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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LG경제연구원 박래정
‘기회의 땅’이라고 일컫지만, 중국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한국 기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이미지와 달리 수 천년 내려온 상재(商才) DNA로 무장한 기업들이 물어뜯듯 싸우는 곳이 중국 내수시장이다. 그런 데도 많은 한국기업들이 중국시장의 적자생존 원칙에 둔감했던 것은 주로 저임을 활용한 수출부문에 종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의 임금은 다달이 뛰어 오르고, 위안화도 들썩거리고 있다. 세무총국의 외국기업 세무조사도 갈수록 매서워진다. 이제 한국기업들의 중국 내수시장 진출은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내수확대로 극복하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방향이 이런 방향선회에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향후 10년은 지나온 10년이 가져왔던 변화보다 더 극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중국경제의 규모가 달라졌고 중국 사회도 소득상승에 맞춰 변화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갈등과 모순이 파열음을 내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서 어느덧 중국을 찬양하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경계 모드가 완연하다. 중국 공산당은 안팎의 도전과제에 대응해 경제운용 방식의 변화를 공언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의 중국 생존성은 이미 시험 받고 있다. 그런데도 철 지난 ‘중국관’에 갇혀 과거를 답습하거나 엉뚱한 시도를 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LG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한국기업들이 범하기 쉬운 ‘인식의 오류’를 지적하고 ‘10년 후 중국’에 대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주요 경영이슈를 정리해봤다.
< 목 차 >
Ⅰ. 중국이 직면한 도전과 응전
Ⅱ.‘10년 뒤 중국’을 바라보는 5가지 오류
Ⅲ. 향후 10년 동안 제기될 5가지 이슈
Ⅳ. 맺음말
중국만큼 ‘10년 뒤’의 그림에 관심이 쏠리는 경제는 없을 것이다. 1호 경제특구인 광둥 선전(深?)에서, 이어서 장강 어귀의 상하이 푸둥(浦東)에서 10년여 만에 상전벽해가 벌어진 것을 목도한 뒤 벌어진 일이다. 한중 수교가 이뤄졌던 1992년까지도 푸동지구는 번듯한 고층 건물 한 채 없는 거대한 나대지였다. 중앙정부가 나서 개발수요를 부추겼지만, 외자기업들은 반신반의했다. 지금은 대륙 최고층 진마오(金茂) 빌딩을 비롯, 중국 경제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첨단 건물들이 즐비하다.
강력한 국가주도 경제성장을 추진해온 중국에서 공산당과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청사진은 높은 신뢰도를 자랑한다. 5개년 경제계획이 11차례 추진돼온 동안 양적(量的) 경제지표는 대부분 목표시기를 앞당겨 달성됐다. 청사진이 총천연색 현실로 바뀌는 과정은 바로 외국투자가들에겐 기회였다. 특히 지리적으로 경영자원을 쉽게 이전할 수 있고, 문화적 이질성도 상대적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바다 건너 한국기업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향후 10년이 한국기업에게 마냥 장밋빛 기회일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의 청사진대로라면 10년 뒤 중국은 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몇몇 차세대 산업에서는 한국과 격차를 벌리게 된다. 한국과 경쟁할 중국은 그들의 ‘평균’이 아니라 ‘선진’ 영역이다. 공산당이 조만간 확정, 공포하게 될 12차 경제5개년계획(2011~2016)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경제가 세계경제의 13%나 되는 글로벌 대국경제로 부상하면서 중국 정부 의지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 지난 5개년 계획의 역점사업이었던 에너지, 환율개혁 등이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표류했던 것 등은 그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향후 경제 구조개선 계획에 글로벌 환경변화가 충분히 반영된 데다, 계획을 수행할 재정여력이 탄탄한 점 등을 감안할 때 대략 70% 정도는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대국, 글로벌 산업강국 중국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준비 없는 한국기업들에겐 유례없는 시련이 될 것이다.
Ⅰ. 중국이 직면한 도전과 응전
중국의 미래상은 당면한 도전과 그 응전의 결과로 그려질 것이다(<그림 1> 참조).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중국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도전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주창해 공산당 당장(黨章)에 삽입된 ‘과학적 발전관’을 통해 우회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과학적 발전관은 크게 ▼인간이 주체가 되는(以人爲本) 발전 ▼경제 및 사회의 균형발전 ▼자연과 인간의 조화 등 세 가지 개념이 뼈대를 이룬다. 이 같은 형태의 발전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문제의식이 함의돼 있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20여 년의 불균등 성장으로 각종 사회 경제적 격차가 누적돼 심각한 사회갈등 요인이 되고 있고, 환경파괴에 따른 경제사회적 비용이 급증해 더 이상의 경제성장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는 뜻이 된다.
과학적 발전관에 입각해 4세대 지도부는 다양한 국가 과제를 추진해왔다. 거시경제적으로는 안정 성장기조의 정착과 구조개선 작업의 병행을, 사회정책적으로는 각종 격차를 해소하는 작업 등이 골간을 이룬다. 이 도전과제 중에서 중국 정부가 가장 심각하고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에너지난과 격차확대이다. 전자는 중국의 대국경제화가 자초한, 성장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이슈이고, 후자는 지속성장을 위한 중국 사회의 응집력을 되살리는 문제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극복하지 못할 경우 공산당의 장기집권이 흔들리는 체제 리스크로 연결될 수 있다.
1. 화급한 에너지원 확보
중국이 향후 10년 동안 과거와 비슷한 속도로 성장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림 2>에서 보듯 2005년부터 3년간 연평균 에너지 소비량은 8.3%씩 늘었다. 같은 기간 평균 경제성장률 11%보단 낮지만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세계경제 규모의 13%를 차지하는 대국경제로 부상했다. 이런 경제가 매년 에너지 소비량을 8%씩 늘려간다면 어디서 에너지 원을 조달할 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소요 에너지의 70%를 석탄을 때서 충당한다. 북부 산시(山西)성과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지역을 중심으로 지구촌 매장량의 14%에 해당하는 막대한 석탄이 매장돼 있지만, 환경오염 우려 탓에 난(亂)개발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한편 두 번째로 의지하고 있는 석유자원은 10년 뒤면 매장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표 1> 참조). 해외의존도는 이미 50%를 넘어섰다. 중국이 산유국에 손을 벌릴수록 국제유가는 상승압력을 받을 것이고, 이는 중국 경제의 쾌속성장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부상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신재생 에너지다. 신재생 에너지 분야는 이미 2006년부터 각광받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아 지난해 대규모 재정투자가 집행되면서 목표치가 더욱 상향 조정됐다. 지난해 10%에 머물렀던 재생에너지 비중을 10년 뒤엔 15%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중국 정부의 포석이다.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원전 등을 보조 에너지로 키우는 데 만족하지 않고, 관련 산업체인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 강력한 제조기지를 다지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신생산업이 조기 착근하는 데 필수적인 거대한 내수시장과 튼튼한 재정,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지니고 있다.
지난해 국무원이 공포한 과잉산업 리스트에는 태양광발전의 기초소재 중 하나인 폴리실리콘과 풍력발전기가 포함됐다. 정부 지원을 노린 투자의 쏠림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지만, 향후에도 계속 ‘과잉상태’에 남아 있으란 법은 없다. 에너지 효율화의 상징인 전기자동차 분야는 한결 조심스럽고, 단계적인 접근법이 시행되고 있다.
2. 격차해소
중국의 3대 격차인 지역, 도농(都農), 빈부격차는 일란성 세 쌍둥이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먼저 부자가 되라’고 독려했던 지역은 동남부 연해지역이었다. 이 지역 경제특구가 외자유치를 통한 투자 주도형 성장으로 자신감을 갖자, 개방지역을 해안선을 따라 북상시켰다. 화교자본에 이어 미국 일본 한국기업들의 수출거점이 연해지역에 줄줄이 들어서 중국의 개혁개방은 본 궤도에 들어섰다. 이 지역 한적한 어촌과 농촌은 20여 년이 지나면서 대규모 산업도시로 탈바꿈했다.
반면 내륙은 개혁개방에서 뒤처지면서 산업화 및 도시화 역시 늦어졌고, 이는 상대소득의 저하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낙후한 내륙 농촌의 잉여 인력들이 대거 도시로 나와 3D 노동에 투입되거나 도시 하층민으로 전락했다. 연해- 내륙지역 격차는 산업화의 시차에 따라 도시 농촌의 격차로 전이되고 있으며, 같은 도시 내에서도 농촌에서 이주한 유동인구의 증가 등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격차의 확대는 사회적인 응집력을 떨어트릴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중산층 성장을 가로막아 소비를 주요한 성장엔진으로 끌어올리려는 경제구조 개선책을 무용지물로 만들게 된다. 소비의 성장기여를 높이는 것은 글로벌 경제의 조그만 충격에도 흔들리는 대외의존적, 투자의존적 경제체질을 안정적, 주체적으로 바꾸는 데 필수적인 전제이다.
중국 공산당은 격차해소의 방안으로 강도 높은 재분배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적정 성장세 유지란 기본 바탕의 중요성을 간과하진 않는다. 다양한 시장개혁 작업이 진행 중이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란 쓰나미가 몰려오자, 최우선적으로 ‘8% 성장률 지키기(保八)’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지속적으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선 시혜적 복지혜택보다 일자리 제공이 우선돼야 한다는 인식이다.
개혁개방을 이끌어온 저임형 노동집약 산업은 한계를 맞고 있다. 농촌의 잉여인력이 고갈되고 있어 노동공급 확대 한계가 머지 않은 데다, 경제 발전단계 상 부가가치가 낮은 저임형 산업에 매달릴 수 없다는 게 중국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중국 국무원은 전통산업의 시설통폐합이나 개체 등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강화를 유도하는 한편, 미래산업 분야에서는 선진국이 답습했던 발전단계 중 몇 개를 생략하는 도약식(Take off) 전략을 선호하고 있다. 미래산업 분야에서만큼은 선진국에 빼앗겼던 제조 리더십을 되찾아오겠다는 것이다.
격차해소의 유력한 수단은 도시화(都市化)이다(<그림 3> 참조). 특히 상대적으로 뒤처진 내륙지역의 성장동력을 도시화에서 찾고 있다. 이미 글로벌 대도시로 성장한 상하이 베이징 선전 광저우 등 연해 대도시의 외연적 팽창보다는 내륙 도시를 인근 현급 행정구역까지 외연을 넓히거나 농업지구를 성장시켜 상업지구로 탈바꿈시키는 식이다. 중앙정부가 내륙 도시에 우선적으로 인근 농민의 호구 취득제한 완화조치를 약속한 것도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이미 신규고정투자의 경우 동부지구의 비중은 2007년부터 하락하기 시작, 올해엔 40% 초반대로 떨어졌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10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
Ⅱ. ‘10년 뒤 중국’을 바라보는 5가지 오류
‘2010년이면 중국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저명한 국제 연구기관 보고서를 토대로 1992년 한국 정부가 만든 보고서의 골자다. 전망의 전제가 되는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9%였다. 지난 30년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이보다 높은 9.8%에 이른다. 2010년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란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지만, 최강의 경제대국이란 평가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중국 전망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중국만 진화할 수는 없었고, 오히려 글로벌 동반 성장이 대세였던 것을 간과했을 뿐이다.
다시 ‘10년 뒤 중국’을 그려보면, ‘세계의 시장’이란 표현이 떠오른다. 10년 만에 ‘세계의 공장’이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할 수 있을까. 지역간 격차가 크고, 이질성이 심한 중국을 한데 묶어 덩지를 키워 ‘세계의 ~’ 운운하는 표현이 합당하긴 한 것일까.
각종 비용상승 추세를 생각하면, 연해지역에 포진한 노동집약적 수출거점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존 제조거점들의 집적(Cluster)에서 생기는 긍정적 효과를 감안할 때 세계의 공장이 10년 내 쇠락한다고 단언하긴 어렵고 중국 정부가 바라는 방향도 아니다. 다만 경쟁우위 변화양상에 따라 ‘세계 공장’의 구성품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농촌부문의 잉여인력 고갈 상황과 산업정책 방향 등을 생각할 때 제조업보단 서비스산업의 팽창이 훨씬 두드러질 것이다. 최근 외자의 직접투자 양상이 내수형 서비스 부문에 집중된 것도 이를 반영한다. 특히 도시화가 몰고 올 도시형 서비스, 제조업 생산성 향상을 지원하는 서비스 부문의 비약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경제구조 개선작업이 진척을 보여 내수가 성장을 주도하더라도 10년 내 중부내륙이 현재 연해 대도시 수준의 소비시장으로 부상한다고 보긴 어렵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 도시화 투자 등을 감안할 때 내륙은 투자재 중심 내수시장으로 자리매김되고, 연해지역의 소비는 더욱 고도화될 개연성이 높다.
중국이 어떻게 변모하더라도 10년 뒤 미래가 2020년 신년 카운트다운과 함께 한 순간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변화의 궤적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들이 일반화하기 어려운 특수한 경험이나, ‘10년 전 중국’에 맞춰진 잘못된 인식의 틀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한국 기업인들이 지닌 고정관념 중 10년 뒤 중국에 접근할 때 전략적 실패로 이어질만한 오류들을 정리해본 것이다.
1. 중국은 ‘무늬만 사회주의’다
상하이나 베이징 등 연해지역 시장경제의 발전은 자본주의 경제의 본산이랄 수 있는 영국이나 미국의 대도시보다 화려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 향후 펼쳐질 중국 정부의 시장개혁 조치나, 금융시장의 자유화 흐름은 자본주의 경제를 최종 목적지로 정해놓은 듯한 인상이다. 중국 기업인, 상인들과 한번이라도 계약서를 작성해본 한국인이라면, 그들의 뼈 속 깊이 숨어있는 이윤동기에 놀랄 때가 적지 않다. 중국경제에 사회주의는 조만간 벗어 던질 ‘외피’일까.
그러나 경제활동의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가 되는 토지는 엄격한 공유제를 따르고 있다. 토지 위에 성립된 각종 사유재산권보다 국가의 ‘합리적’ 토지이용이 먼저다. 2007년 3월 물권법 제정으로 토지사용권 만료일 이후의 ‘연장(延長)’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이는 엄연히 소유권에서 분리된 사용권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는 대개 사회주의를 계획경제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벌어진다.하지만 계획경제는 러시아나 중국처럼 산업발전 단계가 한참 늦은 신흥 사회주의 경제가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생산자원을 동원하고 집중시키기 위해 선택했던, 특정시기의 해법이었다.
실용주의를 추구했던 덩샤오핑이나 탈 소련 노선을 걸었던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같은 지도자들에게 계획경제란 효능이 떨어지면 얼마든지 폐기할 수 있는 방법론이었을 뿐이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 시장주의를 도입한 것은 중국의 개혁주의자들에게 논리적 모순이 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국경제 각 분야에서 계획경제의 잔재는 거의 사라졌다. 대신 공유의 원칙은 경제 곳곳에서 살아 숨쉰다. 토지 외에도 석유화공 철강 통신 등 기간산업을 움직이는 것은 국유기업들이다. 지방정부 밑엔 정부지분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국유기업들이 시장에서 경쟁한다. 이들 기업들은 부문별로 정부 부처가 관리하며, 또 정부 부문은 공산당에 장악돼 있다.
국유기업은 아직도 경기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고정자산투자나 정부 세수입 등에서 여전히 40%에 가까운 기여도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역할은 ‘10년 뒤’에도 크게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기간산업 등 전략산업에서 외국기업들의 참여는 쉽지 않다는 얘기이다. 더욱이 이들을 관리하는 각급 정부 부문은 시장에서 심심찮게 심판 완장을 벗어 던지고 백엎 멤버로 나서곤 한다.
2. 소비가 ‘고도’성장을 이끌 것이다
수출의 성장 기여가 약화되는 것은 중국 안팎의 상황으로 볼 때 불가피하다. 최대의 수출시장인 미국의 소비가 과거처럼 살아나려면 상당한 시일이 지나야 할 것이다. 중국 2대 수출시장인 유로 존도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위축을 상당기간 경험해야 한다. 중국은 이미 2006년부터 이처럼 해외수요가 경기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내수의 성장견인력을 높이는 구조개편을 서둘러왔다. 위안화 절상(2005~2008년)이나 소비파워 확대를 위한 여러 조치들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향후 상당기간 수출 대신 내수가 성장을 이끌게 되리라는 것은 합당한 추론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고도’ 성장이 유지될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내수는 국내소비와 이를 위한 투자로 구성되는데, 여기서 투자는 중장기적으로 국내 소비의 증가세에 연동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소비항목은 수출이나 이를 위한 투자와 달리 매년 꾸준하게 두 자릿수로 키우기 어렵다. 과거 30년 동안 중국이 연평균 9.8%씩 성장하는 동안 실질소비 신장세는 8%대에 그쳤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중국 정부는 내수확대를 위해 단기적으로 자동차 가전 등의 소비세 할인정책, 지역적으로는 중부굴기(中部?起)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의료보험 확대, 소득세 면세점 상향조정 등 다양한 소비확대책을 들고 나왔다. 따라서 향후 중국 내수는 두드러진 상승세를 그릴 것이나, 수출부문이 보여줬던 급격한 신장세를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의 공장이 ‘세계적인 시장’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은 ‘감속성장’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3. 중국 저임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저임의 원천이었던 농촌 부문의 잉여 인력이 고갈되고 있다. 그나마 남은 잉여인력도 고령자들이 대부분으로, 도시 산업부문으로 전출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도시 노동시장에서 인력의 수급은 갈수록 빠듯해지고 있다(<그림 5> 참조). 결정적으로 정부가 저임의 긍정적 역할보다 역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2008년 발효시킨 노동합동법이 친노(親勞)로 기운 것은 이 때문이다.
‘과학적 발전관’의 첫째 개념, ‘인간이 주체가 되는(以人爲本) 발전’을 떠올려보자. 고도성장이 한 고비를 돈 뒤에 권력을 잡은 현 4세대 지도부는 공산당 내에서 처음으로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란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한 그룹이다. 고도성장의 과실에서 소외된 근로자 계층을 위해 재정의 재분배 역할에 주목하고,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방정부가 공포하는 최저임금은 해마다 가파르게 치솟고 있으며(<표 2> 참조) 공회(公會)의 역할은 구체화되고 있다. 이 정책노선은 5세대 지도부가 출범하는 2012년 이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 노동시장에서 공급이 달리는 현상은 현 지도부의 삼농(三農)정책과도 관련이 깊다. 2000년대 초반부터 농업세 폐지, 농촌 무상교육 확대 등 각종 농민계층 시혜책을 강화한 것이 도시 3D 부문에 종사하는 농민공(農民工)들의 귀향을 촉발시켜 농민공 기근사태(民工荒)를 초래한 것이다. 민공황 사태를 겪으면서 연해지역 산업단지의 임금인상이 연례행사로 자리잡게 됐다.
현재 연해지역 중소도시 임금수준은 이미 동남아 경쟁도시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된다. 외국기업들이 내수시장 개척을 위해 중용하는 매니저급 인재들의 임금은 해마다 20% 가량 상승하고 있다. 10년 뒤 중국 노동력의 전반적인 임금수준은 한국의 중소기업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4. 업종만 잘 선택하면, 상당기간 수익을 낼 수 있다
30년의 개방사(史)는 중국 전역에서 무주공산(無主空山) 노다지 시장을 없앴다. 13억 인구만큼 많은 경쟁기업을 피하려면, 정부가 까다로운 진입 조건을 붙인 시장을 기웃거려야 한다. 그래도 ‘될 성 싶은’ 업종을 찾는다면, 중국이 반길만한 실력을 검증 받아야 한다.
과거 중국은 한국기업의 기술과 자금력, 선진 경영기법, 해외마케팅 경험 등을 높이 샀다. 이제 자금은 중국에서도 넘쳐나고, 선진 경영기법은 유럽 미국기업들을 원조로 쳐주는 분위기다. 한국기업이 중국에 줄 수 있는 가치는 기술, 해외마케팅 노하우 정도만이 남았다. 이 기술도 비상하는 중국 내수시장에 휩쓸리듯 하나 둘 넘어가고 있다.
중국 정부의 시장진입 가이드라인이 ‘산업구조조정 지도목록’이다. 중국 내 기업들의 투자사업을 산업정책 목표에 맞춰 장려, 제한, 도태 등 세 가지로 나누고 수출관세, 세제혜택, 금융여신 등에서 차별하게 된다. 외자기업의 경우 이와 별도로 ‘외상투자산업 지도목록’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전반적 기준이 ‘산업지도목록’보다 엄격하다. 예를 들어 반도체사업의 경우 산업지도목록은 ‘선폭 0.35 마이크론 이하’의 집적회로를 장려하는 반면, 외상지도목록은 ‘선폭 0.18 마이크론 이하’ 집적회로만 장려하는 식이다. 중국 땅에서 장려 혜택을 받으려면, 로컬기업을 넘어서는 선진기술을 들여와야 한다는 명문규정인 셈이다.
문제는 중국 제조업의 발전에 따라 지금도 이 같은 기술우위 요소가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외국 첨단기업들의 시장진입으로 한국 기업에 내줄 공간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10년 후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 사업에서 이제 업종(What)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How)’이다.
5. 그래도 내륙에 가면 개방 초기와 같은 환대를 받는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중부 6개성이나 서부내륙 투자에 개방 초기와 비슷한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그러나 내외자 소득세가 통일되면서 세제혜택을 남발할 공간이 크게 줄었으며, 업종 면에서도 ‘2고1자(二高一資)’ 형은 내륙에서도 찬밥 신세다. 필자는 지난달 하순 중부 3개성 지방정부의 외자유치 담당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소상하게 투자유치 정책과 각종 인센티브를 설명하는 것은 1990년대 연해지역과 같았지만, 그래도 2고1자 업종을 배척하는 데는 예외가 없었다.
경제특구, 경제기술개발구, 보세특구 등 중국 고속성장의 촉매역할을 했던 개발구들은 이제 외자기업들에게 큰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개발구 입주의 반대급부로 제공했던 세제혜택이 대부분 사라지고, 이젠 토지임대료 혜택이나 산업 연관효과 등을 기대해야 할 상황이다.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관계를 설명하는 말 중 ‘중앙이 정책이 있으면, 지방은 대책이 있다(上有政策下有對策)’란 표현이 있다. 중앙의 경제정책을 우회하는 지방 이기주의를 비꼰 말이다. 투자사업 분야에서는 중앙의 엄격한 기준을 회피해 지방정부가 투자 프로젝트를 쪼개거나, 시기를 조정하는 등 편법으로 투자사업을 진행시켰던 세태를 풍자한다.
중앙 재정파워의 증대와 중국 경제의 국제화로 이러한 세태는 갈수록 힘을 잃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교통 통신이 중국 전역에 구석구석 깔리고, 금리 환율 공정경쟁 등 시장조정기능이 베이징 중앙정부로 집중되고 있다.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글로벌 경제흐름에 대한 중국 경제의 대응에는 중앙 따로, 지방 따로일 수가 없다. 앞으로도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중앙정부의 파워가 지방정부의 단기적 이해 추구를 넘어설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외자 입장에서는 더욱 중앙의 산업정책 방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Ⅲ. 향후 10년 동안 제기될 5가지 이슈
향후 10년은 한국 기업들의 중국 사업은 물론 글로벌 사업에도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중국 로컬기업들의 글로벌 팽창 추이를 볼 때 중국 내수시장에서의 실패는 곧 글로벌시장에서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의 지원과 해외사업 경험 등이 쌓이면서 중국 로컬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일취월장하고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주경기장 외곽의 광고판 중 적지 않은 수가 중국 기업들 차지였다. 올림픽 및 엑스포 개최라는 이벤트 효과에, 역사적으로 축적된 문화 콘텐츠의 힘이 중국 기업들의 브랜드 파워를 단기간 끌어올릴 수 있다. 한국기업들은 이 같은 흐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향후 10년 중국 사업에서 제기될 수 있는 경영 상 주요 이슈는 다음과 같다.
1. 연해지역 수출 법인들의 생존공간 확보
이미 칭다오(靑島) 등 한국기업 진출이 활발했던 산동성의 산업단지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 저임형 거점들은 현재까지의 임금상승세와 환율 압박에도 두 손 들고 짐을 싸고 있는 실정이다. 형편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대기업들도 위안화 절상세가 지속된다면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기업들은 중국 진출단계에서 세제, 토지혜택 등을 누리기 시작한다. 해당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는 고용과 수출실적을 높이기 위해 세 수입을 포기한 셈이다. 수년간 혜택을 즐기다가 돌연 사업성이 없다며 철수한다면, 해당 지방정부와의 반목을 피할 수 없고 다른 지역 사업에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중국 세무당국은 조세납부 실적과 고용실적 등을 바탕으로 외자기업들의 ‘사회적 부가가치’를 계산해 비교자료로 활용한다. 지방 이기주의가 여전히 살아 숨쉬는 중국이지만, 외자기업의 경영현황이나 사회적 기여 등은 세무당국과 공산당이란 채널을 통해 전국적으로 공유하는 게 중국 지도자 사회이다.
‘출구전략’은 지금 세워도 늦은 감이 있다. 중국 중앙정부는 연해지역 생산거점의 내륙이전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관련 물류 인프라를 정비하고 있다. 상하이 서쪽 내륙 안후이(安徽)성의 경우 상하이 근접지역에서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인건비 등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다. 철도나 수운(水運) 등을 통해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내륙에서 대체 후보지를 검토할 만하다.
2. 사업본부와 지역본부의 현지법인 통할권(統轄權) 조정
1990년대 한국과 일본 기업은 중국 연해지역 진출 시 본국 사업본부의 글로벌 생산지 최적화 전략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중국 내수시장보다 글로벌 시장(3국 시장)을 타깃으로 생산활동이 이뤄지고, 현지 부품조달 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익을 실현하고자 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은 대부분 본사로 귀속시켜 중국 내 조세 부담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채택됐다.
중국 내수시장의 확대에 발맞춰 이들 법인을 내수밀착형으로 전환하려면 연구개발 마케팅 영업 등 지역기능의 강화가 불가피해진다. 중국 법인이 한두 개가 아니라면, 각 법인이 필요한 공통의 지역기능을 한 군데 집중시켜 수행하는 중국 지역본부를 설립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중국 정부도 이러한 취지에서 외국기업들의 투자성공사(投資性公司·지주회사) 설립요건을 크게 완화하고, 사업상 권리도 넓게 보장해줘 외국기업들의 지주회사 설립이 러시를 이뤘다.
그런데 지역본부 기능의 강화는 본사 사업부로 귀속되는 이익 등 경영자원의 분배 몫을 단기적으로 감소시킬 공산이 크다. 지역기능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자금, 인력, 조직을 일정 부분 빼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본부 기능의 강화는 본사 사업본부와의 의사결정권 조정 및 이익분배 원칙 등이 미리 정립돼야 잡음 없이 진행될 수 있다.
대개 이 같은 이익배분 및 공통 서비스(Shared Service) 제공을 위해 지역본부와 중국 법인(사업본부의 중국 자회사)들은 지분관계로 묶이게 된다. 이는 중국 투자성공사의 설립기준에도 명시돼 있다. 지역기능의 강화에 따라 지분율 조정이 화두로 부상할 수 있다.
앞으로 중국 내수사업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덩달아 수익규모 역시 늘어날 경우 이를 배분하는 이슈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중국사회는 다른 이머징 마켓과 달리 글로벌기업의 사회공헌에 매우 민감하며, 세무당국 역시 기업이윤의 해외유출에 대해 갈수록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 인력이 아닌 내수형 인재의 확보
내수사업에선 묵묵히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는 공장형 인력만으론 필패다. 시장의 흐름을 읽어내고 창의적 사업모델을 만들어내거나 적어도 그런 리더십을 쫓아오는 인재가 필요하다. 이 점에서 현지인이나 서구에서 교육받은 화교 CEO를 적극 활용하는 미국이나 유럽 기업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구미기업들은 지리적 한계 때문에 중국 사업장을 수출형보다 내수형으로 육성해왔고, 이를 위해 현지 인재를 적극 발탁해 중용해왔다. 반면 중국 내에서 한국과 일본기업들은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권한을 적극적으로 아래로 이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용 브랜드 파워가 매우 약하다는 평가다. 특히 중국 인재들은 한국 일본에 비해 ‘휘발성’이 강한 만큼 인사관리(HR)가 내수사업 성공을 가름하는 핵심 이슈로 부각될 것이다.
본국 파견인력의 관리도 중요한 성공요인이다. 체계적인 글로벌사업 경험이 일천한 한국기업들은 아직도 현지화를 어학능력으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본국 파견사원들의 현지화 성공 및 실패사례는 개인체험으로 치부하고, 회사의 지적 자산으로 전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처럼 경쟁이 치열해 긴 안목에서 내수전략을 펼쳐야 하는 시장에서 단기 실적 위주의 성과지표 설정은 사업 전반에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단기실적과 미래성장성을 골고루 배분하는 균형 잡힌 성과지표가 필요하다. 이러한 균형을 도출하는 과정은 곧 단기실적을 중시하는 사업본부와 중장기 성장기반을 중시하게 되는 지역본부간 이해조정 과정에 다름 아니다.
4. 내수 시장의 지역별 우선순위
중국 진출 20년이 다된 글로벌기업들도 내륙 비즈니스에는 초자인 경우가 많다. ‘중부굴기’라는 표현 때문에 한 덩어리로 묶인 듯 보이는 중부 6개성도 행정면적이나 인구가 한반도 전체만한 곳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고 봐야 한다(<표 3> 참조). 소비 파워는 물론 소비성향에도 차이가 적지 않고, 성 정부의 개발 중점도 다르다. 심지어 고객들이나 현지채용 직원 사이에서 베이징 표준말이 익숙하게 통하지 않을 때조차 있다.
내륙시장은 소비 잠재력은 큰 반면 연해지역보다 산업화 도시화가 늦어져 구매력이 넓게 흩어져 있다. 더욱이 성장경제의 특성상 거의 모든 개별 시장들이 플러스 대의 신장률을 보이고 있어 옥석을 가리기가 어렵다. 현지 사정에 정통하기 어려운 외자기업에겐 경영자원 투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B2C 사업의 경우 현지에 정통한 유통업체를 통해 시장 여력과 성장성을 타진해보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5. 정부 청사진과 동떨어진 30%의 리스크 관리
예를 들어 강력한 재분배 정책이 추진된다면, 공산당의 공언대로 정말 중산층이 두터워질까. 유명 컨설팅기관들이 내놓는 중산층 확대 전망은 고정된 액수 이상의 소득층이 확산된다는 시나리오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는 중국과 같은 성장경제에서는 늘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시장전략에서 절대적 소득증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상대적 소득격차이며, 소득구간별로 살펴볼 때 중간층 인구의 비중은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는 게 정부 통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그림 6> 참조).
시장의 롱테일(Long-Tail)화가 진행되는 와중에서 로컬기업과 경쟁을 불사해야 하는 범용품(Commodities) 분야에 매달리면 실패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특정 시장에 주력해 안착한 뒤 인접 영역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아울러 내수 육성을 골간으로 하는 구조개혁 정책을 70%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더라도, 30%에 해당하는 거시 리스크 관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중국의 대국경제화 및 한국의 대중 의존성 증대로 거시조정(宏觀調控)이 실패할 리스크는 더욱 중요하게 관리해야 한다. 중국은 1990년대 후반 한국측의 마늘 관세인상에 휴대폰 보복관세 부과로 대응, 한국 휴대폰 수출업체들을 혼비백산하게 한 경력이 있다. 중국 측의 통상파워는 그 때보다 강해진 반면, 국익 중시 경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Ⅳ. 맺음말
올해 중국경제 규모는 한국의 7배에 달할 전망이다. 5년 뒤엔 8배, 10년 뒤엔 10배를 넘기게 될 수 있다. 그런 대국경제가 강력한 제조업기반을 토대로 중국 내수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제에서 한국기업과 경쟁한다고 생각해보자. 중국 자체의 첨단 과학기술, 글로벌기업으로부터 이식 받은 상용화 및 공정기술 등이 규모의 경제와 합쳐지면서 ‘세계의 공장’은 상당한 고도화를 진전시킬 것이다. 한국의 글로벌 브랜드들보다 더 강한 감성적 이미지와 극적인 스토리를 내재하고 있는 게 중국 브랜드들이다. 10년 내 글로벌 마케팅 능력에서 한국기업을 따라잡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상하이 베이징 선전 등 연해 대도시 도심의 풍경은 서울 도심의 풍경과 다를 바 없다. 스카이라인의 위용이나, 화려한 쇼핑타운을 메우고 있는 사치재 시장은 이미 사치재 왕국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는 게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평가다. 이미 소득수준에서 한국의 2000년대 초반에 도달한 연해 대도시들은 10년 뒤엔 한국 소비수준을 넘어설 지도 모른다. 지금의 서울만한 소비 중심(Hub)을 중국 연해지역 여러 곳에서 목도하게 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아직도 ‘한국에서의 성공체험을 이식하는 수준에서’ 중국시장을 바라보는 경향이 짙다. 첨단제품의 개발이나 인재의 활용, 이익의 배분 등 모든 주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한국에서 주도하고, 중국에서 변용하는’ 형태의 접근법이다. 이런 전략은 한국기업의 기술우위가 분명하고, 중국시장의 전략적 중요성이 한국시장에 미치지 못할 때 효과적일 수 있다. 기술우위가 분명한 외국기업엔 수익의 본국 귀속을 보장해주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그러나 10년 뒤 한중 기업간 경쟁구도가 지금과 같을지는 미지수다. 한국은 물론 글로벌 차원에서 활발하게 진행중인 첨단기업들의 중국러시, 중국 중앙정부의 정책 일관성 및 관리 능력과 탄탄한 재정, 첨단기술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는 명문대학과 기술연구소들, 로컬기업들의 모방을 불사하는 캐치업(catch up) 전략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의 경쟁우위는 몇몇 산업 분야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 줄 부가가치가 없다면, 중국시장을 촉매로 하는 한국경제의 성장도 앞날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많은 분야에서 한중 경쟁력 역전이 예상된다면 접근법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주도하고, 한국 및 글로벌 시장에서 변용하는’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첨단제품의 개발도 현지 대학 및 연구소와 공동으로 수행하고, 이를 매개로 한중 경제권에서 최적의 생산조합을 만든 뒤 한중 시장은 물론 글로벌시장 내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기술유출 우려는 한국기업이 지속적으로 기술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성립한다.
지난달 말 중국과 대만간 ECFA의 타결은 향후 법적 효력을 가진다 해도 관세인하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려스러운 것은 양안 모두 개방에 합의한 금융 물류 등 제조업을 뒷받침하는 서비스 분야이다. 양안기업들과 화교 자본이 하나로 뭉칠 토양이 이번 ECFA로 다져진 것이다. 대만기업의 글로벌 사업경험과 대륙의 제조경쟁력이 거대자본과 만날 경우 한국 기업들의 경쟁우위는 단기간 소멸될 수 있다.
‘10년 뒤 중국’은 한국경제 및 기업들에게 커다란 기회이자, 중대한 위협이다. 위협을 기회로 바꾸는 방법은 중국 경제의 비상이라는 도도한 흐름을 거슬러가기보다 그 흐름을 타는 것이다. 비즈니스 사이클의 전 과정에서 중국을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