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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에서 수(數)는 세계를 이해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민족에게 3과 7은 수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하나의 신앙과도 같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한민족은 왕에서 백성까지 사람이 죽으면 한결같이 삼년상을 치른다.
“어린애는 세상에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겨우 부모의 품속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부모가 돌아가시면 이번에는 삼 년 동안 자신이 그 곁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한민족은 내기를 해도 `삼 세 번'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각종 회의 의사봉도 `3번'을 두드려야 비로소 효과를 갖는다.
각종 결의대회도 `만세삼창'으로 끝낸다. 노래를 불러도 삼박자다. 일본 씨름 스모는 단판 시합인데 한국의 씨름은
삼세판이다. 우리가 삼천리(三千里) 금수강산에 태어나게 된 것도 삼신할머니 덕분이다.
이때의 삼신(三神)은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를 어우른다.
어느 종교와 관계없이 그 중심에는 하늘· 땅· 사람이 하나가 되는 삼재(三才) 사상이 있다.
이 삼자를 한창 거슬러 올라가면 단군신화와 만난다.
그 고기(古記)에서 삼자들을 뽑아 나열하면 하늘에서 내려보낸 삼위태백(三危太白) 천부인 세 개
환웅이 거느리고 내려온 삼천 명의 무리 그리고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隕붊)…끝없는 삼 자 행렬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중요한 것은 쑥과 마늘을 먹고 기(忌)한 끝에 삼칠(三七)일 만에 인간이 된 웅녀의 이야기이다.
삼칠일이란 3에 7을 곱한 수로 21일이라는 뜻이다. 시간도 삼을 단위로 쪼개어 기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산모들은 아이를 낳으면 금줄을 치고 삼칠일을 기한다.
한국의 국기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지만 일상생활 속의 부채에는 삼태극 모양이 그려진다.
세계에 널리 알려진 서울올림픽 엠블럼도 삼태극이 아닌가.
서양에서 기독교가 들어와도 낯설지가 않다. 삼위일체의 그 교리는 우리가 먼저 안다.
한글 창제원리도 하늘 땅 사람 셋을 중심으로 삼았고 간장 고추장 된장의 3장은 민족음식문화의 기초다.
같은 노리개를 만들어도 `이작'이나 `오작'이 아니라 `삼작' 노리개로만든다.
3은 저 혼자 쓰이는 것만은 아니다. 3이 3번 반복돼 9를 이루면서 강한 뜻을 나타낸다.
서말 서되 서홉으로 쌀을 준비하는 마을굿에서는 3의 의미가 한결 강해진다.
아홉수라고 하여 29살에 결혼을 피한다는관념 속에는 이미 삼재라고 하는 액이
3번 반복된 마지막 해라는 계산법이 숨겨져 있다.
삼현육각.삼정승 육판서처럼 3과 3의 배수인 6이 결합되어 강조되기도 한다.
3은 양수(양수)이고 길한 숫자인 탓이다.
양수가 겹쳐진 삼월 삼짓날(3월3일) 따위를 길일로 친 것도 반복의 원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3이 완성.최고.안정.신성.종합성 따위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만 3을 중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서양의삼위일체 삼각형구도도 완성-안정을 뜻한다.
우리 한민족에겐 `3번'하던 고시레처럼 극히 원초적인 수 관념들도 있다.
신화시대 또는 신화의 전승체인 무속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3의 원초성이 보인다.
단군신화의 천부인 3개, 무리 3천명 풍백.우사.운사, 삼칠일간(21일)의 금기,
환인 환웅 단군의 `3대'(삼대)로 이루어지는 삼신체계는 고대 서사문학의 원형이다.
해모수 동명왕 유리왕으로 이어진 부여족의 3대도 마찬가지다.
구월산에 삼신을 제사하는 삼성사가 있고 곳곳에 삼신산이 퍼져 있는 것도 신화시대의 산물이다.
민족의 탄생을 장식하던 삼신은 그대로 민족 구성원의 개개인의 탄생으로 이어져서
아기 낳는 안방의 신이 되었다. 삼신 할머니가 그것이다.
삼줄'(탯줄)을 끊고 나오면 밥과 국 세그릇을 바치며 `삼칠일'간의금기를 행한다.
아기가 클 때까지 삼신이 도와준다고 믿어 `삼신바가지' `삼신주머니' 따위로 모신다.
사람들은 3을 민중적 세계관을 관철시키는 것으로도 사용했다.`삼재수'가 그것이다.
오늘날은 개인적 액막이 정도로만 축소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나 잘못된 것이다.
`큰삼재'라 하여 불 물 바람의 재액을 일컬었고, `작은 삼재'로는 역병 굶주림 병난 따위를 꼽았다.
3은 다수, 창조력, 성장, 이원성을 극복한 전진운동, 표현, 통합을 뜻한다.
3은 '모두'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는 최초의 숫자이며 처음과 중간과 끝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전체를 나타내는 숫자다. 3의 힘은 보편적이며 하늘 땅 바다로 이루어지는 세계의 3중성을 나타낸다.
또한 인간의 육체 혼 영, 탄생·삶·죽음, 처음·중간·끝, 과거·현재·미래, 달의 세 가지 상(초승달, 반달, 보름달)을 나타낸다.
3은 천계의 숫자다.4가 육체를 나타내는 데 비해 3은 영혼을 상징한다.
3·7관념은 민족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면서 여러 흔적을 남겼다.
고구려의 문화유산이자 세계의 문화유산인 장군총도 바로 3·7관념을 반영하여 축조했다.
장군총의 맨 아래 계단을 상대석으로 보면 장군총은 3개씩의 계단을 가진 7층 구조로 만들어졌다.
이는 단군신화에서부터 등장하는 3·7 개념을 구조화한 것이다.
단군신화에 보면 웅녀는 환웅이 준 마늘 20개와 쑥 한 단을 먹고 굴에서 3·7일(21일)만에 사람이 되어 소원을 성취한다.
장군총의 구조도 3·7구조, 21계단으로 꾸몄다.
이로 보아 장군총은 단군 이래의 정신문화를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속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3·7일 동안 금줄을 달아서 외인의 출입을 금했다든지,
민족종교인 천도교의 3·7자 주문(呪文) 같은 것은 한민족이 이어온 3·7문화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7일 동안 금줄을 다는 것은 이 기간이 무사히 지나야
아이가 비로소 제대로 사람 꼴을 갖춘다고 하는 측면에서 일종의 변화의 완성과 관계가 있다.
동학의 주문도 그것을 암송하여 깨달음을 얻어서 변화를 완성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웅녀가 곰에서 사람으로 변화한 것과 같은 원리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수행에 있어서도 3·7관념이 반영되어 있다.
경덕왕 시기의 진표율사는 금산수에 있는 순제법사의 명으로
경덕왕 19년에 변산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서 미륵상 앞에서 3년 동안 계법을 구했으나
수기(受記)를 받지 못한다. 그러자 그는 다시 발원한 후 3·7일간 수행하였더니 지장보살이 가사와 바릿대를 준다.
다시 수행한지 3·7일 만에 천안통을 얻어서 도솔천 무리들이 오는 광경을 보았다고 한다.
3과 7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을 담고 있을까?
먼저 3수는 세계문화사에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삼계설, 즉 천상과 지상과 지하 세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7은 하늘의 중심에 있는 별인 칠성과 관련된 수이다. 우리 민속에서 칠성은 생명을 주관하는 별이다.
무덤에 칠성판을 놓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하는 것은 바로 생명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칠성신앙의 뿌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신석기 문화와 관련 있을 개연성이 높다.
7이라는 숫자는 각종 수메르 신화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성수(聖數)로 사용된다.
저명한 종교학자인 엘리아데도 하늘을 중층 구조로 보는 사유 체계 특히 7층으로 구별하는 관습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보이는 것이라 지적했다.
이때 하늘을 7층으로 구분하는 사유도 북두칠성의 일곱 별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장군총은 바로 유라시아 문명사에 보이는 세계산 혹은 세계수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즉 3·7구조로 된 장군총은 천상과 지상과 지하를 수직으로 잇고 있으며,
그 천상의 정점에 북두칠성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 무덤을 통해서 피장자는 세계의 중심 통로를 통해 생명의 고향인 북두칠성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 북쪽에 신전을 만들고 파라오의 조각상을 만들어 북쪽으로 세우고
그의 눈이 북극성을 향하도록 했다. 이는 북극성에 파라오의 형제가 머물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방의 파라오인 고구려 왕도 북극성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도교 삼재는 천 지 인을 가리킨다. 3은 모든 것을 둘로 나누면 중심이 남는 최초의 강한 숫자다.
3은 양. 길함을 뜻하며 다수를 상징한다. 마오리 족 창조신인 큰영은 태양 달 대지의 삼위일체 신이다.
또한 자연의 신 즉 과거·현재·미래의 신이기도 하다. 3은 세워진 세 개의 손가락으로 상징되는 정신·인격·체격이다.
중국 3은 성스러움 길(吉)한 숫자 가장 작은 홀수이다. 달에 사는 두꺼비 혹은 태양에 사는 새는 다리가 세 개다.
7은 대우주를 나타내는 숫자다. 완전, 전체성의 뜻이다.
3은 하늘과 혼을, 4는 대지와 육체를 나타내기 때문에,
7은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덧없음을 모두 포함하는 제일 작은 숫자다.
7은 완성, 보증, 무사, 안식, 풍부, 재통합, 종합 등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리고 처녀성과 '태모'를 나타내는 숫자다.
7과 연관되는 것으로는 우주의 7단계, 일곱 개의 하늘, 일곱층의 지옥,
7개의 행성과 그 행성이 나타내는 금속들(달은 은 수성은 수은 금성은 동 태양은 금 화성은 철
목성은 주석 토성은 납)이 있다. 우주의 일곱 개의 원 태양의 일곱가지 광선 인간의 일곱시기
지혜의 일곱기둥 일곱가지 무지개색 1주일의 일곱 요일 7음계 세계의 7대 불가사의1) 등이다.
태양의 제7의 광선은 인간이 현세에서 내세로 가는 길이다. 단식과 회개는 7일간 행한다.
7은 매우 중요한 숫자다.
동서양을 떠나 우주자연에서 7이라는 숫자를 떠올릴 수 있는 대상으로는 먼저 북두칠성을 꼽게 된다.
옛사람들은 북두칠성의 자루부분(建)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12달이 순차적으로 오고감을 발견했다. 북두칠성이 1월에는 인(寅)에 해당하는 방위를
12월에는 축(丑)에 해당하는 방위를 가리키면서 12지(支)가 1년에 한바퀴 도는 것을 끝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늘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은
1년 어느 때라도 볼 수 있는 북두칠성이 곧 하늘을 상징하고 나아가 천체기상을 다루는 신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관념은 후일 칠성신앙(七星信仰)으로까지 발전했다.
또한 한 달보다 작고 하루보다 큰 시간개념이 필요했던 고대인들에게 일주일은 처음부터 7일이 아니라
4일에서 10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기가 존재했다.
7일로 정착된 배경은 망원경이 나오기 전까지 인류는 하늘에 별과 지구를 제외하고
해.달.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라는 7개의 천체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주일의 기준으로 삼고 각 천체의 이름을 대입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 데 걸리는 공전주기는 약 28일로,
7일이 네 번 모여 28일이라는 음력 한 달을 만들어낸다고 본 것은
동서양에서 역법이 싹트던 시기의 보편화된 생각이었다.
7요일의 달력체계는 일찍이 바빌로니아인들이 완성했고,
동양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일곱 천체의 이름과 7요일의 이름을 음양오행으로 구성했다.
즉, 해(日)와 달(月)이라는 음양과 불.물.나무.금속.흙이라는 오행(火水木金土)의 각 요소를 요일에 적용시킨 것이다.
이처럼 숫자 7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하늘을 이루는 근원적인 수로 여겨지게 되었고,
나아가 우주의 의미를 해명해주는 신성한 수이자 음양오행의 동양사상을 담고 있는 수로 생각되었다.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일곱 줄기 연꽃이 솟아나 갓난아기를 받쳤고,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옮긴 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사자후를 남겼다는 불전(佛傳) 역시
고대인도에서 신성시한 숫자 7의 상징성을 엿보게 한다.
베다신화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황소의 고삐 수나 태양신의 마차를 끄는 암말 수도 모두 일곱이며,
인드라는 7개의 강을 해방하여 흘러내리게 했다고 한다.
또한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관의 입도 일곱이며
제물을 묶을 일곱 기둥에 불을 지필 3×7의 나뭇단까지 7을 기준으로 계산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7년을 주기로 변화를 거듭한다고 보는 이론이 동서양에서 일찍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고대중국에서는 7이라는 주기성이 여성과 깊이 관련되었다고 보아 14살(2×7)에 초경이 시작되어
여성으로 거듭나며 49살(7×7)에 폐경이 된다고 보았다.
이는 음의 원리를 지닌 달과 여성이 7의 4배수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과도 통하는 사실이다.
초승달에서 시작해 충만한 보름달이 되었다가 다시 그믐달로 기우는 달의 주기와
여성의 생리주기가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숫자 7은 생명의 변화와 성장을 나타내는 시간리듬이었다.
좋은 것은 거듭될수록 좋듯이 7이 다시 7의 횟수만큼 반복되는 7.7일은
생명의 변화가 완성된다고 보기에 매우 적합한 수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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