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김기수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영동IC 지나 얼마 떨어져 낮은 산자락 따라 늘어선 동네, 한골(閑谷里)이라 불리는 한량한
골짜기, 할아버지의 늙은 감나무는 고사하였고 그 자리에 그의 아들이 심은 감나무 두 그루 서있는, 뒷산에 굴참나
무가 아름드리 둘레를 자랑하며 지붕을 덮칠 듯이 내려다보는, 교회당 아래로 자리 잡은, 본은 개성 김이고 장자
환자와 전주 이씨 청산 이동댁 내외가 사는 청기와 집. 여기를 무대로 활동하는 가여운 촌로부부가 일생을 농사만
알고 살아가고 있지. 젊어서 진 농사 오 남매는 그냥 평작 수준으로 삶의 원칙대로 제 짝들 잘 만나 분가하여 둘만
남았지. 그리 썰렁함을 달래기 위해 무대 앞마당은 전형적인 바둑 얼룩에 멋없는 똥개 한 마리 목줄 채워 놓았고,
또 토끼 몇 마리와 토종 닭 대여섯 마리가 저쪽 한 켠을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한가해 보이는데, 이렇게 새 식구들
드린 후 좀 덜 외로운가 했더니 그래도 줄곧 논밭갈이인데, 땅이라는 건 놀릴 수 없는 것, 세월에 힘들어 이제는 못
하겠다며 투정이면서도 업보처럼 매달린 본능의 욕심 때문에 주름 잔뜩 잡고 틀니까지 들여놓았으니 어색한 발음
이 허블럭 허블럭 거리는데, 밤만 되면 내외가 옥신각신 하는 둘만의 마실 같은 밤이라. 누구네 아들은 경로당에
얼마 찬조금 내고 술도 한 짝 사주고 갔다더라며 한탄 섞인 뼈 있는 소릴 내는데 이는 분명 멀리 있는 자식들 들으라
는 소리겠지. 이는 오직 당신 위신 문제라. 따내는 총무에 노인회장까지 역임하였으니 남보다 기세 눌리기 싫은
당연지사라. 허기사 고생 끝에 대학 물먹은 자식 셋이나 만들어 놨으면 그 정도는 자식들이 해결을 해줘야지 도리건
만, 지네 앞 가름하기도 바쁜 것들이 경노당 찬조할 돈이 어디 있겠소만, 그래도 찔리는 마음은 있는지라 언젠가는
그리 하겠다는 마음 가져보곤 하는 것이 다행인지라.
촌로의 얘기는 쌍방 대화가 아닌 각자만의 대화라. 보면 웃기는 거야. 혼자 묻고 혼자 답하는 식이거나 또는 소쿠
리 어디 있냐 하면 내일 비 온다나 하고, 술 한잔 하자 하면 술상 차리고 술이 없다는 식이니 이 정도는 차라리 좋은
것이어라. 늙으면 성질도 늙는 다는데 여든이 된 김씨의 피 끊는 전투력은 여전하여 여차하면 성질이지. 가끔 아니
종종 잘 나가다가도 뭔가가 약간 틀어지면 그 지경이니 당하는 이씨만 불쌍한 지라. 젊어서 당하고 늙어서 당하는
것이 불쌍해서 나는 안 그래야지 다짐하지만 잘 안 되는 구석이 있어 미안한 일이지. 그래도 웃고 즐기는 편이지.
음주 가무를 좋아하는 성격에 때로는 개그맨 뺨치는 재치로 엄청 웃기기도 하지. 늘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개그맨들처럼 폄하개그로 한 가닥씩 해대지. 그간 있었던 얘기 듣자면 배를 잡을 때도 있어라. 그럭저럭 농사
진 크고 작은 새끼들 그렇게 놀다가 떠나려면 서운해, 엄청 서운해. 엄청 아쉬워하지. 그 틈에 바리바리 짐 싸기에
바쁜 이동댁. 그러는 게 기쁨인 게야. 청정 식품점 같은 짐, 그 짐을 싸기 위해, 새끼들 한입 먹이기 위해 한 해 내내
농사를 지었던 것이지.
그런데 점점 희미해저만 가는 뭔가가 있어. 보이지 않는 뭔가가 노부부에게 오고 있어. 아주 조금씩이지만 성큼
다가올지도 모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안을까? 점점 쪼그라드는 육신, 본래의 제 자리로 돌아가려고 자꾸 수축 중에
있어. 순환을 준비하는 과정인 것이야. 미리 보는 우리 모습이지. 할아버지의 감나무처럼 죽고 다시 심어지는 것이
지. 그것을 노부부는 잘 알고 있을 거야. 못 배운 것과 관계없이 자연습득으로 알게 되었을 거야. 인간 극장의 두
주인공이 자신의 대본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지. 부부의 여정을 짧게 요약하면 ‘아웅다웅 진퇴양난’의
삶이라. 이제는 그 본능의 업보 내려 놓을 때도 되었건만…, 극장은 계속 상영 중이다.
2011. 신묘년 정월에…
첫댓글 ㅎㅎ ~~머리에 그림이 그려 집니다
아웅다웅 사는 우리네 모습입니다
다 내내 행복한 삶이었음합니다^^
가장 전형적인 우리나라 삶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인간극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분 건강하고 오래오래 사시길 빕니다 왜 우리
부모님은 주는 삶만 사셨는지....
그 옛날 양지바른 한곡리 마을!
아직도 극장 상영중이군요.
두 분 부모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빌어드립니다...
네. 파초님. 그러하실 겁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