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왕이 기거하던 궁터|삼척시 노곡면 상마읍안길 1789-87,수녀원 집 2층 원두막 앞의 옆 쪼그만한 평지가 왕의 유배 때에 움막집이 있었다고,김종필씨는 12대로 여기서 살은 조상들의 말씀을 전언했다. 수년 전까지 밭이여서 오랜 세월[630여 년]이 지났어도 밀림은 아니고,무성한 잡초와 나무들이 자랐다.
천태종 상월스님 출생지 원터 생가와 법회장
들머리|천태종법회장예서 원점회귀 산행이다.
포토에세이ㅣ삼척 명품길 江山海
마읍리 궁터, 왕의 유배길 따라
20**,11,17.~20**.08.16.
'궁터 공양왕 유배지'로 출발이다. 지지난해 11월에 이어 올해 8월 두번째 답사 산행이다. 삼척시내에서 아시안 하이웨이 남행 동막IC를 빠저 신리 너와마을로 가는 지방도를 따라간다. 상마읍리 천태종 구인사 상월 스님의 생가터 법회장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를 했다. 들머리에서 '궁터 공양왕 유배지'까지 등로는 계곡을 따라 가다가 계곡을 가로질러 까파른 오르막 길을 계속 타는 여름 산행이다.
11월,궁터로 오르는 계곡에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상마읍리 천태종 법회장에서 궁터까지는 4km, 3시간이 소요된다. 끝까지 오르막 등로에서 땀으로 사워를 하며 간다. 마읍리는 계곡이 깊고 산천이 수려하다. 예로부터 난리를 피하는 피난처로 알려져 왔다. 고려 마지막 공양왕의 유배지인 궁터가 있다. 마읍리 봉촌[鳳村,새말]은 천태종 구인사의 생불이라 불리던 상월스님이 태어난 곳이고, 원院터는 상월스님이 살던 곳이다. 또한 조선조 초 세 왕에서 피신한, 태종 이방원의 스승 원천석元天錫의 「이삼세 삼재면 李三世 三災免」이란 글씨가 활바지弓田 사다리바위에 새겨저 있다.
계속 오름길에서 일행 모두가 산행 중 이렇게 땀 목욕은 처음이라고 했다. 폭염일 때는 한낮 산행을 자제하는데, 숲속 그늘이여서 진행했다. 많은 땀을 흘리지만 숲속이라 신선한 기류여서 일사병에 노출될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당일 산행이여서 보온병에 얼음을 넣어서 시원한 물을 수시로 공급하고,수시로 끈적이는 땀을 닦아서 쾌적함을 유지했다. 산행을 떠나기 전 날씨가 좋지만 여름철 산행이라 비가 내릴 수 있어 배낭에 방풍과 방수기능의 재킷과 보온 옷을 챙겼다. 산에서 비가 내리면 바람을 동반하는 경우,비에 젖은 상태에서 바람이 불면 평소보다 약 240배 빠른 속도로 체온을 빼앗기기 때문에 보온 옷은 반드시 준비해야한다.
11월,육백산 오르는 길은 낙엽이 내렸지만,산중턱 왕의 유배길 활엽수림은 아직도 화사한 나무 숲길이다.
얼마 남지 않은 궁터 전방,임도에 도착하여 휴식, 이순희 님이 직접 빚은 비주 냉막걸리와 감자전의 별미를 즐긴다. 얼마 더 가면 독가촌이 있고, 거기서 600여미터를 더 오르면 공양왕 유배지가 있다. 맨땅에 널버부리 앉아 간식을 먹으며 휴식,체력을 보강하면서 산행의 기쁨을 만끽한다. 여기 임도에는 찌프차 또는 전륜구동 차량이 다닌다.
공양왕 유배지 한참 아래에 빈집, 마당에는 옥수수가 가득히 자라고 있다. 들머리에서 육백산 두리봉 쪽으로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계곡을 버리고 가파른 비탈을 계속 오르면 여기에 도착한다.육백산 중턱에 있는 독가촌 첫 집이다. 황토색 폐인트를 칠한 함석지붕,가끔은 주인이 다녀간 흔적이 보인다.잡초가 무성한 마당의 처마 밑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다시 출발 10여분 정도 산을 오르는데, 8월의 태양은 뜨겁고 숲의 산기는 신선하다.온몸은 땀 목욕으로 옷이 몸에 감기어 몸은 무겁지만 정신은 가볍다.
11월 육백산 두리봉 산 중턱에서 먼데 산이 하늘산이다. 강복순 님,김금순 님, 박위순 님
욱어진 수풀 너머로 육백산 두리봉 부근이 보인다. 고려 마지막 왕의 유배지를 찾는 깊은 계곡을 지나 높은 산등로는 역사의 흔적 같다. 역사의 깊은 계곡 높은 산에서 부침했던 조선조 개국 이성계와 고려 멸망 공양왕이,... 이 산속에서 한 나라와 또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읽히였다. 꺼이꺼이 울음소리, 하하하 웃음소리가 미세한 바람결에 들리듯 아니 들리듯 저 위 육백산 정수리가 우릴 내려다 보고 있다.
11월,마읍리 궁터에 도착했다. 도착지 가옥 1이다.
8월, '궁터 공양왕 유배지' 궁터마을 가옥1에서 쥔장 김종필[53세,왼쪽 뒤에 앉은 이]씨 가옥은 목공예 공방이다.옆으로 50m 계곡의 개울에는 시원한 청정수 물이 넘첬다. 땀으로 목욕하며 산을 오른 보람이 활짝 웃음으로 피는 삼척숲속여행 일행이다.
궁터 답사ㅣ천주교 수녀원집 두채와 2층 원두막은 비어 있고,김종필씨 집만 사람이 산다. 공양왕(1345~1394)은 원주와 간성을 거쳐 삼척 마읍리 궁터에서 한달 남짓 귀양을 살았다. 이성계 일파를 반대한 정몽주鄭夢周[1338~1392]가 살해되자, 정세는 이성계의 독무대가 되었다. 이에 조준·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은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이로써 공양왕은 폐위되었고, 고려왕조는 끝나고 말았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공양왕은 원주로 방치되었다가 간성군杆城郡으로 추방되면서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되었고, 1394년 삼척부三陟府 오지 중 오지 마읍리 궁터로 옮겨저 10개월간 유배되다가 그해 궁방재를 너머 궁촌리 바닷가 살해재 고개에서 조선조 태조 3년(1394)에 고려 마지막 공양왕은 교살되었다. 지금도 궁촌리 그 고개를 살해재라 한다.
'궁터 공양왕 유배지'는 무성한 잡초와 나무들이 자라고... 정선 두문동 고려 유신들이 건의령巾衣嶺[백두대간을 넘어 태백 삼수동과 삼척 도계읍을 잇는] 고갯길을 넘어 육백산 궁터로 임금을 알현한 기록이 건의령巾衣嶺 설화에 남아있다. 폐왕과 폐 신하의 유배지에서의 아픈 만남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아픈 비극이 보인다. 또 하나는 공양왕이 궁터에서 궁촌으로 가는 도중 마읍리 활바지弓田에서 하루를 자고 간 일화가 있다. 몇 년 전 원천석元天錫의「이삼세삼재면 李三世三災免」사다리바위 글씨 답사 때 마을주민이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일화를 들려줬다. 유추해보니 궁터에서 출발하여 활바지에서 하루밤을 묵고, 궁방재를 넘어 영은사 아랫마을 매원리를 지나 궁촌으로 갔다.
가옥에서 도시락 오찬ㅣ뒤에 보이는 산, 운무에 두리봉은 보이지 않았다.김종필 씨는 육백산을 정원으로 '청산에 살으릿다' 이다.
11월 가을,궁터 수녀원집 2에서 일행이 점심후 휴식이다.
궁터 가옥 앞에 꼬리겨우살이 <사진:윤재규>ㅣ황금빛 11월,고려 마지막 왕이 유배 살던 삼척 궁터에서 만난 상록 기생 관목 꼬리겨우살이다.이 관목은 다른 나무에 기생 스스로 광합성하여 엽록소를 만들어 사계절 푸른 잎을 지닌다. 꽃은 3월에 황색으로 피고 겨울에 둥근 열매가 연노랑색으로 익는다. 줄기와 잎은 심장질환.고혈압.뇌졸증.동맥경화, 항암제 약재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