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_ 민권사회부 편집위원보 유희락 씀
1950년 2월 조셉 R. 매카시라는 한 상원의원이
"행정부와 의회 안에 수백명의 공산주의자가
암약하고 있다" 고 선동한 데서 시작된 이른바 '메카시 선풍'은 한동안 미국이 지켜온 '자유와 민주'의 가치와 전통을 유린했다.
50개 주 가운데 33개 주가 법률을 제정하여
교수와 교사들에게 충성을 서약하게 하고 조금
이라도 반공주의를 비판하는 서적은 자유주의
자의 것까지도 불살라 버려졌고 수백만명의 공무
원과 방위산업체 노동자들이 밀고자들에 의해
당국에 출두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전임
대통령 트루만이 소련 간첩을 은닉했다는 혐의로
고발되었고 루스벨트, 아이젠하워, 케네디도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작금의 우리나라를 보고 있노라면 30여년 전의
미국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십수년간 민주화와 통일을 외쳐온 목사와 '김일
성주의자'로 규정되고, 북한과의 교류를 제의하
고 시도했다는 이유만으로 숱한 인사들이 연행,
구속되거나 조사 대상이 되고 있다.
수만권의 책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압수되고,
그동안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와 간부 그리고
생존권을 부르짖는 노동자들에게는 모두
'좌익. 체제 전복 세력'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심지어 대학생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 판사'로 매도돼 협박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어쩌면 그렇게 미국의
'매카시 선풍'과 그렇게 닮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제하에서 독립투사들을 밀고하고 고문하던
자들이 해방 뒤에는 반공이라는 그늘 밑에서
기생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피흘려 지켰노라'
고 큰소리쳤는가 하면 식민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일본군 장교가 훗날 '반공을 국시로
삼아' 이 나라를 통치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가까이에는 유신과 5공시절 유사한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 기억에도 생생하다.
다른 것은 제쳐 놓더라도 최근 연행, 구속, 압수
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공안합동수사본부'
만 해도 유신시절 긴급조치만 발동되면 설치
됐던 '비상군법회의'와 10. 26 직후 만들어진
'합동수사본부'와 쏙 빼닮았다. 그때와 차이가
있다면 검사가 비상군법회의나 수사본부에
파견되지 않고 수사본부장을 맡은 것이지만,
민예총의 사무차장이 연행된 사실을 수사본
부장이 모르는 것을 보면 수사의 주도권은
그때나 지금이나 검찰이 아닌 곳에서 쥐고
있고 검사는 법률검토나 영장청구, 공소유지
나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국민과 국회가 5공비리를 조사할 특별검찰부
의 설치를 그토록 요구했건만 "지금이 혁명
시기냐" 며 위헌론을 들고 나왔던 정부와
검찰이 바로 헌법기능이 정지됐던 때나 있었
던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했으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현 정권이 5공과 일란성 쌍생아
니 하는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현 검찰수뇌
부의 면면을 보면 어렵지 않게 수긍이 간다.
5공시절 권력의 시녀가 돼, 의사당 안에서
여당의원의 넥타이를 잡아 끈 국회의원까지
기소해 '정치의 사법화'를 초래했던 검찰은
6공 들어 몇차례 인사로 자리바꿈을 했지만
어느 한 사람 스스로 물러나거나 과거를
반성한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오히려 5공
초기 81년부터 82년까지 검찰총장으로 일
하던 분이 새 공화국에서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됐고 유신시절 중앙정보부 대공수사
국장으로 파견돼 긴급조치하에서 시국사범
수사를 지휘하던 분이 검찰의 총수로 있다.
또 79년 10. 26사건 직후 전두환 당시 보안
사령관이 본부장을 맡았던 합동수사본부에
검사로 파견됐고 82년부터 3년간 서울지검
공안부장으로 갖가지 공안사건 수사를 전담
하던 분이 현재의 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다.
어제(1989년 4월 13일) 귀국한 문익환
목사가 합동수사본부에 의해 구속돼 그는
5번째 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 정부가
마음이 변하면 모르되 그는 8월 복중에
70대 노인답지 않게 미소를 띠면서 법정
에 들어서서 자신의 시국관, 역사관,
그리고 통일론 등을 펼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문 목사가 86년 '5. 3 인천
사태'와 서울대에서의 강연과 관련해
4번째 구속된 뒤 첫 공판정에서, 재판
에 들어가기 앞서 했던, 모두 진술의
일부분을 다시 듣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법정에서 유죄가 선고되겠지만
하나님과 역사가 심판하는 법정에서는
또 다시 무죄선고를 받게 될 것을 확신
한다. 76~78년에 나(=문익환 목사)에
게 실형을 선고했던 유신체제가 어떻게
됐으며,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과거 3번의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역사의 법정에선 무죄를 선고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번에는 이 말을 보탤 것이다.
"86년 4번째로 나에게 유죄를 선고했
던 5공화국은 지금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끝]
1989년 4월 14일 금요일 ○○신문 5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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