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3일 주일예배
찬송: 5. 500. 520. 521
말씀: 마태복음16:16 제목: 베드로. 마르다. 도마의 신앙고백
1. 베드로의 신앙고백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제자들이야 그동안 예수님을 수행하면서 군중들로부터 수집한 정보에 의해 가장 정확한 답이라 확신했겠지만 제자들의 중구난방식 답변이 예수님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답변을 원하시는 것을 제자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그렇다 치고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랬더니 다른 제자들이 손들고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수제자인 시몬 베드로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며 숨넘어가듯 외쳤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만족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하시는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결국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무식한 베드로, 다혈적인 베드로가 예수님의 원하는 대답을 했습니다.
기독교는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절대 진리인 성경에 의 해 시작된 유일한 종교이지만 그 종교를 믿는 성도들의 신앙고백의 기초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와 같은 자기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역시 베드로의 신앙고백 같은 고백적인 신앙고백을 하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이 시간이라도 신앙고백을 나를 구원해주신 예수님께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당에 오신것이 누구 때문에 오신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좀더 깊은 믿음생활 속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바꿔 볼 때 정말 시몬 베드로의 고백처럼 저희 입술을 주관하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축복된 삶을 이루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뿐 아니라, 베드로와 같은 복을 받습니다.
2. 마르다의 신앙고백
예수님은 3년 동안 열두 제자와 함께 남방 유대와 북방 이스라엘을 오가며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일정한 거처를 마련해 두고 사역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물론 갈릴리 지역 가버나옴은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의 고향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 예루살렘 지역에서는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산에서 쉬는 식이셨습니다(눅21:37)
딸린 식구만 해도 장정 열둘이니 우선 숙식이 문제였고, 매식을 할 경우, 한 끼니 식사 값만 해도 한두 푼 이 아이었을 것이고 숙박비 또한 장난이 아이었을 겁니다.
베다니라는 촌 동네에 사는 귀감이 될 만한 한 가족이 등장합니다. 이 가족은 구약 엘리사 선지자를 위해 담장 위에 최초의 옥탑 방을 만들고 침대와 책상과 촛대를 진설하여 영접했던 수넴 여인처럼 지나가는 행인과 나그네를 영접한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뜻하게 영접하여 음식을 대접한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와 그의 누이 마르다, 마리아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가정에 갑자기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때 나사로의 누이들이 생각나는 분은 다름 아닌 만병의 의가가 되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마르다는 생각하기를,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죽을병에 걸린 나사로의 긴급한 사정을 알리면 열일을 제치고 달려와 병을 고쳐주실 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지 않고 예수님이 하실 계획된 일정을 다 마치신 우에야 오셨습니다. 이미 나사로는 죽어 장사한지 나흘이나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친 동기간처럼 여기고 지내왔기에 얼마나 원망스럽고 섭섭한지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불평불만을 떠뜨립니다. “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 오십니까? 이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마르다 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니라 네게 이것을 믿느냐(요11:25-26) 그동안 불만으로 심기가 불편한 마르다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틀린 말씀은 아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그간의 모든 섭섭함과 불평, 불만,을 일소하고 마음을 바꾸어 자기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11:27)
예수님은 곧바로 나사로가 묻혀 있는 무덤을 향해 가셨습니다. 그러고 그 무덤앞에 서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장사 지낸 지 나흘이 된 지라 썩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였지만 얼굴과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무덤 밖으로 나왔습니다. 병든 나사로,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은 의심과 불평불만의 산물이 아닌 믿음의 산물입니다. 여기서 잠깐만요
나사로의 죽음속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달려 돌아가신 후 부활의 예표가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드다의 신앙고백과 나사로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도마의 신앙고백
도마는 의심이 많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면 천국을 예비하기 위해 승천하신다는 말씀을 하실 대 역시 다른 제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요14:5)라고 반문하던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다른 제자들은 염려되고 불안해서 한 데 모여 있을 때인데, 도마는 충격을 받았는지, 아니면 다른 일자리를 찾기 위해 외출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경을 살펴보면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어디론지 사라졌습니다”(요20:24)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 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자신의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셨을 때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무척이나 기뻐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던 도마가 갑자기 나타납니다.
제자들은 도마를 반갑게 맞이하며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사실과 부활사신 육체를 보여주신 것을 이야기를 했지만 도마는 믿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를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제자들은 다시 집안에 모여 유대인들과 로마 병정들을 두려워함으로 굳게 문을 닫고 있을 때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시고 도망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 때 도마는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신앙을 고백하고 맙니다(요20:25-29) 그래서 도마는 늦게나마 불명예를 회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도마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더 복 되도다 는 말씀처럼 우리 모두 신앙고백을 통해 믿음의 복을 받읍시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마르다의 신앙고백, 도마의 신앙고백처럼
어떤 신앙고백을 해야 하는지 각자 생각해 보시고 좀 더 나에게 주신 성경 말씀에 의해 나 자신의 통한 주님께 신앙고백을 하면 좋을 듯 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합니다. 주님의 우리의 신앙고백을 받아주시고 주님이 주신 복을 우리에게도 주옵소서
주님께 축복의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