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폭력대화 강의 기록 1
2014년 3월 22일 (토) 장용창
안녕하세요? 5개월 동안 한 달에 한번씩 진행되는 비폭력대화 공부의 첫번째 강의를 3월 22일 토요일 2시부터 5시까지 잘 마쳤습니다. 세 시간 내내 웃고 즐겼습니다. 참가하신 분들이 강의 내용을 복습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른 분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강의 내용과 주고 받은 문답을 여기 올립니다. 기록을 해주신 박경숙 선생님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1. 내용 설명 1: 왜 비폭력대화인가?
비폭력대화 공부 모임에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비폭력대화 공부 모임을 아주 좋아하는데요, 이렇게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야 모임이 되기 때문에,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늘 감사합니다. 이번 모임은 한달에 한번씩 진행될 것이고 토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세 시간 동안 진행됩니다.
(강의 후 참가자들 협의를 통해서 이후 날짜는 다음과 같이 정해졌습니다: 4월 26일, 5월 24일, 6월 28일, 7월 26일. 7월 공부 모임은 제주도에서 하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지난달에 이 자리에서 비폭력대화 공부를 했는데요, 그때 시간이 짧아서 제가 충분한 설명 없이 바로 실습부터 했더니, 참가자 중에 뭐가 뭔지 잘 모르겠더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공부 모임에서는 내용 설명을 좀 충분히 해볼까 합니다.
첫번째 강의 내용은, 제가 왜 비폭력대화를 전하려 하는가?입니다. 저는 비폭력대화센터에서 인증한 인증강사도 아니예요. 쉽게 말하면 후루꾸 무면허 강사고요, 의료행위였다면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는 거죠. 자, 그런데, 왜 면허도 없으면서 강의를 이렇게 할까요? 제가 비폭력대화를 강의하는 이유는 제가 이걸 너무 좋아하고 각자의 삶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말하는 연습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실력은 천차만별입니다.
저는 2005년 크리스마스 때 결혼하고 아내가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서, 2006년 3월 신혼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98년부터 요가를 시작했고, 8년 동안 요가를 해온 상태였어요. 결혼한 후 1년 동안 인도에 가서 요가를 했고, 저랑 같이 요가를 배우던 사람 중에 공중부양을 경험한 사람도 있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요가를 열심히 해서 모든 인생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컸어요.
그런데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이혼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나같이 요가를 열심히 한 사람이 왜 부부싸움을 하지? 나는 깨달음을 얻었는데...나는 괜찮은데 우리 아내가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내가 아닌 남이 문제다’)을 갖고 있으니 어떻게 해도 해결이 안됐어요. 나는 요가를 열심히 했는데, 왜 부부싸움을 할까?
틱낫한 스님이 운영하는 ‘자두명상센터’에 살다온 친구가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알려줬어요. 이혼의 위기 때 그 책을 봤습니다. 진짜 맞는 말만 써 있더라고요. 요가의 가르침과도 같았어요. 요가는 이론적이고 혼자 명상을 해야 한다면 비폭력대화는 대화를 어떻게 할까에 대한 실용적인 지침을 전하더라고요.
아내랑 같이 읽으며 이렇게 하면 안 싸우겠다 싶었는데 또 부부싸움을 했어요. “비폭력대화에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따지면서 말이죠. 그래서 책만 읽어서는 안되고 실제로 배워야겠다 싶어서 서울에 있는 비폭력대화센터에 가서 강의를 들었어요. 그 책을 번역한 캐서린 선생님은 비폭력대화를 입으로 몸으로 익혀서 한마디 한마디가 비폭력대화더라고요.
“나는 우리 마누라랑 이혼할 위기다.”고 말했더니 캐서린 선생님이 공감을 잘해줬어요. 너무 자기를 잘 알아주기 때문에 캐서린을 만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울어버려요. 그 분의 공감 능력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되면 좋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연습을 했어요.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하려면 비폭력대화를 좀 아는 사람들끼리 해야 연습모임이 진행됩니다. 그런데 비폭력대화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 먼저 무료로 강의를 하고 알려주면서 연습모임을 만들었어요. 아는 것도 없으면서 2007년부터 강의를 했어요. 커플을 위한 비폭력대화 8시간짜리 강의만 듣고 강의를 시작한 거예요. 비폭력대화라는 것이 바다처럼 넓어서, 1,2,3단계 강의를 듣고 나면, 또 지도자과정, 중재 전문 과정 등 교육과정이 수두룩하니 많아요. 그런데도, 겨우 8시간 짜리 강의 하나 듣고나서 뭘 안다고 강의를 시작한 거죠. 저는 어릴 때부터 구라에 능해서, 아는 건 별로 없으면서 가르치는 건 잘 해요.^^
그런데 그런 무면허 강의가 저한테는 도움이 되었어요. 가르치면서 배운 거죠. 솔직히 강의가 줄줄 나오는 것 같아도, 실은 2시간짜리 강의 준비하려면 족히 20시간은 공부하고 준비해야 됩니다. 하여튼 그렇게 강의를 하면서 비폭력대화를 배워 나갔습니다.
자, 그럼 좀 더 근본적으로 제가 왜 왜 비폭력대화를 연습하려고 하는가?라고 물으면, 좋아서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그런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요가를 배우면서 요가에서 가르친 대로 하면 되겠다 싶은데, 요가의 이론적인 부분을 일상에서는 어떻게 실천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비폭력대화를 만났는데, 이건 정말 좋더라고요.
<질문>
질문: 비폭력대화 덕분에 실제로 인간관계가 좋아졌나요? 아까 이혼 위기라고 하셨는데, 가정 생활에 실제로 도움이 되었습니까? 비폭력대화를 실생활에서 쓰나요?
답: 비폭력대화 덕분에 실제로 인간관계가 좋아졌는지를 물으시는 거죠? 제가 강의를 하러 다니면 “비폭력대화 잘되나요?” “부부관계 좋아졌나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질문 감사합니다. 비폭력대화 공부는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서 실제로 써먹기 위한 겁니다. 그러니, 정말 인생에 도움이 되느냐라는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게 바람직합니다.
비폭력대화 덕분에 아내와의 관계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물론 변화는 서서히 점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개선의 핵심 변화는 저 자신에게서 왔습니다. 아내가 안 변하고, 저만 변해도 부부관계는 좋아집니다. 싸움을 걸어도 내가 절대적으로 평화로우면 싸움은 안 일어납니다. 돌아보면 제 마음도 불편했기 때문에 싸운 거였어요. 그 순간에 제 마음이 편해버리면 싸움은 안 일어납니다. 내가 비폭력대화 연습을 하면 아내가 화를 내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혼자 배워도 괜찮아요.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됩니다.
추가 질문: 비폭력 대화를 일상에서 꼭 써야 하나요?
답변: 비폭력 대화를 일상에서 꼭 써야 하냐고요? 이 세상에 꼭 해야만 하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비폭력대화도 마찬가집니다. 꼭 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선택적으로 쓰고 싶을 때만 하면 됩니다. 비폭력대화의 효과는 아이들에게 썼을 때 훨씬 더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떤 말을 해도 공감으로 반응해줍니다. 쉽게 말하면 한 말을 반복해주는 겁니다. 아이들 친구들한테도 일부러 마음먹고 공감으로 대합니다. 공감으로 대해줬더니 딸 친구들이 저한테 말을 많이 합니다. 아주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추가 질문: 부부관계가 개선된 것이 비폭력대화 덕분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된 것이 아닐까요?
답변: 부부관계가 개선된 것이 비폭력대화 덕분이 아니라 시간에 따른 것이 아닐까? 비폭력대화가 정말 효과가 있는가?라는 질문이시죠? 우리나라 이혼율이 높습니다. 한 해 백쌍 결혼하면 오십쌍은 이혼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혼한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서로를 알고나서보니 못 참을만한 성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즉, 시간이 지나도 해결이 안되었다는 거예요. 저는 아내를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워졌습니다. 비폭력대화 덕분에 말이지요.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2. 내용 설명 2: 공감의 3단계
두번째 내용 설명으로 공감의 3단계를 말씀 드리기 전에 제 소개를 조금 하겠습니다. 전에 회계사 일을 7년 정도 했습니다. 회계사란 직업이 돈도 많이 벌고 좋은 걸로 생각들 하시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회계사하면 바로 수억씩 번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아닙니다. 요즘 회계사 초임 월급은 은행보다도 못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회계감사를 잘못하면 소송당할 위험도 있어요.
저는 2001년 졸업하던 해에 취직을 했는데, 취직하면서 환경운동연합 자원봉사를 같이 시작했어요. 자원봉사를 하다보니 환경 관련 일을 전업으로 하고 싶어졌어요. 창원에서 연안관리학 석사를 받고 람사르환경재단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해양쓰레기 연구소에서 일합니다. 행정학 박학위를 받고 해양환경정책을 연구합니다. 저희 회사는 회사에서 낮잠을 자거나 요가를 할 수도 있어요. 하기로 한 일만 하면 됩니다. 아주 민주적인 회사입니다. 저는 지금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월급이 좀 밀리기도 하지만 괜찮습니다.
비폭력대화 교과서에는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이라는 걸 아주 강조합니다. 그런데, 몇 년간 공부해보니 관찰, 느낌, 욕구, 부탁보다 공감이라는 틀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캐서린 선생님의 핵심기술도 공감입니다. 살다보면 이 사람하고 참 말이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고, 또 이 사람이하는 말이 잘 통한다고 느껴지는 사람도 있지요? 말이 잘 통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바로 공감으로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요즘엔 공감이라는 말을 언론에서도 많이 쓰는데, 언론에서 쓰는 공감과 비폭력대화에서 말하는 공감은 다릅니다. 비폭력대화에서 말하는 공감을 정의해보면 이렇습니다. “듣는 사람이 말한 사람의 느낌과 욕구를 알았다는 사실을 말한 사람이 알 때 말한 사람은 공감을 느낀다”입니다. 글로 적어보시겠습니까? 말이 좀 어렵지만, 이게 정확한 정의입니다. 아마 책에는 안 나왔을 겁니다. 제가 만든 정의인데, 만들어놓고 보니까 좋더라고요.
비폭력대화의 공감은 쌍방향입니다. 듣는 사람이 뭔가 반응을 해줘야 말한 사람이 공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난 공감 잘해. 남의 얘기 잘 들어줘”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제가 어떻게 잘 듣냐고 물어보면, “그냥 묵묵히 듣는다”고 합니다. 물론 묵묵히 듣는 것도 공감의 방법이긴 하지만, 아무 반응도 안 하고 있으면 말한 사람은 듣는 사람이 자기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반응을 해줘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반응해야 말한 사람이 공감을 느낄까요?
공감 반응의 1단계는 “아~그래? 그랬어?”라고 말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때 ‘그런데’ 라는 말을 안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얘기를 가만히 듣다보면 요즘 사람들이 “그런데”라는 말을 정말 많이 씁니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그런데”라고 하면서 반응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라는 말은 저 사람의 말을 부정하고 싶을 때 씁니다. 예의 바른 척하면서 부정하는 거죠.
<질문>
질문: 그런데 부정을 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 사람이 틀린 말을 할 때요. 부정을 해야 할 때 어떻게 부정해야하지요?
답변: 부정을 해야 할 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좋습니다. 질문 감사합니다. 그런 필요성이 있을 때가 있지요. 이 질문을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서 좀 길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대화를 왜 할까요? 그걸 한 번 생각해 봐야할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화의 목적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와 상대방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화합니다. 대화의 목적이 욕구의 실현이라면 어떤 형식의 대화가 우리의 욕구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겠는가? 이게 중요한 질문입니다. 대화의 목적이 욕구의 실현이라고 했는데 적절한 수단을 살펴보겠습니다.
대화를 하는 방법을 크게 둘로 나누면 “옳고 그름을 토론하는 대화”와 “공감의 대화”가 있습니다. 도덕적인 옳고 그름, 정치적인 옳고 그름, 과학적인 사실관계의 옳고 그름을 토론하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화는 우리를 불행하게 할 뿐입니다. 우리를 우리를 전투적으로 만듭니다.
공감은 어떨까요? 공감은 자기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는 것에 포커스를 둡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늘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따지는 훈련만 받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걸로 굳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전투적입니다. 비폭력대화 책에서 루미라는 시인이 말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저 너머의 세상에 평화가 있다.”
자, 그러니, 우리가 지금 여기 비폭력대화를 공부하자고 모인 것은, 한 마디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화 방식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공감하는 대화 방식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모인 겁니다. 다시 번 질문 해 주시겠습니까? 말한 사람의 내용을 부정해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죠? 좋습니다. 예를 들어 봉화산 둘레길은 옳은가 그른가? 이런 걸 따져야 할 때가 있죠. 하지만, 그런 따짐은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다. 그래서 비폭력대화에서는 심지어 그런 토론조차도 우리의 느낌과 욕구에 바탕을 두고 하자고 제안합니다. 즉,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지 말고, 자기 자신의 욕구에 비추어 생각하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봉화산 둘레길에 대해서는 “저는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봉화산 둘레길은 예산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는 겁니다.
심지어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공감대화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논문이 미국에서 나온 적이 있습니다. 노동조합과 사측이 협상을 하는데 비폭력대화 중재자가 서로 비폭력으로 말하게 했더니 의사소통이 빨라지고 협상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1) 우리가 비폭력대화를 배우는 것은 옳고 그름의 세계에서 공감의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가능한 한 이 자리에서만이라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공감의 사고를 하려는 연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2) 또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경우에조차도 비폭력대화 식으로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는 걸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훨씬 더 효율적인 토론 방법입니다.
이제 다시 내용 설명으로 넘어가서, 공감의 2단계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공감의 2단계는 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짜장면 사 주세요.”라고 할 때 “짜장면에는 조미료가 많이 들었어.”라고 설명하기보다 “어~짜장면이 먹고 싶구나.”라고 말하는 겁니다.
<질문 >
질문: 그럼 짜장면 사줘야 하잖아요?
답변: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사람한테 “짜장면이 먹고 싶구나”라고 공감을 해주면 짜장면을 꼭 사줘야 하는 게 아닌가? 좋은 질문입니다. 더의 답은 이렇습니다. 공감을 충분히 해주면 안 사줘도 됩니다. 오히려 반박을 하다보면 공감을 못 받은 사람은 끝끝내 짜장면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동의와 공감은 차이가 있습니다.
동의는 “어~그래 짜장면 먹어.”
공감은 “짜장면 먹고 싶구나.”입니다.
그러니, 공감을 해준다고 해서 꼭 짜장면을 사줘야 하는 게 아닙니다. 공감을 받으면 그것만으로 만족이 되어서 짜장면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추가 질문: 다른 사람이 자장면 먹고 싶다고 할 때 나는 짬뽕 먹고 싶어 라고 표현해야 하잖아요?
답변: 다른 사람이 짜장면 먹고 싶다고 할 때 나는 짬뽕 먹고 싶다고 표현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비폭력대화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거니까 내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자는 말씀이시죠? 예 좋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은 공감하는 것과 다릅니다. 공감은 말한 사람에 확 집중하는 겁니다. 물론 비폭력대화를 크게 나누면 말하기와 듣기입니다. 자기 욕구를 말하기도 비폭력대화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익숙하고, 공감으로 반응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안 듣습니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알아차리는 것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감으로 반응하기를 연습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공감으로 듣는다는 건 상대방의 느낌과 요구를 표현하는 겁니다.
추가 질문: 상대방에게 충분히 공감되었다고 느낄 때 자기 욕구를 말해도 되지 않나요? 공감할 때 나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은 대화에 방해가 되나요? 제가 비폭력대화 공부를 혼자서 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답변: 비폭력대화 책을 읽었는데, 실천은 어려우셨나 보네요? 맞습니다. 비폭력대화라는 게 책을 읽고 머리로 이해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비폭력대화를 크게 둘로 나누면 공감으로 들어주기와 내 느낌과 욕구를 말하기인데, 비폭력대화를 쓸지 말지는 내가 선택하는 겁니다. 공감해주고 싶을 때는 공감하고 나의 욕구를 표현할 때는 표현하면 됩니다. 그런데, 제가 실습을 해보니 많은 경우 ‘공감으로 반응해주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공감으로 들어주기가 좀 덜 익숙합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말을 공감해주는 연습을 하는 것이 더 빠르게 비폭력대화를 익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비폭력대화의 백미는 공감입니다. 나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는 것보다 그 사람의 느낌과 욕구를 받아주는 것이 갈등을 훨씬 빨리 푸는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아~ 저 사람이 나를 이해 했구나라고 느낍니다.
3. 참가자 자기 소개: 생략
4. 내용 설명 3: 참된 대화를 방해하는 소통의 장벽
내용 설명 세번째로 참된 대화를 방해하는 소통의 장벽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쉽게 말하면 비폭력대화를 배우기 전에 우리가 어떻게 폭력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보자는 겁니다. 이 내용은 교과서 앞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도덕주의적인 판단입니다. “넌 이기적이어서 문제다.” 대화의 목적을 욕구의 실현이라고 본다면 이런 대화는 그걸 가로막는 거죠. 과학적인 분석도 그렇고요, 다음은 비교하기입니다. 책에는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첫 번째 방법이 비교하기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비교하기를 안 하기가 참 어렵죠? 여기 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오셔서 참 고맙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데요,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비교하는 곳입니다. 이 자리에서 비폭력대화를 아무리 배운들 학교에서 어떻게 비교를 안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비폭력대화를 실천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선생님들이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들 이 자리에 정말 잘 오셨습니다.
소통을 가로막는 둘째는 책임을 부정하기입니다. 2차대전 때 유태인을 학살한 군인이 전쟁이 끝나고 전범 재판을 받을 때 군인들에게 왜 그렇게 했는지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답변이 “위에서 시키니까 그랬다.” 고 했지요. 책임을 부정하는 사고방식이죠. 이 사회를 폭력으로 몰아가는 폭력대화의 전형입니다.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사람 죽여 놓고도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겁니다.
비폭력대화에서 선택이라는 걸 중요하게 여깁니다. “나는 나 자신의 행동을 선택한다.” 이것을 잊으면 자꾸 남 탓을 합니다. 드라마는 폭력언어의 잔치입니다. 책임을 부정하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전에 어떤 드라마를 봤더니 음식에 독을 타면서 “이건 너 때문이야”라고 말하더군요.
책임 부정에는 여러 방식이 있는데, 책에 나온 첫번째는 “막연하고 일반적인 이유”입니다. “해야만 하니까 내 방을 청소했다”. 전에 저한테 상담을 하셨던 분이 있습니다. 직장 후배들이 이사들에게 커피를 안탄다고 후배들 욕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후배들이 안 타니까 자기가 이사들에게 커피를 타 드릴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합니다. 커피 안타면 어떻게 되는데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많을수록 불행한 인생을 삽니다. 커피 안타도 괜찮아요.
자기 책임을 부정하는 둘째는 개인적인 내력 탓을 하는 겁니다. “알콜중독자라서 술을 마신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술을 먹게 되더라” 이런 표현을 많이 하죠? 이런 것이 좀비언어입니다. “먹게 되더라” 여기엔 주어가 없습니다. 주체가 없습니다. 선택한 사람이 없습니다. 술 먹는 걸 누가 선택했습니까? 자기가 선택했으면서도 자기 책임을 부정하는 겁니다. 노예의 언어입니다.
자기 책임을 부정하는 세번째 방법은 다른 사람의 행동 탓을 하는 겁니다. 조폭들에게 “왜 찔렀어?” 물으면 “그 새끼가 째려보니까”라고 답합니다. 아니 세상에 누가 째려본다고 꼭 칼로 찔러야 합니까?
자기 책임을 부정하는 방법 또 있습니다. 권위자의 지시, 집단의 압력, 제도적 규칙 뭐 이런 겁니다. 그 놈의 규칙이란 것 때문에 저는 많이 싸웁니다. 사람들이 규칙 핑계를 많이 대거든요. 도대체 그 규칙 누가 정했는데요? 규칙은 우리가 인간적인 삶을 누리라고 만든 건데, 그 규칙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럼 그 규칙 바꾸면 되는 거 아닌가요? 또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을 탓하는 겨우도 있습닏. 성폭력범들이 억제할 수 없는 충동 때문에 그랬다고 하는데 다 거짓말입니다. 성폭력범들은 계획을 하고 범죄를 저지르거든요.
<질문>
질문: 제 남편이 술 마시고 기억을 못한다고 하던데요. 그건 자기 책임을 부정하는 건가요? 아니면 실제로 기억을 못할까요?
답변: 남편분이 술 마시고 기억을 못한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 의심스럽다는 말씀이시죠? 혹시 남편분이 술 마시고 기억을 못할다고 할때마다 남편분의 안전이나 건강이 좀 걱정되시는 건가요? 그래서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만 술을 마셨으면 좋으시겠어요? 그리고, 남편분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서로 신뢰할 수 있었으면 좋으시겠어요? 예, 질문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아까 제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화에서 공감의 대화로 넘어가자고 제안을 했었지요? 우리가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익히는 게 바로 옳고 그름의 세계에서 공감의 세계로 넘어가기 위한 것이라고요. 선생님이 “술 마시고 기억을 못하는 게 사실인가?”라고 물으실 때 그건 역시 과학적인 사실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런 질문 속에도 선생님의 느낌과 욕구가 있을 것 같아서 제가 그걸 공감해보려고 했습니다. 좀 공감이 되셨나요? (예....)
사실 관계도 말씀 드려보면, 저도 술 마시고 필름 끊긴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전에 회계사 일 할 적에요. 회계사 일을 그만 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에 술도 들어 있습니다.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예, 비폭력대화 강사니까 남 탓 안 하고, 제 선택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저는 당시 회계사로서 일을 잘 하기 위해 술 마시기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건강을 지키고 싶어서 회계사 일을 안 하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도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비폭력대화 공부 모임에서만이라도 자신의 느낌과 욕구에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의 술 마시는 얘기를 할 적에도 그게 사실인가 아닌가를 따지기보다, 자신과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에 주목하면 자연스럽게 공감대화가 됩니다.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 따지면 계속 폭력대화가 됩니다. 관심을 느낌과 욕구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5. 내용 설명 4: 관찰, 느낌, 욕구, 부탁
비폭력대화 교과서는 전체적으로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이라는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폭력대화라는 바다가 아주 넓지만, 그 넓은 바다에 이 네 가지가 모두 적용됩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관찰한 것만 말하자. 내가 느낄 걸 말하자. 내가 원하는 걸 말하자. 부탁하자. 이겁니다.
관찰의 반대는 평가, 추측, 판단, 이런 겁니다. 그런데, 판단 안 하고 관찰하기 참 어렵습니다. 노자는 인간의 모든 언어는 평가라고 말합니다. 관찰만 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칭찬도 평가입니다. 선생님 참 이쁘시네요. 이 말 들으니 기분 어떠신가요? (좋아요. 하지만 좀 어색해요.) 그렇습니다. 만일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이쁘다는 말을 한다면, 그건 성희롱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칭찬도 폭력입니다. 칭찬은 사람들을 칭찬의 노예로 만듭니다. 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에서 자꾸 칭찬하라고 권장하는데, 저는 그 책 무지 싫어합니다. 혼자 잘 노는 고래를 왜 자꾸 춤추게 만듭니까?
<참가자의 동의 발언>
칭찬도 폭력이란 말씀에 많이 공감이 되요. 제 아들이 초1때였어요. 스티커 많이 받으면 착한어린이상 준다고 해서 한학기 동안 초등 1학년이었던 아들이 착한 짓을 하고 착한 어린이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축하한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상 주면서 또 받으라고 해서 울려고 했어요”하는 거예요. 스티커 한 장 받기도 힘든데, 그걸 모아서 착한어린이상을 또 받으려면 앞으로 착한 일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느냐는 거죠. 아들은 그것 때문에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것조차 해볼 엄두를 못 냈다는 거예요. ////
약속도 관찰이 아닙니다. 비폭력대화를 익힌 사람은 현재를 삽니다. 약속은 미래에 대한 것이죠. 약속은 강요가 돼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웬만하면 약속을 안합니다.
<질문>
질문: 약속을 안 하고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나요? 우리가 비폭력대화 공부를 오늘 하자고 한 것도 약속 아닌가요?
답변: 약속을 안 하고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는가? 오늘 약속하고 모인 것과 제가 약속 안 한다는 말이 모순으로 들려서 거북하셨나보네요? 저는 제가 실천하려는 비폭력대화를 일종의 이상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100% 모두 실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마, 북극성처럼 이상으로 생각하고 가능한 한 그 방향으로 가려는 겁니다. 물론 약속을 할 때도 있지만, 웬만하면 안하자는 겁니다.
저는 계획도 안합니다. 미래에 대한 꿈도 없습니다. 꿈이 없으니 너무 행복해요. 약속, 꿈, 희망같은 것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사고방식입니다. 회계사 3년하고 인도 갈 때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선배들은 제가 커리어를 놓치면 따라가기 힘들 거라고 계속 다니라고 충고하더라고요. 전문가로서 꿈을 가지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런 꿈과 꿈을 이루기 위한 경력관리가 수많은 사람들을 꿈의 노예로 만듭니다. 인도 갔다온 덕분에 저는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꿈이 없는 삶, 약속이 없는 삶이 얼마나 좋습니까?
추가 질문: 철저히 지금 이 순간을 살자는 말씀인가요?
답: 예 그렇습니다. 철저히 지금 이 순간을 살자는 말씀입니다. 가능하면 약속, 계획 안세우고 지금 현재에 충실한 쪽으로 사는 겁니다. 그전에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는 온통 불안하더라고요. 제가 남들이 삼대를 공들여야 들어갈 수 있다는 공기업을 다니다가 두 번이나 제 발로 걸어나왔습니다. 이른바 미래가 보장된 공기업 정규직을 그만 두자니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다음달 월급이 나올지조차 의심스러울만큼, 남들이 보기엔 불안한 회사에 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합니다. 지금 현재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없애려고 스스로 약속의 노예가 됩니다. 하지만, 제가 해보니, 그런 약속의 노예로 살아도, 즉, 미래가 보장된 공기업 정규직에 살아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전혀 없어지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수록 지금이 불행합니다. 현재를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추가 질문: 사회의 생존 경재이 치열해지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경쟁하기 싫다고, 술 마시기 싫다고 때려치우는 건 너무 경솔하고 무책임한 거 아닌가요?
답변: 우리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한다. 그게 진실인가요? 비폭력대화에선 선택이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그것을 선택했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계속 힘든 삶을 살게 됩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사는 것도 선생님이 선택한 거지요? 지금 다니는 회사 때려치우면 부모님이 선생님을 때려 죽일까요? 내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가 선택한 것을 모르면 힘들어집니다.
앞서 제가 비폭력대화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세상에서 공감의 세상으로 넘어가려는 연습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질문이라고 하셨지만, 저의 선택에 대해 경솔하고 무책임하다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판단의 사고에 대해서는 제가 공감해드리기 어렵습니다. 비폭력대화 공부모임만에서라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자신 또는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에 주목하는 연습을 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다음으로 느낌 표현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느낌은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감정적인 것이 나쁜 것처럼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내 느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나눠 드린 종이를 보시겠습니까? 여기에 나온 표현들이 느낌 표현이고요, 그 아래 나온 건 느낌이 아닌 말들입니다.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이런 말 많이 하시죠? 하지만, 이건 느낌이 아니라 무시당했다는 평가입니다. 그래서 느낌 표현도 참 어렵습니다. 연습을 위해 쉽게 하는 방법은 느낌을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느낌말 목록에서 골라서 하는 겁니다.
다음으로 부탁은 그야말로 부탁입니다. 대화의 목적을 욕구의 실현이라고 한다면, 누가 도와줘야만 실현할 수 있는 욕구들이 있기 때문에, 부탁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적어보시겠습니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만이 비폭력대화에서 말하는 부탁입니다. 예를 들어, “기말고사 때 영어 시험 백 점 받아줄래?”라고 아무리 예쁘게 말한들 그건 부탁이 아닙니다. 지금 할 수 있는 행동도 아니고, 미래에조차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6. 내용 설명 5: 비폭력대화와 사회운동
저는 비폭력대화를 처음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하는 선배들하고 토론을 많이 했었는데, 그걸 선배들은 ‘사투’라고 하대요. 사상투쟁인지 사변투쟁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게 너무 지겨웠습니다. 도대체 그놈의 말싸움은 이겨도 기분 나쁘고 져도 기분 나빴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는가?”라고, 그때도 의문을 가졌습니다. 끊임없이 어느 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다가 뭘 하겠습니까?
저는 사회운동을 하는 분들에게 비폭력대화가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거의 모든 사회운동이 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이지요? 민주주의 사회로 가는 첫걸음은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모으는 것인데요. 정말 민주적인 토론은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면 됩니다. 자신의 느낌과 욕구는 쏙 뺀 채 이른바 정의라는 것만 외치다보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어렵습니다.
작년말엔가 ‘안녕하십니까?’ 대자보에 새로운 언어가 등장했어요. 옳다 그르다 비판하지 않고, ‘내 삶이 안녕하지 못해요’ 라고 표현했습니다. 그전의 사회운동가들이 쓰던 대자보에는 온통 옳고 그른 얘기들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안녕 대자보가 정말 중요한 우리 사회의 새로운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을 대화를 통해 찾아가다 보면 민주주의 사회가 될 겁니다. 그래서 비폭력대화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
질문: 사람 사이에 비폭력대화는 항상 해야 하는 건가요? 예를 들어 이명박의 4대강 문제 이런 것도 비폭력대화로 해결하는 게 가능할까요?
답변: 비폭력대화를 항상 해야 하는지 여쭙는 거지요? 사대강 사업을 벌였던 이명박 전대통령과도 비폭력대화를 시도해야 하는가? 이것도 일종의 판단의 문제인 것 같지만, 그래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도 사대강 사업을 생각하면 화가 많이 납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이 세상에 꼭 해야 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비폭력대화도 꼭 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우리 애들한테는 신경 써서 꼭 비폭력대화를 하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언제나 비폭력대화를 쓰지는 않습니다. 사대강 사업은 엄청난 예산을 낭비한 사업입니다. 저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정부예산이 꼭 필요한 곳에 공정하게 쓰이는 게 저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예산을 그토록 비효율적으로 사용한 사대강 사업을 추진한 이명박 전대통령이 법원에서 그 책임을 평가받기를 원합니다. 사대강사업의 문제는 법원에서 다룰 문제이지, 비폭력대화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길을 가는데 아이가 자동차 길로 뛰어든다면 바로 잡아 끌어서 보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순간에 무슨 공감이고 나발이고 하고 있겠습니까? 비폭력대화는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7. 실습: 힘들었던 상황
최근에 겪은 힘들었던 상황을 두고 실습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누가 자원해주시겠습니까?
<실습 자원>
며칠전에 우리 반 애가 글씨를 쓰는데, 별로 안 이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글씨 좀 이쁘게 쓰면 어떨까?”하고 얘기했는데, “벌써 이쁘게 쓰고 있거든요.”하고 답하더라고요. 저는 신경 써서 도와준다고 한 말인데,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상해서 아무 말 없이 돌아섰는데, 좀 후회가 되요.///
이 사례를 가지고 실습을 했습니다. 옆에 계신 분에게 학생 역할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질문하신 분께는 먼저 학생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해주도록 했습니다. 두 분이 연기를 잘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다음달까지 책을 사서 읽고 싶은 만큼 읽어오는 걸 숙제로 하고 강의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