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안에서 내가 제일 부러운 집은 대구 화원의 남평 문씨네 집이다.
이집엔 옛 대한제국이 망한뒤 이땅에서 내자식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 하다가 가장 현명한 결단을 내린 영명한 조상을 둔 후손들이 살고 있다.
남평 문씨는 원나라서 목화씨를 훔쳐와 이땅의 의衣 문화에 혁명을 가져온 문익점의 후손이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훔쳐오기전에는 이땅의 민초들의 옷은 삼베였다. 목화와 삼베의 차이에 대해 현대인들의 인식은 그져 심드렁 하지만 그것은 이땅의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
삼우당 문익점이 서장관으로 원을 다녀 올때가 고려말 이었는데 곧이어 이성계의 역성 혁명이 일어 나자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그후손들이 쓰디 쓴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즉 삼우당은 이성계의 토지제도개혁에 반기를 들었다가 조준의 탄핵으로 실각 했던것 이다.
그럭저럭 살던 문익점의 후손이 화원에 터를 잡은것은 그의 18대손되는 문경호 부터다. 이 화원읍 인흥리는 원래 일연스님이 삼국유사 역대연표를 작성하기위해 11년이나 머문 인흥사가 있던 자리다. 대략 1840년 전후에 여기 들어 왔다니까 기끗해야 그들의 집 내력은 160여년. 그 양반의 텃새가 드센 영남의 한자락에서 그들은 꿋꿋이 개기開基와 문중을 중흥하는 칼날을 갈았다.
아마 여기 터를 잡은 문경호는 풍수에 남다른 조예가 있었던것 같다. 원래 인흥사는 대구 앞산 비슬산의 끝자락에 앉은 절이다. 비슬은 모두 알다 싶이 힌두어의 Visnu에 어원을 두고 있다. 이처럼 풍수적으로 복잡한 얼개를 지닌땅을 남달리 꿰둟어 보았겠다 그는 터를 잡자 벌써 천석꾼이 된다.
이땅에 천석한집이 이집 뿐이 었으랴 ! 내외가도 천석꾼 집이고 주변에 천석 부자집은 수두룩 했다. 그러나 이집엔 난세를 꿰뚫어본 문장지란 영명한 인물이 있었다.
문장지의 본명은 문영박文永撲, 1880에 태어나 1930년 까지 산 사람이다. 그는 자손들에게 돈 아닌 지혜를 물려 주기로 작심한 인물이다. 그래서 사랑방을 열고 학자들을 부르고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옛 말에 운명을 바꿀려면 책을 읽거나 적선積善을 하라고 했다. 넉넉한 인심으로 가난한 선비들을 성심 성의 껏 거두다 보니 정말 다양한 스팩트럼의 인재들이 이집을 찿아 들었다. 원래 이집은 학맥을 우리집에 달고 있었다 즉 퇴계--학봉--대산 으로 내려 가는 학맥이다. 이학맥에서 동학의 최수운 까지 생겨 났지만 문씨네는 꼭 학봉 학맥에 얽메이지는 앉고 양명학의 강화 학파나 조식의 남명학파 까지 스스럼 없이 수용했다. 그리고 책을 모으기 시작 했다.
책을 모으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광내廣內와 승명承明을 하나의 법도로 삼았다. 광내란 경전쪽을 뜻하고 승명이란 역사책 이라고 좀무리가 있지만 구분하자. 또다른 구분법은 경經, 사史,자子, 집集의 사부四部 방식인데 이집은 어떤 방식으로 따져도 아귀가 맞는다.
대한제국이 망하자 이집은 중국 남통南通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창강 김택영의 도움을 받아 상해서 책을 구해 목포로 가져와 남원을 거쳐 소달구지로 대구화원으로 날랐다. 그 들어간 돈과 책을 선별하는 안목은 타인이 감히 상상할수 없는 수준이었다. 창강은 근대 중국의 선각자 양계초와 교유하던 강화학파의 양명학자 였다. 국내의 서책도 학파에 상관않고 다 모았다. 그들은 남인의 줄기지만 노론 소론 북인들의 저술을 다 갖추었다. 하나 낙질도 없이 성심 성의 껏 모은 장서가 2만권, 만권당 이라 이름 붙였다가 70년대 정부가 문화재로 지정 하며 인수문고라 이름을 새로 하고 여기다가 후손 문태갑이 모은 현대서적 5천권을 중곡문고라 해서 보탰다 .
옛 전적 콜렉션은 압해 정丁씨들의 문고(1만권 연세대에 기탁)나 도산서원장서 (4천5백권) 우리문중 해저 바래미 종가 장서등을 알아주지만 아무리 해도 이 인수문고를 따라갈곳은 없다. 또 다른곳의 문고는 사문화 되었지만 이집의 책들은 아직 숨을 쉬고 있다. 요즘도 국내외 한국학을 하는 학자들이 찿아들고 봉제사 접빈객을 옛날 그대로 하고 있는집이다.
책을 모은다는것은 돈도 있어야지만 서지학에 대해 무얼좀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서지학에 대한 관심을 월간 아세아 편집차장을 하던 시절 이용희 교수집을 몇번 드나드며 눈 여겨 보았지만 항상 돈과 안목은 아득 했다. 미국에 있을때는 LA지역 Acres of books, Skylight books, Michael dawson gallery등 고서 전문점을 찿은적도 있지만 그저 내가 관심있는 Jew나 wine, tea 역사에 관한 책을 기웃거리다가 돌아선다. 내주머니는 항상 비어 있으니까.
Eugene C Kim 氏也 金 昌 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