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 도사라 불리던 사람
친구와 ‘사랑스’라는 레스토랑을 같이 운영하기 위해 대구에 올라온 나는 레스토랑 근처에 방을 얻었는데 아주 아담하고 깨끗한 여인숙이었다. 기와집에 적당한 마당이 있고 마당을 중심으로 각각의 방이 독립되어 있는 그 곳은 주로 장기 투숙자들이 묵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 장기 투숙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철학관을 하고 있는 곽 도사라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나는 가톨릭 신자였으므로 점이나 사주, 관상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또 몸과 마음이 말할 수 없이 피곤하던 때라 그런 쪽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따라서 그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나는 멋지게 사기를 치는 사람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기꾼들은 악랄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어쨌든 소양을 갖춘 사기꾼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늘 빈정대는 투로 나는 그를 곽 도사라고 불렀다.
곽 도사는 한 달에도 수차례, 틈만 나면 팔공산을 찾았고 정해진 날 오후에는 철학을 전공하는 교수님들이나 학생들이 찾아와 주역공부를 하거나 수지침을 배우곤 했다. 때로는 뭘 하는지 아침이 되도록 불을 밝히기도 했는데 밤을 꼬박 새운 듯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나와 종종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뜬금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성 선생! 당신은 사람들에게 뭘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 될 사람인데 지금 길을 잘못 가고 있어요. 그러니 우선 재미삼아서라도 이 공부를 해 보는 게 어떻겠어요?”
“무슨 공부 말씀이에요?”
“세상 이치를 아는 공부지요.”
“나도 지금 열심히 세상 이치를 배우고 있는 중이랍니다.”
“지금 성 선생이 하고 있는 것은 세상 이치를 아는 공부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저 사람들의 기분이나 맞춰 주는 게 어떻게 세상 이치를 안다고 할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공부도 순서가 있었야지요. 먼저 이 공부부터 마스터 하고서 곽 도사님 방문을 두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의 제안에 장난으로 응수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내가 장난삼아 나의 생년월일과 생시를 일러 주게 되었는데....
곽 도사는 일단 내 사주를 알고 나서는 더욱 나에게 그 ‘세상 이치를 아는 공부’라는 걸 해 보라고 권했다. 자기는 아무에게나 이런 걸 권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나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이 없자 그는 다른 방법으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우연히 내가 외출하다 그와 마주치면 그 날의 운세를 툭툭 던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말처럼 그 날의 일이 어김없이 맞아떨어지곤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외상값을 받으러 일찍 나가는 경우, 받을 수 있는지 어떤지를 그는 기가 막히게 맞추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몸이 피곤해 그냥 쉴 요량으로 쪽마루에서 볕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나에게로 다가오는 그는,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테니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던졌다. 긴가민가 하면서도 나는 그의 예지력을 시험도 할 겸 가게로 나가 보면 정말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일이 자주 되풀이되는 동안 차츰 나는 곽 도사가 하는 일이 정말 사기 행각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의 족집게 같은 예지력에 나의 완강하던 거부감은 점차 무뎌지고 있었고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그의 전술은 맞아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자정이 넘어서야 영업이 끝나기가 일쑤인 내가 그 날도 늦잠을 자고 일어나 세면을 하러 마당에 나가는데 다방 아가씨가 커피 배달을 하러 대문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아가씨는 익숙한 걸음걸이로 곽 도사가 거처하는 방문 쪽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 방문 앞에는 방문객의 신발은 고사하고 두런거리는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손님도 없는데 차부터 배달시키세요, 그래?”
마침 방문이 열리는 걸 보면서 나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곽 도사에게 농을 던졌다. 그런데 내 말을 받은 곽 도사의 대답이 더욱 가관이었다.
“내가 공부한 대로라면 지금쯤 차를 마실 손님이 찾아올 시간인 것 같아서요. 그냥 한번 시험해 본 거요.”
“참 나, 시험해 볼 게 없어서 아침부터 다방에 차를 시켜요?”
나는 핑계를 대느라 말까지 더듬대는 곽 도사를 보고 혀를 끌끌차며 수돗가로 향했다.
그러나 정말 기가 막힐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내가 열려진 문큼으로 아가씨가 방 한구석에 쪼그려 앉는 광경을 보며 빈정대는 웃음을 물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다방 아가씨가 막 보자기를 푸는 순간 몇 사람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었다. 더욱이 찾아온 사람들은 자주 찾아와 공부하던 사람들이 아니라 한눈에도 여기가 초행인 듯 싶은 사람들이었으니......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곽 도사는 문을 열고 나오며 나에게 빙긋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손님들을 맞았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곽 도사는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마음을 닦는 공부, 즉 도를 닦고 있었던 것이었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뒤 그는 멍한 얼굴로 마루에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서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자신이 팔공산에 오르는 것이 그냥 소일 삼아 가는 것이 아니라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공부해 온 내용을 간략하게 얘기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권유를 물리치지 못했다. 다음 날부터 틈이 나는대로 곽 도사에게서 공부를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주역이나 사주를 공부하는 게 기껏 다른 사람들의 운명이나 점쳐 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길을 걷게 될 운명이라서 그랬는지 일단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많이 알수록 더 어려운 것이 모든 공부의 경지인데 조금 알고 있을 때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인가 보았다. 곽 도사에게서 조금 배우고 나자 나는 눈을 빛내며 틈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사주를 풀어 설명하곤 했다. 게다가 나의 설명이 어김없이 맞아 떨어지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 심취하기 시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