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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실내악
1) 바로크 실내악
2) 고전주의 실내악
3) 낭만주의 실내악
4) 20세기의 실내악
5. 실내악
18~19세기의 귀족사회에서 음악을 애호하던 아마추어나 전문 음악가들은 중산층의 가정, 귀족의 살롱, 응접실 등에서 친밀한 분위기에 음악을 즐겼다. 이들이 즐기던 작은 그룹의 연주자를 위한 음악을 실내악이라 하는데, 이것은 보통 한 성부에 하나 또는 둘 정도의 연주자가 참여하는 기악곡이다. 즉, 관현악에 비해 소규모의 연주형태를 지칭한다.
실내악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7세기 바로크 시대로, 그 이전에도 유사한 음악 형태는 존재했지만 기악의 형식과 중주의 방법 등을 조직적으로 생각하게 된 바로크 시대에 들어서 이 장르가 갖는 고유의 미학을 인식하게 되었다. 당시엔 성악 앙상블도 실내악 범위에 포함시켰으나 오늘날엔 일반적으로 2개 이상의 악기에 의한 소규모 그룹의 소규모 청중을 위한 음악으로, 관현악이나 독주 악기를 위한 음악을 제외한 형태다.
실내악이 옛날 왕이나 귀족들의 사적인 ‘실내’ 또는 ‘방’에서 연주되던 역사로부터 유래하지만, 실제로 항상 실내에서만 연주한 건 아니고 집 정원이나 거리의 광장 등 야외에서도 연주하였다.
그러나 연주 매체의 속성상 연주자 간의 긴밀한 유대와 음악적 대화가 중시되는 실내악은 아늑한 분위기의 넓지 않은 실내에서 연주해야 청중뿐 아니라, 연주자 까지도 만족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친밀감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실내악엔 독주자도 지휘자도 존재하지 않아서, 개인의 기교를 발휘하는 게 아니라 모든 연주자들이 각각 얼마나 동등하게 음악적 관심을 공유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연주자로 하여금 섬세한 주의를 환기시키며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같은 선율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가운데 연주자들 간에 나누는 무언의 대화와 음을 통한 교감에서 오는 만족감은 다른 어떤 매체와도 비교할 수 없다.
연주가가 자신의 연주를 통해 만족을 얻는 음악이 실내악의 본질로서, 청중과의 물리적 거리도 가까운 만큼 표정 하나하나가 그대로 감상하는 이들에게 이입되는 장르다.
예로부터 실내악에서 사용되는 악기 편성은 2중주부터 5중주까지가 보편적이며 9중주 이상은 성부의 독립이 희박해지므로 실내악보다 관현악곡의 범주에 들게 된다. 물론 관점에 따라선 12명의 주자가 연주하는 경우도 실내악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실내악은 이러한 악기의 숫자나 편성에 따라 작품의 제목이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며(2중주, 3중주, 4중주.....9중주) 현악기를 중심으로 몇 개의 목관악기나 건반악기가 첨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같은 중주라도 어떤 악기가 포함되는가에 따라 현악 4중주곡, 호른 3중주곡, 클라리넷 5중주곡 같은 구성이 이뤄진다. 실내악의 대표적 종류는 예외적 구성이 있긴 하지만 아래에 열거한 악기 편성이 일반적이다.
바이올린 소나타 : 바이올린, 피아노
현악 3중주 :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현악 4중주: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현악 5중주 : 현악 4중주 + 비올라 혹은 첼로
피아노 3중주 :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4중주 :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 5중주 : 피아노 + 현악 4중주
목관 5중주 :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금관 5중주 : 제1트럼펫, 제2트럼펫, 호른, 트롬본, 튜바
실내악의 악기 편성이 결정되는 음악적, 사회적 요인은 다양하다. 우선 작곡가가 음향적 배려 때문에 새로운 악기를 첨가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모차르트는 현악 4중주의 중간 음역을 보강하기 위해 제2비올라를 첨가하여 현악 5중주를 만들었으며, 보케리니의 유명한 미뉴에트를 포함하는 현악 5중주곡은 중후한 소리를 위해 첼로를 두 대 사용한다. 또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고 싶으나 연주 공간이 연주자의 사정으로 피아노를 포함하는 실내악 편성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작곡가와 독주자 사이의 친분관계나 후원자의 기호에 따라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왕족이나 귀족이 좋아하는 악기나 기호에 알맞은 앙상블을 주문하는 경우로 하이든의 바리톤 3중주곡들이나 바흐나 크반츠가 작곡한 프리드리히 대제의 플루트 음악들, 엘리자베스 1세 재위기간에 만들어진 버지널(virginal 소형 하프시코드)음악들이 이에 해당된다. 이외에도 새로운 악사가 궁정악단에 입단하여 새로운 편성을 연주하거나,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가 자신의 악기를 포함하는 실내악곡의 작곡을 의뢰하기도 하며, 작곡가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겸하면 작곡가 임의대로 새로운 악기편성을 시도한다.
1) 바로크 실내악
초기의 실내악은 연주자와 청중의 구분이 모호하였다. 귀족들은 무료한 시간의 공백을 음악 감상뿐 아니라 직접 연주함으로 달랬다.
악기를 위한 음악이 빠른 속도로 번성한 바로크 시대에 작곡가들은 악기 자체의 발달에 힘입어 실내에 모여드는 사람의 지성과 기호를 반영하며 악기의 기능성과 표현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16~17세기에 교회나 극장과 구별하여 음악의 장(場)이 된 ‘실내’를 위한 소규모의 기악 앙상블을 썼는데, 이들이 선호한 장르는 트리오 소나타다. 트리오는 악기 수가 셋이란 의미가 아니라 독립된 세 개의 선율선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3성부 음악을 가리킨다. 그 중 위의 두 성부는 음역과 성격이 유사한 선율 악기가 연주하고, 나머지 한 개는 지속저음 성부로 이것을 연주하는 악기는 대개 두 개 이상이었다. 즉, 두 개의 선율악기(보통은 바이올린 둘, 또는 바이올린과 플루트, 바이올린과 오보에 등)와 지속저음을 위한 두 개의 악기(오르간이나 쳄발로 같이 화음을 낼 수 있는 건반악기 하나와 첼로나 비올라 다 감바, 바순 같은 저음 선율 악기)가 연주하는 형식이었다. 여기서 저음악기를 위한 낮은음자리표의 악보에는 선율 위에 숫자가 적혀 그 숫자에 따라 즉흥적으로 화음을 채워가는 방식으로 연주하였다.
오늘날 재즈 연주가들이 선율 위의 화음기호를 보고 즉흥 연주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였다. 즉, 연주자의 음악적 능력이나 취향을 여러 사람 앞에 나타내 보이기 위한 관습으로 이것은 바로크 시대 전체에 걸쳐 모든 음악 장르에 적용되었다.
바로크 시대의 기악 앙상블에 등장하는 ‘소나타’는 여러 악장의 기악곡이라는 광범위한 뜻을 갖고 있었는데, 17세기 후반 이탈리아 바이올린 악파의 태두였던 코렐리(1653~1713)는 느림 - 빠름 - 느림 - 빠름의 형식을 갖는 교회소나타와 춤 모음곡 형태의 실내 소나타의 두 가지 형태에 의한 트리오 소나타의 틀을 다졌다. 코렐리는 48곡의 트리오 소나타를 통해 17세기 후반 이탈리아 실내악을 집대성하였고, 후세에 규범을 남겼다.
뒤를 이어 쿠프랭과 비발디, 바흐와 헨델도 트리오 소나타 작품을 많이 썼는데, 이 중에 바흐의 ‘음악의 헌정’에 나오는 8번은 열렬한 음악애호가인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직접 작곡한 테마를 갖고 바흐가 왕이 좋아하던 플루트와 바이올린과 지속저음을 위해 작곡한 트리오 소나타로, 단아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인해 따로 독립되어 자주 연주된다. 또한 텔레만의 ‘식탁 음악’은 귀족이나 시의 참사회원 등이 식사를 할 때 편안한 기분을 갖도록 작곡한 다양한 연주형태의 기악곡인데 이 중에 트리오 소나타와 독주 소나타가 포함되었다.
트리오 소나타와 함께 바로크 시대의 중요한 실내악 형식인 독주 소나타는 이름과는 달리 한 개의 독주악기와 두 개 이상의 지속저음 악기로 연주되는 소나타다.
독주 소나타에서 독주 악기는 대부분 바이올린이며 플루트나 오보에도 독주악기로 사용되었다. 코렐리는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집 Op.5’에서 완벽한 형식과 선율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바이올린 특유의 어려운 기법을 시도함으로 바이올린 악파의 선구가 되었다.
트리오 소나타는 연주자의 기교를 과시하는 것 보다 전체적 앙상블에 초점이 모아지는데 비해, 코렐리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연주가의 비르투오소적 요소가 곳곳에서 강조된다.
코렐리 외에 독주 소나타에서의 대표적 작품들로는 비버(1644~1704)의 ‘로젠크란츠 소나타’, 비발디의 플루트 소나타 ‘충실한 양치기’,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와 바이올린 소나타, 타르티니 (1692~1768)의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 등이 있다.
* 파헬벨의 ‘카논’
원래는 클래식이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팝음악으로 분류해도 무방할 정도의 부류가 된 음악이다. 이런 음악을 두고 팝클래식 또는 크로스오버라고도 한다.
파헬벨(1653~1706)은 바흐 이전에 독일 오르간 음악의 전통을 이어간 인물로 당대 최고의 오르간 주자며 작곡가로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1673년 빈 슈테판 대성당의 차석 오르간 주자로 활약했으며 아이제나흐 궁정 오르간 주자로 있을 때 바흐의 큰형을 가르쳤다. 또한 코랄 선율을 가지고 다양하게 변주시키는 방법에서 바흐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카논’은 다양한 편곡이 행해진 대표적 명곡으로,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곡으로 일반 대중에게 친숙하지만 주로 현악 합주를 위한 편곡이 유명하며, 요즘에는 가야금 앙상블과 재즈 앙상블의 레퍼토리로까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곡의 원래 제목은 ‘3개의 바이올린과 지속 저음을 위한 카논과 지그’다. 이 중에 카논 부분이 유명한데, 지속 저음에서 28회나 반복되는 오스티나토(Ostinato 일정한 음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주제 위에 바이올린 성부들이 ‘카논’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차례로 선율을 따라가며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을 고조시킨다.
2) 고전주의 실내악
실내악의 출발이 귀족의 기분전환을 위한 것이지만 이것은 실내악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고전주의 시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실내악곡도 귀족들의 식사 시간에 여흥음악으로 연주되었으며, 먼 곳에서 온 귀한 손님을 기쁘게 해주는 영접 음악이나 결혼식 피로연과 생일 때의 만찬의 분위기를 돋우는 배경음악, 여가시간을 채워주는 음악이 대부분이다.
18세기 후반에 들어 기분 전환용의 순수기악곡으로 트리오 소나타의 유행은 점차 사라지고 지속저음의 연주 관습도 소멸되면서 하나의 성부를 하나의 악기가 연주하는 근대 소나타의 형식 원리가 확립된다. 이와 함께 현악 4중주를 주축으로 하는 현악 앙상블 형태가 발전하였으며, 피아노의 등장으로 독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하나의 독주악기와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 소나타가 주류를 이뤘다. 이것은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실내악의 가장 큰 변화다.
그리고 고전주의 시대 기악음악의 중요한 형식인 소나타 형식이 실내악곡의 구조가 되었다. 당시 소나타라는 명칭이 붙은 작품과 중주곡들은 대개 4악장 구성을 하며 3악장 구성도 드물지 않다. 즉, 1악장은 두 개의 대조적 주제를 가지면서 제시부 - 발전부 - 재현부 구조로 이뤄진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 2악장은 서정적인 느린 악장으로 3부 형식이나 주제와 변주, 3악장은 가장 짧은 악장으로 미뉴에트 - 트리오 - 미뉴에트나 스케르초 - 트리오 - 스케르초로 구성된다. 그리고 4악장은 론도나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악기 구성의 실내악곡을 듣든 고전주의 시대엔 이런 형식 구조가 밑바탕이 되었음을 염두에 두고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작곡가들이 얼마나 다양한 주제 선택을 했는가, 그리고 그것을 연주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 갖는가를 음미하는 것이 중요하다.
① 하이든의 실내악
대부분의 중요한 중주곡 형태가 고전주의 시대에 완성을 보았지만 단순히 특정계급의 실내에서 연주된다는 뜻이 아니라 개개의 악기가 독자적으로 어우러지는 연주형식으로서 근대 실내악으로 전환된 것은 현악 4중주 형태의 성립과 클라비어가 합주에서 독주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8세기말에 들어 새롭게 출현한 부르주아는 피아노와 현악 4중주를 통해 ‘감상하는’욕구를 충족시켰다.
* 하이든 현악 4중주 Op.64-5 ‘종달새’ 제1악장
고전주의 실내악의 가장 중요한 형태인 현악 4중주는 하이든에 의해 완전한 하나의 형식으로 정착되었다. 그런데 하이든은 이 형식을 완성시킨 작곡가일 뿐 아니라 처음 고안한 사람으로 전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주 우연한 일로 인해서다.
1757년 여름 어느 날 하이든은 궁정에서 실내악을 연주해야 했는데, 그곳에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하이든을 포함하여 모두 4명뿐이었다. 모든 악기를 잘 다루던 하이든 자신과 알브레히츠 베르거라는 첼리스트가 있었고, 궁정 주인의 시종과 그곳 교구의 목사가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알았다. 그래서 이 4명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였는데, 이때 하이든의 나이 25세였다. 그때부터 2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첼로로 구성된 현악 4중주가 고전주의 실내악의 가장 이상적 형태로 각광을 받았다.
하이든은 전 생애에 70여곡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 수는 정확한 것이 아닌데 당시 출판업자들이 악보를 많이 팔 욕심에 당대 가장 명망이 높은 작곡가인 하이든의 이름을 아무 작품에나 붙여 악보를 출판하였기 때문이다.
1787~1790년에 하이든은 모두 12곡의 현악 4중주를 작곡하였는데, 1789년에 세 개씩 묶어 Op.54와 Op.55를 출판하였고, 다시 1791년 여섯 곡을 Op.64로 묶어 출판하였다. 이 ‘종달새’는 뒤에 출판된 6개의 현악 4중주 중 다섯 번째 곡이다.
1악장은 경쾌한 스타카토로 시작한다. 이렇게 8마디의 도입부가 지나면, 다른 현들이 계속 이 스타카토 반주를 하는 동안 제1바이올린은 유려한 선율을 시원스럽게 연주한다. 바로 이 선율이 마치 종달새가 아름다운 원을 그리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과 같다 해서 ‘종달새’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 시원스러운 제1주제(악보)는 싱커페이션을 통해 진행되는 제2주제와 어우러져 악장 전체를 시종 싱그럽고 순수한 분위기로 이끌어간다.
실내악 중에 가장 이상적이며 완성된 형식으로 평가받는 현악 4중주는 현의 음질이 고르게 융합되는 것과 성악에서와 같이 4성부를 통해 가장 균형 잡힌 음향을 창출할 수 있는 점에서 다른 어떤 실내악 형식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를 위한 이런 현악 4중주는 친숙하고 오락성이 풍부한 합주의 요소를 지니면서 작곡의 이상을 활발하게 전개시키는 내면 깊은 예술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작곡가는 초창기엔 실내악으로 자신을 연마함과 동시에 만년의 노숙한 경지를 실내악에 의지해서 최후의 명작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 등 고전주의 시대의 대표 작곡가들은 현악 4중주곡으로 후원자들을 포함한 연주가들을 만족시켰을 뿐 아니라, 자신의 높은 음악적 이념을 음질 상에서 가장 순수한 조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현악 4중주에 반영하였다.
이 처럼 고전주의 시대의 대표적 기악 장르로 현악 4중주가 언제 생겼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여러 가지 상반된 기록이 존재하지만 현악 4중주의 진정한 창시자로 하이든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의 초기 교향곡의 짜임새는 현악 4중주와 다를 바가 없으며, 70여 곡의 현악 4중주로 이 장르를 가장 중요한 실내악 유형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이든의 곡을 포함한 초기 현악 4중주곡은 디베르티멘토나 세레나데로 불리기도 했으며, 5악장 이상의 악장 수를 갖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현악 4중주는 하이든에 의해 4악장으로 정착되면서 보다 세련되게 변하였다.
70편이 넘는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중에 유명한 작품은 Op.3 No.5 ‘세레나데’와 Op.20(6개의 ‘태양’ 4중주), Op.33(6개의 ‘러시아’ 4중주), Op.50(‘프러시안’ 4중주), Op.54, 55(각 3개의 4중주), Op.64(6개의 ‘토스트’ 4중주), Op.76(6개의 ‘에르되디’ 4중주곡)이 있다.
이 중에 ‘러시아’ 4중주는 러시아의 대공 파울에게 헌정된 곡으로 미뉴에트 대신 스케르초를 사용하였으며 모차르트에게 강한 영향을 준 작품으로 유명하다. Op.76은 중요한 후기 작품으로 하이든과 베토벤의 후원자인 요제프 에르되디(Joseph Erdody) 백작에게 헌정된 곡이다. 특히 이 중에 제3번은 2악장 변주곡의 주제로 훗날 오스트리아 국가가 된 선율 “하나님, 우리의 프란츠 황제를 보호하소서”가 사용되어 ‘황제’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하이든은 현악 4중주 외에 피아노 3중주곡 40여 편도 남겼다. 하이든 시대에 어느 정도 규범화된 3중주의 구성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현악 3중주였다. 이 현악 3중주가 피아노 트리오 보다 상대적으로 작품 수가 적은 것은 피아노 트리오에 비해 화성적으로 풍부하지 못하고 음색에 변화가 적은 것과 음량이 풍부하지 못했던 원인이 있다. 그러나 하이든은 실내악 작품 가운데 비교적 선호가 적었던 현악 3중주의 형식을 빌려 바리톤(baryton 18세기에 연주되었던 비올라와 첼로의 중간정도 되는 현악기)과 비올라, 첼로의 3중주곡을 120편이나 남겼다. 이유는 지금은 박물관에나 존재하는 바리톤을 당시 하이든이 30년간이나 섬겼던 헝가리 귀족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특별히 좋아하며 직접 연주도 했기 때문이다. 하이든 외에도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이 분야의 곡을 남겼다.
② 모차르트의 실내악
현악 5중주는 현악 4중주 구성에 비올라나 첼로를 추가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는 현악 5중주곡이라 하지만 추가한 악기를 강조하는 경우 비올라 5중주, 첼로 5중주곡으로 부를 때도 있다. 모차르트 이전 작곡가로 이탈리아의 보케리니(1743~1805)는 현악 5중주곡의 대가라 할 수 있을 만큼 120곡이 넘게 작곡하였는데, 이들 중 100곡 이상이 첼로 두 대를 위한 것이다. 비올라에 비해 첼로 두 대가 들어감으로 그의 5중주곡들은 증후함과 품격을 지녔는데 흔히 ‘보케리니의 미뉴에트’로 따로 독립되어 연주되는 유명한 곡은 Op.11 No.5의 3악장이다.
보케리니는 현악 5중주곡 외에 특이하게 기타 5중주곡을 많이 남겼는데, 이유는 그가 기타를 애호하던 스페인 마드리드의 백작 가문에 초청되어 45년간 그곳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현악 4중주곡을 그토록 많이 남긴 하이든이 5중주곡은 한 편도 쓰지 않은 반면 모차르트는 현악 5중주에서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다.
그는 1773년부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여섯 곡의 현악 5중주곡을 썼는데, 보케리니와는 달리 비올라를 추가함으로 내성을 견고히 하고 비올라와 첼로를 더욱 자유로운 선율 악기로 다루었으며 대위법적인 악구들을 치밀하게 엮어 심원한 예술적 경지를 펼쳐갔다. 이런 현악 5중주의 전통을 이어간 사람들은 베토벤과 슈베르트로, 특히 슈베르트의 실내악곡 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현악 5중주곡 C장조는 첼로가 가지고 있는 색채와 넉넉함을 이용하여 낭만적이며 불안에 가득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현악 4중주의 전통은 하이든이 만들고 모차르트가 발전시켰다 할 수 있다.
모차르트는 자신이 쓴 교향곡의 약 반수에 해당하는 27편의 현악 4중주곡을 남겼다.
1770년까지 이미 ‘밀라노 4중주곡’, ‘빈 4중주곡’ 등 13곡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한 모차르트는 10년간 이 분야에 손을 대지 않다가 빈에 정착하며 다시 현악 4중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781년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쳤다. 하이든을 만난 젊은 모차르트는 이듬해 출판된 하이든의 ‘러시아 4중주곡’에 깊은 감명을 받고 1782년부터 3년 동안 여섯 곡의 ‘하이든 4중주곡’을 써서 출판하면서 선배에 대한 한없는 존경을 표시하였다. 두 사람 간에 연령을 뛰어넘는 우정관계는 이렇듯 상대의 음악세계에 대한 경외감과 서로의 음악을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이든의 곡이 소규모의 청중을 상대로 한 주제 전개와 절제된 흐름을 펼치고 있는 반면, 모차르트의 작품은 좀 더 규모가 크며 대중적이고 미묘한 선율 감각을 쫓고 있다. 두 사람의 수작들이 연달아 발표되며 1780년대는 현악 4중주곡이 19세기 피아노 소품과 20세기의 대중음악에 맞먹는 인기를 누렸다.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곡은 ‘하이든 4중주곡’에서 정점을 이루며 보다 정서적인 아름다움과 견고한 구성력을 베토벤에게 전수하였다.
모차르트는 현악 4중주뿐 아니라 선배 하이든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영역에 도전하였다. 오페라 ‘피카로의 결혼’을 전후해서 작곡한 두 개의 피아노 4중주곡은 현악 4중주에는 맛볼 수 없는 교향악적인 울림을 보여주며 1번은 g단조 조성으로 되었다.
1787년 이후 40번 교향곡과 20번 d단조 피아노 협주곡 등 운명적 느낌을 주는 단조 조성을 선호한 모차르트의 취향이 반영된 작품이다. 이외도 4개의 플루트 4중주와 한 개의 오보에 4중주곡, 그리고 호른 5중주곡과 클라리넷 5중주곡을 작곡하였다.
모차르트의 실내악곡 중에 플루트 4중주곡은 애호가의 의뢰나 사교적인 즐거움을 위해 작곡된 것으로 플루트의 밝은 음색과 섬세한 감정 표현 능력을 십분 발휘한 곡들이며, 오보에 4중주곡은 유명한 오보에 연주자 프리드리히 람을 위해 작곡하였다. 특히, 만년에 그와 절친한 클라리넷 주자 슈타틀러를 위해 작곡한 클라리넷 5중주곡은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의 매력과 진가를 처음으로 드러내었으며 세련된 기품과 온화함을 표현함으로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와 견줄만한 유일한 작품이다.
2중주는 두 가지 유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두 개의 선율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2중주(바이올린 둘, 또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혹은 플루트와 바이올린 등)와 선율악기와 피아노의 2중주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은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2중주곡, 파가니니는 바이올린과 기타, 로시니는 첼로와 더블베이스를 위한 2중주곡들을 남겼다.
그러나 2주곡의 전형적인 형태의 선율악기와 피아노의 이중주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피아노가 단순히 반주에 머무는 가 대등한 위치에서 연주하는 가에 따라 독주곡과 실내악곡의 분류로 나뉜다. 즉 실내악곡의 범주에 드는 것은 2중주 소나타로 실내악사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이것을 줄여 바이올린 소나타로 부른다), 첼로 소나타며 이외도 플루트 소나타, 클라리넷 소나타 등이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즉 제목만 봐서는 독주곡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고전주의 시대의 독주 소나타들은 반드시 피아노를 파트너로 수반하게 된다.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모차르트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42곡이나 썼으며, 이 중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대등한 관계를 보이는 최후의 세 곡이 자주 연주된다. 이 외도 8곡의 피아노 3중주곡에서 점차 첼로를 독립적으로 다루며 이것은 베토벤에게 계승된다.
③ 베토벤의 실내악
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해 음악사의 권좌에 오른 현악 4중주곡을 그의 가장 심오하면서도 난해한 음악적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한 실험적 매체로 활용했다.
현악 4중주는 하이든에서 시작하여 베토벤까지 약 반세기에 그 정점을 다하였다.
청년부터 창작의 붓을 놓던 마지막 순간까지 전 생애에 애착을 갖고 작곡하던 현악 4중주곡을 통해, 특히 후기 현악 4중주곡으로 베토벤은 음악적으로 가장 심오하면서 내적인 성취를 이뤘다. 그는 6곡으로 이뤄진 Op.18에서 하이든과 모차르트로 이어진 고전주의 전통과 실험적 정신을 혼합하기 시작하였다.
베토벤 현악 4중주의 성숙한 양식을 대표하는 것은 Op.59에 포함된 3곡이었다. 이것은 당시 빈 주재 러시아 외교관이었던 라주모프스키에게 헌정한 곡들로, 벤토벤은 러시아 민요집에서 2개의 선율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조성적 관례와 형식구조면에서 혁신적 시도를 하였는데, 한 악장 안에서 제시부와 발전부 부분이 어디인지 정확히 판별하기 어렵게 한다든지 악장과 악장 사이를 떨어뜨리지 않고 연결시킨다든지 함으로 형식적인 윤곽을 흐리게 하였다. 이로써 현악 4중주의 특성뿐 아니라 소리에 대한 감각에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된다.
베토벤은 마지막 현악 4중주곡들(Op.130, 131, 132, 133)에서 그때까지의 관습을 뛰어넘어 5~7개까지 악장을 사용했고 각 악장들을 미묘하게 연결시켰다.
이 작품들은 고전적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개성적이고, 낭만적이라 간주하기엔 지나치게 초월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 음악들에서 선율과 동기들은 각 악장마다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는 순환구조를 보이며 다성 음악의 전통과 소나타 악장의 극적인 면과 새로운 시대의 시적인 내용이 실내악의 집중적 형식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
교향곡이나 소나타에서와 마찬가지로 연주가나 듣는 사람의 한계를 고려한 어떠한 양보도 허락지 않던 베토벤 특유의 실험성으로 인해 그의 후기 현악 4중주곡을 들었던 청중들은 혼란스러워했으며 그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상당한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3개의 독주악기에 의한 3중주는 어떤 악기라도 조합이 가능하지만 보편적으로 애호 받는 구성은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의 피아노 3중주다. 이것은 18세기 중엽 독일 만하임에서 발달하여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오늘날의 형태를 정립했다.
초기의 트리오에서 3개의 악기는 대등하다고 할 수 없고, 첼로가 상대적으로 반주 역할에 머물렀다는 것과 달리 모차르트의 작품에서 첼로의 독립성이 나타나면서 베토벤에 이르면 파아노 트리오의 비약적 발전이 이뤄졌다.
베토벤은 7개의 피아노 트리오를 통해 교향악적 형식과 실내악적 묘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걸작을 남겼다. 이 중에 유명한 것은 ‘유령’이라는 부제를 가진 Op.70 No.1과 베토벤을 존경하고 후원해준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Op.97 ‘대공’ 3중주다. 이 곡들은 악상의 웅대함과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현란하고 섬세한 터치에 있어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넘어서며 3악기 각각의 특색이 최대한 효과적으로 발휘되며 3중주의 걸작 레퍼토리를 형성한다.
베토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를 10곡 작곡하였다.
초기의 작품들은 슈베르트의 스승이며 모차르트의 라이벌인 살리에리에게 헌정하였으며 5번 ‘봄’과 9번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유명하다.
그는 5번 소나타부터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드러내며 자유분방한 낭만적 정신을 표현 하였다. 특히 바이올린 소나타 중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9번은 협주곡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연주효과와 웅변적 정신을 갖춘 바이올린 소나타의 걸작이다. 또한 그의 5개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첼로의 아름답고 풍부한 표정과 장대한 표현력을 살린 작품들로 3번 A장조가 유명하다. 이 곡은 베토벤 중기에 만들어진 다른 곡들과 마찬가지로 팽팽한 힘과 타는 듯한 정열, 첼로의 대담한 표현 등 모차르트나 하이든과 비교하여 첼로의 영역이 훨씬 확대되었다.
이러한 작품 외도 베토벤은 1800년 3개의 목관악기(클라리넷, 호른, 바순)와 4개의 현악기(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를 7중주곡 E♭ 장조를 작곡하였다.
1792년 고향 본에서 빈으로 진출한 베토벤은 청중의 기호에 맞는 오락 작품을 작곡하였는데, 이 작품도 그중 하나며 미뉴에트와 스케르초를 포함한 6악장의 곡으로 실제로는 디베르티멘토에 속한다. 이 곡으로 빈 청중의 인기를 얻은 베토벤은 이후엔 이런 종류의 오락음악엔 손을 대지 않았다.
이 외도 3개의 목관악기(클라리넷, 호른, 바순) 각 2개와 호른 2개가 연주하는 8중주곡들 다양한 실내악 영역에서 수작들을 남겼다.
* 파가니니 기타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e단조 Op.27-6중 ‘안단테’
바이올린의 귀재로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던 이탈리아 작곡가 파가니니(1792~1842)는 그로테스크한 용모와 악마적 기교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바람에 탁월한 선율 작가로는 평가 받지 못했다. 그러나 리스트를 비롯한 많은 작곡가들은 45세가 넘어 유럽 각지를 누비면서 활약한 비르투오소 연주가로서 그의 기법과 정신의 세례를 받았고 쇼팽과 슈만,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등은 낭만적인 열정과 서정미 넘치는 파가니니의 선율을 주제로 빌려 좋은 작품을 남겼다.
쇼팽의 음악 대부분이 피아노 작품이듯 바이올린의 귀재 파가니니가 남긴 작품은 주로 자신의 연주를 위해 작곡된 것으로 바이올린 곡이 대부분이다. 그것을 유형별로 보면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바이올린 독주곡, 바이올린을 포함한 실내악,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곡들, 이렇게 4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2번, 바이올린의 기교를 총망라한 무반주 독주곡 ‘24개의 카프리스 Op.1’, ‘로시니의 모세에 의한 환상곡’ 등이다.
파가니니는 특히 기타를 포함한 다양한 편성의 실내악곡도 많이 남겼다. 그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기타를 포함한 곡들을 작곡하게 되었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대체로 그가 연주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기타 수업을 받았던 1801~1804년경으로 추정 된다.
이 시기는 귀부인과의 동거설 등 근거를 알 수 없는 소문에 휩싸였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정작 파가니니 자신은 무대에 나서지 않고 은둔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TV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음악으로 친숙한 것이 기타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Op.27의 6번 느린 악장이다. 이 곡에서 바이올린은 파가니니 특유의 낭만적 선율미를 자아낸다.
3) 낭만주의 실내악
실내악의 진수로 여겨지던 고전시대 현악 4중주의 황금기는 하이든에서 꽃을 피워 베토벤에서 정점을 이루다 낭만주의 시대로 가면서 서서히 쇄락했다. 물론 낭만주의 작곡가들도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슈베르트와 슈만, 멘델스존과 브람스, 드보르작과 프랑크로 이어지는 고전적 성향을 지닌 작곡가들은 낭만적 정신을 추구하면서도 고전주의가 내건 음악적 이상을 버리지 않고 계승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선배들에게 물려받은 형식을 유지하며 독특한 화성 구조와 생동감 있는 리듬을 통해 낭만적 정신을 불어넣으며 음악적 색채감을 더하였다. 그러나 실내악은 낭만적 감정의 분출이나 문학적 상념, 연주가의 현란한 기교를 과시하기엔 적절한 매체가 아니었다. 즉, 실내악은 독주 피아노곡이나 리트(lied 독일의 가곡의 한 종류)가 갖는 친근한 개인적 표현이 부족했고, 관현악곡의 다채로운 색채와 압도적 음향을 갖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철저한 낭만주의자인 베를리오즈나 리스트, 바그너가 실내악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① 슈베르트의 실내악
슈베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현악 4중주곡을 들으며 자랐는데, 아버지의 형들과 함께 자신도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가정음악회에서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이 그랬던 것처럼 비올라를 맡았다.
15편에 이르는 현악 4중주곡을 통해 슈베르트는 처음엔 가정용 음악을 쓰다가 점차 전문 연주자를 위해 주옥같은 작품을 쓰게 된다. 그 중 대표적 작품은 ‘로자문데 4중주곡’으로 불리는 13번 a단조 14번 d단조 ‘죽음과 소녀’로, 점점 규범화된 구조로부터 자유롭고 시적인 표현을 확대하면서 마치 작은 오케스트라와 같은 화려한 음향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a단조 4중주곡은 슈베르트 생전에 출판된 유일한 작품이기도하며 첫 악장과 3악장에는 슬픔과 우수가, 연극음악 ‘로자문데’의 선율을 변주곡으로 사용한 2악장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느껴진다. d단조 4중주는 보다 침울하며 심각하다.
이 작품의 핵심은 2악장이며 자신의 가곡 ‘죽음과 소녀’의 변주곡이다. 이 작품뿐 아니라 많은 슈베르트의 실내악은 가곡과 실내악 사이의 모든 울타리를 부수고, 마치 실내악이 큰 가곡의 차원으로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하다. 이렇듯 노래를 실내악과 융합하려는 시도는 슈베르트 음악의 도처에서 발견되는데, 아마도 슈베르트 초기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가곡 ‘송어’의 변주곡을 포함하는 피아노 5중주곡 ‘송어’일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로 접어들며 모든 악기의 제왕으로 군림한 피아노는 이제 실내악에서 빠질 수 없는 악기가 되었고, 현악 4중주와 결합하여 가장 울림이 풍부하고 화려한 실내악 작품들이 탄생하였다.
슈베르트와 슈만, 세자르 프랑크, 브람스. 드보르작은 각각 한편씩 작곡한 피아노 5중주곡에서 피아노의 다양한 표정과 현악기의 섬세함을 결합시켜 중후하면서 화려한 악상을 펼쳤다.
피아노 5중주 ‘송어’는 특이하게도 다섯 악장으로 구성하였을 뿐 아니라 동명의 가곡 선율을 주제로 사용하여 변주시키고 있는 점, 그리고 악기 편성에서 바이올린 한 개를 빼고 대신 콘트라베이스를 추가하여 색다른 음향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예다.
피아노 3중주곡에 있어 베토벤의 스타일은 슈베르트에게도 전수되었는데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해로 베토벤이 죽기 1년 전인 1827년 슈베르트는 2개의 피아노 트리오를 작곡했다.
Op.99와 Op.100은 서로 상반된 분위기를 지녔지만 슈베르트의 개성을 한껏 발휘한 곡들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서정적인 힘에 있어 이미 낭만주의 실내악곡의 흐름을 감지하게 한다.
특히 작품 100번의 E♭ 장조의 2악장을 가리켜 슈만은 ‘가슴의 고뇌에 까지 고양되고자 하는 한숨’이라는 말로 2악장의 초월적 느낌을 대변하였다.
이 곡은 드라마나 광고, 영화 등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다분히 형식적이며 지적인 실내악에 서정적인 노래를 융합시킴에 있어 슈베르트를 능가할 사람이 드물다는 점은 슈베르트의 마지막 해인 1828년 작곡된 현악 5중주곡 C장조에 잘 드러난다. 슈베르트는 보케리니의 5중주곡에서처럼 현악 4중주에 첼로를 추가하여 어두운 장중함으로 가득한 지극히 낭만적 음색을 얻어냈다.
그리고 첼로가 가진 색채와 넉넉함으로 낭만적이며 불안에 찬 작품의 분위기를 창조한다. 이 5중주는 심오한 서정성, 완벽한 대위법, 긴 선율선(예를 들어 느린 악장의 15마디), 그리고 풍부한 화성으로 낭만주의 음악 중에 가장 절묘한 음향효과를 지닌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1악장부터 3악장까지 전개되는 긴장과 불안, 관현악적 움직임과 대조적으로 마지막 악장에서 경쾌한 분위기로 돌아가서 순수한 민요의 느낌으로 마무리 한다.
이 외에도 슈베르트의 대표적 실내악 작품은 아르페지오네(arpggione 첼로와 유사하지만 현재는 없는 현악기)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바이올린 소나타들과 환상곡, 목관(클라리넷, 바순)과 금관(호른), 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는 6악장의 8중주곡 등이 있다.
*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A장조 Op.114 ‘송어’ 4악장
이 5중주에 송어라는 표제가 붙게 된 것은 4악장의 주제 때문이다.
슈베르트는 1817년 가곡 송어(Die Forelle)를 작곡했다. 그리고 2년 뒤 맑은 강물에서 송어가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을 쾌활하게 노래한 슈베르트의 가곡을 무척 좋아했던 한 아무추어 첼리스트가 그에게 이 선율로 변주곡을 쓸 것을 제안했다.
슈베르트는 이 가곡 주제를 5악장 중 주제와 변주곡 형식으로 된 4악장에서만 사용하였다.
다음 선율이 4악장에 등장하는 D장조의 매력적인 주제다. 이 주제는 A-B 형식의 균형 잡힌 8마디 악구로 되어 있다. 주제의 뒤를 잇는 6개의 변주들도 대부분 그대로 이 악구의 형태를 유지한다. 처음에 이 주제는 현악기들만 도입된다. 이어지는 6개의 변주들은 나름대로 주제를 장식하고 대 주제들과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처음 3개의 변주는 다양한 리듬과 현란한 음향효과를 시도하지만 원래의 선율 형태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4변주에서 이제까지의 평탄한 진행에서 벗어나 극적인 절정을 이루는데, 여기서 조성은 d단조로 옮겨지고 주제 또한 선율, 리듬, 셈여림에서 급격히 변화를 보인다.
제5변주는 새로운 B♭ 조성으로 주제 또한 강렬한 레가토 선율로 변형됨으로 전혀 새로운 소리처럼 들린다. 마지막 변주는 원래의 D장조 선율로 되돌아오지만 템포는 더욱 빨라진다.
여기서 원래 노래에 사용된 대로 강물의 송어가 팔딱 팔딱 뛰면서 몸을 뒤트는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새로운 반주부가 도입되어 더욱 신선한 음향이 만들어 진다.
② 슈만과 멘델스존의 실내악
멘델스존이 출판한 실내악 중 그의 교향곡이나 바이올린 협주곡 만큼 흥미를 끄는 작품은 거의 없다. 그러나 1825년 작곡한 8중주곡은 현악만을 위한 것으로 현악 4중주를 2배를 늘린 편성을 취하고 있다. 이 곡이 실내악 보다는 교향곡풍의 악상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구성은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을 취하지만 선율의 굴곡과 화려한 색채, 환상적 아름다움에 있어 낭만주의 실내악의 전형적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3악장 스케르초는 가장 유명한 부분으로, 현악 합주 형태로 따로 연주되기도 한다.
멘델스존이 그의 누나에게 말한 바로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발푸르기스의 밤’ 마지막 부분에 이 악장의 영감을 얻었다 한다.
멘델스존은 현악 8중주 외에 6개의 현악 4중주와 2개의 5중주, 6중주 등 다수의 실내악을 남겼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d단조와 c단조의 피아노 3중주다.
베토벤과 슈베르트에 이어 독일의 작곡가들은 피아노 트리오 문헌에 보석 같은 작품들을 추가했다.
멘델스존과 슈만, 브람스는 형식적 균형감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 보다 선율적 아름다움이나 화성적 색채감에 관심을 가졌다.
악기간의 균형과 조화도 그 이전 시대 역할 분담의 차원을 넘어 각각의 악기가 갖는 독특한 빛깔과 색감을 강조하는 쪽으로 발전시켰다.
슈베르트 이후 이들은 단조 조성을 더 선호하며 낭만적이고 비극적 정서를 실내악에 투영하였다. 멘델스존의 피아노 3중주들은 선율적이고 예쁜 주제들, 활기찬 악기 사용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멘델스존과 함께 고전적 낭만주의자로 간주되는 슈만의 실내악 작품은 1842년에 집중적으로 작곡되었다.
슈만은 여러 장르의 음악을 동시에 써내려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어느 한 장르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클라라와의 사랑에 시련을 겪었을 때는 피아노 음악에, 결혼한 해(1840년)에는 가곡에, 그리고 이듬해엔 교향곡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했다.
교향곡 4편을 한 해에 썼던 슈만은 이듬해엔 현악 4중주에 집중했다. 그는 하이든과 베토벤의 실내악곡을 연구하며 대위법의 연습에 몰두했다.
6월과 7월에 3곡의 현악4중주곡으로 결실을 본 슈만은 다시 9월과 11월에 피아노 5중주곡과 피아노 4중주곡을 한 편씩 작곡하였다.
슈만이 가장 좋아하는 조성인 B♭ 으로 작곡된 피아노 5중주곡과 4중주곡은 이 분야의 최고 작품들로 손꼽히며, 피아노 음악을 좋아한 슈만의 면모를 보여주듯 피아노를 중심적 위치에 두면서도 각각의 현악기가 균형을 이루며 낭만적 감정으로 넘쳐있다.
특별히 피아노 5중주곡은 멘델스존이 피아노를 맡아 사적으로 연주를 한 후에 클라라가 라히프치히에서 초연한 뒤 이 분야에서 널리 연주되며 피아노 4중주 또한 선율적인 아름다움과 신비한 느낌으로 꾸준히 사랑 받는다. 특히 3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는 슈만다운 낭만적 정서로 가득하며 피아노를 배경으로 바이올린과 첼로가 전개하는 2중주가 일품이다.
이 외에도 4곡의 피아노 3중주곡 가운데 d단조 1번, 피아노와 호른을 위한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위한 ‘환상 소곡집’,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민요풍의 5개의 작품’, 피아노와 비올라를 위한 ‘옛 이야기 그림책’ 등 다양한 악기의 이중주 등이 연주회에 자주 등장하는 슈만의 실내악들이다.
③ 브람스의 실내악
브람스는 19세기 실내악 작곡가의 거인이며, 교향곡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진정한 계승자다.
모두 24곡에 달하는 그의 제작량도 놀랍지만, 그 속엔 적어도 대여섯의 최상급 걸작이 있다.
실내악은 본질적으로 내성적인 브람스에게 알맞은 분야다.
브람스는 열심히 일하기를 좋아했다. 한 곡의 현악 4중주곡을 완성하여 출판하기 위해 20여곡을 작곡했다가 버리기를 반복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가차 없이 버리고 주어진 선율 하나를 가지고 거기에 다른 선율을 붙이기 위해 200여종이 넘는 선율을 붙이는 작업을 반복함으로 그는 ‘젊은 독수리’, ‘영혼의 헤라클레스’ 같은 별명을 얻었다.
멘델스존의 죽음 이후 브람스가 등장하기까지 26년간은 일종의 ‘침묵의 시기’로 현악 4중주 작품이 뜸해졌다. 그 이유는 피아노 소품의 유행으로 현악 4중주의 인기가 시들해진 탓도 있었고, 개인적인 감수성을 중시하고 연주자의 기교에 관심이 높아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팀워크를 중시하는 현악 4중주가 주목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870년대에 들어서며 19세기 후반을 대표할 수 있을 정도로 낭만주의 실내악의 정점에 서 있는 브람스의 등장으로 현악 4중주는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는 교향곡이나 현악 4중주와 같은 큰 규모의 기악곡을 작곡하는 것에 대해 많은 심적 부담을 가졌다. 베토벤 이후 독창적이며 효과적인 소나타와 4중주 혹은 교향곡을 쓸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놓고 슈베르트와 슈만이 고민했던 것처럼 브람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첫 출판은 피아노 3중주 B장조인데, 이 작품은 1891년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출판된다. 2개의 현악 6중주와 피아노 4중주곡으로 독창적 음향을 전개한 브람스는 피아노 5중주곡 f단조에 완숙기로 진입한다.
브람스는 이 작품에 2대의 첼로를 쓰는 현악 5중주로 작곡했으나 이것을 피아노 2대의 편성으로 바꾸었다가 그래도 만족하지 못해 다시 피아노와 현악의 울림을 결합하였다.
한편 풍부한 음향과 표현적 성향을 지닌 낭만적 어법을, 다른 한편으로는 고전적 관습에 깊이 뿌리박힌 형식, 이 둘을 이상적으로 결합시킨다는 브람스의 이념이 성공적으로 드러나는 또 다른 예로 1865년에 작곡된 피아노와 바이올린, 발트호른(Waldhorn 밸브 없는 민속호른)을 위한 3중주가 있다.
베토벤의 생애를 3기로 구분하는 것처럼 브람스의 생애 역시 3기로 구분할 때 이 작품은 중기를 마감한다. 8년간의 침묵 후에 브람스는 40세가 되어서야 현악 4중주곡을 발표했다.
제1교향곡을 43세가 될 때까지 쓰지 않았던 심경과 마찬가지로, 선배 베토벤이 남긴 같은 종류에 대한 외경에도 그렇지만, 가장 완벽한 실내악 형식에서 최고의 작품을 추구하려는 열망 때문이다.
그는 3년 동안 3곡의 현악 4중주곡을 쓰고 다시는 이 장르에 손을 대지 않았다.
브람스는 만년에 공식적이진 않지만 자신의 작곡 능력이 다했음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마지막 시간에 그는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클라리넷이 들어간 실내악 문헌에서 최고의 걸작인 클라리넷 5중주 b단조를 탄생시켰다. 이 무렵의 클라리넷은 모차르트 시대와 달리 음역이나 음색에서 풍부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개량되었으며 당시 클라리넷 연주가인 묄펠트의 연주에 힘입어 브람스는 노년에 창작의 불을 지폈다.
이 작품은 충실한 소나타 형식과 주제의 간결함, 숭고함이 느껴지는 헝가리의 색채 등 브람스 노년의 심오한 창작력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 외에도 브람스의 실내악에서 사랑 받는 작품들은 2중주 소나타들로, 3개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2개의 첼로 소나타, 클라리넷 소나타 등이 있다.
* 브람스의 현악 6중주 제1번 B♭ 장조 Op.18 2악장
브람스는 다양한 악기 편성으로 실내악곡을 작곡했으며 2곡의 현악 6중주곡을 남겼다.
젊은 시절 브람스는 현악 4중주 작곡을 여러 차례 시도하다 1850년에 나타난 슈포어(1784~1859)의 영향을 받아 현악 6중주로 방향을 돌렸다.
베토벤에 필적할 수 있는 4중주곡을 쓰기 어렵다고 느낀 브람스 특유의 신중한 태도에도 원인이 있지만 실내악에서 풍부한 음향을 추구하고 싶었던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현악 6중주곡 1번은 브람스의 나이 27세 때인 1860년 작품이다.
당시 함부르크에 살던 브람스는 하노버의 요아힘이나 괴팅겐에 사는 그림 등 측근에게 편지와 함께 이 작품의 초안을 보여주면서 조언을 구했다.
누구보다도 중후한 음악을 좋아한 브람스는 현악 3중주의 편성을 확대하여 각 2대씩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연주하는 편성을 통해 중후하고 따뜻한 소리를 추구하였다.
수차례 손질을 가해 완성한 이 곡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였다.
클라라 슈만은 그녀의 41세 기념 선물로 브람스에게서 이 곡의 2악장을 피아노로 편곡한 버전을 선물로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그 작품은 내 기대를 넘어섰다. 그것은 이미 높은 단계에 이른 작품이었다.’ 클라라가 칭찬한 그 유명한 2악장은 다소 어둡고 비극적인 느낌을 주는 d단조 주제(악보)와 6개의 변주곡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의 변주는 바로크 변주곡의 일종인 샤콘느의 성격을 갖는다.
④ 독일 이외의 나라들
바로크 시대 이후 독일은 음악 전반에 우위를 차지하여 실내악 분야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으로 가며 독일의 음악이 점차 다른 나라의 민속음악과 결합되며 실내악에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를 울렸다는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4중주곡 1번(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과 드보르작의 ‘아메리카’ 4중주곡, 스메타나의 4중주곡 ‘나의 생애에서’, 그리그와 야나체크(1854~1928), 브로딘(1833~1887)의 작품들은 민속음악 특색을 서구 음악과 접복시켜 현악 4중주의 새로운 감성을 창조했다. 또한 작곡가들은 민요나 농민들의 춤곡 리듬을 중요한 모티브로 삼았는데 그러한 예로 드보르작의 피아노 3중주곡 ‘둠키'가 있다. ‘둠카'의 복수형인 둠키는 슬라브 민요의 일종으로 슬픈 부분과 즐거운 부분이 교체되는 독특한 민속음악이다.
드보르작은 19세기 실내악 분야에서 브람스와 견줄만한 탁월한 작품들을 많이 작곡하였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활약한 민족주의 음악가 중에서도 다소 이질적 존재였던 드보르작은 다른 작곡가들이 구체적으로 손쉽게 호소할 수 있는 표제음악이나 오페라에서 활약한 것과 달리 교향곡과 실내악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실내악 분야에서 드보르작이 완성된 형태로 남김 곡은 10곡이 넘는다. 이 중에 절반 이상이 현악 4중주곡이며 피아노가 포함된 실내악곡도 10곡이 넘는다. 특히 3중주 이상의 피아노 실내악곡들은 이 분야에서 연주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레퍼토리들이며 선율의 아름다움과 향토색 짙은 악기의 사용 등으로 드보르작 특유의 개성을 보여준다.
동유럽과 러시아 쪽에서 나름대로의 실내악 전통을 구축하고 있는 동안 낭만주의 시대에 극히 가벼운 살롱풍의 음악과 오페라 외에는 별반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프랑스에서 실내악의 걸작이 탄생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근대 프랑스 실내악의 창시자인 세자르 프랑크는 비교적 긴 생애를 통하여 1개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피아노 5중주곡 f단조, 현악 4중주곡 D장조 등 소수의 실내악곡을 썼다. 모차르트나 베토벤도 걸출한 4중주는 만년에 작곡했지만 프랑크의 마지막 실내악 작품 역시 현악 4중주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프랑크 실내악의 대표작은 역시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다. 이 곡은 65세에 작곡되었으며 대중들로 하여금 프랑크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프랑크의 선율에는 완만하게 상승하고 그 힘을 가지고 하강하는 것이 매우 많은데, 1악장의 주제 역시 전체 곡에 걸쳐 순환적으로 등장하는 프랑크 특유의 악상을 보여준다.
오늘날 모든 바이올린 곡 가운데 최고봉의 하나로 손꼽히는 바이올린 소나타만을 가지고도 독일 고전음악의 지적인 구성력과 프랑스의 감성을 조화시킨 프랑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실내악곡들로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6중주 ‘피렌체의 회상’, 라흐마니노프의 ‘슬픔의 3중주’, 아렌스키(1861~1906)의 피아노 3중주곡 등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과 포레, 생상스 등 프랑스 작곡가들을 기억할 만하다.
4) 20세기의 실내악
실내악의 전통은 고전주의 시대의 산물로 주로 현악만으로 구성된 중주와 피아노를 포함한 중주를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시대에 따라 소나타 형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창작욕구와 새로운 음향과 음색에 대한 개성적 양식들이 공존하며 실내악은 20세기 들어 작곡가의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매체로 자리매김 하였다.
다른 음악 장르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실내악은 엄격한 형식의 틀을 벗어나 과거에는 사용하지 않던 여러 가지 다양한 악기들의 조합과 새로운 음향 추구의 방향으로 흘러갔으며, 기악과 성악의 공존, 또는 이제껏 쓰이지 않던 타악기 앙상블의 개발, 그리고 다양한 리듬과 실험적 음향에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물론 디베르티멘토나 세레나데 등 옛 형식을 여전히 사용하는 작곡가들도 있고 실내악과 협주곡을 혼합한 실내 협주곡이나 실내교향곡 등 절충을 모색하는 경향도 있으나 전통과 실험 중 어느 쪽을 택하는가는 전적으로 작곡가의 자유에 속한다.
20세기 실내악 작품 중에 연주 빈도가 높은 작품들로 드뷔시와 라벨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이 들은 실내악이란 도구를 이용하여 인상주의적이고 색채적 면모를 활용하려 했다.
드뷔시는 첼로 소나타와 ‘플루트, 비올라, 하프를 위한 소나타’에서 음향은 새롭지만 형식에서는 과거를 재현하였으며, 라벨은 현악 4중주와 피아노 3중주에서 한층 고전적인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몇몇 작곡가들은 후기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유행과는 달리 대위법적 작곡 방식을 선호하여 논리적이고 순수한 양식으로의 회귀를 보여주었다.
20세기의 대표적 작곡가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바이올린, 클라리넷, 피아노, 첼로라는 특이한 편성을 채택하고 있다.
이 곡은 그가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1940년 나치 포로가 되었을 때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동료 포로 2명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이듬해 작곡한 것이다.
메시앙의 이런 특이한 편성은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동원할 수 있는 악기들이 이것 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포로들 앞에서 초연 당시 첼로는 줄 하나가 끊어져 없어진 3현으로 연주했다. 전체 8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메시앙은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으로 새소리를 모방하거나 중세시대의 음악기법을 모방하는 등 독특한 음악세계를 전개하였다.
이외에도 체코의 작곡가 야나체크의 현악 4중주곡 ‘친근한 목소리, 쇤베르크의 현악 6중주곡 ‘정화된 밤’ 바로토크의 6개의 현악 4중주, 쇼스타코비치의 15편의 현악 4중주 등이 20세기 대표적 작품이다. 특히 바로토크의 작품과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은 가치면에서 종종 베토벤의 4중주곡과 비교되곤 한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후 만년에 이르러 작곡한 현악 4중주곡들에서 고전적인 양식을 기초로 하며 교향곡적 긴장과 내적인 갈등을 표출하는 한편 지성적, 철학적 표현에 도달함으로 인간 이성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었다.
* 기악 모음곡인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희유곡)
이탈리아어로 ‘기분 전환’ 또는 ‘위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듯이 가벼운 오락적 내용의 곡이다. 세레나데, 카사시온 등과 더불어 귀족들의 고상한 오락을 위해 작곡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형식은 모음곡이지만 모음곡보다는 비교적 짧은 악장과 자유로운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소나타나 교향곡에 비하여 내용이 가볍고 쉬운 편이다.
악기편성은 적은 인원의 실내악에서 오케스트라까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악장도 3∼12개의 비교적 짧은 악곡으로 이루어졌다. 19세기에 들어서 작곡가가 특정 귀족의 지배를 벗어나면서 이 귀족적 오락 음악은 차차 퇴색하기 시작하지만, 바르톡, 스트라빈스키 등 현대 작곡가들에 의해 새로운 형태로 시도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