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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북카페
-정병철
-아파트 단지 지하 1층에 있는 북카페에 주민들이 다시 출입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코로나19’여파로 2년 가까이 폐쇄상태에 있었다가 최근 여름이 시작되면서 다시 개방했는데 맞은편에 마련된 ‘키즈카페’와 같이 주민들이 방문하기 시작하며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아파트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을 꼼꼼히 읽던 경수는 어제 일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음을 머금었다.
그 아이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시끄러웠다. 아파트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고 나면 꼭 친구들과 북카페에 괭과리치듯 나타나 실내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실내에 누가 있든 없든 그것은 그 애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말 그대로 안하무인이었다.
심지어는 서고 코너에 별도로 마련되어 경수가 늘 이용하는, 마치 연구실의 개인용 책상처럼 아늑한 테이블까지 점령해 떠들었다. 처음에는 경수도 입에 손가락을 대어가며 주의를 몇 번 주었다. 하지만 별 소용없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매번 처음 온 날처럼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목소리로 떠들었다. 같이 온 친구들과 스마트폰으로 신나게 게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많아야 초등학교 3학년으로 보였는데 키를 보나 덩치를 보나 깡마르고 조그만 체구인데도 목소리는 웬만한 어른처럼 크게 나왔다.
한 번은 그 애가 엄마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니?”
“여기 지하야.”
“왜 집으로 곧장 오지 않아?”
“조금만 놀다 갈게. 엄마.”
“엄마가 걱정한다고 수업 마치면 바로 오라고 했어 안했어?”
“조금만 놀다 들어간다니까잉.”
“너 또 게임하려고 그러지?”
“아니야, 애들이랑 책보고 있어.”
“너 어제도 집에서 밤늦게까지 게임하다 아빠에게 혼났잖아.”
“조금만 놀다가 들어갈게.”
아이는 게임광인 것 같았다. 귀가하지 않고 걱정하는 엄마를 거짓말과 회유로 설득하는 모습에서 그 애 특유의 고집과 교활함이 엿보이기도 했다. 애와 통화하는 허스키한 음성에서 아이의 엄마는 이미 가정생활뿐만 아니라 육아에서도 지쳐서 저만치 나가떨어져 있음을 짐작케 했다. 아이는 날마다 계속되는 경수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떠들기는 멈춰지지 않았다. 결국 자리를 옮기게 했는데, 출입구 바로 옆에 마련된 테이블에 가서도 그 소란은 멈춰지지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찾아왔고 북카페는 폐쇄되었다.
건설현장 감리라는 직업은 현장이 끝나면 다음 현장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아 한동안 자리가 날 때까지 쉬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경수는 다음 달 중순에 새 현장이 나오는 관계로 당분간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북카페로 출퇴근하기로 했다. 남자란 출퇴근하는 맛이 있어야지 집안에만 계속 머물러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건설현장일로 그동안 좀체 할 수 없었던 독서와 글쓰기를 진행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북카페는 어린이용 그림책부터 시작해서 소설, 시, 수필, 여행지 소개관련 서적, 요리책, 자기계발서 등 여러 종류의 책들이 각종 서고에 꽂힌 채 필요하면 수험공부도 가능하도록 테이블도 제법 갖춰진 소규모 도서관이다.
첫 날에는 서고 사이에 조그만 아지트처럼 별도로 마련된 테이블 주변으로 젊은 주부 네 명이 둘러 앉아 큰 실을 중앙에 놓고 열심히 뭔가 짜고 있었다. 태피스트리를 만드는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아무튼 오랜만에 보는 별스러운 풍경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가방을 내려놓고 둥근 테이블 의자에 앉으며 노트북을 꺼내놓던 경수는 방금 본 그 장면을 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눈을 돌려 노트북에 뭔가 글을 쓰려고 하는데 테이블 건너 등을 돌린 채 가만히 책을 읽고 있는 중년 여자 분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아주 익숙한 모습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코로나19’로 문을 닫기 전에 이곳에서 자주 뵀던 분이다. 날마다 성실하게 같은 자리에 나와 공부를 하시는지 항상 책과 연구 자료로 보이는 서류를 펼쳐놓아 궁금증을 유발시킨 분이었다.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점심 먹으러 집으로 가는 길에 그 테이블로 가서 살짝 들여다보았다. 근처 지방 대학교에서 한때 교편을 잡았던 교수님인 모양이다. 지난 시절 발표했던 세제 체계 관련 논문과 자신의 소속, 그리고 작성자 이름이 크고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과거 자료를 재점검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경수가 생각하기에 이런 곳에서 그런 논문을 검토하시는 것은 별로 적절한 것 같지 않았다.
나중에 아내에게 물어보니 그 교수님은 아파트 자치 회장에 출마하신 경력이 있으신 분으로 출마했다가 떨어졌다고 한다. 선거기간 동안 얼굴이 알려져 이제 웬만한 아파트 주민들은 그 분을 안다고 한다. 그 교수님은 북카페에서 그런 식으로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는 경향이 농후한 것 같다며 아내도 북카페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화려한 전력을 알리는 자료를 테이블에 보란 듯 펼쳐놓고 자리를 자주 비우는 방식으로 말이다. 어느 날은 그렇게 각종 자료들로 테이블을 화려하게 채운 채 하루 종일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북카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코로나19’가 한참 성행하기 시작할 무렵 질병관리청 관계자가 텔레비전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19’ 이전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당시 그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지켜보던 경수는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어떤 위급한 상황이 닥치기에 이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인가.’ 경수는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 전반에 급격한 문화적 충격으로 말미암아 사회전체의 가치관과 행동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달라진다는 것인지, 아니면 갑작스런 지역 폐쇄로 말미암아 인적, 물적 교류나 왕래가 불가능한 고립이 장기간 이어진다는 것인지 그래서 그런 상태가 영구화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건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취업 공부하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두어 명, 경수처럼 책을 읽으러 온 머리가 하얀 장년 남자 한 명 그리고 가끔씩 지나가다 잠시 들러 서고에 꽂힌 책들을 찬찬히 둘러보다 다시 나가는 주민 등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여느 때의 북카페 풍경이었다. 경수는 마치 어디 장기간 떠났다 돌아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마땅한 테이블을 찾아 앉았고 노트북을 꺼내 글을 써나가기로 한 것이다. 한동안 머릿속에서만 구상 중이던 단편 소설이라 이 기회에 한 번 제대로 써보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시작은 쉽지 않았다.
경수는 공공장소에서 스마트폰 벨 소리가 대책 없이 울리는 것을 싫어했다. 스스로는 항상 어디든지 입실하기 전에 반드시 스마트폰을 진동으로 돌려놓는 것을 언제나 실천했다. 특히 공공장소가 도서관일 경우는 더욱 경계했다. 그리고 이 곳 북카페도 도서관은 도서관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교수가 있던 테이블에서 통화를 요구하는 스마트폰의 음악이 요란하게 울렸다. 교수는 황망한 듯 스마트폰을 들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럴 줄 알았어.’
잠시 그곳으로 눈길을 주었던 경수는 갑자기 어깨가 결려옴을 느꼈다. 오십견이 온 건가. 쉽게 되지도 않을 글을 쓰겠다고 아침부터 장시간 용을 써서 그런 지도 모른다.
‘그래, 천천히 쉬어가며 하자.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지 뭐.’
잠시 쉴 겸 인터넷으로 뉴스를 들여다보는데 황망히 나갔던 교수가 누군가를 데리고 조용히 걸어 들어온다. 웬 노인이다. 허접한 고동색 통치마에 낡아서 이젠 물이 다 빠진 베이직 루즈핏 체크 셔츠 차림이다. 이런 곳에 올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 할머니의 연신 두리번거리는 낯선 표정과 시골 아낙같은 허름한 차림새만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교수는 조용한 목소리로 뭔가 그녀에게 설명하는 것 같기도 했고 설득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 맞은편을 넌지시 보았더니 둘은 머리를 맞대고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두 손으로 잡고 읽고 있는 건지, 읽는 체 하며 그냥 들여다보고만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인네의 표정과 모습은 경수 눈에 퍽이나 우스우면서도 이상하게 보였다. 지금껏 여러 도서관을 다니며 갖은 풍경을 보아왔지만 그런 모습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 번은 중앙시립도서관의 열람실에 모녀가 같이 경수가 글을 쓰는 맞은편에 앉아 나란히 책을 읽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마치 못 올 곳을 억지로 끌려온 모양이 아닌가. 저 할머니는 세상에 나서 오늘 처음으로 도서관이라는 곳에 온 것이 틀림없다고 경수는 생각했다. 보라! 책에 시선을 모으고 집중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누가 봐도 전혀 책을 읽는 모습이 아니다. 누가 봐도 낯설게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왔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경수는 금방 이렇게 생각을 바꾼다. 아무렴 어떤가. 책을 읽으러 왔고, 남에게 방해되지 않고 앉아서 조용히 책만 읽으면 되지. 도서관은 만인에게 개방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최고 구현체가 아닌가. 신분에 관계없이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어느 때나 자유롭게 방문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토피아, 도서관이 바로 그런 곳 아닌가. 비록 단지 내 주민 편의시설이긴 하지만. 그때였다.
“야, 여기야. 우리 여기 앉아서 게임 재밌게 하자.”
조용한 실내를 가르며 겁도 없이 안하무인격으로 분위기를 흩뜨려놓는 낯익은 음성이 들린 것은. 그렇게 한 번으로 끝났으면 그래도 괜찮았을 것 같다. 아, 그래 마침내 돌아왔구나. 저 놈도 여전하구만. 아니지, 이젠 어엿한 고학년이거나 중학생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는데. 일전에 방송에서 질병관리청 관계자가 선언했던 무지막지한 발언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거지. 그럼, 사람 사는 세상이 갑자기 달라질 수야 없지. 그렇고 말고.
“야, 재미있지? 너네 엄마가 찾아도 걱정하지 말고 계속 해도 돼.”
약간 경계하듯 주위를 한 번 돌려보고는 자신을 데려온 아이 말만 듣고 스마트폰을 꺼내 든 다른 아이들은 곧바로 게임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 아이는 게임보다는 데려온 아이들에게 더 관심이 있는 듯 했다. 주의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솟아났지만 경수는 전처럼 일어나 주의를 줄 필요가 없었다. 곁에 앉아 열심히 책을 읽고 있던 머리가 허옇게 센 장년의 아저씨가 듣다 못한 듯 갑자기 짜증이 묻어난 음성으로 조용히 아이에게 타이르는 것이다.
“조용히들 하고 있어.”
목소리가 낮고 진중해서 다른 아이 같으면 지레 눈치를 채고 입을 다물고 하던 게임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슬그머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거나 둘 중의 하나일 터였다. 그렇지만 아이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다시,
“어때, 졸나 재밌지? 내일 또 오자.”
그래도 하얀 세치의 아저씨는 아직 자중하고 있었다. 물론 목소리는 처음보다 조금 톤이 올라가 있었다.
“이놈-드을, 어른들 계시니까 떠들지 마.”
그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진급했을 터이다. 하지만 경수의 눈에는 신기하게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때와 별반 달라져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게임의 종류나 수준은 전보다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았다.
“우-하하, 애들아, 여기 봐라. 내가 아론군단 놈들을 모두 물리쳤어.”
충분히 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그건 경수 생각일 지도 모른다.
“갸-, 너 이노무 새끼. 여기서 떠들지 말라고 했잖아. 여기가 너희들 놀이터야. 얼른 가방 들고 모두 나가지 못해.”
정작 놀란 건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어색한 모양새로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할머니였다. 마치 못 올 데 온 것 마냥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더니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통에 욕을 들은 아이들도 모두 가방을 들고 밖으로 휑하니 나갔다. 등을 돌린 채 가만히 있던 교수님도 슬그머니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더니 밖으로 조용히 그러나 급하게 나갔다.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정적.
‘니미럴, 어디 조용한 데 없나. 모처럼 조용히 글 좀 쓸려 했더니. 어딜 가나 세상은 모두 이 모양이지 바뀌기는 니미럴.’
경수는 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일어나 서고로 가서는 저녁에 읽을 책을 한 권 뽑아들고는 가방을 챙긴 후 밖으로 얼른 나갔다. 덕분에 ‘코로나19’후에도 세상은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쫓겨난 아이들은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북카페가 있는 복도 한 켠에 퍼질고 앉아서 아까 하던 게임을 계속 하고 있었다.
“야, 이거 졸나 재밌지.”
(2022.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