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간부 그만두고 미국서 한의사 생활
환자 즐겁게 하는 간호사 보고 또 진로 바꿔
27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난향관 7층 강의실. 이 학교 간호학과 학생 40여 명이 '간호연구법' 기말고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젊은 학생들 틈에 앉은 '교수님 분위기'의 한 중년 남자도 열심히 답안지를 채워가고 있었다. 성신여대 간호학과의 '최고령 청일점' 이준헌(55)씨다.
이씨는 지난 2006년 간호사를 꿈꾸며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에 입학했다.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은 남학생도 지원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간호대학이 성신여대에 인수·합병되면서 이씨는 '여대 학생'이 됐다. 함께 공부하던 남자 '예비간호사' 17명도 이씨와 함께 성신여대 간호학과로 옮겼다. 그 뒤로는 성신여대가 간호학과에 남학생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씨는 '간호학과 최고령 청일점'이 됐다.
이씨는 '잘나가던 엘리트 샐러리맨' 출신이다. 서울대 경영학과(73학번)에 입학해 대우실업에 입사한 뒤 LG경제연구원 부장급 연구위원을 거쳐 LG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7년 전 팔순 노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를 '간호사'의 길로 이끌었다.
2001년 1월 1일 뇌졸중으로 쓰러진 노모가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인턴들만 있던 상황에서 제대로 응급처치를 못 받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씨는 "남은 인생은 생명을 살리는 데 바치자는 생각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가 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가 한의사가 됐다. 미국 사우스 베일로 대학(South Baylo University)에서 2년 과정의 한의학 코스를 마친 그는 현지에서 한의사로 일했다. 그때 만났던 한 미국인 할머니는 이씨의 인생 행로를 바꿔 놓았다.
"팔·다리 마비 증상 때문에 통원치료를 받던 할머니한테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병원에 오시라'고 했더니 '전문요양시설에서 간호사와 함께 지내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올 시간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이씨는 "그때서야 비로소 진짜 의료란 환자 곁에서 함께 웃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씨는 2006년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에 도전했고, "어렵고 아픈 사람의 곁을 지켜주고 싶다"는 이씨를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은 정원 외로 합격시켰다.
'06학번 새내기'인 이씨는 지긋한 외모 때문에 에피소드도 많았다. 교실 맨 앞 자리에 앉은 자신을 보고 '교실을 잘못 찾았나' 해서 되돌아가는 외부 초빙 강사들도 있었고, 학교 식당이나 도서관에서 교직원들조차 교수님으로 착각하고 깍듯하게 인사를 건네곤 했다. 이씨는 "내가 먼저 '교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일일이 설명을 하기도 번거로워서 그냥 웃으면서 인사에 답한다"며 활짝 웃었다.
"아내에게 미안하죠. 어느 날 좋은 직장 뛰쳐나와서 공부하겠다는 남편이 야속하겠죠. 아내도 처음엔 반대가 심했지만 이젠 든든한 응원군이 됐습니다."
내년에 졸업하는 이씨는 "일단은 내년 1월 간호사자격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1차 목표"라며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 도움의 손길이 부족한 곳에 가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