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오늘은 성 금요일(Good Friday)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여섯 번째 말씀,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이 말씀이 “It is finished.” 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다 이루었으면 “It is finished.” 라고 말합니다. 조금이라도 못다한 일이 있으면 “It is not finished.”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제는 쉬기 위해서 사람이 편안하게 베개를 베는 모습으로 예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히브리서 3장, 4장에 보면 안식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는 말씀도 있고,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안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쉼입니다. 단순히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축복의 의미가 들어 있는 안식입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바쁘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행악자들과 함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그런 말씀이 나오지 않지만,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27:50)”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큰소리라는 것이 바로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다 이루었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무슨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닌 마당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특히 동양문화에서는 사람이 마지막에 잘 죽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칠복을 말해 왔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고종명(考終命)”이라는 것 아닙니까? 마지막에 잘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결코 잘 죽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불명예스럽게 행악자들과 함께 십자가 형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다 이루었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서 우리가 몇가지 고려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을 과연 어떤 기준에서 평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 기준에서 그 사람의 생을 평가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그런 평가의 예를 성경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역대상하, 열왕기상하는 좋은 예입니다. 이 책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책들입니다. 그 책 속에 왕들이 한 일이 나오고, 그 왕들에 대한 평가가 나옵니다. 아무리 권력이 많은 왕이라도 그런 기록을 마음대로 손대지 못하도록 했던 모양입니다. 그 책들 속에 나오는 평가는 아주 정확합니다. 우상숭배 했던 왕들은 다른 일 아무리 잘했어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보였던 왕들은 다른 미흡한 점이 있어도 무조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았던 왕으로 평가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살지 않고 하나님이 성경에서 보여 주신 가치 기준을 가지고 살겠다는 사람들 아닙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이 말씀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날 설교에서도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human point of view를 가지고 생각하지 않고, God’s point of view를 가지고 생각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면 안 된다고 예수님을 말렸던 베드로의 행동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잘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책망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예수님 생애와 사역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 목적을 어떻게 수행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기도하셨으며, 무엇 때문에 제자들을 부르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삶의 원동력(driving force)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이런 저런 대답을 할 수 있지만, 결국 그 대답들을 요약해 보면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은 그냥 열심히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은 죄의 문제를 피해 갈 수가 없습니다. 자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려고 할 때도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결코 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고난주간 목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신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때 그 만찬의 분위기가 어땠을까요? 결코 화기애애할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뭔가 제자들이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따라 주시면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태복음 26:27-28)”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 중에 아무도 이 말씀에 대해서 묻지 않은 것을 보면 아무도 이 말씀을 심각하게 듣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 포도주가 이 세상에서 마시는 마지막 포도주라는 것입니다. 만찬 마지막 분위기는 약간 어수선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팔아 넘길 것이라”고 유다에게 말씀하신 것을 옆에 있던 다른 제자들이 알아 듣지 못한 것을 보면 만찬 마지막 분위기는 어수선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식사를 마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늘 예수님은 식사 후에 그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찬송을 부르면서 갔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 예수님 가까이 두시고, 다른 제자들은 좀 멀리 두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매우 근심하시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여기서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예수님은 그 날 밤에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My Father, if it is possible, may this cup be taken from me. Yet not as I will, but as you will., 마태복음 26:39).” 누가복음에만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And being in anguish, he prayed more earnestly, and his sweat was like drops of blood falling to the ground., 누가복음 22:43-44).”
예수님께서 자기 생에 대한 위기와 긴장감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기도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will”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삼년 간의 공생애 속에서 추구했던 것은 그가 발견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 뜻을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예수님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어느날 하루 아침에 아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래 전부터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다시 바울 서신에서 바울이 고백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서 들어 볼까요?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But we preach Christ crucified...... It is the power and wisdom of God.고린도전서 1:23-24).
그리고, 이 말씀과 함께 다시 십자가 위에서 들려 오는 주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