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하눔 모스크의 아름다운 야경..
아크사레이 모스크를 둘러본 후일행 중 2명만 울루그벡 천문대/다니엘 영묘/아프라시압 박물관을 보기 위하여 출발하였다. 먼저 가는 길에 있는 무하마드의 사촌형인 쿠샨 이븐 압바스 영묘를 찾았다. 나는 오늘 새벽에 둘러보았기에 밖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일행만 영묘를 보러 갔으며 약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쿠샨 이븐 압바스 영묘를 둘러본 후 아프라시압 박물관(Afrasiab Museum)으로 향했다. 입장료 30,000 솜(7년 전 14,000 솜)을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하마드의 사촌형인 쿠샨 이븐 압비스 영묘가 있는 곳..
영묘 주변의 민간인의 묘로써 특이한 것은 실물 형상의 비석에 음각을 한 묘를 볼 수가 있었다..
아프라시압 박물관(Afrasiab Museum)으로 들어갑니다..
박물관 안에는 알렉산더의 원정 기록과 동전 출토물을 비롯해 7∼8세기 토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한국어로 된 영상도 볼 수 있었으며, 박물관 1층 중앙 홀에는 7세기에 그려진 사절도가 있다. 바흐만 왕의 즉위식에 참석한 외국 사절단을 그린 것인데, 그중에는 한국 사절단도 있다. 당시 대당(對唐) 전쟁의 절박한 상황에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동맹을 맺기 위해 찾아간 고구려 사신들일 것으로 추측된다. 7세기 소그디아나(Sogdiana) 왕국의 바르후만 왕 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는 많이 퇴색되어 있어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어 된 비디오를 통해 아프라시압 유적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7∼8세기 토기 등이 전시되어 있고..
해골들과 미이라..
박물관 1층 중앙 홀에는 7세기에 그려진 사절도 / 뒤쪽 두 사람은 조우관(鳥羽冠)을 쓴 고구려 사신(?)들의 모습..
13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기 전까지 번영을 누렸던 아프라시압 궁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박물관에 전시된 조우관(鳥羽冠)을 쓴 고구려 사신(?)들의 모습은 볼 수 있었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화장실을 찾으니 바깥에 있다고 하며 2000 솜을 받는다. 박물관 입장료 내고 화장실 비용을 따로 받으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건물 내에 화장실을 만들면 될 것을 굳이 건물 밖에 화장실을 별도로 만든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14~15세기 최고로 멋진 시기를 보낸 후손들의 지금의 모습은 조금 부끄러움을 느껴야 될 것 같다.
한국어 된 비디오를 통해 아프라시압 유적지에 대해 살펴봅니다..
아프라시압 유적지를 본 후 약 15분 거리에 있는 다니엘 영묘를 보러 갔다. 다니엘 영묘 가는 길에 집 대문이 열려 있어 잠시 살펴보는데 들어오라고 하여 들어가니 가장 연장자(80세 이상)가 차를 한 잔 따라 주었으며, 한쪽 구석에서는 손녀 며느리(?)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갈길이 바쁘지 않았으면 현지인 가정에서 식사대접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시간상 생략하고 집을 나왔다. 현지인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어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아프라시압 박물관을 나옵니다..
다니엘 묘 가는 길에서 본 낙타 조형물..
길이 18m에 이르는 ‘믿음의 용사’ ‘신의 절대적인 가호’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다니엘(Doniyor) 모솔리움..
다니엘(Doniyor) 모솔리움은 길이 18m에 이른다. ‘믿음의 용사’ ‘신의 절대적인 가호’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다니엘은 구약시대의 4대 예언자(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다니엘) 중 마지막 인물이라 한다. 다니엘은 이슬람에서도 위대한 성인이기 때문에 묘가 계속 길어져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원래 다니엘의 묘는 이란 수사(Susa)에 있다. 유대 민족의 바빌론 유수(BC 587∼BC 538) 시절에 그곳에 묻혔던 것이다. 그러나 티무르 제국 전성기 때 그곳에서 유체 일부를 가져와 사마르칸트에 안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식으로 복사된 다니엘 묘는 현재 전 세계 여섯 군데에 있다고 한다. 다니엘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에서 모두 언급하는 성인(聖人)이므로, 각 종교의 순례객들이 이곳을 찾아온다고 한다. 입장료 25,000 솜(7년 전 11,000 솜)을 지불하고 계단을 올라 먼저 다니엘 묘를 보니 내부에 긴 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관이 이렇게 큰 이유는 다니엘의 정강이뼈가 자라나서 길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지인 가정을 방문하여 연장자(80세 이상)에게 차를 한 잔 얻어 마시고( 부부와 시아버지)..
며느리는 요리 중이고..
다니엘(Doniyor) 모솔리움을 본 후 10분 거리에 있는 울루그 벡 천문대(Ulugbek's Observatory)를 찾았다. 그곳에 들어가기 전 티무르 제국의 4대 통치권자인 울루그 벡의 거대한 동상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울루그 벡은 군주로서의 능력은 부족했기에 내란이 끊이지 않았고 재위 2년 8개월 만에 살해당했지만, 학자와 예술가들을 우대하고 학문, 예술을 보호 장려했기에 문화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그는 1429년에 이곳에 거대한 천문대를 만들었다. 지금은 언덕 정상에 육분의의 흔적과 작은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입장료는 30,000 솜이었다.
티무르 제국의 4대 통치권자인 울루그 벡의 거대한 동상..
울루그 벡 천문대(Observatory of Ulugh Beg) / 울루그 벡이 건설한 천문대의 기초와 천체의 고도를 측정하는 대형 육분의 일부만 남아 있고
울루그 벡 천문대(Observatory of Ulugh Beg)
울루그 벡의 동상 뒤 언덕에 울루그 벡이 건설한 천문대의 기초와 천체의 고도를 측정하는 대형 육분의 일부만 남아 있고 울루그 벡의 공적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있다. 울루그 벡이 죽자 당시 종교가 과학을 우선 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이슬람 지도자들과 광신도들이 천문대를 파괴해 버렸다고 한다. 울루그 벡의 후손인 인도의 무굴 왕국의 창시자인 바브르가 천문대에 대한 증언을 하였고 울루그 벡의 제자가 “Zij-i-Sultani”라는 천문표 문서를 영국 왕립 천문 학회에 전달하므로 울루그 벡의 천문대가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지만 파괴된 천문대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이 20세기까지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1908년에 러시아 고고학자블라디미르 비아 틴(Vladimir Viatkin)에 의해서 지하에 파묻혀 있던 거대한 대리석으로 된 천체 측정기 육분의(sextant)가 발견되어 사마르칸트에 주요한 관광 자원이 되었고 1964년에 발견된 육분의 옆에 박물관을 지어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육분의는 길이가 11미터이었고 지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하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살아남게 되었고 지상에는 건물을 지었던 기초가 남아 있어서 3층 원통형 건물로 지름이 46m 높이는 30m이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울루그 벡의 공적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
울루그 벡의 거대한 동상을 보고 점심 식사를 하러 갑니다..
울루그 벡 천문대를 둘러본 후 국수를 먹으려고 했으나 음식점이 문을 닫아 한식당 아리랑에서 어제 먹었던 김치찌개를 먹은 후 호텔로 돌아와 빨래도 하고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약 31,000보를 걸었다. 저녁은 이태리 식당에서 포스타와 셀러리. 그리고 와인 한 잔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모처럼 멋진 석양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무하마드의 사촌형인 쿠샨 이븐 압바스 영묘가 있는 곳..
레기스탄 광장(Registan Square)에는 오늘도 결혼 예식사진을 찍고 있고..
비비하눔 모스크를 청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방문한 이태리 식당 옥상에서 본 석양..
석양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식당 옥상의 전구에 불이 들어오고..
포스타와 셀러리. 그리고 와인 한 잔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집니다..
비비하눔 모스크에 조명이 들어옵니다..
비비하눔 모스크의 아름다운 야경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