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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현실의 간극
이정훈 변호사(법무법인 에셀)
트레이닝복과 삼선 실내화와 대화를 나눌 경지에 이르자 기적적으로 사법시험에 합격을 한 나는, 사람만이 드나든다는 시중 여러 은행으로부터 수차례 러브콜을 받았다. 무보증으로 1억 5천만 원 상당을 신용으로 대출해 준다는 은행들의 제안은, 트레이닝복과 삼선 실내화와의 열애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명령처럼 들렸었다.
그때 러브콜 한 은행 직원으로부터 금리와 혜택에 대한 설명을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은행이자를 낼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저리로 돈을 빌려 주어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은행이자를 감당해도 될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지금도 잘 사는데 더 잘 살려고 하는 것이니까 그만큼 고리로 돈을 빌려 주는 것’이 은행의 역할이라는 것이 나의 상식이었는데, 은행 직원은 “사법시험에 합격을 했기 때문에 경제적 능력이 생겼으니까 저리로 돈을 빌려 주는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도 이상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고리로 빌려 주거나 빌려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계속 가난해 질 것이고, 부자에게 저리로 돈을 빌려 주면 그 사람은 저리로 빌려 더 부유하게 생활하게 될 텐데 그렇게 해도 되느냐’고 따지듯 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대출을 갚을 능력이 되는 사람, 즉 대체로 부자는 저리로 돈을 빌리고, 가난해서 대출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은 고리로 돈을 빌려야 한다는 것(그나마 빌려 주는 것을 고마워하라는 논리)을 상식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 사회에 머리로는 암기를 하였지만, 내가 가진 상식이 현실과 만나면 항상 ‘적응’을 해야 하는 매커니즘에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생명권을 담보로 24시간 활동보조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으면 기본권 중 기본권인 생명권을 보장할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상식일진대, 예산이라는 현실 논리를 들이대면서 우리들에게 적응을 강요하는 사람 사회를 보면서, 상식이 현실과 만나면 적응을 해야 한다는 사람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이 답답하기만 하고 머리도 나빠져 암기도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소시민과 비정상적인 차별을 받는 슈퍼 을들에게는 너무도 예리하게 다듬어진 검찰의 칼과 절박하게 목소리를 내는데도 절박한 게 뭔지 물어 보는 고귀한 법원에 길들여진 나는, 법률직역의 경력이 쌓여갈수록 소외받는 이웃들에게 검찰의 예리한 칼과 법원의 청각이 약하다는 것만 통지해 주는 직업인으로 전락해 가고 있는 현실 때문에 가끔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상식들이 현실과 만나 적응을 하게 되고 또 얼마나 머리를 싸 잡아 메어가며 암기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너무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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