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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장
교회 안으로: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사장들로서 서로 섬기면서 기뻐하라
(찬송 220장)
2023-9-19, 화
맥락과 의미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바깥을 향해 전쟁을 이끄시는 왕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에서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는 군인들입니다.
로마 시위대의 죄수 바울을 통해서 복음이 진보했습니다. 그 때문에 바울은 기뻐합니다. 우리도 바울을 본받아서 반대자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복음의 한 믿음 안에서 협력하며 세상을 향해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1:27,28).
2장은 교회 안의 관계에 대해 가르칩니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습니다. 제사장으로서 서로 겸손하게 섬겨야 합니다.
1. 섬김으로 하나되라(1-4절)
2. 그리스도의 모범: 낮아지심과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하심(5-11절)
3.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고, 자신을 흠 없는 제물로 드리라(12-16절)
4. 바울의 모범: 자신을 제물로 드리며 기뻐함(17-18절)
5. 디모데의 모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19-24절)
1. 섬김으로 하나되라(1-4절)
빌립보서 2장에서는 성도들이 관계에서 성장하도록 권면합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그리스도의 권면”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고 위로하시는 것인데 교회 안에 이미 있습니다.
“성령의 교제”는 성령님이 만들어내는 교제입니다. 우리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고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십니다. 그 결과로 성도들이 참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눕니다. “사랑의 위로”는 “그리스도의 권면”과 “성령의 교제” 사이에 나오는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위로와 권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성령님을 통한 교제를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끼리 마음을 같이 해야 합니다(2절). 한 분 그리스도의 권면을 통하여 우리 모두의 마음이 움직여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합시다. 한 분 성령님 안에서 한 마음을 품읍시다.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공동의 믿음으로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됩시다.
3절, 서로 다투지 맙시다. 라이벌 의식을 가지지 맙시다.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맙시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깁니다. 다른 성도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4절,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 내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성장하도록 힘쓰면서 다른 성도들의 믿음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웁시다. 이것이 성도의 신앙 교제입니다.
믿음 안의 교제는 성격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것과 다릅니다. 인간적으로 격려해주는 것과 다릅니다. 감정적으로 서로를 기분 좋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의 참된 교제는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같은 마음 때문에 하나가 됩니다. 성도 안에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 됨에서 성장합시다.
2. 그리스도의 모범: 낮아지심과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하심(5-11절)
대제사장인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제사장으로 서로를 섬기도록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읍시다(5절).
6-1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본받읍시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낮아지셨습니다. 종이 되어서 우리를 섬기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위치를 높이셨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모든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릎을 꿇고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성도들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며 영광 돌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하늘의 모든 영, 마귀들까지 완전히 굴복할 것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자, 죽은 모든 자(땅 아래 있는 자들) 중 믿지 않는 자들도 예수님의 주님 되심의 주권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들은 심판받으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으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영광을 다시 얻기 위해 먼저 자신을 “낮추었습니다”(8절). “겸손한”(3절)과 같은 단어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겸손히 성도를 서로 섬깁시다. 낮은 마음은 자녀나 다른 성도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책망할 것은 책망합니다. 또 성도들에게 필요하다면 권면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겸손히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섬길 때 우리 주님 재림하실 때 우리에게도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성도를 섬기는 중요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올바로 고백하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높이는 일을 통해서 하나 됩니다. 성도들끼리 하나 됨은 성도 안에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동일한 믿음 때문에 이루어집니다.
3.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고, 자신을 흠 없는 제물로 드리라(12-16절)
12절, 그러므로 성도들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 성도들은 지금까지도 항상 복종해 왔습니다. 복종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8절) 하나님께 복종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고 하나님 앞에 있으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합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어 가라”(12절). 우리가 계속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이미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우리도 우리의 구원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죄를 용서하고 의롭게 하시는” 구원과 함께 있는 “거룩함”의 구원에서 성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복종하면서 성도들끼리 원망하지 맙시다(14절). 특히 성도들의 선한 삶과 섬김에 대해 원망하지 맙시다. 시비하지 맙시다. 말다툼을 하지 맙시다.
성도들이 사랑하며 살 때, 15절에 하나님을 향하여 흠이 없고 순전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성장입니다. 계속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고 복종하면서 말씀에 따라 성결하게 변화됩니다. 성도들과, 또한 가족끼리 함께 격려하면서 하나됨을 이루어 거룩에서 성장합니다.
4. 바울의 모범: 자신을 제물로 드리며 기뻐함(17-18절)
사도 바울 자신의 삶을 제사장의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성도들이 그를 본받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으로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17절에서 빌립보 성도들의 삶을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이라고 합니다. 바울 자신은 그 위에 붓는 “전제”가 되겠다고 합니다. 구약 시대에 매일 번제(고기제사)를 드리면서 소제(곡식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소제 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을 전제라고 합니다(출 29:28-41).
마찬가지로 빌립보 성도들이 그리스도께 헌신하여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립니다. 빌립보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고난이 있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은 그들의 헌신을 돕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전제가 됩니다.
빌립보서를 쓰는 그 순간, 그는 로마에서 구금되어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감옥에서 나오면 빌립보 교인들에게 가서 그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앞으로도 바울과 빌립보 성도는 함께 고난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함께 고난 받으며 구원에서 성장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우리의 참 기쁨은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직분자인 목사나 가정의 가장들은 그 제물이 되는 일을 기쁘게 돕습니다. 직분자는 가정과 교회에 이 땅에서 필요한 물질적인 것과 격려도 공급합니다. 직분자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말씀을 공급하여 교회와 가정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하도록 격려하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5. 디모데의 모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19-24절)
19절 이후에서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소개합니다. 이들은 참된 믿음에 입각해서 성도의 사랑의 친교를 행하는 자들입니다. 섬기는 제사장들입니다. 그 두 사람은 로마에서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바울의 복음 사역을 도왔습니다.
본래 바울은 디모데를 먼저 보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것이 빌립보 성도를 위해 더 유익하다고 생각했습니다(25절).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서 편지를 빌립보 교인들에게 가져갔습니다.
21-22절: 많은 사람이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지 아니합니다. 하지만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했습니다. “수고”(22절)는 ‘종으로 섬긴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종으로 섬기셨습니다(7절). 그리스도를 본받아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종으로 섬겼습니다. 아버지에게 하듯이 바울에게 순종하고 그를 섬겼습니다. 바울과의 인간적인 친근감 때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하는 복음 사역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의 자녀들과 부모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하나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사명을 하기 때문에 자녀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 성도가 목사의 지시에 복종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6. 에바브로디도의 모범: 바울을 위해 수고, 성도를 향한 사랑(25-30절)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또 다른 제사장 에바브로디도를 소개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너희 사자”(25절)라 합니다. “파송한 자”라는 뜻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그를 로마에 있는 바울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일을 하여 바울을 경제적으로 섬겼습니다(“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한다,” 30절).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내가 쓸 것을 돕는 자”(25절)라 합니다.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운다”(30절)고 합니다. 돕고, 섬긴다는 것은 원래 제사장이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도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인 교회를 세우는 제사장의 일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교회를 대신하여 바울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일도 제사장의 일입니다. 지금도 목사가 하는 일이나 성도님들이 일반 경제 생활을 하고 교회를 섬기는 것이 다 동등한 가치가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성도들을 아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26절). 연인이 서로 보고 싶어하듯이 보고 싶어하며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병든 것을 빌립보 성도들이 알고 걱정할 것을 생각하며 그 자신이 많은 걱정을 하였습니다. 성도들끼리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0절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의 생활비를 지원하기 위해 일하다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해서 힘껏 수고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해 부름받았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렇게 충성하고 헌신했습니다.
우리도 섬길 때 “나는 제사장으로서 직분자로 섬긴다”고 바르게 생각합시다. 서로에 대해서도 제사장 직분자로 인정합시다. 함께 직분자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합시다. 성도와 가족이 자기 직분을 다할 수 있도록 사랑하고 희생합시다.
믿고 복종할 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낮아지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부활하게 하셔서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한 백성으로 성장하도록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합시다. 성도와 가족을 겸손히 섬기는 작은 제사장이 됩시다.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서로 돕고 존중합시다.
서로를 섬기고 수고할 때,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맙시다. 불평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를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영광스러운 신분을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송합시다. 입술과 마음의 제사를 드립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2절, “뜻을 합하며”(쉼-프시코스)
2절에, “뜻을 합하며”는(쉼-프시코스)는 ‘성령’(프뉴마)과 비슷한 뜻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토 아우토 프로네오)는 5절의 “이 마음을 품으라(투토 프로네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와 같습니다. “같은 사랑”(2절)은 1절의 “사랑의 무슨 위로나”에서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2절은 삼위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의 뜻, 마음, 사랑을 추구하라는 뜻입니다.
<참고> “돕는 자”(레이투르고스, 25절) “섬기는 일(레이루르기아)”
“여러분의 사자로 나를 돕는 자”(레이투르고스, 25절), “나를 섬기는 일”(레이루르기아, 30절). 밑줄 친 두 단어는 구약시대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일을 말합니다. 사도와 교회를 위해 물질로 섬기던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성도는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에서 섬기는 직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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