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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의 결별
지은이: 구본형
출판사: 생각의 나무
마음을 열고 욕망이 흐르게 하라
부유함이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라면, 채찍을 잡는 하인노릇이라도 나는 사양하지 않을 것이
다. 그러나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마음에 드는 길을 따를 것이다. - 공자,
논어 술이
공자의 시대에도 부유함이 좋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은, 그때는
마음에 드는 길을 따르는 것이 부유함에 대한 욕망을 잊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마음에 드는 길을
걷다 보면 부유함이 따른다는 것이다. 다양함과 전문성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회에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미 와 있는’미래는 ‘전문가들에 의해 부가 분배되는 사회’인 것
이다.
물고기처럼 생각하는 낚시꾼, 고객의 눈을 가진 사업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재구성하는 예술
가들은 모두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욕망에 따라 자신의 시간을 그곳에 쏟아 붓는 사람들이다. 나
는 그들을 좋아한다.
범인은 일상에 매여 평생을 산다. 일상은 우리에게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며, 기억이며, 동시에
상상력의 테두리이다. 그것은 그저 ‘현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꿈이 없는 현실을 껍데기일 뿐이
다. 나는 일상을 규정하는 테두리를 넓힘으로써 내 일상의 폭과 깊이를 바꾸어갈 수 있기를 열망
한다. 열망은 마음속 깊은 곳에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욕망이 없는 삶은 이미 속세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욕망과 화해하고 대항해 싸우는 수도사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욕망을 사랑한다. 욕망만큼 강력한 모티베이션은 없다.
일상의 삶은 그것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삶이 어려운 것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다. 욕망이 죽
어가기 때문이다. 질병에 걸리는 것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다. 우리 몸 속에 이미 이
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병은 마음에 있다. 욕망을 잃은 삶은 죽은 것이다. 재미가 없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나를 위하여 이 책을 썼다. 책을 쓰는 동안, 줄곧 새벽에 깨어 있었
다. 새벽은 우리가 늘상 보아온 낮의 세상과는 아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화장을 지운 속살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줄을 쳐가며 책을 읽었다. 한꺼번에 여러 페이지를 몰아쳐가기도 했지만, 한
문장을 갖고 여러 번 고치기도 했다. 나는 시간을 ‘소모’했고, 이 아낌없는 낭비를 즐겼다. 쫓
기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은 괜찮은 일이었다.
이 책의 일관된 주제는 ‘바꾼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혁명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동양에 대한 서구의 우월적 지위가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혁명이라는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후 직장에서 ‘변화와 조직의 개혁’이라는 주제를 벌써 13년동안 끌어안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변화 관리 전문가’라는 틀에 넣고 보려고 한다. 12년째 되는 해에 변화와
개혁을 나로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일상 속에서 나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시각을 바꾸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바꾸고, 행동을 바꿈으로써 지리한 내 일상을 바꾸고 싶었다. 비로소 나는 변
화를 관리한다는 것이 매우 낡은 사고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개혁은 변화에 대응하는 적극적 방법이다. 그것은 변화를 창조함으로써 가장 강력하게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가장 확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법은 바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창조의 힘은 욕망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욕망은 관리되어서는 안된다. 관리된 욕망은 이미 욕망
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창에 갇힌 호랑이는 이미 맹수가 아닌 것과 같다. 그것은 이미 야생력을
상실하였다. 자기를 몰아치는 폭발력이 없다.
욕망은 깊고 깊은 곳에 있다. 스스로도 움켜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숨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소망이나 충동이 아니다. 너무나 절실하여 우리를 행동으로 내모는 그런 것이다. 욕망을 가진 사
람은 오랜 시간 동안 시간을 그것에 쓴다.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기도 하고, 자존심을 굽
힐 줄도 안다.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그 일에 말할 수 없는 정열을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관점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
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잘못된 깨달음으로 우리를 몰아간
것은, 우리를 기존의 체제에 묶어두고 통제하고 싶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이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때때로 우리 부모의 모습으로, 선생의 얼굴로, 직장 상사의 이름으로, 그리고 친구의 한
숨 섞인 충고로 우리를 설득시켜 왔다.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은 어쩌면 지금까지는 그런 대로
무난한 처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가족을 위해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더라도 직장에서 내몰리고
있다. IMF의 시기이기 때문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의 노동은 더 이상 중요한 생산 요소가 아
닌 사회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기업이 마지막까지 잡아두려고 하는 사람
들은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욕망이 그들을 한 길로 달려오게 했고, 결국 스스로를 전문
가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기업으로부터의 수요는 어려운 시절에도 보다 좋은 직장을 선택할 수 있
는 기회를 준다. 그들은 기업의 직원으로 머무는 대신, 그곳으로부터 나와 자신의 전문성을 요구
하는 잠재적 고객을 찾아내어 스스로의 사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들은 직장보다는 고객을 생각
하는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간다는 점에 있다. ‘자유 경쟁’이라는 기본적 규칙 안에서의 승리가, 이 경쟁에 참
가한 다른 사람의 불행과 탈락에 의해서가 아니라 솔직한 욕망에 따른 끊임없는 자기 개혁이 가
져다 준 힘에 의해 주도될 때,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이라는 기업 진화론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하고 싶고, 잘하는 일에 시간과 힘을 집중할수록, 더욱더 다른 사람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바로
휴먼 네트가 중요해진다. 이때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모델이 가능해진다.
절실한 욕망은 그러므로 흐르는 대로 놓아두어야 한다. 깊은 내부로부터 흘러나와 감동으로 휘
몰아치는 욕망을 받아들임으로써 자랑스러운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다시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회귀는 바로 일상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모든 시간을 그것에 소모해야 한다.
인생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 자신의 삶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말할 수 있
게 된다.
1998년 4월
구본형
제1장 불타는 갑판
앤디 모칸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그순간,
‘불타는 갑판’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곧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확실한 죽음’으로부터
‘죽을지도 모르는 가능한 삶’으로의 선택이었다.
앤디 모칸
1998년 7월, 영국 스코틀랜드 근해 북해 유전에서 석유 시추선이 폭발하여 168명의 목숨이 희
생된 사고가 발생하였다. 앤디 모칸은 지옥 같은 그곳에서 기적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
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가 한참 잠이 들어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잠결에 들리는 엄청난 폭발음 소리에 본능적으
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불기둥이 곳곳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치솟고 있
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피할 곳이라고는 없었다.
순간 그는 배의 난간을 향해 전력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바다 역시 새어나온 기름으로 불바다
를 이루고 있었다. 그가 바다로 뛰어내린다 하더라도 길어야 30분 정도 여유가 있을 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구조되지 않는다면 살기를 포기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더욱이 배의 갑판에
서 수면까지는 거의 50미터 높이였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두려웠다.
머뭇거림도 잠시, 그는 불꽃이 일렁이는 차가운 북해의 파도 속으로 몸을 던졌다.
무엇이 앤디 모칸을 바다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었을까? 그가 운이 좋았던 것일까? 배에 남아
있다가 목숨을 잃은 168명은 왜 바다로 뛰어들지 않았을까? 168명 모두가 용기가 없었거나 운이
나빴던 것일까?
앤디 모칸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그 순간, ‘불타는 갑판’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곧 죽음
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확
실한 죽음’으로부터 ‘죽을지도 모르는 가능한 삶’으로의 선택이었다.
우리의 삶 역시 때때로 그 선택에 따라 모양새를 달리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이 되
기 위해서는 현재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안목과 올바른 인식이 필수적이다. 개인에게도 그렇고,
조직에게도 그렇고,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현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
다 올바른 정보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인가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될 때 그것은 정
보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부분적으로는 옳은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보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판단을 그르칠 때가 더 많다. 특히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오류를 범하는 일을 종종 보게 된다.
정부가 경제 위기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단적인 예
가 되겠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된 계기가 된 외채 누적과 부실 금융에 대해서 우려하
는 목소리가 그 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국민 경제의 고도 성장은 금융 산업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극단적인 평가까지 터져나왔다. 그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부 개혁은 늦춰졌
으며, 금융개혁위원회를 만들어놓고서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한보와 기아의 부도는 국내 기업의 신용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미 1997년 상반기부터
기업의 매출이 떨어지고 판매 대금의 회수가 어려웠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는 경제 지표가 나쁘
다고만 볼 수 없고, 지금의 고비를 어떻게든 넘기기만 하면 된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었
다.
정부는 외환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외화확충방안을 논의하는 와중에도 종금사들을 위해 외화
10억 달러와 1조 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물가에 미치는 악영향을 감수하고서라
도 외환 위기의 주범인 부실 종금사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외환 보유고는 240억 달러 규모에 불과했다. 하지만 외환 시장은 정부의 조치를 비웃기
라도 하듯 170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정부는 가지고 있던 많은 정보들
중 결국 믿고 싶었던 것만을 믿었고, 결과적으로 시장을 오판했던 것이다.
정보 그 자체도 때로는 정보 제공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위적으로 축소하고, 왜곡하고, 과
장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뉴스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미국의 상업 방송의 행태가 그렇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내용을 과장 확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은밀한 여운을 남기고 슬쩍
흘림으로써 사실을 극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정보 제공자의 의도가 정보 자체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수회 신부인 제이콥 로가 번역한 「인체 해부학」이 중국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의 이야기이
다. 과거 중국인들은 심장은 인체의 오른쪽에 있고 간장은 왼쪽에 있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런
데 한 중국인 유학자가 우연히 그 책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심장은 왼쪽에 간장은 오른쪽에
그려져 있었다.
이 중국인은 그것을 보고 서양인은 신체의 내부 구조가 동양인과는 다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서양인은 신체의 외부적 특성이 동양인과 다르고, 생각과 믿음도 다르다고 믿게 되었다.
이 유학자의 직관은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체의 외모가 다르다면,
내장이라고 다르지 말란 법이 있단 말인가?
올바른 판단을 그러므로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과 같은 것이다. 앤
디 모칸은 현실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변화에 대응하여, 불타는 갑판에서 자신의 목숨을 건진 좋
은 예라 하겠다.
많은 기업이 변화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에 성공한 기업은 드물다. 모든 기업이 성장과
번영을 꿈꾸지만, 정말 그렇게 된 기업은 불타는 석유 시추선에서 살아난 앤디 모칸처럼 드문 사
례에 불과하다.
현재를 ‘불타는 갑판’으로 규정하고, ‘여기 그대로 남아 있으면’죽고 말 것이라는 절박한
인식을 가지고 있던 기업은 얼마나 되었던가? 만일 그러한 기업이 있었다면, IMF는 오히려 기회
의 시기일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지루한 일상 속에서 변화를 꿈꾸어왔지만,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
낸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얼마 전까지도 가벼운 일상의 변화를 찾아 주말에 식구들과 함께 주말
여행을 가고, 가끔 외식을 할 수도 있었다.
이제는 그것이 사치라고 말한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자고 한다. 사람들은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내몰리고 있다. ‘삶의 질’이라는 OECD의 화두는 ‘생존의 문제’라는 1970년대의 배고픔으로
바뀌고 말았다.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그 개연성을 인도네시아의 추
이를 통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불타는 갑판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경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소리를 들었다. ‘모라토리엄
’이라는 낯설고 기분 나쁜 단어가 신문에 등장하고, 국민은 최악의 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연쇄 부도의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고, 같은 아파트에 살던 잘
살던 이웃은 어느 날, 짐을 놓아둔 채 가족을 데리고 야반 도주를 하였다. 월급쟁이는 대량 실업
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이 자기가 아니기만을 바라고 있다. 사재기
라는 정신없는 행태가 빚어진 것은 국민 모두 정말 정신이 홀딱 빠졌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무능한 정부는 국민을 건강하게 만들 수 없다. 그리고 병든 국민은 건강한 정부를 만들어낼 수
없다. 국민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정치적 유착을 통해 이권을 따내는 것을 경영의 노하
우로 알고 있던 전문성 없는 경영인들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IMF 시대는 무
능한 정부와 방만한 기업, 그리고 분수를 모르는 일부의 국민이 함께 만들어놓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었다.
IMF의 구제 금융 조치 이후, 우리 경제가 언제 회복될는지는 아무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더
욱이 IMF는 우리 나라 위기에 대해 항구적은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기금의 본질적인
역할은 일종의 구멍메우기 대출, 즉 부채를 상환하는 데 필요한 돈을 수출을 통해 충분히 벌어들
일 수 없는 국가에 대출을 시행해주는 은행 역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1975년과 1976년 사이에 오일쇼크 여파로 파운드화가 폭락했지만, 그것이 수출에 긍정
적인 효과를 미칠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고, 수입 가격의 상승으로 생계비를 가중시켰다. 결국
통화기금의 권고대로 공공 지출 부문을 삭감하고 임금과 가격을 통제했다.
IMF 권고는 이미 그때 상당한 악평을 얻고 있었다. 상당한 고통이 뒤따랐지만 영국에는 북해
유전이 있었다. 유전이 예상보다 빨리 분출되지 외국인들이 투자를 다시 시작했고, 영국인들은 파
운드화로 달러를 사 모으는 것을 중지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뜻하지 않았던 금광이 새로 발견되었다. 금 모으기에 나선 일반 국민들이 바
로 그렇다. 하지만 이 금광은 애국심이라는 눈물 속에 섞인, 매장량이 빈약한 금광에 지나지 않는
다. 외국인들의 투자를 유인하기에는 충분한 것이 되지 못한다.
국가의 경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구제 금융으로 치유할 수 없는 근본적 원인을 한국
경제가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기를 앞당긴 것은 정부이며, 태풍에 대한 준비 없이 일을 당하게
만든 것도 정부의 무능력과 국가 관리 태만에서 기인한다.
정부는 우리의 외채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보다 좋은 조건으로 외화를 빌릴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모든 빗장은 풀려버렸고, 외국의 경제적 요구에 무조건 항복
하고 말았다. 한국의 모라토리엄을 바라는 나라는 감정적으로 적대적인 일부의 나라 정도에 불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들은 한국이 자국의 국익에 충실한 경제 시장으로 변하기를 바
란다. 한국은 무장 해제 상태에서 그들의 요구에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은
정부의 잘못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상황에 책임이 있는 것은 경제의 기본 주체인 기어에게 있다.
기업인들은 부채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팽창주의는 재벌의 사업 영역 확장으로 이어졌고, 돈이 될
만한 모든 영역에 비전문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경영은 그저 탐욕에 지나지 않았고, 불투명한 자금에 의한 정경유착에 따라 국가의 이권이 나
뉘어져갔다. 새로운 경영 기법과 기술 개발에의 투자는 당장 돈이 될 수 있는 단기적 사업에게
언제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국민의 생계를 담보로 잡은 재벌들은 빌린 돈을 부동산에 쏟아 부었고, 빚의 상환을 요구받을
때마다 새로운 신규 사업 계획을 벌여 새로운 대출을 늘여갔다. 객관적인 신용 평가에 의해 대출
을 결정할 수 없었던 은행에는 회수할 수 없는 부실 채권이 쌓여갔다.
상호 지급 보증의 관계로 이어진 각 계열사들을 거느린 재벌의 선단 경영은 어려운 시절, 최악
의 구조적 결함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실화되어 망하게 된 한 계열 기업의 몰락은 상호 지급 관
계에 있는 다른 계열사의 몰락을 몰고왔고, 이것은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지금 한국은
최악의 시나리오 속에 들어와 있다.
일부 국민 또한 비난을 모면하기 어렵다. 그 예를 들면 낯이 뜨겁다. 한국에서 골프 한 번을 치
려면 1인당 15만원 내외가 든다. 불과 얼마전, IMF 시기 이전의 환율로 200불 가까운 돈을 지불
하고 골프를 즐기는 국민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1인당 국민 소득 기준으로 그 당시 미국은 우리보다 세 배쯤 잘살고 있었다. 그들은 불과 20불
내외로 얼마든지 골프를 치며 하루를 즐길 수 있다. 골프와 연관하여 볼 때, 결국 우리는 적어도
미국에 비교하여 30배 이상의 분수없는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유행이었다.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직원도, 슈퍼마켓 주인도, 동네
이발소 아저씨도, 목욕탕 집 주인도, 너도나도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경제 활동 분야에서 비교
적 빗겨 서 있는 주부들도 남편을 따라 골프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무데서나, 심지어는 동남
아 출신의 가난한 외국 근로자를 둔 사업장에서조차, 일과 시간에 사람들 보는 데서 골프 스윙을
해보는 경박한 사람들이 늘어갔다.
외국인들의 눈으로 볼 때, 부지런하지만 가족을 제외한 이웃들에게는 인색한 한국인들의 얼굴
에, 이제 가난을 벗어나 잘 나가게 된 사람들의 거만하고 비웃는 듯한 속물의 표정이 어리고 있
었다.
이러한 유행은 청소년들에게로 확대되었다. 거리를 한 번 보라. 언제부터인지 배낭을 메고 다니
는 것이 보편적인 청소년들의 유행이 되어 있었고 그들이 메고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배
낭 중의 절반 이상이 이스트 팩이나 쟌 스포트라는 미국 수입 상품이다. 우리 아이도 두 개나 가
지고 있다. 하나는 학년을 마칠 때 그 아이가 원해서 사주었고 하나는 선물받은 것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그 짧은 1-2년의 시간에 이 두 가지 상표의 배낭이 청소년
들의 절반 이상을 매혹시킬 수 있었을까? 그리고 개성의 다양성을 소리 높이 외쳐온 우리의 청소
년들이 어찌하여 스스로 똑같은 상표의 가방을 메고 다녀야만 마음이 놓이는 몰개성적 집단주의
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부모가 잘못하지 않은 청소년의 문제는 없다. 그들 또한 어른들로부터 껍데기뿐인 물질적 욕망
과 분수를 모르는 너도나도 식의 피상적 신분 상승의 허영을 물려받았던 것이다.
한때 기업의 중추였고 국가 기반의 초석이었던 사람들은 직장에서 밀려나와 지하도에서 밤을
새우고 양복을 입은 채 북한산 자락을 헤매고 있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강도질을 하다가 잡힌 부부 빚에 쪼들려 부모의 묘소가 있는 곳에서 아이들
을 농약 먹여 죽이고 자신들도 목을 매어 자살해버린 부부의 일들은 부모들조차 자식에 대한 책
임을 망각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어린 중학생들이 아버지의 실적을 비관하여 함께
손잡고 투신하기도 한다.
이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신문과 뉴스는 거의 매일 이런 절박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 도덕 불
감증과 함께 자식과 삶에 대한 책임의 기피마져 만연해가고 있는 것이다. IMF 시기는 사회 병리
적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직 IMF시기의 조정 작업에 따른 한파가 본격적으로 다가오지도 않은 상태이다. 무역
수지가 몇 달째 흑자로 돌아서 있지만 이것은 달러/원화 환율 조정에 따른 가격 경쟁력의 결과로
보기 어렵다. 단순히 수입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미 주요 원자재의 적정 재고량이 바닥이 나가고
있다. 도산한 수출 업체가 속출하고 생산 시설을 뜯어 헐값에 수출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수출 기반을 갉아먹게 될 것이다. 그나마 수출과 수입의 불안한 조정 과정 속에서
무역 수지 정도는 올해 흑자를 기록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무역외 수지는 여전히 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다.
무역외 수지를 구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인 여행 수지는 내국인의 해외 여행이 줄어들어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지만 기타 운수 수지와 투자 수익 수지는 여전히 어쩔 수 없는 적자로 남게
될 것이다. 기타 운수 수지는 1996년에는 61억달러 1997년에는 44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어 무역
외 수지 중 가장 적자의 정도가 심한 항목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운수 관련 사회 간접 자본을 확충하고 서비스를 개선함으로써 좋아질 수 있
다. 그러나 IMF시기의 긴축 재정 아래서는 개선이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당분간 적자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 수익 수지 역시 외국인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려고 하는 마당에서 이를 줄
이기는 불가능하다.
경상 수지는 무역외 수지에서의 적자 폭이 무역 수지에서의 불안정한 흑자 폭을 넘어서 결국
적자로 기록될 것 같다. 모든 기관의 수치적 전망도 다시 쓰여져야 할 테지만 참고로 삼성 경제
연구소는 1998년도 한국의 경상 수지 적자는 3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가 역시 심각하다.IMF와의 합의선인 9퍼센트를 훨씬 넘어 최소한 10퍼센트 이상 급등할 것
으로 한국은행 관계자는 밝히고 있다. 그는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강제로 잡아
두고 있는 생산자 물가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결국 소비자 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 예로 생산자 물가는 1998년 1월-2월 현재 1997년 같은 기간대비 7.9퍼센트 급등한 반면, 소
비자 물가는 4.1퍼센트 상승하는데 그쳤기 때문에 일정 시차를 두고 생산자 물가의 인상분이 소
비자 물가에 반영되면서 물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하나는 국제 긴급 구제 금융으로부터 유입된 외국 자금과 채권 시장으로부터 들어오는 엄청
난 규모의 외자가 결국은 하반기부터 물가 상승을 주도하리라는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외자 유입
에 따른 물가 상승 압박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은 통화 안정 증권을 발행하여 시중 자금을 흡수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의 자금난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대규모도산과 대량 실업을 촉발하여 정
치적 사회적 불안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강도 높은 통화 긴축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결국 물가는 하반기부터 더욱 불안한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기업은 도산하고 실업은 대량화되었다. 근본적인 수출 기반이 무너지고 있고 물가를 잡을 수
있는 방법도 그것이 다른 분야에 미치는 역기능을 고려할 때 만만하게 써볼 수가 없다. 오래 전
부터 보이기 시작했던 도덕 불감증은 사회 전역에 걸쳐 심화되어가고 그 사회 병리 현상이 가정
에까지 침투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지금 불타는 갑판 위에 서 있는 앤디 모칸과 다를 바가
없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불바다가 아닌 곳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잠에서 덜 깨어나 있는 것 같다. 사회 저변의 도덕 불감증이 총체적으로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가 한강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붕괴된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잊고 있었다. 잊음으로써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저 다리 하나가 무너져내려 또 하나의 다리를 만듦으로써 일을 끝내고 말았다.
도덕 불감증은 IMF 시기가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던 것
이다. 아무런 근본 치유도 없이 봉합해놓은 상처가 재발한 것에 불과하다. 불과 몇 달 전의 구가
부도라는 위기를 넘기고도 우리는 지금 다시 그 긴박감을 잊고 있는 것 같다.
거리에 차가 다시 늘었다. 거의 IMF시기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육박하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
매자고 외치던 여론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 적절한 소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바꾸고 있다. 기
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돈 있는 사람들의 소비는 늘어났지만 한국 기업들을 위해 돈이 쓰여지지는
못 하는 것 같다.
한때 자제된 것 같던 수입 사치품의 수요가 늘고 다시 골프장이 붐비기 시작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은 서로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질러댈 뿐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
다. 외국의 언론은 그들의 구태의연한 힘 겨루기를 보고 어리석은 정치적 사치를 할 시간이 있는
지 반문하고 있다.
재벌의 개혁은 필요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신 가장 먼저하고 잇는 유일한 일이 함께
일해왔던 직원을 잘라내는 일이라는 비난이 점점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현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잇는가? 우리가 불타는 갑판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가? 다른 경제 주체 다른 정치적 라이벌 다른 사람이 먼저 양보하기를 기다리며 여기
이곳에 그대로 서 있어야 하는가?
빚으로 벌인 잔치는 끝났다. 대량 실업은 이제 피할 수 없고 먹고 살기는 어려워졌다. 그러나
IMF시기는 시간을 앞당기기는 했지만 그 자체가 대량 실업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실업의
가능성은 IMF시기가 아니어도 언제나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 노동의 필요성
을 줄여가기 때문이다.
생산성과 경영 혁명을 통해 기업은 전문 기술력을 보유한 최소의 핵심 직원만을 정규 직원으로
가지려고 할 것이다. 실업은 본질적으로 직장이 제공하는 일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가 사라지고 불경기가 지나가면 자연히 해결될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새로
운 기계와 정보 기술의 도움을 받은 경영 혁명은 엄청난 속도로 인간을 직장에서 몰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정치가도 이 일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다만 실업자들이 일정 기간 실업을 견딜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부당한 해고 자체를 막기 위한 법적인
제재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그저 실업이 가지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풀어보려고 애를 쓰는 것에 불과하다.
한편, 어떠한 선의의 경영인도 이 일을 저지할 수 없다. 경영자들은 사람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서는 잘 알고 있지만 고용을 창출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업은 지금 가장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경재적 현안이 되었지만 아무도 이것을 근본
적으로 막아낼 수 없다.
노조의 어떠한 결의도 이 일을 해결할 수 없다. 지금까지 노동 조합은 노동의 착취에 대항하여
싸워왔지만 이제부터는 착취당할 기회마저 없어졌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개혁은 절실히 필요했다. 여러 형태의 지표와 권고에도 불구하고 덮어두고 미뤄왔던 개혁은 결
국 강압적이고 어쩔수 없는 틀 속에서 고통스럽게 진행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은 개혁의 시
점을 묵과한 대가이며 근본적 개혁을 패해간 적당주의에 대한 가혹한 단죄이다.
삶을 찾아서
IMF가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결국 세계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자본주의적 게임의 법칙 속
으로 들어오라는 주문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 그 기업의 재무 상태와 경영 성과
를 알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식 시장은 이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경우 이 재무제표 외의 다른 요소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기업의 재무적 상
태를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다. 한 예로 다른 반계 기업에 지급 보증을 서준 것은 재무제표에 포
함되지 않는 요소이다. 그러나 지금 처럼 어려운 경우 다른 계열 회사의 부도는 곧바로 지급 보
증을 선 기업을 위험한 상태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이미 은퇴하여 조직표에 등재되지 않는 왕회장과 재벌의 기획실에서 쓰는 돈들은 어디에도 잡
히지 않는 사적 루트를 흐른다. 바로 자금의 흐름이 불투명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권고하는 개
혁의 방향은 결국 서로 이해가 가능한 세계적 경영의 원칙과 틀을 존중해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자금의 흐름이 투명해지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경영이 이루어질수 없다는 말은 전적으로 옳은
시각이다. 대기업의 개혁을 통해 반드시 이루어놓아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하나의 정형화된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정부
는 기업의 회장실과 기획 조정실을 축소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그렇게
따라가는 것은 적당치 않다. 각 기업의 특수성에 따라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부즈 알랜의 동북아 지역 회장인 빌 마이클슨은 기업 활동을 총괄하는 본사의 역할을 대체로
세 가지 형태로 나누어보고 있다. 미국의 P&G나 일본의 소니처럼 본사가 적극적으로 기업의 모
든 경영에 참여하고 조정하는 사업 단위모델이 그 하나이다.
두 번째 모델은 게열사 모델로서 각 계열사는 법적으로 독립 법인체인 경우가 많고 본사는 전
략적인 지침만을 주는 모델로서 독일의 지멘스가 이 계열에 속한다.
마지막 하나는 금융 지주 회사 모델이다. 본사는 계열사의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주로 재무 관
리에 치중한다. 실적이 저조한 기업은 매각해버리며 반대로 필요한 경우는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모델의 대표적인 예가 한슨사로 화학 공업 전매업
에너지 등 성격이 상이한 업체들을 거느리고 있다.
어느 모델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판단은 가능하지 않다.한국의 기업들 역시 그 성격에 따라
본사의 회장실과 그 기획실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IMF시기는 또한 기회의 시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법령과 제도를 바꾸고 총체적 개
혁의 역동성과 통합성을 이끌어가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경영 혁명은 또한 경영자가 혼신의 힘
을 다해 최단 시일 안에 근본적으로 이루어놓아야 할 생존의 과제이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경제가 IMF시기의 시련을 통해 건강한 구조조정을 이룩하게 되리라는 희
망을 가지고 잇는 사람은 많다. 개혁을 성공시키기에 이만큼 좋은 조건도 없다. 문제는 극복의 과
정 중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고통이며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고통분담의 형평성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거시적 관점에서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동 조합이
해결해야 할 우선적 과제이다.
실업은 결코 개인적인 문제 정도가 아니다. 일을 찾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줄 수 없을 때 경제
학적 의미의 실업이 발생한다. 이것은 사회의 결핍이며 경제적 불활성의 탓이며 기업 경쟁력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다. 따라서 실업의 분명한 우선적 책임은 정부와 기업에게 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 새롭게 갖추어진 리더십을 통해 최단 시일 안에
개혁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더 이상 기회가 없다. 어리석은 구시대의 정치적 사치를 즐기는 동안
이미 많은 기회가 떠나갔다.
기업의 개혁 역시 스피드의 문제를 안고 있다. 너무 늦다. 개혁의 속도를 우리가 정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세계 시장에서의 변화가 한국 기업의 변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다. 세계의 유수한 기업들은
이미 꽤 오래 전에 자발적으로 혁명적인 구조 조정을 마쳤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들은 모든 내수
시장을 내주고도 아직도 본질적인 개혁을 머뭇거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미시적 관점에서 당신의 가정을 구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정부도 기업도 아니
다. 그들은 그저 숫자와 지표와 협약을 만들어낼 뿐이다. 실업률이 10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줄어
들었다 하더라도 당신이 만일 아직도 실업자라면 그리고 여전히 생계를 보장하는 직장을 구할 수
없다면 이 지표가 갖는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당장 가족의 일상을 돌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서민은 일상에 매여 일생을 산다.
삶은 진지하고 생활은 여전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당신은 일상을 개혁함으로
써 비로소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변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한 아버지로서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욕망을 가진 한 개인으로서
가정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개인인 것이다. 이것은 당위론적 결론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신앙을 가진 종교인이라면 신이 당신에게 부여한 특별한 임무를 상기할 필요가 있
다. 그것은 무엇인가? 만일 당신이 무신론자이거나 당신을 받쳐줄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
신이 왜 이곳에 이런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자문해보라.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지금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적 주체에서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으로 일상을 꾸려갈 수 있는 위대한 전기를 맞고 있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견딜 수 없는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욕망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욕
망이 흐르는 대로 일상을 바꾸어가라. 하고 싶은 것을 함으로써 즐거운 전문가가 되라. 욕망만큼
강력한 자기 격려는 없다.
당신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문가의 시각으로 일상을 재구성할 수 잇는 능력
에 있다. 이것을 가치라고 부르며 21세기의 자본주의는 이것이야말로 부를 재분배할 수 있는 최
대의 생산 요소라고 부르고 있다.
좋은 낚시꾼은 물고기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훌륭한 전문가는 상식적 시각을 넘어서 보통 사
람이 볼 수 없는 숨어 있는 곳의 밝은 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하루에 적어도 두 시간 이상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라. 남의 인생을 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주인인 인생은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는 자신의 시간을 팔아 생계를 꾸려갈 수조차 없다. 노동은 더 이상 부를만들어낼 수 없
기 때문이다. 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이다. 이것이 지식 사회의 본질이
다. 그리고 욕망은 그 길로 들어서기 위한 가장 확실한 힘을 우리 속에 만들어준다.
지금은 개인에게나 기업에게나 또 정부에게나 어려운 시기이다. 어느 주체도 자기 혁명과 개혁
없이는 살아 남을 수 없다. 지금은 또한 이 일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
감스럽게도 마지막 기회이다.
어느 한 쪽도 우리가 함께 배를 타고 있다는 시각을 잃어버릴 때 공멸의 길로 가게 되어 있다.
구멍이 뚫린 반대쪽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할 때 배는 가라앉고 만다.
배는 구멍 때문에 가라앉는다. 침몰은 왼쪽 구멍과 오른쪽 구멍을 구별하지 않는다.
제2장 직장에 부는 변화의 바람
현대인은 직장을 축으로 하여 일상의 삶을 영위해왔다.
직장은 생계 수단 이상의 것이다.
그에게 인생은 자신의 직업이었다.
직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직업을 통해 공동체와 연결되고
직업을 통해 그는 하루하루를 계획할 수 있었다.
직장은 그 사람에게 특정한 역할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보람도 주었다.
직장은 인생의 의미와 질서를 부여하는 제일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므로 직장으로부터의 일탈은 본인에게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심각한 심리적 영향을 주게 될 수밖에 없다.
직장에 부는 변화의 바람
삶은 진지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언제나 조마조마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곤충과 동물의
세계는 건강한 자연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카멜레온은 주위의 환경에 따라 변한다. 애벌레들은 자신의 보호를 위해 맹금류의 눈알처럼 보
이는 문양으로 문신을 만든다.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당당한 사자가 아니라 초라하고 구부러진
등을 가진 낙타이다. 그들은 환경에 따라 변하고 자신이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와 적응은 그들에게 일상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적인 생활이다.
인간은 문명을 시작한 이래 점점 더 신체적으로 퇴화되어왔다. 그들은 기후에 적응하는 대신
항상 상온을 유지할 수 있는 가옥과 냉난방 시스템을 만들었다. 가장 문명화된 나라의 남성 정자
의 수는 이미 자연스러운 종족 보존이 불가능할 위기에 처할 만큼 줄어 들어 있다는 의학 보고가
있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유리되면서-서구인들은 자연을 극복했다고 말하지만-매우 안정적으로 생
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제는 오늘과 다르지 않고, 겨울과 여름의 기온 차이는 생존을 위협하지
못했다. 생활의 안정은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일상생활속에서 변화에 대한 연습을 할 기회가 적었다. 그리하여 변화와 적응은 힘든
일이 되고 말았다.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과거처럼 변화의 속도를 견딜 만한 시기라면
지금처럼 살아도 될 것이다. 가령 아침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퇴근하고,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회
사 내에서 직급이 올라가면서 늙어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시기는 변화와 격변의 시대이다. 직장의 성격 역시 변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IMF시기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어도, 꾸준하고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우리가 실업, 즉 직장의 상실이라는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2년 후 새로운 대통령의 말대로 한국의 구조 조정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보다 견실한 경제 구
조 속에서 경제가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동안 떠나 있던
실업자들의 일부만을 다시 끌어들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로운 많은 직업이 창출되겠지만 그것은 오직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자리일 것이다.
단순한 노동력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사회의 하층 구조 속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미래는 전문가들이 경제적 부를 분배하는 지식 사회이기 때문이다.
미래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변화의 추세를 이해한다는 것은 강력한 자기 혁명을 통
해 사회 경제적인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기초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우선 혁명적인 기술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IBM의 PC사업부에 있었던 한 영업사원은 ‘
PC 장사는 배추 장사’라고 말한다. 며칠 지나면 신선도가 떨어지는 배추처럼, 몇 개월 사이에
새로운 모델과 기종이 출시된다. 그것은 사는 순간에 밑지는 구매인 것이다. 시장에 나오는 순간
에 이미 지나간 기술이 되고 만다. 또 가상 현실은 실제보다 더 정교하고, 짜릿하고, 디즈니랜드
의 놀이 기구처럼 통제 가능하다. 통제할 수 있는 현실이란 매력적인 것이다.
기술적 혁명은 또한 인간 관계의 연결 구조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인간 상호간
의 역할과 정보의 교환 방법을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결국 기업이 사업을 하는 방식을 근본적으
로 바꾸어놓게 될 것이다.
기업은 고객과 ‘엑스트라네트’(extranet)로 연결된다. 그리고 기업 내부는 자신들의 정보의
흐름을 보호할 수 있는 ‘파이어 월’(fire wall)이 둘러쳐진 상태에서 동료들끼리 필요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인트라네트’(intranet)로 연결된다 그리고 상거래 행위는 전자거래의 형태로
점점 바뀌어갈 것이다. 기술적 변화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변화를 촉진한다. 약 200년전에 산업
혁명과 함께 시작한 ‘직장’이라는 개념은 급속하게 무너져가고 있다.
19세기에는 직장이 없어도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산과 들에 흩어져
일해온 사람들을 모아 하나의 건물안에 집어넣고, 같은 시간에 일을 시작하고, 같은 시간에 일을
마치는 공장의 출현은 그 당시 매우 불순한 사고였으며 경이로운 착상이었다.
그러나 현대인은 직장을 축으로 하여 일상의 삶을 영위해왔다. 직장은 생계의 수단 이상의 것
이다. 그에게 인생은 자신의 직업이었다. 직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직업을 통해 공동
체와 연결되고, 직업을 통해 그는 하루하루를 계획할 수 있었다.
직장은 그 사람에게 특정한 역할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보람도 주었다. 직장
은 인생의 의미와 질서를 부여하는 제일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므로 직장으로부터의 일탈은 본인
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심각한 심리적 영향을 주게 될 수밖에 없다.
최근에 명예 퇴직을 한 대기업의 중역은 ‘퇴직을 하고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심리적 측면
’이라고 말했다. ‘어느 직장에서, 무엇을 하는, 무슨 직책’을 가진 사람임을 말해주는 명함이
없이는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직장은 생계의 수단을 넘
어 자신을 나타내는 정체성의 근본이었다.
얼마 전까지 ‘평생 직장’이라는 말은 자연스러운 개념이었다. 그리고 또 얼마 전까지 조기
퇴직과 명예 퇴직은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그러나 IMF시기가 오면서 명예 퇴직은 이미 사치스
러운 개념이 되어버렸다. 한국의 기업은 퇴직자가 바친 청춘의 대가로 무엇인가를 더 얹어줄 수
있는 여력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봉급의 인상은 커녕-불과 1년 전만 해도 노조와 기업은 봉급 인상률을 놓
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매년 겪는 정례 행사였음을 기억할 것이다-하나의 일자리를 둘이서 나
누어 갖게 되는 것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이제는 아무도 평생 직장을 꿈꾸지 않는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직장
을 바꾸게 되리라는 것, 상황이 더 나빠져 갑작스러운 실업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감
하고 있다. 회사가 직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직장 보장의 의무나, 직원이 회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애사심은 이미 서로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또한 9시부터 6시까지 한 공간에 모여 근무하는 직장의 시간적, 공간적 개념이 바뀌어 가고 있
다. 한 예로 한국 IBM은 1995년부터 영업 사원을 대상으로 ‘유동 근무제’(Mobile Office)를 도
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대상이 되는 직원은 9시에 회사로 출근할 필요가 없다. 노트북 PC와 핸드
폰과 페이저 등 통신 장비를 갖춘 그들은 자신이 있는 곳을 바로 사무실로 활용할 수 있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자신의 근무 일정을 조정한다. 더 많은 시간을 고객과 함께 보낼 수 있으
며, 출근 시간의 그 엄청난 교통 정체의 비효율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반면에 그들은 동료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없으며, 사유 공간처럼 사용하던 자신의 책상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마치 호텔의 빈 방을 이용하듯 비어 있는 공간을 찾아 노트 북의 파워를 켜고,
잠시 동안의 회사 일을 보고 난 후, 다음의 일정에 따라 자리를 뜬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시애틀에 본부가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정규 근무 시간이라는 것이
없다. 일반적으로 다른 회사의 근무 시간이라고 알려져 있는 대낮에 어느 직원은 회사의 운동장
에서 아이들과 농구를 하기도 한다. 또 다른 동료가 일할 때 그는 혼자 요가를 즐기기도 한다.
회사는 24시간 직원에게 개방되어 있다. 직원들은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시
간에 근무한다. 그러나 직원의 작업성과는 철저하게 평가된다.
그들은 전통적 의미의 관리자에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팀장에게 보고한다. 만일
프로젝트의 한 팀원으로서 자기가 맡은 일을 적시에 해내지 못하면 팀 전체가 고통을 받게 된다.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직원은 그 프로젝트에서 해낸 평가를 그대로 가지고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그들에게 전통적 의미의 출세의 길이란 없다.이것은 과거 우리가 직장이라고 여기고 있
던 기존의 생각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변화의 시기에 개인과 조직은 변화와 개혁을 필요로 한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며, 미래는 이미
아주 다른 얼굴로 벌써 다가와 있다. 어제와 현재의 연장으로 미래를 인식한다는 것은 곧 실패를
의미한다. 개혁은 변화에 대한 대응의 한 방법이다.
이러한 노력은 생사를 가름하는 생존의 문제이다. 만일 변화를 이해하고 이에 맞추어 지금을
개혁하는 직업을 ‘생존의 명제’(Survival Issue)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하면 좋은 것’
(Nice to Do) 정도로 생각한다면 결코 개혁에 성공할 수 없다.
개혁은 과시하기 위해서도 안 되며, 칭송받기 위한 영웅주의로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자신의 삶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삶의 문제이다.
변화와 개혁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개인과 조직은, 1988년 북해에서 참사를 당한 168명
의 이름 속에 추가될지도 모른다.
변화의 목적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진보의 기술은 변화 속에서 질서를 보존하고, 질서 속
에서 변화를 보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변화와 질서는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서로
상호 의존적이다. 질서가 전제되지 않는 변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순전한 무질서의 상황-예를 들어 자존심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광란의 학살과 파괴의 과정을
거쳐 절망으로 끝나는 전쟁 상황 같은 것-에서는 변화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유동
상태는 변화가 아니다. 질서가 없다면 변화는 발생할 바탕을 잃고 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적 안정도 아니고 완전한 혼란도 아니다. 우리는 이들의 적절한 균
형을 통해 번영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통 피터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로 ‘혼란을 통한 번영
’이라 말할 수 있다.
바로 불과 물의 화해 같은 것이다. 거부와 파괴, 광기와 정열, 기백과 젊음은 언제나 긍정과 유
지, 평상심과 담담함, 근신과 은근함 같은 속성과 함께 있을 때 조화를 이룬다. ‘너무 많이 가지
않음’으로써 생활인으로서의 일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이 좋은 것은 잠시 일상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비장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얼마 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와 질서, 혹은 안정이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은 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면 금방 이해할 수 있
다. 비온 뒤에 자전거의 궤적을 보라. 그것은 직선 행로를 그리지 않는다. 관성에 몸을 맡기면서
도 조금씩 핸들을 틀어주어야 비로소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고 마음 먹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
다. 핸들을 힘주어 꼭 잡고 있으면 자전거는 반드시 넘어진다.
변화는 우리에게 결국 쓰러짐 없는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우리가 변화를 통해 성
장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변화를 이해하고 일상의 원리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과거의 성공은 오늘의 변화에 짐이 된다. 성공은 곧잘 우리를 도취하게 만든다. 만일 당신에게
그러한 현상이 생긴다면 하버드 대학의 테오도르 레빗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발간되자마자 미국에서 26만 5천 부가 팔려나간 그의 초기 논문 「마케팅 근시
Marketing Myopia」의 첫부분이다.
지금 강력한 위치에 있는 산업치고 왕년에 한때 성장 산업이라는 명성을 지니지 않은 산업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성장의 정점에서 이미 어두운 쇠퇴의 그림자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또 우리
가 성장의 절정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산업들도 실제로는 성장을 멈추고 있다.
이것은 시장이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 아니다. 경영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실패의 원인은 조직
의 상층부에 있다. 최근의 분석에 따르면, 회사의 모든 목표와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경영자에게
실패의 책임이 있다.
변화의 바람이 향해 가는 곳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21세기는 이미 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21세기의 특징
을 지식 사회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모호한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로버트 라이히
(Robert Reich)가 제공한 예를 들어보자.
1920년대의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원가의 85퍼센트는 생산 노동자와 자본가에 의해 투입된
것이다. 그들은 부의 배분에도 그 만큼의 할당을 받았다.
1990면대에는 이 두 집단에게 돌아가는 몫은 60퍼센트 미만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설계자, 엔지
니어, 스타일리스트, 기획가, 전략가, 금융 전문가, 최고 경영자, 변호사, 광고가, 그리고 판매자 등
에게 배분된다.
반도체 칩에 대한 부의 배분은 더 분명한 예를 제공하고 있다. 반도체 칩 가격의 3퍼센트에 해
당하는 부분은 원료와 에너지 소유자에게 배분된다. 기자재와 설비 소유자에게 할당되는 양은 5
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리고 겨우 6퍼센트 정도가 일상적인 생산 노동자에게 배분된다. 원가의 85
퍼센트 이상이, 전문화된 설계 및 엔지니어링 서비스 제공자와 특허 및 저작권 관계 전문가에게
배분된다.
전통적으로 금융 자본과 생산 수단을 장안하였던 집단은 지금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통제력
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생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노동자들도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
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전통적인 생산 요소를 소유한 집단은 부차적인 중요성을 가지
게 되었다.
앞으로는 ‘전문 지식’이라는, 새로운 생산 요소를 장악한 지식 노동자들이 새로운 사회의 부
를 장악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식 사회가 가지는 의미이다. 이들은 바로 경영자, 변호사,
회계사, 은행가, 경영 컨설턴트 및 그 밖에 기술적으로 훈련받는 사람들이며, 기업의 서비스를 조
정하고 통제하는 핵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기업들의 개혁의 방향과 틀은 다음과 같은 몇 개의 공통적 내용을 선호
한다. 이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실질적으로 장악해가기 시작하는, 이들 전문 지식인
들의 영향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 조직의 변화
전통적 의미의 피라미드 조직은 지시와 통제의 원칙에 기초한다. 이것은 매알,같은 일들이 반복
되는 19세기적 상황에서는 매우 혁명적인 조직 관리 원칙이었다. 일을 처리하는 일관된 관행과
원칙을 준수함으로써 획일적이고 일사 분란한 일의 처리가 가능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되면, 오늘은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 없게 된다. 조
직의 대응력이 매우 중요한 경쟁력이 되었다.
피라미드 조직은 이러한 새로운 요구에 부합될 수 없다. 일을 집행하기 위해 관련 부서와 상
사들로부터 22개의 동의와 결재를 받아야 한다면, 정말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로 이런 일들은 일반적으로 벌어진다. 심지어 가장 훌륭한 경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정평이
나 있는 세계적 기업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가장 적절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집단들이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리자들로부터 지시를 기다려 일을 처리하는 기존의 조직 운영
은 이들에게 더 이상 적절한 운영 체제가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
는 조직 운영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실제적으로 매우 진보적인 기업들은 피라미드 조직의 관리의 층을 줄여가는 노력을 기울여왔
다. 신입사원부터 사장까지의 관리의 층을 좁혀감으로써 의사 결정의 단계와 소요 시간을 단축하
려는 노력은, 매우 초기적 단계에서 보편적으로 볼수 있는 조치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많은 기업들이 이제는 피라미드 조직 자체를 대신할수 있는
조직적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기업을 여러 개의 사업 단위로 쪼개어 조직 활력을 더하고,
시작 대응력이 강한 ‘작은 조직’으로 만들어 가는 방법이 실험되었다. 또한 더 나아가 단위사
업 단위조직 간의 시너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이들 각자를 ‘독립적인 전체’로 묶어 통합하는
‘매트릭스 조직’(Matrix Organization)이 다시 등장하기도 하였다.
IBM의 경우 북미, 유럽, 남미, 그리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 등 4개의 지오그래피(geography)내
에 속한 150여개 국에서의 영업을 지리적으로 나누어 경영하는 대신, 13개의 산업 단위별 조직으
로 개편하였다. 그리고 각 단위 국가별로 인사, 재무, 행정, 관리 등, 조직의 ‘기본 구조’
(infrastructure)를 관장하는 국가별 사장을 두어, 이 13개의 산업별 조직이 각 나라에서 영업을
하는 것을 지원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전세계를 하나의 지구 시장으로 보는 관점에 기초한다. 예를들어 미국의
크라이슬러 자동차 회사에서 성공적으로 도입되어 성과를 보고 있는 생산 관리 시스템에 대해,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동일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 토요타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경제 발전 단계나 시장의 크기, 기술력 등은 다를 수 있으며, 시장
에 접근하는 경영 전략 또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세계를 시장으로 놓고 경쟁하기 위해
서는 최고의 효율성을 가진 시스템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다.
그렇다면 다국적 기업의 조직이 국가별 다양성에 대응할 수 있도록 관리되는 것보다는, 산업별
특성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즉 국가적 다양성
보다는 산업별 다양성에 따라 시장의 고유한 요구를 세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조직 역
시, 지리적 관리가 아닌 산업별 관리가 가능한 형태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이러한 노력들이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를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
은 과거의 피라미드 조직을 통한 지시와 통제의 운영은 빨리 극복해야 할 조직적 과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조직의 내부에 지시와 통제를 거부하고 다른 방식, 즉 자신의 전문성에 기초한
의사 결정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하고 또 촉진한다는 것을 잊
어서는 안 된다.
둘,프로세스 위주의 운영
비지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 BPR ) 이라는 말은 경영
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프로세스의 정의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경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프로세스란 말은 자주 쓰이지만, 과학적인 정의 없이 통용됨으로써 혼란을 주는 가장 대표적인
경영학 용어 중의 하나일 것이다.
프르세스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다. 웹스터 사전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작업
르로, 특히 제조과정의 연속적 작업이나 조치’를 지칭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AT&T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프로세스의 정의를 사용하고 있다. 특정 아웃풋을 만들어 내는 일련의 인풋과 부
가 가치 행위를 그 특성으로 하는 ‘일련의 상호 관련적 작업 행위’(a set of iterrelated work
activities )라고 정의하고 있다.
IBM의 정의는 보다 그럴듯하다. 프로세스는 ‘고객에게 유용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명확
하게 서류화된, 반복적이고, 측정 가능한 일련의 연속적 작업과정’(a series of definable,
repeatable and measurable tasks)으로 정의된다.
프로세스를 설명하기 위해서 서양의 전문가들이 빈번하게 예를 드는 것 중의 하나는, 집에서
직장까지 출근하는 과정을 하나의 프로세스로 이해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창동에서 여의도에 있는 회사까지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가 9시까
지 회사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아침의 어는 순간에 집을 떠나야 한다. 출근 시간에 소요되는 시간
이 출발시간을 결정한다.
출근에 소요되는 시간은 집과 회사 사이를 잇는 여러 도로망 중 어느 도로를 선택할 것인지,
그리고 어느 교통 수단을 이용할 것인지에 따라 다르다. 평창동-자하문 터널-광화문-마포-여의도
를 자가용으로 올 수도 있다. 소요시간은 평균 50분이며, 자동차의 감가 상각비를 제외하고 평균
3,000원 정도의 경비가 든다고 가정하자.
또 다른 방법의 하나는 평창동-경복궁 전철역까지 버스를 이용하고, 경복궁역에서 3호선을 타
고 오다가, 종로 3가에서 5호선으로 갈아 타고, 여의도 전철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걷는 방법이다.
평균 소요시간은 1시간이며, 경비는 1,500원이라고 가정하자.
그 외에 가능하고 실용적인 방법이 몇 가지 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평균 소요 시간이
다를 것이며, 경비도 차이가 날 것이다. 이중에서 우리는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의 출근 루트로 삼
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출근 프로세스’라고 부를수 있다.
출근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방법은 가능한 여러 가지 루트들을 조합시킴으로써 짧고, 정체가 가
장 덜한 루트를 발견하는 것이다. 소요시간은 어느 루트를 선택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출근에 소요되는 경비는 다른 시각의 생각을 필요로 한다. 즉, 어느 교통 수단을 이용하느냐에 주
로 달려 있다. 자가용일 수도 있고, 전철일 수도 있고, 택시일 수도 있고, 버스일 수도 있다. 그리
고 구간별로 나누어 섞어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소요되는 필요 경비를 계산할 수가 있다.
9시까지 회사에 도착해야 한다는 목적을 맞추기 위해서는 소요시간이 중요하다. 이것은 프로세
스의 ‘효과성’(effectiveness)을 결정한다. 바로 프로세스의 합목적성을 의미하는 요소이다. 한
편 프로세스를 수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효율성’(efficiengy)을 결정하는 재무적 요소이다.
출근 프로세스를 개선하게 될 때, 이 경우 효과성을 결정하는 소요시간의 단축 정도는 불고 일
이십분 정도의 차이를 보일 것이다. 효율성 지표인 소요 경비의 경우는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는
것이 택시를 타는 것보다 여러 배 쌀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사고를 진전시켜보자. 우리가 출근하는 이유는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일이 반드시 회사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업 사원의 경우, 회사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고객과 만나는 시간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들을 매일 아침 9시까지 회사로 불러모으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출근 자체를 안 하면 어떻게 될까? 말하자면 재택 근무 같은 것 말이다.
회사에 필요한 경우, 필요한 시간에 가도록 하고, 기본적인 일상적 업무는 집이나 고객의 사무
실에서 직접 이루어지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이 경우 출근 프로세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며, 새로운 형태의 근무 프로세스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논리적으로 소요 시간이나 소
요 경비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대의 개선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프로세스 개선과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의 차이이다. 프로세스의 리엔지니어링은,
그러므로 기존의 프로세스의 존재자체를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슘페터가 말하는 ‘창조
적 파괴’이며, 혁명의 시작이다.
좋은 프로세스란 기업의 입장에서 효과성과 효율성이 뛰어난 프로세스를 의미하여, 좋은 프로
세스를 가지고 있는 기업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뛰어난 의도된 결과를 이루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기업의 경쟁력은 프로세스의 경쟁력에 크게 좌우된다.
이러한 프로세스가 기업 혁명의 매우 중요한 개혁 단위를 이루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고객 중심 사상으로부터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모토롤라의 조지 피셔(George
Fisher)회장의 다음과 같은 말은, 왜 우리가 프로세스의 개혁에 그토록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다.
조직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내부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
해 만들어진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볼 때, 내부 조직은 아무 의미도 없을 뿐 아니라, 종종 원
활한 고객 서비스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조직 구성도는 수직적으로 그려져 있지만, 고객에게 서비
스를 제공하는 것은 수평적인 범부서적 노력이다.
프로세스는 바로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범부서적, 수평적 부가 가치 과정인 것이다.
이것이 효과적일 때, 조직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것이 효율적일 때, 조직은
재무적 성과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프로세스를 최적화시키지 못하고서는 시장의
요구에 효율적 대응을 할 수 없게 된다.
자본주의의 성공은, 마을의 장터에서 이루어지던 구체적인 물질적 교환을 그 기본적 경제 개념
으로 도입함으로써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은 참으로 단순하지만, 인간의 기본적
인 욕망에 기초한 훌륭한 메커니즘이다.
모든 사업은 시장에 의해 그 생사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시장을 무시한 채, 내부 메커니즘에 집
착하는 기업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고객의 요구가 기업 내부의 경직성과 편의주의
와 잘못된 우선 순위에 의해 묵살당해 왔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기업이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문을 닫게 되었는가?
1년 전, 나는 당시 한창 유망한 개인 통신 사업에 뚜어든 후발업체의 광고 내용에 개인적인 흥
미를 가지고 있었다. 만일 그 광고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나는 즐겨 그 회사의 고객이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 그 광고 내용은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나는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였다. 전화를 받은 사원은 매우 무뚝뚝했다. 그
리고 지금 자기들이 부서 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니 다음에 다시 전화를 하라고 했다.
나는 직업 의식이 발동하여, 왜 그들이 고객의 전화보다 자신들의 회의에 우선 순위를 두는지
반문하였다. 그 직원은 그런 것을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말했고, 그 회사의 고객이
될 생각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나는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회사는 그 후 1년 정도 동안 어느 통신 서비스 회사 못지않게 많은 고객 서비스와 파격적
가격 조건에 대한 광고를 실었다. 그리고 IMF 시기가 오자, 이 산업 분야에서 가장 먼저 부도가
난 기업이 되었다.
고객의 요구와 기대의 파악에서부터 시작하여 고객의 만족 정도를 측정하고, 그 수준과 개선책
을 다시 최초의 출발점으로 피드 인(Feed In)시켜주는 것으로 순환되는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경
영 혁명의 기본적 단위로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고객에게
보다 가까이 접근하기 위한 명백한 우선적 목표를 가지고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이 시작되지 않
으면 안 된다.
경영 활동을 조직이 아닌 프로세스로 운영하려는 노력은 기업의 전문 핵심 인력들이 자신의 전
문적 영역을 넘어 서로 협조하여 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프로세스 전체를 이해할 때, 자신이
맡은 분야와 다른 동료가 맡은 분야 사이의 관계를 규정할 수 있다.
이런 부가 가치 과정의 체계적 흐름이, 결국 고객이 열광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가는 연결
고리라는 것을 이해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자신의 일에 몰두하되 그것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항
상 고려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시장을 나누어 각각의 세분 시장별로 고객의 요구 사항을 분석하는 시장
분석 전문가는 자신의 일을 하되, 이 자료가 무엇에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 누가 이 자료를 사용
하게 될 것인지, 자료의 어떠한 내용이 마케팅 전문가들이나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것인지
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좋은 자동차 디자이너는 디자인 기술만 탁월해서는 안 된다. 시장 분석 전문가나 마케팅 전문
가가 파악한 세부 시장별 고객의 요구 사항이나 개별 고객의 최향을, 자동차라는 상품 개념 속으
로 변형시켜 넣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지만 함께 일한다. 프로세스는 서로 다른 전문가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체계적 흐름으로 바꾸어놓은, 바로 문서화된 약속인 것이다.
셋, 팀의 시너지
프로세스의 리엔지니어링이 기업의 운영 체계를 바꾸어주려는 하드웨어적 노력이라면, 팀워크
는 이 프로세스대로 작업이 실제로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프트웨어적인
힘으로 파악할 수 있다.
조직의 구조는 수직적 틀을 그 기본 유형으로 가지고 있지만, 프로세스는 본질적으로 범부서적
협력과 이해를 전제로 하는 수평적 흐름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부서간의 벽을 넘어서는 팀워크를
가정하지 않고는 운영될 수 없는 운영 모델이다.
실제로 프로세스 위주의 운영은 많은 경우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 이유는 프로세스의 개편과
더불어, 부서이 벽을 넘어 협력할 수 있도록 관리 체계의 개편이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직 내에서의 행위는 언제나 부서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범부서적 협
력이라는 새로운 가치에 입각한 조직 행위를 권장하고 고무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는 성과 측정 지표, 보상 체계를 바꾸고, 교육과 커뮤니케이션 등을 통해 조직 구성원들에 대한
지침을 명확하게 전달해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 경영자의 리더십이다. 이것은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리더십이 아니다. 카리스마도 아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자신의
산업이 종사하는, 바로 그 분야에서의 리더십이 필요하며, 고객을 위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은 기술적으로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질 수 있으나, 그 핵심은 언제나
최고 경영자가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슈바이처의 말대로 리더십의 정체는 바로 ‘
모범’인 것이다.
개인주의적 바탕 위에 서 있는 서구적 경영 체제는 개인의 업적에 따른 보상에 보다 친숙하다.
그러나 현재의 경영 혁신 방향은 이런 개인적 업적의 장점 위에 팀의 시너지를 더하고 싶어한다.
바로 범부서적 프로세스가 매일매일의 일과 속에 살아 움직여주게 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수적
이기 때문이다.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 역시 조직의 기본적 기술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수직적 전
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해가 쉬운 자동차의 예를 다시 들어보겠다. 자동차를 생산 판매하는 기업의 경우, 차를 한 대
만들어 팔기까지 여러 종류의 전문가들이 개입하게 된다. 자동차 디자인 전문가, 엔지니어, 판촉
및 광고 전문가, 특허 관련 전문가, 영업 전문가, 비용 분석 전문가 등이 하나의 팀이 되어 영업
이 이루어진다.
이들은 자동차가 디자인되어 판매되고, 사후 관리가 이루어지는 전체 영업 사이클 속에서 자신
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일관된 부가가치 프로세스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전문적 영역에 대하여 기술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한 전문가가 한 일(투
입)과 다른 전문가가 할 일(투입)을 합쳐 결합시킴으로써, 즉 여러 가지 전문 지식을 결합하여 의
도된 결과(산출)로 융합시키는 것이 바로 조직의 과업이며 기능이다.
이때 이런 상이한 전문가들을 하나의 목적을 지닌 일관된 작업의 연속적 띠로 묶어줌으로써 효
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프로세스와 팀의 개념이다. 팀은 동일한 목적
을 가진 개인의 집합이다. 팀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돕기 위해 피터 드리커식의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해 보자.
야구는 다른 어느 스포츠보다도 개인의 역할에 의존도가 높은 경기이다. 선수에게 포지션이 주
어지고 해야 할 역할이 뚜렷하며, 주어진 영역이 분명하다. 타자로서, 투수로서, 2루수로서 그의
선수로서의 가치가 비교적 정확히 계량화된다. 따라서 그가 얼마나 훌륭한 선수인지를 가름하는
개인별 성적표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LA 다저스나 해태 타이거스라는 팀속의 개인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서구적 기업은 개인 능력에 크게 의존하는 야구팀과 같았다.
한편, 축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선수들은 각자 자기의 고유 포지션을 가지고 있으나, 활동
영역이 거의 자유롭고 중복적이다. 리베로는 공격과 수비 모두에 가담한다. 골을 넣는다는 것은
언제나 멋진 일이지만, 스타 플레이어도 감독의 명령에 따라 어시스트로 만족해야 하기도 한다.
연습의 과정도 야구와는 다르다. 하나의 팀으로서 호흡을 맞추는 반복적인 집단적 연습이 거듭
된다.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팀워크라는 전체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한도 내에서 존
중된다.
축구보다 더욱 팀워크가 요구되는 게인은 복식 테니스 같은 것이다. 정해진 포지션 대신에 우
선적 위치가 주어질 뿐이다(최근에 나는 나가노 동계 올림픽을 보면서, 이 경우에 가장 적합한
예가 될 수 있는 운동으로 쇼트트랙 계주를 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타트와 라스트, 그리고 달
리는 순서 등이 정해지지만, 승리는 선수 교체가 이루어지는 순간과 개인의 질주로 이어지는 고
도의 팀워크에 의존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필수적 존재이며, 상호 의존적이다. 개별적 성과보다는 하나의 팀으로서의 시
너지가 중요하다. 이들은 함께 하나의 전체로 행동하기 위해 엄청난 자기 규제를 필요로 한다. 따
라서 이들은 하나의 팀으로서의 오랜 동안의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작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작업 자체와, 그 작업 과정에 적합한 팀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생산팀처럼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반복적인 작업이 필요한 경우에는 야구팀과
같은 팀의 운영과 관리가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나 병원의 응급 환자 처리반과 같은 서비스 기능이 중요한 업무는 축구팀,
그리고 더 나아가 복식 테니스팀과 같은 형태의 관리가 보다 효율적이다.
넷, 경영 동반자로서의 협력 업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는 GM이나 AT&T가 아니다. 맨파워
(Manpower)사라는 용역회사이다. 몇 년 전 이 기업의 총인원은 56만을 넘어서 있었다. 짐작하시
겠지만, 이 기업의 직원들은 계약에 의해 다른 회사에서 용역을 제공하는 비정규 직원으로 일한
다.
1997년, 사상 최악의 실업 사태가 우려되는 한국의 경우에도 비정규직 취업자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세계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추세가 될 것이다.
기술과 기계의 발달은 인간이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좁혀 놓았다. 엄청남 생산
성의 향상은 필요한 직원의 수를 현격하게 줄여 놓았다. 모든 현명한 경영자들은 경영 혁신을 통
해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데 일가견을 가진 사람들이다.
반면 그들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아이디어
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겨우 정치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고용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실업을 줄여 사회적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지난한 과제가 될 것이다. 대량 실
업은 불가피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기업의 경우, 핵심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직원은 어떤 경우에라도 정규 인력으로 확보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일반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재무, 관리, 인사, 비서, 총무, 생산 등의 종사
자들은 특별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세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노동 시장에서 대체 가
능한 인력들이다.
기업은 이들을 정규 직원으로 유지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비전
문 정규 직원의 수는 앞으로도 계속 줄 수밖에 없으며, 비교적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비정규 직원
의 활용이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오래도록 기업에 남기 위해서는 기업이 요구하는 핵심 기술력
을 스스로 항사 개발하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근로자들이 모두 단순 반복적인 대체적 노동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임시 계약직이지만 고도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
적인 예가 바로 컨설턴트들이다. 좋은 전문가들은 어디에서고 수요를 찾아낼 수 있다. 그들은 직
장 안에서도 견뎌낼 수 있지만, 직장을 나와서도 자신의 전문성으로 인해 고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일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용역 회사가 기업의 협력 업체로서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은 다양한 형
태의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기술력 위주의 기업은 영업력을 가지고 있
는 기업과의 제휴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협력 관계에 대한 정도의 차이에 따라, 서로 독립적인 독자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협력하는 경
우도 있지만, M&A를 통하여 하나의 기업으로 헤쳐 모이는 경우도 보다 빈번해지고 있다.
요즈음 많이 사용되고 있는 개념인 ‘아웃소싱’(outsourcing)도 이러한 협력 관계의 일환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전산실이 별도로 필요한 부서일까 질문할 수도 있다. 비싼 장비를 들여놓고, 이
를 유지 관리할 수 있는 인력을 배치하고, 거기다가 업무 효율성을 개선하고 싶을 때마다 적용
업무 개발을 위해 필요한 인력을 외부에서 사와야 한다면, 전산실을 별도로 운영하는 것이 효율
적인 일일까?
만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여 제공해줄 수
있는 믿을 만한 업체가 있다면, 그들에게 이 서비스를 맡기면 어떨까? 이러한 수요는 결국 외부
전문업체의 정보 서비스를 하나의 유망한 비즈니스로 만들어 놓았다.
다양한 형태의 협력 관계 속에서 서로가 기대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를 인식하
는 패러다임에 매우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될 것으로 생각된다. 보다 구체적인 이해를 덥기 위하
여 1995년 가을, 세계 유수의 호텔 체인 중의 한 호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소개하도록 하
겠다.
한국의 한 기업에서 주최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여섯 명의 외국인이 각자 다른 나라에서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중 세 명은 한국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담당자들은 그들
을 김포 공항에서 데려올 수 있도록 호텔측에 요청해 놓았다.
그러나 정작 아무 탈없이 호텔까지 올 수 있었던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한 명은 전혀 이 서비
스를 받지 못했다. 사전에 호텔에서 리무진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고 통보를 받았던 그는, 공항
에서 자신의 이름을 적은 피켓을 들고 기다리는 기사를 찾아 한 시간을 헤매었다.
기다리다 지친 그는 안내 데스크에서 공항 버스가 그 호텔까지 간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 버스
에 탑승하였다. 공항 버스의 정류장은 분명히 호텔 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운전 기사는 그 사람
을 호텔 앞 큰길가에서 내리게 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브라질에서 3주정도 다른 일 때문에 체류
하다가, 자기 나라에 들르지 않고 직접 한국으로 왔기 때문에 짐이 무척 많았다. 커다란 가방이
무려 세 개였다고 한다. 그는 그것들을 끌고 200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호텔에 도착했다.
다음날, 이 회의를 주관한 실무자는 호텔에 이 사실을 알려주고,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를 따졌
다. 그들은 호텔 리무진 서비스를 맡고 있는 렌트카 회사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렌트카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용역 회사에 항의했더니, 그들은 김포에서 1시간 이상을 기사가 기다렸다고 답변
했다. 그는 그 호텔의 사장에게 불만의 편지를 띄웠다. 그러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렌트카 회사
의 잘못이니 이해해달라는 요지의 회신이 왔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외국인이 두 번
다시 그 호텔에 묵지 않을 것이다. 호텔의 잘못이 아닌 렌트카 회사라는 협력 업체의 잘못에 대
한 대가는 유감스럽게도 호텔이 치르게 되어 있다. 고객에게는 누구의 잘못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기대하는 서비스를 받지 못했으며, 기왕에 일어난 실수에 대한 사과나
배려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하는 ‘하청 업체’,‘도급’,‘업자’등등의 표현은 그 속에 이미
두 기업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주종 관계 내지 상하 관계, 혹은 불평등 관
계는 앞으로 적절한 협력 관계의 틀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경영 혁신의 포인트 중의 하나는 협력 업체 사이의 관계가 ‘하나의 같은 조직’(seamless
organization)이라는 인식 아래, 새로운 협력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정립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기업의 정규 직원 외에도 협력 관계를 이루고 있는 비정규 계약직 직원, 협력 업체의 직원 모
두가 동일한 고객을 지원하는, 동일한 경영 원칙과 목표를 공유하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
료’라는 관계의 정립이 앞으로 매우 중요한 경영 과제이다.
다섯, 고객 중심 기업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기업들의 평균 수익률은 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1년에 2퍼센트씩 시장을 잃어간다. 그러나 고객을 만족시키는 기업군
들은 연평균 12퍼센트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다. 연평균 6퍼센트 정도의 시장 점유율
증가를 함께 즐긴다. 이 통계가 시실을 반영한 것이라면, 당신은 고객을 만족시키지 않고도 부자
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겠는가?
또 다른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기존의 고객을 유지하는 비용은 새로운 고객을 만드는 비용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화가 나서 떠나가 고객을 다시 단골로 만들기 위해 들
어가는 돈은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비용의 무려 11배나 소요된다고 한다.
새로운 고객을 만들어내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재미있는 보고가 있다.
저녁 7시부터 10시 사이의 황금 시간에 매일 30초짜리 TV광고를 내보낸다고 하자. 광고의 1차적
목표는 한국의 모든 시청자가 “그래, TV 광고에서 저 상품 선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라는,
극히 초보적인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가정하자.
한 광고 전문 회사의 자료에 따르면, 그 정도의 반응을 얻어내려면, 매일 한 번씩 적어도 60번
은 방영을 해야 한다고 한다. 황금 시간대에 30초짜리 광고를 내본 사람들은 이 금액이 만만찮은
것임을 잘 알 것이다.
한 고객이 보통 1회 구입 금액의 열 배에 가까운 매상을 올려준다는 것도 연구 결과 나온 통계
숫자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종종 ‘너 아니면 내가 장사를 못하랴’는 얼굴로 고객을 대하는 무
례한 종업원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낌새에 민감한 것이 사람이다. 1회
구입 금액의 열 배를 팔아주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단골 고객 각자에 대하여 정서적 친화력을
갖지 못하는 판매는 위험하다.
고객이 어느 기업과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게 되는 이유에 대한 통계 숫자도 나와 있다. 기업
과 거래하는 단골 손님 중 약 1퍼센트 정도는 사망한다. 유감스럽게도 죽은 사람은 더 이상 구매
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약 3퍼센트의 사람은 별반 특별한 이유도 없이 다른 기업의 제품을 사는
고객으로 바뀐다. 그저 기분에 따라 떠나가는 고객들이다. 5퍼센트 정도는 친지의 영향을 받아 구
매선을 바꾸게 된다.
경쟁 업체의 제품이나 구입 조건이 좋기 때문에 다른 기업의 고객으로 바뀌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30퍼센트? 혹은 40퍼센트? 그러나 실제는 이보다 훨씬 낮다. 단지 9퍼센트 정도의 고객만
이 이런 이유 때문에 단골을 바꾸게 된다.
어떤 기업이나 그 제품에 대한 불만 때문에 고객이 떠나가는 경우는 또 얼마나 될까? 이 경우
도 생각하는 것보다 낮다. 오직 14퍼센트의 고객만이 이 이유 때문에 떠난다. 그러면 도대체 68퍼
센트의 고객은 또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그 기업과의 오래된 관계를 청산하고 다른 경쟁 기업에
게 가는 것일까? ‘직원의 무관심한 태도’ 때문에 10명 중 7명 정도가 거래하던 기업을 떠난다
고 하면 믿어지겠는가? 그러나 이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68퍼센트의 고객이 일탈하는 이유는 자
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직원의 태도 때문이다.
고객의 불만이 재구매 행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우리는 조사 자료를 가지고 있다. 불만
을 가지고 있는 고객은 보통 10명 정도의 예비 고객에게 자신의 불만을 토로한다. 이들 중 5명에
한 명 꼴로 20명에게 이 불만을 전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만은 전염성이 강한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10명의 불만족 고객은 약 120명의 예비 고객
에게 기업에 불리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10명 중 80퍼센트인 8명은 평균 10
명에게 불만을 전달하기 때문에 80명의 예비 고객이 이 불만 사실을 알게 된다. 10명 중 2명은
각자 평균 20명에게 불만을 전파하기 때문에 40명의 예비 고객이 알게 된다. 결국 모두 120명의
예비 고객이 생생한 불만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이 자료와 병행하여, 불만을 가진 사람이 해당 기업의 관리자에게 이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는
불과 5퍼센트라는 자료도 주목할 만하다. 다른 예비 고객에게 전염성이 강한 불만은 오히려 기업
의 관리자에게는 매우 진귀한 정보 원천임을 알 수 있다.
불만을 가지고 있는 고객의 95퍼센트는 이를 기업의 관리자에게 알리는 대신 침묵하고, 이들
중 91퍼센트는 다시는 이 기업과 거래하려 하지 않는다. 불만을 가진 고객 중 단지 5퍼센트만이
불만을 해당 기업의 관리자에게 토로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열거해볼 수 있다.
우선 불만을 전달하기 위해 몇 가지 수고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소나 전화번호, 담당자 등을
찾아내어야 하며, 불쾌한 감정이 토로를 위해 시간을 사용해야만 한다. 전화통을 붙잡고 열을 내
야 하는 시간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아니다. 특히 이런 전화는 으레 담당자를 찾아 이리저리
몇 번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리고 아무런 해결책도 얻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불만을 기업에 전달해주는 고객은 많은 경우, 그 기업에 대해 애착을 가
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고객 불만은 매우 소중한 고객으로부터의 피드백 자료라
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고객은 경영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이 사실은,
또한 기업이 가장 잘 잊고 지내는 사실 중의 하나이다. 경영자도 직원도 내부 메커니즘에 집착하
다 보면, 고객의 입장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내부 측정 지표가 직원의 성과를 좌우하
면, 고객은 언제나 외면당한다.
어느 통신 판매 회사의 경우, 경영자는 전화가 자신들의 사업에 매우 중요한 판매 채널이라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직원들이 전화 벨이 울리면 빨리 받기를 원했다. 그 후 모든 판매
직원은 전화 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받아야 한다는 지침과 함께, 그 결과를 측정하여 개인의 업
무 성과에 반영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몇 달이 지나는 동안, 개인의 성과를 측정한 결과, 매우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의 직원이 100퍼
센트에 가까운 측정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경영자는 매우 만족했다. 이 지표가 말하는 것은, 바로
모든 직원이 전화 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재빨리 전화를 받는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장은 곧 매우 실망스러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고객으로부터 최근 서너달 동안
제품을 구입하기 위하여 전화를 할 때마다 이유없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불평을 전해듣게
되었다. 그는 왜 그런 일이 생겨났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매우 우스운 일- 그러나 경영자에게는 매우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
하게 되었다. 직원들은 세 번 전화 벨이 울리기 전에 받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
은 전화벨이 세번을 넘게 울리게 되면, 그것을 받는 대신에 수화기를 살짝 들었다가 놓아버렸다.
전화는 끊어지고, 대신 직원은 느릿느릿 이제 막 울리기 시작하는 전화기를 집어 들면 되는 것이
다.
측정지표 100퍼센트라는 완벽한 성적표를 만들어 냈지만, 고객은 이 기업과 접촉할 수 있는 지
회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 예는 하나의 우스운 사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객이 기업에게 무엇인지를 분명
히 알 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모든 평가 시스템은 이와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기업이 존재하는 한 실업의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핵심적
인 기술력을 보유한 사람은 기업을 선택할 수 있다. 혹은 자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1
인 기업을 꾸려나갈 수 있다.
대량 실업 시대의 자기 경영은 바로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은 노력
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노력이상을 의미한다.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삶은 절름발이에 불과하
다.
삶에는 어떤 흥분이 필요하다. 일상은 그저 지리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어제했던 일을 하며 평
생을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격량과 같이 사나운 지금이다. 부지런함은 미덕이지만, 무엇을 위한
부지런함인지가 더욱 중요하다. 그저 바쁜 사람은 위험에 빠진 사람이다.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영역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 또한 매우 위험하다. 단순반복적인 일로 매일을 보내고 있는 사람
역시 매우 위험하다.. 그가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가치를 만드는 사람만이 언제나 필요한 사람이다. 가치의 개념은 언제나 변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세상은 변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변화를 생활의 기본적 원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므로 매우 중요한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그 변화의 방향을 알고, 자신의 욕망
과 그것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을 매우 중요한 자기혁명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라. 기업의 경영혁명의 내용을 이해하
고 그 속에서 자기 혁명의 길을 찾아 내어야 한다. 자기 혁명은 기업에게나 개인에게나 이제 피
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두 혁명사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개혁의 출발점이다.
제3장 변화와 개혁의 적들
개혁은 항상 치명적인 급소를 노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혼돈과 혼란이라는 것이다.
변혁기의 특징인 카오스는 누구에게나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개혁 세력은 그 속에서 희망을 보고,
기득권층들은 그 속에서 절망을 본다.
싸움은 치열해지고 카오스를 덮고 있는 먼지는 더 짙어진다.
사람들은 지치게 되고, 마침내 정상적인 생활과 평화를 원하게 된다.
이장을 시작하며
GE의 젝웰치는 1981년에 45세의 나이로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 자신의 말대로 혁명을
원하던 그는 업계에서 1,2위를 하지 않는 사업부들을 매각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해고했다.
그는 자신의 혁명이 잘 진행되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취임한 지 7년이 지나는 동안 GE의 혁
명은 거의 모든 측정지표상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 예를 들어 생산성 증가율은 종전의 2배에
달하는 4~5%의 증가를 보였고, 포트폴리오도 웰치가 보기에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대량해고의 아
픔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직원의 저항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1988년 9월의 어느날, 혁명의 시작점이었던 크로톤빌 연수원을 나오면서 무거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혁명을 시작한 지 7년이나 지났지만, 그는 교육에 참석한 중간 관리자들을 통하
여 GE가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GE의 새로
운 공유가치를 믿지 않는 중역들에 대하여 끊임없는 불만을 늘어 놓았다.
미시간 대학의 경영대학원 교수이며, 1985년부터 2년간 GE의 크로톤빌 연수원장을 지낸 노엘
티키에 의하면 그동안 웰치가 들어온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인원을 감축하고 계층의 수를 줄이는 목표는 옳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중요하지 않은 일을 줄일 수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정책과 체계를 따라야 합니다. 과거처럼 여전히 세세한 것을 모두 알고 있
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있고 과거보다 더 많은 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도대
체 GE가 이 세상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곳이라면 저는 왜 퇴근할 때마다 비참한 기분을 느껴야
합니까?
혁명을 시작한 지 7년이나 지났지만 밑바닥에서 실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껍데기만의 변화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모든 개혁 주체세력들을
당황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민정부가 들어 선 이후 생겨난 변화와 개혁에 대한 반응 때문에 참으로 많
은 말들이 만들어졌다. 복지부동은 그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그들은 태풍이 불어치다가 끝날때까
지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다. 그들은 이러한 태풍이란 언제나 오래가지 않는 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재빨리 주위를 살핀다. 복지안동이 바로 그것이다. 배를 땅에 붙이고 엎드려서 눈만 엄청
나게 빨리 움직여 상황을 살핀다.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혁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껍데기는 많이 변항 것 같지만 실상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 바로 실패한 혁명의 참모습이다. 인생은 단순한 것이 아니며 변화하
지 않아야 할 수십 수백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현재란 항상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수많은 모순에 빠져 있고 불행한 수많은 사람의 등을 쳐
서 먹고 사는 소수의 부유한 악질들이 버젓이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 모습을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지만 합리적인 존재는 아니다라고 핵심을 지적한 바
있다. 우리는 많은 모순과 부조리가 현재의 틀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모든 사
람이 이러한 그릇된 일들이 사라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성적ㅇ
니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눈ㅇ에 그것은 청산해야 할 과거의 찌꺼기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들은 생활속에 여전히 존재한다. 깊
이 내린 뿌리는 너무나 단단하여 잘라도 잘라도 한이 없다. 그리고 그 한 없는 먹이사슬을 보며
절망과 고뇌에 빠지게 된다.
또한 개혁의 주체세력 역시 생활인으로서의 위협과 갈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생이 합리적
인 기반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 때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갈
아치우고 실행하기 어려운 제도를 실시하였으나 사람들이 함께 누릴수 있는 혜택은 아직 여물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과거의 페러다임은 깨졌지만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페러다인은 아직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혼돈은 가중되고 일상생활은 불편한 것들이 된다. 그리고 이때를 기해 숨을 죽이고 있던 구시대
기득권자들의 반란은 시작된다. 개혁은 보수반동의 시기를 거치며 왜곡되고 변질된다. 실패한 개
혁은 결국 아무런 진보도 이루어낼 수 없으나 성공한 혁명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조직의 변화와 개혁을 막는 적들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모두 인간의 보편적 특징으로부터 비
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개혁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않는 한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수 없다.
그 하나는 바로 노회의정신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기득권이다. 변화와 개혁이 언제나 또 누구
에게나 가장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인 적을 상대로 싸워야 하기 때
눔이다. 그러므로 미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변화와 개혁은 적은 많고 도와줄 사람은 적은 가장
위험하고 힘든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회의 정신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혁명과 이상을 믿지 않는다. 그것이 한낱 꿈이며 허망한 기대이며
현실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스스로 믿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점점더 현실주의자가 되어간다. 20대의 젊은 여자는 돈 때문에 결혼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돈이 많은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이 결혼의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 마흔이 넘은 여자는 돈 이외의 다른 이유 때문에 결혼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린 나이를 먹
어감에 따라 더욱더 뻔뻔해진다.
이러한 유물주의와 현실주의는 나이 든 사람의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특징이다. 임어당박사는
이것을 노회라고 부르며 중국인의 특징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원래 회란 어떤 동물을 일컬어 말
한다. 결국 노회란 동물의 특성을 묘사한 말이다.
도교적 관점에서 인간과 동물은 별로 다르지 않다. 모두 자연인 것이다. 그에 의하면 노회란 세
상을 많이 살았고 이해타산에 빠르고 쉽게 들뜨지 않으며 진보에 대하여 회의를 갖는 태도를 말
한다. 좋게 말하면 원만한 성격을 말하는 것으로 많은 처녀들이 바람직한 성격으로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 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노회해지지 않는다면 그는 저능아이거나 매우 특이한 정신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이든 사람의 일반적인 특징인 노회의 정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교적 내용을 이해할 필
요가 있다. 도덕경의 저자로 알려진 노자의 이름이 늙은이라는 뜻임은 단순히 우연이 아니다.
도교에서는 인간이 만든 제도, 법률, 정부,결혼, 이상주의적인 신념들은 모두 가치없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즉 도교는 무관심과 도피주의가 혼합된 철학이다. 이것은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무행동
의 철학이다. 존재하지만 행위하지는 않는다. 과로뒤의 휴식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도교는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마비시키기도 하고 기묘하게 진정시켜주기도 한다.
우리의 상심을 치료해주고 물안과 혼란에서부터 벋어나게 해준다, 우리가 시련과 역경에 처해 있
을 때 마음의 쉴 곳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도교에 따르면 인생은 위대한 것이 아니며 출세란 부질없는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피곤한
인생의 여정에서 잠시 벋어나 식용과 성욕만을 가진 한마리 동물처럼 정신적으로 쉴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욕을 참아 넘기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바깥 세상과 조화시켜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한다.
그러나 다시 암어당의 말을 빌어오면 노회의 정신은 종종 이상과 행동을 거부한다. 개혁을 향
한 희망을 깨트려 버리고 미래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비웃는다. 인간의 능력은 초라한 것이며 순
수와 정열은 기만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펄펄한 성격과 강한 자기주장과 미래에 대한 희망에 대하여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보낸다. 그리고 자신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노회의 정신은 동양적 특성만은 아니다. 서구인들의 경우에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노회해져
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구문명의두가지 축은 헬레니즘과 기독교이다. 그리고 헬레니즘의 기원은 그리스에 있다. 그리
스 신화에 이카루스와 다에달루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들은 커다란 날개를 만들어 초를 녹
여 몸에 붙였다. 두 부자는 하늘을 날아갔다. 그러나 젊은 이카루스는 하늘을 나는 기쁨과 마음속
에 용솟음치는 모험심을 따라 너무 높이 올라가게 되었고 날개를 붙인 초가 녹아 바다에 빠져버
리고 만다.
아버지인 다에달루슨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근신하여 낮게 날았다. 그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
아올 수 있었다. 낮게 날 수 있다는 것이 노회의 정신이다. 성경에는 비둘기처럼 온순하고 뱀처럼
지혜롭게 처신할 것을 권한다. 이것이 바로 노회의 정신인 것이다. 이것은 건강한 현실주의와 보
수주의의 정체이다. 그러나 이것은 변화와 개혁의 진척이다. 이상과 진보를 믿지 않고 어떻게 개
혁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
기득권
어느 조직에서나 기득권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적어도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한 사람
들이다.
그들은 안정과 보수를 희망한다. 이들의 일반적인 특성은 보수주의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성
공한 가진자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지금을 바꾸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의 현실적 성공은 지금
을 즐길 만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들이 지금 향유하고 있는 권력과 부의 많은 부분은 과거
의 성공에 대한 보상이다.
그들은 현재의 논리를 지지하고 과거부터 자신에게 익숙한 관행과 방법을 마음속깊이 옹호한
다. 그들이 비록 철학적 측면에서 행복한 인생을 보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을 포기해
야 할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는 적어도 없다.
기득권자들은 주로 그 조직의 권력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1950년대 미국의 가정 영
향력있는 저서 중의 하나인 파워 엘리트를 쓴 찰스 밀러의 분류에 따르면 기득권자들은 권력을
지닌 바로 소수의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사회의 최고지위를 차지하고 정책의 결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상류사회에 속하는
강한 동질의식을 가지고 있는 배타적 계층이다. 예를 들어 1950년대 미국의 상류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계층은 주로 지방의 귀족가문, 대도시의 상류사회 400대 가문 현대의 매스컴 문화가 탄생시
킨 배우, 탈랜트, 운동 선수, 문필가, 대부호, 회사의 최고 간부, 군부 지도자, 정치가 등을 들 수
있다. 밀스의 파워엘리트는 1950년대의 미국에 대한 사회 비판서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많은 진실
을 내포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 같은 이는 미래의 권력층은 전문지식을 가진 지식인들이 부와 권력을 재편하게 되
리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하고 있지만 특권적 교육을 받아온 이들 전통적인
계층은 신속하게 전문 지식인화해 나갈 것이며 동시에 물려 받은 전통적 지위와 부를 계속 향유
할 것이다.
기업과 같은 조직내에서의 파워 엘리트는 회사의 소유주나 대주주, 최고경영자, 중역과 고위 간
부들이다. 이들 중에서 회사의 소유주나 대주주들은 기업의 가치가 커지기를 희망한다.
최고경영자는 이들의 요구를 저버릴 수 없다. 이들은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해야한
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개혁을 통해 주가가 높아질 수 있다면 어떠한 단호한 조처도 취할 용의
가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다운사이징을 통해 고용을 감소시키는 경우 그 효과는 곧 기업의 단기적 재무성과에
반영이 되게 된다. 고용감소에 따른 임금의 절감만큼 눈에 띄게 확실한 비용절감 효과는 없다. 대
대의 경우 다운사이징을 시작하면 기업의 주가가 단기적으로 상승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유주나 대주주는 변화와 개혁의 실질적인 스폰서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중역과 고
위 간부들의 입장은 이들과 다를 수 있다 그들은 기업의 주주이기도 하고 경영정책과 의사 결정
자들일 수는 있지만 회사의 전체 입장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부서를 대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들은 개혁의 주체가 될 수도 있지만 매우 강력한 반
개혁 세력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기업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기득권자라는 점
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확대시킬 수 있는 권력의 분배에는 매우 적극적인 주체세
력이 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적대적이 될 수밖에 없다.
개혁이 경우에 따라 이들 개인에게 적대적이기도 하고 반대로 이들의 도움을 받아 쉽게 진행되
기도 하는 것은 이들이 주로 회사를 대변한다기 보다는 기능적 부서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중역들의 권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하직원의 구와 비례한다. 부하직원을 많이
거느리고 있을 수록 힘센 부서장이다. 만일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을 통해 자신의 부서인원이 일
의 흐름에 따라 다른 부서로 이전되거나 업무자체가 없어지게 되었을 때 이를 즐겨 받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부서장으로서의 중역의 입장이다.
그는 자신의 부서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부하에 대한 책임이
며 자신을 물먹이려는 가당찮은 계획에 대해 대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노회의 정신은
그들로 하여금 저항의 형태를 규정하도록 한다. 그들은 정면으로 저항하지는 않는다.
저항의 얼굴들
‘총론 찬성, 각론 반대’라는 유명한 어록은 바로 저항의 대표적 형태이다. 그들은 개혁에 정
면으로 반대함으로써 개혁의 주체 세력으로부터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보수주의 인물로 부각되
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 역시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고, 개혁을 일궈내기 위해 앞장서는 진보적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이를 리드해나갈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려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지금 개혁이 필요하며,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프로세스를 단순화시키고, 조직을
개편하여 관리의 층을 줄이고, 강력한 기술력을 개발하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커다란 원칙
을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헙력 업체와의 제휴와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직원을 엠파워시키고,
권력을 하부로 이양하여 직원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업무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환영한
다.
그러나 어떻게 그러한 일을 해내야 할 것인가? 그들은 그 방법론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업에 리엔지니어링의 열풍을 불어 넣은 본격적인 인물로 전 MIT 대학 교수였던 마이클 해머
(Michel Hammer)를 들 수 있다. 그는 바로 이러한 현상을 ‘혁명이 시작되는 곳은 중역실이지
만, 숨통이 끊기는 곳도 바로 중역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이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중역들과 고위
간부의 지지와 도움을 받지 못하면 개혁은 실생활에서 하루하루의 일과 속에 뿌리내리지 못한다.
이들의 도움 없이는 개혁은 곧 문서 속에나 존재하고 숫자 놀음에 지나지 않는, 누구도 바라지
않는 모습으로 전락하고 만다.
GE의 웰치가 7년 간이나 개혁에 몰두했지만, 관리자들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들 중간 관리자들의 상사들이 방관자적이고 냉소적인 입장을 취하
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역들을 개혁의 주체 세력으로 끌어들여야만이 개혁은 현실화할 수 있다.
문제는 그들로 하여금 기득권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도 희생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오믈렛을 만들려면 계란을 깰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이클 해머는 이것을 어쩔 수 없는 필연적 과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목
은, 개혁에 성공하면 문제가 있는 조직의 반은 살아 남을 수 있지만, 개혁에 실패하면 아무도 살
아 남을 수 없다는 차가운 현실이다. 개혁의 주체 세력으로 중역들을 합류시키려면 그들이 즐겨
취하는 저항의 패턴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 선결 과제이다.
저항의 첫 번째 얼굴, 순진무구형
실제로 저항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저항의 첫 번째 얼굴은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는
다. 지금이 어때서? 무슨 문제가 있길래 바꾸자는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개혁해야 할 특별한 이유
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는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실제로 단기적 영업
성과가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비록 작년에 비해 매출액은 줄었지만, 그건 다른 경쟁
자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나마 자신들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혹은 한국 경제의 전반
적인 어두운 면을 제시하며, 이러한 불황은 업계 공통적인 것으로 일시적이기 때문에 전체적 경
기 회복 패턴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혹은 만일 다국적 기업이라면, 기업 전체의 어려움은 한 국 지사의 잘못이 아니라 미국의 영업
이 제대로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미국의 영업 관행과 프로세스를 리엔지니어링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잘하고 있는 우리는 아직 바꾸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순진무구형의 저항은 자신들의 단기적 경영 실적이 상대적으로 괜찮을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저항 패턴이다. 지금은 바굴 때가 아니라 즐길 때라고 말한다. 바꾸는 것은 혼란을 야기
하고 성공의 관성을 줄이며, 승리의 순간에 패배의 길을 택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단기적 성과가 경영의 지로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저항의 두 번째 얼굴, 내일부터
저항의 또 다른 얼굴은 변화의 필요를 인정하지만, 지금은 적당치 않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이
것 또한 만만치 않게 많은 패턴이다.
그들은 자신의 조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를 혁신하여 새로운 조직이 되
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음을 환기시킨다. 만일 새로운 개혁의 시작점이 1년중 후반기라면 연말 영업
을 마감한 후, 내년부터 새롭게 시작하자고 한다.
연초가 되면 새로운 조직 개편이 좀 자리를 잡은 다음에 해보자고 한다. 시간이 좀더 지나면
개혁 작업에 조금 참여하는 듯하다가, 역시 현실적으로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하루하루의 일을
처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노라고 말한다. 그리고 역시 개혁의 준비를 제대로 갖춘 후, 다음해부
터 새롭게 멋지게 다시 시작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들은 현재의 일상적 다급함에 밀려, 중요한 일들을 항상 잊고 산다. 그들도 그래서는 안 된다
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일상적인 일 때문에 바쁘게 사는 것을 선택함으로
써 개혁과 미래를 포기한다.
저항의 세 번째 얼굴, 점진주의
저항의 또 한 얼굴은 현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개혁은 꿈을 꾸는 것이다. 꿈이 없이 개혁은 없
다. 그러므로 그들은 개혁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서오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을 지적하며,
우리가 지나치게 허구적 꿈을 추구하고 있음을 점잖게 지적함으로써 그 의자와 열의를 꺾어놓는
다. 현실을 외면한 경영이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난 후에야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옳다. 그
러나 유감스럽게도, 어느 기업도 모든 것을 다 갖춘 상태에서 개혁을 시작하지 못한다. 그들이 이
론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할 때,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다음의 개혁이란 아
이러니컬하게도 비혀실적인 가정일 뿐이다. IBM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리엔지니어링을 담당
하고 있는 한 중역은 매우 간명하게 이러한 가정의 모순을 지적하였다.
모든 것을 갖춘 상태에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면, 그때는 이미 IBM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
을지도 모릅니다. 개혁은 지금 시작해야 하며, 만일 부족한 점이 있다면 혁신의 과정에서 보완되
어야 합니다. 우리는 ‘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입니다. 개혁을 시작하고, 시행 착오를
겪고, 실패를 통해 배우고, 그리고 점덤 나아지는 것입니다.
개혁은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볼 때만 가능한 것이다. 현재의 상태를 염두에 두고 미래를 그
려가는 것은 점진주의적 관점이다. 예를 들어 일본 기업들은 점진주의를 통해 진보를 이룬 대표
적인 사례들이다.
그들은 하루하루 끊임없이 개선시킴으로써 세월이 지난 후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프로
세스를 그려낸다. 미국에 진출한 혼다의 헤드쿼터에서는 매일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30분 정도
같은 부서의 직원끼리 커피를 마시며, 어제 했던 업무 과정을 반추한다. 어던 일을 이런 식으로
해보았더니 더 쉽게 되었다는 식의 정보를 나누고, 함께 새로운 방식을 교환한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그 전날의 업무 과정에서 발견한 작은 개선점들을 더해나간다. 매일 조금씩 개선하여 날
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자랑하고 효과를 본, 이른바 가이젠의 정신이다. 가이젠은 그들이 일상 생활을
통해 체득한 생활의 지혜이며, 또한 일상 생활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록한다.
기록함으로써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정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록은 무엇보다도 귀중한 개선
의 시발점이다.
일본의 어느 구석을 들여다보아도 잔잔한 감탄이 일어난다. 어떻게 이런 작은 구석까지 이렇게
신경을 써서 이런 생각들을 해낼 수 있었는지 놀랍다. 이것이 바로 점진주의의 힘이다. 이것은 진
보를 향한 매우 뛰어난 방법이다.
그러나 점진주의는 개혁과 혁명의 적이다. 개혁은 단절을 요구한다. 개혁은 창조적 파괴를 전제
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백지 위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새롭게
그려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다시 하기’인 셈이다.
이것은 처음 출발부터가 점진주의적 가정 위에 서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점진주의적 방법론을
택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개혁과 개선의 보완적 성격을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의 방법은 모두 우리의 진보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유효한 방법론이다. 그리고 상호 보완적이
다. 그러나 혼용되어서는 효과를 볼 수 없는 상극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많은 역사학자들은 역사의 단절론과 연속설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역사의 발전을 이해
하고 서령하려 하였다. 많은 경우, 역사는 연속적인 흐름을 가지고 진행되는 듯하다. 수십 년 혹
은 수백년 동안 잡다한 많은 일들이 개인적으로나 사회 정치적으로 생겨나지만, 어제는 오늘과
많이 다르지 않고, 오늘은 또한 내일과 비슷하리라고 기대하며 살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인과율에 의해 해석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조금씩 누적되어 감으로써 완
숙해지기도 하고, 오히려 성숙기를 지나 쇠퇴해가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 도저히 그 연속성
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고대 로마가 어떻게 어두운 중세의 시대로 접어들었는지 인과 관계의 깨어진 조각을 맞
추는 과정에서 도저히 맞춰지지 않는 조각을 수없이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중세의 어두운 그림
자 속에서 어떻게 인간은 현란한 르네상스의 시기로 진입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
는 참으로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혁명을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혁명은 패러다임을 바꾸어놓는다. 한 시대의 동시대 사람들
이 가지고 있던 보편적 가치와 사고의 틀, 제도와 관행을 모두 파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불가애서 말하는 갑작스러운 깨달음과 같다. 한번 깨닫게 되니 과거의 모든 것이 속절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득도자는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눈으로 세상
을 보게 된다. 그에게 과거는 미망의 세월이며, 흘러간 어리석음이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뿐 아니라 조직에서도 일어난다. 리스트럭처링이나 리엔지니어링, 혹은 보다
평범하게 경영 혁신 등으로 불리는 새로운 시도는 모두 미래의 시각에서 현재를 조망하는 작업이
다. 그러므로 벗어나고자 하는 과거와 현재의 관점에서 이를 추진한다면, 그것은 마치 인연을 끊
지 못하는 출가인과 같은 것이다.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토마스 쿤(Thomas S.Kuhn)은 1962년에『과학 혁명
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라는 책을 썼다. 내가 대학에서 혁명사를 공부
하던 시절, 이 책은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난해하고 어렵다.
어느 경우 약간 과장을 하면, 책의 반 페이지 정도가 쉼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몇
사람들이 번역해놓은 것을 잠깐 본 적이 있는데, 번역하느라고 매우 고생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토마스 쿤은 물리학 박사 논문의 완성을 앞두고 과학사를 선택한 사람이다. 그는 팰리포니아
대학에서 사학과 교수로도 일했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과학사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으며, MIT에
서 언어학과 철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경력이 말해주듯이 그는 물리적으로 대학의 테두리를 벗어
나지 못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과학, 역사, 언어, 철학의 광활한 영역을 넘나들었다.
내가 토마스 쿤을 장황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이 사람이 바로 요즈음 잘 쓰이는 ‘패러다임’
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과학의 발달은 수 세기에 걸친 과학
자들의 연구 업적이 쌓여 이루어진 누적적 결과가 아니라, 과학 혁명으 결과라는 것이다.
이것은 충격적인 가정이다. 전통적 과학은 이론적 명제와 관찰적 명제의 논리적 결합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점진적 진화론의 성격을 띄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해보자. 과학자가 하나의 이론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과정을 거
치게 된다. 우선 자료를 수집하는 한편,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자료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자료
속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규책성을 발견해낸다. 이를 기초로 하나의 가정을 만들어낸다. 이것
은 귀납법적인 방법을 따른 것이다.
과학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연역적 확인을 시도한다. 즉, 도출된 가정을 개별적인 관찰
대상에 적용하여 봄으로써 가정을 검증하게 된다. 만일 이러한 연역적 과정을 통과하게 되면, 이
가정은 법칙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하나의 이론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성립된 과학 이론은 확고 부동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어떠한 회의나 반론도 받아
들여지지 않게 된다.
물리학에서 과학사로 전공을 바꾼 토마스 쿤은 스탠포드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사회 과학
자들과 잦은 접촉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을 통해 사회 과학자들이 기존의 이론과 지식에 대해 근
본적인 회의와 비판을 제기하고 있음을 보고 그는 깊은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는 자연 과학이 사회 과학보다 더 확실한 영구적 해답을 발견했다고 믿지 않았다. 어떠한 과
학도 영구 불변하는 반석 위에 서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기서 패러다임의 개념을 만들어낸다. 패러다임이란 한마디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토
마스 쿤조차 이 개념에 대한 혼동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개념이 가지
고 있는 기본적 틀을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패러다임은 ‘어떤 시기의, 어떤 과학자
집단이 가지고 있는, 과학자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는 공통적 전제’를 뜻한다. 즉 기초적
이론, 법칙, 그리고 과학 지식, 사례등의 공유를 통해 그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는 사고의 틀 정도
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러한 공통적 패러다임이 조재하고, 모든 과학자 집단이 현상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때, 이를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변화는 이 ‘정상’상태를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만일 기존에 통용되는 패러다임으로
풀 수 없는 변칙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과학자 공동체에 위기가 발생하게 되고, 공동체는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집달들로 분열하게 된다. 토마스 쿤은 이것을 일컬어 ‘과학 혁명’
(scentific revolution)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하는 대변
혁의 시기인 것이다.
그는 과학의 진보는 결국, 정상 과학과 과학 혁명의 반복 과정을 통하여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결국, 과학은 기존의 패러다임이 깨어지면서 새로운 대안이 쏟아져 나오는 과학 혁명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진일보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또 다른 안정기를 맞게 된다는 것이
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과학 분야뿐 아니라 다른 사회 과학 분야에 엄청난 파급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출판된 지 30년이 지난 최근 몇 년 간에, 한국의 경영 분야에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전달하게 되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혁명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개념이 아니다. 대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상 과학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과학 혁명이 파괴적으로 보일 수밖
에 없다. 두 개의 패러다임은 근본적 가정이 다르기 때문에 공존할 수 없다. 천동설과 지동설이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서로는 타협할 수 없다. 오직 개종이 있을 뿐이다.
점진주의는 안정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가정이다. 이것의 속
성은 부수주의이며, 혼란과 무질서를 원하지 않는다. 일상을 파괴하지 않고 진보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훌륭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만일 당신이 지금을 ‘일상이 지배하는 안정적 시대’라고 규정한다면 점진주의를 선택하는 것
이 좋다.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그르나 만일 당신이 지금을 변화와 격변의 시기라고 규정한다면
과거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라.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격변의 시기에, 그리하여 과거의 패러다임이 깨어지고 있는 혼동의 시기에 과거의 산물 위에
다른 더 나은 것을 쌓아올려가는 누적주의는 잘못을 더해가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쓰레기를 치
우기 위해 쓰레기통을 대량으로 사들여, 집을 더욱 비좁고 더럽게 만드는 것과 같다.
개혁이 끝난 다음, 새로운 기초가 마련된 다음, 우리는 다시 이 점진주의의 힘을 빌려 더욱 발
전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을 벗어나야 하는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점진주의에
기대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이 지금과 다른 새로운 조직과 태도, 그리고 새로운 관행과 단순화된
프로세스 속에서 모든 것이 진행되는, 새로운 기업을 다시 만들고 싶다면 점진주의를 버려라.
우리는 살면서 가구를 옮겨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혹은, 작지만 좋은 그림을 한 점
벽에 걸어서 변화를 추구할 수도 있다. 혹은 봄이 되어 벽지를 바꿀수도 있다. 마치 새로운 집으
로 이사 온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작은 변화를 줌으로써 그 변화를 즐길 수 있는 일상의 예들이
다.
그러나 새 집을 지어야 할 때, 우리는 그 안에 그대로 머문 상태에서 벽을 허물 수는 없다. 당
신이 만일 개혁을 부르짖으면서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로부터의 관행과 원칙의 사슬을
끊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사 가지 않은 상태에서 벽을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지으려는 사람과 같다.
젝 울치는 1981년에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자신은‘혁명을 원한다’고 공언했다. 모든 사람들이
GE라는 건물이 웅장하고 훌륭하다고 말할 때, 그는 이미 이 건물을 헐고 다시 지을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꾸어나갔다. 그러므로 당신이 지금을 격변의 시기로 규정하고
당신의 기업을 바꾸려고 결심했다면, ‘현실’의 이름으로 옹호되는 점진주의를 ‘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저항의 네 번째 얼굴, 경험적 회의주의
저항의 또 다른 얼굴은 경험적 회의주의의 못브을 하고 있다. 과거에 한 번 해보았는데 잘 안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다시 한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태도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바꾸어가며 기본적으로 동일한 개선 시도를 해오고 있다.
주로 개선과 혁신을 담당하는 전담 주무부서는(경영 혁신실, 혹은 업무 개선팀, 혹은 종합 기획
실 등 무엇으로 불리든 상관없다) 먼ㅈ 자신들이 주도하는 개선의 추진 방향과 방법을 상징할 수
있는 이름을 거어 붙인다. 스스로 짓는 경우도 있고, 직원 공모를 통해 할 수도 있다. 아무튼 그
렇게 하여 추진되는 개선과 개혁의 노력은 여러 번의 고배를 마실 수 있다. 기대보다 훨씬 못 미
치는 성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경우, 마이클 해머의 조사에 따르면 리엔지니어링을 시작한 기업 중 약 70퍼센트는 기
대한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한국의 경우는 한 보고서에 따르면 약 65퍼센
트는 성공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매우 의심스러운 통계이다. 적어도 몇 가지
조건을 감안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수치로 생각된다.
첫째, 조사에 응한 사람들이 미국의 경우처럼 일반 중역이 아닌, 경영 혁신을 담당했던 주무부
서였다는 점이다. 자신이 한 일을 실패로 규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개선과 혁신의 효
과는 그 수혜자인 사람들이 평가할 문제이지 주무 부서가 스스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아전인수
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둘째, 조사에 응한 약 80개 대기업 중에서 ‘리엔지니어링’의 개념이 확실한 상태에서 이를
시작한 기업은 3분의 2에 불과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리엔지니어링의 기대 효과에 훨씬 못 미
치는 작은 성과가 성공으로 오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섯째, 조사에 응한 꽤 많은 한국 기업의 리엔지니어링 노력은 아직 성과를 분명히 파악하기 어
려운, 진행 중의 상태에 있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잠정적으로 성과가 있을 것으로 간주되었
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형태로, 여러 가지의 방법론에 따라 진행되는 개선과 혁신이 기대되는 성과를 거두기 어
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상대적 실패는 조직의 구성원 모두에게 실망스러운 것이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한 것이다(왜 다행스럽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장 ‘개혁가의 역할’
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공통적인 것은 실패를 통해 조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개혁에 대하여 조소적이 된다는 것이
다. 중역들 역시 이러한 조소에 쉽게 편승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이러한 조소를 조심스럽게 모
아 여론의 모양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더 이상의 개혁을 당분간 중단하
자고 말한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바쁜 일정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왜 실패했는지 그들에게 반
드시 물어 보아야 한다. 두 번 세 번의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어떤 조직
이 영원히 개혀그이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실패는 방법론이나 접근 방법이 잘못되어 생긴다기보다는 단호하고 끈질긴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더욱 분명한 사실은, 변화란 경영층의 확
고한 의지와 솔선 수범 위에서 복합적이고 지속적인 변화 관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몇 가지 자료가 있다. 그 중의 하나로 1997년에 주간 매경과 한
컨설팅 그룹이 삼성물산, 현대자동차, 대우, 국민은행, 현대건설 등 국내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한한 공동 조사 자료가 있다. 이 자료에 다르면, 실패 요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지속적인 변화 관리의 실패’로 나타났다(82퍼센트). 또, 사내 저항 극복의 실패는 70퍼센트로
2위, 최고 경영층의 의지 부족이 64퍼센트로 3위로 뒤를 이었다. 기업의 상황에 맞지 않는 기법을
선택한 것이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된 것은 62퍼센트로 4위로 나타났다.
실천은 개혁의 가장 어려운 단계이며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그리고 고액의 컨설턴트들이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고 물러서는 대목이다.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국면이다. 오직 최고 경영자
와 중역들이 앞장서야 할 바로 그 대목이다. 그러므로 철저한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실패한
경우는 대개의 경우, 중역들에게 책잉을 물어야 한다.
이 경우 실패의 책임이 혁신을 담당한 주무부서에게 부과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매우 잘
못된 일이다. 만일 실패의 원인이 접근 방법이나 새로운 프로세스의 디자인이 잘못되어 발생했다
면, 그것은 혁신 주무부서의 전문성의 부족으로 질책되어야 한다. 보다 훌륭하고 전문적인 사람으
로 대체하거나 외부로부터 조언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실패의 원인이 일관된 실천의 부족에 따른 것이라면 그것은 중역들의 잘못이다. 그
들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고, 권력을 조직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원
치고가 제도, 그리고 새로운 프로세스가 일상 업무를 통해 매일매일 구현될 수 있도록 자신의 직
원들을 리드하고 통솔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조직 내에서 나누어 가져야 할
역할의 분담이다.
개혁의 주무 점담부서는 그 인원이 얼마 되지 않는, 전문적 스템부서에 불과하다. 그들은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말 잘 듣는 부하 직원을 많이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들이 ‘돌격’
하고 외쳐보았자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조직의 운영과 지휘 체계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격 명령은 야전 사령관의 몫이고, 자신의 명령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통제하고 격려하
고 솔선 수범을 보여야 할 사람은 바로 그들인 것이다.
과거에 실패한 개혁 때문에 다시 시작하기를 두려워하는 중역이 아직 많다면, 그 조직은 매우
위험한 조직이다. 실패의 원인을 밝혀라. 그리고 실천의 책임을 명확하게 부과하라. 과거에 그가
얼마나 훌륭한 업적을 쌓았는가에 연연해하지 마라.
지금은 과거가 아니다. 그리고 최고의 경영자로서 당신이 개혁의 가치를 들어올렸으면 그들로 하
여금 당신을 돕게 하라.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당신의 조직은 개혁의 의지와 능력을 영원히
상실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런 기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항의 다섯 번째 얼굴, 무저항
저항의 가장고질적인 모습은 ‘무저항’이다. 이것은 개혁이 한참 지행된 다음에야 주로 나타
나는 저항의모습이다. 그들은 개혁이 하나의 흐름이 되어 조직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므로 반대의
입장에 서서 자신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혁에 대하여 찬성한다. 그러나 돕지 않는다.
그들은 개혁에 필요한 협조를 약속한다. 그러나 약속한 지원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보류한다.
이러한 피동성은 개혁이 생활 구석구석에서 구현되는 것을 억제한다. 그들은 여전히 부하들에
게 과거의 관행과 원칙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조직 구성원들은 새로운 원칙과 과거의 원칙 사이
에서 ‘위로부터 요구되는 일관성 없는’ 지시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터득하는 것은
두 가지 상반된 원칙에 입각한 위로부터의 요구중, 바로 위의 관리자가 요구하는 것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조직은 피동적 분위기에 싸이고 만성적 피로에 시달리게 된다. 개혁은 생동감을 잃게 되고, 모
든 후속 계획은 지연되기 시작한다. 개혁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엉거주춤한 상태로 멈추어 서 있
다. 하루하루의 일상적 업무를 수행하는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점점 더 해야 할 업무의 양은 많아
진다. 새로운 기준과 과거의 기준에 따른 두 가지 모두를 이해하고 준비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저항에 의한 저항은 개혁의 껍데기만 남기고, 개혁이 주는 혜택을 조직에게 돌려줄
수 없게 한다. 이것저것 실시한 것은 많은데, 어느 하나도 실효를 거둔 것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서 일상 생활을 지배해온 편의의 원칙이 승리하게 되고, 이것은 갑자기 과거로의 회기를 주도할
수 있다.
잭 웰치가 7년 동안 공들여 중단 없는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중간 관리자들로부터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말을 줄곧 들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그들의 상사들로부터 ‘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요구를 들어왔기 때문에 일상적 업무 속에서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노회의 정신과 기득권은 기업의 중역들이 변화와 개혁에 쉽게 몰입할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이다. 그들은 스스로 조직 내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다.
자신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과거의 법칙과 제도를 바꾸는 일에 있어서 신중해지는 것은 자연스러
운 것이다.
개혁이 어려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도움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고
경영자나 기업 소유자의 노력만으로 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중역들의 지원과 협
력이 절대적이다.
세계적인 품질 경영 모델인 말콤 볼드리지(Malcolm Baldrige Award)평가 항목 중 제1차적 품
질 경영 요소로서 ‘최고 경영자와 그에게 직접 보고하는 중역들의 리더십’을 꼽고 있다. 그들
이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리더십과 함께 ‘하나의 공유 가치를 나누는 한 팀으로서의 경영자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유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일 개혁의 당위성에 대한 이해와 미래
에 대한 비전의 공유가 없다면 이러한공동의 리더십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신념이 없는 리더십이란 없다. 그리고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말대로 ‘모범이 곧 리더십’인 것
이다. 신념과 모범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불타는 석유 시추선’으로 규정할 때 비
로소 공동의 목표가 합의되는 것이며, 이때 개인적 이해 관계와 조직의 이해 관계에 대한 균형있
는 절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스티븐 코비는 이것을 바로 Win-Win의 상황이라고 부른다. 조금씩 손해보는 타협과 협상이 아
니라, 서로 새로운 미래로부터 더 많은 혜택을 얻고자 하는 ‘성공하는 사람들이 체득해야 할 습
관’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공유된 새로운 가치와 목표, 그리고 미래의 시점에서 기금을
볼 수 있는 확대된 시각이 혼돈과 불편을 이기고, 진심으로 개혁을 여러 가지 모습의 저항을 극
복할 수 있다.
나는 이 장을 1988년 9월, 크로톤빌 연수원을 나서며 잭 웰치가 느꼈던 좌절에서부터 지작하였
다. 그가 느꼈던 좌절과 대응 속으로 좀더 들어가보자. 짐 보먼과 함께 페어필드로 돌아가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러 걸어가는 잭 웰치는 화가 나 있었다. 그는 짐에게 말했다.
짐, 우리는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절망감에 대해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연단
에 세워야 합니다. 실천을 꺼리는 리더들에게 그들의 부하들과 직접 맞닥뜨리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그는 GE를 바꾸어놓은 그 유명한 워크아웃을 시작하였다. 첫 단계는 뉴잉글
랜드 지방의 타운 미팅을 모방한 걱의없는 모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약 100명 정도의 직원들이
회사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약 3일에 걸쳐 공통적인 현안을 논의하여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수립했다.
마지막 날, 그들은 그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자신들의 상사들 앞에서 발표하게 되었다.
제안된 대안들에 대하여 그 채택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자원을 가지고 있는 중역들과 관
리자들은 이 해결 방안들에 대하여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채택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만일 그
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이유를 분명히 밝혀야 했다.
약 80퍼센트 정도는 현장에서 채택과 기각, 둘 중에 하나로 결판을 내어야 했다. 그리고 더 연
구 검토가 필요한 제안들에 대해서는 한 달 이내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러한 과정은 잭 웰치
가 의도한대로, 말만 많고 실천하지 않았던 중역과 관리자들을 혁신의 현장으로 몰아갔다.
개혁가의 역할
확신 없는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승리를 확신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마키아벨리는 『
군주론』속에서 이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은 없다. 참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현재의 제도와 시스템으로부터, 혜택을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개혁을 도와줄 사람들은 새로운 질서가 가져다줄 혜택에 대한 모호
한 그림밖에는 없다. 강력한 적과 미온적인 동지-이것이 바로 혁신이 성공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이다.
매우 탁월한 지적이다. 개혁가가 된다는 것은 그러므로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진보와 발전은
개혁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개혁은 그 안에 보수주의자가 싫어하는 ‘위험한’요소를 가지고 있
다.
그들의 머리속에는 버려야 할 기득권, 감수해야 할 희생, 이것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
다. 그들은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한번 가진 것은 영원히 내어줄 수 없는 것이다. 욕망은 끝이
없고, 한계를 모르는 법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온건’과‘신중’으로 자기를 포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수동성을 의미
하지 않는다. 사회가 아직 폐쇄적일 때는, 이들은 개혁 세력을 ‘불순한 반사회적 집단’으로 규
정한다. 그리고 몽둥이로 때려잡는다. 매우 가혹하고 직접적으로 대응하여, 불순한 세력의 뿌리를
도려내려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에 의해 전유럽에 전파되었던 혁명 사상은 스스로 황제가 된 그에
의해 숨통이 조여졌다. 그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여생의 7년 간을 간수들과 싸움질이나 하고 보
내는 동안. 유럽은 정치 스파이와 경찰에 의한 보수 대반동의 시대를 맞게 되었던 것을 상기하라.
몽둥이는 폐쇄적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코끼리를 문이
작은 냉장고에 집어넣는 방법에 대하여 당신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상상력이 빈곤한
일반대중은 그저 코끼리를 잘 썰어서 엄청나게 큰 냉장고에 차곡차곡 집어 넣는 것 정도로 생각
할지 모른다.
수학적으로 탁월한 공상가는 코끼리를 미분한 다음 냉장고에 넣고, 다시 적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가는 아마 그냥 쑤셔넣으면 어떻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무엇을
따지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아마 가장 현질적인 사업가들은 가장 작은 코끼리와 세상에서 가장
큰 냉장고를 떠올려, 단숨에 코끼리를 몰고 냉장고 속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칠지
도 모른다. 폐쇄적 사회를 살았던 한 정보 기관원은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우선 코끼리를 꿇어앉혀 놓고, ‘너는 누구냐’고 물어보는 거야, 처음에는 코끼리라고 대답
하겠지, 그러면 그놈을 몽중이로 개 패듯 패는 거야, 그러면 그놈이 나중에는 아픔을 견디다 못해
‘나는 코끼리가 아니라 개야’라고 깽깽거리게 되거든, 그때 냉장고에 넣으면 되지, 개 한 마리
쯤 들어가는 냉장고는 요즘 흔하거든…….”
육체는 언제나 권력의 작용점이라는 미셸 푸코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사회가 보다 개방적이고 열려 있을 경우에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사회의 한 층에 각성
을 통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세력이 보편성을 띄게 되어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되면, 기
득권층은 대놓고 개혁을 반대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앞에서 약술한 대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저항의 마스크를 꺼내 쓴다.스스로 자신은 진보주의자이며, 개혁을 지지하는 세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글들은 개혁의 모든 실제적 조치에 조심과 신중을 이유로 한, 일견 매우 합리적인 주석
과 토를 달아서 시간을 번다. 은밀하게 세력을 규합하고, 조용히 숨어서 개혁의 급소를 물어뜯을
때까지 기다린다.
개혁은 치명적 급소를 항상 노출시키고 있다. 그것은 바로 ‘혼돈과 혼라’이라는 것이다. 변혁
기의 특징인 카오스(Chaos)는 누구에게나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개혁 세력은 구 속에서 희망을
보고, 기득권층은 그 속에서 절망을 본다. 싸움은 치열해지고 카오스를 덮고 있는 먼지는 더 짙어
진다. 사람들은 지치게 되고, 평화와 정상적인 생활을 원하게 된다. 대중은 바로 일상에 매여 있
는 서민이고, 그래서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매여 있던 일상으로부터의 끈을 끊고 만끽한 자유에는 언제나 피의 냄새가 난다. 대중은 스스
로의 목에 다시 사슬을 걸고, 일상이 주는 게으른 평화와 나태를 즐기기를 원한다. 싸움과 개혁과
혁명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들은 무엇이든 할 자세가 되어 있다.
이‘일상으로의 회기에 대한 열망’은 개혁을 벼랑 끝에 세우게 된다.
역사 속에서 하나의 예를 찾아보자. 개혁의 초기에 조광조에 대한 중종의 신임은 두터웠다. 조
광조 역시 지성을 다하여 왕을 섬겼다. 그러나 그는 기묘년에 발생한 기묘한 사화의 덫에 결려들
었다. 남곤과 심정은 경빈 박씨와 함께 그를 모함한다. 나뭇잎에 꿀물로 ‘조씨가 왕이 되려 한다
’(走肖爲王)라고 쓰게 한 후, 발레가 이를 파먹게 했다고 한다.
중종이 아무리 어리석은들, 벌레먹은 이 나뭇잎 한 장에 천명이 실려 있다고 생각했겠는가? 조
광조의 도학 정치에 신물이 난 왕은 그저 모른 체했을 것이고, 모든 일은 숙달된 아랫것들이 마
무리를 지었을 것이다. 그저 왕을 한 번 보고 죽고 싶어했던, 지극한 정암은 그렇게 갔다. 평화와
게으름과 안정은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 데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항상 긴장하고 새로움을 추구
하는 개혁은 모두를 지치게 한다.
그러므로 개혁의 성공에는 스피드가 매우 중요하다. 장기전은 개혁 세력의 패배를 의미한다. 싸
움의 발단은 ‘현재의 불합리와 왜곡’이지만, 싸움을 걸어온 것은 개혁 세력이다. 싸우는 동안
대중은 여러 이유에 따라 양쪽으로 갈라져 참여하고 또 관망한다. 더 얻으려는 사람들은 하루 벌
어 하루 먹는 개미 군단들이고,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기름진 것을 쌓아두고 이미 장기전에 돌
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싸움이 길어져, 혼돈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생활 속에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은
바로 대중이다. 취업은 어려워지고, 장사는 잘 안 된다. 월급은 오르지 않고, 나가라고 할까봐 오
려달라고도 못 한다. 물가는 치솟고, 서민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깨어지고 다양한 생각이 실험되다보면, 기존 사회를 유지하고 있던 틀과 기
강이 흩어져가는 듯이 보인다. 대중은 개혁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기를 원하게 된다. 구관이 명
관인 것이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에 성공하려면 한 곳에서 완벽하게, 최단시간 안에 승리를 거둠으로써 전체의 국
면을 승리로 돌려세워야 한다. 어린아이의 싸움에서 코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누가 얼마나
때렸든, 코피 터진 놈이 진 것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옆에서 열을 올리며 구경하던 아
이들도 그렇게 여긴다. 대중과의 코뮤니케이션은 복잡하면 안 된다. 간단하고 명쾌해야 한다. 명
료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대세와 여론을 규합할 수 있다.
간단 명료한 승리는 싸움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전리품에 의해 스스로를 입증한다. 정
신적이어도 좋고, 물질적이어도 좋다. 그러나 반드시 그것은 일상 생활에 매우 유익한 것이어야
한다.
‘변화와 개혁’을 표방한 문민 정부는 무능한 정부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 개혁
의 방향은 결국 언젠가 가야 할 길이었다. 문제는 변화의 관리에서 실패한 시도에 불과하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금융 실명제는 가장 대표적인 개혁이었지만, 이를 통해 서민으로서 내가 느낄 수
있는 변화는 은행에서 거래를 할 때, 내 주민등록을 제시하는 것 이외에는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항상 잔고가 달랑거리는 서민들에게, 본인 명의가 아닌 뭉치돈의 거래를 막기 위해 제시를
요청받는 주민등록증의 사진은 그저 핏기 없는 빛 바랜 초라함일 뿐이다.
만일 내가 금리 자유화를 통해, 은행에서 한 자릿수의 이자율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면, 어느
누구도 감히 전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감히 전으로 돌아가자고 말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질적 혜택을 주지 못하는 개혁은 어느 사회, 어느 조직에서건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개혁의 전리품은 부정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올바르고 떳떳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 주엇다가 내일은 도로 가져갈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그것은 명료한 비전을
필요로 한다. 전체의 그림 속에서 추진되는 강력한 실행이어야 한다.
모든 실행 하나하나가 같은 정신적 뿌리와 원칙에서 나온 전체속의 일부일 때, 비로소 개혁은
하나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모든 계획은 서로 배치되지 않는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한 사회는 일관된 발전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마치 아름다운 건물과 같다. 벽과 창문과 지붕, 그리고 뜰과 계단은 모두 따로따로 공사
가 이루어지지만, 서로 합해져 집을 이루고, 각각은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의해 전체를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조화는 결국 전체를 하나로 그려볼 수 있는 통합적 사고에서 나온다. 통합적 사고를
가지지 못하는 개혁은 기껏해야 부수다만 건물이거나, 짓다 만 성전처럼 흉칙한 피조물일 따름이
다.
통합적 사고에 대하여 나는 매우 유용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다음은 김석철의 『세계 건축
기행』에서 인용한 것이다
다시 티라의 절벽 마을로 나선다. 어제 볼 때보다 지금 마을의 틀이 조금씩 더 뚜렷이 나타나
는 듯하다. 근년에 덧짓고 고친 데가 원래의 건물보다 많고, 관광지로의 개발에 치중하여 아름다
운 장소들에 범람하는 상업적 자취가 여기저기 눈에 거슬린다.
지금이라도 이곳을 역사 문화 구역으로 지정하고 자의적인 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자기의 것을 만들게 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전체의 조화를 기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깊고 넓은 감각과 질서 의식에 의한 통제가 필요하다. 디자인 원리와 기본 모티프를 제한
하는 데서 나아가, 완성된 전체와 부분을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 마을의 아름다움은 만드
는 사람, 보는사람, 사는사람 모두의 공동체적 협력에 의해서 성취되지만, 그 중에서도 건축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건축가는 인간의 삶을 이해해 집단의 생활을 연출하고, 이왕의 환경과 미래 변화에의 적응을
포함한 모든 것에 관여함으로써 물상 세계 속에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티라의 옛 마을과 오늘의
마을은 그런 성공과 실패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우리의 삶은 시간과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협력을 통해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건축가가 자신의 공간 구성에 대한 이미지를 실현해가듯이 그렇게, 개혁가
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그림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추상성은 그것을 구체화하는 사람의 힘을 빌려 그 모습을 나타낸다. 토마스 제퍼슨이나 벤자민
프랭클린 없이 미국의 민주주의는 실체를 가지기 어렵다. 레닌과 스탈린이 없었다면 공산주의의
모습은 현존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잭 웰치가 없이는 GE의 개혁의 모습도 그려보기 힘
들다.
제 4 장 실업
피터 드리커는 실업에 대하여 매우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생산의 핵심적 요소로서의 노동의 소멸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중 가
장 핵심적인 미해결 과제이다. 노동이 없는 세계, 노동에 기초를 두지 않은 사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의 조직 원리와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근로자들으느 아직 이
러한 변화에 대하여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구조 조정과 다운사이징
저는 저의 처지를 공개적으로 알리기 전에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답변할 기회를 주고자 합니
다. 저는 정신적으로 매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한 남자가 미국에서 매출 규모 100대 기업 안에 드는 한 기업에 면접을 보았습니다. 그는
일자리를 제공받았습니다. 이 회사는 그에게 해안에 인접한 작은 도시로 이사할 것을 요구했습니
다.……그는 집을 팔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보수가 높은 일자리를 포기하고 그곳으로 이사를 갔습
니다. 처음 그들은 집을 임대하였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뒤 집을 샀습니다. 아내는 임신하
게 되었고, 부부는 태어날 첫 번째 아이를 즐겁게 기다렸습니다.
그는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일하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결과는 나타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이제 그는 2개월 전에 구입했던 집을 팔아야 합니다. 그와 임신한 부인은 다시 이사해야 합니
다. ...... 그는 왜 또다시 이사를 가야 합니까? 그는 11월 1일부로 일감 부족이라는 이유로 회사에
서 더 이상 고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방금 받았습니다. 제품을 구할 수 없어 수없이 많은 주문을
처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일감 부족이 될 수 있는지 그는 자문해보았습니다. 어째서
나인가? 나의 가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 내 장래는? 내가 이런 사람들을 신뢰했다니. 그는
의아해했습니다.
이제까지의 내용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우리 가족은 당신 회사의 무계획성과 비정직
성의 희생양이라고 봅니다. ......만일 우리의 경험이 미국 가족 일반에 대한 당신 회사의 관심도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가정은 회사의 번영과는 반대로 계속적으로 허물어지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 한 직원의 아내로부터
1985년 8월 14일 잭 웰치는 GE의 한 사업부에서 해고된 직원의 아내로부터 위와 같은 편지를
받았다. 그는 편지에 대해 일일이 답장을 썼으며, 감원된 직원이 새로운 직장을 찾고 이주하는 것
을 도와줄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지시하였다.
다운사이징은 감원된 직원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기업에게도 어려운 일이지만, 특히 직
원에게는 지금 당장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며, 미래를 참담하게 만든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막막하며 심리적으로 무력감에 시달린다. 가족에게도 민망함을 느낀다. 한국 같은 경우는, 자식들
에 대한 걱정과 아버지로서의 자괴감 때문에 더욱 괴로워하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도 고립된다. 그들은 이제 아무데도 소속되어 있지 않음을 실감하게 된다. 아침에 눈
을 떠도 9시까지 출근해야 할 곳이 없다. 그저 관성적인 출근이었고, 때때로 쉬고 싶었던 직장이,
바로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또한 강한 배신감을 느낀다. 청춘을 바친 곳에서 밀려난 것이다. 퇴직금에 약간 추가된
돈은 마치 그 배신의 대가로 지불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으로 커피 집이나 아이스크림
가게 하나 차리기도 어렵다. 그나마 추가적 퇴직금은 IMF 시기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경우가 태
반이다. 퇴직금만 계산해서 받아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 암담한 것은, 자신이 지금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아무런 준비조차 되
어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너무 쉽게 여러 종류의 사기꾼들에게 걸려 들어, 가
지고 있었던 몇 품의 돈을 날려버리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평일 낮에 어울리지 않게 검은 구두를 신고, 북한산 자락을 거닐고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들에게 하루하루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구조 조정과 다운사이징이 진행되면,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많은 변화가 발생한다. 최근
에는 병원을 찾는 직장인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소화불량이기도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
다. 더욱 심각하면 심장 질환이나 간장 질환에 걸리기도 한다. 그들은 항상 만성적 스트레스에 시
달린다.
한 남자 화장실의 변기 앞에 쓰여진 ‘당신은 지금 세계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라는 낙서는
더 이상 현실 아니다. 손아귀에 잡힌 그것은 밤에 아내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풀이 죽어 있는
그들과 똑같은 모습이다. 성적 기능은 그 사람의 정신적 건강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시금석이
다. 지금은 사태가 보다 악화되었다. 이제 병원도 환자가 많이 줄었다. 스트레스에 의한 질환을
돌보기 위해 돈을 쓸 수 있는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
그들의 여린 심성은 회사에 더욱 매달린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에 매달리는 일종의 일 중독증
은 또 다른 형태의 질병이다. 한국의 경제적 번영을 가능하게 했던 그 부지런함과는 종류가 다르
다. 일을 향한 정열과 의지 같은 건강한 동기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고, ‘두려움’이 동기가 된
충성이다.
심리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쥐는 겁을 먹으면 더 많이 움직인다고 한다. 이러한 동기 유발은
반복적인 작업에는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복잡한 상황에서는 창의력을 저하시킨다고 한다.
쥐들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따라서 단순 반복적인 직무가 남아 있는 한, 이런 류의 사람들은
오래 회사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단순하고 사무적인 반복적 직무는
좌뇌적 기능으로서 컴퓨터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분야이다. 바로 기술 실업에 가장 근접해 있는
직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업은 지금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현실이다. 그러나 실업에 대한 두려움은 IMF
시기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언제나 개혁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최초의 가시적 경영
행위였다. 경영자들은 언제나 이것부터 먼저 시작한다. 실제로 이 일을 잘하는 경우, 기업의 가치
를 반영하는 주가는 거의 대부분 올라간다.
나는 몇 년 전에 방송사로부터 경영 혁신에 관한 인터뷰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방송 시간 전,
담당 PD와 나는 생방송시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유의 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
다가 느닷없이 담당 PD가 경영 혁신의 목적은 감원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자신에게
는 그렇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방송사의 감원 사례를 들며, 불안하다는 얘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시청자를 상대로 혹시 질문이 있는지를 물어보았고, 전
화로 한 사람을 연결해주었다. 나는 그로부터 조금 전에 프로듀서로부터 들었던 것과 똑같은 질
문을 받았다.
나는 이 일을 통하여 경영 혁신은 체질 개선이고, 그것은 또한 감량을 포함한 일련의 행위들이
며, 그 속에 나와 내 가족의 하루하루의 밥그릇이 달려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뿌리 깊은 불안감임을 알았다. 밥그릇이 다른 사람의 손에 쥐여져 있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우리들의 본질적 두려움은 새로움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얼마나
많이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변화를 바라왔는가?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반란’을 느껴보
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보 사태를 보며 ‘우리 나라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끔찍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아울러 수 천억 원씩 뇌물을 공여 받고 감방 안에서 나란
히 복역했었던, 과거 친구 사이였던 두 명의 전직 대통령들-그들은 이제 서로의 우정마저도 잃었
지만-을 보고, 아직 우리가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개인은 새로움을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대개의 경우, 어제의 인간으로 남아 오늘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 이유는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관성과 같다.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그대로 있으
려고 한다. 정지 상태와 운동 상태의 사이에는 단절을 넘어설 때 우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이 단절은 뿌리 깊은 ‘정지하고 싶은’ 관성을 극복함을 의미한다. 일상이 주는 ‘무위’의
편안함이 없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다. 배워야 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더욱 참기 힘든 것은 매
일 그래야 한다는 점이다. ‘작심 삼일’이라는 말은, 우리가 익숙한 생활의 패턴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경구이다. 우리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바라지 않아서가 아
니라, 익숙한 생활이 주는 기득권을 잃어버릴까 두려워서 이며, 일상 생활의 편안함을 놓치기 싫
어서 이다.
꿈을 가지고 일단 개혁을 시작하여 구르기 시작하면, 끊임없는 변화를 일상의 원리로 받아들여
야 한다. 바퀴가 일단 구르기 시작하면 계속 굴려주어야 한다. 구르고 있는 바퀴를 더 굴리고 싶
어할 때, 우리는 변화를 일사의 원리로 받아들인 것이다. 바로 ‘구름’의 관성을 갖게 된 것이
다. 이것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어 이질감이 없다.
이 때 비로소 우리는 점진주의의 혜택을 볼 수 있다. 매일매일 하다 보면 조금씩 더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혁명과 점진주의는 이와 같이 서로 상호 보완적이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이
둘은 동시기에 같이 공존하지 못한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기업의 개혁 이와 같다. 조직은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개혁을 시작하면 직
원은 이미 익숙한 일상의 생활에서 불편을 겪게 된다. 익숙한 업무 관행이 바뀌게 되면 새로운
프로세스를 배워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기득권의 박탈이다. 수년 간의 경험은 그를 담당 업무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 고참으로 만들어 주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를 찾으면 된다. 자신의
일에 관한 한 그는 전문가인 것이다.
그러나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이를 지배하는 원칙이 달라지면, 그도 다시 배워야 한다. 고참
과 후배 사이의 차이가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생활의 불편과 상대적 기득권의 박탈은, 곧 조직 구
성원의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다운사이징의 허와 실
직장 생활의 변화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실직이다. 그러므로 기업이 개혁을 부르짖으면 직원
들은 변화의 극단적 모습인 실직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개혁의 이름
으로 ‘무계획적이고 무책임’한 감원을 감행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다운사이징을 최고 경영자의 권한에 속하는, 조직 혁신의 기술적 대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자체가 경영 혁신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1990년,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국가 교육 및 경제 센터’(National Center of Education &
the Economy)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하여 저임금과 효율적 조직
운영이라는 두 가지 방법 중에서 저임금을 택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75년부터 1988년 사
이에 미국의 연평균 임금 인상률이 6.2퍼센트로, 유럽보다 2.1 퍼센트가 낮고, 일본보다는 무려
5.4퍼센트가 낮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미국 기업의 저임금 선택은 저생산성과 함께 국민의 생활 수준을 떨어뜨림으로써 모두
에게 고통을 줄 뿐이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남아 있는 대안은 효율적인 경영인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지금 저임금을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쪽으로 커다란 원칙이 잡혀 져 가는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경성대 이재희교수가 인용한 자료에 의하면, 현
재 일반 기업의 노무비 혹은 인건비 비중은 11~12퍼센트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다른 분야의 비용이 대종을 이루고 있고, 따라서 효율적 경영의 초점이 이 분야 전반에 걸쳐 맞
추어져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난 5년 간 우리 나라의 임금 상승률이 매우 가파른 상승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의 상무성 자료에 따르면, 1995년 한국의 임금 수준은 조사 대상 국가 27개 나라 중에서 22위 수
준에 머물고 있다. 시간당 임금은 독일 31달러, 미국 17달러, 그리고 한국은 7달러 수준이다.
반면 지난 5년간 한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79퍼센트로서, 미국의 4퍼센트, 일본의 14퍼센트를 크
게 앞지르고 있다. 대만이나 싱가포르 등에 비해서도 두 배 가량 높은 성장률을 보인 것으로 보
고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높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산성은 아직 선진국의 절반 수준 정
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점에서 ‘저임금’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주된 모델로 잡아간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마치 아직도 ‘평생 직장’을 믿고 있고, ‘철밥통’을 주장하는 것과 다
를 바 없다. 경영의 효율성을 통한 경쟁력 향상이 기본적 방향으로 수립되고, 이에 따라 주요 경
영 활동 전반에 대한 혁신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은 어렵다. 경영자에게나 직원에게나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과정이다. 그러나 개방
된 세계 속에서, 무제한적 경쟁에서 기업이 살아 남으려면 이 외의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이야말
로 노사 쌍방이 함께 승리할 수 있는 기본 방향이다.
IMF 시기는 우리가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비상 시국 아래서 처리하도록
만들고 있다. 앞뒤를 가리지 못하게 한다. 많은 기업들이 하루하루를 넘기기가 지옥과 같다고 한
다.
나는 잘 알고 있는 한 기업가에게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어 본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매우
명료했다.
“금리가 높다는 것과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금리가 높다는 것이 잘 보이
지 않아요. 하루하루 부도를 넘겨야 합니다. 돈이 급한데, 어떻게 따질 수 있겠습니까? 나는 지금
돈을 태워서 추위를 견디고 있는 겁니다. 살아 남아야 하니까요.”
비상 시국에는 사안에 대처하는 방식 역시 이례적일 수 있다. 동물적 감각과 순발력에 따라 이
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사방이 불바다로 보이지만, 살 길이 있고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게 마련이다. 지금은 단지 견디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잠시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비
상 시국을 처리했는가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 경우에 따라 빨리 털어버린 포커판이 돈을 따는
방법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대처이다.
기업에게 다운사이징은 저임금의 다른 모습이다. 그것은 효율적 경영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
니다. 그것은 그저 과체중의 사람이 살을 일시적으로 빼는 것과 흡사하다. 또는 사고를 당해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을 지혈시키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다운사이징이 기업을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일시적
으로 체중을 감량한 사람은 식사의 패턴과 내용을 바꾸어주고 적당한 양의 운동을 하지 않는 한,
다시 살이 찌개 된다. 또 지혈이 곧 치료의 전부를 의미하지 않는다. 부러진 뼈를 맞추고, 터진
곳을 꿰매주어야 한다. 그리고 회복을 위한 지속적 치료와 투약과 보신이 필요하다.
살이 나고 근육이 붙어 다시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환자의 의지와, 체계적이고 효율적
인 치료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치유력을 효율적인 경영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다운사이징의 또 하나의 특징은 매우 성금하고 무계획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 이에 대하
여 많은 우려의 소리가 나오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진단보다 절단’이
우선된다는 지적이다.
논리적 수순에 따르면 이러한 지적이 옳다. 먼저 경영의 틀을 바꾸어, 조직이 가지고 있는 비효
율성을 제거하는 과정이세 잉여 인력에 대한 규모가 계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로세스의 리엔
지니어링이 실행되어 10명이 하던 일을 3명이 할 수 있게 되었다면, 이 프로세스에 투입되었던
10명 중 7명은 잉여 인력이 된다. 만일 이들을 다른 프로세스에 투입하여 회사 전체의 부가 가치
를 창출하는데 기여하도록 할 수 있다면, 이들은 여전히 회사가 필요로 하는 자산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회사가 안고 있는 잉여 인력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다운사이징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논리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다운사이
징은 대개의 경우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보다 우선한다. 결국 철저한 검사와 진단 없이, 먼저 잘
라내고 치료하는 비논리적 과정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점은 개혁에 성공한 기업의 다운사이징 과정은 무자비하지만 무계획적이지
는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리스트럭처링이라는 구조 개편을 통한 다운사이징의 방법
을 택한다. 그리고 다운사이징의 다음 순서인 혁명의 제2단계를 준비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
미의 효율적 조직 운영을 위한 경영 혁신인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들은 버전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기업 문화를 만들어가며, 프로세스를 리엔지니
어링한다. 또한 조직의 관리 계층을 줄여가며, ‘코어 컴피턴시’(core competancy)로 불리는 기
술력을 배양한다. 그리고 기술력을 갖춘 정규 직원을 유지 관리하면서, 같은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영 동반자를 모색하여 비전과 경영 체계를 공유함으로써, 기업과 기업의 물리적 경계를
허물어 간다.
실제로 잭 웰치는 1983년부터 1984년까지 2년 사이에 광산, 다리미 등 117개 사업 부문을 매각
해버렸다. ‘중성자 탄’잭이라고 불렸던 웰치는 1981년부터 1985년 말까지 그의 혁명 제1기를
마무리지었다. 그는 그 동안 GE를 상징하는 모든 것을 일소해버렸다. GE의 모든 정체성을 파괴
하고, 지난 것들과의 단절을 선언하였다.
이것은 기존 질서에 대한 정면 공격이었다. 그의 이러한 폭군적 행동은 조직 전체에 어떤 정서
적 에너지를 유발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는 ‘첫째가 아니면 둘째’라는 기준 아래 자산을
매각했고, 대량 해고를 감행했다. 1981년, 약 40만에 달하던 직원의 수는 혁명의 제1기가 끝나는
1985년에 약4분의 3으로 줄어 있었다. 그는 친근하고 안락한 환경을 파괴해버렸다. GE는 혼란과
절망감에 빠졌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GE의 주식에 대한 투자 수익률은 포춘 500대 기업의 평
균 투자 수익률을 점점 웃돌기 시작했다.
1993년 봄, IBM의 새로운 사령탑을 맡은 루이즈 거스너(Louise V. Gerstner)는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이다. 그가 밟았던 혁명의 과정도 잭 웰치가 걸었던 길과 다르지 않다. 그는 리스트럭처링이
는 이름으로 공장을 통폐합하고 부동산을 매각해버렸다. 1996년까지 IBM의 직원은 약 3분의 2수
준으로 줄었다. 직원이 가지고 있었던 자부심은 상실되었으며, IBM은 과거의 영광 속에 묻히는
듯했다.
대학의 경영학과에서 초우량 기업의 대표적 사례로 다루어지던 IBM은 이제 대표적 몰락 기업
의 사례로 바뀌어졌다. 주가는 40불 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리스트럭처링으로 불리는 제1막의
혁명과정이 마무리된 1996년, IBM은 창업 이래 최대의 매출을 올리게 되었고, 주가는 160불대로
뛰어올랐다.
다운사이징은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재무 성과에 직결된다. 경영자들이 가장 먼저 이 일에 관심
을 갖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가시적 성과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재무적 성과가 곧 성공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혁에 성공한 기업은 다운사이징을 리스트럭처링이
라는 사업 구조 개편과 함께 진행시킨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 속에 이미 곧 개혁의 제2단
계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개혁의 제2단계는 혁명의 파괴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새로운 비전이 필
요하고, 핵심 경영자와 중역들의 지원과 협조가 절실한 시기이다. 잭 웰치는 1986년부터 혁명의
제2단계로 접어들었다. 루이즈 거스너는 1993년 취임 후 대대적인 다운사이징을 시작하였지만, 이
미 혁명의 제2단계를 그 안에 심어놓았다. 그는 1995년부터 11개의 주요 경영 분야에 대한 대대
적인 리엔지니어링 작업에 착수하였다.
경쟁력에 대한 오해
나는 IBM 시기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사태를 예견했다고 잘
난 척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한국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될 것이며, 이의 극복을 위해 구조적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경기 순환적 차원에서 어려운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보기보다는, 한국 경제의 구조
적 모순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IMF 시기 이전에 우리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금리가 놓아 금융 비용이 엄청났다. 정부
규제는 아직까지도 개선된 기미가 없다. 임금은 그 동안 이미 많이 올라 있다.
경영 환경의 변화에 대한 경영자의 정보의 부족과 대응의 실패가 눈에 두드러진다. 무리한 사
업 확장과 방만한 차입 경영과 불투명한 자금 관리와 스캔들, 그리고 소유주의 독단적 기업 경영
은 당장 풀어야 할 과제였다.
서울대의 신유근 교수는 한 보고서에서 ‘그 동안 한국 기업의 성공은 인간, 문화, 노사 관계
등의 소프트웨어적 분야에서 매우 특유한 실마리를 잡아 풀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인 취약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IMF 구제 금융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풀지 못한 데서부터 온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만일 IMF 시기를 단지 비상 시국이라는 차원에서 일관성 없이 그때그때를 견뎌 넘기는 자세로
대응하게 된다면, 우리의 파국은 불보듯 뻔하다.
지금은 가장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시기이다. 땜질로 어려운 시기를 적당히 넘길 수 없다.
근본적 개혁을 미루게 되면 파멸이다.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의 기회
는 오지 않는다. 이미 쓰러진 기업에게 어떤 기회가 올 수 있겠는가?
정부는 기업의 ‘정리 해고’를 법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노동법의 개정은
엄청난 저항을 유발시켰다. 그리고 그 시행을 미루었다.
IMF 시기가 오면서 정부는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의 리더십 아래에서 노·사·정의 대타협을
만들어내었다. 실행에 대한 양해는 이루어졌지만, 그 실행 과정은 매우 소란하고 참담할 것이다.
만일 기업이 ‘명예 퇴직’이라는 추가 경비가 발생하는 자발적 퇴직을 유도할 여유가 없다면,
대신 대량 해고를 감행해 나가게 될 것이다. 만일 그 집행에 어려움이 커지면, 취할 수 있는 대안
은 임금을 전면 동결시켜나가든가 감봉하는 방법이다. 어느 것 하나 직원에게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IMF 시기 이전에 노동 조합은 두 가지의 선택 가능한 옵션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하도록 종용받
았다. 조합원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대신, 기업에 남아 있는 조합원의 봉급을 정상적으로 올려줄
것인지, 아니면 모두 남아 상대적으로 적어진 임금에 만족할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한다.
IMF 이전에 논란이 되어오던 총액 임금제였다. 기업으로서는 총액 임금의 차이는 논리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총액 임금의 한도내에서, 퇴직한 사람들의 몫만큼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을 키
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 시기가 되면서 임금의 동결, 혹은 감봉은 아무런 직원의 저항 없이 용인되어 버렸
다. 그리고 ‘고용의 유연성’에 대한 IMF의 요구는 이제 법적인 기반을 얻게 되었다. 대량 실업
은 불가피한 사회 문제가 되고 말았다. 실업자를 위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매우 급한 일이 되
었다.
지금 상황에서 이것처럼 급한 일이 없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과 가
계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실업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내야 하는 악순환이다. 그런 의미
에서 실업 기금의 확충과 아울러 화급한 사항은 우량한 흑자 기업을 지원함으로써 도산에 의한
실업의 양산을 막아가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앞에서 인용한 미국의 ‘국가 교육 및 경제 센터’의 1990년 보고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경쟁력은 저임금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할 뿐이다. 유일한 방법
은 효율적 경영을 통한 경쟁력의 강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다. 어려운 시기의
극복을 위해 감원과 저임금의 옵션카드를 남용하는 것은 미래를 죽이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한국은 앞으로 전과 같이 고도 성장을 이루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고도
성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넓어져가고 있다. 그리고 효율적 경영과 생산성의
향상은 고용을 감소시키고 있다. 이것은 이미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명백한 현상이다. 이것을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저성장과 고용 감소의 대가는 상대적인 물질적
빈곤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생산성과 고용에 대한 다음과 같은 예를 생각해 보자.
루마니아의 독재자가 차우세스크는 죽었지만, 그가 남겨준 어두운 유산은 아직도 루마니아 국
민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그러나 그의 생일이 되면 그가 묻혀 있는 공동 묘지에는 꽤 많은 참배
객이 모인다고 한다. 참배객 중 한 명이 참배 현장을 촬영하고 있던 TV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
음과 같이 말했다.
차우세스크가 없는 루마니아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때는 직장이 있었고, 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입니다.
이 TV 기자는 묘지를 벗어나, 시가지를 걷고 있던 한 젊은이에게 묘지에서와 같은 질문을 던
졌다. 그 젊은이는 매우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지금의 어려움은 차우세스크의 유산입니다. 그의 정부는 능률이 고려되지 않습니다. 그저 누구
에게나 일자리를 주어 고용했지만, 아무도 그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위해 하는 일
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분명한 사실은 이제 어디에도 차우세스크가 던져주는 일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가치를 창조하
는 사람만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의 사회는 바로 자신의 전문 지식을 통해 가치를 창조
하는 사람들의 것이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지식을 보유하지 못하여 직장에서 밀려나 가
난과 범죄 속에 빠진 ‘무법적 하부조직’또한 늘어갈 것이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경제적 가치는 노동의 시장 가치에 의해 결정 되었다. 그러나 자동화 사회
가 되어가면서 인간의 노동은 더욱더 부차적인 가치로 전락해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를 기술적
유토피아로 안내할 것인지,아니면 참혹한 인류의 몰락으로 몰아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운이 좋
아서,미래 역시 우리 손에 달려 있기를 바랄 뿐이다.
노동의 종말
기업이 고용을 창출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는 책 중의 하나로『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을 들수 있다.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인용항 수
많은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매년 2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반면, 새로이 창
출되는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 부문이거나 임시직들이다.
고임금 일자리의 상실은 비단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독일의 지멘스는 3년간에 걸쳐 1만6천
명의 종업원을 해고했다. 스톡홀름의 식료품 조합인 ICA는 창고와 유통센터를 폐쇄하고 총원가를
50퍼센트 절감했으며 3년 만ㅇ에 수익을 15퍼센트 이상 증가 시켰다. 그러나 그 대가로 전체 노
동력의 30퍼센트인 5,000명을 해고시켜야 했다.
종신 고용을 믿어왔고 가장 성공한 나라의 모델인 일본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일본의 전기
통신 회사인 NTT는 리스트럭처링 과정을 겪으면서, 전종업원의 15퍼센트에 해당하는 3만명을 최
종적으로 해고시키게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미국,유럽,일본,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업의 증가
는 개발 도상 국가로 확대되고 있다. 왜냐하면 다국적 기업들이 전세계적으로 하이테크 생산 설
비를 설치 하면서 기술적 실업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은 다음과 같이 보고 하고 있다.‘소프트웨어 프로
그램과 하드웨어, 그리고 정교한 컴퓨터 네트워크가 노동력을 대신하고 있다. 보다 적은 인력으로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면,인원의 감축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이것은 올바른 지적이다. 노
벨 경제학상을 받은 레온티에프(Wassily Leontief)는 보다 정교한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가장 중
용한 생산 요소로서의 인간의 역할은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경고는 옳다.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보다 정교한 컴퓨터 하드웨어, 그리고 네트워크가 시술적 실업을 만들어
내는 동안,리스트럭처링과 리엔지니어링을 통한 실업 역시 증가하고 있다. 몇몇의 보고서에 의하
면 미국 내 약9,000 만에 달하는 사적 부문 근로자 중에서 약2,500만 명 정도는 이러한 경영 효율
과 노력에 따라 실직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것은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유발시킬 것으로 생각된다. 리엔지니어링 기법으리
창시자로
알려진 마이클 해머에 따르면 리엔지니어링을 통해 보통 약 40퍼센트 정도의 인원을 감축할 수
있으며, 많으면 75퍼센트 정도도 가늘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중간 관리자들의 일자리는 약80퍼센
트 정도 제거할 수 있는 것으로추정하고 있다.
정보 기술과 리엔지니어링은 불가능하다. 그저 꿈일 뿐이다. 과거의 리엔지니어링은 일의 논리
적 작업 과정인 프로세스를 먼저,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정보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반대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먼저,정보기술의 파괴적 힘을 인식하고,그 개념
을 덩어리째 현업무에 연결시킴으로써 업무과정을 재설계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
이다. 이것은 정보 기술이 예측할수 없이 빠르게 움직여감을 반영 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우리가 원하는 시점에,우리가 원하는 장소에서,우리가 원하는 형태로 제
공받을 수 있다는 기술적 성과는 전통적 업무 형태를 완전히 재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 기업 경영 컨설턴트는 ‘우리는 일자리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창출해야 되는지는전혀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애플 컴퓨터사의 회장이었던 존 스컬리
(John Scully)는 기업의 리스트럭처링과 리엔지니어링에 따른 대대적인 불안정이 앞으로 20년간
최대의 사회적 이슈가 될 것으로 예견했 제조업 부문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전 국제 기계
협회 회장이었던 윈피싱어는 한 연구 보다혁명은 진행중인 것이다.
컴퓨터와 리엔지니어링에 의한 혁명은고서를 인용하며,‘향후30년 이내에 세계 전체의 재화를
생산하는데 현재 노동력의 2퍼센트 정도면 가능 할것 ’이라고 전망했다.이 예측은 충분한 근거
를 가지고 있는 것같다.
적어도 그 감소 추세에 비추어볼때,충분히 가능한 예측이다. 예를들어 1950년대에응 미국 전체 노
동력의 33퍼센트가 제조 부문에 고용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절반인 17퍼센트 미만으로
추산된다.
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 비율은 12퍼센트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이런 추세로 간다면 앞으로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인 공장의 출현이 어렵지 않게 예
상된다. 그렇다면 윈피싱어의 말은 농담이 아니다.
생산 분야에서의 실업은 그 동안 서비스 부문과 화이트컬러 직업의 고용 창출에 의하여 흡수될
것으로 전망하는 낙관론자들도 많다. 그러나 자동화와 정보 기술, 그리고 리엔지니어링에 의한 기
업의 개혁은 서비스 관련 분야의 직무를 줄여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국에서는 3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었다. 일부는 국제 경
쟁의 격화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기술에 의한 실업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경
기 순환적인 일시적 실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재고용될 것으
로 보이지 않는다.
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제조 및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전체 25퍼센트
정도로 낮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스위스와 스웨덴 합작회사로서 세계 최대의 엔지니어링 회사의
하나인 보베리사의 최고 경영자인 바네비크(Percy Barnevik)는 현재 10퍼센트에 달하는 실업률이
쉽게20~25페센트에 육박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피터 그러커는 실업에 대하여 매우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연 생산의 핵심적 요소로
서의 노동의 소멸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중 가장 핵심적인 미해결 과제이다.
노동이 없는 세계, 노동에 기초를 두지 않는 사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의 조직 원리와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이러한 변화의 이행에
대하여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대량 실업 시대의 자기 혁명
실업에 대한 사회적 해결은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칠 것이다. 이에 대한 총체적 해결은 아마
환경 문제만큼이나마 풀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경쟁의 어려움을 들어 감원을 결
정 하였다하자. 노동 조합은 기업의 감원 조치에 반발한다. 기업은 곧 차선책으로 임금의 총액을
동결하는 입장을 취할수 있다.
노동 조합이 가질 수 있는 선택은 몇 가지로 축약될 수 있다. 우선 감원 조치를 철회 시키고,
기업의 어려움을 나누어갖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남아 있되, 각 개인의 소득을 줄여가는 것을 의
미한다. 남아 있는 하나의 일자리를 쪼개어 두 사람이 나누어가자거나, 적어도 각 개인이 임금의
동결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 조합이 강한 유럽적 선택의
모델이다.
두 번째의 선택은 감원을 받아들이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생산성의 증가에 따른 적절한 임금
인상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미국이 유형에 가깝다. 세 번째는 두 가지 방안 모두 거부하고 힘겨
루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노동 조합은 연대를 이루어 거리에서 시위하고 파업이 강행된다. 기업은
무노동 무임금을 주장하고 작업장 폐쇠로 맞선다. 정부는 경찰 병력을 투입하고, 모든 국민은 불
편을 감수한다. 이 유형은 지금까지 한극에서 벌어지고 있던 전형적 모습이다. 경우에 따라 프랑
스나 미국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 제4의 현명한 선택이 나오게 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미 들어선
길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이미 길흉을 예측하기 어려운, 어두운 곳을 향한 길에 들어서고 있는지
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숙제의 해결을 정치가,경제학자,경여자와 노동 단체,그리고 온갖 종류의 사회 지도
자들의 손에 남겨두고자 한다.
그들이 이 어려운 숙제를 범사회적으로 풀어나갈 동안,개인으로서 그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밥그릇을 남에게 맡기고 선처를 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 측면에서 이러한
새로운 변화의 이행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에 대하여 함께 논의 했으면 한다. 이것은 독자 한 사
람 한 사람의 문제이기도 한 것처럼 진지한 것은 없다.
우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의 개혁과 경영의 혁신은 불가피한 것이다. 만약
이 일에 실패한다면 기업은 존속하지 못한다. 기업의 성공은 직원 고용의 전체 조건이다.둥지가
부서지면 그 안에 있던 새알은 땅에 떨어져 깨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업의 개혁
과 혁신이 성공하여 경쟁력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계속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고,성장할수 있
는 기업이 될수 있도록 개혁에 동참하여야 한다.
어려운 시기에서 기업의 최고 경영자조차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 오직 고객만이 고용을 보장
할수 있다. 그들이 물건과 서비스를 사주면 기업은 성장할 수 있다. 모든 혁신이 ‘고객중심’이
라는 기본적 명제로 회기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그들만이 돈을 가지고 있고,기업은 존속과 성
장을 위하여 그들의 돈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의 성공은 그러나 잉여 노동력의 감원을 수반하여 갈 것이다. 기술 실업이 심한 곳은 살펴
본 바와 같이 생산 부문이 가장 심각하다. 또한 서비스 분야라 하더라도,단순 반복적인 업무로 그
부가 가치가 작은 직무는 사라져갈 것이다.이것은 현실이다.이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거부하는
순간,당신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왜냐하면 당신은 위험의 경고 신호를 무시했거나,
으;도적으로 무관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기업이 요구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상 해고될 이유가 없다.그러므로 개인적
으로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변화를 인정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창출해가는 것이다.이
것은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기계는당신보다 수십 배 수백 배 힘이 세다.
기계와 경쟁해서는 승산이 없다. 당신이 창조하는 가치가 유일한 것이며,적문적이며,노동의 대
체가 어려울수록 당신은 안정적이며 더욱 윤택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후기 자본주
의 사회의 기본적 특징을 ‘지식사회’라고 규정하는 이유이다.
기업은 종사하는 산업에서 필연적으로 핵심 기술 인력만을 유지 하려고 할 것이다. 정규 직원
을 많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든다. 따라서 나머지 단순 반복적이거나 쉽게 대체 가능한
부문은 외부로부터 사오는 아웃소싱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아웃소싱은 최근,매우 전문적인 부문
을 빌려오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컨설턴트의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전문성을 개발하고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느낄 수 있
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 것의 어려움을 작가인 아나이스 닌은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묘
사하였다.
사람들은 익숙한 인생의 사이클로부터 박차고 나와야 한다. 도약은 어려운것이다. 자신의 신념
을 되살리고,자신의 사랑을 다시 살리고 싶은 그 순간에 그 신념,그 사랑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된
다.
학교 선생이었다가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가 된 윌리엄 브리지스(william Bridges)가 자신의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려 할 때 느꼈던 절망감을 함께 나누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의 학창시절,물리학자나 건축가,혹은 예술가나 사업가로서의 재능을 보이는 동창생들을 부러
워 했다. 그들에 비하면 그는 능력도 없고 재주도 없었다. 그가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에세이
를 이해하고,학교 행사를 기획하고,선생님이 안 듣는 곳에서 농담을 하여 아이들을 웃기는 정도였
다. 그가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 것은 수비라인을 뚫고 터치다운을 하여 응원단장인 여학생이 자
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소질이 없었다. 그는 상급반에 진학하면서 몇 가지 기능을 익혔는데,그렇게도 하기
싫어하던 타이핑도 그때 익혔다 -이것은 나중에 그의 주요한 자산이 되었다. 그는 그저 성적이
괜찮은 평범한 아이였다. 그는 졸업후에 재미있을 것 같아서 교직을 선택 하였다. 이 선택은 진정
이었다. 그에게 교직은 집안의 대물림 직업이었다.
그후20년이 흐른뒤,그는 교직이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
상 이력서를 작성하려고 하니 온통 교직에 관련된 사항뿐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
였다. 경력은 여기저기에서 교편을잡았던것이 전부었다. 자신을 추천할수 있는 사람들도 모두 동
료 교사나 교수,대학 총장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력서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흠,그럼 또다시 교편을 잡을 생각은 없나요?”라
고 반문하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수 있었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교직을 떠나는 일인데,그가
할 줄아는 것은 가르치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절망이었다. 자기를 추천해야 할 과거의 경력이 모
두 자기가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곳으로 자신을 몰아갈때,우리는 벗어나려는 인생의 익숙한 사이
클로 한숨을 쉬며 되돌아가게 되는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1980년대 초반에 미국의 한 대형 철강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다. 회
사는 실딕하게 된 직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재취업 훈련을 시켜주겠다고 제의
했다. 그러나 이 훈련은 도움을 주지 못했다. 결국 철강 근로자들은 실업자가 되어 있었거나,그
외의 다른 일자리를 잡았다.
그 이유를 알아본 심리학자들은 그들이 심한 정체성의 위기를 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내가 어떻게 다른 일을 할 수가 있어. 난 선반공인데’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윌리엄 브리지스는 새로운 커리어를 개발하여 기업이 요구하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려면, 먼
저 다음과 같은 낡은 편견을 깨뜨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들이 바로 길을 나서는 당신
의 발목을 움켜잡고 있는 적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이러한 편견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문화적 환
경 속에 기초한 것이지만,많은 경우 우리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우리의 산업 발전 단계와 사회적 통념에 기초하여 공감대가 넓은것만 골라 설명을 붙었다.
첫째,좋은 직장은 잡기 어려우므로 절대로 놓치지 마라
이미 시장에서는 직장이 서서히 없어져가고 있다. 당신이 지금 꽉 잡고 있는 직장도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섣부른 행동을 하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이 편견은 낡고 위험한 규칙이니,도
전해 보라는 것이다.
둘째,훌륭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좋은 직장을 잡는다
이것은 반밖에 맞지 않는다. 자격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과거에 자격은 학벌,
학위,자격증,유사한 기업에서의 경력,유명인의 추천 같은 것들을 의미했다. 이것들은 그러나 도움
을 줄주 있는 자산 같은 것이다.
오늘날 기업이 원하는 새로운 자격은 그 일을 하고 싶어하는 욕망과,그 일을 잘할수 있는 능력
이다. 또한 당신이 기질적으로 얼마나 그 일에 적합한가가 더욱 중요하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
에서는 이것들만이 유일한 자격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셋째,마흔 이후에는 직장을 바꾸지 마라
당신이 떠나려고 하는 세계에서는 이 원칙이 통용된다. 그러나 당신의 욕망과 재능에 충실하라.
그리고 시장에서 충족되지 않는 필요를 공략하라. 만일 전환 과정의 고통을 완하시킬 수 있는 임
시 방편이 있다면 얼마든지 활용하라.
넷째,당신이 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욕망은 억제되어왔고, 그렇게 키워졌다. 그러나 이제 당신의 욕망에 충실하라. 한 식품
업 최고 경영자는 ‘음식물은 인생이다. 그리고 인생에는 정열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가 인생을 음식물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음식 역시, 음악
이나 미술처럼 그것에 몰입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훌륭한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
다.
한국 추상화의 원로인 유영국 화백은 일흔이 넘어서도 작품을 한다. 그는 ‘나이가 들면 생활
속의 가벼운 흥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마음이 가는대로 새로
운 삶을 만들어보라. 정렬과 흥분이 있는 삶은 욕망에 기초한다. 건강한 욕망에 충실하라. 삶을
낭비하지 마라.
다섯째, 출세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선전하라
이 말 역시 반 밖에 맞지 않는다. 그저 ‘팔아치운다는 개념’은 낡은 세계의 유물이다. 가장
잘 팔리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가장 사고 싶은 것이다. 가장 잘 팔리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가장 사
고 싶은 것이다. 남들의 필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수요에 부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것은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파악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가늠해보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자신의 재능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자산과 개발 할 수 있는 자산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명삼과 사색을 통하여 자신을 좀더 잘 알 수 있다.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새로
운 세상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자신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사람은 보이는 모
든 것을 새롭게 볼수 있다.
또 당신의 기능적 특성과 기질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테스트의 도움을 받을 수 있
다. 그중 가장 신뢰도가 높은 석중의 하나가 마이어스-브릭스 타입 인디케이터(mbti, myers
briggs type indicator)이다. 이것은 융(cArl c.briggs)가 발전 시켜온 업적에 의한 것이다.
당신은 테스트를 통해 당신의 기질적 특성을 쉽게 파악할수 있다. 네 쌍의 상호 대비적인 기능
적, 기질적 특성에 따라 인간을 16가지 타입으로 분류하여 각 타입별 특성을 정리해 놓았다. 아울
러 유의하여 개발해야 할 기질적 장단점을 알아볼 수 있다.
MBTI는 그동안 카운셀링, 심리 치료, 교육, 인간 관계 훈련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이용되어
왔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여러 나라의 기업들이 이를 채택하여 인사관리, 인력개발, 조직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현재 30여국가에서 인간 이해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 테스트를 한국어로 받을 수 있다. 검사를 한 번 받아보아 당신의 기질적 특성을알아보라.
새로운 고용의 원칙
당신은 무가치한 것도 팔아치울 수 있는 엄청난 언변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먼저 가치있는 당
신의 제품을 개발하라. 당신만의 것, 고객의 수요를 가지고 있고, 당신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제
품을 가진 당신만의 회사를 경영한다고 생각하라.
‘가장 좋은 제품은 마케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하라. 그리고 좋은 제품인지
아닌지는 고객만이 평가할 수 있는 것임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만일 당신이 앞에서 지적한 낡은 원칙들을 마음에서부터 몰아내었다면, 다음과 같은 새로운 고
용 원칙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당신의 마음에 패러다임의 공백이 생겨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
첫째, 회사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가치이다.
한국에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하다. 그리고 이것은 엄청난 힘이었다. 직원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했다. 가정보다 일이 우선이고 회사가 먼저였다. 얼마나 많은 가장들이 하숙생 같은
아버지이며 남편이었던가.
그러나 이제 이 충성심은 급속한 속도로 무너질 것이다. 미국적 사고에 의하면, 충성심이란 더
이상 기업경영에 그리 대단한 경영 요소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것은 그저‘회사가 좀 신통치
않더라도 참고, (나처럼 유능하고 필요한 사람이) 좀 더 남아 있어주는 것’이거나, 반대로‘직원
이 좀 신통치 않더라도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것’정도로 쌍방간에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기술 혁명과 경영 혁신에 따른 효율성의 증가는 충성심에 따른 고용 관계를 매우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지금 회사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당신이 만들어내는 가치이다. 과거에 미국의 시카
고 광고 대행사의 중역이었다가 실직하고, 얼마 전까지도 시간당 10달러의 임시직을 맡아 일하고
있는 한 평범한 월급쟁이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하라.
나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전적으로 충성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세계가 바뀌어
있었다. 회라로부터 온 메시지는 이런 것이었다.‘우리는 당신의 충성심 따위는 필요 없어. 중요
한 것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야.’
나는 마치 어빙의 단편 소설인「스케치북」에 나오는 주인공 립반 윙클(Rip Van Winkle)이 된
기분이었다. 20년 동안이나 잠에 빠져 있다가 세상에 나온 그가 느꼈을 당혹스러움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진 것이다.
둘째, 기업과 개인과의 관계를 대등한 협력 관계로 만들어라
고용의 유지 여부는 회사가 성취한 성과에 달려 있다. 당신과 회사는 그러므로 협력 관계에 있
다. 당신은 지금, 회사와 당신이 맺은 고용 계약이 언제까지나 유효한 것이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
다. 마치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때 썼던 양피지의 계약처럼, 자신의 시간과 정
열을 판 대가로 얻게 될 생계 유지를 위해 맺은 고용 계약서가 파기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기업에게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면 이 계약은 파기될 것이다. 이제 오히려
고용 계약은 조건부라고 생각하라.‘피고용자’라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
가 마치 협력 업체에게 아웃소싱된 것처럼 행동하라. 회사는 당신의 고객이다. 그리고 동료 역시,
당신에게 도움 받기를 원하는 고객이다. 그리고 고객은 당신이 믿을 수 있고 사려 깊은 전문가이
길 바란다.
당신을 찾아가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보여주어라. 그러면 당신은 피고용자의 입장에서 회
사의 진정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입장이 바뀌게 된다. 이때 당신은‘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
를 떠나 대등한 위치에서 스스로의 비즈니스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고용자에게 매달리지 마라. 그의 선처와 관용을 바라지 마라. 당신의 밥그릇을 그에게 맡기지
마라. 가장 확실한 밥그릇의 확보는 당신이 항상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그가 당신을 통해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라.
자기 안에 가장 강력한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는 당신은 이제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이 단어
는 이제 물리적으로 사망 신고를 끝냈다. 공산주의라는 아름다운 개념은 이제 더 이상 현실이 아
니다. 그러나 미래의 자본주의가 이 개념의 아름다움을 어떤 다른 방법으로 구현하지 못하면,‘생
산적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매우 파괴적인 불법적 하부 구조’를 양산함으로써 인류는 매우 힘
든 어두운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스스로 실업의 가능성으로부터 빠져나오라. 피고용자라는 수
동적 위치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라.
셋째, 고정적인 직무(Job)보다 가변적인 역할(Role)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라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여러 기능을 가진 직원들이 모여 이루어진 프로젝트팀의 한 일원에게
맡겨진 역할이다. 이제 고정적‘직무’(Job)에서부터 매우 가변적인‘역할’(Role)이라는 형태로
일이 부과된다. 한 예로 컴퓨터 서비스 업체인 EDS는 철저하게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된다. 이 회
사의 가장 중요한 포지션의 하나는 프로젝트팀 리터이다.
톰 피터스는 이 프로젝트팀 리더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관찰했다. 그는 팀 리더의 기능이‘구
체적으로 명시된 고정된 직무라기보다는 유동적인 역할’에 가깝다고 결론을 내렸다. 직원들은
프로젝트에 따라 자주 이동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어디에도 고정된 직무가 존재한다고 믿지 마라.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뛰어들어‘
끝내준다’는 생각을 하라.“이건 내일이 아니야. 이걸 내가 왜 해. 내가 바보인 줄 알아?”라고
말하지 마라. 그 대신 이렇게 말하라.“나는 그 일에 관심이 있어. 그 분야의 전문가거든. 그리고
지금 당신을 도와줄 시간도 있어. 그래, 내가 도와줄께.”
당신은 어쩌면 지금 하루하루의 반복되는 일과 때문에 정신 없이 바쁠지도 모른다. 항상 서류
더미 속에 묻혀 있을 수도 있다. 누구를 도와줄 마음의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만일 당신이 정
말 그런 상태에 있다면 빨리 그곳에서 빠져나와라. 당신은 지금 매우 위험한 늪 속에 있다. 유능
한 리엔지니어링 전문가가 가장 먼저 손대는 분야가 바로 그곳이다.
당신은 기계와 기술이 대신해줄 수 있는 곳에 있다.‘바쁘다’는 것은‘필요하다’라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먼저 왜 바쁜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당신의‘바쁨’이 얼마나 많은 가
치를 만들어내는지 자문해보라. 그리고 더 조용히, 당신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라.
만일 당신이 하는 일이 단순 반복적이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직무는 곧 없어지
거나 다른, 보다 경쟁력있는 방법으로 대체될 것이다.
만일 오랫동안 그런 방식의 직무가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면, 경쟁력을 잃은 당신의 회사가
통째로 없어지고 말 것이다. 당신은 결국 회사의 경영 혁신 과정에서 없어질 직무를 끌어안고 있
다가 해고되거나. 개혁에 실패한 회사가 문을 닫게 될 때, 다른 동료와 함께 실직하게 될 것이다.
넷째, 직위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 기술력을 개발하라
이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당분간 감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인간이란 매우 우스
운 존재이기도 하다. 건강한 소시민일수록 사회가 정한 규범과 규칙을 준수해가며 살아간다. 그들
은 그 틀을 존중한다. 직장 역시 가장 중요한 작은 사회로서, 우리가 매일 생활을 하는 곳이다.
한 사람이 처음 회사에 들어오면 말단 직원으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세월이 지나 그는 계장도 되고 과장도 된다. 월급도 좀 나아지고 밑에 부하 직원도 생기게 된
다. 귀밑머리가 희어지고 배에 살이 찌기 시작하면, 다시 부장으로 승진한다. 중간 관리자로서 그
는 자신이 좀더 승진하여‘별’이라도 하나 달고 퇴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같은 임원이
라도 부하가 많고 강력한 부서에서 껍데기가 아닌, 진정한 실세로 활약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노
력한다.
이것이 소박한 월급쟁이의 꿈이다. 여러 가지 궂은 일을 격어가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이
정도의 꿈이야 꿀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지만 이 꿈은 이제부터 꾸면 안된다. 차라리 복권을 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는 허망한 꿈이다. 기업의 피라미드 조직은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다. 관리의 계층이 줄어들
어, 최고 경영자에서부터 말단 직원까지의 계층적 구조가 납작한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
보다 분권적 조직으로 떨어져 나가기도하고, 네트워크 조직으로 바뀌어가면서 조직은 계층적
직위의 수를 양산할 수 없게 되었다. 간혹 직원의 심리적 만족을 위해 명목상의 호칭 체계를 고
심하여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그 개념은 과거와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부하가 하나도 없는 전
무나 상무가 있다. 그는 타이틀에 걸맞는 예우를 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IDEO 프로덕트 디벨롭먼트(IDEO Product
Development)사는 대형 산업 디자인 회사인데 직원을 약 130명 가량 거느리고 있다. 인크지에 따
르면 이 회사는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중소기업으로 꼽힌다.
이 회사의 특색은 직원들의 직위가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상사도 없고, 부하도 없다. 디
자이너들은 프로젝트별로 팀을 구성한다. 각 팀에는 팀장이 있다. 그러나 팀장의 권위는 그 프로
젝트가 계속되는 동안만 인정된다. 오늘 매니저인 사람도 내일 평직원이 될수 있다.
많은 기업의 경우,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결국 개인의 회사에 대한 기여
도에 따라 실질적인 보상 체계를 연동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한 예로 휴렛 패커드사는
대부분의 부서에서 직원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랭킹(ranking)을 사용한다. 즉 특정 그룹의 직원을
모두 집합시켜, 그 그룹에 기여한 가치에 따라 서열을 정한다.
이 가치를 결정할 때 각 직원들의 일은 고려되지 않는다.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그 그룹 전체
에 대한 총체적 기여도를 기준으로 서열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새로운 대안이
고, 결점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기업이 과거의 전통적 경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는 점을 받아들이고, 그 방향에 대하여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성격에 따라 기여도의 기준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기술
력 수준이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는 점이다. 기업의 사업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기술 인력
집단을 분류하고, 이들을 특별 관리해가는 방법이 확산되어가리라 기대된다.
이들은 조건이 더 좋다면 언제나 경쟁 업체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이러한 이동을 막아주었으나, 이제 기업과 직원 모두 이것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 시장에서의 경쟁력있는 보상
체계가 필수적이다. 모두에게 경쟁 업체보다 더 많은 보상을 해줄 여유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할 수 있고 쉽게 대체 가능한 인력은 고용의 안정성이 떨어지며, 그 보상도 높
게 가져가기가 어렵다. 개인으로서의 당신은, 그러므로 과거의 직급 체계를 마음에 두지 마라. 그
대신 반드시 필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으로 분류될 수 있도록 시간과 노력을 경주하라.
다섯째, 부서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다. 프로세스를 이해하라.
부서 조직이란 사람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지, 일을 하기 위한 구조가 아니다. 일은 범부서적 횡
적 흐름을 가지고 있다. 일은 부가가치 행위의 논리적 흐름에 따라 이루어 진다. 따라서 전체의
프로세스를 이해할 때, 비로소 내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아담 스미스의 분업의 원칙은‘나는 나의 일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산업혁명 시대
의 초기가 아니다. 전문가의 시대인 지금은‘일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나가는 것’이다.
일을 수행함에서 부서적 연대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범부서적 연대와 협력이다. 연구, 설계로부
터 시작하여 생산, 판매, 유통, 설치 및 유지라는 일반적인 경영 활동은 이에 대응하는 각 부서를
만들어내었다.
인간의 유대 관계 역시, 주로 이 부서적 조직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같은 부서끼리 모이고,
함께 먹고, 함께 마신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며, 같은 상사에게 보고한다. 이들은 서로 미운
정 고운 정을 모두 함께 나누는 공동의 집단이다. 이 속에서의 일은 최대한의 협조와 융통성 속
에서 잘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일의 영역이 다른 부서로 넘어가게 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다른 부서는 다른 각도의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영업 부서는 물건을 많이 파는 것이 최우선적 과제일 수 있
다. 경리 및 재무 부서의 관심은 매출액 자체보다는 이익의 크기와 주어진 경비 규모 한도 내에
서 판매 경비가 관리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한다. 이것은 상호 규제에 의한 관리 모형이다. 이
때는 부서간의‘체크 앤드 밸런스’가 중요하다.
이러한 이해의 차이는 두 부서를 서로 적으로 만들어 간다. 영업부서의 직원들은 대부분‘장사
하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은 다른 부서의 도움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경쟁 업체보다도
도와줄 태세가 되어 있지 않은 다른 부서의 직원이 오히려 적인 것이다.
직원들의 의견을 정규적으로 모니터하고 있는 어느 기업의 자료에 의하면, 팀워크의 관련 항목
들에 대한 지수들 사이에서 전형적인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같은 부서 내의 팀워크에 대한 평가
는 매우 좋게 나타나는 반면, 범부서적 팀워크는 매우 우려될 정도로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항상 다른 부서가‘좀더 잘 도와주었으면’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범부서적 유대가 잘 이루어지려면, 전체 그림을 이해하고, 이 속에서 서로를‘내부 고객’으로
인식하는 사고의 전환과 적절한 유대관리가 필요하다.
당신이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이해하라. 우리는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없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의해 혜택을 받고 있는 동료가 누구인지 알아보라.
그런 다음 그를 찾아가서,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물어보라. 나아가 자신이 제
공한 서비스에 대하여 그가 만족하고 있는지 수시로 모니터하라. 이것이 바로 기업 내에서 당신
이‘고객 중심적인 당신만의 1인 기업’을 운영하는 방법이다. 마치 당신이 사장인, 하나의 훌륭
한 기업을 운영하듯 행동하라.
여섯째, 변화를 일상의 원리로 받아들여라
변화에는 공포가 따른다. 미래의 기술을 만들어가는 실리콘 밸리의 첫 번째 룰은 스피드와 변
화이다. 이것이 바로 실리콘 밸리의 생명이며 생존 전략이다.
1995년 10월, 기업이 처음 공개될 때 1억 2천만 달러가 물려들어 반도체업체 중 최고 기록을
세웠던 ESS 테크놀로지의 후버 첸 부사장은 인텔의 창업자인 앤디 그로브를 닮고자 하는 40대의
인물이다. 그는 미래를 만드는 실리콘 밸리의 사람들이 가지고 잇는 가장 큰 두려움이, 역설적이
게도‘미래에 대한 공포’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제품의 디자인이 완결되기 전에 벌써 고개의
주문이 달라진다. 제품의 주기가 이젠 9개월도 안된다.
실리콘 밸리에서 살아 남으려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미래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들은 항상 변화와 스피드로부터 공포를 느끼며, 이를 따라잡기 위해 매일 악몽을 꾸고 있다. 실
리콘 밸리의 생명력은 끊임없는 혁신에서부터 나온다.
변화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 두려운 것일수록 친구가 되면 힘이 된다. 변화를 이해하고 동지로
삼아라. 강력한 기술력에 의한 충격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들이 당신들의 일을 상당량 대신해줄
것이다. 당신이 가장 하기 싫어하던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사무적인 모든 일을 대신할 것이다. 만
일,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이런것들이라면 당신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를 모색하여야 한
다.
가장 빠른 속도로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기능을 활용하는 분야로 진입하라. 그것은 주로 우리
의 우측 뇌가 담당하는 영역이다. 즉, 창의력, 직관력, 지각력의 부문이다.
「소우주」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조지 길더는 아무리 발달된 슈퍼 컴퓨터라도, 인간들이 매일
보고, 듣고, 느끼는, 간단한 지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여러 광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것, 가장 창조적이며, 가장 인간적인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회복이란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의 전락을 인정해야 한다. 산업혁명을 통
해 인간은 육체적 노동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공장과 사무실에서 단순
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도록 강요당했다. 조립 라인은 분업의 기계적 반복을 작업의 룰로
설정했으며, 표준적인 절차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도록 만들었다.
관료주의는 어제와 같은 오늘, 그리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관리하는 체계적 조직 관리의 모델
이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혁신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자기 혁명의 기본적 방향
은 자신과 기술을 통합시키는 것이다.
앰벡스(AmBex) 벤처 그룹의 이종문 회장은 오스트리아제 권총인 글록(Glock) 45를 차고 다닌
다. 2년 전 실리콘 밸리 담당 보안관이 체포한 갱으로부터 이 회장이 납치 후보 명단에 올라 있
다는 것을 알아낸 후 허가해준 것이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그처럼 총을 가지고 다니는 최고 경영자가 전부 11명이라고 한다. 부에 따
르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한 수단인 셈이다. 종근당을 창업한 이종근 회장의 동생인 이 회장은 벤
처 기업과 창의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 말 속에서 어떤 강력한 힘을 느끼고 있
다.
벤처란 동질의 인간들이 모여서 되는 게 아닙니다. 동질적인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는 사회에는
창의성이 없지요. 자유분방하게 풀어놓고 개성을 살리는 교육을 해야 소프트웨어가 나옵니다. 또
요즈음은 만드는 것을 좀 싸게 만든다고 되는 세상이 아닙니다. 같은 값이라도 소비자를 자극하
고 흥분시키는 제품을 만들어야 되고, 그러려면 테크놀로지가 들어가야 합니다.
창의력의 향상에는 지식과 정보가 생명입니다. 안테나만 높이 세운다고 정보가 수신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발신을 해야 정보는 흘러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휴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매
일 누군가와 만나야 합니다(그는 자신의 휴먼 네트워크가 약 200명쯤 된다고 한다. 그리고 잡지
만 40~50개를 본다고 한다).
지식과 정보가 우리로 하여금 다르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은 비단 사업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
은 아니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라는 좋은 책을 만들어낸 유홍준 교수는 책의 서문에서, 미술에 대
한 안목을 갖추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재치있는 충고를 하고 있다.‘인간은 아는 것
만큼 느낄뿐이고, 느끼는 것만큼 보인다.’참으로 뜻 깊은 말이다.
그렇다면 알고자 하는 욕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는 정조 시대의 문인 유한전이 석농 김광국이라는 사람의 수장품에 부친글을 인용하고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마치 가을 햇빛 속에서 익어가는 과일처럼 고운 성숙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사랑을 할 때, 우리가 느끼는 지각의 힘은 대단하다. 이제 시처럼 쓰여진 동양적 표현과, 서술
적이며 날카로운 서구적 표현의 차이를 잠시 비교해 보자. 다음은 모티머 아들러 교수가 쓴「독
서술」이라는 책 속의 한 대목을 인용한 것이다.
사랑에 빠져서 연애 편지를 읽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읽는다. 그
들은 단어 한마디 한마디를 세 가지 방식으로 읽는다. 그들은 행간을 읽고, 여백을 읽는다. 부분
의 견지에서 전체를 읽고, 전체의 견지에서 부분을 읽는다. 콘텍스트와 애매성에 민감해지고, 암
시와 함축에 예민해진다. 말의 색깔과 문장의 냄새와 절의 무게를 알아차린다. 심지어는 구두점까
지도 고려에 넣는다.
사랑할 때, 우리는 오감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감정은 슈퍼 컴퓨터도 해줄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을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과 정열을 가지고 스스로를 점점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사
람으로 만들어가라. 변화 없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변화와 혁신을 일상의 원리로 받
아들일 때, 우리는 이미 엄청난 변화를 시작한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공포는 모든 사람이 넘어야 할 관문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참
으로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기업의 가장 커다란 가치는 바로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은 매우 정교하고 민감한 자신이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한 감원과 대량 해고를 서슴지않는 경
영자가 있다면, 이는 사회적인 공적이라고 못박고 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기업의 경영 혁명은 직원들의 참여와 지원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변화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이 변화의 주체가 될 때 비로소 당신의 경영 혁
명은 일상 생활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당신의 고객이 그 변화를
감지하고 좋아하게 된다. 당신은 성공한 것이다.
경영자는 단지 높은 사람이 아니다. 전용 비행기를 가지고 있고, 기절할 만큼 엄청난 연봉을 받
으며, 직원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 지불되는 대가 역시, 그가 기업에 기여한 가치에 해당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는 기업의
미래를 보여주어야 하며, 솔선수범하여 그 길을 향해 앞장서야 한다. 모범이 곧 리더십인 것이다.
그 역시 한 개인으로서 자기 개혁과 혁명을 체험해야 하며,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기업이 어려
워졌다면 1차적으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다. 특히 한국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해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어려운 시기의 리더는 누구보다도 어려운 처지에 있게 마련이다. 리더로서의 어려움과 자괴감
을 나폴레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자유롭게 이를 실행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배의 키를 잡고 힘센 선원
들과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결은 항상 더 거칠었다. 진실로 나 자신의 주인이 된적이 한번
도 없었다. 나는 항상 환경의 지배를 받았다.
가장 강력한 리더의 한 사람으로 인류에게 부각되어온 이 배짱 좋은 코르시카인도 어려움을 느
꼈다면, 앞에 서서 다른 사람을 데리고 새로운 길을 나서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
닐 수 없다. 경영자에게 주어진 특별한 예우는, 바로 이러한 어려움을 수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가이다.
제 5장 1인 기업
자신을 마치 한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는 대응력이 민활한 “1인기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우
선 회사와 자신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충성심과 가지고 있는 시간을 판
대가로 먹거리를 제공받는 고용 관계 아니라, 계약에 의한 상호 협력 관계라는 새로운 인식은 스
스로를 직장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1인 기업의 경영주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한다.
“평생 직장”이라는 추억
직장은 영원하지 않다. 한국에 있는 모든 근로자는 이제 이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평생직
장’은 더 이상 지켜지지 않는 추억이 되었다.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한 오늘날의 직장의 모습은
산업사회가 막을 내리고 있는 지금, 다른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 정보와 지식의 사회는 새로운 미
래의 모습으로 이미 와 있고, 직장의 모습 역시 이러한 변화에 맞게 바뀌어가고 있다.
1996년, 영국 정부를 위해 준비한 한 연구 보고서는 노동 시장의 유연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 1995년, 시간제 근무자(24퍼센트), 자영업자(13퍼센트), 임시직 근로자(6퍼센트)의 합은 전체
노동력의 43퍼센트에 달하며, 여기에 실업률 8퍼센트를 더하면 51퍼센트의 노동력이 정규 직원이
아닌 근로자로 생활하고 있다.
. 조직 안에서 근무하는 정규 근로자가 아닌 근로자들의 비율은 실업률을 제외하고, 1985년에
37퍼센트, 1995년에 37퍼센트, 1995년에 43퍼센트이며, 2005년에는 46.5퍼센트 정도로 추산되어 그
비율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으며,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영국에서의 평균 직장 근무 연수는 약 6년 정도에 머물고 있어, ‘영구직’이라고 불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미국의 경우도 크게 보아 별로 다르지 않다. 찰스 핸대(Charles Handy)의 「책 「헝그리 정신
The Hungry Spirit]에 제시된 자료에 따르면, 시간제와 임시직 근로자의 수는 약 26퍼센트로, 영
국에 비해 약 4퍼센트 정도 더 적다. 자영업자의 경우는 약 반 정도에 해당하는 6퍼센트에 머물
고 있고, 실업률도 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 합해서 약 37퍼센트의 사용 가능 노동력이 조
직의 밖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평균 직장 근무 연수는 약 6년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유럽 국가들의 수치는
이 두 나라의 중간 어디쯤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으로 아려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지
조직밖에서 일하는 노동력의 비율이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직장은 점점 더
많은 정규 직원을 방출하게 될 것이다.
경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이 직장에 계속 다니는 것만은 아니다. 이미 3분의 1에서 2분
의 1정도의인력이 다른 형테로 생활을 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직장에서 끝까지 남아 있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갈라진 틈 속으로 자구 밀어 넣어 바위짬에서 오도 가도 못 하게
된, 겁먹은 암벽 등반가와 같다. 위험해 보이지만, 자신의 손과 발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바
위의 바깥쪽으로 나오지 않고는 바위를 기어오를 수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직장을 뛰쳐나오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 놓이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결코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황이 만들어놓은 불행한 희생자로 자처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준비를 서두른다. 그리고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수요를 찾아내는 일에 부지런하
다.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다.
직장인에서 경영인으로
직장인들은 명함을 가지고 있다. 명함에는 자신의 직책과 직위가 프린트되어 있다. 이것은 대체
로 조직 내에서의 자신의위리를 규정해 준다. 사람들은 이 위치에 따라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명함은 곧 그사람의 현재의 평가와도 일치된다. 어떤 사람은 빨리도 조직 내에서 좋은 자리를
잡았고, 또어떤 사람은 오래 있었건만 그저 그런 자리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속된 말로 말하자면
능력이 없거나 빽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명함의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이상한 주술을 가지
고 있어 사람을 주눅들게도 하고, 헛되이 목에 힘을 주게도 한다.
스스로 힘을 가지려면 명함의 주술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자
신의 경영자라고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다른 시각에서 자신의 일을 해석하는 힘을 제공한
다. 자신을 마치 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는, 대응력이 민활한 ‘1인 기업’이라고 규정하는 것
은, 우선 회사와 자신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게 한다.
충성심과 시간을 판 대가로 먹거리를 해결 받는 고용관계가 아니라 계약에 의한 상호 협력 관
계라는 새로운 인식은, 스스로를 직장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1인 기업의 경영주로서의 새로은
출발을 가능하게 한다.
Y씨는 어떤 기업에서 고객들의 신용 상태를 평가하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직책은
한국이 IMF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되고 기업의 도산율이 높아지게 되자, 이 회사가 파는 고가의
상품애 대한 판매와 미수금을 관리하기 위해 신설된 것이다. 실제로 이회사는 1997년에 도산한
기업들에게 판 물품 대금의 상당 부분을 아직 받지 못했다.
장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판 물품대를 회수하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팔고 돈을 떼
이는 것보다는 사전에 지불 능력에 대한 심사를 거쳐, 안전한 경우에만 거래가 가능하도록 고객
의 신용평가 기준과 프로세스를 확립할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
경영이 항상 그렇듯이, 이 경우도 영업과 관리의 균형, 수익과 리스크 사이의 균형이 필요한 것
이다. 그의 직무는 고객이 되고자 하는 기업의 재무제표, 과거의 대금 납입 실적, 신용 전문 평가
기관의 신용 감정서 등을 참고하여 그 기업의 신용 등급을 정하고, 이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영업 부서에 전문가 의견을 주어 최소한의 리스크 속에서 영업이 이루어지게 자문하
고, 관리하는 것이다.
이 회사의 이러한 신용 평가 직무는 고맙게도 IMF가 창출해놓은 새로운 고용인 셈이다. 이 직
무는 외부의 전문 기관에 용역을 주어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회사는 Y씨로 하여금 정규 직원
으로서 이 일을 도맡아 하도록 만들었다.
이 경우 Y씨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신용평가관’(Credit Officer)이라
는 한 사람의 직원으로서 자신의 명함에 규정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자신의 상사를 통해 회
사로부터 부여 받은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그 일만을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는 그저 한 사람의 직원이며, 열심히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회사로부터 정해진 급
여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지시에 따라 행하고, 상사에 대하여만 책임을 지며, 직무의 공식적 책
임은 직무를 부여하고 지시를 내린 사람이 지는 전통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Y씨가 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행위 모델은 ‘조직에 매인 사람’이라는 수동성에서
벗어나 개인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이 회사와 1년 정도 계약을 맺은 상태이
며, 이 계약을 통해 적절한 신용 등급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협력관계에 있는 1인 기업의
경영자로 행동하는 것이다.
한 번 맺으면 몇년이고 고용 계약이 지속되는 관계가 아니라, 한해 동안의 실적과 기여에 따라
다음해에 다시 1년정도의 재계약이 이루어지는 협력사의 관계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자신을 고용한 회사를 하나의 고객으로 보는 시각을 가져다준다. 신용
평가 프로세스가 하나의 기준을 갖고 영업 행위에 통제와 제약을 가하는 것만이 아니라, 영업 행
위가 건전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프로세
스의 고객은 회사의 재무 샹태를 관리하고자 하는 경영자들이기도 하지만, 이 프로세스를 통해
물건 값을 떼이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있게 된 영업부 직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객 집단들 사이의 상이한 요구는 갈등을 야기시킬 수 있다. 모든 경영 활동이 이러한 상이한
요구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이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고객사가 이회사로부터 고가의 상품을 구입하고 싶어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신
용평가결과, 이 고객사는 신용 등급이 낮아 담보를 제공하거나, 은행으로부터 지급 보증을 받아
와야만 상품을 인도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자. 고객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매우 불
쾌한 일일 수 있다.
영업부의 입장에서는 신용 평가 프로세스 자체에 대한 필요성은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고객사
로 하여금 담보를 제공하게 하거나 은행 지급 보증을 받아 오게 하기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수
없다. 특히 IMF 시기처럼 투자가 줄고, 따라서 고객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주겠
다고 하기만 하면 고맙기 그지없다.
어떻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이 시기를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절
호의 기회로 활용하고 싶어하는 대담한 경쟁자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 경우에는, 이 신용 평가 기
준이 부담이 되지 않을 리 없다.
경쟁력은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 존재한다. Y씨가 스스로를 신용 평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나의 1인 기업으로 규정하고,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가정해보자.
1. 경쟁사를 벤치마킹하여, 현재 이 신용 평가 프로세스가 어떻게 준용되고 있는지 알아본다.
그들 역시 동일한 균형의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객의 구매 의사가 있을 때마다 한건 한
건 모두 신용 평가를 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이것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아니면 ‘별도의 한도(Credit Limit)를 두어, 이 범위 내에서는 별도의 신용 평가를 거치지 않
고, 영업부 책임하에서 거래가 진행될 수도 있다. 이것은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신용 한도액을 어떠한 절차를 거쳐, 얼마만큼 책정할 것인가라는 기술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벤
치마킹은 이런 어려움에 대한 상대적 기준을 제공해준다.
2. 영업부의 간부들과 직원들 중 신용 평가 프로세스에 민감한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
들을 선정하여 , 사전에 충분한 의견을 듣는다. 신용 평가 프로세스가 영업 행위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충분한 의견을 듣고, 그들이 바라고 있는 기대를 분명히 파악한다.
예를 들어, 1998년 매출액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고객사들을 사업부별로 20개씩 선정하여, 이들
에 대한 신용 등급을 사전에 평가하고, 영업에 어려움을 주지 않는 범위네에서 한도를 정해 운영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개진될 수도 있다.
혹은 현재의 자산 규모에 의한 담보 설정 능력보다는 수익성을 그 신용의 기준으로 책정할 수
도 있다. 말하자면 미래의 능력과 수익을 담보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말이다.
3. 경쟁사의 기준과 영업부의 의견을 수렴하고, 적절한 리스크 관리를 요구하는 경영진의 의사
를 반영하여, 회사의 통합적 의지와 일치되는 신용 평가 기준과 프로세스를 정립한다. 경우에 따
라, 이것은 경쟁사의 신용 평가 프로세스보다 통제와 관리의 성격이 더욱 강화된 것일 수도 있고,
리스크를 더 많이 감수한 ㅁ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모델이 선택될 것인가는 경영진의 의사 결정에 달려 있다. IMF라는 어려운 시기에 수익
성은 떨어지더라도 시장 점유율은 잃을 수 없다는 의지가 강하다면, 이 프로세스는 보다 재무적
위험을 감수하는 모델을 택하게 될 것이다. 이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Y씨는 전문가로서 자신의 서비스 품질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을 진다. 그리고 회사는
다른 신용 평가 전문 업체로부터 대행 서비스를 받는 것보다 그로부터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
다는 확실한 인식을 가지게 된다면, 그는 다음해에도 필요한 사람이다.
만일 IMF라는 시기가 끝나, 기업들의 신용상태가 양호해진다면 어떨까? 이 직무는 없어질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1년 정도의 계
약관계에 의해 운영되는 1인 기업의 협력 업체처럼 행동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독립하여 수요가 있는 다른 기업들과 복수의 계약을 맺을수 있으며, 이때 그는 비로소 명
실상부한 1인 기업의 경영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누구나와 사업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
어 있는 것이다.
경영은 투기가 아니다. IMF라는 약어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지게 된, 세계적인 신용 평가 회사
인 무디스사나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사가 쓰고 있는 ‘신용 등급’(Credit Rate)은 대체로 9개로
대별된다. 각각의 대분류 등급은 다시 여러개로 세분되지만, 이 9개의 대분류 중에서 네 번째 즉,
AAA,AA,A,BBB까지가 ‘투자 적합’등급이다.
이를 벗어나는 나머지는 투자가 위험시되는 등급이다. ‘투자 부적격’의 다른 이름은 ‘투기
의 수준’이다. 투기는 투자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경영은 투자에 관한 것임을 잊을 때, 돈
에 집착하게 된다. 좋은 기업은 전공이 아닌 곳에서 절대로 게임을 벌이지 않는다. 준비된 개인은
자신이 없는 곳에 다른 사람의 말을 믿고 절대로 퇴직금을 털어 넣지 않는다.
돈을 목적으로 삼지 마라. 그것은 기업에게나 개인에게나 경영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다. 시작
경제는 그 나름의 게임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사려는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을때, 그 대
가로 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이 가져가게 되어 있다.
무디스나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 같은 신용 평가 기관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들에 대한 수요가
있다면, Y씨에 대한 수요도 있다. 그들은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 경쟁한다.
커다란 기업이 활동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영역이, 바로 개인이 활동하기에 적절한 곳이다. 틈새
는 개인이 주도하는 1인 기업에게 주어진 훌륭한 시장이다. 1인 기업의 경영자라고 스스로를 규
정한 사람들에게는 직장을 잃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고객을 잃게
되는 것이다.
1인 기업의 여덟가지 경영 원칙
고객은 힘들여 번 돈을 쓰는 대가로 두 가지를 원한다. 하나는 구입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만
족스러운 감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해결’이다. 이 두가지를 충
족시켜 자신의 사업을 번창하게 하고 싶은 사람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원칙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의 원칙들은 조직 내에서 한 사람의 조직 구성원으로 일하는 사람이나, 스스로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통용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원칙1. 직무보다 고객에 집중하라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는 수요는 시장 속에 있다. 따라서 시장은 사업의 기본이다. 어
느 기업도 시장을 떠나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시장은 또한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시장의 움죽임을 따라잡는 기업은 성공한다. 인격체로서의 시장은 고객이라는 말로 바뀌어 불
릴 수 있다. 시장은 한 사람의 고객이기도 하고, 동일한 요구를 가지고 있는 고객 집단이기도 하
다. 기업과 시장은 한 사람의 직원과 한 사람의 고객의 만남으로 그 관계를 시작하고 지속한다.
당신의 고객은 누구이며, 당신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당신이 영업 사원이라면, 1차적 고
객은 물론 당신이 거래하고 있는 모든 고객들이다. 만일 당신이 영업 관리를 맡고 있는 내근 직
원이라면, 당신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 영업 직원이거나 다른 부서의 직장 동료가 바로 고객이 된
다. 당신이 만일 인사부의 직원이라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모든 직원이 다 당신의 고객이다.
고객을 규정할 때, 직무에 얽매이어서는 안 된다. 직무 기술서라는 것은 이제 없다는 것을 명심
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내 일과 다른 직원의 일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
단순한 사회로부터 복합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를 요구받는,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로 바뀌었
기 때문이다.
조직은 모호한 직무의 경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경계에서 하나의 팀이 되어 움직일 수
있을때 조직은 활력을 가질 수 있다. 직무보다는 프로세스를 이해하여야 한다. 프로세스는 고정적
인 직무보다는 일의 흐름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유연한 역할 위주로 인력을 배분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만일 당신이 이미 조직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가망고객’(prospectives)은 당신
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될 수 있다. 그중에서 당신의 욕망과 재능에 부합되는 수요집단
을 찾아내어 그들의 료구에 부응할 수 있을때, 당신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영은 고객을 규정하고, 그 요구를 상품이나 서비스의 형태로 변형시켜,
고객이 원하는 방법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그 만족 수준을 관리하고, 고객으로 부터의 피드
백을 반영하는 끊임없는 개선 행위이다.
경영의 성공은 그러므로 기업안에 이러한 일을 잘 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짜놓는 것이며, 직원
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이 일에 몰두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정규 직장의 조직내에 있든 밖에 있든, 당신이 제공하
는 서비스나 상품을 사려는 사람의 기대와 요구에 부합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을 스스로 가지고
있을때, 그리고 스스로를 격려하여 이 메커니즘을 돌려갈 때,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미국 메인주의 프리포트에 본사를 둔 유통업체인 L.L 빈(L.l Bean) 본사에 걸려 있는 한 포스
터에는 고객이 무엇인지를 아주 잘 설명해주는, 다음과 같은 글이 들어 있다
고객이란 무엇인가?
고객은 이 사무실에 있는 누구보다도 중요한 사람이다.
고객의 운명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운명이 고객의 손에 달려 있다.
고객이 오면 일하는 것을 방해받는다고 생각하지 마라.
고객이야말로 우리가 여기서 일하고 있는 목적이다.
우리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우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호의를 베풀어준 것이다.
고객은 더불어 말다툼을 하거나 누가 잘 났는가를 겨루는 대상이 아니다.
고객과의 말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객은 우리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직무는 고객과 우리 모두에게 적정한 가격으로 이 요구를 처리해 주는 일이다.
고객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구멍가게에서부터 거대한 유통 판매망을 가진 기업들에게 매우 적
절한 정의가
아닐수 없다. 기업이 종사하는 업종에 따라 고객의 특성과 기대, 그리고 이를 대하는 일반적인 직
원의 태도 를 관찰하여, 이에 맞는 고객의 정의를 가지는 것은 매우 우선적인 일이다. 고객이 누
구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는 고객의 요구를 알아낼수 없다.
고객 또는 고객 집단이 규정되면, 이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부지런한 작업을 요구한다. 가만히 있으면 알게 되는 것이아니다. 고객 집단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중에서 대표적인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요구 사항을 수시로 들을수 있는 휴먼 네트를 확보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자신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각 부서를
대표하는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들, 업무상의 일로 불편한 일이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적절한 비율로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해보는 것이다.
그들과 수시로 만나,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시각에서 자신의 직무와 연관
된 일들을 보고 있는지에 대하여 들어야 한다. 만나는 방법도 공식적인 회의의 형태가 될 수도
있지만, 전화 인터뷰가 될 수도 있고, 커피 한잔을 같이 마시면서 이루아지는, 단편적인 의견 교
환이 될 수도 있다.
휴먼 테트를 이용할 때 몇가지 유년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우선 고객은 마음에 있는 모든것을
다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껴 두는 것도 있고 숨겨 두는 것도 있다. 또한 그들이 말한 것과
당신이 들은 것 사이의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들 역시, 바라는 것과 표현 하는것 사이에 괴리
를 가지고 있는 인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신 역시,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인간적 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또 있다. 고객 역시, 어떤 경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하게 모를 경우가 있다. 당신도 무
엇을 사려 할 때, 머릿속에 분명한 그림을 가지고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상기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객 역시 자신이 한 말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 역시 마음을 바꿀 수 있으
며, 새로운 기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 경영자는 경쟁 업체와 경
쟁하는 것보다, 고객의 변덕스러운 요구의 변화를 관리하는 것이 훨씬 어렵고 본질적인 과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번에는 고객과 관련하여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스스로에 관한 오해에 대하여 한
번 짚어보자. 만일 어떤 업무에 오래도록 몸을 담아왔다면, 그일에 대하여 잘 안다고 스스로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실제로 당신이 고객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믿는 것과, 고객이 실제로 바라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많이 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경영의 실패는 여기서부터 생겨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300명 정도의 인원들이 참석한, 어떤 호텔에서 열린 세미나에 당신이 참석했
다고 가정하라. 그리고 두 시간쯤 지난 후, 2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세미나
에 참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휴식시간에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언인가’를 알기 위해 간단
한 설문 조사를 하였다고 하자.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우선순위별로 다섯 개만 골라보자. 지금
당장.
( )사무실과 손쉽게 연락할 수 있는 전화가 여러 대 제공되어 있다.
( )휴식시간에 많은 인원이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공간 활용이 잘 되어 있다(문의 크기,좌석
및 가구배치 등)
( )멋있게 데코레이션되어 있는 휴싯 서비스 공간이 있다
( )따뜻한 커피와 홍차가 준비되어 있다
( )많은 사람이 혼잡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가까이 있다.
( )휴식 공간에 흡연 구역과 금연 구역이 구분되어 있다.
( )우아하고 흠집이 나지 않은 커피잔과 집기가 제공된다.
( )다른 참가자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 할 수 있는 환담 공간이 있다.
( )종원원들이 친절하다.
( )최상급 브랜드의 향이 좋은 커피와 잘 어울리는 다과류가 제공된다.
다 골랐는가? 다 고르기 전에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냥 넘어가면 독자로서
당신의 깨달 음은 반감된다.
다음은, 이 호텔에서 주로 이러한 행사를 주관하는 부서인 연회부 직원들에게 실제로 동일한
설문을 요청한 결과이다. 그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고객의 요구’를 우선 순위별로 나열하였
더니 다음과 같았다.
(1)따뜻한 커피와 홍차가 준비되어 있다.
(2)멋있게 데코레이션 되어있는 휴식 서비스 공간이 있다.
(3)종업원들이 친절하다.
(4)우아하고 흠집이 나지 않은 커피잔과 집기가 제공된다.
(5)최상급 브랜드의 향이 좋은 커피와 잘 어울리는 다과류가 제공된다.
연회부 직원의 우선 순위와 단신의 우선 순위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가? 아마 그럴 것이다. 당
신은 어렵지
않게 이러한 시각의 차이가 왜 생겼는지 추측 할 수 있을 것이다.
연회부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에 국한하여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세미나를 개
최하고 주관하는 고객은 만일 사정이 허락한다면, 이러한 고객의 요구가 맞추어지는 호텔과 그렇
지 않은 호텔 중 어디를 선택할 것인지 분명하다.
고객의 요구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언제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있어야 하며, 매우
부지런해야 한다. 고객과 접하는 모든 순간(Moment of Truth)이 바로 당신의 사업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며, 고객의
모든 것이 파악되는 시간이다.
고객의 요구는 매우 다양하다. 그것을 보는 시각에 대하여 컨설턴트 중의 한 사람인 마이클 르
뵈프(Michael LeBoeuf)의 책 「평생고객을 만드는 법 How to win customers and keep them for
life」속에 있는, 매우 그럴듯한 예가 도움을 줄 수 있으이라 생각한다.
내게 옷을 팔려고 하지 마세요. 대신 날카로운 인상, 멋진 스타일, 그리고 매혹적인 외모를 팔
아주세요.
내게 보험 상품을 팔려고 하지 말아요. 대신 마음의 평화와 내 가족과 나를 위한, 위대한 미래
를 팔아주세요.
내게 집을 팔 생각은 말아요. 대신 안락함과 만족, 그리고 되팔때의 이익과 소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자부심을 팔아주세요.
내게 책을 팔려고요? 아니에요, 대신 즐거운 시간과 유익한 지식을 팔아주세요.
내게 장난감을 팔려고 하지 말아요. 그 대신 내 아이들에게 즐거운 순간을 팔아주세요.
내게 컴퓨터를 팔 생각은 하지 말아요. 대신 기적 같은 기술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효익을 팔
아주세요.
내게 타이어를 팔려고 하지 마세요. 대신 기름 덜 들이고 걱정으로 쉽게 벗어날수 있는 자유를
팔아주세요.
내게 비행기 티켓을 팔려고 하지 말아요. 대신 내 목적지에 빠르고 안전하게, 그리고 정시에 도
착할수 있는 약속을 팔아주세요.
내게 물건을 팔려고 하지 말아 주세요. 대신 꿈과 느낌과 자부심과 일상 생활의 행복을 팔아주
세요.
제발 내게 물건을 팔려고 하지 마세요.
원칙2, 자기만이 할 수 있는 틈새를 찾아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캠브리지에 한 보모가 있었다. 그녀는 쌍둥이만 전문적으로 보는 보모였
다. 그것도 한 아이만 계속 보는 것은 아니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그들 부모에게 아이들을 돌보는
방법을 한 달간 훈련시켜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이가 하나인 경우나 세 쌍둥이인 경우는
맡지 않는다. 꼭 쌍둥이만 맡고 있다. 그녀가 쌍둥이만 맡게 된 이유가 있다.
매사추세츠의 켐브리지에는 맞벌이 부부가 많다. 모두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늦게
갖는 경향이 있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에 아이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배란 촉진제를
필요로 하는 사례 또한 많다. 그러다 보니 종종 쌍둥이를 낳게 된다.
이렇게 되면 도움이 필요해진다. 맞벌이 부부라 돈은 있기 때문에, 이 보모가 행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에 돈을 지불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다. 그녀는 수요가 많기 때문에 쌍둥
이만 맡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28세인 한 청년이 런던에 살고 있다. 2,3년전에 그는 오스트레리아
와 뉴질랜드에서 온 젊은이들을 만났다. 이 나라에서 온 청년들은 학업을 마치고 자가 나라로 되
돌아가기 전에 한 6개월 정도는 유럽에 머무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들은 런던에서 머무는 동안, 일을 하고 당연히 세금도 낸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나라로 돌아
가면 대부분의 세금이 다시 환급된다. 왜냐하면 한 해 전체의 벌이를 놓고 연말 정산을 하게 되
면, 대부분이 세금 공제
기준을 밑도는 까닭에 세금 환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환급 절차가 귀찮고 까다
롭기 때문에,
본국으로 되돌아간 후에 이들은 대부분 이 일을 잊고 만다. 이 청년은 말하자면 번창하는 1인 기
업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자신의 침실에서 말이다.
또 있다. 1998년 3월16일 조선일보에 ‘사이버 봉이 김선달’이라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한국
의 경우, PC통신 가입자가 300만을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천리안, 유니텔, 나우누리, 하이텔 등
PC통신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가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게 되었다. 우선 가입자가 많기 때
문에 광고 효과가 높고, 상대적으로 무료나 다름없이 싸다는 엄창난 이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한 광고가 났다. “PC통신 가입자의 ‘사용자 등록번호’(User Id)하나에 1원씩” 이라
는 광고와 함께, 10만개를 묶어 10만원에 판다는 것이다.
광고주의 입장에서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사용자 등록번호가 어
느새 상업자 판매 대상이 된 것에 대하여 일반 사용자들은 불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또
한 이미 공개된 것이므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당국의 입장이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복잡한 얘기말고, 먹는 장사의 예도 있다. 황익선씨는 여의도에서
순대국집을 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돼지 내장과 순대로만든 먹거리를 제공한다. 내장탕과
순대국, 그리고 내장과 순대를 썩은 순대탕, 이렇게 세가지 기본 메뉴를 모두 3,500원 균일가로
팔고 있다. 또 내장과 순대를 소주 안주로 내놓기도 한다.
이 집은 겨우 서너 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집의 순대국, 내장탕의 맛은 웬만한 사
람은 다 안다. 전날 술 한잔을 했거나 모처럼 짭짤하고 진한 음식이 생각나면 먼 데서라도 찾아
오는 곳이다.
샐러리맨들이 대종을 이루지만, 옛날 가난한 시절의 맛을 찾는 주부도 있고, 먹을 것에 대담한
젊은 처녀들도 스스럼없이 끼리끼리 오는 것이다. 서민만 오는 것도 이니다. 전에 TV로만 보던
국무총리를 하던 사람도 수행원 몇 명과 이곳을 찾아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이 집을 좋아
한다고 했다. 12시와 1시 사이에 가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이 집이 성업을 이루는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맛과 가격이다. 바로 음식에 대한 가장 중
요한 고객의 요구 사항을 맞추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왜 순대국과 내장탕을 자신의 사업으
로 선택했는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가 돼지의 순대와 내장으로 부드러운 씹을 것과 진한 국
물맛 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 끼 라는 가격으로 사업의 승부를 걸었다는 점이다.
찰스 핸디의 「헝그리 정신」 중에서 인용한 앞의 두가지 외국 사례를 포함하여, 이 사례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상 속에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유용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준비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방금 직장에서 해고당한 사
람일 수도 있다. 어쩌면 생산적인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고객
의 수요를 읽고, 자신의 준비된 재능을 돈벌이에 연결한 사람들이다.
원칙3, 고객처럼 느껴라.
잭 캔필드(Jack Canfield)와 마크 빅터 한센(Mark Victor Hansen)이 내놓은 책으로, 우리 나라
에서 번역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속에 다음과 같은 편
지 한장이 소개되어 있다.
이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 여러분들에게
.....
나는 어제 당신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이 병원에 왔었습니다. 우
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들의 진료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저소득층 의료보험수혜자’라는 딱지가 우리에게 붙여진 적도 없었습
니다.
어제 나는 나의 아버지라는 인격체가 당신들에 위하여, 하나의 진료번호, 하나의 차트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한 허약한 남자가 다섯 시간이나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원무과 직원들은 참을성이 없었으며, 간호사들은 지쳐 있었고, 시설은 예산 부족으로 형편없었습
니다.
아버지는 모든 위엄과 자존심을 박탈당한 채, 그곳들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진료 지정일에 당신들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하나의 초록색카드, 하나의 파일 번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기계적으로 말해주는 말들을 알아듣지 못해 또다시 물어보는 귀찮
은 환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단지 당신들이 그렇게
취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분은 나의 아버지랍니다. 온갖 힘든 역경 속에서도 나를 키워주셨고, 나를 신랑에게 인도해
주었고, 내 아이들이 태어날 때 받아주셨고, 내가 어려울 때, 20달러짜리 종이돈을 내 손에 쥐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울 때 나를 달래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얼마 안 가서 암이 우리로부터
영원히 그를 데리고 가버리고 말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이 편지가 사랑하는 이를 곧 잃게 될 슬픔에 빠진 딸이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
고 퍼붓은 비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각각의 진료 차트는 한사람의 인
격체를 대변합니다. 그 인격체에게는 감정이 있고, 살아온 내력이 있고 인생이 있습니다. .. 내일
이면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그 위치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이 편지를 읽은 뒤에 줄서서 기다
리고 있는 다음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해 주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누군
가의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아내이며, 아들 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당신들과 마찬
가지로 신이 창조한, 그리하여 신이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작자 미상,홀리크리스웰 제공
고객의 입장이 되어 보면 그 민감한 부분을 느낄 수 있다. 감정이입은 같이 느낀다는 것을 뜻
한다. 정서적 교감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동양적 가치관을 서구적 논리와 표현으로 포장함으로써 크게 대중을 매료시킨 「성공하는 사람
의 7가지 습관」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티븐 코비는, 이러한 이해의 대목을 ‘다른 사람의
산발에 발을 넣어 보는 것’이라고 불렀다. 땀이 차서 축축할 수도 있는, 다른 사람이 신던 신발
속에 자신의 발을 넣어 본다는 것은 다소 지저분한 느낌이 있다. 꺼리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이 표현이 매우 적절하다도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 특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은 영
악한 사람들이 심히 꺼리는 바이다. 마음이 흐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물고기처럼 느끼는 낚시꾼’이라는 말을 여러번 사용하였는데, 그것음 내가 이 표현속
에서 어떤 물리의 터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객의 눈으로 보는 사업가란
이미 매우 확실하게 성공애 다가가 있는 사람들이다.
원칙4, 거래보다 관계를 소중히 여겨라
마이클 르뵈프는 꽤 성공한 경영 컨설턴트이다. 그는 「멋지게 일하기 Working Smart」라는
책을 출판한 후에, 퍼시픽 노스웨스트벨 전화 회사의 상업 광고에 출연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TV 화면을 의식한 그는 뉴 오를레앙에 있는 옷 가계에서 새 양복을 한 벌사려고 했다. 거기서
그는 프레드 어버트(Fred Aubert)라는 점원을 만났다. 마이클은 프레드에게 자신이 TV광고에 나
가게될 것이며, 그 때문에 새 옷을 한 벌 맞추고 싶다고 말했다. 프레드라는 점원은 광고의 성격
에 대해서 물었다. 그리고 마이클이 쓴 책을 한 권 가져다 줄 것을 요청했다. 그의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옷을 맞추기 위해서 책의 내용을 보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마이클은 그 집에서 짙은 곤색에 줄무늬가 있는 옷을 맞추게 되었다. 마이클은 이 옷
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광고 방송을 할 때 뒤의 배경이 어두운 색이
라는 말을 광고 대행업체로부터 나중에야 들었기 때문이다.검은색 배경에 짙은 색의 양복을 입고
나오는 광고는 문제가 있었다.
그는프레드에게 그 말을 하고 도움을 하고 도움을 구했다. 프레드는 그에게 회색계통의 양복을
권했다. 마이클은 먼저 맞춘 곤색 줄무늬 양복이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반품하는 대신, 다시
새 양복을 하나 더 맞추고싶었다.
프레드의 가게에도 회색 계통의 옷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가게에 있는 옷을 팔려
고 하지 않았다. 대신, 경쟁 관계에 있는 가게로 마이클을 보냈다.
프레드는 자기 가게보다 그 가게에 더 좋은 회색 계통의 옷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
이다.
이일이 있은 후, 마이클은 프레드의 단골 고객이 되었다.
한 번은그가 어떤 모임에서 강연을 할 일이 생겨 새 옷을 하나 사려고 프레드의 가게에 들렀
다. 그때 프레드는 그에게 2주일 후에 세일을 시작할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구매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말했다.마이클은 2주 후에 보아둔 양복을 반 값에 살 수 있었다.
프레드가 마이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몇가지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는 옷을 한 벌 더
파는 것보다 마이클의 고객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 번의 거래 보다는 그의 신뢰를 더
우선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신뢰에 기초한 좋은 관계가 곧 상업적 이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상품을 팔기보다는 마이클로 하여금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판다는 것과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은 매우 다른 발상이다. 프레드는 매우 다른 사고의
틀. 즉 고객처럼 생각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김혜영씨는 63빌딩 분수 플라자 뷔페에서 고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여직원이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남 것은 아내와 점심을 하기 위해 들렀던 때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가 매우 기억에 남
는 사람이 된 것은 두 번째 만남부터였다.
우선 그녀는 우리가 한 번 찾아와준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갈 무
렵, 아이들에게 몇 개의 과자를 접시에 담아서 주었다. 뷔페였기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그녀가 담아온 과자들은 진열된 과자와 조금 다른 것들이었다.
얼마 후, 그녀는 파란색 멜론을 한 접시 담아다 주었다. 멜론은 테이블 위에 있었기 때문에 특
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새로 썰어다 준 것은 특별히 달고 맛있었다. 아마 주방에
부탁하여 잘 익은 것 하나를 새로 썰어다 준 것이 아닌가 한다.
아이들과도 한두 마디 밝고 건강한 말들을 잊지 않았고, 특히 작은 작은 아이에게 아주 예쁘게
생긴 흰색 우산을 하나 선물하였다. 그것은 아주 좋은 것 아닌단순한 판촉물에 불과했지만 작은
아이는 매우 즐거워했다.
그녀는 1년에 두 번 정도 우리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다. 예를 들어 결혼 기념일이라든가 크리
스마스 같은 때에 말이다. 그녀의 편지는 인쇄물이 아니었다. 그저그저 친구들끼리 보내는 그런
편지처럼 안부를 묻고, 자신의 일들도 적고, 몇마디 좋은 축복의 말들을 나누는 그런 사적인 편지
들이었다.
가족들은 특별한 가족행사가 있으면, 먼저 이 레스토랑을 생각했다. 목적과 분위기에 어긋나지
않으면, 대체로 이곳에 와서 저녁을 먹곤 하였다. 그래 보았자 1년에 두어 번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우리를 매우 특별한 고객으로 취급해 준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평범한 고객일수록 ‘특별한 대우’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특히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그런 특별한 느낌을 준다는 것은 즐거운 외식에 잘 어울리는 오랜만의 사치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매우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그날 가능한 것들을
언제나 작은 접시에 담아다 두었다. 그녀가 돌봐야 할 테이블들은 많았겠지만, 그녀는 언제나 우
리에게만 잘해준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었다.
그녀는 몇 년 전에 그곳을 곧 그만두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두는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결혼하는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그 후 한 번 더 이 식당에 가보았는데, 그녀는 없
었다. 그리고 누구도 우리를 단골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그 후에는 다
시 이 식당에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실제로 몇년 동안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김혜영 씨나 프레드는 고객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구매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작은 정성으로 고객들이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며,자기 것을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신뢰를 얻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원칙5. 이전 가능한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라
포춘(Fortune)지에 테리 스타인스라는 여성 관리자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산하의 크레디트 카드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본사에서 미수금 징수 부서의 관리자로 있었고, 자기 밑에 75명의
부하 직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부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피닉스로 옮겨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기를 원했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새로운 일자
리를 찾아보기로 작정했다. 그러다가 이 은행에서 ‘직원을 위한 상담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업무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원들, 특히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된 직원들을 다루는 일이
었기 때문에, 최소한 5년 이상의 인사부 근무 경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녀는 그런 경력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그 일을 얻어내었다. 그녀는 그런 경력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그 일을 얻어내었다. 그녀는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리자로서의 경력과, 직원과 1대1의
상당에는 상당한 기술이 있다는 것을 설득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향적이고 정력적인 테리는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를 다루는 일임 돈을 떼먹고 달아난 사람을
다루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자리를 잃어버린 한
관리자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창조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존재, 당신의 능력을 좁은 울타리에 가두어두지 마세요.
재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얼마든지 이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테리는 자신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전통적인 관점에서 볼 때 특이한 재느
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재능은 학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학습은 학교에서의 학습과 다르다. 이것은 정규 교과과정을 배우는 능력과는 다른
것이다. 훨씬 포괄적이며, 훨씬 다양한 재능이 학습 과정에 이용된다.
테리의 능력, 즉 적극적이며 외향적이라는 특성, 그리고 사람을 설득하고 다룰 수 있다는 것은
학교 교과 과정을 배우는 데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을지 모르나, 그녀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매우 유용한 재능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재능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 재능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곳에 썸거을 수 있었던 것이
다. 그녀의 말대로, 재능은 이전이 가능한 것이다.
원칙6, 민감한 부분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라
몇 년 전 홍콩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날은 봄비가 추적거리고 있었다. 예약한 숙소인 만다
린 호텔은 별로 크지 않았다. 프런트에서 체크인을 하기 위해 이름을 말해주었다. 여직원이 몇
개의 서류를 챙기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예약이 안 된걸까? 그렇다면 그렇게 말했
을 것이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서 내 앞에 서 있는 키가 크고 날씬한 여직원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생각을 읽기 위해 애썼다. 엘리베이터는 7층에서 섰다. 여직원은 방문을 여래고
안으로 들어섰고, 문이 열리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어두운 실내를 훤하게 비춰주었다.
그 직원은 나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방이 마음엠 드는지 물어보았다. 이 질문
을 시작으로, 그녀는 내 앞에 서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 언제까지 묵을 것인자, 대금은 카드로
결재할 것인지, 아침 신문은 어느 것을 볼 것인자, 그리고 체크아웃은 12시까지이며, 공항까지 호
텔 리무진을 이용할 의사가 있는지 등을 물어보며, 내가 대답하는 대로 카드에 옮겨 적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체크인 수속을 밟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프런트에 죽 줄을 서
서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등록 절차 대신, 고객은 나처럼 앉아 있고, 직원은 서서 체크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나는 무엇인가 매우 특별한 감정 같은 것이 마음속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 그
여직원은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재확인해 주기를 바라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비행기표를 꺼내 주었다. 그녀는 필요한 내용을 메모한 후 다시 돌려주었다. 그리고 웃
으면서 체크인이 모두 끝났으니, 편안한 체류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내게 차를 한잔 하겠느냐고 덧붙였다. 커피, 자스민, 우롱차 같은 예를 들어주었
다. 그녀가 나가고 잠시 후, 노크와 함께 밝고 환한 얼굴의 다른 여직원이 내게 중국차 한 주전
자를 가져다 주었다. 차를 마시며, 이들이 이런 아이디어들을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참으로 궁금
했다.
나는 특별한 체크인 프로세스를 생각해내서 실천에 옮기는 이들의 고객 중시메 대한 관심을 높
이 평가한다. 생산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프로세스는 지나치게 사치스럽다. 아마도
이 호텔은 새로 도입된 이 프로세스를 오래도록 유지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아니면 손님이 아
주 적은 시간대에 한해서 계속 시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다른 호텔과 차별성을 가지고 싶어하며, 그 차별성의 초점을 고객 서비스
에 집중시켰다는 점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호텔의 고객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만족도는
약 70퍼센트 정도가 프런트 데스크에서의 서비스에 의해 좌우된다. 그들은 고객 만족도가 가장
민감한 프로세스를 골라 고객 편의 위주로 바꾸어 주었다.
나는 이 경험을 매우 소중한 것으로 간직하고 있다. 내가 무방비 상태에서 받은 놀라운 서비
스와 더불어, 호텔의 고객 서비스에 대한 하나의 기준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실험 정신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선택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열망이 만들
어 놓은 실험 정신은 기업에게나 개인에게나 최고가 되기 위한 출발점이다.
가장 앞서간다는 것은 전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언제나 새로
운 실험 정신을 필요로 한다. 현재는 개선될 수 있는 것이며, 개서내의 방향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에 초첨을 맞추어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확신이 없이 이루어지는 훌륭한 일은 없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 훌륭한
결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원칙7, 기대를 관리하라
호텔의 룸서비스를 잘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 정해져 있는 메뉴 중에서 마음에 드는 음식을
골라 원하는 시간에 배달을 요청하면 방으로 가져다 주기 때문에 아침 같은 경우 이용객이 많다.
호텔의 투숙객 중에서 관광객들은, 특별한 아침 스케줄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아침 시
간을 느긋하게 보낸다.
그러나 업무상의 일로 호텔에 묶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출근 시간과 일치하는 사이클
을 따른다.
그들은 대개 7시 30분을 전후하여 아침을 배달받고 싶어한다. 샤워를 끝내고 출근 준비를 모
두 마친 후, 배달된 따뜻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출근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7시 30분 전
후는 배달이 밀리는 시간대라고 가정해 보자.
7시 30분 전후의 시간은 또한 출근을 서둘러야 하는 때이기 때문에 5분 내지 10분 정도의 사간
에도 매우 민감하다. 출근을 해본 사람이면, 아침 시간 중 10분은 아주 바쁜 시간이라는 것을 누
구나 안다. 그렇기 때문에 10분 정도 늦게 배달되면, 고객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해진다. 10
분 정도면 가벼운 식사 정도는 마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가는 먹느라고 지각할
수도 있는, 매우 민감한 시간대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시간대에 주문이 밀리기 때문에 종종 식사 배달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이 꽤
있을 수 있다. 가능하다면 이 시간대의 배달 폭주에 대비하여, 주방과 배달 예비 인력을 확보하
여 투입시키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어려울 경우, 고객의 기대 수준에 대한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구를 룸서비스 메뉴판에 적어 넣는 것이다.
저희는 고객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시간에 정확하게 음식을 배달해 드리도록 노력하고 있습니
다. 그러나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에는 주문 배달의 양이 많기 때문에 원하시는 시간보다 10분
저도 늦어질 수 있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고객의 기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Customer Expectation Management)은 다음과 같
은 주요한 발견에 기초하고 있다.
고객의 만족도는 어떤 기업이 실제로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보다는, 그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이
나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수준에 그것이 얼마나 미치느냐에 훨씬 더 민감하게 좌우된다.
예를 들어 똑같이 불쾌한 일을 겪었다 하더라도, 하루에 200달러를 내는 호텔에서 겪안 것과
30달러를 내는 호텔에서 겪은 것에 대한 관용도는 다르다. 고객은 200달러와 30달러의 차이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30달러짜리 호텔에서는 그러려니 해도, 200달러짜리 호텔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고객으 입장에서 그 기업의 실제적인 서비스 수준을 사실 그대로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대체로 한 기업에 대한 기대는 개인이 겪은 몇 번으 경험과 다른 사람들의 평가, 광고, 그
리고 각개인의 개인적 욕구 등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고객의 만족도는 항상 사실보
다는 일종의 ‘편견’(Perception)에 의해 만감하게 좌우된다.
실험 정신을 가지고 항상 고객의 기대를 능가하는 제품과 서비스 리더십을 지켜가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경계를 확실하게 구분지음으로써, 고객
이 채워지지 않는 기대를 가지지 않도록 민감한 부분을 관리한다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실험 정신은 고객에게 꿈을 주는 것이다. 기대의 관리는 그 꿈의 애드벌룬에 끈을 달아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꿈과 현실, 사실과 상상 사이의 균형을 필요로 한다.
원칙8, 욕망과 꿈을 담아라
프레드 어버트는 단순하 세일즈맨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었고,
언젠가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좋은 관계를 맺어온 고객들로 붐비
는 객장 속에서 즐겁게 웃고 있는 자신을 모습을 언제나 그려보았을 것이다.
테리 스타인스는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피닉스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풍광이 좋고, 오
랜 친구들이 살고 있는 정다운 곳에서 계속 살며, 자신있는 분야에서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고 싶
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려움에 처한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매우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행복학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적극성과 정열로 미우러보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그만두고, 자신이 신설한 어느 상담
센터를 운영하는 꿈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미 그런 경력을 쌓았으며, 그런 일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영 씨는 언젠가, 혹은 이미, 자신의 식당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을 레스
토랑에서 일하는, 봉급은 작고 일은 많은 여급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당당했고 친절했으
며, 매우 밝았다. 그녀는 그곳에서의 겨험이 미래를 위해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주위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홍콩의 만다린 호텔은 서비스로 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시설면에서 그보다 월등한
호텔들이 많지만, 서비스만큼은 어느 호텔에도 지지 않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들은 언제나 새로
운 실험 정신에 의해 호텔 서비스의 새로운 전례를 만들어가는 메카가 감히 되고 싶었는지도 모
른다.
매사추세츠의 쌍둥이를 다루는 보모는 아직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그
녀는 아마도 이미 쌍둥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어쩌면 ‘쌍둥이 키우는 법
’이라는 책을 한 권 써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겪었던 한 달 미만의 쌍둥이들과의 생활은, 신
기한 것을 좋아하는 미국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소개되었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그 머리가 쌩쌩 돌아가는 청년능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모름지기 이제는 자신의
작은 사무실을 차려놓고, 단기 근로체류자들을 위해 세금을 환급받게 해주는 짭짤한 사업의 기틀
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세무사 같은 자격증을 획득하여, 이와 유사한 세무 서비스를 제공
하는 자신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작은 틈새의 고객 몇 명에서부터 옹색한
아마추어로 돈벌이를 시작했지만, 자신의 경험과 재능을 결부시켜 스스로 하나의 서비스 영역을
개발했을지도 모른다.
황익선 씨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쪽 당주동 거리에, 여의도 가게보다 훨신 크고 깨끗한 순
대국집을 2년 전에 열었다. 그리고 강남에 제 2호점을 열어 모두 3개의 순대국집을 경영하고 있
다. 그는 사장이 되었으며, 일가 친척이 참여하는 가족 기업을 만들었다. 스스로 고용을 창출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때 점원이었고, 여급이었
고, 새벽부터 밤까지 엉성한 식당에 매여 사는 옹색한 국밥집 주인이었으며, 장래가 불투명한 아
마추어로서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속에 있는 특별한 재능을 알고 있고, 그것을 이용하여 스스로 자신의 직업
을 만들어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힘드고, 노동의 대가에 못 미치는 초라한 대가 속에서 자기 원칙에 따라 미래를 그려간
사람들이다. 무력감과 나날의 어려움 때문에 힘들고 풀이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상황의 압
력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작업에 뛰어든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람들과 다르게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한 사람들이다. 욕망을 가슴에 가지고 있었고,
꿈을 꾸고 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삶의 현재 속으로 미래를 끌고 들어올 줄 아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엉ㅆ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며, 지금의 어려움 속에서 주저앉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격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제6장 기업과 개인, 그이념과 비전의 공유
진정한 실업은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 하고 싶고, 할 수 있
는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은 평범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사람들 역
시 모두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 장을 시작하며
좋은 기업은 확고한 이념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돈과 수익과 숫자 이상의 것이며, 시
간을 넘어 계승되는 것이며, 기업의 모든 활동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어ㅐ려운 시절에도 포기하
지 않고 지켜지는 것이며, 더욱 다져가는 것이다.
기업 이념은 창업주의 가치관과 신념에 뿌리내린 것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것이
다. 그러나 조직 구성원들이 공유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전력과
전술처럼 상황과 고객의 요구에 따라 항상 바뀌어야 하는 대목이 아니다. 따라서 통시적인 가치
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비전은 이념에 기초한 생상하고 위대한 미래의 모습이다.
당신 역시 개인으로서, 그리고 1인 기업의 겨영인으로서, 어떤 일을 하든 확고한 신념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당신은 욕망에 따라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신념에 위배되는 일은 서슴없이 포기하라. 신념이란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며,
그것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다. 당신은 개인이며 동시에 공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책임
을 져야 하며, 또한 조직과 사회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타이레놀 사건과 추적 60분
1982년, 미국의 존슨 앤드 존슨(Johnson & Johnson)사는 이른바 ‘타이레놀 사건’에 휘말리
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한 저신 이상자가 타이레놀 속에 독극물을 투
입하여 다섯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존슨 앤드 존슨사의 전직원은 또 다시 독극물이 투입될 가능서이 있는 타이레놀 전량을 수거하
는 일에 나섰다. 그러나 사건 발생 이틀 후, 문제의 타이레놀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다시 발견
되었다.
제임스 버크(James Burke)회장은 30분마다 TV 기자회견을 자청하였다. 그리고 모든 정보를
이란에게 공개하였다. 이들은 전국의 유통망을 통해 타이레놀의 전량을 수거하였다. 독극물이
투입된 두 개의 타이레놀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이 회사기 입은 경제적 손실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러나 버크 회장은 “
우리 회사가 귀중한 생명을 구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 사건을 경찰의 손에만 맡기지 않았다. 자신들이 스스로 정한 회사의 기본 원칙과 비
전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들의 다음과 같은 경영 원칙은 단순히 회사의 벽에 걸려 있는 액자 속의 장식이 아니라, 경
영자와 직원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행동 원칙이었다.
우리는 의사를 비롯한 모든 의료인은 물론, 병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과 그들의 어머니, 그리고
우리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선적인 책임이 있음을 믿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원칙과 비전을 지켜야 할 대목에 이르렀을 때,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를
지키려고 애썼다. 바로 타이레놀 사건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그들은 이 원칙에 충실하였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당시 월 스트리트의 증권 분석가들은 이러한 조치가 존슨 앤드 존슨사
의 미래의 경영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사건 직후 타이레놀의
시장 점유율은 절반 정도 떨어졌지만, 3년 후인 1985에는 전체 진통제 시장의 35퍼센트 정도의
과거 점유율을 회복하였다.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는 이익에 민감하다. 따라서 버크 회장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1985년, 독일의 자동차업체인 아우디(Audi)는 자동차의 가속 장치 결함
으로 일곱 명이 사망하고 400여명이 부상당했다는 문제 제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60분’
(60minutes)이라는 미국의 TV 프로그램은 아우디의 자동차가 주차 도중 별다른 이유 없이 급가
속이 붙어 벽을 뚫고 나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아우디는 자체 조사를 실시하여, 이는 운전자의 조작 실수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판매량은 ‘기술상의 하자 없음’정도로 만회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985년 당시 7만 4천 대에 달하던 판매량은 불과 2년 만인 1987년에는 2만 6천 대로 떨어졌다.
심지어 주차장의 주차 요원들이 아우디에 대한 주차 서비스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아우디는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운전자의 실수’로 사건의 원인을 몰아
감으로써 고객들로 하여금 심한 모멸감과 배신감을 느끼게 하였다. 고객들은 아우디가 책임을 모
면하기 위해 뻔뻔하고 교활한 술책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아우디 자동차는 위험하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같은 상황 하에서도 아우디는 부인으로만 일관하였으며,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결
국 미국 정부의 압력에 의해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의 구조를 개선하게 되었고, 마침내 이 자
동차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급가속 사고’도 자취를 감추었다.
영향력 있는 정부 관리를 매수하고, 돈을 뿌려 이권을 따내는 것이 바로 경영이라고 알고 있는
기업가들이 한국에는 꽤 많은 듯하다.그들은 이것을 관행이라고 말하며,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당하게 되는 불이익을 과장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존슨 앤드 존슨의 버크 회장처럼 행동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존슨 앤드 존슨처럼 고객 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회사가 아니고서는 무한
경쟁 속에서 고객의 신뢰를 결코 얻지 못한다.
지금의 기업 환경 속에서 고객 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기업은 더 이상 발을 붙일 곳
이 없다. 그리고 그런 기업의 뒤를 보아주는 정부의 관리도 더 이상 안전할 수 없다.
좋은 기업은 원칙을 가지고 있고, 이를 존중한다. 그들은 편법을 쓰지 않는다. 좋은 기업은 고
객을 인간으로 인식한다. 생각하고 느끼고 감동하며, 신뢰에 보답하는가 하면, 자신을 배려하지
않음에 분개하고 불평을 토하는 생활인으로 규정한다.
이것이 바로 좋은 기업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 특징이다. 그들은 원칙을 통한 경영을 존중하며,
직원을 통해 고객에게 감동을 전하는 비법을 알고 있다.
액자 속의 비전, 인문학적 감수성의 부족
비전이 없는 기업은 많지 않다. 그들의 비전은 근사한 액자에 담겨 사장실 뒤쪽 벽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걸려 있다. 각각의 회의실에도 걸려 있다. 조그맣고 예쁜 나무판에 새겨져 모든 직
원의 책상 위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 그 회사가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직원의 마음속에 살아 있지 않은 비전이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개인의 미래와 연결되지
못하는 조직의 비전은 죽은 것이다. 그것은 직원을 고무하고 격려하여 미래의 창조에 함께 하도
록 이끌지 못한다.
도대체 ‘서기 2000년까지 매출액의 2배 성장’이라는 회사의 비전이 직원 개인의 미래와 어떻게
관련되는 것일까?
그리고 협동, 화합, 창조 따위의, 초등학교 급훈 같은 사훈이 어떻게 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비전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비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싱가포르에 가본 사람들은 그 곳이 아름다운 정원 속의 도시라는 것을 단박에 느끼게 된다. 거
리는 깨끗하고, 모든 건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웬만큼 비가 와도 젖지 않고 인근의 건물로 걸
어갈 수 있다. 같은 모형의 건물은 거의 없다. 숲은 거리의 어느 곳이나 무성하고 잘 가꾸어져 있
으며, 적당한 곳에 아름다운 벤치들이 놓여 있다.
이러한 깔끔한 인상은 이미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갖게 된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승객들은
먼저 푹신한 카페트 위를 걷게 된다. 어느 훌륭한 호텔에 도착한 듯하다. 그들의 면세점은 도착하
는 승객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공항에서 시내로 운행하는 공항버스의 구조는 ‘그래,
바로 이거야!’하는 느낌을 주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우선 버스의 문이 넓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 쉽게 들어 올리고 내릴 수 있도록 입구의 설계가
시원하다. 짐은 버스의 입구에 놓을 수 있도록 시렁을 만들어 놓았다.
이 버스가 주요 호텔 여러 곳을 경유하는 셔틀 버스라는 속성을 감안할 때, 짐을 버스 입구에
놓아두어 승객이 언제나 쉽게 혼자 들고 내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매우 편리하다. 이러한 아이
디어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또 이런 아이디어를 즉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대응력과 실천 의
지는 또 어디서 오는 것일까?
1997년 4월 10일, 아침 일찍 나는 싱가포르 에어라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제1청사
를 통해 입국했다.
입국 절차는 태극 마크가 그려져 있고, 환영의 전단이 흩날리는 한식 대문이 반쯤 열려져 있는
그림이 정면 벽에 그려져 있는 좁은 계단을 통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입구는 언제나 창
고 같았다. 소형 실내 청소차와 짐차가 어지러이 입구를 막고 있는 그 좁은 계단을 지나오며, 나
는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이 공항을 설계한 사람들은 이 건물이 어떤 목적으로 쓰이게 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이 있었을
까? 한국을 찾는 모든 세계인이 맨 처음 느끼는 한국이 바로 여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 공
항을 설계하였을까? 그들은 이 공항 건물에 대한 생생한 미래의 그림을 가지고 있었을까?
너무 과거에 지어졌기 때문에 지금의 기준으로 이를 보면 유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현실적인 반박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위대
함 대신 평범하며, 그저 그렇고 그런 현재를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 같
은 무거운 무엇이 가슴을 눌러옴을 느꼈다.
내가 정말 화가 난 것은 공항을 나와 택시를 잡을 때였다. 택시는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몇 사
람이 다가와 내게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항상 한두 사람은 그렇게 물어왔었다. 나는 그저 택시를
타는 푯말이 붙어 있는 곳에 가서 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은 거의 없었다. 20여 미터 떨어져 길게 늘어서 있는 택시들
은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차례로 와서 태워주지 않았다. 한 사람이 다가와서 흥정을 걸었다.
2배 이상이 되는 금액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아침나절에 그곳에 와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다가, 공항 승객들에게 2배 가량의 돈을 받고 실어다 주었다.
이것은 한동안 잘 보이지 않던 현상이었다. 그러다가 1997년 들어 다시 생겨나기 시작한, 1970
년대의 어둡고 가난한 시절의 무지한 작태의 재발이었다. 모두 앞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다시
30년을 후퇴하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결국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작태는 부패한 일상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음이 증
명되었다. 그 해 말부터 단계적으로 IMF의 금융 지원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1970년대의 어둡고
어려운 시대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어느 나라에 가든,택시나 버스 운전사를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그것은 그 사
회를 들여다보는 가장 손쉽고도 정확한 방법이다. 그들은 사회의 가장 개방된 곳에서 쉽게 만나
는 사람들이다. 도로는 또한 가장 간단한 약속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녹색 불과 빨간 불,
도로 가운데의 황색 선과 보행자 횡단 보도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약속이며,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지켜야 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 곳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택시나 버스기사를 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 참으로 놀랄
만큼 정확하게 그 사회의 전반적 성숙도와 일치한다. 한 번 실험해보라. 놀라울 것이다.
일본에 가서 택시를 한 번 타보라. 말이 통하지 않지만, 그들은 얼굴과 몸짓으로, 혹은 의사 전
달이 될 리 없는 일본어로 다가온다. 언어는 매우 이상하다. 그 뜻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감정은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들은 질서를 지키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운행한다. 바가지라는 것은
없다.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거리가 자신들의 일터라는 것을 잘 안다. 조심스러운 운행과 양해를 구하는 손짓으로
복잡한 거리를 넓게 쓴다. 차선 하나를 바꾸는 데도 여러 번 손을 올려 양해를 구한다. 한 번은
옆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올리고, 두 번째는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또 손을 들어 올
리고, 목례를 한다. 세 번째는 다 들어왔으니 양보해주어 고맙다고 한 번 더 손을 올려준다.
싱가포르의 운전사들은 보다 다이나믹하다. 이들은 대체로 유쾌하다. 말을 걸고, 떠들어 댄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익숙한 제스처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결코 난폭한 운행은 하지 않는다.
거리의 아무데나 차를 세우고 손님을 태우거나 내리게 하지 않는다. 도로 곁에 바짝 세우거나,
뒤차의 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곳에서 조심스럽게 정차한다. 달리다가 정해진 속도를 초과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경쾌한 경고음이 흘러나온다. 통제와 관리가 엄격한 이 사회의 하나의 단면이다.
미국에서 나는 택시를 많이 타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한 시골 마을에서 50분 가량
떨어진 공항까지 이동하는 동안, 택시를 불러 탄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그들이 매우
예의 바르다는 것이다.
그는 50세쯤 된 백인이었다. 그는 내 짐을 트렁크에 실어 주었고, 나와 말을 할 때마다 ‘서’
(Sir)라고 존칭을 썼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나는 급하게 살 것이 하나 생각나서 근처의 슈퍼마
켓에 들러야 했는데, 그는 개의치 않았다. 천천히 기다렸고, 싫은 기색이 전혀 없었다. 여유로움이
돋보였다.
내리면서 나는 슈퍼에서 소비한 약 5분 정도의 서비스에 감사하며, 팁으로 그에게 5불을 주었
다. 그는 매우 정중하게 고맙다고 했다. 그 사람이 특별히 정중한 사람인지, 아니면 일반적으로
콜 택시 운전사들이 그렇게 교육 받았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서비스가 이루어
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미국 사회를 미루어 짐작할 때, 그의 태도가 예외적인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들은 비
즈니스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보수
적 성향이 강한 사회이다.
호주에서 나는 참으로 유쾌하게 웃었던 적이 있다. 시드니의 외곽에 있는 맨리 비치 호텔에는
공항으로 가는 유료 셔틀 버스가 경유한다. 나는 하루 전에 그 버스를 예약해 놓았다. 시간이 되
어 브스에 오르자-그것은 한20명 가량 탈 수 있는 승합 버스였다-나 혼자였다. 공항까지는 약1시
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동안 내내 혼자였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 사람이라도 그
시간에 이용할 사람이 있으면 운행한다고 한다.
운전사는 뉴질랜드 원주민이었다. 나이는 아직 서른이 안 된 것 같아 보였다. 부모가 모두 뉴질
랜드에 있고, 애인도 그곳에 있다고 했다. 호주가 그곳보다 벌이가 좋아 여기서 돈을 벌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호주와 뉴질랜드에 대해 많은 이유기를 해주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혼자 타고 온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친절한 대접에 고맙기도 하고 해서, 약간
의 팁을 주었다. 그는 받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내게 영수증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가능하냐고 했
더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리고 백지에 자기 이름과 금액을 쓰고, 사인을 해서 준다. 그게 영수증
으로서 제대로 인정받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의 성의를 고마워했다. 그는 별로 배운 것도
없고, 비즈니스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고, 자기가 한 것만큼의 보상을 기대한
다. 푸른 바닷물 처럼 순박하게 느껴졌다.
최근 들어 나는 한국의 대중 교통 운전기사들이 도를 이미 지나쳐 있다는 것을 느낀다. 보행자
신호가 끝나기 전에 지나가는 것은 예사가 되었다. 또 보행자 신호에 일단 정지하는 것도 무시된
다. 차는 길 한가운데서 갑자기서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길가로 조금 더 얼마든지 붙일 수 있는
데도, 가다가 그저 선다. 뒷차가 알아서 서야 한다. 그것도 못 하면 차를 타고 거리로 나오지 말
아야 한다. 합승은 당연한 것이다.
경우에 따라 고속 버스 정류장 같은 특정 지역에서는 밤늦게 되면, 빈 차는 즐비한데도 사람들
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합승을 잡으려고 애를 쓴다. 모두 특정한 방향으로 가는사람들을 기다리
고 서 있는 택시들이다.
나는 몇몇 기사들에게 왜들 그러는지 물어보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것저것 사정
다 봐주고 지킬 것 다지키다 보면, 회사에 입금시키고 가져갈 돈이 안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나는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사회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
를 쓰는 기사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런 분들을 존경한다).
사회가 함께 지키기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될 이유가 통용되는 사회는 덜된 사회이다.
부패한 사회이며, 공공의 질서가 문란한 사회이며, 원활한 배분이 이러우지고 있지 않은 사회이
다. 서로 신뢰가 이루어지지 못하며, 타인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곳이다. 이런 사회는 비전이
없는 사회이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으로 가득 찬 사회이다.
싱가포르가 세워지기 전, 그곳은 그저 나무가 울창한 밀림이었거나, 잡초가 우거진 황량한 벌판
이었을지도 모른다. 싱가포르를 만든 지도자들은 그곳에 지금의 싱가포르를 위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그림대로 이 도시를 만들어왔다. 생생하고 위대한 미래의 그림
--우리는 이것을 비전이라고 부른다.
비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축물을 연상하는 것이 가장 완벽한 동질성을 부여한다. 비
전은 ‘미래의 청사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 생각에 강하게 반대한다.
그것을 청사진이라고 해석하는 데에서부터 우리는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사진은 전문가들을 위한 것이다. 보통 사람은 청사진을 보고 그 건물의 전체 모습을 떠올릴
수 없다. 그것은 판독하기 어려운 수치와 기호일 뿐이다. 비전은 이해 관계자 모두가 쉽게 그 모
습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어야 하며, 그 모습의 아름다움 때문에 마음이 설레어야 한다.
따라서, 비전은 오히려 건물의 조감도와 흡사하다. 건물의 유려한 자태와 자재의 질감이 느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건물 속의 한 부분을 줌 업(zoom up)시키면, 그 속에 앞으로 자신이 거주하고
생활할 새로운 공간이 보인다.
이 건물이 만들어지면 이 아름다운 건물로 이사오게 될 것이다.
어둡고 추운 지금의 공간에서 벗어나 밝고 따뜻한 남쪽으로 난, 창이 넓고 전망이 좋은 공간
속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개인이 조직의 비전으로부터 자신의 비전을 연결시킬 수 있어야만, 이 비전은 살아 있는 진정
한 비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만일 개인이 조직의 비전으로부터 자신의 미래를 연결
시킬 수 없다면, 그것은 비전이 아니다. 왜냐하면 조직의 구성원들의 도움 없이는 이 비전은 이루
어질 수 없는 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이 리더가 보여주는 비전으로부터 자신의 미래를 그려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이 위대
한 비전의 창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비전일수록 위대한 과정을 통해 구현된다. 만일 이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설레이는
가슴으로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위대한 곳으로의 여정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
러므로 살아있는 비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은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는‘신비롭고
도 구체적인’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
조직 비전의 개인적 의미
리처드 C. 화이틀리(Richard C. Whiteley)는 고객 서비스 분유의 경영 혁신에 관한 전문가이다.
그는 각 개인에게 조직의 비전은 각기 다른 개인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
람이다.
그는 두 가지 차원의 비전이 서로 연관되어 어우러지는 경우의 예를 몇가지 열거한 적이 있는데,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되어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1960년대에 미국의 아폴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어느 날 한 방문객이 경
비원에게 “당신이 여기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
답했다. “나는 사람이 달에 가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그는 삶에 진지한 사람이며, 인류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쉽
게 추측할 수 있었다.
고객 중심적 경영을 지향하는 조그만 회사에서 직원의 복지를 담당하는 부서가 다음과 같은 부
서의 비전을 세웠다고 가정해보자.
우리의 고객은 직원 모두이다. 우리는 그들의 복지를 다루고 있으며, 복지는 인간의 문제이다.
우리는 서류의 빈 칸을 채우고, 수표의 금액이 제대로 쓰여졌는지를 담당하는 부서가 아니다. 우
리는 직원(고객)이 아플 때 돌보아주고, 그들이 곤란을 겪을 때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들은 직원의 복리 후생 제도의 행정 과정과 일의 처리 절차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직원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도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고객 중심을 경영 원칙과
방향으로 제시한 회사의 비전과 자신의 부서의 비전을 일치시키고 있다. 이 비전을 통해 그들은
직원들을 위해 월등한 서비스를 제공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며, 업무의 최우선적 가치가 어
디에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가지게 되었다.
만일 당신이 비행기의 부품을 만드는 기업의 생산 근로자라면 어떠한 비전이 당신의 비전으로
적합하며, 고객 중심 경영을 원칙으로 내세운 회사의 비전과 일치할 수 있을까?
나의 아내와 아이들이 안심하고 탈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비전은 당신의 업무에 의미를 부여하며, 가치를 더해줄 것이다. 당신은 완벽하고 꼼꼼한
부품 생산 기술자이며, 어떠한 부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만든 부품은 곧 가족
의 생명과 같은 것이다.
기업 내에서 숫자를 다루는 재무 담당자들은 딱딱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출근하여 아침부터 밤
까지 숫자를 다룬다. 그들에게 비전이 없다면, 그것은 지루하고 신경쓰이는 짜증나는 일이다. 일
생을 그 일만 하면서 산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당신은 왜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생각
해보라. 바로 그 대답이 당신의 비전일 수 있다. 만일 당신의 부서 동료들과 함께 고생고생하여
다음과 같은 비전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정보를 처리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진정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
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경영자들이 요구하는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시장 내에서 경쟁 우위
를 확보할 수 있는 정보를 판매할 것이다.
이것은 시처럼 유려하여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비전은 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다루는 숫자는 정보가 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당신은 경영자가 요구하는 자료를 원하는 시간까
지 만들어주기 위해 밤을 새워야 하는 고달픈 월급쟁이의 모습이 아니다.
당신은 기업 내의 정보를 다루며, 그것은 시장 내에서 당신의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아무
도 모르는’비밀인 것이다. 당신은 숫자를 통해 기업의 성과를 분석하고 해석한다. 직장의 상사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이 만든 이 비전을 통해, 이제 당신은 스스로 지켜야 될 규약을 만
들어 내었고, 당신들이 하는 일에 새로운 의미와 방향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만일 당신이 광고 회사에서 그래픽이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비전은 어떨
까?
기업의 핵심을 그림으로 파착하라.
나는 한 대학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주인공은 훌륭한 교수도 아니
고, 재기 발랄한 그 학교의 젊고 아름다운 학생도 아니었다. 그는 나이 들고 초라한 그 학교의 수
위였다. 그는 학교의 가로등이 고장나면 직접 이것을 고친다. 벤치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벤치를
만들어 그 자리에 놓아둔다. 잔디가 길면, 직접 이것을 깎는다.
그는 학교 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안전에 문제가 있는 모든 설비와 시설을 점검한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학생들이 안심하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는 초라한 수위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넓게 규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수위라
는 직무’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는 이를 통해 존경받는 사회의 ‘어른’(senior citizen)이 되었다.
이것이 비전의 힘이다. 이것은 꿈이기도 하고, 희망이기도 하며, 삶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기도 하
다. 짐 쿠지스(Jim Kouzes)와 포스너(Barry Posner)는 리더쉽에의 도전 이라는 책을 썼다. 그 속
에서 그들은 레이쳄사의 시설부 관리자였던 필 터너(Phil Turner)가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시설부의 직원은 보통 다음과 같은 전화를 받는 것으로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터너 남
자 화장실에 물이 넘칩니다. 고칠 수 있는 사람을 보내 주세요. 또는 에어컨 시설이 고장 났습니
다. 찜통이에요. 빨리 수리해주십시오.
터너 직원들이 보통 불평을 토해 낼 때 스는 목소리의 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우선 짜증스
러운 목소리다. 그 목소리에는 시설부가 시설관리를 제대로 못 한 책임을 묻는 뉘앙스가 묻어 있
었다. 커너와 그의 부서 직원은 항상 열심히 일했지만 그들이 동료들로부터 받는 일상의 요구는
이처럼 불평으로 시작한다.
그는 직원들이 감사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직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공간 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우리 부서에 대하여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이디어는 부사장님으로부터 얻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그 분이 제 사무실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 어깨에 손을 얹고는 터
너 내 사무실 창 밖에 꽃을 심어 주어서 고맙네 꽃을 보니 기분이 좋더구먼 하시더군요 그때 저
는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바로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일이라는 것을 말
입니다.
비전은 일상 생활에서 실천됨으로써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실천은 추상적인 생각이
일상에서 구체화되는 과정이다. 터너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비전은 사회적으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예를 들어 대통령, 시장, 최고 경영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개인에게 비전은 중
요하다. 그리고 개인은 비전을 통해 스스로를 훌륭한 리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비전의 힘
많은 사람들이 비전의 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나는 이에 대하여 남캘리포니아 대학의 경영
학과 교수인 버트 나누스(Burt Nanus)의 견해를 좋아한다. 그에 따르면 좋은 비전은 다음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올바른 비전은 참여를 이끌어 내며 활기를 불어 넣는다.
직원의 참여를 얻어내기 위해 우리는 종종 금전적 이익을 주는 방안을 강구한다. 모든 인센티
브 제도는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것은 참여를 돈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용병만으로 우리는 전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나아가자 조국의 아들이여, 이제야말로 영광의 그
날이 왔다.....로 시작되는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부르는 젊은이들 없이
는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연합군 앞에서 조국 프랑스와 혁명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비전은 사람들을 고무시켜 눈앞의 현실적인 이익을 초월하게 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있는
어떤 것에 자발적으로 전심전력을 다하여 기꺼이 만든다.
올바른 비전은 직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앞에서 든 몇 가지 사례를 통하여 우리는 비전이 사회가 특정이나 집단에게 부여한 직위를 뛰
어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에 정열을 가지게 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의 지위를 만들어 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자신을 판매 사원이나 자재 취급 담당자가 아니라 가치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팀의 일원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올바른 비전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고, 그리고 과거를 존중한다.
비전은 미래에 우리가 다다르려고 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를 통해 구현된다. 우리는
항상 일상적인 작업에 얽매여 있으며 자질구레한 현재의 업무 때문에 항상 바쁘다.
계획된 일정 내에 판매 목표액을 맞추어야 하며 예정된 날에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도 있다. 경비를 줄이라고 닦달당하고 수익률을 높이라는 압력을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조직이 성장하기 위해서 장기적인 관점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제품과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품질을 높이고 새로운 운영 방식을 발견해 내고 기술
을 신장하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여야만이 경영자와 직원 그리고 투자자의 진정한 공통적 이해
관계가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올바른 비전은 현재 조직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것과 미래에 구축하기를 바라는 것 사이를 연
결해 준다. 따라서 비전은 스스로의 구현을 위해 강화시키고 권장할 필요가 있는 바람직한 현재
의 활동을 강조한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비전은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에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의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과감히 없앨 것인지에 대한 지침서의 역할을 한다.
올바른 비전은 또한 과거의 위대한 순간을 상기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한다. 지
금 관료주의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은 과거 기업의 초창기에 가졌던 직원의 몰입과 신속성을 강조
함으로써 가까운 미래에 다시 그러한 장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독산동의 열악한 근로 환경 속에서 근면과 정열을 통해 성장한 의류업체가 강남에 아름다운 사
옥을 짓고 이사를 했다. 이사한 후 그들은 한 해를 보냈다. 한국 사회가 총체적 불경기에 시달렸
고 의류 산업은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어 갔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한 중역은 직원들이 과거에
가졌던 근면과 정열이 와해되고 스스로를 아름다운 사옥과 어울리는 귀족 사원으로 착각하고 있
다고 개탄하였다. 그의 개탄과 아마 과거의 그 탄탄한 마음가짐을 미래에도 견지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처럼 비전은 과거의 장점과 교훈까지 그 속에 담아둠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미래와 연결시키
고 있다. 바로 미래의 관점에서 오늘을 보게 하고 과거의 영광을 미래에 재생할 수 있도록 고무
한다.
새로운 비전이 필요한 시기
언제나 우리는 비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정말 비전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시기가 있게 마련
이다. 예를 들어 조직의 구성원이 스스로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서둘러 비전
을 재정립해야 한다.
잘 관찰해보라. 직원들이 진정한 참여 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그들은 급여
만을 위하여 일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이 스스로를 이류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
라. 당신은 그런 직원들과 함께 일류의 자리를 만들어갈 수 없다.
또 조직이 외부의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할 때 우리는 새로운 비전을 필요로 한다. 고객이나
의뢰인 혹은 투자자나 주주 같은 중요한 조직 외부의 사람들이 당신 조직이 쇠퇴하고 있다고 말
한 적은 없는가 혹은 기술적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을 받은 적은 없는가.
구태 의연한 경영으로 새로운 경쟁자가 시장의 주도적 위치를 장악해 가고 있지는 않은가
먹거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습관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서구화되어 가지만 그 동안 고집스럽게
한국인들이 집착하고 있던 것이 바로 먹거리였다. 시원한 국물이 있는 음식, 개운하고 매콤한 음
식은 외국을 여행하는 한국인 누구나가 니글거리는 비위를 가라않히기 위해 그리워하는 것이다.
미국이 가는 곳이 가장 먼저 진출하는 맥도날드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는 것이 그렇게 늦었던
이유도 우리의 촌스럽고 고집스러운 입맛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입맛조차 급격하게 변하
고 있다. 군대에 간 아들을 위해 부모가 싸가지고 가는 것은 이제 떡이 아니라 햄버거이며 아이
들의 도시락 반찬에서 김치가 빠져 나가고 있다.
최근 일본의 직장인들과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다카라지마(보물섬)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 곳은 한국 음식을 파는 곳이다. 갈비는 가루비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비빔파는 비빔밥, 나
무루는 나물, 굽파는 국밥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도 일본식 우동집이 많이 생기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에 한국식 식당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의 일본 음식점들은 맛뿐만
아니라 좌석 배치 분위기 내부장식까지 그대로 베껴 온다.
그러나 그들은 요리의 이름과 맛은 그대로 가지고 갔지만 운영 방식은 완전히 바꾸어 경영한
다. 예를 들어보자.
우선 혼자서도 갈비를 시킬 수가 있다. 적어도 2인분은 시켜야 한다고 당연한 듯 말하는 한국
의 갈비집 종업원들과는 다르다. 안심 등심 갈비를 조금씩 섞어 시켜도 환영한다. 아이들을 위해
소시지 옥수수 쇠고기 세트등도 함께 있어 입맛이 섞여 있는 가족 단위 외식에 안성 맞춤이다.
거기다 값도 싸다. 갈비 세트가 1인분에 1000엔 각종 나물이 곁들여진 도시락 세트는 800엔이다.
일본의 음식 가격이 우리의 보통 2배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머지
않아 가루비와 비빔파가 우리에게 수입될지도 모른다.
과거에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많은 문물을 들려와 우리에게 맞게 고치고 개선해 왔으며 일본은
우리를 모방하기에 힘썼었다. 지금 그들과 우리는 입장이 바뀌어 가고 있다. 우리는 그저 모방하
기에 바쁘고 그들은 받아들이고 개선하고 바꾸어 가고 있다.
지금은 정말 새로운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참으로 필요한 시기이다. 그들의 발 빠른 적응
을 약삭빠름으로 탓하기 전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실수 변화를 만들어 가고 이속에서 보
다 나은 것을 추구해가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이때 바로 비전이 필요하다.
또한 조직 내에 유언비어가 판을 치고 풍문이 유일한 정보의 수단이 되어갈 때 또한 새로운 비
전이 필요하다고 경영자는 중역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따르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고무시켜야 한다.
경영이라는 것은 상징적인 활동이다. 그것은 직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이전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여기에 전념하게 만드는 것이다.
설득이란 합리적인 만큼 또한 매우 정서적인 것이다. 비전은 바로 경영자가 직원들로 하여금
다시 미래를 믿도록 만들기 위해 제시하는 합리적이고도 정서적인 신념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필수적인 경영 요소인 것이다.
좋은 비전의 예
비전은 조직이나 개인에게 있어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미래에 대한 정신적인 모델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미래에 대해 꿈을 가지게 되며 현재의 어려움을 넘어 스스로를 쇄신하고 변혁할 수 있
도록 격려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우리에게는 꿈이 있다고 소리 높여 외칠 때 그 말 속에는 사회의 하부 집
단으로 천대받고 움추리고 추하고 더러운 흑인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밝고 화
려한 꿈이 없이 어떻게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으며 당당한 주역으로서 일익을 담당할 수 있겠는
가?
디즈니랜드를 만들어낸 월트디즈니의 비전을 생각해 보자.
디즈니랜드의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이 곳은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행복과 깨달음을 발견하는
장소이다. 부모와 아이들은 함께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교사와 학생들은 보다 나은 이해
와 교육 방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이든 세대들은 지나간 나날들에 대해 향수를 다시 느낄
것이며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도전을 맛 볼 것이다.
이 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경이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디즈니
랜드는 미국을 창조했던 이상과 꿈을 보여 줄 것이다. 또한 미국의 꿈과 현실을 독특하고 극적으
로 표현함으로써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용기와 영감의 원천이 되게 할 것이다.
디즈니랜드는 박람회장이 되고 전시장이 되고 운동장이 되고 지역 사회의 센터가 되고 생생한
사실들의 박물관이 되며 아름다운과 마술의 공연장이 될 것이다. 디즈니랜드는 우리의 세상을 성
취와 즐거움 그리고 희망으로 가득 채워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곳에서 이러한 경이로움을 삶
의 한 부분으로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말속에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만일 당신이 사업가로서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디즈니랜즈의
시설과 설비만을 베껴 온다면 반드시 실패한다, 당신은 오히려 월트디즈니가 가지고 있던 좋은
의도를 치부를 위한 상업적 수단으로 전락시킨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당신은 부모와 아이들이 모처럼 낸 하루의 휴일을 망친 책임을 져야 하며 교사가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새로운 교육 방법을 망쳐버린 책임 또한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꿈과
모험대신 각박한 상혼과 피폐한 탐욕을 보게 만든 책임 또한 져야 할 것이다.
사업가로서 당신이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바로 디즈니랜드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꿈과
비전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진실의 문제이며 삶이며 또한 미래인 것이다.
빌 게이츠는 먼 미래의 기술이 갖고 있는 실용적인 유용성을 예견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컴퓨터를 통한 미래의 발전된 모습을 상상할 때 항상 다음과 같이 자문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어떠한 수요를 창조할 것인가라고 말이다.
1975년에 그는 이미 PC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책상과 가정에 PC를 이라는 엄
청난 비전을 만들어 냈다. 그로부터 16년 후 아직도 그의 경쟁자들이 여전히 전통적 PC 사업에
전념하고 있는 동안 그는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냈다. PC에서 모든 것을 이비전은 그로 하여금
음악, 영화, 정지화면, 택스트를 통합하는 멀티미디어 컴퓨터에 수백만 불을 투자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새로운 비전은 그로 하여금 다른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시장 점유율을 어떻게 빼앗아 올
수 있는가에 대한 것만 생각하고 있게 만들지 않았다. 그는 이미 텔레비젼, VCR, CD플레이어 등
의 가전 제품을 만들어 내는 기업들이 자신의 주요 경쟁자가 될 날을 이미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ㅁ에 자신의 모든 재산과 노력을 투입시킴으로써 마이크
로소프트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빌 게이츠는 자기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사람과 다르게 이를 해석 할 수 있는 능력
을 가지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적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매우 위대한 사람이다. 비록 성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을지
모르지만(그와 관련된 농담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막 신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빌 게이
츠의 처에게 기자들이 신혼 첫날 밤이 어땠는지 물었다. Micr&Soft 나는 이 농담의 진위에 대해
서는 책임을 질 수 없다.)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박사는 유태인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죽음의 수
용소에서 살아 나온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 후 그는 이 수용소에서 직접 체험한 경험과 인간적
반응을 환자의 심리 치료에 직접 적용함으로써 심리 치료법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되는 로고테
라피(Logoteraphy)라고 불리는 방법론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이 치료법의 의미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어 프로이트와 아들러 이후의 가장 커다
란 성과라고 말한다.
수용소에서 모든 개인적 역사를 상실한 채 하나의 번호로 불리다가 한 사람으로 살아 돌아오게
된 그의 이야기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던 비전의 힘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책 의미를 찾는 인간에는 그가 경험한 수용소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중
에 하나를 소개한다.
언젠가 한 번은 매우 추운 날이었는데 우리는 숲 속에서 수도 파이프를 묻기 위해 땅을 파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 땅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때 나는 이미 신체적으로 매우 약해져 있었다. 어느 순간 뺨이 붉은 작업 반장이 다가왔는데
정말 돼지의 얼굴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나는 그가 탐나는 두툼한 장갑을 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내 앞에 서서 한동안 내가 일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문제가 생겨나고 있
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 앞에는 내가 구덩이에서 파낸 흙이 쌓이고 있었는데 그
양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자가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이런 돼지같은 새끼! 한동안 널 지켜보았다. 이 새끼 그것도 일이라고 하고 있는거야? 이빨로
흙을 파게 만들어 줄까? 너 같은 자식은 이틀도 되기 전에 돼지처럼 죽여 줄 수 있어. 알아? 일
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새끼구먼. 너 뭐하다가 왔어, 이 돼지 같은 새끼야! 사업가였나?”
나는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대처해야 했다. 나
는 허리를 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나는 의사였소.”
“뭐? 의사? 개새끼, 사람들의 등을 쳐서 돈 꽤나 울거냈겠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치료해 주었소.”
그러나 그때 그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내게 달려들어 미친듯이
소리치며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의식을 잃었다.
내가 이 작은 에피소드를 여기에 소개하는 이유는 분노가 죄수를 더욱 견디기 어렵게 하는 순
간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잔인함이나 고통에 대한 분노말고 이것과 얽혀 있는 모멸
감에 대한 분노말이다.
그때 나는 정말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했다. 왜냐하면 내 인생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그와 같은 인간이 내 인생을 평가하는 것을 그냥 들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이 있은 후에 내 동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고 그 말이 내게 아이와 같이 유치한 위
로를 주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 녀석은 정말 너무도 천하게 생겨먹어서 아마 내 간호사는 그를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하지
도 않았을거야.”
빅터 프랭클은 수없이 많은 육체적 고통과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가 아우슈비츠에 있는 죽
음의 수용소에 처음 도착하여 나치가 시키는 대로 입고 있던 옷과 시계 반지를 벗어버려야 했을
ㄸㅒ 이미 그는 자신의 모든 개인적 역사를 잊어야 했다. 아내, 아이들, 그리고 친구들과의 모든
끈은 끊어지고 그는 하나의 인간에서 하나의 번호로 불려졌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정들과 반응을 기억하고 기록하였다. 그는 자신이
이 죽음의 수용소로부터 살아 나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대학의 강의실에서 지금 겪고 있
는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희망 때문에 그는 생으
로부터 떠나갈 수 없었다. 살아야 했다. 결국 그는 살아서 자기가 꿈꾸었던 것-사람들 앞에서 하
나의 번호에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한 개인으로서 무력하기 짝이 없는
그는 이미 벌어진 사실. 즉 ‘수용소의 한 죄수’라는 상황을 바꿀 수가 없었다. 절망이란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절망한다.
그러나 그는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이 상황을 해석하는 자신의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고난의 의미를 찾기 시작
했다. 후에 그는, 자신이 겪은 이러한 변화의 힘을 환자의 치료에 적용하였다.
예컨대 그는, 아내의 죽음과 이로 인한 성실감에 시달린 한 노인을 치료하게 되었다. 그는 환자
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만일 선생님이 먼저 돌아가셔서, 아내가 지금 혼자 남아 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분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그건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제 처가 혼자 남아,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절망을 겪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의 고통은 그렇다면, 아내의 고통을 대신한 고통입니다.”
그 환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빅터 프랭클의 손을 꼭 잡은 후 돌아갔다. 그는 자신의 고
난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비록 아내가 죽었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그
는 ‘희생’이라는 자신의 고난의 의미를 알게 됨으로써 환자에서 한 명의 꿋꿋한 인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단순한 마음의 위로라고 여기지 않는다. 무기력한 사람들을 위한 정신적 위로라고
여기지 않는다.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석가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상은
실제로 그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 왔고 이해되어 왔다. 그렇지 않은가?
빅터 프랭클은 고난만이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의미를 알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지 않
는다. 고난은 피할 수만 있다면,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반드시 피해야 한다. 일부러 고난을 찾
아가는 것은 마조히즘일 뿐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생활,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의 내몰림, 혹은 치명적인 암, 사랑하는 사람
의 죽음 등과 같이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조차도 그 의리를 발견함으로써 상황을 재해
석할 수 있다. 스스로를 변화시킴으로서 절망적 상황을 바꾸어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고난을 재해석함으로써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을 객관화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고난에
대한 관찰자가 되었다.
그는 살아서 수용소를 나와야 했고, 이 체험을 알려야 했고, 이 체험을 통해 환자를 치료해야만
했다. 그는 도저히 그 곳에서 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감히 그의 비전이라고 부른
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믿지 않았다. 사람마다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도 날마다, 시간마다 인생의 의미는 달라진다고 믿었다.
마치 우리가 바둑을 둘 때, 객관적으로 ‘가장 훌륭한 수’란 없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리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느냐에 따라 가장 훌륭한 수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추상적 의미를 알아내려고 애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되풀이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당신의 인생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바로 도전이며, 당신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인생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마라. 그 대신, 인생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당신의
인생이 무엇인지 물어보도록 해야 한다. 임종의 자리에 누워, 당신은 인생에게 당신의 삶이 어떠
했는지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누구와 함께 살아왔으며,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그때 그 일은
참으로 잘한 일이었고, 그때 그 일은 두고두고 가슴 아픈 후회였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이 구체성이 바로 당신의 인생이며,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오직 당신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
무이함이다.
참으로 진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들, 아내, 딸, 혹은 남편과 아들, 안
아무개, 송 아무개 같은 몇 안 되는 치구들, 이미 흘러가 만날 수 없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
이 당신 인생의 순간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이다. 당신의 인생은 그들과 함께 한 시간과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이 바로 당신 인생의 정체인 것이다.
비전은 바로, 아직 살아 있는 당신이 남은 미래를 위해 짜놓은 황홀한 각본이며, 이것은 진지한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살아 있는 공유 가치
나는 비전을 개발하는 방법들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버트 나누스는 자신의 책 『비전을 통한
리더십 The Visionary Leadership』에서 이 방법론을 제공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나는 그의 노력
이 리더십의 이론과 실천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방법론을 제공했다고 믿지는 않는다.
비전은 그가 말한 대로 어떤 통찰에서부터 온다. 직관적 통찰은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종종 경험, 상상력, 열망, 가능성, 그리고 알 수 없는 신비한 직감에서 온다. 대체로 이러한 통찰
은 논리적 판단의 힘을 받아 형태를 잡아간다. 그러나 아직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그 무엇’
의 상태에 있다.
훌륭한 비전은 종종 세상에 대한 색다른 시각에서 온다. 그러므로 비전을 가진 훌륭한 리더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색다르고 빈틈없는 관찰자들이다. 월트 디즈니나 빌 게이츠, 그리고
빅터 프랭클은 그런 면에서 모두 공통적이다. 그들은 그러한 특이한 시각을 어디서에서 얻어 왔
을까? 어머니로부터? 아니면 신의 특별한 계시를 통하여? 아니면 어느 날의 갑작스러운 우연한
깨달음으로부터?
한 회사의 사장은 개혁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참으로 자신의 조직을 ‘고객 중심적이고, 직원
모두가 힘써 일하는 활력 있는 조직’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개혁이 뒤따라
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많은 일상적 상황을 처리해야 했다 달마다 또 분기마다 채워야 하는 목표액
을 맞추어야 했다. 단기적으로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는 물량을 밀어내야 할 경우도 있었다.
중역들은 언제나처럼 자신이 대표하는 부서의 입장에서 모든 일을 해석하고 있었다. 따라서 ‘
고객 중심’,‘엠파워먼트’,‘팀워크’,‘신속한 회사 차원의 의사 결정’,‘시장에서의 승리’같
은 가치들은 공허하고 관념적인 것이었으며, 현실 생활의 지배 원리로 작용하지 못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개혁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의 방향이 필요했다. 회사의 모든
힘을 한 곳으로 몰아, 몇 년 후에 당도해야 할 ‘아름다운 그곳’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는 어느 날, 모든 중역들에게 며칠 시간을 낼 것을 주문했다. 회사의 비전을 만들기 위한 모
임이었다. 오랜 숙의 끝에 나온 비전은 ‘우리는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너무도 평범한 문구였다.
그는 그러나 여러 중역과 함께 회사의 기본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했으며, 그래
서 이 평범한 문구를 회사의 ‘비전 스테이트먼트’(Vision statement)로 선택하였다. 포스터를
만들어 회의실마다 붙이게 했고, 관리자 회의를 통해 이를 주지시켰으며, 사내 방송을 통해 이를
직원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사람은 회사의 비전에 대해 잊게 되었다. 아니, 애초부터 이 비전
은 직원 누구의 마음도 감동시키지 못했다. 중역들 역시, 고객 만족보다는 이 달의 매출액, 이 달
의 목표액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중역 회의의 기본 주제는 여전히 숫자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고객의 목소리는 비현실적인 과도한 요구로 치부되고, 돈과 회사의 목표, 그리고 직면한 문제의
해결에 대한 1회적 지침만이 회의의 주제가 되었다.
직원들은 중역과 관리자의 지침에 따른다. 보수적인 관리 중심의 기업일수록 이러한 지시 체계
는 엄격하다. 며칠만 지나면, 영리한 직원들은 중역과 관리자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
지 금방 알아차린다.
그들은 고객 만족을 말하지만, 사실은 고객의 주머니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고객과의 장기적 관계보다는 1회적 거래의 중요성이 우선한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
다.
실제로 이 회사의 직원들 역시 이중 가치 체계,‘고객의 만족을 위해, 고객의 주머니를 터는’
거래를 일상적 거래의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고객의 사업을 이해하고 그 요구를 분명히 구체화시켜 이를 해결해줄 뿐 아니라 미래의
설계를 도와줌으로써 고객과의 장기적 경영 파트너가 되는 일은 그저 이상적인 꿈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경영자에게 경영은 인생이다. 화가에게는 그림이 인생이고, 작곡가에게는 음률과 곡조가 인생인
것과 같다. 그리고 경영은 돈만이 목적이 아니다. 좋은 경영자는 기업 속에 자신의 인생을 담아
놓고 싶어한다. 자신이 죽더라도 자신의 원칙이 살아 숨쉬는 기업을 만들고 싶어한다.
토마스 왓슨 2세(Thomas Watson, Jr)는 IBM의 핵심 가치를 아버지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고 말한다. 그는 『사업과 신념 The Business & Beliefs』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에게는 그 가치들이 바로 삶의 법칙이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며, 모든 직원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며, 다음 경영자가 누가 되더라도 받아들
여야 하는 것으로 일생을 통해 양심적으로 다라야 하는 원칙이었다.
제약 회상인 머크(Merck & Company)의 사내 경영 지침서에는 ‘인류의 생명을 지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이 회사의 사명이며, 사업의 성패는 이것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휴렛패커드의 전 회장이었던 존 영(John Young)은 1992년에 가졌던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
이 말했다.
HP의 창립 이념은 창립자가 그 이념을 세운 이래 변하지 않고 지켜져왔다. ...... 이익이란 그 자
체로 기업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 대문에 휴렛패커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
리는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 때문에 존재한다는 입장을 언제나 분명하게 지키고 있다.
존슨 앤드 존슨의 짐 버크(Jim Burke)전 회장은 1943년에 로버트 존슨 2세가 만들어 놓은 ‘우
리의 신념’을 전파하는 데 자기 시간의 40퍼센트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일과 관련
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의 경영 활동은 매일매일 이익을 맞추는 데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업계에서 살아 남기 위
한 수단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하다보면 우리는 단기간의 수치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신념’은 종업원들에게 ‘잠간 기다려, 그건 해서는 안 돼’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
한 신념으로 회사를 운영해주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마땅히 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
다.
이익이 없이 기업은 존속할 수 없다. 그러나 이익만을 위해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
은 자신의 존재 이유가 뚜렷하고, 그것을 엄격히 지킬 수 있을 때, 비로소 고객에게 유익한 경영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익은 그 대가이며, 그 결과일 분이다. 이익이 목적인 기업은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
다. 왜냐하면 고객은 기업의 이익이나 챙겨 주기 위해 존재하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치와 실적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업은 매우 많다. 이것은 어쩌면 매일매일의 경영 활
동 속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어려움일 것이다. GE의 잭 웰치 회장도 그 어려움을 다음과 같
이 털어 놓았다.
실적도 좋고, 가치 체계에 부합하는 이들이 제일 좋다. 실적은 낮더라도 가치 체계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그 다음이다. 실적도 낮고, 가치 체계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이들은 최하위이다. 그러나
정말 문제는 실적은 좋으나, 가치 체계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좋은 기업은 언제나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고, 변하지 않는 핵심적 가
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성공을 위해 경영 전략과 전술을 어느 기업보다도 빨리, 쉴
사이 없이 바꾸어 왔다. 앞으로도 더욱 빠른 속도로 바꾸어 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유용한 전략과 전술이라도 기본 가치체계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적
합한 전략과 전술로 바꾸어 갈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좋은 기업이 아니
다. 고객과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다. 고객 없는 이익이란 없다. 이것처럼 분명한 경영의
전제는 없다.
아픈 사람들은 머크사가 ‘질병과 싸우고,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을 돕는다'는,
위대한 일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지켜가기를 바랄 것이다. 내 아이들은 앞으로 생길 자신의 아
이들을 위해 디즈니랜드가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이라는 가치 체계를 지켜가 길 바랄 것이다.
가정을 이룬 사람들은 GE가 ‘기술과 혁신을 통하여 생활에 풍요로움을 주는 일’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사업을 하는 내 친구들은 메리오트 호텔이 ‘집을 떠난 사람들에게 친구와 함께
있는 편안함을’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응용 기술의 혁신을 통해 소니가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즐거움과 혜택’을 계속 줄 수 있
기를 내 딸의 친구들은 바라고 있다. 그리고 월마트가 ‘보통 사람들에게 부자들과 똑같은 물건
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제공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또한 한국의 기업이 IMF 시기를 지나는 동안, 세계인들에게 뚜렷한 핵심
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기대와 바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고객이
다. 그들을 실망시키는 것은 경영자가 해서는 안 될 제일의 원칙이다.
나는 세계의 훌륭한 기업들 중에서 살아 있는, 핵심적 기업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은 기업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비전은 이러한 가치와 신념과 사명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
서 비전을 개발하는 방법이 따로 있지 않다. 오직 뼛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절실한 것을 찾
아 명문화하는 것이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바로 경영의 신념을 가지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우선적 가치를
준수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이는, 어떠한 비전도 비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영속 기업 Built to Last』이라는 책을 쓴, 스탠퍼드 대학의 경영학 교수들인 제임스 콜린스
(James C. Collins)와 제리 포라스(Jerry I. Porras)는, 핵심적 가치는 반드시 합리적일 필요는 없
으며, 대외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시류에 따라 달라지는 유행이 아니다. 항상 변하는 시장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이나믹하게 변해야 하는 전략이나 운영 지침, 특별한 목표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근시안적인 기대치나 경제적 이익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경영자가 세상을 보는 특별한
태도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비전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돈을 내고 컨설팅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누군가의
철학을 빌려 온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빌려 온 철학은 신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신념이
없는 가치관은 지켜지지 않는다.
스스로 지키기 어려운 것을 직원에게 설득시킬 수 없다. 바로 이것이 많은 기업이 비전을 개발
하여 제시하고 있지만, 벽에 걸린 액자의 가치 이상이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경영자는 먼저 자신이 기업을 경영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직원
과 공유할 가치는 없다 왜냐하면 돈은 공유할수록 조금 가져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
념은 공유할수록 강력해진다.
돈은 경영의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경영의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경영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
어준다. 어느 게임도 스코어에 집착하면 잘 풀리지 않게 되어 있다. 정신을 다하여 게임에 열중할
때, 결과가 좋게 나온다. 좋은 스코어는 팀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한 연습의 양과, 게임 당일의
몰두 결과이다.
그러므로 비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업자나 이를 계승한 경영자가 확실한 경영의 목적
과 신념을 정리해야 한다. 자신이 이 기업을 그만두고 떠나 한적한 세상을 즐기는 한 노인이 되
더라도, 자신의 신념과 가치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조직을 보고 싶다면, 조직 속에 자신의 가치
를 심어두어야 한다.
비전은 경영자의 개인적 가치관으로부터 시작한다. 개인적 가치가 조직의 공통적 가치가 되기
위해서는 보편성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조직 구성원들의 재능과 열망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바로 이 개인적 가치를 공유 가능한 보편적
가치로 개념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때 우리는 문학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오장육부와 뼛
속에 깊이 박혀 있는’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명문화할 수 있을 때, 조직 구
성원 전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흡수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비전은 보편적이면서 또한 개별적인 특수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특수성은 기업이 종사하
는 산업 영역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예를 들어 디즈니랜드의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이라는
비전은, 놀이를 통한 즐거움과 기쁨을 목적으로 하는 오락 산업이기 때문에 가슴에 와 닿는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정보 산업에 종사한다. ‘PC에서 모든 것을!’이라는 이 회사의 비전은,
바로 이 회사가 종사하는 산업 분야의 특수성에 기인한 기인한 것이다.
종사하는 산업의 특수성과 누구에게나 공유 가능한 보편성을 가진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문학
적 표현은, 직원이 자신의 개인 가치에 기업의 가치를 연결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언어는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변화를 만들어내는 문화적 이니셔티브이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은 비전이 표현되는 문학적 감수성을 통해 흥분하고, 출근한 이유를 확인하고, 업무의 기
준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비전으로부터 자신의 비전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공유 과정이 제대
로 이루어질 수 없다면, 즉 기업의 가치와 개인의 가치가 공유될 수 없는 경우라면, 가능한 빨리
새로운 직장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
실제로 미국의 노드스트롬(Nordstrom)사는 환상적인 고객서비스로 유명하며,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어낼 만큼 고객 중심적인 백화점이다. 판매 담당 직원들은 다른 백화점의 평균보다 2배 정도
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통 신입 사원의 반 정도는 1년 이내에 노드스트롬을 그만둔다. 퇴직의 이유는 노드스
트롬의 가치관과 제도가 심한 압박감을 주었기 때문이라 한다. 적응하지 못하는 직원은 노드스트
롬을 싫어하게 되고, 결국은 비참한 실패로 이곳에서의 경력을 끝내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세계적으로 유수한 기업들은 창업자와 그를 계승하는 경영자들
이 고수하는 핵심 가치를 직원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다른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속에서 견뎌내기가 쉽지 않다. 바로 비전을 통해 경영자의 핵심적 개인 가치
체계가 직원들과 공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믿음을 공유하는 사교집단과 비슷하다.
매우 다행스러운 것은 이 핵심 가치와 신념이 인류에게 필요한 가치라는 점이다. 위에서 나열
한 여러 기업들의 핵심적 가치와 신념은 매우 유익하고 고무적이며, 또한 공감될 수 있는 가치들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통 받는 사람을 돕는 제약 회사, 기쁨을 주는 놀이 동산, 생활의 여유를 주는 가전 제품 회
사,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화장품 회사, 부자처럼 싸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기쁨을 주는
유통 회사 등은 경영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있다.
어느 기업을 선택할 것인가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어떤 기업을 만들어갈 것인지 역시 당신에
게 달려 있다. 기업 역시 개인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인격을 가지고 있다. 어떤 가치 체계를 가
지고 있는 기업을 선
택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당신의 개인적 가치관에 달려 있다.
삶은 매 순간마다 선택의 연속이 아닌가? 개인의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판단기준에 따라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의 비전으로부터 공감과 흥분을 얻을 수 있을 때,
그리하여 당신의 개인적 비전 역시 고양될 때, 기업은 당신에게 훌륭한 기여의 장이 될 것이다.
삶은 그저 ‘생존하는 것’이상이다. 생존이 우선적 문제가 될 때, 우리는 비참해진다. IMF는
우리를 경제적 생존이 문제가 되는 수준으로 끌어내렸지만, 또한 우리가 근시안적인 경제적 집착
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도 하다.
부동산 투기가 기업의 전문 분야가 아니듯이, 외식의 빈도가 삶의 질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적
당한 소비를 통한 만족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은 일이다.
진정한 실업은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 하고 싶고, 할 수 있
는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은 평범한 사람인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사람 역시, 모
두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을 가지고 있다.
나는 당신의 1인 기업이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당신의 신념을 기업 이념으로 가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당신과 협력 관계에 있는 회사와 함께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한 당신
의 고객이, 바로 그 살아 있는 신념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보고, 당신과의 관계를 신뢰할 수 있기
를 진심으로 바란다.
제 7장 자신과 만나기 위한 느긋한 산책
과거를 기억하는 데 사용되는 능력은 기억력이다.
그러나 미래를 기억해내는 데 사용되는 능력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없는 현재는 껍데기와 같다.
상상력이 존중되지 않는 일상의 생활은 죽은 시간이다.
죽은 시간 속에서는 생명이 살아갈 수 없다. 죽은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은
죽은 영혼들뿐이다.
이 장을 시작하며
사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은 시장이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매우 강력하고 유용한
개념이다.
‘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경제 개념은, 바로 마을 장터에서 열리던 물리
적 현실인 시장을 개념적으로 확대한 데 있다. 이것은 아마 인류가 문명을 시작한 이래 찾아낸,
가장 유용한 개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시장엔는 가격과 선택이 있다. 좋고 싼 것이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는 그러므로 경
쟁이 존재한다. 경쟁이 기준을 낮추게 되고, 많은 사람이 물질적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자본
주의 경제학의 대부인 아담 스미스는『국부론』에서 개인의 이기심이‘보인지 않는 손’을 통해
어떻게 공동체의 이익에 기여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빵을 만드는 자는 이웃을 위한 자비심에서 빵을 굽지 않는다.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아침마다
빵을 구어내 어판다. 빵이 팔리니 돈을 벌게 된다. 혼자 하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다. 빵장사가
돈이 된다고 소문이 나면, 빵 굽는 집이 늘어난다.
공급이 늘면, 경쟁에 의해 빵 값이 내려간다. 이때 보이지 않는 손이 나타나, 수요와 공급 사이
의 교묘한 점에서 가격을 결정해분다. 이웃들은 경쟁이 생긴 이후, 더 좋은 빵을 더 싼 가격에 먹
을 수 있다. 배가 점점 더 불러지는 것이다.
이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준 것은 바로 시장이다. 자유로운 시장의 개념이 공산주의의 가난한
꿈을 이기게 해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승리는 인류를‘배부른 돼지’로 전략시키
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가난한 소크라테스는 어디에 있을까?
메커니즘 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는 기업은 상업화되고, 수단과 목적을 전도시킨다. 종속적 직장
인에서 스스로 결정하는 1인 기업의 경영인이 되고자 하는 당신 역시, 이념과 살아있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평생을 걸고 지키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장에서 여러분은 그 동안 잊고 지냈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생의 요소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행복, 마음의 여유, 희망, 그리움, 욕망, 재능, 시간, 그리고 절제 같은 것이다.
모처럼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어라.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한 느긋한 산책의 시간을 가져보라
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빴는지, 또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빴는지, 또 무엇을 하
며 살아갈 것인지 자문해 보라.
참으로 오랜만의 질문이 아닌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하고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
라. 그리고 그 일을 통해 가치와 기여를 만들어내어, 스스로의 완성을 향해 다가갈 수 있어야 한
다.
발견, 미운 오리새끼
스리랑카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서른두 살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한 쉰은 된 것 같다. 거친
바람과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하루 종일 고기를 잡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기둥 몇 개에 지붕을 얼
기설기 엮은 집에서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산다.
누군가 그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는 그저 씩 웃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시 그에게 무엇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다. 어부는 쑥스럽게 웃으며 말햇지만, 나는 그 속에서 그의 분
명한 확신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행복은‘고기가 많이 잡히고, 가족들이 건강하면’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어느 때 행복한가? 무엇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가?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돈이 있고, 가족들이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되면 행복할까?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돈이란 얼마나 되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보다 분명히 많은 금액일 텐데 어떻게 그만
큼을 벌 수 있을까?
가족들이 건강하기만 하면 될까?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 큰딸아이가 성적이 좋지 않아도 건강
하니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또, 나의 하는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일이 잘 된다는
것은 직장에서의 승진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성취도인가? 아니면 그 모두인가?
이 모두를 잦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아무래도 스리랑카의 어부보다는 행복
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어부는 단순한 생활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돈이 매우 중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공자가 살던 때에도 돈은 아주 귀한 것이
었던 모양이다. 아마 돈은 언제나 귀하고 좋은 것이었나 보다. 논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
다.
부유함이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라면, 채찍 잡는 하인 노릇이라도 나는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내 마음에 드는 길을 따를 것이다.
공자는 매우 생각이 많은 사람인데, 즉 나보다 훨씬 복잡한 사고를 했던 사람인 것 같은데, 그
의 위대함은 얽히고설킨 복잡함 속에서 간단히 핵심을 뽑아낼 수 있는 능력에 있는 것 같다. 나
는 그가 나와 같은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하루하루의 지루한 일상을 살았으리라는 것에서 위안을
받는다.
나도 돈에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는다. 많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으니, 월급 가지고 그
러려니 하며 산다. 내 맘대로 부유해질 수 없다면‘내 맘에 드는 길’을 찾아가야 하는데, 문제는
그것이 무엇이며, 나는 그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젊었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질문을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질문을 가지고 평생을 살다보면, 언젠가 우리는 그 질문의 답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보게 될
것이라는 릴케의 말을 믿고있다. 아마 그 방법밖에 더 있겠는가! 다만 나이가 들수록 초조하리만
큼 더욱 진지한 질문이 되어가고 있다.
누구의 시인지 기억할 수는 없다. 내 메모장에 적혀있는 것을 옮겨 적는다.
무엇을
구했는가 그대는
목숨의 한끝을
올올이 풀허헤쳐
애써 구한 것은
바람되고
흙되고
물되어 흩어지는구나…….
만일 우리가 무엇을 구하기 위하여 인생을 살았다면 가져갈 수 없으니 허망할 것이다. 힘, 영향
력을 구하는 지렁이 닮은 용들이 많다. 또 그 밑에 기생하여 권력을 잡으면, 그동안 냉대받아온
구차함에서 몸을 일으켜, 서민의 척수를 빨아 치부하려고 벼르는 인간은 더 많아, 몇십 몇백 곱절
인지 헤아릴 수 없다.
돈을 구하다 몸마저 자유롭지 못하게 된 어리석은 사람들로 감옥은 터질 것 같고, 국민의 세금
은 더 만은 감옥을 짓기 위해 쓰여질 것이다.
그런가 하면 행복한 가정을 원하는 수없이 많은 갑남을녀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마저 결코 쉽
지 않다. 사려 깊고 부모에 순종하는 아이들을 원하지만, 이 조그만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원수가 되어간다.
그들의 작은 머릿속에는 그들의 세상이 자라나고, 부모가 보기에 한없는 어리석음과 설득할 수
없는 고집으로 채워져간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 그 몇년 동안의 재롱으로 부모에 대한 모든 감사
의 표시를 끝내고, 부모의 곁을 떠나간다. 아이들에게 많이 바랄수록 당신의 마음은 고통과 실망
으로 가득 찰 것이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무언가를 구하고 찾아가는 여정은 아닌 것 같다. 나
는 이제 내가 되고 싶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일상을 살아가면서 늘 더 좋은 존재가 될 수 있으며, 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지금의 나 자신보다 나아지려고 애쓰다 보면, 나는 언젠가 나를 아주 좋아하게 될 것이
다.
윌리엄 브리지스의 표현대로, 인간을 위해 무엇인가 참으로 가치있는 것을 해놓은 사람들은 모
두,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나와 당신처
럼, 늘 조금 피곤하고, 종종 풀이 죽어 있고, 회의적이며, 남의 평가 때문에 괴로워하는 보잘것없
는 사람들이었다.
보잘것없던 사람들이 어느 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은 자신이 그 동안 오리가 되고 싶
은, 한 마리의 백조였음을 발견할 때 부터이다. 다른 사람과 자신의 다른 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하면서, 그는 더 이상 오리가 되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이기를 그
만두게 된다.
그는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흰색 털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고, 커다란 몸짓을 받아들임으
로써 비로소 당당함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는 오리와는 다른, 백조의 일상을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바꾼다는 것은 발견이다.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
고 잘 대해주면 느끼게 된다. 느끼면 알게 되고, 그때 세상은 다른 것으로 다가와 있다.
일탈, 마음의 여유
주인이 괜찮은 술집에서 오랜 친구와 함께 마신 술.
새벽에 일어나 읽은 좋은 책, 밑줄……,
장정이 마음에 드는 공책과 검은색 파커 만년필.
가끔 글쓰기, 일기.
토요일의 등산, 땀 그리고 목욕.
새벽의 노량진 시장, 아이들이 좋아하는 기어다니는 꽃게.
해질녘의 여름 시장 좌판 위의 우뭇가사리 넣은 콩국.
인사동 툇마루의 막걸리와 골뱅이, 아내와 함께한 대작.
여행, 산 속에서 지낸 밤, 쏟아지는 별.
속이 가라앉은 바다내음과 소리, 물 위로 튀는 고기 한 마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내 일상을 지켜주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일상의 어딘가에 숨
어 있다가 나타나, 그 팍팍한 생활에 물을 뿌린다.
이 작은 것들이 중요한 것이다. 돈이 많이 없어도 할 수 있고, 거물이 아니어도 즐길 수 있다.
잠시 마음을 풀어놓으면 찾아주는 것들이다. 마음의 여유만이 일상의 여유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일상의 건너편에 서 있다가 우리가 힘들어할 때, 스스로 알아서 강을 건너와 우리
를 잠시 쉬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들 자체가 바로 일상의 일부인 것이다. 일상 속에서 찾은
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일상의 지리함 속에 이것들을 잘 짜넣음으로써 그 수수함에 약간의 화려
함과 멋을 더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것들은 삶에 대한 나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기 때
문에 달라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조금 바꾸어줌으로써 비로소 나를 데리고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어디로 가보아도 따라오는 것은 나이다. 같은 나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보아도
그곳은 같아진다.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타클라마칸 사막을 캐러밴과 함께 헤메고 잇는 나의 모습을 그리워한 적이 없
는 것은 아니다. 이스탄불의 어두운 어느 카페에서 몇 개월의 오랜 여정의 피로를 술 한잔으로
풀고 있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니면 히말라야가 보이고, 그 산 위의 눈이 녹아 내려 이룬 호수가 보이는 피시테일 로지에서
며칠을 지내며, 둥근 보름달이 그 호수에 비치는 것을 보고싶다. 아니면 가족 모두 캐나다나 뉴질
랜드의 아름다운 곳으로 이민을 갈까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거기에 진정한 삶이 있는 것은 또
한 아니다.
삶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구체적이며, 매일 아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 주어
지는 그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그것은 지금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기도 하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
는 것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침에 먹은 음식이기도 하고, 저녁에 좋은 사람과 나눈 빛깔이 고운 포도주이기도 하
다. 마음속의 꿈이기도 하고,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기도 하다. 슈퍼에서 산 몇 마리의 토다리 명
태이기도 하고, 스칠 때 얼핏 나눈 웃음이기도 하다.
삶은 작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신은 세부적인 것 속에 존
재하는 것이다. 일상의 일들이 모자이크의 조각처럼 모여 한 사람의 삶을 형상화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하루하루는 전체의 삶을 이루는 작은 개울이 되어 강처럼 흐르는 삶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이 그냥 흘러가게 하지 마라. 내일이 태양과 함께 다시 시작하겠지만, 그것은 내
일을 위한 것이다. 오늘은 영원히 나의 곁을 떠나가게 될 것이다. 아쉬워하라. 어제와 다를 것 없
이 보내버린, 어제와 같은 오늘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하라.
오늘은 그러므로 어제와 다르게 느끼는 날이다. 어제와 다른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날이다.
날마다 새롭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이다. 어린 아이였을 때,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그때 세상은 빛나는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그 후,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나’는 아무것도 아닌 군중 속
의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30대에는 30평, 40대에는 40평의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대열 속에 끼지
못하면 초라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의사가 되어 돈을 벌고, 변호사가 되어 절박한 서민의
억울함을 수입의 원천으로 삼아야 잘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지금 이 고리를 풀지 못하면, 우리는 이 오리떼 속에서 영원히‘오리가 되지 못하는 오리’가
되고 말 것이다.
꿈, 아름다운 욕망
하고 싶은 것을 욕망이라 부른다. 욕망은 참으로 잡다하고, 뒤죽박죽이고, 변덕으로 점철되어
있다. 고기 한 점을 먹기 위해 차로 한두 시간 걸리는 길을 나설 수도 있다. 단풍이 고운 설악산
이나 내장산으로 가기 위해 군중과 얽혀, 거리에서 시간을 다 써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욕망도 잇는가 하면, 평생을 바라지만 이루어지지 않을, 그래서 잊어버
리고 싶은 욕망도 있다. 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상실해야 하는 욕망의 관계도 있다.
그 둘을 다 얻으려고 하다가 몸을 망치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돈도 얻고 정치적 권력도 얻으
려고 할 때 꼭 감옥에 가게 되는데, 그렇게 된 사람들도 많다. 조만간 그렇게 될 사람들은 더 많
다.
로버트 프로스크의「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처럼, 그저 사람들이 좀 덜 간 길 같
아 택하다 보면, 다른 길은 가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또 욕망은 잘 변하기도 한다. 유치한
단계에 있을 때, 주로 이런 일들이 잘 일어난다. 박찬호를 보면 야구 선수가 되고 싶고, H.O.T.
를 보면 가수가 되고 싶어진다. 마더 테레사를 보면, 평생 가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는것도 의
미있는 일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런 욕망의 기복은 어렸을 때 주로 일어난다.
인간의 욕망은 밖의 세상에서 자유롭게 구현되기 어렵다. 그것은 왜곡된다. 마음속에 있는 욕
망과 표출된 욕망은 다른 것이다. 적어도 심리학자들은 그렇게 본다. 매우 모호한 말인 스트레
스는 ‘정신적 긴장’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심층 심리학에서 말하는 외적 인격과 마음,
그리고 무의식 사이의 불균형을 뜻한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우리는 조직에서 부여받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사회는 우리에게 역할을 주
었고, 책임을 지웠으며, 약속을 이행하기를 강요한다. 심층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페르소나’
(Persona, 얼굴)라고 말한다. 이것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외적 인격이
라 불릴 수 있다. 우리의 통념상 ‘체면’같은 것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내적 얼굴의 개념이 존재하게 되는데, 그것을 이들은 ‘젤레(Seele, 마음)
라 부른다. 이것은 자아 의식이다. 스스로 인식하고 있으나 외부로 표출되지 않는 혼자만이 알
고 있는 내적 인격이다.
이 의식의 건너편에는 본인도 잘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무의식의 세계이다.
이것이 바로 ‘샤텐(Shatten, 그림자)이다. 그들은 이 무의식 역시, 보이지 않는 자아의 일부분이
라고 생각한다.
자기를 실현한다는 말은 결국 ‘얼굴’과 ‘마음’과 ‘그림자’를 통합해서, 전체적으로 하나
의 인격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심층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통합의 욕구, 즉 자기 실현은 본능적
인 욕구라고 말하고 있다.
스트레스는 이 통합 과정에서 심화되어지는 불균형에서 기인한다.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과
약속, 그리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신호를 감지하게 되면,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한편, 자신의 사회적 성취와는 무관하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한다고 사회적으로 주문된 기대
와의 차이에 의하여 또한 우리는 많은 갈등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어떤 경우, 알 수 없는 두
려움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잃을 때도 있다. 이러한 정신적 불균혀은 결국 육체적 불균형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은 곧 건강의 상실을 의미한다.
정신적 불균형은 치료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정신적 개혁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개혁은 우
리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무의식의 욕망에 귀를 기울리는 것으로부터 해야 한다. 바로
욕망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욕망은 절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집단과 사회가 강조된 대목이다. 이 속에는 개인에
대한 몫이 과소평가되어 있다. 어쩌면 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자유와는 적대 관계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사회는 보수적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상을 배척한다. 대중은 대열에 끼이고 싶어한다.
유행이란 바로 이런 획일화의 상징이다. 대중은 이 속에서 안심을 얻는다.
우리는 각자 통을 하나 만들고, 욕망이 그 통 속을 넘쳐 나오려고 하면 얼른 뚜껑을 닫아버린
다. 교유기란, 문명의 틀 속에서 주어진 사회적 전통에 아이들을 맞추어주는 것이다. 근신과 절
제와 동일화가 사회의미덕으로 강조되어 왔다.
욕망은 은폐되었다. 대신 ‘다른 종류의 경건성’(a different kind of piety)이 요구되었다. 이
때 융이 말하는 ‘그림자’는 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위험한 동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관습
적으로 폐쇄적인 사회는 청년을 두려워한다. 욕망을 감지할 수 있는 인문학적 감수성은 이러한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행도의 동기는 욕망이다. 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욕망이 없
이 우리는 무엇을 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욕망은 좋은 것이다.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욕마을 잃어버리는 날, 우리도 죽는다. 이것은 곧 힘이다.
욕망에는 끝이 없다. 그것은 태양처럼 거의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예
를 들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식욕을 줄여 과식을 막아주여야 한다.
욕망의 불길을 키우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는 통제력을 가지는 사람이 바로 자기여양 한다. 그
권리를 타인이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욕망이 반사회적일 때, 인간은 불행해진다. ‘욕망은 개인적인 것이므로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
로 부딪히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통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개인이 가져야 할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만인에 의한 만인으 투쟁’을 주장한 홉스로부터 시작된 지배자들의 논리이다. 자율
성이 없는 사회가 붕괴하는 것은 외부에서 눌러오는 욕망에 대한 압살 때문이다. 욕망이란느 걷
잡을 수 없는 에너지에 대한 통제와 관리는, 각 개인의 몫이다.
꿈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 진다. 나는 꿈의 실현을 통해
다른 사람의 즐거움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쁨을 통해, 내 꿈의 의미는 확장
된다.
맛있는 것을 토하고 싶을 때까지 먹고, 예쁜 여자가 따라주는 술에 취하고, 경기도만한 땅을 가
지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 아니다. 욕망은 공익에 기여한느 모습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야기 책 속에 나오는 ‘세 가지 소원’과 같다. 병 속에서 나온 커다란 거인이든, 수
염이 허연 산신령이든, 그들은 우리가 한 행위에ㅐ 대한 보답으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우리의 고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돈을 원해야 하나, 영원한 목숨을 원할 것인가. 아름
다운 아내인가, 혹은 권력인가? 세상을 궤뚤어볼 수 있는 밝은 눈일까. 아니면 무슨 병이든 고칠
수 있는 황금의 사과일까?
비전이란 우리에게 세 가지 소원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욕망이며, 또한 많은 욕망 중의 선택
이다. 그러나 그것을 들어줄 사람은 램프 속의 ‘지니’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수많은 욕망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어려운 일이다. 선택은 또한, 다른 것의 포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선택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울려오는 욕망의 목소리에 진솔하게 귀를 기울
여야 한다. 자신이 본 것을 믿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가치있다고 말하는 것, 학교에서 배운 위선, 사회라는 시장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내 속의 자아가 갈망하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욕망에 솔직하다는 것은 이것을 의미한다. 이때 젤레와 샤텐은 손을 잡을수 있다. 이 악수가
의미하는 것은 마음의 평화이다. 이때 비로소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다. 쉴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의 교육 개혁가이며, 서머힐 학교를 창설한 닐(Alexander Sutherland Neill)은 탁월한 시각
을 가진 사람이다. 그에 의하면, 젊은이들이 타락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타락해 있는 사람이다. 추잡한 공상을 하는 사람들만이 타락을 걱정한다.
서머힐의 이념은 어린이들에게 자연스러운 자신의 관심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다. 스스로 개달은 아이들은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 그 동안 중요한 가치를 두어왔던 어떤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것을 폭기할 때라야만,
우리의 삶은 나아지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진정한 욕망은 그러므로 사회적 가치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부유함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다.
불행한 부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한 권력이 행복의 조건도 아니다. 권려개을 가진 자가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지신도 파멸시킨 이야기는 역사의 가장 흔한 이야기 중의 하나이
다.
진정한 욕망의 성취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행복한 사람은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광이 되어 사람을 학살하지 않는다. 행복한 아내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욕설을 퍼붓지도 않
는다. 행복한 아이는 다른 아이를 방해하지 않으며, 괴롭히지도 않는다. 행복한 사람이 도둑질
을 하거나, 살인을 하거나, 강간을 하는 일은 없다.
우리의 욕망이 공익에 기여하는 방법으로 구현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불행 위에서 나의 행복
이 구축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한 한 사람이 가짐으로써 다른 사람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유한한 물질이 아니다. 그것
은 무한한 자원이다. 그것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람들은 내가 왜 행복한지, 내가 그 행복을 가질
가치가 있는지 묻지 않는다. 불행하다고 느낄 대 비로소, 이 불행이 하필 왜 내게 달라붙어 있는
지에 대해 분개하고, 통곡한다.
영화 <사랑의 기적>속에서 식물 인간이 되어 누워 있는 레너드를 보며, 그의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아름답고 건강한 아리를 낳았을 때는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레너드처럼 예쁘고 완벽한 아이를 선물로 받을 만한 자격이 내게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레너드에게 병이 나자 저는 당연한 듯이 따져 물었습니다. 왜 내게 이런 불행이 생기
는지 대답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 모양이다. 그것은 건강과 같다. 건강하다는 것
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무감의 상태이다. 건강한 사람은 숨쉬는 것을 의
식하지 못한다. 그저 쉰다.
그러나 일단 탈이 나면, 손에 박힌 작은 가시 하나라도 우리의 신경을 집중시키게 만든다.
레너드가 깨어났을 때, 의사들은 그에게 물었다.
의사들: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레너드: 가장 단순한 것들입니다.
의사들: 예를 들면 어떤 것들 말입니까?
레너드: 산책하는 것, 사물을 바라보는 것. 사람들에게 말을 건내 보는 것. 이곳으로 갈지 저곳
으로 갈지. 혹은 곧장 갈지를 내 스스로 결정하는 것. 바로 이런 것들 말입니다. 선생님들이 당
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을 하고 싶단 말입니다.
의사들: 그것뿐입니까?
레너드: 그것뿐입니다.
행복은 단순한 것이다. 그리고 일상 속에 있다.
일사에서 떠나본 사람만이 그것의 가치를 안다.
많이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는 창 밖으로 보이는 일상 속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유
일한 소망이다.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아낙, 좌판 위에 놓인 노란색 감귤을 사서 하나 까먹을 수
있다는 것, 벼원 건물의 한쪽 벽을 비추는 그 햇빛, 혹은 달빛, 마포 고바우집에서 피어오르는 연
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나눈 술 한자, 친구와의 대화, 아직 어린 아이의 철없는 웃음, 국밥 한
그릇, 늦은 밤까지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 속에 행복은 있다.
불행은 자기 밖에서, 다른 사람이 가치있다고 인정해주는 무엇인가를 자신의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할 때부터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는 돈을 많이 가지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도 직장 안에서 승진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말한다. 또 커다란 집과 고급 차를 갖
지 못하면, 그것을 가진 자들에게 화를 내게 된다. 그래서 ‘막가파’는 잘 사는 사람들에게 복
수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의 욕망에 솔직하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세상이 부여하는 가치보다 자신의
욕망에 보다 충실하다. 김춘수는 ‘당신’이 나의 욕망이었기 때문에, 나는 당신으로부터 꽃이라
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만일 당신이 나의 타오르는 욕망이 아니었다면, 나는 당신이 나를 무
어라고 부르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타오르는 욕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나의 ‘삶의 비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섦을 아름답고 멋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
문과 같다.
희망1, 쇼생크 탈출
감옥에는 자유가 없다. 그러므로 자유롭지 않다는 상징적 의미는 감옥이다. 감옥에서의 일상
이란 오줌을 누러 갈 때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 생활의 연속일뿐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는 재수 옴 붙은 사람이다. 아내와 골프 코치는 불륜에 빠
지고, 그는 아내와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두 사람을 죽였기 때문
에 두 배의 종신형을 받은 그는 사랑에 배신당하고 자유마저 속박당했으며, 사회로부터 격리되었
다.
그러나 감옥 속에는 또 하나의 사회가 존재한다.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노튼 소장과 그의 부하
들이 군림하는‘ 무법’의 폐쇄 사회가 곧, 쇼생크이다.
앤디는 그 속에서 매우 위험한 단어인 ‘희망’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희망
은 희망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구체화되는 희망이었다. 비록 그것은 자루의 길
이가 15센티미터 남짓한 돌 공예용 망치로 쇼생크의 벽에 터널을 뚫는, 위험하고 지지부진한 것
이었지만, 그는 날마다 한 주먹씩의 돌을 뜯어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결국
탈출하여 바깥 세상으로 간다.
그러나 앤디의 매력은 그가 각고 끝에 탈출에 성공한다는 통속적인 결과에 있지 않다. 그는
감옥 안에서 적어도 두 가지의 일을 자신의 일상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수동적 일상에서 빠져나
와 능동적 일상을 만들어간다.
첫 번째는 감옥 안에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10년에 걸쳐 훌륭한 도서관을 만들어내 그는,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것은 토미라는 좀도둑 청년에게 글을 가르쳐, 고등학교 졸업 자
격을 딸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었다.
나는 이 영화 속에 나오는 ‘피가로으 결혼’의 음률을 잊을 수 없다. 이것은 앤디라는 임루
의 삶에 대한 태도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 지
오래된 어느 날, 6년 동안의 끈질긴 앤디의 편지질에 넌더리를 낸 외부 단체로부터 기부된 헌책
들 속에서, 그는 ‘피가로의 결혼’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방송실로 가서 이것을 틀어놓는다.
죄수들에게 항상 명령만 내리더 스피커 속에서 한 여자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모든 죄수들
은 기립한 채 스피커를 쳐다보며 넋을 잃는다.
그것은 영문을 모르는 기적이었다. 그것은 자유의 바람이었으며, 영혼의 음성이었다. 죄수들
은 이탈리아 여가수가 부르는 이 노래의 가사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인가 아주 아
름다운 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쇼생크의 벽이 무너져 내리고, 죄수들은 새가 되어 날아오른
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상 속에서 생길 수 있었을까? 앤디는 이 작은 ‘반역’의 대가로 독방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그는 수동적으로 주어진 삶 위에 자신이 생각하는 삶을 쌓아가고 있었다.
속세에는 걸리는 것이 많다.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모두들 불평을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돈이 없어,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고 중얼거린다. 결혼하면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마음대
로 하지 못한다고 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아이들이 커서 곁을 떠나면, 이제 몸이 말을 안 듣는다
고 말한다.
인생은 언제나 하고 싶지만 못 하는 것과,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세사은 감옥이며, 감옥으로부터 탈출은 희망이 아니라 곧 죽음일 뿐이
다.
오줌을 누는 데도 허락을 받아야 했던 늙은 브룩스는 출감 후, ‘브룩스가 여기 있었다’
(Brooks was here)라고 대들보에 각인을 해놓고, 목을 매달아 죽고 만다. 누가 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에게, 출감 후의 생활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앤디의 친구 레드는 먼저 탈옥한 앤디와의 재회를 위해, 약속 장소로 간다. ‘레드도 여기 있
었다’(So was Red)라고 브룩스의 각인옆에 칼로 파놓지만, 그는 죽지 않는다. 앤디의 희망에
감염된 것이다. 희망 역시 전염성이 강하다. 이제 레드에게 그것은 ‘위험한 단어’가 아니라,
생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었다.
희망을 가지고 매일 조금씩 그것을 구체화시켜가다 보면, 우리 역시 언젠가 쇼생크에서처럼 지
리한 일상의 감옥으로부터 빗물조차 자유로운 바깥 세상-내가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세상-으
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희망2, 욕망에 대한 그리움
인간의 삶은 세상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 속세란 자유롭지 않은 곳이다. 속박은 그곳에서 온
다. 그것은 내게 요구하고 기대하며, 자신의 가치를 강요한다. 그리고 그곳은 위험한 욕망들이
서로 엉켜부글거리는 곳이다.
욕망이 없는 삶은 이미 속세의 삶이 아니다. 욕망과 싸우고 화해하여 도를 얻으려는 사람은
속세를 떠나 수도자가 될 수 밖에 없다.
희망은 욕망에 대한 그리움이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속세를 떠날 수 없
다. 나는 욕망에 솔직해지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일상 속에서 내 욕망을 이루고 싶다.
내가 일상을 살면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목숨의 한 올 한 올을 풀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
가?
나는 창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고 싶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빛의 감촉이
느껴지는, 태양이 아름답고 바람이 부드러운 곳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10평쯤의 소채밭을 가꾸
어, 농약을 치지 않은 싱싱한 채소를 여름 내내 먹고 싶다.
하루에 세 시간쯤 책을 읽고 싶다. 책상에 앉아 밑줄을 치고 노트에 적으며, 공부처럼 하는 독
서를 하고 싶다. 그리고 한두 시간 글을 쓰고 싶다.
나는 한 가지 일을 아주 잘하고 싶다. 그리고 하루하루 조금씩 더 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이가 많이 들어서도 매일 그 일을 하고,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것을 느낄수 있기를 바란다.
파블로 카잘스는 위대한 첼리스트이다. 그가 95세가 되었을 때도, 그는 하루에 여섯 시간씩 연
습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미 가장 위대한 대가가 되었지만, 자신의 연주 실력이 아직
도 매일 조금씩 향상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이 즐거움임을 아는 사람들
속에 속하고 싶다.
나는 또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해린이는 열다섯 살이고 해언이는 열 살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이 숫자는 하나씩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의 세상을 찾아 점점 멀리 떠나
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이 여행에 마음이 들떠 있다. 긴장하기도 하고, 헤매기도 하고, 우울해하기도 하고,
악을 쓰기도 한다. 아름답고 또한 추악한 세상과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지고, 부모들은 그들의
떠나가는 뒷모습 속에서 그리움을 느낀다.
만일 우리가 이 그리움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부모’일 뿐이다. 만일
이 그리움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들이 자신이 삶을 찾아가는 어렵고 아름다운 혼자만
의 길을 인정해 준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부모일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 것
이다.
그들이 나와 아내의 삶에 가장 커다란 즐거움이듯, 우리들 역시 그들에게 언제나 찾아갈 수 있
는 그리움이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하나의 경구를 만들었다. ‘힘껏 배워서 늘푸르고 고운 사람’이라고 적
어 현관 입구에 걸어두었다. 몇 년 전, 이이들의 학교에서 가훈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을 때, 고
심하여 만들어둔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적합한 것을 염두에 두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나를 위해서 걸어두었다.
유교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푸르다’는 말 속에 나는 도덕성보다는 야생력을 강조하고 싶었
다. 강같고 바다 같은 자연의 힘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아이들이 다소 인생을 ‘거침없이’살아가도록 권고하고 싶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
며, 그 속에서 배우고 고통을 겪고, 그리고 즐거움과 보람을 찾기를 열망한다.
마리아 칼라스는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거친 맛이 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어떤 카리스마를 느낀다. 아마 사람들이 그녀를 잊지 못하는 것은 이런 주술적인 힘 때문인것
같다.
나는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그녀 목소리의 ‘거침없음’에서 힘을 느낀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나의 희망-욕망에 대한 그리움-은 일상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꿈
을 가지게 된다. 나에게 꿈이 있다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고 기대할 수 있어 더 좋다. 삶은 일상의 밖에 있는 것이다.
재능, 학교에서 활용되지 못한 자산
어렸을 적의 꿈들은 커가면서 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바뀌어 정착되기도 하는데, 꿈의 실현은
능력과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능력은 지능적 자질도 포함하지만 인내, 노력 등 감성적 자질
및 자세와 태도까지를 포함한다.
대체로 우리는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에 관한 기준으로 학벌을 들고 있다. 특히 한국인은 학
벌에 대단히 민감하다. 학벌은 학교 성적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학교 공부는 대체로 세 가지 지능에 기초하고 있다. 기억 지능, 분석 지능, 그리고 수리 지능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백과사전식으로 기억하고, 인과 관계를 추리하고 개념화시키며, 숫자에 대한
계산에 밝은 사람들은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 그들은 좋은 학교에 들어가 ‘똑똑한’ 사람으
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의 교육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모두 7가지의 서로 다
른 지능 목록을 개발해내기도 했으며, 다니엘 골만(Daniel Goleman) 같은 사람은 ‘감성 지능’
(Emotional intelligence)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인간은 학교 시험을 잘 보게 하는 세 가지 지능 외에도 훨씬 더 많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자신에게 부여된 남다른 지능을 발견하고 잘 살릴 수 있다면, 밥벌이는 물론, 스스로를
특화시켜 이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래에 나열한 지능들은 모다 쉽게 당신의 지능을 찾아갈 수 있게 한기 위한, 몇 가지의 보편
적 보기라고 생각하라. 당신 스스로 당신에게만 주어진 재능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희소한 능력일수록 유형화되기 어렵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런 것일수록 당신만이 그것을 감
지해낼 수 있고, 그 용도를 개발해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댜 할 것이다.
언어지능(Liinguistic Intelligence)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언어를 빨리 배운다. 여러 가지 언어를 구사하기도 하고, 한 언어라
고 하더라도, 그 표현이 깊고 넓다. 말뿐만 아니라. 글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어의 구사 능력과 문
필력이 매우 훌륭한 자산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공간지능(Spatial Intelligence)
사물 속에서 어떤 패턴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예술가,창업가,시스템 분석가들
은 이 재능에 뛰어나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학교 시험에 크게 영향을 주는 세 가지 지능에서는
약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그러므로 학교 다닐 때 똑똑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을 수도 있다.
직관지능(Intuitive Intelligence)
이것은 사물의 불분명한 모습 속에서 그 정체를 감지해내는 능력이다. 보통 분석 지능과 상반
되기 때문에, 서로 의사 전달 과정의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일상 생활에서도 그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내 친구 하나도 이 직관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는 논쟁을 하게 되면, 대체로 논리적 근거가 약
해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리한 입장에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네 말이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맞단 말이야. 두고 봐’라고 말하며 불만스럽게 논쟁을 끝내지만, 결국에는 그가 옳
은 경우가 많다.
무언가 정확하게 설명하고 설득시킬 수는 없지만, 감을 통해 핵심을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경우에는 자신이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어도 좋다.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
최근에 우리 나라에서도 매우 중요시되고 있는 지능이다. 실제로 자기 존중, 자재력,일관성,지구
력,열정, 그리고 자기 동기 부여 능력 등은 다른 어느 지능보다 성공에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
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를 가려, 적절한 때에, 적절
한 이유로, 필요한 만큼 알맞게 화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이런 일에 능하다. 그리고 언제나 스스로를 격려하며, 자기와의 약속
을 지키려고 애를 쓴다. 만일 당신이 이런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잘 해나가고 있다면 매우
운이 좋은 일이다. 당신의 감성 지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용지능(Practical Intelligence)
보통, 상식이라고 불리는 지능이다. 이것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구별해내
는 능력으로, 탁월한 현실감을 제공한다.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당위론 논쟁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벌써 할 수 잇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한다. ‘ 할 수
있는,해야 할 일’에 힘을 모다두고 있는 그런 사람들은 이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다.
맹상군의 이름은 전문이며 제나라 사람이다. 빈객을 좋아하여 식객이 1천 명이 넘었던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사마천의 『사기』 맹상군 열전의 주인공이다.
맹상군의 식객 중에 풍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풍환은 용모와 풍채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맹상군이 제나라의 재상으로 있다가 밀려 났을때 , 그가 다시 재상의
자리에 복귀하는 것을 크게 도와준 공이 있다.풍환은 맹상군이 재상으로 복직되자, 떠나갓던 많은
식객들이 다시 맹상군에게 돌아오는 것을 맞을 채비를 차렸다. 이때 맹상군이 탄식하며, 그 손들
의 신의 없음을 탓했다. 다시 자기를 찾아오는 자가 있으면, 그 얼굴에 침을 발라 크게 모욕을 주
겠다고 풍환에게 말했다. 이때 풍환은 맹상군에게 절을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살아 있는 작 반드시 죽는 것은 사물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부귀하면 추종하는 자가 많고, 빈
천하면 교우가 적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군주(맹상군)는 아침에 시장에 가는 사람들을 보신적이 있을것입니다. 아침에는 어깨를 나란히
하여 앞을 다투어 문으로 들어 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난는 사람들은 손을 흔들고 돌아보
지도 않습니다. 그것은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저녁에는 시장에 물건이 없
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군주께서 자리를 물러났을 때, 손이 모두 떠나버린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
러한 일로 원망을 하고 함부로 손의 길을 끊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바라건대 군주는 손
을 대접하기를 본디와 같이 하여 주십시오.“
맹상군은 이 말을 듣고 풍환에게 마주 절하며 감탄하였다 한다. 이 풍환과 같은 사람이 바로
이 싱ㄹ용 지능이 뛰어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대인 관계 지능(Interpersonal Intelligence)
이것은 조직 상회에서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능력 중의 하나이다. 보통 ‘사회성 지
능’(Social Intelligence)이라고 불리며, 다른 사람과 함께일을 해치우는 능력이다. 지도력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이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
도록 만든다.
그러나 대인 관걔 지능이 높다고 하여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다
그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게 마
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를 좋아하리라고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이기 때문이다.
지능이라는 측면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대인 관계에 대해 매우 중요한 대목이 잇어 소개하고
자 한다.
하루는 자동이 공자에게 물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어떠합니다.?”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러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마을의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불선한 사람들이 미워하
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주자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사람은 그의 행동에 필시 영합이 있으며, 모든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은 그의 행동에 실이 없다고 풀이했다.
이 문장은 조선 왕조 내내 논란이 되어온 당파성에 대한 금과옥조로 여겨졌다. 불편부당, 혹은
중립은 반대당파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나약함으로 받아들여졌거나, 아무에게나 영합이 가능한 기
회주의적 처신을 보였ㄷ, 혹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이상주의로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회색 지대가 없는 흑백의 구도 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
리고 그 유산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아직도 이분법적인 사고의 패턴이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
는 것 같다.
나는 공자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의 패거리는 항상 선하며, 다른 사람
들의 패거리는 항상 악이라는 유치한 패거리 정신을 혐오한다. 선과 악을 자신들의 이해 관계의
껍데기로 뒤집어쒸워 온 위선을 싫어한다.
다시 논어의 양화 편에 자공과 공자의 대화가 나온다. 스승과 제자의 장단이 기막히게 맞아드
는 아주 귀엽기 짝이 없는 대화들이다. 좋은 제자를 키우는 것이 참으로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나는 특히 이 대화를 좋아한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는 인하고 사랑하는 사람인데, 군자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미워하는 사람이 있느니라. 남의 단점을 떠드는 사람을 미워한다.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
람을 훼방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용기는 있지만 예의를 모르고, 무례한 일을 용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과감학 결단력은 있으나, 도리를 모르는 사람을 미워한다. 그대도 미워하는 사
람이 있는가?”
이에 자공이 답했다.
“남의 말 엿들은 것을 가지고 제가 아는 척하는 것을 미워하며, 남의 숨은 허물을 끄집어 내
는 것을 직하다 하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옆으로 많이 갔다. 다시 지능의 종류로 돌아가자. 그 외에 ‘체육지능’(Athletic Intelligence)이
나 음악지능(Musical Intelligence)같은 것들도 있다. 이것은 어떤 천부적인‘재능’(Talent)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능으로 불릴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분야의 지능 외에도 더 많은 지능이 있을 수 있으며, 그 목록은 점
점 더 넓혀질 수 있다는 데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이런한 지능들은 기억, 분석, 수리 지능
에 기초한 학교 교과
과정의 평가에 의해 제대호 평가받지도 못 했으며, 제대로 개발되지도 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없다. 목소리는 좋지만 노래는 못한다. 내 생각에 얼굴은 그런대로
내 마음에 들지만, 앞머리가 좀 벗겨져 있어 싫다. 그래서 나는 모자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
다.
책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빨리 보지는 않는다. 즐기면서 보는 편이고, 많이 읽는 편이다. 책을
보며 메모를 하고, 간혹 짧은 글을 쓰기도 한다. 언젠가 오래 전에 지리한 술자리를 털고 일어나,
갑자기 일기가 쓰고 싶어져, 문 닫은 가게 문을 두드린 적도 있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편이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특히 좋아하지 않는다.
비교적 관용 적이고 너그러운 것 같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다 그렇지는 못하다.
운동중에서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산에 가서 걷는 일은 꽤 한다. 그러나 빨리 뛰지
는 못한다. 특히 적극적이지는 않지마 한 우물을 파는 편이다.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려고 애를
쓴다. 이해력이 좋은 편이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일에 강한 면이 있다. 그러나 분석적이지는 않
다.
항상 꿈을 꾼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있다 - 그렇구나,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능력인 것 같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림을 잘 그려보고 싶은 욕망이 꽤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실제로 대학에 다니면서 혼자 몇 번 그려본 적이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의견을 말하고 발표한는 것에 더 많은 자신이 있다. 그래서 나는 좋은 강사라는 말을 많이 들엇
다. 그러나 재치가 넘치지는 못한다. 평소에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볼 때, 나는 참으로 평범한 사람이다. 어떤 면에서
는 평범에도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나는 몇 가지의 사회적 경험을 더해보겟다.
나는 13년 동안, 셰계적인 다국적 기업에서 경영혁신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을 맡아 했다. 주
로 마케팅과 서비스 분야의 변화 관리 전문가로 일하면서,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을 중심으로 하
는 경영 혁신 전반을 총괄하였다. 그러므로 고객과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 문화, 교육과 훈
련, 평가 및 보상 체계, 프로세스의 운영 모드 설계 등을 포함한 경영 관리 시스템의 혁신이 프로
세스 혁신과 함께 나의 주요 관심영역이었다.
또한 1992년 이래, 미국의 국가 품질상인 말콤 볼드리지 평가 모델에 따른 국제 심사관으로서
중국, 대만, 홍공 및 아시아 국가, 그리고 호주 등 이 회사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영 시스템
수주을 평가하고 컨설팅하였다.
이 동안의 경영 혁신 기획 및 추진 실무적 경험과 국제 경영 평가관으로서의 체계적훈련 등은
이 분야에서 독자적이고 힘잇는 시각을 갖도록 해주었다.
나는 이 일을 하는 동안, 실무적 깊이가 편협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례했다. 그래서 객관성과 보
편성을 가진 이론적 축적을 위하여 팀원들과 함께 장을 나누어 몇 가지의 책을 번역하였다. 이것
은 일종의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었다. 그 동안 나는 변화와 개혁이 가지는 개념과 과정에 친숙
해졌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힘은 체득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불과 얼마 전에야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변화와 개혁은 다른 사람을 위한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주제이며, 나로부터 시작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마흔 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를 바꾸어가는, 그리하여 지정한 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다. 영리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다 깨달은 다음에야 비로소 그 뜻을 안다. 그
러나 정말 바보는 ,알고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바라면서도 두려워한다. 변화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으면, 위안을 받는다.
변화에는 여러 가지 저항의 패턴이 있다. 변화를 기회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성공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변화 속에 자신의 몸을 담그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이라고 두렵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혼란 속에서 형태를 잡아가는 미래의 모습을 읽는
다. 그러나 그들은 혼란 속에서 형태를 잡아가는 미래의 모습을 읽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변
화가 온통 휩쓸고 간 뒤에도 무엇이 변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변화의 관리, 부정적 변화를 극복하는 법
변화 관리 저문가로서 나는 우선 변화를 일상의 원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
도 변화가 일상의 안전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핸들을 적절하게 움직여주지 않고 자전거를 가게 할 수는 없다. 자전거가 쓰러지는 경우는 불
균형 때문이며, 균형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는 미세한 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몇 번의 좌회전과 우회전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자전거의 핸들을 고정시키는 것은
넘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가 한 말인지는 잊어버렸다. 그는 아직 나침반이 바르르 떨며 불안스레 북쪽을 가리키려고
안간힘을 쓸 때, 그는 그것을 믿고 따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더 이상 그런 불안한 노력을
하지 않고 한 곳을 가리키며 요지부동일 때, 그것을 버린다고 했다. 더 이상 나침반이 아니기 때
문이다.
무엇에 안주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엘리자베스 쿠블러 로스(Elisabeth Kuhbler Ross)라
는 학자는 변화의 수용 과정을 몇개의 단계로 나누어 구별하고 있다. 즉 경험, 거부, 분노, 체념과
인정, 절망, 도전, 화해 등이 그것이다.
가장 부정적 변화는 죽음일 것이다.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반응은 그 진행 과정에
따라 매우 다르지만, 여기에는 일종의 공통적 패턴이 있다, 만일 각 단계마다 달라지는 공통적 반
응에 적절한 대응을 준비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변황의 각 단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리라
는 기대를 갖게 된다.
한 사람이 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하였다고 하자. 만일 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면, 그의 반응은
어떠할까? 그는 우선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최초의 반응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일 것이다.
그는 다시 정밀 진단을 요구할 것이다. 또는 다른 병원을 찾아가 다시 검사를 받기를 원한다. ‘
거부’의 단계이다.
그러나 다시 검사해도 암은 확실하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화를 낸다. “다른 나쁜 놈들도 다
잘만 사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야?” 분노에 휩
싸이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것도 설득시키기 어렵다. 거부의 단계에서 분노의 단계로 옮겨 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와 타협하게 된다. 이것은 현실을 ‘인정하고 체념’함으로써 가
능한 일이다. “이왕 벌어진 일이니 최선을 다하면 나을 수 있을지 몰라, 의술은 하루하루 나아지
는 것이 고, 날마다 새로운 항암제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니 한 번 해보는 거야. 이렇게 그냥 갈
수는 없어.”그는 입원하여 의사의 말에 충실하게 따른다.
그러나 시간이 좀더 흘러 몸이 하루하루 깨어지고 부숴지는 것을 느끼게 되면 그는 ‘절망’에
빠지기 시작한다. “아무도 암의 발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야. 나라고 별수 있겠어. 그저 이 구
토라도 멎었으면 좋겠어.”
그는 이제 생을 돌아보고 용기를 내어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종말과 함께 새로운 세계
에 대한 희망을 가지며, 죽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곧 ‘도전과 화해’의 단계이다.
이제 변화에 반응하는 사회적 과정이 예를 들업보자. 1997년 초부터 한보와 기아의 사태를 겪
고, 재벌들의 잇따른 부도 속에서 10월이 되자, 우리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한국 원화의 환율이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하루하루 지켜보았다.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고, 한국은행은 드디어 방어를 포기했다.
환율의 변동 제한폭을 없애는 조치를 취했지만, 달러당 2,000원을 넘어설지도 모르는 심리적 공황
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론은 국가 부도를 떠들어대었고, 위기의 순간에도 원론적 원칙만 되풀이하며 아무 일 없을
것이라는 무능한 정부의 책임자는 여론의 지탄 속에 물러났다. 국가 부도의 사태가 점쳐졌고, 대
통령 당선자는 엄청난 외채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정부를 인수하게 되었다.
IMF로부터의 구제 금융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것이 정론이 되어갔다. 경제에 대한 종
속이 우려되고, 대량 실업이 점쳐졌다. 금리의 상승이 요구되었고, 기업은 강력한 구조 조정의 단
계에 들어갈 것이며, 서민은 고용의 불안정과 함께 반 이하로 줄어든 수입으로 엄청난 물가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이것이 변화가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하나의 가상적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
이 바로 ‘경험’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럴 리가 없어. 도대체 국가가 부도를 낸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야? 우리가 OECD에 가입한
게 언제인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아마 어떤 환투기꾼의 장난일 거야 적당히 차익을 챙
기면 떠나겠지. 우리의 실물 경제는 동남아하고는 달라. 제조업 기반이 튼튼하고, 그래도 무역 규
모가 세계 11위라고 말하잖아. 홍콩과 대만 같은 나라도 조금 위청거리다가 그냥 지나가버렸잖아.
일시적 과정이고, 곧 정상을 찾게 될 거야.’
이러한 위안은 바로 ‘부정’의 모습이다.
그러나 12월 3일, 한국 정부는 결국 IMF에 사상 최대의 규모의 구제 금융을 신청하였다. 모든
국민은 이때 비로소 우리가 최대 채무국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한국은행의 외환 보유고는 이미
바닥이 났고, 그 동안의 번영은 결국 빚 가지고 벌인 잔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분노
’는 이때 극에 달하게 되었다.
‘도대체 이게 뭐야. 정부는 뭐하는 거야. 대통령이 이 일을 언제 알게 된거야. 도대체 알고나
있었던 거야? 경제 정책을 맡고 있는 관료들은 무엇 하는 인간들이야. 자리에 앉아 돈만 축내는
인간들. 외환 위기가 3월부터 이미 점쳐졌다는데 그 동안 무슨 짓들을 하다가, 막판에 가서 절벽
에 몰리니까 어쩔 수 없이 최악의 조건으로 돈을 빌리게 만드는 거야. 재벌? 모두 하나같이 돈밖
에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들. 아무데서나 마구 돈 빌려다가 부동산 투기나 하고, 돈이 되면 어떤
업종이든 뛰어드는 탐욕스러운 문어들.
어려워지니까 구조 조정의 이름으로 한솥밥을 먹던 사람이나 잘라낼 것을 맨 먼저 생각하는 몰
인정한 사람들. 경영은 제가 하고 실패의 책임은 직원에게 지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여론에서 떠드는 소리는 또 뭐야. 허리띠를 졸라매라니. 내가 언제 허리띠 풀어놓은 적이 있어?
모처럼 가족하고 나가, 얼마나 나올까 걱정하며 외식 몇 번 한 게 전부야. 뭘 어떻게 더 줄이라는
거야, 이 똥배 나온 인간들아!’
이것이 바로 ‘분노’의 과정이다(여기에 묘사한 몇 가지의 부정적 표현은 그저 분노를 표현하
기 위한 약간의 시도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세상에 등장하
는 모든 욕설과 저주가 다 담겨 있다. 미루어 짐작해주기를 바란다).
'체념과 인정'은 보통 함께 오며, 협상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분노의 불길이 지나가면,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게 뭐야, 결국 빚으로 벌인 잔치였잖아. 그러나 어쩌겠어. 우리가 그 정도밖에는 안 되는걸.
결국 그 동안 우리 경제력이 너무 과장되었던 거야. 장기적으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거야. 어
차피치러야 할 조정 과정이었으니까, 이때 한꺼번에 확 해버리는 거야.
보통 때 같으면 금융 개혁이니, 재벌 개혁이니 이런 일들이 실제로 행해질 수 있겠어? 더욱이
대통령이 이번에 새로 당선되었고, 리더십을 되찾았으니, 한 번 또 기적을 만들어 내보는 거야.
더욱이 새 대통령이 근로자의 고충을 충분히 알고 있는 고생한 사람이잖아. 이게 다 우리가 그나
마 운이 좋은 거고, 우리 국운이 다하지 않았다는 증거야. 노사정 대화도 이제 타결되었으니 다행
스러운 일이야. 옛날 생각하면 지금 정도야 별로 겁날 것도 없어. 옛날엔 정말 굶기를 밥 먹듯이
했지. 한 이삼 년 죽어라고 하면 잘 되겠지.'
내가 이 부분을 쓰고 있는 1998년 2월 중순경이 아마 아엠에프시기를 맞고 있는 우리가 ‘체념
과 인정’ 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순간인 것 같다.
노사정의 협상이 기본적인 생각에는 타결이 되었지만, 앞으로 이에 승복하지 않는 집단들의 시
위와 소요가 잇따를 것이다. 적어도 서로 상처받고 피를 흘리며, 유리한 상태로 협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러한 과정은 지속되어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적절한 단계에서 협상에 이르게 될 것이
다.
만일 이 단계를 적절히 관리해 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매우 힘들어진다. 폭동은 결국 정상적
인 경제 활동을 기대하는 모든 외국자본의 철수를 의미하고, 우리는 고립되며, 나누어 가지려고
하는 부는 급격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동은 ‘체념과 인정’ 과정이 적절치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의 표현이다. 시위의 가담자들은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이 정부에 의해 적절하게 해결될 것이
라는 아무런 믿음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경제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화교에 대한 적대적 행위
를 오히려 하나의 경제적 해방이라고 위로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보다 현실적으로, 힘에 의한 과
시만이 우월한 협상 위치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요와 시위와 폭동은 정부에게도, 부자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서로 나누어 가질 것
을 급격히 줄이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나눌 것이 없어지면, 남는 것은 악에 받친 자존심밖에
없다. 상대방의 파멸만을 원하게 되고, 결국 공멸의 길로 치닫게 된다. 바로 최악의 시나리로인
것이다.
우리가 슬기로운 협상을 통해 성공적으로 ‘체념과 인정’과정을 넘어서게 된다면, 아주 어려
운 단계 하나를 지난 셈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적인 고통은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다. '절망'의 순간이 다가 올 것이다. 하늘을 가득 덮은
검은 구름이 다가와 엄청난 폭우를 쏟아 붓게 되는 시점이 바로 다가오고 있다. 단기적인 고통의
순간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감내해야 하는 일상이다. 사회에는 어두운 그림자들로 가득하
고, 가난한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어렵게 이어진다.
기업은 돈을 구하려고 허둥대고 하루하루를 넘기는 것이 지옥 같아진다. 실업은 늘어만 간다.
어제까지 이웃의 일이었던 것이 오늘은 내 일로 다가온다. 거리의 어디에도 활기를 느낄 수가 없
다. 어둡고 추운 겨울처럼 날씨는 음산하고, 노루 꼬리만한 해는 이미 져서 춥기 그지없다.
'이거 언제 끝나는 거야? 직업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고, 할 일도 없잖아. 실업 수당은 타먹을
수 있는 거야? 차라리 복권이나 당첨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은 거 아냐? 내가 지금 살고 있
는 거야? 이제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만 것 같아. 아니 그래, 네 명밖에 안 되는 식구도 먹여
살리기가 이렇게 힘드는 거야? 옛날이 좋았는데 그때는 몰랐어.’
이것이 ‘절망’의 단계이고, 이때 사회의 활력은 위기를 맞게 된다. 변화의 과정 중 가장 힘들
고 어려운 대목이며, 직접적인 고통이 일상 생활의 순간순간을 압박한다.
당장 끼니가 걱정이다. 아이들의 학비를 내기가 어렵다. 가계가 조금씩 지고 있는 은행 빚의 이
자를 내기는 더욱 어렵다.
더욱 힘든 일은, 이러한 빈곤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망은
미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마음의 궁핍에서부터 온다.
이 단계를 극복하려면, 어두움 속에서 빛을 찾아내는 자기 격려와 용기가 필요하다. 삶이 반전
될 수 있는 순간이다. 인생은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며,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은행 통
장에 남아 있는 잔액 이상의 것이 인생이다. ‘도전과 화해’의 과정은 마음의 빛을 찾아주는 것
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 어렵지 않은 사람은 없어. 이 시기는 언젠가 끝이 날 거야. 1년이 걸릴 수도 있고, 2년
이 걸릴 수도 있어.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때를 위해서 지금을 견뎌내는 거야. 그러나 단지 견
뎌내기만 해서는 안 돼. 달라질 미래가 원하는 것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 그게 무엇인지 찾아내
야 한단 말이야.
미래가 원하는 것 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어 지금부터 시간을 쓰는 거야. 지금까지
는 필요한 것을 벌기 위해서 시간을 거의 다 보냈고, 또 번 것을 쓰기 위해서 나머지 시간을 보
내고 말았어. 나는 나를 위해서 시간을 쓴 적이 없어. 그래서 나는 내가 된적이 없는 거야. 내가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의 운명은 다른 사람의 운명과 같을 수밖에 없어. 그들이 망하면 나
도 망하고, 그들이 불행하면 나도 따라서 불행해지는 거야.
하루에 한두 시간이라도 나를 위해 투자를 해보아야 해. 당장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
루에 10시간을 내가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해야 될지 몰라. 그러나 나머지 시간은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쏟아 붓도록 하겠어. 지금부터 해보는 거야.’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잘할 수 있다. 기업 내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일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남을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 남이 시키는 일을 하며 인생을 보내지 않는다. 인생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다. 그리고 그 의미의 해석은 각 개인에게 달려있다. 자
기와의 화해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욕망을 찾아 그것을 풀어줄 때 찾아 오는 것이다.
내 아내는 요즈음 매우 바쁘다. 최근에 그녀는 그 동안 해오던 일을 그만두고, 앞으로 개원하게
될 여성들을 위한 한 복지회관에서 프로그램 개발과 관리를 맡았다.
그녀는 매일 자신의 시간을 이 일에 쏟아 붓고 있다. 새벽까지 그 일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매
우 유쾌하고 활력에 차 있다. 상대적으로 적어진 아이들과의 시간도 그렇기 때문에 더 짙게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행복해 보인다. 자기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만이 행
복한 생활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다. 변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완성해가는 것이다.
시간, 미래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점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보는 시각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미래를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말에 찬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미래를 매우 독특한 관점에서 조망한다. 적어도 나는 ‘시간은 미래로 흐
른다.’ 라는 상식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런 인식의 전환은 때때로, 미래를 아직 발
생하지 않은 시간이나 사건으로 보는 불확실성의 횡포로부터 우리를 구해준다.
미래는 언제나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충북대 양선규 교수의 책‘칼과 그림자
’에는 영화 ‘터미네이터’와 관련하여 몇 가지 재미있는 관찰과 인용이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본 사람은 이 영화가 시간에 대한 직선적 사고를 가지고는 잘 이해되지 않
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2029년, 존 코너가 이끄는 인간과의 싸움에서 수세에 몰린 컴퓨터
‘스카이 네트’는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존 코너의 탄생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들려고 한다. 즉
존 코너의 어머니인 새라 코너를 살해하려 한다. 스카이 네트는 존 코너의 지도력이 없다면, 2029
년의 전세계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존 코너는 부하인 카일 리스를 1984년으로 보내, 어머니 새라 코너의 살해를 막
아 자신과 인간을 보호하려고 한다. 전선은 2029년에서 1984년으로 확장된다. 이 경우, 1984년은
2029년에서 볼 때 과거가 아닌 미래의 일이 된다. 즉 미래가 과거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사고가 아니다. 실제로 시간에 대한 적극적인 물리학적 견
해들은 1949년, 양자 역학자인 파인만으로부터 제시되었다고 한다. 그는 미래로 흐른 시간과 과거
로 흐른 시간은 수학적으로 서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사고에 따르면, 과거 시제와 미래 시제는 근본에서 동일한 것이라는 것이다. ‘터미네이터
가 2029년에서 1984년으로 갈 것이다.’라는 개념은 ‘터미네이터가 2029년에서 1984년으로 갔
다.’는 개념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즉 미래와 과거는 혼용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물리학자
들은 시간이 그저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흐르는 것이며, 미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지의 것이
라는 관점에서 벗어나기를 권유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을 통해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영원한 현재’라는 관점에서 지켜볼 수 있다. 서
기 2000년은 이미 발생해 있다. 당신도 이미 2000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이 벌
어졌는지, 나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아직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발
생한 과거인 2000년의 모습에 대한 ‘기억’을 우리가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를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상실증에 우리는 걸려 있는 것이다.
서기 2000년 10월 31일, 시월의 마지막 날의 관점에서 볼 때, 1997년 10월 31일은 3년 후의 미
래가 된다. 그런데 나는 이 날을 내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시간, 즉 현재라고 인식하고 있다. 미
래를 현재라고 인식하는 정신적 착란-이것은 시간을 과거.현재.미래로 인식하는 정상인의 관점에
서 본 것이다.-은 우리를 과거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과거에 대한 기억 상실자들의 특징은 과거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커다란 꿈을
가진다고 한다. 그들은 이룰 수 있는 현실로서의 꿈을 믿으며, 그 꿈에 보다 충실하다. 삶을 다시
한 번 아름답고 멋진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미래를 현실로 인식한다.
이것은 현재에 묶여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착란으로 보일 수 있다. 에디슨은 똑똑하지
못한 아이로 오해를 받았으며, 빌 게이츠가 그렇게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 있으리라는 것을 예상
한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특징은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아름답
고 멋진 삶을 살고 있는 나’를 위해 굉장한 반전의 씨를 뿌려야 하는 바로 그 결정적 시기라고
믿는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예를 들어 ‘만일 19세기 후반에, 일본 대신 한국이
일본을 강제 개국시키고, 36년 간 지배했다면...’이라는 가정은 역사에서는 금기이다. 왜냐하면
이미 발생한 것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과 관계의 논리에 따르면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다. 현재가 불행한 사람은 과거로 돌아가 이
를 고치면 된다. 그런데 유감스러운것은 기술적으로 우리는 다시 과거로 되돌아갈 수가 없는 것
이다. 비디오 스크린처럼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되돌아가서 해답을 가지고 과거를 수정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지금 ‘아름답고 멋있게’살고 있을 것이다.
아직 희망이 있다. 미래는 이미 일어나 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미래를 수정할 수 있는 ‘현재’라는 자리에 와 있다. 마치 현재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시점인 과거로 돌아와 있는 것 같다.
불행한 미래는 지금 막아야 한다. 훌륭한 미래는 지금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는 시
간이 지나가버리면, 우리는 기술적으로 다시 과거로 돌아와 현재를 수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
금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들이 그저 제멋대로 흘러가게 방치해둘 수는 없다. 현재는 미래를
치유할 수 있는, 기술적으로 유일한 시점인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데 사용된 능력은 기억력이다. 그러나 미래를 기억해내는 데 사용되는 능력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없는 현재는 껍데기와 같다. 상상력이 존중되지 않는 일상의 생활은 죽은
시간이다. 죽은 시간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은 살아갈 수 없다. 죽은 시간속에 존재하는 것은 영혼
들뿐이다.
임어당은 ‘중국 중국인 마이 콘트리 앤드 마이 피플’이라는 책에서 중국인들의 직관과 상상
에 대하여 썼다.
직관은 자주 천진난만한 상상을 가미시킨다. 중국 의학에서 어떤 것들은 기이한 연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 피부가 우둘투둘한 두꺼비는 피부병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초등학생에게 닭발을 먹이면 교과서를 찢는 버릇이 생기게 된다. 어부는 배 안에서 밥을 먹
을 때, 절대로 생선을 뒤집지 않는다. 생선을 뒤집는 것은 곧 배가 뒤집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이야기가 근거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
과 허구가 마치 꿈처럼 즐겁게 시적으로 한데 섞여 있는, 진실과 허구의 경계선에 있는 심리 상
태를 반영한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현실의 영역을 확장한다. 세상을 시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2000년 1월 1일,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려고 애를 써보라. 그것은 이미 발생한 일이다. 2040년,
임종을 맞이하는 당신의 병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억해보라. 그리고 자문해보라. 햇살이 아름다
운 1997년 10월의 마지막 날은 훌륭한 하루였던가?
유명한 역사가인 칼 베커는 ‘각 개인은 모두 자신의 역사가’라고 말했다. 역사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사적 상상력이가. 기록자의 주관적 이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불완전한 기록과 착
각으로 가득 찬 기억 속에서,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은 상상력밖에 없다. 그러므로 크로체의
말처럼, 모든 역사는 역사가가 속한 ‘현대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상력은 미래를 이해하는 데 더더욱 필요한 것이다. 상상력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낸 미래라는
개념과 가장 흡사한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비전이라고 불러온 개념이다.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가슴 떨리는 아름다운 미래의 모습’이 지금까지의 비전의 정의였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곧 확인하게 될,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새로운 정의이다. 구원은 상
상력 속에 있고, 생활속에서 실현된다.
시간주기1, 자기를 위한 시간
삶은 시간과의 만남이다. 삶에 영향을 주는 많은 요소들은 외부적으로 주어진다. 부모나 가문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여러 기회를 접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복권이 팔리는 것은 아무나 당첨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당첨되는 것은
아무나가 아니다. 극히 일부만이 우연한 행복을 누린다.
부유한 가정에 태어난다는 것은 그저 여러 가능성 중에서 얻게 된 우연한 행운이다. 어쩌면 행
운이라고 부르기에는 위험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부유하지만 고약한 부모를 만날 수도 있고, 부
유함이 일생 동안 보장된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유한 동안만큼은 덕을 본 것이 아니냐고 한다면, 그것도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그저 우연히
얻은 것은 또 우연히 사라질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유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찰스 핸디의 ‘헝그리 정신’에 나온다. 한 부유한 영국인이
아프리카에 사는 친구를 영국으로 초대하였다.
차를 타고 자신의 소유지를 돌아다니며, 그는 그곳에 있는 들과 산과 호수가 모두 자신의 소유
라고 말한다. 그 광대하고 아름다운 산하에 감탄하며 앉아 있던 초라한 아프리카인은 그 말을 듣
고 매우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다.
“저 산이 너의 소유란 말이냐? 소유한다는 것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는 거야. 너는 저 산
을 없앨 수도 있다는 말이야? 저 산은 또 너의 아이들이 보고 즐기고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아름
다운 대지의 한 부분이야. 네가 말하는 소유라는 것은, 잠시 그것을 대신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정신의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다.
낳자마자 아기가 죽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사회의 영아 사망률은 매우 낮다. 육순
때에는 환갑 잔치를 하지 않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예순 살 정도면 아직 건장하기 때문일 것
이다.
대신 칠순 잔치를 잘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예로부터 일흔을 넘기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
었지만, 요즈음은 남자의 평균 연령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우리는 인생의 시간을 더 많이 가
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자신의 마음대로 쓴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학교 다니고 숙
제하느라고 언제나 자기의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커서는 직장에 묶여 있고, 집에서는 가족
들과 나누어야 하는 시간에 매여 있다.
사회인으로서, 친구로서, 아버지로서, 또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일들에 시간을 나누어 쓰다 보면,
정작 자신을 위해 쓴 시간은 참으로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보라. 그러면 당신은 매우 복잡한 사회적 관계 속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은 어느 회사의 영업 담당 부장이거나, 혹은 의사
일지도 모르고, 혹은 막일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말자의 남편이며, 개똥이와 길순이의 아버지
일 것이다.
아니면 홍길동의 아내이며, 아버지 이동배의 둘째 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고등학교를 나
왔고, 대학은 어디를 나왔는지에 따라 당신의 지적 능력은 대충 평가받게 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력서에 써넣은 당신의 신상 명세서가 당신의 모든것을 말해주는가? 당신은 정말 누구이며,
무엇이 당신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것인가?
당신이 이력서에 써넣은 학벌, 경력은 그 동안 당신이 어디에 시간을 쏟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과거의 시간표이다. 말하자면 스물이 갓 넘을 때까지는 학교에서 시간을 보냈고, 3년은 군대에 가
있었고, 그 후의 10년은 회사에서 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하여 잘 정리하여 말하기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쓴 시간이 부
족하기 때문이다. 회사를 위해 10년을 써왔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얼마를 썼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외에는 써넣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바쁜 사람은 바보이다. 그는 항상 중요한 일은 나중에 하고,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왜 그렇게 바빴
는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해 낼 수 없다. 중요한 일은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언제나 그
대로 방치하다가, 잠시 숨을 길게 내쉴 때에만 생각한다.
앞만 보고 죽을 둥 살 둥 뛰다가 보면, 아이들은 자라고, 늘어난 체중에 귀밑머리가 허옇다. 돈
은 언제나 부족하고, 이루어 놓은 것은 없다. 왜 그렇게 바빴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1997년 8월 9일, 진주를 향해 내려갈 때, 남쪽으로부터 태풍이 올라오고 있었다. 태평양 한가운
데서 발생한 허리케인인데, 엘리뇨 때문에 북미로 못 가고 북동 아시아로 올라오는, 갈 곳을 잃은
태풍이었다. 나이가 들면 자율 신경계가 슬슬 느슨해지듯, 그렇게 지구도 자기 제어력을 상실해간
다.
날씨는 무덥고, 아직 맑았다. 아직 태풍의 영향권 안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열차는 오래도 달
린다. 아침에 아내가 서울역까지 태워다 주었고, 대합실에서 간단히 커피 한 잔씩을 마셨다. 개표
소 앞에서 손을 흔들고 헤어지면서, 평소와는 다른 눈길의 얽힘이 있었다. 한 달 동안 떨어져 있
은 적은 거의 없었다. 짧은 이별의 감회를 눈속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진주에 거의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 진주가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내가 이곳에 마지막 온
것이 거의 17년 전쯤 된다는 것을 상기했다. 그때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와서, 어느 로터리
근처에서 맷도에 간 콩국에 한천을 넣은 콩국수를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먹은 기억이 새롭다.
진주의 기억이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마음의 논개와 촉석루가 아니라, 콩국수로 남아 있다는
것이 우스웠다. 덕산으로 가는 시외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도착하여, 콩물 한사발을 마시고
버스에 몸을 실은 것은 오후 2시 30분경이었다.
‘하늘이 울어도 울리지 않는’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마을 덕산에는 ‘산천재’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한옥이 보존되어 있다. 남명 조식이 살던 곳이다. 평생 벼슬에서 멀리 있었지만, 이치
만 떠들고 행함이 없던 당시의 지도자들은 감히 따를 수없는, 마음의 실행을 중하게 여긴 사람이
다. 동주 이용희는 남명을 그리며 한탄했다.
정치가는 다 망해갈 때도 최상이라고 말하지만, 학자는 가장 좋은 시절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남명은 바로 그런 학자였다. 남명 선생이 사시던 곳이며, 덕천 서원이 운치있게 있는 곳도 바로
이곳 덕산이다. 지리산을 오르는 산행길의 발단이 되는 중산리까지 10여 분만 더 가면 되는 곳이
다. 여느 시골의 중 소 마을처럼, 덕산도 도로를 따라 길게 상가가 늘어서 있다. 택시를 잡아 타
고 유점 마을까지 들어오니 다섯시가 다 되어온다. 내가 찾아온 ‘그 집’은 대나무 숲에 싸여
있었다.
김 목사 내외와 만나 자리에 마주앉아 있을 때, 대 숲 사이로 멀리 지리산 자락들이 석양을 맞
이하고 있었다. 김 목사는 안식교 개혁주의 목사인데, 포도 요법에 정통하다. 인사를 마치고 간단
한 진료 후에, 내게 배정된 황토방에서 짐을 풀었다.
지나간 하루가 달리는 기차처럼 주르륵 흘러간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나는 생전 처음 숯가
루를 1시간 간격으로 한 숟가락씩 다섯 번을 먹었다. 사람에게 숯가루를 퍼먹이다니. 내가 이곳에
잘 온 것인가?
한 달 동안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내가 찾아온 곳은, 바로 이런 곳이었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조
금씩 늘어가기 시작하는 체중을 게으름과 무절제의 탓으로 돌렸다. 배가 나오기 사작한 지난 몇
년은, 또한 내장 속에 기름기가 짐승의 곱창처럼 끼어가기 시작한 시기라고 매도했다.
체중을 좀 빼고, 몸의 균형을 다시 잡아보고 싶었다. 사십이 넘으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나만이
느낄수 있는 자율 신경계의 미세한 난조들-예를 들면, 갑자기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않는다든가,
밤에 느닷없이 잠에서 깨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한다든가 하는 현상들-도 체질을 바꾸어보려는
시도를 부추겼다.
이곳에서 포도만 한 번에 10알 정도ㅆ기 하루 다섯 번 먹고, 한 달을 굶고 지낸다는 것은 어려
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것은 이곳을 찾아오기로 결정하고, 시간을 내는 것이다.
회사를 한 달 동안 비우지 못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내가 회사를 한 달 간 비우더라도,
회사에는 별일이 없다. 내가 회사에 불필요한 사림이어서가 아니라-절대로 아니라고 강하게 말해
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요새같이 어려윤 시절에는 잘릴 수가 있다-나는 회사의 근간을 다루는
사람이며, 회사의 근간은 한 달 사이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자신을 위한 시간이 꼭 한 달일 필
요는 없다. 더 길어도 좋고, 더 짧아도 관계 없다. 일주일이어도 무관하다. 그러나 반드시 시간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시간을 낸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중요한 일에 쓸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쓰지 못하면, 기 시간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그 일을 시킨 사람
의 시간이 된다. 먹고 살기 위해 시간을 팔았다면, 그것은 자유를 판 것이며, 아무래도 훌륭한 행
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삶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의
중요한 일을 위해 시간을 내는 일이다.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며, 도처에서 여러 겹의 사슬로 묶
여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일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 늘 바
빠야 하는 강박감에서 벗어나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내가 알고 있는 호주의 어떤 사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다국적 기업에서 직원 교육을 담당
하고 있었다. 그는 일주일 중에서 하루는 자신의 시간이라고 한다. 결혼 후, 그는 아내에게 일주
일 중 엿새 동안은 남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일주일 중 24시간만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아내로부터 이해받았다고 한다. 주말
이 되면 그는 하루 종일 혼자 여행을 하거나, 잠만 자기도 한다. 혹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책을 읽거나, 호주의 그 흔한 해변가에서 종일 파도를 지켜보기도 한다.
그에게 그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때때로 너무 많이 앞으로만 달려왔다고 자각하게
해주었고, 아무 이유 없이 힘이 드는 대는 커다란 위안을 주었다.
아내와의 사이에 건조한 생활의 반복이 너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도 이때
였고, 사춘기를 맞이한 딸 아이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게 아버지 세대의 도덕적 가치를 강요했다는
것을 뉘우치는 때도 바로 이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일상 생활에서 어떤 새로운 결심을 하고 그 일을 실천하느 것은, 모두 자기
만을 위한 이 하루의 시간에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자기는 매우 행복하며, 아내도 가정이 언제나
새로울 수 있는 좋은계기를 주는 시간이라고 기뻐한다고 한다.
나는 이런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언덕에 이르러 길가에 서 있는 나무에
기대앉아, 잠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숨을 고를 수 있는 이 짧은 시간들이 먼 길을 가고 있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휴식이라고 믿고 있다.
미래로부터 현재로 흘러온 시간 속에 묻혀 있는 미래의 ‘기억’을 더듬어, 지금 살아 숨쉬는
일상의 시간르 다시 한 번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낼 힘과 충동 없이, 어떻게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알수 없다.
좋은 휴식은 좋은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다.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스
스로를 완성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믿게 되면, 순간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조금씩 변해가기 위해
쓸 수 있는, 살아 숨쉬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삶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 때, 모든 순간들은 그것을 얻는 순간을위해 기립해서 박수
를 쳐야 한다. 다른 모든 시간들은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시간들이고, 참아야 하는 시간들이며,
극복해야 할 어려움으로 가득 찬 시간들이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그래야 하는 일인가?
나는 인간에게 행복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구하던 것을 얻었을 때, 채워
지는 거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다 쓸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느 사람은행복해야한
다. 적어도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써버린 사람에게는 그래야 한다. 그
러나 불행한 부자는 많다. 그것도 아주 많다. 불행한, 가난한 사람만큼 많다.
모든 사람에게 돈은 소중한 것이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민 중에서 가장 작은 고민이 돈이
모자란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건강이 좋지 않은 부자, 방탕한 아들을 가진 갑부 아버지, 분란과
이기심과 재산의 분배에만 탐욕스러운 가족을 가진 부자가 바라는 것이 여전히 돈인지, 나는 알
수 없다.
행복이란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행복한 시간들의 합이다. 마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행
복을 찾을 수 없다면, 우리는 대체로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믿어도 된다. 일상 속에서의 특별한 행
복은 창의려고가 상상력과 좋은 의도를 필요로 한다.
김형순 할머니는 아내의 어머니인데-나는 장모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저 사회적 관계를 지칭하
는, 죽어 있는 호칭이라 그런 것 같다. 이분은 내게 어려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역할을 해주고 계
신다.-요리를 잘하신다.
그녀에게 요리는 때워야 할 한 끼를 만들기 위한 귀찮은 작업이 아니다. 그녀에게 요리란 경험
적 지식과 손맛 외에 상상력이 가미된 창조 행위이다. 그녀는 요리하는 순간을 즐긴다. 물론 누구
누구는 무엇을 좋아하고, 이 요리를 주면 그를 잠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좋은 의도가 그
창조적 작업에 더 많은 기쁨을 준다.
창조 행위가아픈 고통의 순간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속은 사람들이다. 창조 행
위야말로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하나님도 천지를 만들고 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술과 담배와 깨어진 일상에서 나온 창조 행위-나는 어려서부터 소설가는 언제나 텁수룩한 수여
므ㅇㄹ 기르고, 골초이며, 작품이 잘 쓰여지지 않을 때 머리를 쥐어뜯고, 급기야는 이를 참지 못
해 술을 퍼 마시는, 괴롭지만 왠지 매력적인 사람으로 인식해왔다-는 일상적 창조 행위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나오는 변태적 행위에 불과하다.
창조 행위를 직업으로 하는, 마감 시간에 쫓기는 작가들이 척박한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혹
은 그 강박감을 이기기 위해 저지르는 그들의 일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훌륭한 작가라면 글
쓰기를 빼놓고 더 커다란 즐거움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훌륭한 작가일수록 글쓰는 일 외에는 할 것이 없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항상 자신을 극단까지
몰아간 대표적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서 만일 글쓰기라는 작업을 떼어냈다면, 그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쓸모없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창조적인 순간들, 그것을 계획하고,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것을 즐기는 일상은 행복한
순간들이다.
이규태가 묘사한 소동파는 매우 재미있다.
소동파는 필화와 좌천과 유배와 투옥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궐원처럼 벽라수
에 몸을 던지지도 않았고, 가의처럼 비통 속에서 요절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도연명처럼 산 속
에 은둔하지도 않았다. 남을 원망하지도, 자시느이 연민과 자존에 빠지지도 않았으며, 자신을 비
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는 입으로 평생 바쁜 사람으로 자처하는 낙천가였다. 담론을 잘해 잘도 지껄이기에 실언이
많고, 이를 수습하느라고 입이 바쁘고, 먹는 것을 좋아해 이것저것 만들어 먹고 마시느라고 입이
바빴다. 그는 말년에 슷로를 먹보라는 뜻의 ‘노도’라고 불렀다.
한마디로 주책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일상이 그저 소일거리를 찾아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라
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필화와 좌천과 유배와 투옥으로 얼룩진 것이 밖에서 본 그의 인생이었다면, 안에서 그가 스스
로를 보는 인생은 ‘덧없는’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삼지 않
고, 남은 여생을 유유자적한 것이 어디 작은 일이겠는가.
그는 아마 주어진 시간을 쓸데없는 고통으로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순간순
간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것이 어려운 일인 만큼, 더욱더 그는 자신을 완성해가는 과정 속에 있었
음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시간 주기2, 시간표의 개편
지리산 남쪽 자락인 유점에서 25일 간의 포도 단식을 하고 돌아온 다음, 달라진 일상의 습관은
두 가지 반이다. 하나는 음식물이고, 또하나는 수면의 패턴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 개는 내가 세
상을 보는 태도인 것 같다.
내가 하나가아닌 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정신적 자세의 변화가 가장 일싱화하기에 어렵기
때문이다. 마치 산 속에서 도를 닦던 수도자의 청정한 마음이 속세에 내려오면 달라지듯이, 새로
운 시가을 언제나, 모든 것에 적용하여 세상을 새롭게 본다는 것은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
다. 서투른 무당 같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는 데 가장 중요한 첫번째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것은 욕망과 관계가 있다. 깊으 마음속에서 진정한 욕망을 건져낼 때, 우리는 그것을 위해 시
간을 사용할 수 있다. 두 번재 중요한 것은 24시간을 이것을 위해 어떻게 짤 것인가 하는 문제이
다. 욕망이 그저 꿈으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구체화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자전거를 배우기 위해서는 넘어져야 한다. 즉 우리는 넘어짐을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총을
잘 쏘기 위해 필요한 것은 2만 발쯤 총을 쏘아보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2만 발의
첫 10발을 쏘아보는 것이고, 내일 다시 10발을 추가해가는 것이고, 매일 그렇게 이 일에 시간을
쏟는 것이다.
눈 위에서 낮게 비상하는 한 마리 새가 설원을 달리듯 그렇게 스키를 타고 싶다면, 슬로프 위
에서 많이 넘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욕망에 다가간다.
나는 밤 10시면 잠자리에 들려고 애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책 한 권을 들고 잠자리에 든
다. 그리고 새벽 4시경에 일어난다. 어느 때는 더 일찍 일어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새벽 4시까지
는 그저 침대의 아늑함을 즐긴다. 대략 6시까지의 2시간 정도는 내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책상에 앉아 줄을 쳐가며,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즐거움이다.
또한 일기를 쓰듯 마음의 흐름을 존중하는 글쓰기도 즐거운 것이다. 나는 글쓰기에 특별한 강
박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언제까지, 무엇을 써서, 누구에게 주어야 한다는 각박한 시간의 쫓
김 따위는 없다. 그저 스스로에게 글쓰기를 하나의연습처럼 즐기고있다.
때때로 이 시간에 마리아 칼라스나 조수미, 혹은 바흐의 CD를 틀어놓기도 한다. 좋은 음악은
군더더기가 없다. 그리고 일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음악의 장점은 동시성에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방해하지 않고 다른 것 속으로 흡수되고 동화되
어, 양념처럼 ‘다른 일하기’속으로 스며든다. 적어도 낵는 그렇다. 그리고 언제나 대중 가요를
끼고 사는, 중학교 3학년짜리 큰딸 아이에게도 그럴 것이다.
나는 저녁 시간은 그대로 놓아두었다. 무엇에나 쓸 수 있도록 자유로운 시간이 이때이다. 7시와
8시 사이에 보통 저녁을 먹게 된다. 그리고 아내가 아이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다. 함께 웃기
도 하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기도한다. 혹은 아내와 한두 잔의 포도주를 마시기도 한다.
9시 뉴스를보고 나면 벌서 자야 할 시간이다. 때때로 저녁 먹고, 아이들은 놓아둔 채 전철을 타
고 종로 3가까지 나와 영화를 보고 돌아오기도 한다. 이 날은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
어온다. 가끔이지만 같이 음악회에 앉아 있기도 한다.
아내는 음악을 좋아하고 그 즐기는 태도가 나와 다르다. 그녀는 음악을 과외로 즐기는편이 아
니다. 비교적 본격적으로 일삼아 듣는 것 같다. 말하자면 나처럼 틀어놓고 딴짓을 하는 것이 아니
라, 명상하듯 그렇게 듣는다.
유점을 다녀오기 전, 나의 일과 후의 자유로운 시간은 주로 밖에서 이루어 졌다.
직장 동료들과 저녁을 같이하며 술 한잔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늦게까지 통음하는 경우가
일주일에 한두 번은 되었다.
저녁의 과식은 몸을 살찌게 하고 속을 부대끼게 했다. 가끔 새벽가지 이어지는 술자리는 그 다
음날까지 몸의 상태를 온전하기 못하게 했다. 나는 나의 욕망을 위해 매일매일 일관되게 시간을
써오지 못했다. 그것은 산발적이었고, 즉흥적이었으며, 연속적이지 못했다. 낭비하듯 자유로웠지
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무런 성숙도 이루지 못했다.
세상을 보는 확실한 방법을 가지지도 못했고, 한 가지 일을 아주 잘하지도 못했다. 그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사람의 삶 속에 내 삶을 묻어왔다. 나는 나에게서 존경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아름다운 영화이다. 맥클레인 목사는 몬태나 주의 아름다운 계루에서 두
아들과 함께 송어 낚시를 한다. 대학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객지로 떠나 있는 동안, 동생 폴이 낚
시의 예술가가 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폴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낚싯대와 줄은 단순한 고기잡이 도구가 아니었다. 그림자처럼 민활하
게 움직이는 낚싯줄은 흐르는강물과 숲과 어우러져 수려한 멋을 만들어내었다. 이 영화의 내레이
터 역할을 맡고 있는 노먼은 이 광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나는 그때 놀라운 것을 보게 되었다. 폴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가르침을 벗어나, 자유롭게 자기
만의고유한 리듬을 타고 있었다……. 폴은 자신의 낚시 방법을 ‘그림자 던지기’(Shadow
casting)라고 불렀다. 그것은 낚싯줄을 오랫동나 수면에 바싹 붙인 채로 흔들어주어 무지개 송어
가 뛰어오르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나는내가 떠나 있는 동안, 동생이 예술가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윽고 대어를 낚고 환
하게 웃는 동생을 보며) 그 순간, 나는 어떤 완벽함 같은 것을 목격하고 있음을 분명히, 그리고
확실하게 느길 수 있었다. 아버지가 폴에게 ‘너는 멋진 낚시꾼이야’하고 말했을 때 폴은 대답
했다. ‘아, 그러나 물고기처럼 생각하려면, 아마 한 3년은 더 걸릴 것 같군요.’
인생을 멋있게 산다는것은 어울림이다. 아름다운 것들과의 어울림 같은 것이다. 그것은 확고한
움직임이다. 오랜 수련과 단련 속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과 창조인 것이다.
물고기처럼 생각하는 낚시꾼-이것은 낚시꾼이 비로소낚시꾼으로서 확고한 자신의 시각을 가지
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가슴 떨리는 삶이다. 이것은 폴이 앞으로 ‘한 3년’더 낚시질을 함으로
써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삶은 시간이다. 멋진삶은 매일 그 일을 오랫동안 해온다는 것이며, 순간순간 물리가 터지는 기
끔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완성을 향해 변해간다. ‘선비는 사흘만 헤어져 있어도 괄목
상대해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말이다.
죽은 사람만이 과거로 남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햇빛과 같이눈부신 말이다. 마
음이 열리면 세상이 달라지는데,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우리의 마음에서 온다.
절제, 정 아지매
매일 몇 시간씩 떼어내어 한곳에 쓰기 위해서는 욕망과 함께 절제도 필요하다. 진정한 욕망을
다른 욕망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절도 말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동화 속에 나오는 ‘세 가지 소원’처럼, 소원을 선택하고 나면 그 밖의 무수
히 많은 소원들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종의 선택이다. 선택되지 않은 것은
버리는 것이다. 언제나 선택과 포기는 함께 손잡고 다닌다.
정 아지매는 진주에 있는 어느 과일 가게 주인의 여동생이다. 내가 포도 단식을 하면 한 달 간
유점에 있는 동안, 김 목사의 사모님이 그 가게에서 부지런히 그 많은 포도를 사들였다.
어느 날, 정 아지매는 김 목사 사모님을 따라 포도 단식을 하기위해 우리가 있는 곳으로 합류
했다. 그때 유점에는 모두 3명이 단식을 하고 있었고, 이날 오후에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가 들어
왔다.
어쩐 일인지 그녀는 정신 연령이 좀 모자라 보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얼핏 한 말에 따르면 그
녀는 약간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고, 몇 년 간 독한 약을 퍼먹었기 때문에 속이 항상 쓰리다고
했다. 그녀 자신이 한 말을 대략 종합해보면, 나이가 43세이고, 첫 남편이 자기를 많이 때렸으며,
아이를 몇 번 낳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결혼의 실패와 그 동안의 생활의 충격으로 머리가 온통 혼란해져 좀 어리벙한 행동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내린 결론은‘정신 질환에 의한 후천적 모자람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조금 모자라
게 태어난 것 같다.’는 진단이었다.
유점에 온 첫날은 매우 조용히 지나갔다. 둘쨋날부터 정 아지매는 사람들을 웃기기 시작했다.
시집은 한 번만 갔지만, 여러 남자들과 사귀었다 한다. 남자들이 자기를 때렸지만, 자기는 남자들
이 좋다고 했다. 지금까지 딸 넷에 아들 둘을 낳았다고 한다. 남동생도 있는데 자기를 보고 문딩
이, 못난이라고 부른다고도 했다.
대청 마루에 앉아 주절주절 쏟아놓기 시작하는데 한이 없다. 말하는 투는 정상인과 다름이 없
다. 다만 다른 점은 가리고 가리지 않고가 없었다. 그저 나오는 대로 더들어댄다. 주책없는 여편
네 같기도 하고, 맘대로 안 되는 세상 허허롭게 살아가는, 마음 편한 아낙 같기도 하다.
이 정 아지매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기는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초등학교
3학년짜리 허재석과의 짠한 이별의 장면이다. 정 아지매가 유점에 온 후, 며칠 있다가 허재석이
엄마의 손을 잡고 유점에 나타났다.
이 아이는 별로 거리낌이 없는 밝은 아이인데, 야구와 축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박찬호
의 투구 폼과 이종범의 타격 폼을 훌륭하게 모방할 수 있는 스포츠광이었다.
며칠 지내느 동안, 정 아지매와 허재석은 매우 친해졌다. 우리가 보기에도 둘은 정신적으로 훌
륭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그 쑥 들어간 벽지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친구들이었다.
배를 쫄쫄 곯고 있는 허재석이 가장 먹고 싶어하는 음식은 돼지 국밥이다. 이 아이는 자기가
왜 그것이 먹고 싶은지 잘 모른다. 지금까지 서너 번밖에 먹어보지 못했고, 그것도 평소에 특별히
좋아한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정 아지매도 허재석을 따라 돼지 국밥을 먹고 싶어했다.
열흘쯤 지나 여름 방학이 끝나가자, 허재석은 비교적 짧은 포도 단식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
가야 했다.
정 아지매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700여 원을 몽땅 털어 허재석에게 주며, 돌아가는 길에 맛있
는 것을 사 먹으라고 했다.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털어준다는 것은, 그 금액이 얼마가 되는가에
관계 없이 매우 지극한 정성이다.
몸이 좋아지면 시집갈 것을 강력히 바라는 정 아지매에게 포도 단식의 정진을 가로막는 장애는
먹을 것이었다. 단식을 하는 사람들 모두 즐겨 찾는 화제는 맛있는 음식 이야기이다.
입으로 만드는 음식 맛이 최고인 사람은 단연 정 아지매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모자라는
듯한 하이파이인데, 묘한 웃음과 함께 요리를 만들어내면, 금방 침이 넘어간다. 모든 사람은 그
음식의 맛을 웃음으로 넘기고 잊어버린다. 문제는 정 아지매가 참기 못한다는 데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죽을 듯한 얼굴로 배를 움켜쥐고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전날 무엇인가
를 훔쳐먹 은 결과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왕성한 식욕을 가지고 있는 여자는 이제 막
살이 오르기 시작한 감이 떨어져, 땅바닥에서 노르스름하게 썩어가는 것을 보면, 배고픔을 못 이
기고 주워 먹지도 한다. 물론 아무도 몰래.
슬그머니 오이를 따먹기도 하고, 숲 속에 들어가 탁구공만한 돌배를 따먹기도 한다. 단식 중에
먹은 것들이라 이것들은 금방 고통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참지 못한다. 그래서 언제
나 배가 아프다.
그녀가 가장 심하게 혼이 난 것은 아랫집에 살고 있는 홀아비 집에 잠입하여, 아가미젓 한 숟
가락을 훔쳐먹고 난 후였다.
얼굴이 축구공만하게 부어올라 며칠째 빠지지 않았다. 당연히 포도마저 금식 조치가 내려졌고,
그녀는 방안에 누워 꽤 오랫동안 끙끙거려야 했다.
단식 중에 발생한 독소를 제거해내기 위해 다시 숯가루를 한 시간에 한 숟가락씩 먹어야 했다.
고통을 참고 있던 정 아지매는 며칠이 지난 후 김 목사 내외를 은밀하게 찾아왔다.
내가 ‘은밀하게’라고 말한 이유는, 무슨 이야기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이 여인이, 우리
몰래 김 목사 내외만 있을 때 이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이다-나중에 김 목사 부인이 말해주어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다짜고짜 밥을 언제부터 줄 것인가를 따져 물었는데, 그 때의 표정이 매우 진지하고, 또
매우 긴박감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리고 매우 결연하게, 자기는 단식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
니, 당장 보식을 시켜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간곡하게 타일렀고, 지금 그만두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노력의 낭비인가를 설득했
다고 한다. 그녀는 막무가내였고, 그 이후 김 목사 내외는 그녀의 포도 단식을 포기하고, 보식으
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으면 시집가겠다고 하던 그녀의 욕망은 썩은 감 몇 개, 아직 익지 않은 돌배, 다 자라지 않은
오이 몇개, 홀아비의 가자미젓 한 숟가락에 대한 순간적 욕망들 때문에 산산이 사라지고 말았다.
매일 작은 유혹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것은 장엄하고 묵직한 삶은 아
닐지 모르나, 경쾌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삶이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꾸짖을 때 항상 하는 말인 ‘흥청망청 되는 대로 시간을 쓰는’나태한 시간들은 소중한
것이다.
나는 이것들이 가지는 도교적인 자유를 그리워한다. 훌륭해져야한다는 유교적 압박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는 되는 대로 흥청망청 시간을 보내는, 입시 끝난 수험생
같은 삶의 낭비가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사회와 가정과 일상 속에 같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은 초라한 자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자기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항상 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 있는 일을 위해 일상의 시간을 몰
아서 쓸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것은 그 일을 위해 다른 일을 포기하고 만들
고, 포기마저도 슬픈 행복으로 남게 한다.
깊은 자신만의 욕망을 가져야 한다. 하루에 한 시간이나 두 시간, 그 욕망을 위해 시간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나 그 욕망이 꿈틀거릴 수 있도록 매일 돌봐주어야 한다. 마음속에 항상 뿌
리 깊은 욕망을 가지고, 그 일에 시간을 쓸 수 있는 자신만의 비밀과 행복을 가져야 한다.
삶은 시간과의 밀애이며, 또한 싸움이다. 싸움이 없는 사랑이란 없다. 감미로움만이 사랑이 아
니다. 소태와 같이 쓴 것이 사랑이다. 그것은 이별과 같이 슬프고 허무하기가, 쉽게 지나가버린
시간과 같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모두 다 조금씩은 냄새 맡고 있다.
좋은 욕망을 사랑하고, 항상 그 곁에 있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것이다. 연
애가 그렇듯이, 한 욕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다른 욕망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이것은 어쩌면 절제라고 부르기에는 적절치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름다운 욕
망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능한 많은 시간을 쏟아 붓기 위해서는 다른 일상의 욕망을 정제해야
한다는 뜻을 전하고 싶어서 사용하였다.
한 시간이어도 좋다. 매일 이 시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겨두어야 하며, 이 약속은 반드시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위해 사용한 시간만이 다른 사람과 다른 삶을 살도록 한다. 그리하
여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도록 한다.
제8장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할 다섯가지 일들
나는 당신의 손에 쥐어진 활입니다.
주님,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는 마옵소서.
나는 부러질까 두렵습니다.
나를 힘껏 당기소서, 주님.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
마음을 열고 욕망이 흐르게 하라
붉은 꽃빛 바윗가에
암소고삐 놓아두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리이다.
-『삼국유사』 권2, 水路夫人 條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에 이미 늙어버린 경우는 없다. 너무 늙어 마음이 굳어버린다는 것도 있
어서는 안 된다. 삶에는 언제나 약간의 흥분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제나 새로 시작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일도, 너무 늙은 일도 없다. 마음에 드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은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임을 믿어야 한다.
젊다는 것은 쓸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저 일과에 쫓기는 사람은 자신을 위
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만큼 사람은 자유롭다. 할 종일 아무
도 장신을 찾아오지 않는 곳으로 가라. 당신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시간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시간을 내어라. 그리고 종이와 펜을 꺼내 들어라. 당신이 그 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적어보아
라. 기다란 목록을 만들어라. 그저 생각이 흐르는 대로 적어 나가라. 어렸을 때의 꿈이어도 좋고,
지금의 바람이어도 좋다. 그것을 적으면서 어떤 기쁨이 스켜가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적어라.
이유를 묻지도 말고, 경중을 따지지도 말아라. 할 수 있는 것이든, 할 수 없는 허망한 것이든,
그 역시 묻지 말아라.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가능한 많이 ‘하고 싶은 것들’의 기다란 목록
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석양을 한고, 집으로 돌아오라.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일주일을
보내라, 기다란 목록에 어떠한 것도 건드리지 마라. 혹시 생각나는 것이 더 있다면, 다른 종이에
추가적으로 적어두어라.
일주일이 지난 다음, 다시 아무도 당신을 방해하지 않는 곳으로 가라. 그리고 일주일 전의 기다
란 목록을 꺼내라. 그 다음, 두장의 새 종이를 꺼내라. 종이 한장에는 ‘나의 묘비명’이라고 크
게 적어라. 그리고 또 다른 종이에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크게 적어라. 준비가 되
었는가? 이제 한 가지의 기준에 따라 당신의 목록에 나와 있는 일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두자
의 새로운 종이에 나누어 롬겨 적어라. 그 유일한 기준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당장 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쓴 종이
에 옮겨 적되, 그 옆에 그 일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 이름과, 하고 싶은 날짜를 함께 적어라.
예를 들어 당신의 목록 속에, ‘정동진역으로 가는 밤차를 타고 싶다’같은 것이 있으면 그 옆
에 ‘아내와 함께, 아내의 생일날’이라고 적어라. 만일 ‘남원집 추어탕을 먹고 싶다’라는 목록
이 있으면, ‘종욱형과 함께 9월 초, 토요일’이라고 적으라는 말이다. 만일 ‘그때 그 일은 내가
먼저 사과했어야 했어’같은 것들이 있다면 ‘이번 토요일, 민속 박물관 앞 북 카페에서, 편지 쓸
것, 가능하면 부칠 것’등으로 써놓으면 된다.
이것들은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것들이다. 적절한 때에, 생각나는 사람과 엮어가는 이 일상의 기
쁨이 바로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다. 이것들은 당신의 행복의 목록들이다. 이런 작은 일들로 하여
당신의 일상은 지리한 반복의 퀘도를 벗어날 수 있는, 여러 일탈의 순간을 가지게 된다. 일상 속
으로 축복처럼 새로운 일들이 밀려오고, 새로운 감정이 솟아난다. 살아가면서 이런 목록을 많이
만들어 실천에 옮겨라.
당신의 목록 속에는 아직 풀리지 않는 거대한 욕망들이 뒤섞여 남아 있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 마음대로 쓰고 싶다’같은 것도 있을 수 있고, 음악에 재능이 있다면, ‘피아노를 열심히
배워, 아주 잘 칠 수 있었으면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또는 ‘바다가 보이는 따뜻하고, 햇빛
밝은 곳에 예쁜 집을 짓고 살고 싶다’같은 소망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좀더 친절한 사람이
되었으면’하는 바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아름다운 여인과 기이한 인연으로 만나, 신비한 사
랑에 빠져보았으면’하고 바랄 수도 있다.
이런 바람들은 모두 ‘나의 묘비명’이라고 적힌 종이에 옮겨 적어라. 그리고 각각에 대하여
자신의 묘비명을 만들어 보아라. 예를 들어 ‘홍길동, 1934년생, 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
쓰고 싶은 대로 그 돈을 모두 쓰고 잠들다’라고 쓴 묘비명이 참으로 만족스럽다면, 당신은 앞으
로 모든 것을 바켜 장사를 하여 돈을 벌도록 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여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어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이 누워 있다’라는 묘비명을 감수해야 한다. 혹은 시인 천
상병처럼, 시같은 묘비명을 쓸 수도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빠삐용」이라는 영화에서 푸른 바다 위의 뗏목에 몸을 누이고, 기어이 죽음과 억압의 수용소
를 탈출하는 주인공은 ‘삶을 낭비한 죄’를 범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당신의 욕망을 발견하
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체로 욕망이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그 동안 왜곡된
교육과, 인습과, 어둠 속의 관행이 우리의 감성을 억눌러왔기 때문이다. 욕망 대신 다른 사람과
사회가 기대하고 있는 것들이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나와, 모든 것을 걸러낸다. 그리하여 욕망에
솔직해질 수 없게 만든다.
아직도 노회한 사려 깊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화가 장욱진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나는 남의 눈치를 보며, 내 뜻과 같지 않게 사는 것은 질색이다. 나를 잃어버리고, 남을 살아주
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점잖다는 말을 싫어한다. 겸손이라는 것도 싫다. 그 뒤에는
무언가 감추어진 계산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러므로 솔직한 오만이 훨씬 좋다. 먼저 자기 마음
대로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참된 자기 것을 가질 수 있기에.
‘묘비명’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를 채울 수 있었는가? 만일 채울 수 없었다면, 당신은 아직
당신의 욕망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욕망이 정체를 드러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라. 몽둥이
를 들고 쥐구명 앞에 서서, 그 구멍으로 쥐가 머리를 내미는 순간을 기다릴 때처럼 조용히, 숨을
죽이고, 모든 정신을 집중하라.그리고 욕망이 당신의 어둠 속 깊은 곳으로부터 머리를 들고 디어
나올 때까지 그렇게 기다려라. 학교나 사회 생활을 통해 얻어들은 모든 위선의 옷을 벗어버려라.
그리고 ‘남’이 되기 위해 바라왔던 모든 부질없는 공상 또한 벗겨내 버려라. 그리고 물어보라.
당신은 왜 여기 있는가?
유감스럽지만 어쩌면 당신의 ‘묘비명’목록은 미완성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실
망해서는 안 된다. 충분히 만족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여러 개의 묘비명 목록에서 꼭 한 가지만
을 골라내라. 그리고 다른 것들은 모두 지워버려라. 당신은 이미 삶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제 당신은 충분히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욕망’이라는 기준에 의해 한 가지를
선택한 것이다. 이 작업은 진지하게 이루어질수록 더 좋다. 그러나 아직 너무 경직되어서는 안 된
다. 당신에게는 아직 고쳐 쓸 기회가 남아 있다.
이제 당신은 미완성일지는 모르지만, 당신의 ‘묘비명’에 쓰여질 욕망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대를 행복하게 할 즐거움의 목록도 가지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당신은 어제보다 나아진 사람
이 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제 이것들을 소중히 보관하라.
지능목록
그대또한 잘하는 것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지혜를, 어떤 이에게는 지식을,
다른 이에게는 믿음을, 또 다른 이에게는 병을 고치는 능력을, 또 어떤 이에게는 실천력을, 그
리고 또 어떤 이에거는 앞날을 내다봄을, ㅇ그리고 또 어떤 이에게는 이를 통역할 수 있는 능력
을 주시나니.....
-『성경』.고린도 전서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 중에서 남 보다 뛰어난 것들에 대하여 적어보
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우 난감하게 느끼는 것 같다. 평범하기 짝이
업슨 내가 무슨 잘하는 것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당신은 그 동안 당신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참으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힘에 대하여 조용히 생각해보라. 당신에게 특별하게 주어진
지능이 어떤 것인지 찾아내어, 자신의 ‘지능 목록’(Intelligence Profile)을 만들어보는 것이 중요
하다. 그리고 모자라고 부족한 지능의 개발을 위해 힘쓰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이 탁월한 ‘지능
’들의 개발에 힘을 써야 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이러한 지능이 필요
한 일들을 이룰 수 있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이 일들을 해낼 수 있다.
‘지능 목록’을 만들어갈 때, 먼저 앞 장에서 나열한 지능의 종류들을 참고하여, 자신에게 강
한 지능의 목록을 써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그러나 항상 구체적으로 목록을 정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당신은 다른 사람의 기분의 변화에 대하여 민감한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
는 표정이나, 말투, 눈빛, 손의 움직임, 자세 등의 변화로 그 삶의 마음의 움직임들을 정확하게 유
추해낼 수 있는가? 이것은 보통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인지 모르지만, 이런 일에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카운셀링이나, 협상가, 영업전문가, 분쟁의 해결사,
사회 사업 등 사람을 만나고 다루는 데 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혹은 당신은 한 번 본것을 잘 기억하는가?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목에 있는 가게의 문 색깔
과 창문의 개수, 혹은 나뭇잎의 모양, 전봇대가 서 있는 큰 집 대문 앞의 계단이 몇 개인지 기억
해 낼 수 있는가? 한번 본 얼굴을 잘 기억할 수 있는가? 이것은 당신이 시각을 통해 사물을 인지
하는 능력, 즉 시각 관철력에 관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공간 지능의 일종이다. 그러나 같은
공간 지능에 속하지만, 청각에 의한 감지 지능이나, 촉각에 의한 감기 지능은 시각에 의한 감지
지능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지능 목록’에 ‘공간 지능’이라고 쓰지 말고, ‘시
각을 통한 관찰력이 좋아 한 범 보고도 이것을 재생할 수 있다’등으로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중
요하다.
종이를 꺼내 자신의 그 동안의 형태를 떠올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남이 잘한다고 알아준
것, 그래서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기억을 떠올려라. 그리고 그 일과 관련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탁
월한 지능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써서, 목록을 만들어보라. 다음은, 어던 사람이 자신의 ‘
지능 목록’을 만들어 놓ㅇ은 것이다. 나는 이것이 완벽한 형태로 정리되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보완되고 개발되어, 자신이 가지고 나온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나는 읽는 것을 좋아하며, 그 내용을 나름대로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상
황을 묘사하는 가장 적절한 어휘를 찾아내는 데 비교적 익숙하다. 사람들이 나의 말하는 모습이
나 태도에서 진지함을 느끼게 할 수 있으며, 비교적 잘 내 말을 신뢰 하도록 만들 수 있다. 글을
쓰는 일도 쉽고 재미있다. 논리적인 글도 좋고, 감동적인 글도 좋다. 그리고 글쓰기가 가치있는
일이라는 지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또 한 번 일을 시작하면, 그 일을 끝낼 때까지 계속하는 편이다. 고생스럽고 남이 알아주
지 않아도, 한 번 마음먹은 일이니 내쳐 한다. 특히 자신과 약속한 것은 꼭 지키려고 한다. 그
일을 못 하면 불안하고 초조하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를 격려하여, 언제나 조금씩 나아지려고
애쓴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대하여 민감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우선
적 가치를 둔다.
나는 또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잘 들어주는 편이다. 또한 대화 도중 그 사람의 감정의 흐름
을 비교적 잘 느낄 수 있다. 여러 사람을 모아놓고, 익숙한 주제에 대하여 강의하는 것이 쉽고 재
미있다. 또 청중들의 반응도 매우 좋아, 훌륭한 강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알고 있는 것과 전달
하는 것 사이의 괴리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다.
이 사람의 경우, 일견 언어 지능과 감성 지능이 매우 뛰어나며, 제한적이지만 대인 관계 지능도
좋은 것으로 판단된다. 재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사람은 교육가, 문필가, 카운셀러, 인성 개
발 전문가, 컨설턴트 등의 영역에서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그는 오랫
동안 이런 분야에서 근무해왔다.
진기한 조합
욕망과 지능을 연결하라
하고싶지만 잘 못하는 일은 그대와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이다.
옷소매조차 스치지 못한 인연이니 잊어라.
하지 싫지만 잘하는 일 역시 그대를 불행하게 만든다.
평생 매여 있게 하고, 한숨 쉬게 한다.
죽어서야 풀려나는 일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고 싶고 잘하는 것을 연결시킬 때 비로소 그대,
빛나는 새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다.
창조하는 마음이란, ‘진기한 조합’(Novel Combination), 혹은 ‘연결되지 않는 것을 연결하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한다.
당신의 재능에 대한 ‘지능 목록’이 만들어지면, 이제 깊숙한 곳에 보관해놓은 ‘묘비명’목
록을 꺼내 놓아라.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연결시켜라. 이러한 연결은 결국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리움처럼 떨쳐버리지 못하고 원했던 것으로, 내게 주어진 그것을 잘할 수 있는 재능’을 찾아내
는 과정이다.
황병기 선생은 경기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 법대를 다녔다. 그러나 그는 중학교 때부터 배워 온
가야금을 잊지 못하고, 그 길로 갔다. 그리고 이 분야에 커다란 획을 그어놓았다.
장욱진 화백은 잠시 서울 미대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지만, 대체로 그림만 그리며 살아온 사
람이다. 그는 삶은 소모하는 것이라고 믿어온 사람이다. 그저 깨어서 정신이 있는 동안은 줄곧 그
림을 그려왔다. 그가 오로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은 사람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리는 것을 원했
고, 그 일을 아주 잘했다.
이제 당신이 원해온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재능이 자신에게 있는지 물어보아라. 만일 그것이
만족스러운 조합을 이루고 있다면, 당신의 꿈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다.
만일 이 조합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꿈을 다시 꾸든지, 아니면 별로 타고나지 못한
열등한 지능을 개발하는 데 시간을 몰아 써야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삶을 하나의 과정으로 볼 때 이것 또한 그리 나쁜 것은 아닐지 모르나, 힘들고
성과를 보기 어려운 선택이라고 본다.
감성 지능이 높아 자제와 인내력을 가지고 스스로를 위로해가며, 재능은 떨어지지만 자신의 꿈
을 이루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성공한 예도 드물지 않다. 우리는 보통
그들을 노력파라고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노력파의 경우에는 그들이 대체로 감성 지능이 매우
높다는 사시이다.
감성 지능 지수가 높으면서 다른 특정 지수가 높은 사람은, 특정 지능이 꼭 필요한 일에 종사
하게 되면 그 분야에서 대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달리기에 대한 운동 지능이 높고 감성 지능도
높은 사람은, 육상 분야에서 성공하기 쉽다.
그는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연습하는, 소질있는 선수인 것이다. 어떻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감성 지능은 거의 모든 분야의 성공에 기여하는 초기능적 지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달리기와 무관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면, 자신의 지능 중 매우 특별한 능력이
사용되지 않고, 그저 감성 지능만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때 삶은 언제나 지루한 것으로 참아야
하며,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할 수밖에 없는, 인내력이 강한 성실한 사람의
삶에 불과하게 된다.
우리는 소질은 없지만 성실한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금치 못한다. 그들을 미워할 수는 없지만,
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대체로 그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를 잘못 찾은 데서 비롯된 일이다.
이것은 학교 교육의 실패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일이 바로잡히기 전까지는
그 해결을 개인적 선택과 개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헝그리 정신」에서 찰스 핸디는 학교 교육에서 학생들의 지능적 강점을 찾아내어 이를 개발
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약한 지능을 보완하는 노력은 어느 정도 부분적으로 필요한 작업일 수는 있지만, 인간을 낮은
단계로 평준화시켜, 사회적 틀 속에 구겨 넣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거
의 모든 시간을 이것저것을 엉성하게 습득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실용 지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학교 교육의 개혁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개인으로서, 혹은 부모로서 한 사람에게 주어진 강한 지능들을 개
발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당신이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었기를 기대한다. 만일 지금까지 이것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다시 앞의 두 과정을 되밟아 가라. 즉 당신의 욕망을 직시하고, 당신의 지능
목록을 다시 보라. 그래도 잘 모르겠거든 이 문제를 품은 채,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라.
일상의 자유
하루에 두 시간은 자신만을 위해 써라
삶은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시간은 오직 일상 속에만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슈퍼에서 물건 몇 개를 사기 위해서,
몸에 걸치는 옷 몇 벌을 사기 위해서,
잡동사니 몇 개를 더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시간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마라.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것은 꿈에 쏟은 시간의 양이다.
당신은 이제 욕망과 지능을 결함시킴으로써, 당신의 삶을 어떻게 쓰고자 하는 커다란 그림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 그림을 당신의 삶의 비전이라고 부르겠다.
이제 이 새로운 그림을, 지금 당신이 종사하고 있는 직업과 겹쳐 보도록 하라. 잘 겹쳐지는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아무 할 말이 없다. 그저 그 행
복을 부러워하고 축복하고 싶을 뿐이다.
만일, 지금 하고 있는 일고 새로운 그림이 겹쳐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괴리가 바
로 당신을 고민하게 하고, 성과면에서 그저 그렇고 그런 삶으로 만들어놓은 주범이다.
열정도 재능도 없는 일에 종사해왔다면 그 일을 잘할 수 있었겠는가? 어찌어찌 하다가 몰려들
어와 살게 된 삶이니, 그저 그러려니 하며 견디고 있다. 그 안에서 위로 올라가는 좁은 사다리에
매달려 전전긍긍하고 있다.
때가 되어도 진급을 못 하면 소주를 들이키고 울분을 토하다가, 또 그러려니 하며 산다. 불황이
되어 어려워지면 월급을 깎고, 보너스는 반납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경영주에게
발목이 잡혀 엉거주춤거리고 있다.
모두 털고 나오고 싶어도, 거리는 춥고 험하다. 그래서 한숨을 쉬며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고,
또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일에 모든 시간을 써버리고 만다. 만일 당신이 그저 체념하고 그대로
살겠다면, 이 책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마음으로 원하는 것을 하며 그 일을 잘할 수 있다면, 삶의 밝은 쪽으로 걸어 나
오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좀더 좋아 하게 되고, 일상이 또한 즐거워질 것이다. 날이 지날수록
좀더 나아진다면, 언젠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세상을 다르
게 해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성장이다. 그리고 성장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성공은 기여에 대한 보답
이다. 성공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돈이나 명예가 아닐 수도 있다. 자기 존중과 마음의 평화, 이웃
의 믿음과 존경, 그리고 삶에 대한 이해 같은 것으로 다가온다.
만일 당신이 겹쳐지지 않는 그림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하루에 적어도 두
시간 정도는 그 교정에 사용하여야 한다. 다행스럽게 그 교정 과정은 괴로운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쏟는 것이고, 재능이 있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므로, 교정 자체가 바로 즐
거움이며, 삶의 활력이 된다.
당신에게는 시간이 없다. 만일 이미 마흔이 넘어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를
위해 술을 마실 시간은 있지만, 술을 마시고 비정한 상사를 욕할 시간은 없다. 세상을 탓하고 주
위를 둘러보며 욕을 할 시간도 없다. 정부의 무능을 비난하고, 경영자의 탐욕을 탓할 시간도 없
다.
무능한 정부는 정권을 잃고, 탐욕이 경영의 목적이었던 경영자는 도산할 것이다. 그리고 전문화
되지 못한 개인은 직업을 잃을 것이다. 이것이 IMF 시대의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IMF는 고통스
럽지만, 매우 필요한 시점에 우리에게 찾아온 자성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IMF를 통해 초고속 스피드로 ‘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세계적 표준 질서
속으로 빨려들어온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장 경제라는 개념은 매우 유용하고 강력한 메커니즘이다. 단순하면서도 욕망에 충실하다. 바
로 그 때문에 그것은 모든 경제.경영 개념의 핵심으로 장수하고 있다.
문제는 시장의 원리로 채워지지 않는 사회의 다른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경쟁은 결국 탈락한
집단을 낳게 되며, 그들 역시 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들에 대한 문제는 정부의 책임이었다. 사회 보장 제도, 실업 수당, 재취업 프로그램
등 적극적 부분은 물론, 경찰력과 사법 제도를 통해 시위와 폭동을 관리하는 것이 모두 정부의
기능 중의 하나였다.
앞으로 정부의 기능은 축소되어 갈 것이다. 국가의 물리적 한계는 정보 통신이라는 비물리적
자산의 교류를 통해 그 영향력이 급속히 감소해갈 것이다. 민족 기업이라는 개념도 바뀌어간다.
GNP라는 개념은 이미 GDP가 주는 개념의 중요성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운영되는 외국 기업은 외국에서 운영되는 한국 기업보다 더 중요해진 것이다. 다국적
기업은 주주에 대한 책임 외에도, 기업 시민 정신을 바탕으로 그 동안 정부가 수행해왔던 정치.사
회적 기능을 부분적으로 대신해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개인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보다는 자신의 열정과 재능에 따라 스스로를 개발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여 가지 않으면, 곧 하부 집단의 일원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명약관화한 일을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거시적으로는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
지만, 결국 미시적으로 자신의 가족을 구원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는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새로운 계획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 직
장을 가지고 있다면, 좋은 일이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깊은 관
심을 가지고 지켜보라. 관심을 가지면 그 일이 달라 보인다.
직장에서 주어진 일에 매이지 마라. 하는 일의 영향력의 범위를 넓혀 가라. 직장 내에 존재하는
고객을 찾아, 그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정리하라. 항상 기업과 1년 정도 유효한 계약을 맺은 경
영인처럼 행동하라. 당신은 ‘사이버 1인 기업’의 경영인임을 잊지 마라.
1년이 지나면 다시 그 동안의 내부 고객에 대한 기여의 정도를 가지고 재계약이 체결되는, 그
런 긴박감과 고객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일을 다루라. 그리하여 당신이 그 일을 그만두면, 많은
사람이 당신보다 더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없게 행동하라.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보다 더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 말이다.
만을 이미 실직을 했다면, 당장 경제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먹고 살 것
이 없을 만큼 아무 준비도 없이 직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면, 당장 막일을 하는 잡역이나 붕어
빵 장사라도 하라. 가족을 굶기는 아버지보다 무책임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평생 붕어빵 장사를 하기 싫으면, 두 시간은 떼어내어 앞날을 준비하라. 만일 당신에게
약간을 버틸 경제적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마음에 드는 일을 찾아 시작하라. 다른 사람들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흐르는 대로 따르라. 절대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허망한 물욕을 내지
마라. 퇴직금을 날리고, 자신에 대한 존경을 잃고, 패가망신한다.
사기꾼은 언제나 당신이 조만간 가지게 될 행운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리움으로
살아 있는 깊은 욕망은, 그것 없이는 당신의 삶이 참으로 허망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신이 스스
로 믿지 못하는 일은 시작하지 마라.
어느 경우이든, 빨리 겹쳐지지 않는 그림을 포개는 작업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루 두 신간 이상
을 매일 쉬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투자하라. 욕망과 재능에 이제 시간을 더하라. 시간은 곧 삶이
다. 삶을 욕망과 재능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것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다.
다른 사람의 욕망과 재능에 돈과 시간을 걸지 마라. 운이 좋으면 돈을 딸 수도 있지만, 모든 것
을 잃을 수도 있다. 더욱 비참한 것은 스스로의 욕망을 희생하고, 하늘이 준 재능을 버림으로써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생을 팔았기 때문이다.
숙련과 기록
선택한 욕망에 인생을 걸어라
며칠하다가 그만두지 마라.
바쁜 일이 있어 며칠 있다가 다시 계속하겠다고 다짐하지 마라.
욕망의 불길이 계속 타오르게 하라.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에 매여 산다. 일상이란 여려 가지 것들이 얽혀 있는 곳이다. 아버지이기
도 하고, 남편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자식이기도 하다. 또 직장 내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어
가진 한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친구들과의 모임도 있고, 할아버지의 칠순에 참석하여야 하고, 이종사촌의 아들이 결혼하는 결
혼식장에도 가보아야 한다. 하루는 이런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쓰여진다. 그래서 바쁘다.
하루에 두 시간 정도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작심은 하였건만, 오랫동안 계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쩌다 난 자투리 시간은 쉽
게 써버린다. 잠을 푸지게 자버리거나,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 바꾸어 누워가며, 텔레비전의 채
널을 돌려댄다. 서산에 걸려 또 하루가 진다.
선택이 진지한 형태로 남으려면, 자신을 위해 쓰는 두 시간을 무엇보다 중요한 제일의 우선 순
위로 올려 놓아야 한다. 먼저 두 시간을 쓰고, 그 다음에 22시간을 남겨 두었다가 쓰도록 해야 한
다.
가장 쉽게 이것을 쓰는 요령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시간대에서 두 시간을 빼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새벽이다. 새벽에 일어나려면, 저녁을 조금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제일이다. 먼저
일주일 정도 훈련을 하면, 밤 10시쯤에도 잠이 온다. 다시 일주일 정도 내용이 가볍고 즐거운 책
을 한 권 들고 잠자리에 누우면, 곧 잠에 빠질 수 있다.
하루에 6시간에서 7시간 정도 잘 자고 나면, 잠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없다. 새벽 4시나 5시 정
도부터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하고 싶은 것을 하라.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라. 하루가 길고 싱
싱해진다. 일찍 시작했으니 일찍 자리에 들 수 있다.
이 모델은 바로 농경 사회의 모델이다. 해가 떠오를 때를 온몸으로 느끼며 일어나서, 해자 지면
이른 저녁을 먹고, 먹은 것이 소화될 때쯤 자리에 눕는다. 동물의 야생적 생체 시계에 맞추어, 하
루의 일상을 재편하는 것이다.
공연히 바쁘게 보내지 마라. 인생은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쓸데없이 바쁜 사람은 본말을
전도하게 마련이고, 인생의 시간을 잡동사니들에 다 써버리게 되낟. 멍청하게 써버린 바쁜 시간이
모든 것을 망쳐놓는다.
돌이켜보라. 당신이 아직도 기쁨으로 기억하고 있는 순간이 무엇이며, 어떻게 보낸 순간인지 머
릿속에 그려보라. 인생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지 마라. 대신, 하
고 싶은 일도 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믿어라.
하고 싶은 일은 어느 날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 조금씩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평생을 하다보면, 그 일을 아주 잘하게 된다.
세상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존재한다. 중국 선종의 종사 중의 하나인 마조도
일은 ‘타고난 마음이 곧 부처’라고 했다. 개혁과 자기 혁명도 거창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
다. 그것은 마음에 드는 대로 생활과 일상을 바꾸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 자기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믿음은 이상하게도 증거를 댈 수 없는 곳에
서부터 생겨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기에 적합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자신은
알고 느낀다.
자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욕망을 믿어라. 여러 가지 마음을 유혹하는 욕망 중에서 오직 하
나의 욕망만을 키워라. 그리고 그 일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매일 마음을 다해 그 일에 빠
져들어라. 시간을 씀에 있어 절제를 배워라. 각고와 단련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숙련이 주는 ‘멋
’에 이르게 된다.
또 한 가지, 한 번 시작한 일을 계속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함으로써 우
리는 돌아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각기 자신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의 역사가라는 칼 베커의 말을 기억하
라. 혹은 ‘지리한 일상을 다큐멘터리 하고 싶었던’앤디 워홀(Andy Warhol)을 기억하라.
나는 내 생명의 저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몇세기 뒤의 세계가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지 그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가득한 햇살 아래 알프스가 살아 있듯이
나도 또한 살아 있다.
......산상의 한 줄기 햇빛 속에는 철학이 말하는 모든 진실보다 더 값진 것이 있다.......(그러나)정
상에서의 광경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또 그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
들 마음속에는 그곳을 떠나, 어딘가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고, 주변에 눈을 돌리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산행은)출발할 때와 똑같이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올 뿐이다.
-에밀 자벨
에밀 자벨은 훌륭한 산악인이었다. 그는 요절했지만, 그가 산에서 찾은 것은 정상의 정복이 아
니었다. 그는 산행의 순간순간을 즐겼다. 그 순간순간이 모여 하나의 산행이 되었고, 그것이 그의
인생이 되었다.
그에게 산행은 출발할 때와 똑같이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오는 것이었고, 그의 인생도 그랬
는지 모른다. 인생은 순간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인생은 무엇인가를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는 것이다.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기록할 수 있으면 좋다. 일기여도 좋고, 밑 줄 친 책의 한 구절이어도 좋
다. 짧은 단상이어도 좋고, 편지여도 좋다. 순간을 기록하면 하나의 개인적 역사가 된다.
기록을 통해 우리는 항상 깨어 있게 된다. 기록은 순간을 복원하여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그리
고 그것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
이제 이 책과 헤어질 때가 다 되었다. 한 번 더 반복해보자. 당신은 지금,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 ‘묘비명’을 하나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지능 목록’도 만들어 놓았다.
이 둘 - 욕망과 재능 - 을 결합시켜,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마음에 드는 길을 찾아보는
정신적 노력을 해보았다. 그리고 덤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의 목록도 가지게 되었고,
더불어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과 시간을 이미 짜놓았다.
자, 이제 당신의 아이들에게 ‘당신이 선택한 마음에 드는 길’에 대하여 편지를 써라. 아직 아
이가 없다면, 앞으로 생겨날 아이에게 써라. 당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바라며, 왜 살았는지를 써
라.
‘묘비명’이 하나의 객관화된 삶의 요약이라면, 아이들에게 쓰는 이 편지는 개인적이고, 주관
적인 진실이다.
아이들은 당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미래에 속한 세계이다. 그들에게 당신의
삶과 미래에 대한 꿈을 적어 보내라. 그러나 쑥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편지는 그 아이들에
게 배달되는 대신,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세상이 아직 이 정도의 타락으로 그친 것은 자기 아이들을 생각할 때, 언제나 마음이 아프고
또한 즐겁기 때문이다. 싱싱한 기쁨과 고통이 함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는 위대한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다. 그것은 아마 이성부의 시와 같
을 것이다.
......
어머니가 혼자만 아시던 슬픔,
그 무게며 빛깔이며 마음까지
이제 비로소
선연히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넘쳐서 흐르는 것을
가장 좋은 기쁨도
자기를 위해서는 쓰지 않으려는
따신 봄볕 한 오라기,
자기 몸에는 걸치지 않으려는
어머니 그 옛적 마음을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저도 또한 속 깊이
그 어머니를 감추고 있나니.
- 이성부,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해마다 편지의 내용을 새롭게 바꾸어 써야 한다. 매년 새해 첫날에 써도 좋고, 당신의 생일날이
어도 좋다. 아니면 당신 생애에 커다란 변화가 생겨난 날이어도 좋다. 가장 의미 있는 날을 골라
아이들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해마다 고쳐 써라. 그리고 당신만이 아는 가장 은밀한 곳에 놓아두
고, 일상의 거울로 삼아라.
나는 지난 여름, 지리산에서 한 달 간 포도 단식을 하고 돌아온 후 거의 6개월이 지난 1998년,
음력 설 전날 이 편지를 고쳐 썼다. 나는 내가 죽는 순간까지 이 편지를 고쳐 써갈 것이다.
아직 나조차도 이 편지의 마지막 내용이 어떻게 쓰여질지 알지 못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내
삶이 내 손에 의해 다시 쓰여질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해린, 해언에게
아빠가 너희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너희들이 바로 아빠가 이 세상에 남겨 놓은 젊음이며,
사랑이며, 또한 새로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너희에게 배달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편지는 오
히려 아빠의 마음으로 다시 배달될 것이다.
나는 이 편지를 해마다 고쳐 쓸 것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의 마지막 내용은 아직 나도 모르는
꿈과 희망으로 남아 있다.
나는 세상을 혼자 살지 않았다. 함께 살아온 벗들이 있다. 한 사람은 너무 진지하고 지극해서,
나 또한 그를 대할 때 정성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또 한 사람은 사물의 뒤에 숨어 있는 것들을 읽어내는 재치가 있었는데, 나는 그를 통하여 새
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법을 많이 배웠다.
또 한 사람은 자신의 믿음과 가치를 잃지 않고 세상을 살려고 애썼다. 그를 만나면 언제나 마
음이 편안하였다. 나를 깊이 이해해주었기 때문이다.
또 한 사람은 자신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나를 생각해주었다. 그리하여 내가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선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주었다. 이 사람들이 없
었다면, 내 삶은 참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일에 대하여 말하겠다. 아빠는 대학에서 혁명사를 전공하고 싶었다. 비록 대학에서 그 일을 계
속할 수는 없었지만, 이러한 관심은 회사에 다니면서 조직과 개인의 변화와 개혁이라는 전문 분
야를 다룰 수 있게 했다.
이 일에 종사해온 지 12년이 지난 다음에야 모든 변화의 시작은 ‘나로부터’출발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다. 아빠가 지리산에서 한 달을 보낸 것은, 바로 미래를 현재의 연장 선상에
서 끊어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곳에서 아빠는 세 가지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의
후반기를 시작하는 기조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 첫 번째는 하루에 적어도 두 신간은 나를 위해 쓰겠다는 결심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일관되게 그 두 시간을 쓰고 싶었
다. 매일 연습하면 매일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느끼는 연주자처럼.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새벽은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줄을 쳐가며
읽고, 생각하고, 정리했다. 그리고 가끔 썼다. 시간은 무척 즐거웠다.
두 번째는, 네 엄마와 더 많은 교감을 가지는 것이었다. 사람은 모두 결점을 가지고 있다. 가족
사이에도 역시 충돌과 오해와 생각 없이 뱉는 잔인한 말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마치, 너희들
은 나이가 들면서 자유로워지고 싶어하고, 엄마와 아빠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고 말할 때 생겨나는 갈등 같은 것들이다.
엄마와 술을 한 잔씩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제일 좋은 것은 주일마다 함께 성당에
나가서 미사를 보며, 서로 쳐다보고 진심으로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빠는 당분
간 교리를 하거나, 영세를 받을 생각은 없다. 아직 하느님께 대한 서약을 지킬 자신이 없어서이
다.
그러나 언젠가, 스스로에 대한 애착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쓸 준비가 되면, 그때 나는
카톨릭 신자가 될 것이다. 아직은 하느님께서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나를
위해 쓰기를 바라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절실한 욕망’이라는 신의 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꿈, 희망, 열망, 소망이라는 말보다 욕망이라는, 다소 육체적이고 불순해 보이는 말을 더 좋아한
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나는 정제되지 않은 어떤 야생적인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지금 저지르도록 하는 실천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다. 너무나 절실하여, 평생을 따라다니는 그리움 같은 것이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결국 그 일로 되돌아오게 하는, 바로 그런 그리움.
세 번째는, 새로움을 일상 속으로 언제나 끌어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놓는 것이다. 인생은
결국 시간과의 밀월 같은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보다 회의적이고 보수적이 되기 쉽
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함께 걸어오던 세상이 잡았던 손을 놓고, 저 혼자 빨리 걸어가버
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생에는 많은 소도구들이 있다. 여행, 붉은 포도주, 마담이 괜찮은 카페, 가끔 적어보는 일기,
아내의 생일, 노란색 작은 국화, 영화, 인사동 골목 속의 맛있는 음식점, 미술관 창문 속으로 지는
햇빛, 가을 물빛, 파도가 만드는 소리, 우연히 나눈 친근한 눈빛, 땀과 바람...... 모두 두고 떠나기
싫은 것들이다. 여기 세상에 남아 있음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바람이 감미로운 늦은 봄날, 북한산 노적봉에 올라보
라. 꽃 속에, 햇빛 속에, 하늘 속에, 옷 모두 벗어두고 서 있어보라. 단지 그곳에 있음으로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일한 다음의 달콤한 휴식 같은 것이다. 마음의 빗장을 모두 풀어놓는 휴식은
그 자체로 행복이지만, 이것 없이는 일 또한 할 수 없다. 마음이 닫혀 있을 때, 일상은 고통스럽
고 지루해지는 것이다.
너희는 아빠의 자랑이다. 너희 둘만큼 세상은 좋아질 것이다. 너희 둘 때문에 이 세상이 좀더
숨쉬기 좋은 곳이 되었다고 믿는, 또 좋은 사람들을 가질 때 너희는 성공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말아라. 자기 자신이 되려고 힘써라. 깊은 곳, 그리움으로 있는 욕
망에 따라 오직 자기 자신보다 좀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라. 힘껏 배워서 늘
고운 사람이 되도록 하여라.
1998년 1월 27일, 음력 설 전날
사랑하는 아빠가
나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며, 스스로에게 바라는 것과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을 함게 정리할
수 있었다. 편지는 감정을 담을 수 있다. 마음을 실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살아 움직인다.
마음을 토해내기 때문에 속에 깊이 숨어 있는 그림자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겉과 안의 화해를 위해, 그리하여 자신이 허용한 욕망이 매일 조금씩 자라나고 이루어지는 것
을 도와주기 위해, 스스로에게 남기는 기록들이 필요하다.
이제 당신은 모비명과, 지능 목록과,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목록과, 아이들에게 쓴 계속 고쳐
써야 할 편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매일 22시간씩 주어지는 일상을 살아라. 아버지로서, 아내로서, 혹은 딸이나 아들로서, 그
리고 직장인으로서, 누군가의 친구로서, 그렇게 살아라.
그리고 매일 두 시간은 오직 자기만을 위하여,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하여 사용하라. 이 두 시간
은 어느 무엇을 위해서도 양보하지 마라. 그것을 파는 날, 그대는 노예가 된다.
지나간 순간들이 자신이 쓴 묘비명에 적합한 사람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비교해보아라. 지금 하
고 있는 일이 ‘내가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인지 물어보아라. 그리고 아직도 그 일을 하고 있지
못하다면, 하루에 두 시간씩 준비하고 있는 시간들이 잘 쓰여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행복한 일들의 목록에 들어 있는 계획들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 작은 여유와 사려 깊은
순간들이 당신의 삶을 부추겨주었는가? 가끔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열어 읽어보라. 때때로 내가
아이들의 삶에 너무 많이 개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상대적으로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
었던 ‘자기 자신’이 되는 일에 게으른 것이 아닌지 자문해 보라.
나는 이 책을 쓰는 시간들을 즐겼다. 나 자신과 나눈 시간들이 - 하루에 두세 시간들의 모임 -
이 책을 만들어내었다.
나는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다. 이 책을 다시 읽어보았을 때, 때때로 지나치게 감정이 많이 묻어
나오고, 어느 때는 이에 대한 반성으로 인해 너무 건조해진 것 같아, 전체적으로 일관된 톤을 유
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감정의 기복이 있는 것이 산다는 것이고 보면, 책 역시 쓰는 시간들의 감정적 기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저 내가 즐긴 시간들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았을 뿐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항상 약간의 흥분을 가지고 마음에 드는 길을 가고 싶다.
행복한 사람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이며, 1953년에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70세의 나이로 발표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기도를 소개하며, 후기를 대신한다.
나는 당신의 손에 쥐어진 활입니다.
주님,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는 마옵소서.
나는 부러질까 두렵습니다.
나를 힘껏 당기소서, 주님.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첫댓글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잠에서 덜 깨어나 있는 것 같다.
격변의 시기에, 그리하여 과거의 패러다임이 깨어지고 있는 혼동의 시기에 과거의 산물 위에
다른 더 나은 것을 쌓아올려가는 누적주의는 잘못을 더해가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쓰레기를 치
우기 위해 쓰레기통을 대량으로 사들여, 집을 더욱 비좁고 더럽게 만드는 것과 같다.
개혁이 끝난 다음, 새로운 기초가 마련된 다음, 우리는 다시 이 점진주의의 힘을 빌려 더욱 발
전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을 벗어나야 하는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점진주의에
기대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이 지금과 다른 새로운 조직과 태도, 그리고 새로운 관행과 단순화된
프로세스 속에서 모든 것이 진행되는, 새로운 기업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