菩薩品-3
6. 不二가 是菩提니 離意法故며
둘 아님이, 그러니까 상하가 아니고, 대소가 아니고, 노소가 아니고,
유무가 아니야.
유무를 떠났어요.
이를 떠났어. 다를 이(異)자
그 다음에 이를 떠났어. 두이(二)자
異도 아니요, 二도 아니요.
그래서 意法故라.
생각과 법을 떠나다.
법이라는 것, 법공.
아공. 법공 그러지요.
그것 많이 배웠잖아요. 우리
아공 법공을 떠난 것이어요.
너다, 나다, 하는 것에 다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는 안 그렇습니다.
현실세계에서는 분명히 너도 있고 나도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이 또 공부를 하니까
아공, 법공,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법문 잘 듣고 와서
길을 가다가 가게 앞에 사과가 있어
사과가 맛있게 생겼어.
하나 호주머니에 넣어
당신 왜 사과 집어가.
네가 법을 몰라서 그렇지 내가 오늘 법을 배우니까 참 좋더라.
네 것이 내거고, 내거 내거고
너도 아니고 내도 아닌데,
뭐 그것 가지고 그러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理事가 분명해야 돼.
우리는 지금, 실제 또는 不二세상 이 진리를 배우지만
그것은 진리 원래의 모습이고 현실세계에
요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느냐.
연기법으로 이루어졌다. 연기
인과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받고, 사람이 죽고 살고 하는 생활의 모습이고,
연기라고 하는 것은, 요것이 연기법입니다.
자, 그러면 인과법으로 이것이 만들어졌습니까?
인과법으로 설명이 안 되잖아요.
이것은 연기라고 그래요.
인연연(緣)자, 일어날기(起)자, 인연에 해서 인연을 해서 인연으로 일어난 것이어요.
자, 이것을 하나 묻겠어.
사람이 마차를 끌고 산에 가서 점토 흙을 파왔어.
점토 흙만 파오는데, 사람도 필요하지, 마차도 필요하지,
소도 필요하지, 실어다가 놓기만 하면 그릇되느냐?
아니지요.
물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막 밟고 해 가지고, 걸러 가지고, 흙을 만들어
물기를 말리려 하니까 뭐가 필요해요.
햇빛이 필요하지요.
그것을 다 인력을 필요로 해 가지고 그릇을 만들어
그러면 그릇 다 되었습니까?
그 다음에 불이 필요해요.
불로 그릇을 만들었어.
그제야 그릇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이것 하나에 만들어지는 연기는
바로, 사람과 사람의 노동력과 또 마차와 이런 에너지와
또 자연의 흙과 자연의 물과 불과 이런 모든 것이 합쳐져서
비로소 이러한 그릇이 하나 만들어진다.
이것이 연기 세상이어요.
그러니까 어떤 새로운 하나의 물질을 얻어서
사실은 이것 도자기 굽는 사람, 이것을 백만 개를 만들었어요.
그 사람 이것 필요해서 백만 개를 만들었습니까?
뭐가 필요합니까?
돈,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공부 좀 더 하면 되요.
진짜 그 사람이 돈이 억 만 달러가 있어.
돈이 필요한 것입니까?
뭐가 필요해요.
그러니까 공부 조금 더 하면 됩니다.
행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음의 행복도 되겠지만 우리 가정의 행복,
내 무엇인가 이것을 통해서, 우리 가정이 밥도 먹어야 되고
옷도 사야 되고, 생활해서 학교도 가야되고 등등
이런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것이 제일..
물건을 가지고 다닐 수 없잖아요.
그래서 재화, 돈이 생긴 것이어요. 돈
돈 종이 조각 하루아침에 아무 쓸모없어요.
북한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보통 난리 난 것이 아니어요.
우리 상상 초월할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괜히 돈 만들어 가지고 남의 돈을
정부에서 뺏으려고 그랬다가 금방 쌀값이 어저께 50원 했는데
오늘 100원 한답니다.
정부에서 17원으로 고가를 했는데
벌써 100원 되어 버렸어요.
한 열흘도안에
앞으로 열흘 뒤에는 1000원 됩니다.
다시 2~3개월 가면 옛날 쌀 1킬로그램 1700원 했던 것이
그대로 가게 된다. 이 말입니다.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
낭비하고 국민들 불신하고 일 안 됩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하면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쓸데없는 짓 자기 권력 찾기 위해서
연기를 몰라서 그래요. 연기법을
그것을 잘 알아야 되요.
오늘 이것 굉장히 중요한 공부하는 것입니다.
等이 是菩提니 等虛空故며
等이 뭘까요. 等이
등, 등이 뭐이어요.
제가 아주 많이 써 먹는 이야기인데
그렇지요. 평등이지요.
평등이 깨달음이다.
그러면 왜 평등이 깨달음이냐
평등하다는 것을 제가 언젠가 떡 깨달았어.
아, 세상은 평등하다.
어떤 사람은 가만히 놀고 있는데 밥 먹어
어떤 사람은 죽어라고 일해도 밥 먹기 힘들어
그런데 어떻게 평등이냐
그것을 알면 이젠 도인이 되요. 그것을 알면
어떤 사람은 똑 같이 회사 다녔는데
연봉 백억을 벌어, 백억을 받아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일 년에 연봉해봐야 이천만원도 안 돼
신경질 납니까? 안 납니까?
그런데 이천만원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이 그 회사에 이억을 벌어줬어요.
그래서 자기 이천만원 가져오고, 유지비 이천만원 들고,
이윤 이천만원 내고, 이천만원 회사 연구비를 썼어.
일억 이천만원 받는 사람이 일억을 벌어가지고
백억을 받은 사원은 그 사람이 머리를 써서 약 삼천 억을 벌었어요.
삼천 억을 벌었으니까,
이천구백억 이 사회에 돌아 간 거야.
그러니 어떻게 평등하지 않아요.
백억을 받을만해서 받는 것이다. 그 사원은
그래서 공평한 것이다.
그런데 백억을 받고, 이 백억을 받고 해가지고
돈을 막 빌게이츠가 돈 엄청나게 많이 갖고 있어요. 지금도
우리나라 돈, 한 오십조 원 가지고 있어.
오십오 조원인가,
이 사람은 은행에 넣어 놓아도, 주식을 사놓아도,
계속 늘어나는 것이어요.
돈이 많으니까 그게 일 년만 지나도 이자만 해도 몇 조원 늘잖아요.
참 그런 요술방망이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나누어 주는데
그것 잘 못 나누워 주면 난리 나요.
그래서 정했어.
큰 복지 회사를 삼백오십삼십오조원, 삼백오십조원인가
굴리는 회사를 복지 회사를 만들었어요. 법인체
그래 가지고 공평하게 이것을 나누워야겠는데
미국에다 미국 사람이고 미국에서 혜택을 받았으니까
미국에서 1/2을 쓴다. 당연히
미국 국익을 위해서
나머지는 아시아에 얼마, 유럽에 얼마, 아프리카에 얼마,
못 사는 나라에 얼마, 얼마씩 해서 쓴다.
그냥 돈으로 나누워 주는 것이 아니어요.
모든 자선사업기금으로 합니다.
유엔아동기구 뭐 뭐 해가지고 전부
얼마나 좋은 일 해요.
그것이 평등이다.
돈 가지고 있으면 뭐해요. 그것
써야 되는 것인데, 그것 쓰는 일도 보통 쉬운 일이 아니어요.
어저께 이야기 했잖아요.
워랜버핏이 5조원이라는 돈을 가지고 자기 회사 법인체 안 차리고
빌게이츠를 줬어요.
기자가 가서 물으니까
아, 왜 그 뭐합니까. 하니까
하하. 나는 늙었고, 그 사람 젊은데
그 친구는 내 친구인데, 너무 나보다 잘해.
잘하는데 맡겨야 돼. 아무 조건 없어, 그냥 기부 한 것이어요.
그것이 등(等)입니다.
평등이니.
是菩提니 等虛空故며
허공과 같은 까닭이다.
허공이 무슨 사심이 있습니까.
텅 비어 있는 것이어요.
아무 사심 없다. 텅 비어있는 것이지
無爲가 是菩提니 無生住滅故며
無爲,
함이 없는 것이, 이것 설명하자면 긴데
전에 설명했으니까, 설명 다시 않겠습니다.
함 없는 것이요.
菩提
깨달음이
無生住滅故며
이게 반야심경, 무생멸이주입니다.
생하거나, 멸하거나, 달라지거나, 생주이멸, 생주이멸 알지요?
생명은 생주이멸하고
생명이 우리 이런 생명체가 아닌 지구나 이런 것은
성주괴공 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생주이멸 고며
知가 是菩提니
앎이 보리다.
그러면 앎이 어떻게 보리냐
아무것도 모르면 어떻게 보리가 깨달아 집니까.
저 나무꾼 배우지도 안 해.
부처님 말씀 들어보지도 안했어
낫 놓고 기억자도 몰라
어떤 사람은 그러잖아요.
아, 육조대사가 그냥 지나가다가 한 말씀 딱 듣고서
딱 깨달았다.
너무 좋지요. 너무 쉬워.
공부 할 필요 없어.
그럼 약간 그것은 좀 그 뭐라, 멍한 사람이 그 소리 듣고 좋아하는 것이어요.
육조대사는 수 없는 과거 전생부터 벌써 닦았어.
닦았는데, 공부할 기회가 안 주워 진 것이어요.
가난해서
저도 가난해 가지고 공부 할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
나이 스무 살이 되도록 저도 글 하나 못 배웠으니까
육조대사 할 만하지요.
그러니까, 공부할 기회가 딱 주어지면, 딱 싹이 터는 거야.
왜 줄탁동기라고 그러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知가 是菩提니
了衆生心行故며
중생의 행을 요달해 아는 까닭이다.
중생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아
예를 들어서 부처님 되가지고
장산이가 내일 뭐할지, 누가 뭐 할지
일일이 다 따지고 하면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이 다 따지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겠어요? 안 아프겠어요?
그것 알 필요 없어요.
난 다 알아.
대한민국 사람 내일 아침 그것도 9시까지는 그의 90% 다 일어난다.
압니까, 모릅니까. 내가
너무 잘 알잖아.
내일 점심에 대한민국 사람 그의 99.9% 밥 먹는다. 알아
야, 불교 이렇게 좋은 것이어요.
여러분이니까 알지, 저 쪽 동네 거기는 모릅니다.
그러니까 여기 다녀야 되요.
야, 정말. 정말 멋있는 거야.
이 부처님 불법 만큼 멋있는 것 없어요.
여덟 번째
요것 내가 단락을 다 만들어 놓았거든
여러분 책에는 쭉~ 써져 가지고 막 정신없어요.
정신없이 써져 있어가지고 이것 내가
어, 13번까지 쭉~ 만들어 놓았어요.
8번
不會가 是菩提니 諸入不會故며
‘會’ 라고 하는 것이 뭐냐
스님들이 가끔 법문할 때
會麽. 그러지요?
네가 계합했느냐
내 말에 계합했느냐
참 묘한 말이어요. 참 좋은 말이어요.
이것을 영어로 참 표현하기 힘들 것이어요. 이것은
우리말에 있어서 좋은 것도 있어요. 한자하고
계합하다는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이젠 스님이 법문하다가 주장자를 딱 치고,
‘회마’
알겠느냐, 모르겠느냐.
옛날에 제가 하루는 동명불원에 있는데
제가 아는 보살이 젊은 보살이 꼬마 다섯 살 먹은 꼬마 아이를 대리고 왔어
스님한테 인사시킨다고
그런데 그 놈이 스님 앞에 딱 앉자 말자
그냥 막 이 무슨 다리입니까
걸상다리인가, 책상다리인가, 하여간
스님처럼 딱 꼬고 앉아요.
허리 짝 펴고
그래서 저 놈 봐라
네 이름이 뭐냐?
회마. 하하하
큰 스님 알겠습니다. 하니까
하하하 하고 웃어요.
그래서 보살한테 물었어요.
예, 이것 어디서 배웠어요?
범어사 다니는 신도거든
범어사 다니는데요.
조실 스님이 주장자 들고 가끔 땅. 땅 치고서
이것 이렇게 하잖아요. 스님들이
그것을 보고 와서 만날
집에 와서 허리 딱 펴고 앉아 가지고 엄마 앞에서
회마하면서 하하하.
그러다가 이제는 보살님 차 마십시다. (하하하)
전생에 무슨 스님이었는지, 뭐였는지
아주 눈썹하나 까딱도 않고 그렇게 해요.
어린애 짓을 해, 그렇게 하고 한참 차 마시고
사탕주고 그때부터 노느라고 정신없어요.
아주 뛰어 다니고 정신이 없어.
그래 이제 불러 가지고, 내가 어떻게 하는가 싶어가지고
‘큰 스님 차 마십시다.’ 하면 놀다가도 쫓아 와가지고
다 집어 내버리고, 장남감이고 뭐고 다 집어 내 버리고
앉아서 딱 다리개고 하하하
거기에 총무스님인가 있는 곳에 다니는데
그 스님이 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한다는 거야.
심심하면 이 녀석이 엄마한테 와 가지고
‘보살님 차 마십시다.
그게 이제 회마인데
會麽는 계합하는 것이어요.
내 말을 네가 알아들었느냐?
계합할 수 있느냐? 이런 말이지요.
그러니까
會, 不會가 是菩提니
會 할 것이 없어.
계합할 것도 없는 것
햐, 귀가 막히잖아요.
우리는 지금까지 계합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계합할 것 까지도 없어.
어, 옛날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그 김용욱 박사가 법정스님 찾아가 뵌 이야기를
무슨 글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썼어요.
그런데 한번은 불교도 배우고 해가지고 참선도 하고 폼을 잡고
법정스님한테 그 산을 찾아 갔데요.
간다고 이젠 연락 취해가지고.. 떡 찾아가서
법정스님한테 갔으니까 거량을 한번 해야 될 것 아니어요.
그래서 이 자기가 그랬다는 것이어요.
법이 높고 낮음이 없는데, 스님 법정이니 법의 정수리 아닙니까.
스님 법은 어느 정수리에 있습니까?
선사처럼 물은 것이야.
대단한 사람 아니어요. 김용옥도
그러니까 법정스님이 웃으면서
선생, 아직도 그런데 취미가 있소 (하하하)
자기는 그 한마디 듣고 졸도 할 뻔했데요.
와~ 다르구나.
역시 스님은 다르구나.
나는 그 한마디 집에서부터 연구해가지고 가서
한번 골탕 먹일 것이라고 했는데
스님이 웃으면서 ‘선생 아직도 그런데 취미가 있소’
‘관심이 많소. 그러더래요.
그러니까 아무데 가서나 주장자 흔들면 안 돼요.
흔들 자리에 가서 흔들어야지
자기 말로는 정신이 하나도 없더래요. 졸도 할 뻔 했데요.
앞이 캄캄하고, 뒤도 캄캄하고,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
한마디 하면 무슨 말을 하려고 생각해 놓았는데
아직도 당신 ‘선생 아직도 관심 그렇게 관심이 많소.’
그러니까 계합할 까닭도 없어
그 자리가 諸入不會故며
불회의 연고이며
계합할 까닭이 없는 연고 이며
不合이 是菩提니 離煩惱習故며
깨달을 것 없으니 번뇌와 습고를 여이었어.
깨달을 것도 없는데
다 깨졌는데, 끝나 버렸는데
없애 버려야 될 습기, 업에 버려야 될 번뇌가 어디 있어요.
어떤 사람이 서울을 갈려고 KTX를 타고
햐~ 막 갈려고 하니까 KTX 가 7만2천원
아이고, 돈이 부족해.
그래서 엄마! 돈 줘, 아빠! 돈 줘, 해가지고
7만 2천원 만들어 가지고 KTX탔어.
햐, 오면서
서울 가면 어떨까?
서울역이 어떻게 생겼는가?
서울역 안 와봤으니까
서울역에 딱 와서 서울역을 봤어
그때 서울역 어떻게 생겼는가. 고민하겠어요?
고민할 필요 없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번뇌를 여의고,
습기를 여의는 것은
깨달은 자리에 딱 가면
더 이상 그기에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어요.
다한 까닭이다.
無處가 是菩提니 無形色故며
‘처’가 없다. 처소
처소랄 것도 없음이 깨달음이다.
처소가 없다.
그러니까
아, 난 해인사 가서 살아야 돼.
통도사 가서 살아야 돼.
다음 차례는 내가 칠불사에 가서 살까
법주사 가서 살까
야, 인도 좀 갔다 와야 되는데
중국도 갔다 와야 되는데
미얀마도 갔다 와야 되는데
작은집에도 갔다 와야 되는데, 큰집에도 갔다 와야 되는데
갔다 올 곳이 많으면 그 사람은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아직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처’가 없어
갈 곳이 없어
갈 곳만 없는 것이 아니라 행할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고
다 끊어진 자리야.
처가 없는 까닭으로
이것이 보리다.
是菩提여
왜 형색이 없기 때문에
찾아가야할 형색도 없어요.
假名이 是菩提니 名字空故며
가명, 가명이 뭡니까?
그런데 여기서 가명을 우리 하도 많이 쓰가 지고
한자로 가명하니까
가명이 장산인데 장산이라고 하지 않고
저기 가서 산장이라고 이름을 지었어.
누구한테 이야기 하면 그것이 가명입니다.
요사이 그 가명이 아니야.
헛된 이름. 가명
내 이름은 다 헛된 거야.
어떤 사람이 그래요.
학교 대학을 졸업해서 선생님이 되었어.
중고등학교 가서, 중학교 가서 선생님을 해
애들이 그 사람을 뭐라고 그럽니까?
선생님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원래 그 사람 이름은 홍길동이야
홍길동인데, 홍길동이라고 안 부르고 애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
그러니까 자기는 뭡니까? 선생님이지요.
그 선생님이라는 이름도 가명이다. 헛된 이름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선생님 않고 사장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그럽니까? 그 사람보고
사장이라고 그러지요.
그것 가명입니다.
헛된 이름이지요.
사람들이 그럽니다.
아, 큰 스님 그것 가명입니다.
헛된 이름이어요.
그냥 장산스님하면 되요.
종정스님, 장산스님, 괜히 쓸데없이 큰스님.
큰 자 붙여가지고 골치 아프게 만들어.
그렇잖아요?
부르기 골치 아프게
신도님들이 걱정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절은 조그만 절인데
주지스님 보고 큰 스님이라 불러야 될지
작은 스님이라 불러야 될지
우리 부전 스님은 주지가 아니니까 큰스님이라고 불러야 될지
연세는 많아, 안 불러야 될지
그렇잖아요?
옛날에는 우리가 처음 출가 했을 때
아무나 한테 큰스님 안했습니다.
종정스님, 해인사 주지 스님, 조실 스님,
이런 몇몇 스님한테만 큰스님이라 불렀는데
요즘은 보편화 되어가지고
다 큰스님이야. 이젠
큰스님 부르면 내가 머릿속에 뭐가 연상되는가 하면
길가다가 차 타다가보면 기사님 식당이 있지요?
원래는 운전수입니다.
기사 식당하면 됐지,
아부하느라고 기사님 식당.
나는 그런 집에 가서 내가 기사라면 밥 안 먹을 것 같아요.
자신 있게 여기는 기사 식당
먹으려면 먹고 말라면 말고 우리 것이 맛있어.
이렇게 나와야 돼
스님들이 자신 있게 앞으로 신문 내야 돼.
절대 종정스님 이 외에는 큰스님이라 이름 붙이지마라.
그렇게 하면 부르기 좋아, 스님, 아무개 스님, 아무개스님
하면 편해.
고민할 필요도 없고.
제 말이 맞아요. (예)
그렇게 하는 것이어요. 원래
사실은 스님 보다 대사가 더 좋은데
원효대사, 의상대사, 육조대사, 혜능대사, 그렇잖아요.
중국에 가니까 중국스님들이 명함을 주는데
아무개 대사라고 썼더라고요.
야, 바로 이거야.
우리도 옛날 대사라고 썼는데
일본에 가니까, 일본 스님들 대사라고 써 붙였어요.
원래 다 동양에서는 한자로 대사라고 써 붙였는데
아무개 대사인데, 이것 어떻게 해가지고 우리말 쓴다고 ‘스님’ 해놓으니까
스님, 어떤 사람이
동아일보가 조선일보인가
무슨 칼럼, 조그만 칼럼 있는데, 읽어 보니까
천주교인이야, 절에 가는데 스님을 만났어.
제일 고민한 것이 스님님 해야 되는 것인지
스님하고 말 것인지 그 고민했다.
또 때로는 아무개 비구만 이렇게 부르고 싶어도
이것은 그 스님 부르는 그것이 스님이니
남자 붙이기 싫은데
그래서 그래도 나는 싫어도 할 수 없이 그 집단이 그 사람들이
님 자를 붙여 놓았으니까 나는 님 자를 부르고 왔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억울했다.
그 소리 들으니까, 아, 일리 있다.
아, 기분 나쁘잖아요.
그냥 장산이, 불러도 상관없어요.
기분이 좋으면, 장산스님 해도 상관이 없고
장산 대사 부르면 장산대사 하다가 기분이 좋으면 장산대사님하고
기분이 좀 뭐하면 장산대사 안 부르면 된단 말이어요.
사회에는 그렇게 이름이 그렇게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이름 짓는 것도 좀 그래요.
열 번째
如化가 是菩提니
여하, 여여히 됨
그렇게 됨이 是菩提 다.
깨달음이다.
강제로 하지 않는 것
무엇이든지 강제로 하면 병통이 납니다.
여여하게 물 흐르듯이 봄이 되어서 농사를 져.
농부가 말이지요.
봄 되어서 농사를 짓는데
겨울에 농사를 짓고 싶어.
겨울에 농사를 짓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되요?
하우스를 지어야지요.
하우스 짓자니까
하우스 짓자면, 유리나 비누리가 필요하잖아요.
유리 공장을 세워야 돼,
비닐 고장을 세워야 돼,
하우스가 있으면 되느냐
그 안이 떳떳해야 되니까
난로를 피워야 되요.
이게 배보다 배꼽이 커지지요.
그런데 이 세상은 그렇게 안돌아가지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의해서
그것을 보전하고 남으니까 하는 일도 있단 말이지요.
그런데 자연적인 이치는
봄이 와서 꽃도 피고, 열매도 열고
산에 가서 산에 설악산. 뭐 무슨, 요뒤 무슨 삼각산만 가더라도
농부가 그기에 농약 치는 것 봤어요?
풀 나무 다 썩고 말라 비틀어진다고, 그런 것 없잖아요?
마른다고, 병이 안나,
참 신기해 나는
야, 저리 사는 풀이 싱싱하고 잘만 자라.
벌레도 없어.
그런데 유독 벼다 벌레 생기고, 병나고 그래.
왜냐하면 그럴 이유가 다 거기에 생겼어요.
인위적으로 했기 때문에
자연적인 것은 아주 건강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위적으로 뭘 자꾸 만들면 병나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뻐지려고
열 번 깎았어.
그러니까, 50되고, 60되고, 70되고
얼굴이 막 푸르딩딩 해가지고, 형편없어 가지고
나중에 여기서 병나고 저기서 병나고 다 났어.
빈상이 복상으로 바뀌어 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어요.
우리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마는
이런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말씀드릴게요.
이것은 실화인데
제가 어렸을 때
진짜 사주관상 잘 보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분이 나보고 그러는 거야
나 조그만 꼬마인데
초등학교 다니는데 와 가지고 이렇게 보드니
너는 중 되겠다. 예사로 들었는데
나중에 스님 되고 보니까, 맞춘 거야.
귀가 막히게 맞추었잖아요. 관상만 보고
그런데 그 분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다 들으니까
사람의 얼굴상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바뀐다.
그래서 오늘부터 남을 돌아가면서 열 명씩 계속
욕을 해보세요? 저주하고,
한 달만 지나가면 자기 얼굴을 보면
찌그려져가지고 보지 못할 거야.
맞을 것 같아요?
오늘부터 열 명씩 칭찬해
야, 회장님 참 너무 예쁘다.
앞에 학생장이 약간 통통하지만 너무 예쁘다.
아, 우리 부회장, 거사님 참 외모 잘났다. 멋있다.
다 칭찬해,
그러고 자기 얼굴 한 달 후에 보세요?
환해져 버려요.
왜냐하면 이렇게 해서 빈상이 복상으로 바뀌는 것이어요.
상이 바뀌어.
한 달 사이에 바뀝니다.
좋은 이야기도 있잖아요.
어떤 사람이 시어머니 죽기를 바라는 거야.
쥐약을 샀는데, 이것 먹으면 고통 받아 가지고
데굴데굴 뒹굴고 난리나면 안되니까
살살 죽는 약 없을까. 소리 없이..
그래가지고 무슨 약을 사가지고 밥에다가 조금씩 조금씩 넣어서
이젠 막 죽어야 이젠 뭐 전대도 내가 찾고, 아랫목도 내가 차지하니까
그 계획을 딱 세우고
만날 싸우고 일 년 내내 싸우고
시어머니는 나가서 욕하고,
며느리는 들어가서 욕하고, 아들만 죽는 것이야.
그런데 하루는 아들이 어디 가서 무슨 이야기 들었어.
그래서 부인한테 그랬어. 야, 우리 어머니 한 달 후면 돌아가신다더라.
돌아가시기 전에 네가 잘했다는 소리 한번 듣고 죽어야지
며느리가 동네사람 욕먹어서 되겠느냐.
이치가 맞잖아요?
이양이면 시어머니한테 잘했다는 소리 들어야 듣고 돌아가시면 내가 좋거든
그래서 어떠하면 좋을까요?
야, 우리 어머니 좋아하는 굴비 좀 사와.
우리 어머니 갈비도 좋아하시잖아.
김도 좋아하시고,
나물도 좋아하고,
막 시장에 가서 굴비도 사오고 갈비도 사오고
김도 사오고 잘 차려서 대접하는 거야.
그러니까 하루는 시어머니가 이것이 말이야 안하던 짓을 하네.
미쳤나
하루 이틀 받아먹고
아이고, 우리 어머니 어깨 아프지요, 주물러 주고
다리 아프지요 주물러 주고
보약도 대려주고 그런다 말이야.
그런데 시어머니가 한 열흘 지나니까 얼마나 좋아요?
아, 예가 바꿔지긴 바뀌어졌구나.
동네방네 다니면서 우리 며느리 같이 착한 며느리 있으면 나와 봐라.
칭찬하고 다니는 거야
딱 한 달이 되었어.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셔야 되잖아요.
건강해졌단 말이야
남편이 갔어요.
부인한테 여보 우리 어머니 한 달 살았으니까
이젠 어머니 보내야지.
여보, 무슨 소리야,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우리 어머니가 어떤 어머니인데
왜 그렇습니까?
어머니가 동네방네 칭찬하고 다니니까
칭찬 듣기가 좋은 것이어요.
사람은 칭찬을 들으면 좋습니다.
스님도 칭찬 들으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 대문 나가면서 장산스님 칭찬하고
지성스님 칭찬하고
막 동네방네 칭찬을 해야 돼.
그래야 내가 신이나 가지고 강의도 신나게 하고 법문도 신나게 하지
에이, 강의 하지 말자. 이러면 안 될 것 아니어요?
그래서 칭찬하면 복이 생깁니다.
복상으로 변해요.
참 묘한 이치이어요.
이게 평등입니다.
아이, 칭찬했으니까 복이 생겨야 될 것 아니어요.
이치가
無亂이 是菩提니 常自靜故며
亂하지 아니하며
어지럽지 않는 것이 보리다.
막 어지러 가지고 막 그냥 그 잡란해 가지고
다시 말해서 잡란하기 위해서
이것 했다 저것 했다 막 그러면 안 돼.
떡 하니 그래야지
좌지여산이라
떡 앉아 있는 것이 산과 같다.
그것이 잡난스럽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보리다. 이 말이지요.
왜냐하면 적정은 스스로 적정한 까닭이다.
십일
善寂이 是菩提니 性淸淨故며
善寂, 아주 조용히 적정한 것, 선정
착할 선(善)자인데 여기서는 좋다는 뜻입니다.
조용히 적정한 것
잘 적정한 것
고요 적정한 것이 是菩提니
이것은 그 성품이 청정한 까닭이다.
無取가 是菩提니
취함이 없는 것이
무언가 가지려하고 욕심을 낸 단 말이지요
이런 것 없는 것이 보리니
離攀緣故며
반연을 떠난 것
여기에 저기에 막 인연지어는 것에 떠나는 것이어요.
이것 인연 짓고 저것 인연 짓고
저 인연 따라가고 이 인연 따라가고
하면 안 된단 말이지요.
십이
無異가 是菩提니 諸法等故며
‘무이’ 다름없는 것이 다르지 않는 것이 깨달음이니
이것은 모든 제법이 등등한 까닭
모든 법이 다 평등한 까닭이며
無比가 是菩提니
비교함이 없다.
비교할 바가 없으니
왜 비교할 바가 없습니까.
평등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고 여기잖아요.
뭐가 아, 이것 평등하지 않아
절대 그런 생각 가지면 안 돼요.
다 평등한 것입니다.
절대 아주 절대평등이야, 다 평등한 것이지,
우리 눈에는 평등하지 않게 보이지만
평등한 것입니다.
是菩提니 無可喩故며
비교함이 없으니
비유할 바가 없는 까닭이다
비교할 것도 없고 비유할 바가 없어. 어디에
비유해
예를 들어서 자, 시간이 얼마나 긴아
시간을 어디에다가 비교해보자, 비유해보자.
어떻게 비교가 됩니까.
그러면 하늘이 얼마나 큰 가 비교하자.
하늘 비교할 수 있어요?
없잖아요.
자 그러면 바닷물이 물방울이 몇 방울일까 비교 한번 세어보자.
될까요? 안되겠지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내 몸에 그 바이러스가 박테리안가 얼마인가 알아보자
몇 마리인가
다 알아볼 필요가 없는 것이어요.
다 알아볼 필요가 없이 다 평등해 평등해.
微妙가 是菩提니 諸法을 難知故니라
미묘함이 깨달음이다.
참 세상을 보면 미묘한 것이야.
아, 어떤 집에 딸을 다섯 낳았는데
어떤 집은 아들을 다섯 낳아
참 미묘해
남산에 가니까 이 떡갈나무가 많더니
북산에 가니까 소나무가 많아
참 세상은 평등해
이와 같이
제법을,
모든 법을 알기 어려운 까닭이니라.
世尊이시여 維摩詰이 說是法時에
이러한 법을 할 때에
二百天子가 得無生法忍일새
무생법인을 얻음일 새
故我不任詣彼問疾하나이다.
그런 까닭으로 저는
질문할 수 없겠나이다.
여태껏 우리 공부한 것이 뭐입니까?
그러니까 이 미륵보살이 그렇게 가서 법문을 묻고
하지 못한 까닭이 이렇게 이렇게 이러한 것을
설명을 한다. 이 말이지요?
이 유마힐 거사가 이렇게 미륵보살을 대놓고서
공부를 가르킨 것이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우리는 유마힐거사 하신 것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마힐 거사처럼 떡 깨달아가지고
보면 세상이 참 아름답고 진리를 못할 까닭이 하나도 없습니다.
날씨도 추우니까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장산합장
(불기2553년 12월 17일 대각사 선불교 7기에서)
녹취: 관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