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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산책 (4) 지상 최대의 쇼 ➀
[독후감]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
1. 진화가 사실이라는 증거 자체
(1) ‘진화가 사실이라는 증거 자체’라는 제하의 서문에서, 저자 도킨스는 ‘이 책은 진화 이론이 정말 사실이라는 증거들, 다른 과학적 사실들처럼 논박의 여지없는 사실이라는 증거들을 개인적으로 간추려본 것이다.’ 라고 말한다.
또한 이 책의 서두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우리 주위는 너무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생명들로 가득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며, 무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선택에 의한 결과이다. 이것은 진화가 펼쳐 낸 지상 최대의 쇼이다.‘
(2)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1976년에 출간한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의 시각에서 자연선택을 바라보는 새로운 다윈주의를 말하고 있다. 1982년의 <확장된 표현형>은 <이기적 유전>에 대한 보충설명 격이다. 이 두 권의 책이 도킨스의 과학적 견해를 모두 보여준다. 도킨스는 이 책을 가리켜 자신의 ‘잃어버린 고리’라고 밝히고 있다. 전작들이 진화를 명백한 사실로 가정하고, 그 작동방법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였다면, 이 책은 진화가 사실이라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인위선택의 증거를 보여주고, 현재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진화의 사례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어류와 양서류의 중간형태, 호모 사피엔스 진화의 중간 형태에 해당하는 화석들이 발견되었는지를 그림과 설명으로 보여준다. 비록 화석이 없더라도 다른 분야의 증거만으로도 충분히 진화를 짐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현생 동물들의 해부구조를 비교한 결과, DNA비교라는 분자생물학적 증거도 제시한다. 또한 도킨스는 과학자들이 진화의 증거를 해석하는 방법론에 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진화의 시계들이나, 판구조론에 대한 설명이 그러한 것이다.
진화라는 현상, 무작위적인 변이와 무작위적이지 않은 선택이라는 다윈의 이론, 적응, 종의 분화와 분포, 복제자와 운반자, 화석기록, 종(種) 분류의 임의성, 친족관계와 계통수(系統樹), 무기경쟁 등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한 예제들과 실험들이 망라되었다. 도킨스는 진화의 다면적 증거들을 한자리에 모았고, 최신자료까지 더했다.
옮긴이는 김명남 과학서 전문번역가이다.
2. 지상 최대의 쇼
(1) 그저 하나의 이론
이 책은 진화가 사실이라는 확실한 증거들에 관한 책이다. 진화에 대해서든 대륙이동에 대해서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건에 대한 추론뿐이다. 다윈에게 자연선택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이론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1859년 무렵에는 진화를 주장하기에 충분한 증거를 모은 상태였지만, 자연선택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자연선택이 사실의 지위에 오르기까지는 갈 길은 멀었다. 다윈이 책의 대부분을 할애해 몰두한 일이 그 가설을 사실로 격상시키는 일이었다. 이제 도킨스는 진화가 회피할 수 없는 사실임을 이 책에서 증언하고 있다.
(2) 개, 소, 그리고 양배추
진화적 견지에서 보면, 예를 들면 토끼와 표범을 잇는 일련의 중간형태의 동물이 존재했다. 토끼의 선조와 표범의 선조를 각각 과거를 따라 올라가면 두 동물과 공통점을 지닌 개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머리핀 굴곡(hairpin bend: 두 가닥 머리핀의 꼭대기, 즉 두 종이 공통의 조상으로 만나게 되는 생물체)'의 동물은 토끼와 표범만의 공통선조가 아니라, 다른 많은 포유류의 선조인 것이다.
* 야생 양배추인 브라시카 올레라케아(Brassica oleracea)와 그 후손들 브로콜리, 콜라비, 케일, 방울양배추, 스프링그린, 로마네스크 브로콜리 등 다양한 채소종을 원예학자들이 만들었다.
<야생양배추>
<콜리 플라워> <케일>
<방울 양배추>
<콜라비>
<양배추>
<브로콜리>
* 늑대 카니스 루푸스(Canis lupus)를 카니스 파밀리아리스(Canis familiaris), 즉 개로 조각해 내었다. 영국 애견협회기 인정하는 독자적인 종은 200여 가지가 된다.
사육사(원예가)는 개나 양배추의 몸통이 아니라, 그 품종의 유전자 풀(gene pool)을 조각하는 것이다. 생물체의 개체군에서 보는 각 개체는 유전자 풀에서 뽑아낸 하나의 표본이다. 한 유전자 풀에서 특정 유전자의 빈도가 체계적으로 커지거나 작아지는 경향성이 실제로 관찰된다면,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진화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동물의 가축화는 강력하고 빠르게 야생 동물들의 형태와 행동을 바꿔놓았다. 순종들도 변이성이 높은 중간단계를 거치면서 세대마다 세심한 교배를 통해 지속적으로 다듬어져온 것이다. 가끔 두드러진 돌연변이 하나를 채택함으로써, 새 품종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자연도 사육사들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이해하거나 인식하지 않은 채 유사한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수백 년, 심지어 수십 년 만에 그런 진화적 변화가 가능하다면, 수천만 년이나 수억 년 동안에는 어떤 일이 가능할지 상상할 수 있다.
* 벨지언 블루(Belgian Blue) 소는 이중근육화라는 유전자조작을 통해 특별히 고안된 품종이다. 소의 근육의 성장을 통제하는 마이오스타틴(myostatin)이라는 단백질이 있다. 이것을 만드는 유전자가 고장이 나면 근육은 정상보다 훨씬 커진다.
<벨지언 블루와 인간 보디빌더>
* 인간 보디빌더(body-builder)는 체계적인 운동을 통해서 또는 단백동화 스테로이드(steroid) 약물을 통해서 우람한 체형을 얻는다.
환경적 기법을 통해서 돌연변이 유전자를 흉내 내는 것이다. 유전적 변화와 환경적 변화가 동일한 결과를 낼 수 있다.
(3) 대진화의 꽃길
* 사람의 눈과 코는 야생장미를 개량해왔다. 결국 세련된 이종교배의 전략을 통해 수십 년간의 교묘한 선택적 육종을 거쳐 수백 가지의 변종이 탄생했다.
장미는 인간의 눈과 코를 통하여 유전자를 조작하기 전부터, 곤충의 눈과 코에 의한 조각 작업에 수백만 년 동안 제 몸을 맡겨왔다. 모든 꽃이 마찬가지이다.
* 학명이 헬리안투스 안누스(Helianthus annuns)인 해바라기는 북아메리카 산 식물로, 야생상태의 작은 꽃에서 큰 접시만 한 요즘의 해바라기로 품종개량된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아메리카산 꽃으로부터 면세된 해바라기 씨 기름을 종교적인 용도를 사용하기 위하여 육종을 시작하였다. 아메리카인들도 이 꽃을 식품이나 염료, 장식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야생해바라기와 현대변종의 중간쯤 되는 단계를 만들었다.
인간들의 육종 이전에 선택적 육종의 매개자는 벌새나 박쥐 또는 개구리였다. 유성생식을 하는 식물은 타가수정을 위해 꿀이라는 먹을거리를 뇌물로 쓴다. 곤충과 새의 날개에 대가를 지불하는 쪽으로 그들의 비행근육에 당분이라는 연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안그레쿰 세스퀴페달레(Angraecum sesquipedale)라는 난초는 28센티미터가 되는 관모양의 꿀주머니를 갖고 있다. 이와 가까운 종인 안그레쿰 론지칼카르(Angraecum longicalcar)는 40센티미터가 된다.
다윈과 윌리스는 이 난초를 수분시킬 만한 주둥이가 긴 나방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1903년 프레딕타(praedicta)라고 명명된 주둥이가 40센티미터가 조금 못되는 새 나방이 발견되었다.
<난초와 프레딕타>
* 달맞이꽃 외노테라(Oenotbera)는 우리에게 무늬 없는 노란색으로 보이지만, 자외선 필터를 걸고 찍은 사진을 보면 벌들을 위한 무늬가 드러난다.
사진에서는 붉은 색으로 보이지만, 벌들도 붉은 색으로 본다는 뜻은 아니다. 벌에게 자외선이 어떻게 보이는지 아무도 모른다.
초원의 꽃밭에 흩뿌려진 색체의 꽃들은 동물들의 눈에 의한 선택에 따라 그 모양과 색깔이 정해지고, 그 크기와 맵시가 단장되어 온 것이다. 벌과 곤충의 눈이 무늬와 점을 찍었다. 나중에 사람의 눈이 정원의 꽃들에 대해서 그리고 개와 소, 양배추와 옥수수에 대해서 한일과 정확하게 같은 일이었다.
꽃의 입장에서 보면, 곤충 수분은 낭비가 심한 바람 수분보다 경제적인 방법이다. 어느 쪽이든, 한쪽이 다른 한쪽이 기존에 하던 일을 더 잘 하도록 부추김으로써 선택적으로 길들였다고 말할 수 있다.
* 암꿩들은 수꿩을, 암컷 공작들은 수컷 공작을, 암컷 극락조는 수컷 극락조를 화려한 외모를 보고 선택한다.
수컷들의 화려한 색깔은 포식자의 눈길을 끌겠지만, 암꿩의 눈길을 끌며 암컷들에 의한 수컷들의 선택적 육종 즉 성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 꿩 사육사는 암꿩의 형질을 개선함으로써 금계와 같은 변종을 만들었다. 비둘기와 닭 또한 선택적 육종을 통해 놀라운 변종을 만들었다. 카나리아 애호가는 새의 외모는 물론이고 노래를 위해 육종하기도 했다.
* 일본 해역에 서식하는 헤이케아 야포니카(Heikea japonica) 게는 등껍질이 무시무시한 찡그린 사무라이의 얼굴을 닮았다.
일본의 어부들이 수세대 동안 인간의 얼굴을 닮은 게를 바다로 도로 던져버렸다는 사실은 어부들이 진화의 과정을 개시한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연에 불과하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사무라이 가부키 가면>
<헤이케아 야포니카 게>
진정한 자연선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고, 그 단계인 유인단계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사람들은 매력적인 장미나 해바라기, 기타 등등을 의도적으로 선택해 육종한다. 그럼으로써 매력적인 속성을 만드는 유전자들을 보존한다. 이것이 인위선택이다.
② 암컷 공작은 매력적인 수컷을 선택해 번식시킴으로써, 매력적인 유전자를 보존한다. 이것이 성선택이다.
③ 작은 물고기는 가장 매력적인 아귀에게 제 몸을 먹임으로써 매력적인 아귀가 생존하도록 선택한다. 그럼으로써 아귀가 매력적인 속성을 만드는 유전자를 보존하도록 선택한 셈이다. 이것이 자연선택이다.
④ 선택 행위자가 없어도 우연히 유리한 생존도구를 갖췄다는 사실 때문에 선택된 개체들이 가장 잘 번식할 것이고, 따라서 유리한 도구의 유전자를 물려줄 것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이러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연선택은 매일 매일 시시각각 전 세계를, 모든 변이를, 아무리 사소한 것까지 모두 점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선택은 나쁜 것을 기각하고, 좋은 것을 보존하고 모두 더한다. 자연선택은 기척도 없이 조용하게 작동하며, 언제 어디서든 기회가 될 때마다, 각 유기체를 그 생명이 처한 유기적, 무기적 조건들에 맞추어 개량한다. 우리는 이런 느린 변화들이 진행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 시간의 바늘이 아주 기나 긴 시대를 다 거친 후에야 우리가 깨달을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과거 기나긴 지질학적 시대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너무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직 예전의 생명 형태들이 지금과 다르다는 점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과학적 가설에 대한 궁극의 검증은 실험이다. 인위선택은 선택이 진화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가설에 대한 진정한 실험적 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 일리노이 농업시험장에서 인위선택을 경험한 두 옥수수 집단의 기름함량을 그래프화 하였다.
두 집단의 기름의 함량은 차이가 극적이고 계속 커졌다. 상승하는 경향선이든 하강하는 경향선이든 결국에는 아마 수평을 이루며 안정화할 것이다.
* 은여우는 붉은 여우 불페스 불페스(Vulpes vulpes)의 색깔 변종으로 아름다운 털 때문에 가치가 높았다. 야생여우들을 35세대 만에 유순한 품종으로 개량하였다. 길든 여우들은 행동이 개와 같아 졌으며, 아름다운 털가죽을 잃었고, 흑백 얼룩무늬가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펄럭대는 귀와 얼룩덜룩한 털은 유순함 유전자와 결부되어 나타나는, ‘다형질발현(多形質發現: 어떤 유전자의 형질이 분기하여 2개 이상의 유전현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한 특징은 다형질발현으로 함께 엮인 다른 특징에 편승해서 진화과정을 함께 밟아온 결과일 것이다.
<불페스 불페스>
* 마다가스카르의 마법탄환난초들은 수분 매개자에게 꿀을 주지만, 먹이를 주는 대신 그들을 속임으로써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알아냈다. 어떤 난초들은 암컷 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벌의 암컷을 그럴듯하게 모방할수록 수컷들이 마법 탄환처럼 그 꽃들만 찾아다닐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수분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 단독 생활을 하는 말벌들 중에는 암컷이 거미를 잡아서 가시로 마비시킨 뒤, 그 속에 알을 낳아 유충들에게 살아있는 식량을 제공하는 종들이 있다.
* 거미난초는 거미를 닮은 모양으로 수컷 말벌을 꾀어, 말벌이 가시로 찌를 때 말벌의 몸에 난초의 화분을 묻힌다. 그 말벌이 거미를 닮은 다른 거미난초를 찌를 때 화분이 옮겨진다.
* 에피카두스 헤테로가스테르(Epicadus beteogaster)라는 거미는 난초를 모방한다. 꽃에 다가와 꿀을 얻으려는 곤충들을 잡아먹는다.
*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망치난초는 난초 꽃의 일부분이 곤충을 닮은 형태라서 수컷 말벌이 교미를 하려들면 꽃의 건너편에 처박힌다. 이때 화분이 벌의 몸에 붇게 되고, 이 벌은 다른 꽃의 암술에 안착한다.
* 남아메리카의 양동이난초는 향수를 제공하며, 향수를 암컷을 꾀는 도구로 사용하는 난초벌 수컷들을 유혹한다. 양동이난초 가장자리에 내려앉은 벌은 양동이에 빠지고, 꽃은 벌을 잡고 있는 동안에 화분을 등에 붙인 뒤에 벌을 풀어준다. 벌은 또 다른 양동이난초에 내려앉고 두 번째 난초의 암술머리에 수정시킨다.
꽃과 수분의 매개자의 관계는 공진화(共進化)의 관계이다. 함께 진화한다는 뜻의 공진화는 서로 얻을 것이 있는 생물들 간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상대방에게 서로 뭔가를 기여하고, 협력을 통해 둘 다 이득을 보는 관계이다.
어느 두 품종의 개들 간의 차이를 생각하면, 천 년도 안 되는 기간에 얼마나 큰 진화적 변화가 가능한지 가늠할 수 있다. 지구의 나이는 약46억년으로 추정한다. 모든 현생 포유류의 공통선조가 지구 위를 걸었던 시기로부터 지금까지 약2억년이 흘렀다. 우리의 어류선조가 물에서 기어 나와 뭍에 오를 때로부터 지금까지 약3억5천만 년이 흘렀다.
인간사육가들의 인위선택이 고작 몇 백 년 만에 야생 늑대를 애완견 페키니즈로, 야생양배추를 콜리플라워로 변형시킬 수 있다면, 야생 동식물의 무작위적이지 않은 생존경쟁이 수백만 년에 걸쳐서 같은 일을 해내지 못하란 법은 없을 것이다.
(4) 침묵과 느린 시간
진화의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지구의 나이를 알고, 화석기록에 들어난 다양한 경계 지점들을 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지구의 나이나 화석의 나이를 알기위해서 그것을 측정하는 시계가 필요하다.
생명이 지구 위에서 작동해온 시간의 규모는 수천 년이 아니라, 수억 년으로 추정된다. 자연의 시계들 중에서 빠른 쪽에 해당하는 나이테와 탄소 연대 측정은 고고학적 용도에 이용하며, 개나 양배추의 품종개량에 소요되는 기간을 측정할 때도 유용하다. 그러나 수억 년 또는 수십억 년을 잴 수 있는 자연의 시계들이 필요하다.
나이테시계는 나무가 계절에 따라 나이테가 차별적으로 성장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고학적 시간규모인 수천 년 수준에서만 연륜연대학이 사용된다. 실제로 연륜연대학은 11,500년까지만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방사능시계는 수백 년에서 수억 년까지 범위를 측정할 수 있다. 불안정한 방사능 동위원소들은 저마다 독특한 속도로 붕괴한다. 주어진 시간동안 정해진 양이 다른 원소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양 중에서 정해진 비율이 변한다는 뜻이다. 붕괴율을 재는 잣대로 ‘반감기(半減期)’가 사용된다. 탄소-14의 반감기는 5-6천 년이며, 약 5-6만 년보다 오래된 표본은 탄소 연대 측정이 소용이 없다.
진화적 시간규모 측정에 사용되는 동위원소는 반감기가 12억6천만 년인 칼륨-40이다. 칼륨-40이 붕괴할 때 생기는 원소가 아르곤-40이다(칼륨 아르곤 시계라고 한다). 칼륨-40이 12억6천만 년 뒤에는 그중 절반이 아르곤-40으로 붕괴할 것이다. 그것이 반감기이다. 또다시 12억6천만 년이 흐르면, 남은 것의 절반이 더 붕괴할 것이고, 이런 식으로 반감은 계속된다. 따라서 화성암 속의 칼륨-40과 아르곤-40의 비율을 측정함으로써 용융(熔融)상태의 암석이 결정화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기간을 측정할 수 있다.
화성암에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 화석을 담을 수 있는 바위는 퇴적암뿐이다. 퇴적층이 쌓이는 순서는 오래된 순서로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폐름기, 트라이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구분한다. 명명된 지층을 확인할 때는 그 안에 담긴 화석들을 단서로 한다.
탄소시계는 탄소-12와 탄소-14의 비율은 생물이 죽어 대기와의 상호교환이 불가능해진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흐른 시간을 계산하는데 쓰인다. 우주선 입자들이 질소 핵 속의 양성자를 때려서 중성자로 바꾸면, 원자는 탄소-14가 된다. 이런 변환이 일러나는 속도는 세기마다 일정하기 때문에 연대측정이 가능하다.
현재는 적용가능한 모든 동위원소의 결과가 한결같이 지구의 기원을 40억-50억 년으로 나타낸다. 이상과 같은 시계 외에도 핵분열 연대 측정법과 분자시계도 있다.
(5) 바로 우리 눈앞에서
* 1962년 우간다 정부가 1925년부터 1958년까지 합법적으로 허가 받은 사냥꾼이 총으로 쏘아죽인 코끼리의 평균 엄니무게를 그라프로 만들었다.
33년 동안 코끼리의 엄니 무게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냥꾼들이 전리품이나 조각용으로 상아를 얻기 위하여 엄니가 큰 개체를 사냥 대상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우리는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극명하게 진행되는 재빠른 진화의 사례를 보았다.
* 1971년 크로아티아의 섬 포드 코피슈테에는 곤충을 먹고사는 도마뱀 포다르치스 시쿨라(Podarcis sicula)가 살고 있는데, 이 섬의 도마뱀 다섯 쌍을 떨어진 포드 므르차라 섬으로 옮겨 놓았다. 37년 후 2008년 포드 므르차라 섬에 옮겨진 다섯 쌍의 후손들은 개체군이 융성하고 있었다.
<도마뱀 포다르치스 시쿨라>
선조섬인 포드 코피슈테의 도마뱀들과 포드 므르차라에 옮겨진 도마뱀을 비교한 결과 선조섬인 포드 코피슈테의 도마뱀은 변하지 않은 상태였으나, 포드 므르차라에 옮겨진 도마뱀은 머리가 길고 넓고 높았다. 또한 포드 코피슈테의 도마뱀은 거의 곤충으로만 이루어진 식단을 따르는데 비해, 포드 무르차라의 도마뱀은 주로 초식을 하는 식습관으로 바뀌었다. 37년, 18-19세대 동안에 초식성으로 진화한 포드 므르차라의 개체군의 맹장 판막이 진화한 변화를 발견했다. 수십 년 만에 자연 상태에서 진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바로 우리 눈앞에서.
* 미시간 주립대학의 박테리아학자 리처드 렌스키(Richard Lenski)와 동료들이 에스케리키아 콜리(Escherichia coli) 박테리아, 즉 대장균을 대상으로 장기 실험을 수행하였다.
대장균은 무성생식으로 번식하기 때문에 거대한 개체군을 짧은 시간에 복제하기 쉽다. 실험결과는 모든 플라스크의 개체군이 어마어마하게 증식했다가, 정체기에 도달하고, 그 시점에서 일부의 새 표본을 추출하여 다음날 같은 주기를 반복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작업을 20년 이상 지속했다. 이러한 실험기간은 사람의 4만5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대략 100만 년이 된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의 시대다. 또한 대장균은 글루코스를 영양소로 활용하는 능력이 더 나아졌다. 더욱이 부족마다 서로 다른 돌연변이 집합을 발전시킴으로써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개선되었다. 이러한 실험은 실험실이라는 소우주에서의 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진화를 보여줌으로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핵심요소들을 확인시켜 주었다.
* 엑스터대학 생물학교수 존 엔들러(John Endler)는 송사리과의 민물고기 거피(guppy)의 진화에 관한 실험을 실시하였다. 열 개의 온실을 만들어 다섯 개는 거칠고 굵은 자갈을 깔고, 나머지 다섯 개는 모래알처럼 잔자갈을 깔았다. 강한 포식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진화적으로 긴 시간이 흐르면 서로 다른 배경에 사는 거피들이 각자의 배경에 맞는 방향으로 발산해 진화하며, 반면 포식위험이 약하거나 없으면 수컷들은 암컷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눈에 띄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경향을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거피>
강하든 약하든 포식자가 존재할 때, 긁은 자갈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반점들이 생겼고, 잔자갈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반점들이 선호되었다. 반점들의 크기가 돌멩이 크기를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포식자가 전혀 없는 연못에서는 그 반대의 경향이 나타났다. 거피들이 배경에 깔린 돌을 모방하지 않을 때는 암컷의 시선을 끌기 위해 오히려 더 눈에 띄는 쪽으로 변한 것이다.
진화는 몹시 빠르게 일어나는가 하면, 어떤 상황에서는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진화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동물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진화하거나, 심지어 전혀 진화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이 많다.
(6) 잃어버린 고리? 뭘 잃어버렸단 말인가?
주요 동물 집단이 진화해왔다는 화석 증거는 다양하다. 진화를 증명하는 화석은 예외 없이 시간적 순서로 등장했다. 그리고 빈틈은 존재한다. 화석이 하나도 없는 기간들이 있다. 진화가 사실이라는 증거는 현생 종들의 비교연구를 통해, 또한 종들의 지리적 분포를 통해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 동물의 분류에서 와충강에는 4천 종의 벌레가 있다. 그 중에서 와충류는 화석 재료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캄브리아기 이전의 화석이 적다.
그러던 중 약 5억 년쯤 전에 단단하게 화석화한 골격 같은 것이 생겨나면서, 동물들의 화석화를 도와주는 변화가 일어났다. ‘화석화의 빈틈’의 옛 이름은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이었다.
*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선조에서 현생인류까지 이어주는 중간단계 화석들이 풍부하게 존재하지만, 단, 분기점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는 쪽이 공통선조(침팬지도 인간도 아닌)에서 현생 침팬지까지 이어지는 화석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침팬지가 숲에서 살았기 때문에 인지 모르겠다. 숲은 화석화에 알맞은 조건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상태를 ‘잃어버린 고리’라고 한다. 사람과 다른 동물들 사이에 빈틈이 있다는 의미다. 수백만 가지의 동물의 종 각각이 다른 모든 동물종과 선조를 공유한다.
* 에오마이아(Eomaia) 화석은 1억년이 넘는 초기 백악기에 살았던 동물이다.
에오마이아 같은 선조에서 코끼리 후손으로 내려오는 경로이든, 에오마이아 같은 선조에서 침팬지 후손으로 내려오는 경로이든, 양쪽 다 상당한 진화의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에오마이아(Eomaia)>
사람은 원숭이에서 유래하지 않았다. 우리는 원숭이와 공통선조를 갖고 있을 뿐이다. 약 2,500만 년 전에 공통선조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한 종이 순식간에 새 종을 낳을 수는 없다. 사람과 원숭이처럼, 사람과 침팬지처럼 차이가 나는 종(種)을 낳을 수는 없다. 진화는 점진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동물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척추동물을 여러 강(綱)으로 나눈다. 포유강, 조강, 파충강, 양서강 등이 주요 집단의 이름이다. 조류는 엄격한 의미에서 자연적 강으로 파충류를 설정하려면, 그 안에 새들도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조류를 별도의 강으로 취급한다. 조류의 바로 옆을 둘러쌌던 파충류들이 우연히도 멸종해버렸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고리’가 있는 시기라고 하는 주요한 진화적 전이 사건들을 찾아보자.
① 바다에서 뭍으로 : 과거로 올라가면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살았다. 진화역사의 여러 지점에서 다양한 동물 집단이 육지로 올라왔다. 몸속에 피와 세포액 형태로 바닷물을 간직한, 파충류, 조류, 포유류, 곤충 외에 전갈, 달팽이, 쥐며느리와 참게 같은 갑각류, 노래기, 지네, 거미와 그 친족들, 그리고 세 종류 문(門)의 벌레들이다.
인간과 같은 포유류는 현생 경골어류를 포함하는 자연적 집단에 속한다. 경골어류 중에서 가시지느러미 어류를 제외하면 육상 척추동물과 엽상지느러미 어류를 포함하는 집단에 속한다. 물에 살았던 어류와 육지로 올라온 첫 척추동물 사이의 전이기에 해당하는 데본기(3억4500만 년 전) 화석에서 사람의 선조를 기대할 수 있다.
* 잃어버린 고리의 빈틈에서 어류 쪽을 보면, 1881년에 발견된 유스테노프테론(Eustbenopteron)은 전형적인 사지동물의 뼈 형태이다. 판데릭티스(Pandericbthys)는 물고기로 보는 것이 좋다. 후기 데본기 암석에서 발견된 화석 틱타알릭(Tiktaalik)은 악어의 얼굴에 도롱뇽의 상체, 물고기의 하체와 꼬리가 달린 모습이다.
* 잃어버린 고리의 빈틈에서 양서류 쪽을 보면, 1932년에 발견된 익티오스테가(Icbtbyostega)는 물고기라기보다는 도롱뇽처럼 생겼고 발가락이 일곱 개였다. 데본기와 석탄기의 경계 무렵의 화석으로 아칸토스테가(Acantbostega)는 양서류를 닮은 납작한 두개골과 사지동물을 닮은 팔다리를 지녔다.
<양서류로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 화석의 복원도.
1) 유스테노프테론 약 3억 8,500만년 전, 2) 틱타알릭 약 3억 7,500만년 전,
3) 아칸토스테가 약 3억 6,500만년 전, 4) 이크티오스테가 약 3억 6,500만년 전>
② 뭍에서 다시 바다로 : 철저하게 육상화 했던 동물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 바다표범과 바다사자는 절반만 돌아갔다.
* 고래와 듀공(Dugong)과 그들의 가까운 친척인 메너티(Manatee)는 육상동물이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선조들처럼 완벽한 수생동물로 돌아갔다.
<듀공>
<메너티>
* 일정기간을 물에서 보내는 민물달팽이, 물거미, 물딱정벌레, 악어, 수달, 물뱀, 물뒤쥐, 날지 못하는 갈라파고스 가마우지, 갈라파고스 바다이구아나, 물주머니쥐, 오리너구리, 팽귄, 거북이 있다.
* 자메이카에서 발견된 화석 페조시렌(Pezosiren)은 앞뒤에 걸어 다니는 다리가 있으나, 메너티(Manatee)와 듀공(Dugong)은 앞에 지느러미발이 있고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 캐나다에서 발견된 약2천만 년 전의 화석인 푸이일라 다르위니(Puilila darwini)는 지느러미발은 없고, 대신 물갈퀴가 있었다.
이상의 화석들은 잃어버렸다고 할 수 없는 찾아낸 고리들이다.
또한 거북은 진화의 역사에서 바다에서 땅으로, 땅에서 바다로 진출과정을 두 번이나 밟았다는 것을 증거로 확인할 수 있다.
<지상 최대의 쇼 ➁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