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 동학혁명기념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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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간
2018. 7. 2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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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
동학혁명기념관에서 신동학을 생각한다(2)
강주영_동학혁명기념관 운영위원
5. 경천敬, 경인敬人, 경물敬物 - 사람과 자연이 모두 동포이고 형제이다
동학에는 기화氣化라는 말이 있다. 동경대전 「논학문」 13장에 “시자는 내유신령하고 외유기화하여 일세지인이 각지불이자야라.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하였다. 자신뿐 아니라 만물을 모시는 이는 스스로의 마음에 하늘을 모셨음이요, 이는 기화(해월 선생은 수운의 기화를 ‘이기理氣의 이치가 질質에 응하여 몸을 형성화’하는 것으로 풀이하였다.) 즉 만물의 운동으로서 모두 하늘에 통한다. 하여 이 존재와 마음은 하나로서 각각 짝이 되어 따로 옮기거나 떠날 수 없다.
즉 내안에 모신 한울님이 다른 이와 만물과 서로 관계 지어 운동하니 너와 나 만물은 서로 다르되 하나이다. 이때 다름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이 기화이다. 기화는 곧 협동하는 관계 작용이다.
기화는 동질적 기화同質的 氣化와 이질적 기화異質的 氣化로 말해진다. 이를 밥을 두고 말하면 자연의 은혜로 벼가 자라 쌀이 만들어지는 것은 이질적 기화요, 농사를 짓는 사람의 일은 동질적 기화이다. 동질적 기화는 같은 종끼리의 협동이요, 이질적 기화는 다른 종들끼리의 연대이다. 하여 밥상은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는 공동체이다. 자연과 사람을 서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서 말하는 이것이 서양의 그 어떤 철학이나 사상보다도 뛰어난 점이다.
해월은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을 말한다. 또 인오동포人吾同胞와 물오동포物吾同胞를 말한다. 이것이 시천주의 생활이다. 한울님과 사람과 자연을 섬기라는 뜻이다. 사람과 자연이 모두 동포이고 형제이다.
‘사람은 사람을 공경함으로서 도덕의 극치가 되지 못하고, 나아가 물物을 공경함에까지 이르러야 덕德에 합일合一될 수 있나니라. 『 천도교 창건사 제2편』
한울님을 근대의 서구 문법인 절대이성으로 말한다면 개인이 곧 절대이성이요, 절대이성이 곧 개인인 것이다. 서구에서는 절대이성과 개인의 이성이 수직적이고 그것은 각각이다. 동학에서는 각지불이, 즉 서로 다를 수 없다. 기화를 매개로 하여 수평적이다.
서구 근대 정치학의 민주와 평등에 견줄 내용이 아니다. 이미 우주적 평등이요, 우주적 인간이요, ‘나’가 있으되 그 ‘나’가 너와 다르지 않다. 서구의 개인적 이성의 근대 인간관과는 차원이 다른 우주적 인간관이다. 생태적 인간관이다. 개벽적 인간관이다. 굳이 근대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동학은 한국적인 근대 인간관이고 자연관이고 우주관이다.
6. 유무상자有無相) - 사람과 만물은 평등하게 서로 돕는다
이런 시천주, 이천식천은 생활 세계에서는 자치와 협동의 원리로 나타난다. 서학에서는 이성의 자유가 배제와 소외를 낳는 무한경쟁으로 나타난다. 동학에서는 공동체적 책임 내에서의 자유가 아닌 즉 자율, 자치, 자주로 나타난다.
동학의 포접은 종교 조직이기도 하지만 곧 생활의 협동 조직이기도 하였다. 국가에 의존하는 타력갱생 조직이 아니고 스스로 자력갱생하는 조직이다. 포접제의 조직은 중앙집중적인 조직이 아니라 자율과 자치로서 협동하고 연대하는 조직이었다. 평등한 조직이었다.
협동하고 연대하는 삶을 동학에서는 유무상자有無相資라 한다. 동학에 들면 굶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로 말하면 경제민주화요, 공유경제요, 국가에 기대는 복지가 아닌 자치복지이다. 약육강식의 경쟁과 배제가 아니고 더불어 나누며 사는 삶이다.
유생儒生이 동학을 탄압하기 위해 돌린 도남서원 통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하나같이 귀천의 차등을 두지 않으니 백정과 술장사들도 오고, 엷은 천막을 치고 남녀가 뒤섞여 있으니 홀어미와 홀아비가 찾아온다. 또 재물이 있든 없든 서로 돕기를 좋아하니 가난한 이들이 기뻐했다. - 「도남서원 통문 道南書院 通文」 일귀천이등위무별 즉도길자왕언 혼남녀이유박위설 즉원광자취언 호화재유무상자 즉빈궁자열언 一貴賤而等威無別 則屠洁者王焉 混男女以帷薄爲設 則怨曠者就焉 好貨財有無相資 則貧窮者悅焉 -
나라를 잃어 자결한 우국지사이되 양반과 사대부의 세계에 갇혀 동학을 적대시한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집강소의 동학농민군들은 존비와 귀천을 떠나 서로 호칭을 접장이라고 불렀다. 그런가 하면 서로 맞절을 하였다. 부녀자나 어린아이들을 부를 때도, 종과 상전, 백정과 양반, 평민과 벼슬아치를 가릴 것 없이 서로 접장이라 부르고 또 서로 맞절을 했다.” - 황현 『오하기문』 기법무귀천노소 개항례배읍 칭포군왈 포사접장 동몽왈 동몽접장 노주개입도 즉역호칭 其法無貴賤老少 皆抗禮拜揖 稱砲軍曰 砲士接長 童蒙曰 童蒙接長 奴主皆入道 則亦互稱接長 -
우리말에도 벗이라는 뜻의 동무가 있지만 러시아 혁명 당시에 ‘동무’(타바리쉬товарищ)는 상하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쓰이는 평등한 호칭이었다. 동학은 그보다 앞서 평등한 호칭을 썼다. / (강주영 편집자)
● 신동학의 꿈 - 다시개벽의 멋진 신세계
동학의 위대함은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연결하며 서로 존중하고 협동하고 연대하는 삶에 있습니다. 서구의 개인주의적 이성이 낳은 경쟁과 배제와는 다른 삶입니다.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자력갱생의 평등한 삶입니다. 협동과 연대로서 서로 모시고 공유하며 이런 마을들이 연합한 마을의 연합으로서의 국가가 동학의 정신입니다.
국가는 작아야 하고 마을은 커야 합니다. 부국강병이 아니고 부민강민입니다. 시장은 작고 공유는 커야 합니다. 정치는 작고 자치와 자율의 삶은 커야 합니다. 자연은 약탈되지 않고 사람을 대하듯이 해야 합니다.
민중이 스스로 관리하는 자주관리회사, 혹은 자치관리회사가 책임은 제한적이고 이익은 무제한으로 가지는 1원1표의 주식회사를 대체해 가야 합니다. 지역공동체회사, 공동번영회사, 소유주 없는 사회적 기업이 주식회사를 대체해야 합니다. 무늬만 협동조합이고 사실상은 영리기업 주식회사인 짝퉁 협동조합이 아닌 진짜 협동조합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을 위해서 기업을 운영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아닌 프롤레타리아 자신이, 민중이 국가를 대체해야 합니다. 동학의 포와 접은 생활협동조직으로 민회로 이어져야 합니다. 마을이 항상 생산하고 그로서 마을을 항상 안민하는 항산항심恒産恒心의 마을을 만들고 연대할 때 국가를 바로잡고 민중을 행복하게 하는 보국안민도 이루어집니다.
그게 가능하느냐고요? 달걀을 낳는 닭공장이 아닌 자연에서 기른 유기농 닭의 달걀을 마트가 아닌 농민에게서 조금 더 비싸더라도 사주는 마음이면 ‘다시개벽’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그런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지 않습니까?
학교급식 전문 농업협업화 단지를 만들고 교육청과 연대합시다. 노동조합은 농민과 연대하여 대형마트를 거절하고 공장의 급식과 가정의 식재료를 노농직거래로 합시다. 모든 도시계획에 도시마을 공유지와 공유건물을 만들면 가난한 이들이 해직되어도 버티고 살아낼 수 있는 방도가 있지 않겠습니까? 공유지와 공유건물이 있으면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 등의 불로소득도 잡히지 않겠습니까?
3D 출력기로 차체를 만들고 부품은 기존 자동차 회사에서 사와 만드는 초소형 공장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미국의 로컬모터스라는 회사는 작은 공장에서 3명이 첨단 수제 자동차를 만듭니다. 기술이 발전하여 이제 공장이 마을로 귀환이 가능해졌습니다. 기술의 민중적 소유입니다. 전주에 이런 마이크로 팩토리를 이 마을, 저 마을 한 100개쯤 만들면 어떨까요?
도시 한복판에 농원을 만드는 생각은 어떻습니까? 반농반도반공半農半都半工의 신개념 도시입니다. 농민이자 노동자입니다. 첨단 소공업과 농업의 결합입니다. 거대 산단을 만들겠다는 사람을 찍지 맙시다. 마을공장을 만들겠다는 사람을 찍읍시다. 학교급식을 농민과 계약 재배하겠다는, 경쟁력 있는 개인보다 협동하는 사람을 교육하는 교육감을 뽑읍시다. 군산 GM 같은 먹튀 기업 유치 말고는 아무런 대안도 없는 도지사는 찍지 맙시다.
이제 한옥마을에도 꽃이 핍니다. 다시개벽의 멋진 신세계, 신동학의 꽃이 활짝 피기를 소망합니다. / 글쓴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