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런던올림픽 마라토너 최윤칠(崔崙七)옹 -
최초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출전한 제14회 런던 하계올림픽. 선수들은 신생 독립국의 벅찬 희망을 안고 국민적인 성원을 받으면서 장도에 올랐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라톤은 우리의 기대종목이고 우승의 꿈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이던 1936년 12회 베를린 올립픽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독립된 조국에서 최초로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달린 1947년 4월 19일 보스톤 마라톤대회에서는 서윤복 선수가 세계신기록을 세워 손기정 선수 이래 마라톤 13년째 세계신기록을 보유한 나라. 세계적인 선수 손기정, 남승룡 선수의 마라톤 지도가 계속되었고, 세계신기록 보유자 서윤복이 뛰는데다가 최윤칠이라고 하는 새로운 기대주가 기량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을 때여서 국민들은 꿈에 벅차 있었습니다.
태극기를 가슴에 단 역사적인 첫 올림픽 출전 마라톤의 날 1948년 8월 7일.
웸블리 스타디움 8만 4천명 관중의 환대 속에 출발한 마라톤선수 가운데 최윤칠 선수가 선두그룹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공영방송 BBC의 중계방송이 이어졌습니다.
최윤칠의 선두는 계속되었습니다. 한데 20Km 지점부터 1위로 치고나가 27Km까지 1위로 달리는 모습을 전해주던 중계방송의 목소리가 멈추고 다시 중계방송이 시작되었을 때는 최윤칠의 이름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최윤칠은 끝내 그 대열에서 빠졌습니다. 그 사실이 라디오방송를 통해서 국내에 알려졌을 때 국민들은 분노했습니다. 라디오를 듣다가 부셔 버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최윤칠은 기권을 했으며, 1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를 제패하며 세계신기록을 세운 서윤복 선수가 27위라니? 무엇이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가!"
기대가 분노로 바뀌었고 언론은 비난의 화살을 던졌습니다.
그랬습니다. 기대를 모았던 최윤칠 선수는 골인 지점 4마일을 눈 앞에 두고 갑자기 다리에 심한 쥐가 나서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고, 서윤복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은 처음부터 뒤떨어져 결국 '홍종오 25위, 서윤복 27위'를 한 것이었습니다.
최윤칠 선수가 앞서 나가는 마라톤의 광경이 영국에서 제작된 올림픽 기록영화 "세기의 제전"으로 제작돼 전 세계적으로 상영되면서 국내에서도 그 광경을 다시 보고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어도 마라톤에 던지는 국민의 성원은 여전했고, 선수들은 이에 부응하기 위해 뛰고 또 뛰었습니다. 1950년 보스톤 대회에 출전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해서 대한민국 마라톤의 건재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인간 기관차'라고 불리던 '자토백'이 마라톤 신기록을 세울 때까지 16년간 우리나라는 마라톤 신기록 보유국가였습니다.
- 출처 : 춘하추동 방송
“나는 페이스 메이커다. 마라톤은 42.195km, 하지만 나의 결승점은 언제나 30km까지다.
메달도, 영광도 바랄 수 없는 국가대표…
오직 누군가의 승리를 위해 30km까지만 선두로 달려주는 것! 그것이 내 목표이자 임무다.
그래도 언젠가 한번은… 오로지 나를 위해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