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하늘에 하얀 별로 희망을 노래하다.
강경수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2011.2/시공주니어)
양미화
강경수 작가는 원래 만화가였다. 그러다가 그림책을 그리는 작가가 되었다. 양경일씨 문하생으로 들어가 『몽키 비즈니즈』(학산문화사/2002.8)로 데뷔도 하였고, 만화 잡지 <찬스>에 연재까지 하였단다. 우리나라에서는 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저는 개그 만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법이나 싸움짱 뭐, 이런 코드를 원하는 거에요. 소년 만화 시스템에서 1년을 버텼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죠. 그렇다고 마법이나 싸움짱 뭐, 이런 코드에 맞춰서 하기도 싫었고요.”
그는 만화를 오랫동안 그려 왔지만,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목표를 상실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생활비나 벌자 하고 학습지 삽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그림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단다. 눈을 번쩍 뜨게 만든 그림책은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베르너 홀츠바르트 저, 볼프 에를부르흐 그림/ 사계절 /2008.1)와 『100만 번 산 고양이』(사노요코 글 그림/비룡소/2002.10)였다.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는 소심한 복수가 참 잘 표현되어 있었어요. 철학적이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놀라웠지요. 『100만 번 산 고양이』은 이야기가 참 감동적이었어요. 백만 번이나 살아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주제가 참 잘 표현되어 있었어요.
그림책은 뭔가 느낌이 달랐어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다, 그림도 참 좋고……. 하여튼 좋았어요. 이게 뭔지 정말 궁금해졌어요. 내가 나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내가 뭔가 말할 수 있는 장르였지요.”
그때부터 그는 혼자서 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사 모으고 글과 그림 공부를 하고 습작도 병행하였다. 하루에 10시간씩 앉아서 그림을 그리며 공부에 몰두했다고 한다. 하지만 혼자 공부하다 보니, 한계에 부딪쳤다. 같이 고민하고 같이 이야기 할 동료가 필요했다.
그러다가 ‘미루나무’라는 그림책 일러스트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다.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고, ‘미루나무’에서 전시회도 하고 작품도 만들면서 활동하게 되었다. ‘미루나무’에서 2008년에 열었던 전시회의 주제가 ‘거짓말’이었단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의 초안은 이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순조롭게 출판된 것은 아니었다. 더미를 만들어 출판사를 십여 군데 찾아다녔지만, 모두들 난색을 표했다. ‘내가 왜 그림책을 하려고 할까?’하는 회의까지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당분간 밀쳐 두었단다. 그러다가 시공주니어에서 일을 의뢰받았는데, 일을 끝내면서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보여 주었다.
“저는 이야기를 짜고 만드는 걸 좋아해요. 그동안 만들어 둔 그림책 더미가 7~8권 되거든요. 그걸 보여 주었지요.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어요. 이 그림책은 일반적인 그림책 범주에는 좀 벗어나있지요. 하지만 저는 확신이 있었어요.”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2009년 초부터 스케치를 다시 하고, 이야기를 손보았다. 그 전에 미리 더미를 완성해 놓았기 때문에 포맷은 그대로 진행하였다. 8월에 1차 원고가 나왔다. 이야기의 절반을 다시 그려서 11월에 완성했다.
“표지는 열 번은 넘게 그렸어요. 다시 그리고 다시 그리고…… 두 달 정도 그렸어요. 그랬는데 나중에 글자로 하자더군요. 표지에 맨홀 그림이 있지요? 좀 서운하기도 해서……. 함축적으로 보여 주려고 했지요.”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두 박자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왼쪽에 ‘안녕? 내 이름은 솔이야.’ 하고 오른쪽 커다란 솔이 얼굴.
책장을 넘기면 커다란 화면(왼쪽, 오른쪽)에 솔이의 그림 그리는 모습이 있고 오른쪽 상단에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솔이는…… 화가입니다.’
다음 장은 왼쪽에 ‘안녕? 내 이름은 하산이야.’ 오른쪽에 커다란 하산 얼굴.
책장을 넘기면 커다란 화면(왼쪽, 오른쪽)에 하산이 지하갱도에서 석탄을 짊어지고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이 있고, ‘키르기스스탄에 사는…… 참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키르키스탄 지하갱도에서 석탄을 나르는 하산, 인도에서 카펫을 만드는 파니어, 우간다에서 말라리아에 걸린 키잠부, 루마니아에서 맨홀에서 혼자 사는 엘레나, 아이티에서 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르네, 콩고에서 아홉 살에 전쟁터로 끌려간 칼라미를 보여 준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소리 지르거나 슬피 울지 않는다. 절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그림책 속에서 독자를 바라본다.
“저는 비장미를 주고 싶지 않았어요. 또 막 소리 지르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동정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요. 도와주어야한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면 거부감이 들 것이고,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그냥 질문을 던지는 거죠. 책을 보고 나서 무엇을 할지는 독자가 판단해야죠. 작가는 그런 부분에 관여해서는 안 돼요. 감정을 자제하고 사실을 그냥 보여 줄 뿐이에요. 제가 원하는 것은 ‘그냥 관심을 가져 주세요.’에요. 사실을 아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죠.”
그는 그림책마다 콜라주를 많이 사용한다. 『다리미야 세상을 주름 잡아라』(임정진 글, 강경수 그림/샘터/2008.3)에서 콜라주는 좌충우돌하며 자유롭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의 콜라주는 정적이고 슬프다.『잠 못 드는 밤』(강경수 글 그림/처음주니어/2011.6)의 콜라주는 신기하다. 그림책마다 콜라주는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콜라주는 미리 계산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이 있어요. 그래서 미리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그림이 그려져요. 그걸 즐기는 거죠.”
맨 처음 나오는 ‘솔이’는 강경수 작가의 분신 같다. ‘솔이’처럼 강경수 작가도 자그마하고 선도 가늘다. 목젖을 드러내고 크게 웃기보다 싱긋 웃고, 크게 또박또박 말하기보다는 작은 소리로 천천히 말한다. ‘솔이’의 성격도 그럴 것 같다. ‘솔이’가 되고 싶은 직업이 화가라는 것도 그렇다.
“글쎄요. 무의식 중에 제 분신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네요. 그저 평범한 아이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생일잔치 하는 아이를 표현했지요. 그런데 꿈이나 희망 뭐 이런 걸 넣어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서 이런 모습이 되었지요. 나중에 솔이가 충격을 받는 모습이 나와요. 제가 받은 충격도 그랬어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앞에 나왔던 아이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온다. 또 그려지지 않았던 많은 아이들도 전부 독자를 지그시 쳐다본다. 아이들은 그저 슬픈 얼굴로 바라보지만, 이 장면은 어떻게 보면 독자에게 참 부담스럽다. 작가는 앞에서 사실 그대로만 전달하겠다고 했고,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뭔가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물론 저는 아이들의 상황을 직접 본 것은 아니에요. MBC의 W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잡지 그리고 뉴스에서 자료를 모았지요. 현대판 노예나 소년병 이야기는 아직도 저를 아프게 해요.
저는 이 책을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보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그런 상황은 어른들이 만든 거니까요. 아파야 할 사람도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죠. 강한 충격을 주고 싶었어요. 외면하기 힘들게 말이죠.”
그림 4또 그 장면에는 검은 하늘에 하얀 별빛을 그린 띠가 위에 그려져 있다. 다음 장까지도 검은 하늘에, 하얀 별빛은 아래 위 띠로 이어져있다. 검은 하늘에 하얀 별빛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걸까?
“지구 하나가 놓인 장면을 추가하고 싶었어요. 배경에는 검은 하늘에 하얀 별빛이 반짝이는 우주고요. 이것은 지구촌의 문제이며, 함께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지요.”
뒷장을 넘겨 보면, ‘작은 지구를 만들어요.’라는 작가의 말이 있다. 거기에 삽화로 상자 안에 들어있는 지구본이 나온다. 넓디넓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는 지구촌이라는 마을에 사는 이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그래서 그럴까? 이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대륙의 다른 나라 아이들인데도 비슷비슷해 보인다. 친척 같기도 하고 한 형제 같기도 하다.
하얀 별은 맨 처음 솔이가 입은 티셔츠에도 그려져 있다. 작가는 어떤 희망을 보고 싶어 한 건 아닐까? 우리들 마음속의 하얀 별이 모여서 암울하기만 한 지구촌 아이들을 구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일까?
강경수 작가는 이 책으로 돈을 버는 것은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플랜코리아’에 5쇄까지 전액 기부를 하기로 했단다. 또 ‘2011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라가치상’ 이라는 딱지도 어색했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런 딱지가 있으면 한 명이라도 더 볼 테니까 하고 생각했단다.
그림 작가들은 살기가 힘들다던데 5쇄까지 기부해도 괜찮은 걸까?
“그래서 6쇄부터는 반만 기부하려고 해요. 하하. 제가 작년에 결혼했거든요. 혼자 살 때는 몰랐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좀 팍팍하네요. 지방으로 내려가려고 했더니, 지방에서는 그림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대요. 그래서 지방 사시는 분들은 서울 올 때마다 한꺼번에 그림 재료를 구입해서 내려가신다네요. 글이든 그림이든 딱 뭔가 영감이 떠오를 때 그려야 하는데 그때 그림재료가 없으면 참 난처하거든요.”
출판사도 기부를 좀 하면 좋겠는데…… 하고 슬쩍 말을 던졌다.
“출판사의 기부는 좀 다른 형태이면 좋겠어요. 단순히 돈을 기부하는 것 말고 이런 책을 많이 내주는 것으로요. 꼭 이런 책만 내라는 것은 아니고요. 다방면의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책을 내주면 어떨까요. 그림책 시장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많이 성장했지만, 아직 다 채워지지 않은 공허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까지도 메꿀 수 있게 출판사와 작가가 같이 노력했으면 해요.”
우리한테 참 괜찮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같은 그림책 작가가 생겼다. 신인 작가들은 첫 그림책을 내고 나면, 두 번째 그림책이 궁금해진다. 두 번째 그림책부터가 진짜 실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된다. 벌써 그림책을 세 권이나 냈다. 그리고 또 한 권이 출간 준비 중이다.
강경수 작가의 그림책은 그의 콜라주처럼 다양하고 예측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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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수
낙서와 공상을 좋아하며 만화에 빠져 10년간 만화를 그리다가, 지금은 어
린이책 일러스트의 매력을 알고 그림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첫 그림책 『거짓말 같은 이야
기』로 2011년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에서 논픽션 부문 라가치 상을 받았다.
양미화
일본아동문학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절뚝이의 염소><바보별><꼬마 할머니의 비밀>등이 있다. 아동문학을 공부하다가 그림책에 반해서, 그림책 공부에 푹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