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무덤은 대체로 둥글다.
무덤이 둥근 것은 흙으로 동그랗게 쌓아올린 봉분 때문이다.
봉분은 죽은 사람의 집이라고 여겨 둥글게 조영했다고 한다.
옛날 조상들은 보통 사람이 죽으면 3일째 되는 날 땅에 묻었다.
이때는 평지처럼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올렸다. 이를 초우라고 했다.
그로부터 2일째 지내는 제사를 재우라고 했다.
3일째 지내는 제사를 삼우라고 했다.이때 비로소 무덤에 봉분을 올렸다.
삼우제는 무덤에 봉분을 만들고 돌아가신 분이 편하게 쉬도록 올리는 제사다.
봉분은 왜 둥글게 쌓은 것일까요?
왜 사람들은 무덤을 둥글게 했을까?
오직 추측만 난무한다. 검증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설(說)로 떠돌고 있다.
첫째 고대의 탄생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의 초대왕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다.
박혁거세뿐만 아니라 많은 탄생신화가 알과 연관이 있다.
"알에서 왔으니 알로 돌아가라."
사람이 태여난 알이 둥글듯 '돌아가' 쉬는 산소(山所)도 알처럼 둥글게 만들었다고 한다.
둘째 풍수지리설에 보면 둥근 곳이 명당이다.
좌청룡 우백호로 둘러싸인 곳이 명당인 것이다.
이명당에 조화를 이루려면 당연히 둥근 모양을 갖춘 무덤 형태가 이상적이라고 한다.
셋째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천체의 모든 별들이 둥글다. 무덤의 형태를 둥글게 한 것은 둥근 하늘로 돌려 보내고
싶은 막연한 소망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넷째 불교의 윤회설도 한 몫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둥근 무덤을 만듦으로 해서 윤회를 잘 하게 하려는 의식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덤이 둥근 이유는 동양의 고대사상인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조금은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한마디로 자연과의 합일(合一)과 자연과의 조화를 바라는 염원을 상징한 둥근 봉분이라는 것이다.

왕릉의 터는 풍수 이론에 따라 산의 지형과 물의 흐름에 따라 자연이 갖고 있는 생기(生氣)가
왕릉을 보호하는 가장 이상적인 장소로 잡았다. 뒤쪽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녹지의 언덕(岡)위에 봉분을 세운다.
왕릉입구에 들어선 참배자가 봉분을 올려다보며 자연스럽게 존경과 위엄을 느끼도록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능침공간의 중심 혈(穴)자리에 둥근 봉분이 자리한 것이다.
그 봉분을 중심으로 석물과 치장 등을 설치해 그 생기의 운행을 기차게 조절토록 했다.
주산에서 내려온 주맥이 뭉치는 불록한 언덕 잉(孕)을 곡장 뒤에 있도록 했다.
휼륭한 잉(孕)은 기(氣)의 흐름을 촉진시켜주는 풍수장치로 명당의 필수조건이다.
좌청룡 우백호는 없어도 되지만 잉이 없는 명당은 상상도 못한 게 조선왕릉의 묘제다.
왕릉의 능침 공간에는 봉분의 옆과 뒤의 세 면을 둘러싼 담장인 곡장을 둘렀다.
이 곡장은 좌청룡 우백호로 능침 지역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둥근 언덕(孕)을 통해 봉분으로 원할하게 들어간 생기는 사초지를 저장탱크 삼아
살아 있는 왕이 죽은 왕으로부터 복(福)을 받게 다양하게 작용한다.
이 생기의 흐름을 조절-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석물이 능침공간에 배치된다.
병풍석과 난간 석양 석호 문인석 무인석 장명등 세호 혼유석 등은 혈자리에 있는 봉분을
중심으로 흐르고 있는 생기를 뒫받침하는 풍수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