꺼내
읽어보는 피오나...
애덤은 주절 주절 얘기합니다.
"예이츠 시에 깃든 사랑의 참 의미는 뭔지
알고 싶습니다.
왜 'Down By The Salley Garden' 노래엔
올림표만 둘일까요?
언젠가 백혈병이 재발할 걸 전 알아요.
그러면..."
하지만 피오나가 편지를 끝까지 읽기 전에
열차가 뉴캐슬역에 도착하지요.
그런데, 뉴캐슬의 순회재판 모임에까지
비를 맞으며 피오나를 찾아온 애덤...
이제, 목숨을 구한 아이의 변화된 모습은
피오나를 새로운 국면에 위치시킵니다.
"왜 여기에 왔냐"며 두번이나 다그치며
묻는 피오나에게
애덤은 "왜 저를 설득했냐"며, 종교밖의 세상이자
울타리인 '그녀 집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간청하지요.
그렇게,
새장에서 튀어나오고 싶어하는 애덤을 ,
인생의 실패자(?)처럼 자식없는 삶을 살았던
피오나는 품어주지 않습니다.
아니 못했던 걸까요.
냉정하게 택시를 불러 애덤을 되돌려 보내고
마는 피오나...
어느덧 영화의 피날레,
법조인의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앞둔 피오나는
병이 재발한 애덤이 위중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있다는 메모를 전달받지요.
치료와 부모 문병을 모두 거부한 채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에 그녀는 머리 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지고 맙니다.
하지만 애써 추스리며 동료 판사 마크 버너의
피아노 반주를 시작하는 피오나...
영국의 16세기 크리스마스 캐럴인
'The Coventry Carol' ,
'Once In Royal David's City' 로부터,
모차르트 오페라 < 피가로의 결혼 > 속
피가로의 아리아 '더 이상 날지 못하리'
(Non Piu Andrai)가 불려지는,
공연을 무사히 마치게 되지요.
뜨거운 박수 갈채 속에도 한참동안 침묵하던
피오나는,
앵콜 곡으로 미리 준비했던 뜨거운 사랑의
재즈 풍 노래 'My Funny Valentine' 대신,
속절없이 스러지는 애덤을 향한
'Down By The Salley Garden'을
자신의 피아노 반주와 함께 1, 2절 모두 직접
노래합니다.
그러나 후렴귀 '나의 비스듬한 어깨위에
그녀는 눈처럼 흰손을 올려놓았어요' 소절에서
그만 목이 메어 더이상 잇지를 못하는 피오나...
음악회장을 뒤로 한 채, 한걸음에 호스피스
병동으로 달려간 피오나는 애덤의 손을 꼬옥
잡고 얘기하지요.
" 잊지마.
다가올 삶과 사랑을.
배를 타고 함께 온 세계를 돌아다녀야지.
얘기도 나누고 말이야! "
너무도 순수해서 위태로웠던,
하여, 판결로 생명을 얻었으나 믿음은 무너졌던
애덤...
그는 가까스로 눈을 뜨며 힘겹게 속삭입니다.
" 제가 선택한 거에요..."
애덤이 비바람을 뚫고 뉴캐슬에 찾아왔던 것처럼,
피오나 또한 비를 흠뻑 맞은 채로 병원 밖으로
정처없이 걸어나갑니다.
몽유병 환자처럼 정신없이 집에 돌아 온 피오나,
그녀는 눈물을 쏟으며 서랍에서 급하게 애덤의
편지를 꺼내 마지막 귀절을 확인해 봅니다.
" 판사님이 무엇을 믿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백혈병이 재발할 걸 전 알아요.
그러면 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에요..."
애덤은 꼭 이 말을 사랑하는 '마이 레이디,
피오나 판사님'께 남기고 싶었던 게지요.
울부짖는 피오나를 꼭 안아주며 무슨 일인지
털어놓아 보라고 달래는 잭...
피오나는 '소년 애덤과의 관계'를 솔직히
고백하며 멀어졌던 '남편 잭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 한 소년을 알게 되었어.
여호와의 증인 사건이었지.
내가 법정 밖의 병실을 직접 찾아간 것은
드문 일이었어.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불렀지.
그가 어느날 비바람을 맞으며 날 찾아왔어.
그 애는 내가 모든 질문에 답해줄 수 있다고
믿었나봐.
그런데 그 아이가 병이 재발해
폐에 물이 차서 죽어가..."
중년의 나이에 어린 소년에게서 스쳤던 순간적
욕망은,
남편 잭이 자신에게 요구했던 '뜨거운 연애'와
근본적인 면에서 어떻게 다를까요.
'당신도 그 아이를 사랑했냐'는 잭을 향해
피오나는 절규합니다.
"그 사랑스러운 소년을!
그 사랑스러웠던 어린 소년을..."
예이츠의 'Down By The Salley Garden' 속
노랫말처럼,
'어리고 어리석은' 소년이 아닌,
'어리지만 총명했던' 소년 애덤은,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기타와 함께
차가운 무덤에 묻혀집니다.
애덤은 약속된 천상의 낙원에 자리할런지요...
영화 < 어톤먼트 > 와 < 체실 비치에서 > 의
원작자이자 각본가 이언 매큐언과 콜라보를
이룬 감독 리차드 이어.
그는 메트로폴리탄오페라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비제의 < 카르멘 > ,
마스네의 < 베르테르 >, 베르디의
< 라 트라비아타> 등 유명 오페라 작품을
연출해온 감독답게,
드라마 속에 클래식 음악을 활용하는 솜씨가
단연 돋보입니다.
바흐의 파르티타와 칸타타부터, 모차르트와
푸치니의 오페라 아리아들,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롤과 아일랜드 민요
'Down By The Salley Garden' 에 이르기까지,
극 중 피오나와 애덤, 그리고 잭의 내면적 감성을
오롯이 투영하는 고품격 클래식 선율의
스펙트럼은 영화의 깊이있는 울림을 그윽히
더해주고 있지요.
피오나가 '샴쌍둥이' 판결을 앞두고 서류 검토에
몰두하고 있을 때 스티븐 워벡의 암유적인
OST 'Fiona has to work'와 어우러지는,
바흐의 '파르티타 2번 c단조, BWV 826.' 속
'4악장 사라방드'의 우아한 소절이 화면을
적요하게 채워줍니다.
대폭발과도 같은 잭의 충격 선언으로 인해
(외견상) 평온했던 결혼생활의 위기를 맞은
피오나의 착잡한 출근길(OST : 'Walking To
Court')에선,
바흐 파르티타 2번의 1악장 '신포니아
(Sinfonia)' 선율이 무심하면서도 진중한 색깔로
풀어지지요.
'파르티타'와 더불어 안젤라 휴이트의 피아노 연주로
풀어지는 바흐의 칸타타 'Herr Jesu Christ,
wahr' Mensch und Gott' , BWV 127 중 3번 Aria
: 'Die Seele ruht in Jesu Händen' 와 함께,
부부생활 파경의 위기 와중에도 어려운 재판을
힘겹게 이끌어 나가는 피오나의 절절한 심경을
비추듯 잠짓 풀어지는,
푸치니 오페라
< 마농 레스코 - Manon Lescaut > 2막 아리아로,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 부드러운 레이스 속에서'(In Quelle Trine Morbide)...
이처럼 은유적인 클래식 음악들은
혼란스럽기만 한 마음을 어떻게든 다잡아 보려는
피오나의 감성을 애둘러 읽게 해줍니다.
극 중 세차례 중의적인 메타포로 화면을
감싸안는 아일랜드 민요 '다운 바이 더 샐리 가든'
( Down By The Salley Garden).
맨 처음으론 애덤의 병실에서 연습한지
4주 됐다는 그의 천재(?)적인 기타 반주에 맞춰
피오나가 이 노래의 2절 부분을 부르지요.
두번째엔 법원 밖에서 피오나가 애덤을
돌려보낼 때(OST : 'Sending Adam Away'),
엘레지 풍의 처연한 선율로 바리아시옹(변주)
됩니다.
마지막으론 크리스마스 콘서트 앵콜 곡으로,
피오나가 자신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이 노래
1, 2절을 직접 노래하지요.
1. 영화 < 칠드런 액트 - The Children Act >
예고편 https://youtu.be/Y0UmO-9kfjk
< 어톤먼트 > 와 < 체실 비치에서 > 의 작가
이언 맥큐언 동명 원작을 리처드 이어 감독이
스크린으로 옮긴 < 칠드런 액트 >.
소년의 생사를 판가름하는 사건 판결을 내린 이후,
자신의 사랑과 일, 또한 꿈을 위해 내려야 했던
선택과 결정을 되돌아 보며,
자기 자신의 삶과 마주하기 시작한 피오나...
전작 < 아이리스 > 와 < 노트 온 스캔들 >
에서처럼 여성 캐릭터들이 섬세한 스토리를
주도하며 영화를 이끌어가게 한,
하여,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의 연기 역정에 정점을
선사해왔던 감독 리차드 이어는,
한순간의 불가피한 '선택'과 그 책임의 '딜레마'를
그려낸 드라마 < 칠드런 액트 > 를 통해,
'종교와 법', '도덕 윤리와 인간', '육체의 수혈과
영혼의 파열' 사이의 난제를 통렬히 파고들고
있지요.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는 성관계를 한지 오래된
중년의 판사 피오나와 교수 잭 부부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신앙으로 인해 수혈을 거부하는
소년 애덤과 수혈 집행 명령을 내리는 판사 피오나
이야기입니다.
이 두 얘기는 일견 서로 관계 없는 듯 보이지만,
'믿음의 선택과 책임'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며,
영화 < 칠드런 액트 > 의 큰 두 축으로 자리하지요.
집을 나간 잭이 이틀만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피오나는 그런 못마땅한 잭을 다시 받아들이게
되듯,
애덤은 수혈을 받게 한 피오나의 결정에 대해
헌사를 건네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로 수혈을 거부하기에 이릅니다.
믿음과 말씀을 저버린 대가로 살아 있다는 것을
애덤은 계속 마음에 담아 두었던 걸까요.
결국 또다시 병을 얻었을 때 신념어린 죽음을
택해서 그 문제에서 자유러워진 애덤...
회한에 찬 피오나는 탄식합니다.
' 차라리 처음부터 애담의 신념을 존중했다면,
좀 더 일찍 그와 한 시간만 대화했다면,
혹은 한 통이라도 답장을 보냈다면,
철부지의 사랑 엽서 같았지만,
알고 보면 고민이 가득했던 그의 편지를 제대로
읽었더라면,
그의 순수함을 경계하지 않고 다독여주었다면,
'Down By The Salley Garden' 을 다시
불러줬더라면...'
애덤의 논리는 빈약하지만,
대신 마음은 절박하기만 합니다.
"내 삶에 결정하고 관여했으니
앞으로의 나에게도 갈 길을 알려달라?"
지탱하던 믿음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성인이 되었던 애덤...
하여, 야속함과 기대를 동시에 피오나에게
쏟았던 걸까요.
수혈을 받는 모습을 보고 흘린 부모님의 눈물이
믿음을 저버린 슬픔이 아니라 자식이 살았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는,
" 혼돈의 질곡에서 제발 구해달라고,
나아갈 길을 알려달라고..."
갱생의 동아줄처럼 붙잡은 것인지요.
다시 생각해보니 그 신념도 그리
확고한 것이었는지 모호합니다.
애덤은 그저 믿음을 위해 불구덩이로 뛰어들려던
패기에 찬, 그저 호기심많은 학생이었을 뿐,
그 믿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이 사는 그 부작용을 생각할 만큼 현명하지
못했던 건 아닐런지요.
피오나는 고통스러워 합니다.
"애덤이 다시 병에 걸릴 줄 알았다면,
그래서 이번엔 치료받지 않고 죽어갈 것이었다면,
차라리 애초에 수혈받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
인생은 우연과 선택의 연속일런지요,
판결 이후 피오나가 마주하게 되는 사랑에 관한
또 다른 챕터들을 보며,
삶이란 결코 법과 같은 정형화된 논리로
설명되어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피오나가 '일'이라는 '소명의 미명' 하에 잊고
살아온 '사랑'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 李 忠 植 -
영화 < 어톤먼트 - Atonement > 와
< 체실 비치에서 - On Chesil Beach > 에서도
그랬듯,
원작자이자 각본을 맡았던 이언 매큐언의
클래식에 대한 높은 안목 덕분일런지요...
다채롭게 짜여진 클래식 음악들의 탁월한
라인 업들은 등장인물의 흔들리는 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절묘하게 활용되며,
관객들을 흔연스레 화면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영화 속 피오나와 잭 부부, 그리고 소년 애덤,
이들 세 사람의 감성어린 사랑과 그 상처를
미려한 음색으로 담아냈던 음악감독 스테펜 워벡의
OST 또한,
드라마 < 칠드런 액트 > 시퀀스 곳곳을
정치(精緻)하게 감싸주고 있지요.
2. 바흐의 파르티타(Partita) 2번 c단조,
BWV 826.
- 굴렌 굴드(Glenn Gould)의 피아노
(공식 리허설 실황)
https://youtu.be/WqwZC-yLYI4
- 트레버 피노크(Trevor Pinnock)의
클라베(Clave)
https://youtu.be/fw3A4RSryXk
3. 바흐 칸타타 'Herr Jesu Christ,
wahr' Mensch und Gott' , BWV 127 중
No.3 Aria : 'Die Seele ruht in Jesu Händen'
- https://youtu.be/E6YTkzUCm4w
4. 아일랜드 민요 'Down By The Salley Gardens'
- Maura O'Connell와 Aine Derrane 자매
https://youtu.be/pJ5fN7X5bzU
- 안드레아스 숄(Andreas Scholl)
https://youtu.be/QBWhhsnpRAc
5. 푸치니의 오페라 마농 레스코
(Manon Lescaut) 2막 아리아,
'이 부드러운 레이스 속에서'(In Quelle Trine Morbide)
-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 툴리오 세라핀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https://youtu.be/Fjpy_k1W9ag
-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Angela Gheorghiu) : 푸에르토리코 , 2005
https://youtu.be/Ue6APNjeP-I
푸치니의 아리아 '이 부드러운 레이스 속에서'가
흐르는 가운데
피오나는 전날 잭의 폭탄선언으로 복잡해진
심경임에도,
“난 어떻게든 결정해야 해”라고 맘을 다잡으며,
법정 안에 들어서죠.
하지만 그녀의 머릿 속에는 ‘과연 내가 내려온
선택과 결정이 최선이었을까?’라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결국 죽음까지 각오한 소년 애덤이
자신의 선택에 따른 모든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결정한 것인지,
피오나는 직접 알아보기 위해 법정 밖의 현장,
'병원'으로 향해 나아가지요.
직업상 감성보다는 이성을 따라온 판사 피오나가
스스로 자신의 틀을 깨부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날의 판결 이후, 피오나 그녀 자신의 삶은 물론
남편 잭과 소년 애덤의 인생에도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지기 시작하지요.
6. 영국 16세기 민요 'The Coventry Carol'
(arr. Michael McGlynn)
크리스마스 캐롤로 불려지는
'The Coventry Carol'은
중세시대 성탄 신비극에서 불려지던 노래로,
헤로데 왕이 영아들을 살해한 직후 그 어머니들이
죽은 아이들이 잠들기를 바라면서 부르는 비탄의
자장가입니다.
- Anuna / 더블린 Saint Bartholomew's
Church, 2015
https://youtu.be/Wit-jGD4wCw
- https://youtu.be/3lpiQ4IPzEE
7.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 2막 중 피가로의 아리아
'더 이상 날지 못하리'(Non Piu Andrai)
- 바리톤 브라이언 터펠(Brian Terfel)
: 제임스 레바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1988.
https://youtu.be/LsmvqPOB3QA
8. 크리스마스 캐롤 'Once In Royal Davids City'
- 케임브리지 킹스 컬리지 합창단(Choir of Kings College Cambridge)
https://youtu.be/gdDeFgXXG-s
9. '마이 퍼니 발렌타인'(My Funny Valentine)
1937년 4월부터 289회나 상연된 뮤지컬
‘베이브즈 인 암즈’(Babes in Arms)에 나오는
재즈 풍의 노래로,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
작사가 로렌쯔 하트(Lorenz Hart) 명콤비의
대표적인 스탠다드 넘버이지요.
-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퀸텟
: 1964 Milano, Italy
https://youtu.be/QKEfyXPt91U
- 쳇 베이커(Chet Baker)의 1987년
토쿄 공연
https://youtu.be/UOEIQKczRP
첫댓글 감독 리차드 이어가 영화 < 칠드런 액트 >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아일랜드의 민요 'Down By The Sally Garden' 의
노랫말에 모두 들어있는 듯 하지요.
Down by the Salley gardens
my love and I did meet
She passed the Salley gardens
with little snow-white feet.
She bid me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her would not agree.
In a field by the river
my love and I did stand,
And on my leaning shoulder
she laid her snow-white hand.
She bid me take life easy,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But I was young and foolish,
and now am full of tears.
버드나무 정원 옆 아래에서
나와 내 사랑이 만나게 되었어요
그녀는 작고 눈처럼 하얀 발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갔지요
그녀는 나에게
나무에서 나뭇잎이 자라는 것처럼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라고 말했지만
난 어리고 어리석었기에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어요
강가 들판에
나와 내 사랑이 서 있었죠
나의 비스듬한 어깨 위에
그녀는 눈처럼 하얀 손을 올려놓았어요
그녀는 나에게
둑에서 풀이 쉽게 자라나는 것처럼
인생을 쉽게 받아들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어리고 어리석었기에
이제 나는 슬픔으로 가득하네요
애덤은 이미 숨쉬기 힘든 상태지만,
자기 의사가 자신의 신념에 기반하고 있음을
당당히 표현할 줄 알고,
또한 그 믿음에 대한 논리적, 종교적
지식을 충분히 갖춘 똑똑하고 재치있는
소년입니다.
"아이가 그토록 확신하는 '순교자적 죽음'의
실체는 무엇이며, 과연 무슨 의미일까?" ,
피오나는 고민하지요.
안타까운 시간들...
피오나는 고심끝에 현명하게도 실로 오랜만에,
그러니까 영국 역사 소송 박물관에 전시될만한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지요.
병실의 아이를 직접 방문한 것입니다.
피오나가 사건을 맡은 후,
뉴스는 물론 각계각층에선 사건과 그녀에
뜨거운 관심을 쏟기 시작하지만,
그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법과 판례에 근거해
정당한 결정을 내리고자 합니다.
사실 피오나가 담당한 재판은 어느 누가 판결해도
풀기 어려운 솔로몬의 재판급였지만,
결정은 솔로몬처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
어려웠지요.
그 모두가 생명을 결정하는,
이른바 신의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재판이 '몸이 붙어있는 두 쌍둥이를 죽게
내버려 두느냐,
분리 수술을 해서 살 가능성이 높은
한 생명이라도 살리느냐' 였다면,
이번엔 '종교적 신념을 위해 수혈받는 것을
거부하느냐,
아님 수혈을 해 치료를 받게 하느냐' 의 문제였지요.
피오나는 한결 같습니다.
살 수 있다면 살 가능성이 높은 방향을
선택했던 것이죠.
고심끝에, 휴일도, 낮과 밤 구분도 없이
최우선 순위로 내린 판결임에도 존경은 커녕,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모두들 그 판결로 이러쿵저러쿵 떠들기
바쁠 뿐으로,
피오나는 사람을 피하느라 출퇴근 때
잘 보이지 않는 뒷길로 오가야 하지요.
법정에서는 누구보다 당당하지만
부부관계에 서툴뿐더러,
자신의 선택이 초래한 뜻밖의 결과에 당황하는
피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