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5
장 성연의 사업자 명의로 돼 있다는 당구장은 도회지 한복판에 위치한 거대한 빌딩의 서너 층을 한꺼번에 차지하고 있었다.
모든 당구장이 다 그렇듯, 장 성연의 당구장 역시 새벽 두 시가 다 된 늦은 시간임에도 불이 밝혀져 있다. 감각적인 담녹색 간판에는 심플하게 ‘샤인 당구장’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당신의 첫 타깃인 장 성연은 ‘무버(Mover)’라는 능력자에요.’
준혁은 그 거대한 빌딩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좀 전에 그녀가 말했던 믿기 힘든 내용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고 있었다.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즉 물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싹 다 그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죠. 아무런 재능조차 없어 보이던 그가 어떻게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당구계의 전설이 될 수 있었는지, 이제는 당신도 이해할 수 있겠죠.’
준혁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믿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은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 *
설마설마했지만 그녀의 말이 정말일 줄이야. 준혁은 그제야 비로소 믿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실감이 들었다.
“지독한 것들. 포기할 줄은 모르는군.”
큐를 든 채 당구대 위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있는 장 성연의 무표정한 눈매에는 숨길 수 없는 또렷한 살기가 맺혀 있었다.
말 꼬리처럼 하나로 묶은 말총머리는 웬만한 여자보다 길어 보였고, 거칠게 기른 턱수염은 귀밑부터 턱을 뒤덮고 있었으며, 다소 험악해 보이는 얼굴에는 칼자국으로 보이는 흉터까지 나 있었다.
“하지만 물고 늘어지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묵직함을 넘어서 위압적인 장 성연의 목소리가 출입문 쪽을 향했다. 그곳에서 준혁은 엎어진 당구대와 뒤엉켜 쓰러진 채 입술과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감히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당구공이 어지럽게 흩어진 채 굴러다니고 있었다.
“뇌에 곧바로 충격이 갔을 거야. 일어나는 것도 힘들 거다.”
“……큭.”
쓰러진 준혁을 바라보는 장 성연의 얼굴이 상당히 불쾌해 보였다. 이윽고 장 성연은 지겹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그다지 가볍지 않은 움직임으로 당구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의 육중한 발소리가 쿠웅, 하고 대리석 바닥을 길게 울렸다.
“네 놈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힘을 조절해서 때렸는데……. ”
장 성연은 들고 있던 큐를 당구대에 비스듬히 걸쳐 놓은 뒤 거침없이 준혁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준혁은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좀처럼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두 눈도 마찬가지였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왼쪽 눈은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 장 성연의 기습에 옆얼굴을 세차게 얻어맞은 흔적이 역력했다. 입술과 코에선 피까지 흐르고 있다.
“그래도 네 놈에게는 조금 과했던 것 같군.”
단 일격에 맥없이 쓰러져 버린 준혁을 내려다보며 장 성연이 말했다. 그것은 죽기 싫으면 물러나라는 경고였지만, 준혁은 숨을 고르며 회답했다. 장 성연이 원하는 쪽의 대답은 결코 아닌 것 같았다.
“전력을…… 다하지 그랬나!”
그 순간 준혁의 오른쪽 눈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그와 동시에 장 성연의 몸은 용수철처럼 준혁의 영역 밖으로 튕겨 나갔다.
쿠우우웅!
장 성연은 콘크리트 벽과 심하게 부딪친 뒤 그대로 당구대 위에 내리꽂혔다. 힘없이 흔들리는 그의 팔에는 온갖 혈관과 힘줄이 도드라지게 내돋쳐 있었다. 하물며 매캐한 연기를 뒤집어쓴 그 주변의 화환들은 순식간에 시들어 뿌리까지 괴사해 버린 상태였다.
하마터면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생명력을 빼앗길 수도 있었지만, 도리어 그는 소름 끼치도록 섬뜩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눈동자냐.”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킨 장 성연의 두 눈에는 어느 틈에 거미줄처럼 실핏줄이 얼기설기 돋아 있었다.
“김 상빈 자식……. 이번에는 꽤 재미있는 녀석을 고용했어.”
“그가 당신을 노렸던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 모양이군.”
어느새 준혁도 벽을 붙잡고 어렵게 몸을 일으킨 상태였다. 준혁은 고통에 얼룩진 눈빛으로 장 성연을 바라보고 있었고, 장 성연 역시 그러한 준혁의 눈과 감히 똑바로 마주한 채 다시금 당구대에서 내려오며 대꾸했다.
“네 놈이 많을 것을 알 필요까지는 없다.”
장 성연은 돌연 오른쪽 손바닥을 펼쳐 창가 쪽으로 가져다댔고, 머지않아 그의 손에 닿은 유리창들이 덜커덩거리며 미친 듯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귀를 어지럽히는 그 소음 속에서 장 성연이 읊조리듯 묵직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재미있다는 양 즐거운 말투였다.
“이곳의 건축미는 우아하고 아릅답지. 하지만 단순히 아름다운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호시탐탐 내 사생활을 노리는 기자들과 파파라치들로부터 안전성을 보장하기도 해. 왜인지 아나? 이곳의 모든 유리창은, 반투명 유리로 만들어져 있거든.”
이윽고 창살에서 뽑히듯이 빠져 나온 유리창들이 겹겹이 겹쳐지며 장 성연의 사방팔방을 빈틈없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좀처럼 믿을 수 없었지만 장 성연은 단 한 차례의 공방만으로도 준혁의 힘을 완벽하게 간파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또 반사 유리냐.”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준혁은 문득 반사 유리에 대한 트라우마라도 떠오른 듯 ‘난 마음에 안 들어!’라며 신경질적인 짜증을 토해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과 같은 장 성연의 방법은 일전에 준혁의 힘을 두려워한 김 상빈이 이미 한 번 써먹은 방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같은 방법에 두 번씩이나 당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궁여지책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이곳의 수리비는 네 놈의 장기들을 내다 팔아서라도 반드시 얻어낼 생각이다.”
그 순간 준혁의 주변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당구공들이 일시에 로켓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준혁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앞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슬라이딩을 하듯 온힘을 다해.
“제기랄!”
콰콰콰콰아악─!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는 당구공들 사이로 준혁의 몸이 아슬아슬하면서도 날렵하게 스쳐 지나갔다.
“망할. 당구는 당구대 위에서만 하라고!”
대리석 바닥마저 깊숙이 파고들었을 정도로 굉장한 파괴력에 준혁은 속된 말로 오줌이라도 지릴 뻔했지만, 여전히 위쪽에는 중력을 무시한 채 둥실둥실 떠 있는 당구알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한 준혁의 결사적인 태도를 조롱하듯, 유리창 너머로 장 성연의 비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놈은 아직도 입만 살았나 보군.”
그 말과 함께, 천장에 남아있던 당구공들이 갑자기 기이한 궤적을 그리기 시작하며 준혁에게 날아들었다. 좀 전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 지금까지 수직으로 내리꽂히기만 했다면 이제는 살아있는 벌떼처럼 자유자재로 날아들고 있었다. 위협적이었다.
“이제 그 입을 막아줄 차례다.”
“무슨 유도탄도 아니고. 시발!”
준혁은 울분을 터뜨리면서도 결국 미친 듯이 내달렸고, 보다 직접적으로 준혁의 숨통을 노리는 수십 개의 당구알들이 그 뒤로 길게 줄을 이었다. 그 광경은 마치 벌떼에 쫓기게 된 처량한 양봉업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벌떼 같은 당구알과 더불어, 당구대를 비롯한 각종 테이블과 점수판까지 저절로 쓰러지며 준혁의 진로를 방해하기 시작했고, 결국 준혁은 급한 마음에 자신의 발밑으로 갑자기 엎어지는 테이블을 피하지 못한 채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에라이. 모르겠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준혁은 잽싸게 테이블 뒤로 몸을 숨기곤, 품에서 구릿빛 쇳덩이를 꺼내들었다. 능력자로서의 소신. 자부심. 자존심. 그런 알량한 감정들 따위는 목표물의 ‘인생 하직’을 꿈꾸며 날아드는 당구공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버려야 했다.
타아아앙─!
구릿빛 쇳덩이가 장 성연을 향해 불을 뿜었고, 곧바로 기다란 총성이 당구장 안을 가득히 울렸다. 그리고 거의 그것과 동시에, 장 성연의 사방을 감싸고 있던 유리창들 또한 비로소 중력의 힘에 이끌려 일시에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와장창창. 유리창이 산산조각나면서 자아내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몽롱하리만큼 흐릿했던 준혁의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
“하아. 하아.”
준혁은 테이블 밖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온 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듯 드러누워 버렸다.
첫댓글 나케 // 오늘도 업로드!
소설을 읽으신 여러분의 마음 다 압니다. 준혁에게 실망하셨다는 거. (후후. 계획대로야.)
나케 // 이 에피소드에서의 이벤트 비대상은 12월 3일 이후의 댓글입니다.
에피소드 5 까지의 현황 : 타마마(합계 1,000원), 쿠루루(합계 600원), 모쿠(합계 750원)
* 모쿠의 독자 참여로, 모쿠는 오늘까지만 '이벤트 비대상 댓글' 제도 면제 대상. [단, 150원 적용]
나케 // 요즘 들어서 댓글이 부쩍 많아진 것 같아 행복하리만큼 즐겁게 연재하고 있습니다!
나케 독자 2세대에 걸맞는, 타마, 쿠루 정말정말 고마워요♡
나케 // 추천 한 방 꽉 박아주시고, 댓글 듬뿍듬뿍! 다음 화에는 프로파일링 2편과 함께 연재됩니다~
타마 // 헐 첫화부터는 나 존나 개썐캐로 만들면서 이번엔 호그와트네
나케 // 호그와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타마 // 무버 개좋아보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능력자 점점 기대된다 다른애들은 머쓰지
나케 // 안 지훈. 강 민구. 박 찬우. 김 회연. 윤 라희. 박 근수. 채 희장. 아직 많은 캐릭터가 남았다!
쿠루 // 결국 총이 짱 ㅋㅋ
나케 // 빵야빵야.
모쿠 // 헉 총이면 성연이가 더 유리할텐대... 그총 이용해가지고 원격으로 주녘이 빵야하면 주녘이 으악! 할듯 ㅠ
나케 // 삐질. 너무 기습적인 공격이라.
모쿠 // 오 근대 처음부터 상대가 짱새다
나케 // 나도 문제랍니다아.. 스케일을 초반부터 너무 크게 잡았어...
타마 // 내눈은 포박이나 스터닝 이런건없슴?
나케 // 스턴은 있다고 봐야지ㅋㅋㅋㅋㅋㅋㅋㅋ 포박까지는....
타마 // 근대 창살에서 유리가 뽑혀져나왔는데 온전히 뽑혀 ? [/////] ??
나케 // 에이... 기술만 좋다면야... (어물쩍)...
타마 // 뭔가 공케의 묘미는 일직선 밀고나가는거 직구승분데 ㅜㅜ 총을쓰다니,,,
나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상황에서 어쩌려고 안 그러면 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