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로 로마노 A
포룸(forum)은 이탈리아어로 포로(foro)로 불린다. 오늘날의 이탈리아어는 라틴어를 바탕으로 한 언어이므로 발음이 조금씩 틀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라틴어는 죽은 언어이다. 글자와 문장은 남아있지만 말로 쓰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죽은 언어라고 하는 것이다.
동양의 라틴어격인 한자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쓰인다는 것이 라틴어와 다른 점이다. 그러나 한자도 처음 만들어졌을때와는 글자가 많이 달라져 있다.
포룸은 정치, 경제, 행정, 종교 등 모든 행위가 혼합되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흔히 우리들이 포로 로마노(=포룸 로마눔)라고 부르는 이 장소 부근에는 예전부터 수많은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던 곳이었다. 혹시 카이사르의 포룸을 포로 로마노로 착각할 수도 있는데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위의 사진처럼 보인다. 사진 속에서 왼쪽에 개선문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치다. 세베루스 황제 즉위 10년 되던해에 오리엔트 지방에서의 승리를 기념해서 서기 202년에 세운 痼甄? 그는 서기 193년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211년 2월 4일에 죽은 인물이다.
세베루스가 오늘날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쳐들어가 승리했다는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자마자 세베루스 황제의 요청을 받은 로마 원로원의 결의로 곧장 만들어진 개선문이 바로 이것이다. 세베루스 황제가 56세 되던 해인 202년 봄의 일이라고 한다.
로마인들의 기술력을 확인해 본다는 의미에서 아치 정면 상단 부분을 확대하여 찍어 보았다. 조각한 모습들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역사적인 사실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아치의 오른쪽을 보면 이런 모습으로 보인다. 섬세한 조각솜씨가 일품이란 것 정도는 누구나 알수 있다.
아치 위에는 라틴어로 여러가지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제일 밑줄 마지막엔 너무나 유명한 S. P. Q. R 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이것은 Senatus Populus Que Romanus의 약자이다. 굳이 우리 말로 번역해보자면 로마 시민과 원로원 정도가 될까? 오늘날에도 이 말은 쓰인다.
로마 시내 퀴리날레 언덕 부근의 하수도 뚜껑을 찍은 사진이다. 이젠 로마시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모양이지만 전통은 길다.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포로 로마노로 내려가는 길목의 왼쪽에 있는 수도이다. 여기에도 그 글자가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다. 물맛 하나는 좋았다. 글래디에이터 영화를 유심히 보신 분이라면 콤모두스 황제의 팔뚝에도 이 약자가 새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포로 로마노 B
제일 위 사진과 바로 위의 사진을 잘 보면 개선문 오른쪽을 보면 작은 기둥(그래도 제법 크다)이 하나 달랑 서있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것도 알고보면 굉장한 유적이다. 이름하여 로스트리라고 부른 곳인데 그 유명한 변호사 키케로가 여기에서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한 곳이다.
키케로와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세네카는 나중에 네로의 압력에 의해 자살을 하고 만다. 몇년전 초등학교 교과서에 세네카와 키케로가 잘못 구별되어 떠억하니 올라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해본 소리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새벽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로는 쥴리어스 시저. 성경에는 율리오 가이사로 등장한다)가 암살당한다. 그 사건 직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의 편을 들어 연설한 장소가 로스트리이다.
그런가 하면 암살자들과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사이에서 기회를 엿보던 키케로가 살해당하여 그의 머리와 오른 손이 내걸린 장소이기도 하다. 로마시대에 이 장소는 유명한 연단이었다. 로마 시민들에게 호소하던 연설 장소였다는 말이다.
사진의 오른쪽을 보면 장대한 기둥들이 몇개 보인다. 지금은 기둥만 하늘을 찌를 듯이 위로 솟아있는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이 흔적이 바로 사투르누스 신전 터이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빌려와서 편리한대로 사용하고 섬기기도 했지만 이 신은 아주 드물게 고대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사투르누스는 한때 이탈리아를 다스렸다고 하는데 상당한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의 통치를 기념하기 위하여 고대 로마 사람들은 매년 겨울에 사투르날리아라는 축제를 열었다고 하는데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겠다.
축제 기간에는 모든 공무나 형벌의 집행을 연기시켰다고 한다. 심지어는 선전포고도 연기했다니 하여튼 이 신의 인기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로마인들은 친구들끼리 선물을 교환하였고, 특별히 노예들에게도 선심을 써서 그 기간중에는 최대한의 자유를 주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위대한 인간이 죽으면 신으로 신격시키기도 했다니까 완전 엉터리 같은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다. 우리가 잘 아는 줄리어스 시져도 죽은 뒤에 신격화 되었지 않은가?
사투르누스 신전 기둥만 소개하면 이런 모습이 된다. 이 신전은 포로 로마노와 캄피돌리오 언덕을 구별하는 묘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이 팔라티노 언덕이다. 이탈리아 소나무들은 아주 특이하게 우산모양으로 생겼는데 자세히 보면 그런 소나무들이 가득가득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세베루스 개선문으로 내려가보자. 걸어가면서 오른쪽을 보면 사투르누스 신전이 이런 모습으로 다가선다.신전 옆으로 난 박석깔린 길 건너 오른쪽으로 있는 언덕이 캄피돌리오 언덕이니 이젠 어지간하면 로마 시내의 언덕들이 구별되지 싶다.
조금 더 내려가서 보면 더욱 더 장대하게 보인다. 이런 기둥들은 어떤 방법으로 세웠을까? 로마인들의 건축기술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그들이 이런 신전을 세우고 살 동안에 우리 조상님들은 무얼 하셨을까?(뭐 우리 조상님들 흉보자고 하는 소리는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시지 말기 바란다)
언뜻보면 기둥이 6개뿐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8개이다. 사람의 키와 비교해보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구별이 될 것이다.
이제 세베루스 개선문을 통과하여 포로 로마노로 들어섰다. 바로 위 사진에는 세베루스 개선문과 사투르누스 신전이 동시에 보인다. 로스트리도 보인다. 나도 처음엔 무엇이 무엇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집에 돌아와서 새로 책을 읽고 자료를 조사하고 확인을 해보니까 이제사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미리미리 공부를 철저히 했으면 감회가 더 남달랐을터이지만 워낙 어리버리하니 지금에서야 이해가 되는 것이다.
포로 로마노C
세베루스 개선문을 내려와서 포로 로마노를 보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붉은 빛이 나는 웅장한 벽돌 건물을 볼 수 있다. 사각형으로 된 입구 문이 높고 커서 웅장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데 누구나 쉽게 들어가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이 건물이 바로 쿠리아, 즉 로마 원로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말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VENI, VIDI, VICI"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부르투스! 너까지도....."
"주사위는 던져졌다"
당연히 위의 말들은 모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쏟아낸 명언들이다. 명언들의 유래를 여기서 다 이야기 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그냥 넘어가야 한다. 이런 말들을 남긴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3월 15일 아침에 원로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나섰다가 살해당했다.
많은 여행 가이드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카이사르가 바로 이 건물 안에서 죽었다는 것은 확실히 잘못된 견해일 수 있다.
< 바로 위의 사진은 포로 로마노에서 카피톨리노 언덕쪽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세베루스의 개선문 아치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서서 포로 로마노쪽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의 오른쪽 모퉁이 흰색 건물이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다.
관광객들이 몰려 서있는 그쪽이 바로 카피톨리노 언덕이고 그 너머에 폼페이우스 극장과 폼페이우스 대회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정확한 역사의 기록은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 극장 동쪽 대회랑에서 죽은 것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당시 폼페이우스 대회랑은 카피톨리노 언덕 너머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 대회랑은 길이만 해도 자그마치 180미터에 폭이 135미터가 되었다고 하니 상상을 넘어서는 거대한 것이기도 하다.
회랑 끝부분에 폼페이우스 극장이 있었는데 카이사르는 극장 쪽의 회랑 끝부분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3월 15일 운명의 그 날 아침, 원로원 회의는 아침 10시경에 시작될 예정으로 있었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통치하면서 원로원 의원수가 900여명으로 증원이 되었으므로 그 시각 쯤엔 회랑 주위로 수많은 원로원 의원들이 모여들고 있었을 것이다.
로마인들의 전통 의상인 토가 속에 칼을 숨긴 암살자 일당 14명이 카이사르를 둘러싸고는 광란의 칼부림을 시작하였는데 이날 그는 모두 23군데에 단검 자상을 입었다고 한다. 사흘 뒤인 18일 파르티아 원정길에 나서기로 예정되어 있던 카이사르는 결국 토가로 자기 몸을 감싸며 쓰러졌고 이내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카이사르의 양아들이었던 부르투스까지 가담한 이 암살사건은 너무나 유명하여 수없이 많은 이야기꺼리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잘 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는 상당 부분이 잘못된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하니 사실을 알고보면 좀 허탈하기까지 하다.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나는 카이사르의 암살을 그린 셰익스피어의 희곡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큰 감명을 받았는지 모른다. 한동안 나는 시저가 이 원로원 건물 안에서 살해당한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다. 그랬었기에 나는 이 건물만은 찬찬히 살펴보고 싶었다.
조금 떨어져서 찬찬히 살펴보면 원로원 건물은 붉은 빛나는 견고한 벽돌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원로원 건물 뒤로 희게 드러나 있는 건물이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다. 그 부근의 언덕은 캄피돌리오 언덕이고......
공화정 로마와 제정 로마의 원로원 건물이 우리들 눈앞에 펼쳐져 있다. 어쩌면 에전에는 이 건물의 입구가 아치였는지도 모른다. 건물 정면에 뚜렸한 아치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흔적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가보자.
이 사진은 입구에 서서 오른쪽을 본 모습이다. 정면은 아래 사진처럼 되어 있다.
보는 김에 왼쪽까지 살펴보자. 이제는 이런 조각품 몇개만이 덩그렇게 남아있는 원로원 내부이지만 여기를 가득 메웠던 영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다 죽고 없는 줄은 알지만 여기가 바로 로마 역사의 현장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드디어 나는 숙연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역사가 움직여 가는가보다. 물론 이 건물은 최근에 일부만 복원된 것이어서 당초의 속 모습이 어땠는지 정확하게 잘 살펴볼 수 없지만 역사의 현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어설프나마 영웅 호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원로원 건물을 빠져 나왔다. 말없이.....
포로 노마노 D
포로 로마노 부근에는 베드로와 바울이 갇혔었다고 전해지는 지하감옥이 있다. 다 알다시피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라고 불리우는 사람이고 바울은 위대한 전도자이다.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위한 전도자라면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한 전도자라고도 칭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들 두사람은 모두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분들이 갇혀있었다는 감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물론 입장료는 없지만 기부금을 받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그건 자기가 알아서 적당하게 행동하면 된다. 안내더라도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는다.
입구를 지나 돌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면 어두컴컴한 감옥이 나온다. 탈출구는 있을수가 없다. 감옥 천장에는 아래를 감시할 수 있도록 구멍이 있어서 갇힌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바닥에는 우물이 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들은 이 샘을 기적의 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좀 더 떨어져서 보면 바로 아래 사진처럼 보인다.
성경을 보면 베드로와 바울은 이적을 몰고 다닌 사도들이다. 그 두 사람이 여기에 동시에 함께 갇혀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와 그리스에 흩어져 있던 많은 교회앞으로 편지를 써보내기도 하고 함께 수감된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감옥을 나와 다시 포로 로마노로 돌아와서 다음 구경을 계속해도 된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보려면 하루 종일 둘러보아도 시간이 부족한 곳이 포로 로마노이다. 그외에도 많은 유적들이 있지만 이젠 그만 생략하고 지나가기로 하자.
포로 로마노에서 팔라티노 언덕 방향을 보면 수많은 벽돌 유적들이 즐비함을 알 수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확인해야 할지 막막해 지므로 다음에 로마를 가시는 분들은 미리 세밀하게 공부를 해두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첫댓글 A: 포룸(forum)은 이탈리아어로 포로(foro)로 불린다. 오늘날의 이탈리아어는 라틴어를 바탕으로 한 언어이므로 발음이 조금씩 틀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라틴어는 죽은 언어이다. 글자와 문장은 남아있지만 말로 쓰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죽은 언어라고 하는 것이다. 포룸은 정치, 경제, 행정, 종교 등 모든 행위가 혼합되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혹시 카이사르의 포룸을 포로 로마노로 착각할 수도 있는데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A:하수도 뚜껑에 새겨진 S.P.O.R.카피톨리노 언덕에서 포로 로마노로 내려가는 길목의 왼쪽에 있는 수도이다. 여기에도 그 글자가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다. 물맛 하나는 좋았다. 글래디에이터 영화를 유심히 보신 분이라면 콤모두스 황제의 팔뚝에도 이 약자가 새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B: 기원전 44년 3월 15일 새벽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로는 쥴리어스 시저. 성경에는 율리오 가이사로 등장한다)가 암살당한다. 그 사건 직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의 편을 들어 연설한 장소가 로스트리이다. 사진의 오른쪽을 보면 장대한 기둥들이 사투르누스 신전 터이다. 사투르누스는 한때 이탈리아를 다스렸다고 하는데 상당한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의 통치를 기념하기 위하여 고대 로마 사람들은 매년 겨울에 사투르날리아라는 축제를 열었다고 하는데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겠다.
B:저 멀리 보이는 언덕이 팔라티노 언덕이다. 이제 세베루스 개선문을 통과하여 포로 로마노로 들어섰다. 바로 위 사진에는 세베루스 개선문과 사투르누스 신전이 동시에 보인다. 로스트리도 보인다.
C: 세베루스 개선문을 내려와서 포로 로마노를 보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붉은 빛이 나는 웅장한 벽돌 건물을 볼 수 있다. 사각형으로 된 입구 문이 높고 커서 웅장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데 누구나 쉽게 들어가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이 건물이 바로 쿠리아, 즉 로마 원로원이다. "VENI, VIDI, VICI"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부르투스! 너까지도....." "주사위는 던져졌다" 위의 말들은 모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쏟아낸 명언들이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3월 15일 아침에 원로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나섰다가 살해당했다.
c: 관광객들이 몰려 서있는 그쪽이 바로 카피톨리노 언덕이고 그 너머에 폼페이우스 극장과 폼페이우스 대회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역사의 기록은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 극장 동쪽 대회랑에서 죽은 것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당시 폼페이우스 대회랑은 카피톨리노 언덕 너머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 대회랑은 길이만 해도 자그마치 180미터에 폭이 135미터가 되었다고 하니 상상을 넘어서는 거대한 것이기도 하다. 원로원의 내부모습
D: 포로 로마노 부근에는 베드로와 바울이 갇혔었다고 전해지는 지하감옥이 있다. 성경을 보면 베드로와 바울은 이적을 몰고 다닌 사도들이다. 그 두 사람이 여기에 동시에 함께 갇혀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와 그리스에 흩어져 있던 많은 교회앞으로 편지를 써보내기도 하고 함께 수감된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포로 로마노에서 팔라티노 언덕 방향을 보면 수많은 벽돌 유적들이 즐비함을 알 수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확인해야 할지 막막해 지므로 다음에 로마를 가시는 분들은 미리 세밀하게 공부를 해두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가도 그때 막상가보면 그게 그거래요~~~나도 가봤는데 아~~어지러워 이 그림도 낼이나 다시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