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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3장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되므로 율법가진 유대인들의 유익이 있음, 모두가 죄인, 속죄소 되신 그리스도를 믿음을 구원 (찬송 46)
수, 2016-1-13
1장 18절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해서 하늘로 부터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불의한 모든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죄대로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에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2장에서는 남을 판단하는 유대인들에게 유대인들 자신들도 죄인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3장은 그 이야기를 계속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이 있지만 그들도 완전히 죄인이라는 것, 그러나 죄인들을 위하여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서 죄 용서하셨다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참 짧은 글에 책 한 권으로 써도 모자랄 아주 많은 진리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오해되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우선 폐한다는 말이 시작과 끝에 나옵니다. 3절에 "유대인들이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신실함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31절에도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언뜻 보기에는 상충되는 두 가지 진리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 말씀과 율법을 알고 있는 유대인이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신실함을 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들이 믿지 않지만 말씀을 주신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오히려 그들이 믿지 않음이 하나님의 신실함을 더 드러낸다고 하였습니다. 거꾸로 31절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없애느냐 하는 반대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는 믿지 않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없애지 않는다, 사람들이 율법을 가지고도 신실하지 않음은 오히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신실함을 더 드러낸다고 합니다. 31절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합니다. 앞쪽에서는 하나님의 신실함이 굳게 서고 율법이 굳게 선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기둥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함과 율법은 항상 굳게 서있습니다. 왜냐하면 둘은 결국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이니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굳게 서있는 것입니다.
1. 율법의 유익: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죄인됨을 드러냄 (1-9절)
첫째로 3절에 율법을 맡은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말에는 ‘맡았다’, ‘믿지 아니하였다’, ‘믿지 아니함’, ‘미쁘심’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되어있는데 헬라어 성경에는 모두 피스토스라는 같은 어근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은 단순한데도 사람들이 죄 때문에 복잡해서 복잡하게 진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 말씀을 맡았으면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고 온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유대인들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신실하지 않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데 거꾸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4절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은 오히려 참되시니라.” 이 참되시다는 말도 헬라어로는 알레드리아로써 미쁘심의 피스토스와 단어는 다르지만 원래 히브리어로 올라가면 이 두 가지도 같은 것을 다르게 번역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실하지 않음은 오히려 하나님의 신실함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성경에서 사람들은 신실하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신실하지 않음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함을 드러냅니다.
비슷한 말로는 5절에서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니까 하나님이 의롭게 심판하는 일이 드러납니다. 만약에 죄를 짓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신실함이 계속 있으니까 의로움을 드러내는 사건 자체가 사람에게 인지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신실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불의를 심판하는 행동을 하실 때,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나타나는 계기가 됩니다. 마치 아주 악독한 죄인들이 있으니깐 그 죄인들을 엄중히 처벌하는 국가의 법원이 의롭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니까 그 행하지 않는 자들의 불의를 말씀이 잘 드러내니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더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빈정댔습니까? 8절에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악을 행하자.” 악을 행하면 악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니까 악을 더 행하자고 아주 꼬인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를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꼬인 말로 우리를 비난 하는 자들은 정죄 받는 것이 옳도다.” 지금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면서 하나님의 의가 가득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의를 행하는 것을 통해서조차도 의가 나타난다는 말을 하는데, 이들은 마음이 꼬였기 때문에 그러면 불의를 더 행하자고 말합니다. 복음 전파자들 유대인에게 “너희는 참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을 위해 율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율법만 잡고 있으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 율법을 어긴다. 그래서 너희를 심판하시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정의롭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말하니까 그들은 “그러면 죄를 더 짓자.” 이렇게 말하며 빈정댑니다.
여기서 핵심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을 벗어나고 자기의 악한 길로 계속 가는 것입니다. 지식이 악하고 타락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말을 들었다면 ‘정말 내가 죄인이구나’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는데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계속 바른 진리에 대하여 전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9절에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1절에서는 “유대인들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나음은 율법이 가졌기 때문에 낫다고 했습니다. 다시 9절에서는 그러면 우리가 나은 것이 무엇이냐, 아니다 헬라인과 유대인은 똑같다고 합니다. 이것도 아주 중요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맡기는 했지만 죄인이라는 것에서는 똑같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하나님의 특별 은혜를 받았다는 점에서는 탁월함이 있지만 죄인이라는 것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 신자들 중에서도 어릴 때부터 믿은 사람들이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착각합니다. 내가 모태 신앙이어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 차라리 내가 믿지 않고 방탕하다가 20대 후반에 돌아서면 간증할 것이라도 많을 텐데 나는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어 불행하다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율법을 맡은 것이 어릴 때부터 얼마나 유익이 있는데 유익이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오늘 전반부에서 말하는 것은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말씀의 빛의 비춤을 받았으니깐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태신앙이나 어린 시절부터 믿은 것의 더 나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죄인이라고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들이 그런 것을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었으니깐 원래 착한 줄 압니다. 바로 이 순간, 세례 받고 성찬에 참여하는 이 순간에도 본성상 죄인인데 하나님이 덮어 주셨으면 항상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겸손하며 주를 의지해야 하는데, 어릴 때부터 교회 다녔다고 성경 읽었다고 자기 의를 자랑하고 오히려 복음과 구원으로부터 끊어져 갑니다. 유대인들이 받은 이러한 비참한 처지로 나가는 것입니다.
2. 구약 성경 (율법)은 유대인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죄 아래 있음을 가르침 (10-18절)
10절에서 18절까지는 구약의 시편말씀 여러 가지를 계속해서 인용하면서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얘기합니다. ‘율법 맡은 자들 너희들이 잘 알아라, 성경을 잘 아는 너희들이 알아라,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너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계속 이야기 했습니다. 19절부터는 “율법이 말하는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율법을 많이 읽었다면 사람이 본성상 죄인임을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의를 선언하고 사람의 죄인 됨을 선언하는데 이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1차적으로 말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19절에서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절에서는 요약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율법의 중요한 기능입니다. 내가 의롭다고 교만하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죄와 비참함을 깨닫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한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알고 우리의 죄인 됨을 알지만,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만 바라도록 했습니다. 구약 성도들도 하나님의 은혜에 자비를 받았고 구약의 제사제도를 통해서 율법을 어긴 내가 이렇게 죄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께 받아진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3. 율법과 관계없이, 참된 속죄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오는 하나님의 의를 나타나심 (19-26절)
21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웠다고 합니다. 화목제물이란 번역이 좋지 않습니다. 구약의 화목제물은 평화의 제사를 뜻합니다. 여기 본문은 평화의 제사를 말하는 거이 아니라, 길라스테리온이라고 속죄소를 의미합니다. 구약의 법궤 위에 속죄소가 있습니다. 법궤 안에 있는 십계명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자는 없고 십계명의 뚜껑을 덮고 있는 속죄소에 1년에 한 번 피를 뿌립니다. 죄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그 그림을 통해서 죄 용서의 은혜를 나타냈고 그 그림의 실상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 참된 속죄소로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셔서 이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 용서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강조하심으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의로움을 세우신 것입니다. 사람을 심판할 때도 하나님의 의와 신실함이 나타났지만 사람들을 의롭게 할 때도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그냥 죄인들을 의롭다 하는 것은 불공평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서 그리스도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4.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음 (27-31절)
그래서 27절에서 종합적으로 사람이 행위로 의롭다 할 수가 없고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오직 믿음의 법으로 우리는 의롭게 됩니다. 28절에서는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죄인인데도 의롭다고 간주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분이 아니니까 이방인 유대인 똑같이 하나님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 있다는 이 진리와 은혜에 들어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죄인됨을 선언하고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냅니다. 구약에서 의로운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고, 그 속죄소를 통해서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이제 신실하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속죄소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 의롭다는 것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적용해서 의롭다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선행과 관계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면, 율법을 안 지켜도 되겠다, 필요 없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것을 5장 이후부터 자세히 이야기할 것입니다. 4장에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더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 그 자체도 의가 아닙니다. 믿음 그 자체도 선물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이 모든 일을 예정하시고 작정하신 하나님 은혜 안에서 우리는 의롭다 인정받았습니다. 이 관계 속에서 점점 나아가서 관계로부터 나온 의롭다 인정하심 받음 안에서 정말 감사하고 더 죄 용서의 기쁨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바로 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죄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율법을 더 지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큰 은혜입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하나님의 의와 진리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을 맡은 큰 은혜를 받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바로 사용하지 않고 자기들의 교만을 위해서 사용해 버렸습니다. 율법이 선언하는 바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이요 하나님이 의롭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말씀을 잘 아는 우리 모두가 이 아침에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고 하나님의 의를 우리의 그릇으로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게 하여 주소서. 결코 자랑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그리스도를 자랑할 수 있도록 하소서. 이 모든 일 이루신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니 계획하신 성부 하나님과 이루신 성자 하나님의 일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소서. 이 아침에도 우리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연합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믿음으로도 의롭게 되어서 더욱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맺으시는 의의 열매를 맺어서 그것을 온전히 이루는 이 축복을 오늘도 누리도록 도우소서. 관악교회가 복음 진리를 관악과 서울 경기지역에 힘껏 전하여서 주의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도우소서.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우리 삶 모두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한편의 찬송 시처럼 영광스러운 하루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