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이겨 뭣 하리
오늘밤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빗소리에 깨서 열린 창문을 닫고 새어 들어온 빗물을 훔치고 저만치 달아난 잠을 따라 가보지만 헛수고다. 비의 양이 엄청나다. 안방 베란다 배수구로 콸콸 쏟아져 내려가는 물소리에 심장이 벌렁거린다. 25층 거실의 이중창 밖에는 휘몰아치는 바람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두꺼운 유리창에 바람이 세게 부딪혀 오면 커다란 짐승이 포효하며 발악하는 모습이 저럴까 싶다. 어둠을 아프게 헤집는다. 요즘 나를 시시때때 헤집어대는 큰 딸의 모습과 흡사하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살이라 했던가?
작년 봄, 큰애는 우여곡절 끝에 가게를 오픈했다. 많은 이의 염려와 응원 속에 대모험의 돛단배에 올라 험지로 나섰다. 봄을 시작으로 긴 장마와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로 고전을 하다니 여름부터 톡톡 튀는 홍보와 MZ의 입맛과 감성으로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다 추석을 시작으로 신나게 노를 젓기 시작했고 연말에는 주말마다 장사진을 이뤘다. 감사하게도 기대이상으로 잘 해냈다. 그러다가 올해 초 우연한 기회에 소개팅에서 만난 K군과 만난 지 보름 만에 결혼이야기가 나왔고 장난이려니 여기며 맞장구 쳤다가 얼떨결에 상견례까지 해버렸다. 결혼은 내년 계약을 끝으로 되도록 빨리 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변수로 말미암아 여차저차 결혼식이 앞당겨져 버렸다. 불과 1년 전에 지금의 상황을 상상이나 했을까? 기쁘기는 하나 적잖은 혼란스러움에 예비사위가 그다지 예쁘지만 않다. 현재로서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인생에서 우린 중요한 ‘선택’ 앞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 신중을 기한 탁월한 선택이라고 해도 결과는 기대이하 또는 실패로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별 기대 없이 시작했지만 한끗 차이로 반응이 폭발적일 수 있고 그에 상응하는 결과로 인생이 확 달라질 수 있다. 1년 동안 많은 일들이 생겼다. 남들 보기에는 속전속결인 것처럼 보이고 쉽게 해내는 것 같이 보여도 당사자들은 속이 탈 만큼 고민한다. 결혼을 앞두고 나는 큰 애와 자주 통화를 하게 됐고 그때마다 다른 생각, 다른 입장으로 언성을 높였다. 나의 일방적인 질책으로 이틀이 멀다하고 싸웠다. 내가 이기적인 것인지, 큰애가 철이 없는 것인지……. 작년 연초 때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기를 쓰고 하겠다는 딸과 쉽지 않다, 후회할 지도 모른다는 나와의 생각은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지만 결국은 딸의 승리가 되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알 것만 같다.
뒤척이다 잠들었나 보다. 잠에서 깨니 선풍기는 목 아프게 돌아가고 있다. 그 난리를 치던 비의 용트림은 굵고 짧게 지나가버렸다. 하지만 그 양이 대단했는지 멀리 보이는 낙동강 물색은 황토 빛이다. 천재지변은 불가항력임을 여실이 느끼는 바이다. 장맛비로 피해가 적길 바란다. 운전대를 잡은 큰애가 안전운행하며 꽃길만 걷길 소망해 본다. 급하다고 과속은 하지말기 바라며 네비게이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의 딴 생각으로 잘 못된 길을 가게 됐더라도 사위와 함께 가고자 하 길을 마음 모아 지혜롭게 잘 찾아가길 바란다. 난 그들의 과속에 속도 조절할 수 있는 방지턱 같은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아니다 싶으면 호되게 꾸짖기도 하고 열심히 잘하면 더 없이 칭찬해주고 말이다. 폭풍우 끝엔 다시 찾은 일상이 더 감사한 것처럼 나중에 티격태격하던 지금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길.
첫댓글 딸을 가진 엄마 로서 공감되는 글입니다 이제는 놔주어야 할 때인듯 합니다 대신 뒤에서 바라봐줘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