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바퀴 위에서" 자서(2001, 시문학사)
(한맥문학 통권 302호, 2015. 10. 25. 보정본)
주근옥 모더니즘의 객관주의가 비인간화로 치달리고 있음에 반발하여 인간성의 회복을 표방한 포스트모더니즘이 한국에 와서는 일부 시인들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형식의 창조라는 의미에서 기존 시형식의 심층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그 자체를 해체해버리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주관적 이라는 말로 정당화시킨다. J.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받아들인다는 이름 아래 주체마저 해체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잠시 열기를 식히고 조용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관적이라고 해서 제멋대로 또는 전지전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며, 해체라고 해서 아노미로서의 자살 행위가 아님을 자각해야 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는 현상학적 노에마의 지향의지마저 해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전적 의미의 객관이나 스테레오타입을 해체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다시 말해서 경험론(귀납법)과 합리론(연역법)이 화합된 관점에서의 싱커페이션(어중음생략법, 당김음법, 가사상태, syncopation)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나는 두 가지의 관점에서 시작(詩作)의 실험을 해보았다. 하나는 시집 「감을 우리며」(1988, 시문학사)에서 시도하고, 이러한 형태의 시를 “소절(素節)”이라고 명명한 후 1995년도에 「詩文學」을 통하여 신작을 연재 발표한 다음 「번개와 장미꽃」(새미, 1998)이라는 시집 제목으로 엮어낸 바 있는 삼행 단시가 그것이며, 둘째는 이번에 발표하는 극시(dramatic poetry) 형태의 장시이다. 사전적 의미는 시극이 상연을 전제로 하여 쓰인 운문 극이라면 극시는 그 반대로 상연과는 상관없이 쓰인 운문 극을 뜻한다. 프린스톤 시학사전에 의하면, ‘lyric’과 ‘narrative’와 ‘dramatic’의 세 장르는 모두 운문 속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안에서 기원되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서 N. 쉐인지의 말을 인용하여 세 장르의 기원은 박자(beat)라고 한다. 그러나 박자는 서로 다른 랑그 속에서 다르게 만들어진다. 게다가 박자는 각운을 나타내지만 시작에 있어서의 시행은 문장 안에서 긴장(tension)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극시는 그 긴장이 고조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렇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긴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사시와 비극과 희극과 디튀람보스(dithyrambos: 그리스의 신 디오니소스의 제사에 사용된 노래)를 비교 설명하면서 특히 서사시보다는 비극이 더 우수하다는 판단 아래 비극의 구성 법칙을 자상하게 논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곧 플롯의 문제는 긴장의 문제이며, 지금까지도 리얼리즘 소설에서 ‘fabuler,’ 그리고 ‘sujet’와 함께 긴장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가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음을 간과하지 못한다. 시 쪽에서는 긴장화의 방법으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생소화(生疎化)를 제시하여 주목을 받게 된 이후, 뉴크리티시즘의 앰비규티(ambiguity) 또는 패러프레이즈(paraphrase)의 이단(異端)이라는 표제 하에 많은 시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C. 브룩스는 패러독스(paradox)의 이론에서 한 편의 시를 ‘drama’라고 생각하면서 긴장을 하나의 가치 평가를 위한 기준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표층이 아니라 심층에서 이루어지는 수사학적 용어로서의 직유, 은유, 상징, 알레고리 등은 사실 긴장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호현상은 영화의 몽타주(montage) 또는 미장센(mise en scène)과 셔레이드(charade)를 상상해도 될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짧은 서정시일지라도 긴장 없이는 시로서 성공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문제는 장시이다. 한국에서는 20년대에 카프를 중심으로 일련의 시인들에 의해 단편 서사시 또는 장편 서사시가 시도된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에 와서도 신동엽을 비롯한 몇몇 시인들에 의하여 시도되었고, 시극도 시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이 과연 심층의 길항작용(拮抗作用, antagonism)을 통하여, 즉 갈등을 통하여 긴장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M. 바흐친의 말을 빌린다면, 텍스트가 독백에서 벗어나 어떻게 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즉 어떻게 다성성(多聲性)을 살려내고 있는가가 의문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감히 새로운 형태의 장시, 즉 서사시에서와 같은 영웅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인물을 다루는 장시를 시도한다. 시극 또는 극시의 무대 장치로서의 외형은 모두 떨쳐버리고 시 쪽에서 극의 핵심 요소인 ‘dialogue’만을 채택하여 되도록 국어의 운을 살리면서 간결성을 유지하도록 유의한다. 전자도 후자도 아니고 오히려 소절(素節)의 연장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는지도 모른다. 다르다면 플롯이면서도 플롯이 아닌, 다시 말해서 결론이 없는 플롯을 좀 더 확실하게 도입했다는 것이다. 구태여 명명도 해야 한다면, “소극시(素劇詩: Dramaticule Poetry)”라고나 할까. 자연성으로 탈을 씌우고 이중구조를 만들어낸다. 물론 약간의 지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소절(素節)에서와 마찬가지로 랑그체계의 시니피앙은 온전히 남겨둔 채 시니피에를 해체하여 비워내고 신화체계의 새로운 개념으로 채워 넣는 갈등으로서의 긴장 또는 팽창된 상황(contingency) 그 자체만을 제시한다. A. J. 그레마스의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 즉 높이가 다른 음표를 이음줄로 이은 의미로서의 환원적 앙상블, 즉 패러다임을 초월했으면서도 패러다임 그 차체인 최고 정점으로서의 인식론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장시뿐만 아니라, 단시의 경우에도 당연히 가능할 것이다. 요약하면, 나는 구조언어학과 시학이 전적으로 동일하다고 하는 A. J. 그레마스의 그 결론에 동의하는 미니멀리즘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텍스트를 읽는 즐거움과 그 텍스트의 창조는 독자에게 모두 남겨둘 생각이다.
각주 1. syncopation: 1. 어중음생략법(語中音省略法); 어중음은 단어나 문절 등 완결된 최소의 음운 연속체에서, 어두음과 어말음을 제외한 음, 곧 ‘민족’에서 ㅁ과 ㄱ을 제외한 “ㅣㄴ ㅈ ㅗ” 음을 말하며, 발화 중에 “고함지르다”를 “괌지르다”로, 또는 “가르쳐주다”를 “갈쳐주다”와 같이 그 어중음이 소실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어중음생략이라고 한다. 환원과 같은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가사상태: 생리적 기능이 극도로 약해져서, 인사불성이 되어 호흡이 정지되고 맥박이 미약해져서 얼핏 보기에 죽은 것 같이 된 상태. 여기서는 충격을 받은 사전적 의미가 어지럽게 된 상태를 말한다. 3. 당김음법은 음악에서, 같은 높이의 센박과 여린박이 연결되어 여린박이 센박, 센박이 여린박 되어, 셈여림의 위치가 바뀌는 것을 말한다. 같은 마디 안이나 두 마디에 걸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15세기경부터 유럽의 예술음악에서 사용하였으나, 각종 민족음악의 특징으로도 볼 수 있으며, 또 재즈음악에서는 리듬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상호주관적인 의미와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의미는 이들 중의 어느 하나가 아니라, 3가지 모두를 의미하는 복합발화(complex utterance)로 보아야할 것이다. A. J. 그레마스는 이 용어를 절묘하게 사용하고 있다. 2. 루이스 자네티, 김진해 옮김, 「영화의 이해」(서울: 현암사, 전면개정7판, 1999), p. 58. 미장센(mise en scène): 원래 프랑스 연극 용어로서, “무대 위에 배치한다”는 뜻이었다. 이 말은 무대라는 주어진 공간 안에서 연극 제작에 필요한 모든 시각적 요소를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연기가 행해지는 영역은 무대를 둘러싸는 프로시니엄 아치(proscenium arch)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는 회화의 프레임과 같으며, 연기의 범위는 때로는 좀 더 유동적인 것으로서 객석까지 확장되는 경우도 있다. 무대의 범위에 관한 정의가 무엇이건 간에, 그것의 화면구성(mise en scène)은 항상 3차원적이다. 사물과 사람은 실제 공간에 배치되며 그 실제 공간이란 높이와 넓이뿐만 아니라 깊이도 있기 때문에 3차원적인 것이다. 연출가가 무대 위에서 제아무리 현실과 유리된 하나의 세계를 나타내려 해도, 이 공간은 관중이 차지하는 공간과 연속되어 있다. 영화에서는 연극의 시각적 조형미술(plastic art)을 혼합하는 까닭에 영화적 화면구성은 좀 더 복잡한 용어가 된다. 연극 연출가와 마찬가지로 영화감독도 주어진 3차원 공간 안에 대상물과 사람을 배치한다. 그러나 일단 이것을 촬영하면, 그 배치는 원래의 3차원 공간에 대한 2차원적인 영상으로 전환된다. 영화에서의 공간은 연극에서처럼 관객이 점유한 공간과 같지가 않다. 다만 그 영상은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과 같이 동일한 물리적 면적을 갖고 나타날 뿐이다. 하나의 프레임으로 둘러싸인 평면 위에 형식적 유형을 가진 영상이 제시된다는 점에서 영화적 화면구성은 회화를 닮았다. 그러나 그 연극적인 관련성 때문에 영화적 화면구성은 시각적인 소재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하여 시각적으로 전개되는 극적인 착상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3. charade: 영화 등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다. 다음 사진은 아카데미 상 시상식에 참석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의 스냅이다. 그녀는 지금 “로마의 휴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고 막 수상자가 발표되는 순간이다. 그녀의 눈은 강한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으며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깨물고 있다. 말이 필요 없다. 이 표정과 동작만으로도 우리는 그녀가 오스카상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느끼고 있는 긴장과 초조의 강도가 어떠한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바로 이것이 셔례이드(charade) 표현의 묘미이다. 4. 길항작용(拮抗作用, antagonism): 1. 길항작용과 피드백작용의 차이; 어떤 현상에 관하여 상반되는 2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을 때, 서로 그 효과를 상쇄시키는 작용을 길항작용이라 하며 이 때 상반되는 2가지 요인을 길항인(拮抗因)이라 한다. 변화가 생겼을 때 그 변화를 일으킨 원인에 작용하여 변화를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피드백작용과 차이가 있다. 길항작용의 예; 주로 생물학과 의학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으며 약물․세균․근육․신경 등에서 볼 수 있다. 근육을 펴는 작용을 하는 신근과 구부리는 작용을 하는 굴근, 심장박동을 촉진하는 교감신경과 억제하는 부교감신경, 아드레날린과 아세틸콜린, 세포의 활동에 대한 서로 다른 이온 사이의 길항작용은 잘 알려진 예이다. 노랑초파리(Drosophilia melanogaster)를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곤충의 변태를 조절하는 엑디손(ecdysone)이 인슐린과 길항작용을 일으켜 곤충의 성장과 성숙을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약물의 길항작용; 약물의 길항작용은 약물을 투여했을 때, 다른 약물의 존재에 의해 그 작용의 일부 또는 전부가 감소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카페인 스트리키니네 등의 흥분제와 바르비탈류의 수면제나 항히스타민류의 진정제, 하제(下劑)와 지사제, 발한제와 지한제, 혈관수축제와 혈관확장제, 파라아미노벤조산과 술파제, 포도당과 인슐린 등을 들 수 있다. 약물의 길항 작용은 약물 투여시의 부작용을 제거하기 위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버섯의 무스카린 중독현상이 일어날 경우에는 아트로핀과의 길항작용을 이용하여 해독한다. 2. 세균의 길항작용; 각종의 세균을 혼합배양하면 어떤 균종(菌種)은 그 배지(培地)가 자기 발육조건에 알맞아 왕성하게 발육되어 다른 균종의 발육을 억제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푸른곰팡이는 페니실린을 생산하여 각종 병원세균의 발육을 억제한다.
SUR LES ROUES/Gueune-Ok JOUH
구조의미론(Structural Semantics); A.J.Greimas/주근옥 역
의미론선집(On Meaning); A.J.Greimas/주근옥 역
정념의 기호학(The Semiotics of Passions); A.J.Greimas, Jacques Fontanille/주근옥 역
미니멀리즘; C.W. 할렛, 워런 모트/주근옥 역
주근옥의 미니멀리즘 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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