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3장
다윗의 마지막 예언시, 용사들의 목록 (찬송: 41장)
2015-5-18-가정기도
본문의 맥락과 중요성
21-24의 다음 구조속에서 23장은 보아야 한다.
A. 사울의 죄, 하나님의 진노, 속죄 후 다시 기도들으심 (21:1-14)
B. 다윗의 용사들과 블레셋의 거인들을 죽인 그들의 승리 (21:15-22)
C. ,시편 찬송: 전사로서의 다윗을 승리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양 (22장)
C’. 시편찬송: 예언자와 왕으로서의 다윗에게 언약을 세우신 여호와를 찬양 (23:1-7)
B’. 다윗의 용사들과 그들의 승리 (23:8-39)
A’. 다윗의 죄, 하나님의 진도, 속죄 후 다시 기도 들으심 (24장)
23장은 사무엘하의 결론의 중심에 있는 다윗의
찬양의 두 번째, 다윗의 용사들과 그의 승리에 관한 기록의 두 번째 이다.
1. 다윗의 마지막 예언시 (1-7절)
1) 다윗의 예언시의 중요성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1절)은 신명기의 시작, “이는
… 말씀이라” (신
1:1)와 비슷하다. 또한 신명기의 마지막 부분에 “말세에”
(마지막 날들)에 “이 노래의 말씀” (31:29, 30)이라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모세가 마지막 날들에
대해 이스라엘의 반역과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회복을 예언시로 말했다. (신 32장). 신 33장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로 시작하여 축복한다.
모세 오경의 마지막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왕조의 시작을 기록한 사무엘 상하도 비슷하게
예언으로 끝낸다.
그리고 다윗의 마지막 예언시는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야곱이 그 아들들의 “후일에” (마지막 날들, 창 49:1)에
대해 말한 것과도 연결된다. 삼하 23:1에서 “야곱의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자” 라고 야곱의 이름을 구태여 말함으로써
창세기 49장과 연결시킨다. 또, 창 49:15절에서 나온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긴다.” 는 삼하 23:1에서
“노래 잘하는 자”에서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삼하 23:1-7은 다윗의 개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약의 백성 공동체에 대해 예언하도록 세우신, 야곱, 모세의
뒤를 이어 가는 공적인 예언이다. 2절에서 “여호와의 신”즉 성령님이 “나를 빙자하여”, 즉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공적인 예언이다. 성령님은 이 예언의 말씀을 사무엘상하를 기록한 선지자를 통해
사무엘 하의 마지막에 넣어 둔다. 구약의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하나님의 이 예언의 말씀을 따라 진행될
것이고, 앞으로 나올 열왕기 상하도 이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2) 예언시의 내용
다윗의 왕조가 번성할 것 (3,4절)을 성령님은
다윗의 입을 통해 예언한다. 그 예언에 대해 다윗은 역시 예언자로서 반응한다. (5-7절). 하나님이 다윗과 영원한 언약을 세웠기 때문에, “나의 모든 구원과 모든 소원을 어찌 자라나게 하지 않겠는가?” (5절) 하면서 축복을 확신한다. 또한 사특한 자는 가시나무처럼 불사를 것을
확신으로 예언한다 (6-7절). 사특한 자 (벨리알)은 사무엘상의 시작에서 엘리의 아들에 쓴 말인데 (삼상 2:12),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여 불살랐다.
다윗은 “땅에서 움돋는 새 풀같고” (5절)은 아담의 타락으로 저주 받기 전의 에덴 동산에 사용한 표현이다 (창 2:5,9). 그러나 사특한 자가 “가시나무 같음” (6절)은 아담의 타락 후 하나님이 저주한 땅에서 가시가 나올 것이라는 (창 3:13)그 가시를 말한다.
이 단순한 시에서 다윗의 입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인류 역사를 향한 원대한 계획을 계시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과 그가 섬길 구약의 백성들을 통해 가시와 같이 자란 사특한 자들의 타락의 역사를 에덴의 낙원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그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역사가 아니다. 다윗 왕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통해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이룰 새하늘과 새 땅을 향해 전진한다.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은 바로 오늘, 신약교회의 일원인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 지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 다윗의 번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오늘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
이 가시 덤불 우거진 세속 사회 가운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새 풀을 돋게 하여 더 좋은 에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다윗 처럼 언약의 말씀을 기억하고 찬양하며, 우리에게 주신 직분을 다하자.
2. 다윗의 용사들 (8-39절)
다윗의 고급 장교들, 용사들 37명이 있었다고
한다 (39절). 30용사의 목록 (24-30절)에는 31명의
이름이 나온다. 거기에 아비새와 브나야 (18-23절) 2명과, 이름을 밝히지 않은 3명의
용사 (13-17절)을 합치면 36명이다. 이와는 별도로 첫 3명의
용사들의 이름과 그들의 전쟁 승리 이야기가 제일 먼저 나온다 (8-12절).
산수에서 이렇게 착오로 보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잘 모르는 일이다. 처음 이
성경을 쓴 선지자에게는 이런 것이 큰 문제가 아니었던 듯 하다.
첫 째 3명은 영웅적으로 전쟁에서 혼자서 많은 적을 무찔렀다 (8-12절). 그들의 승리에 대해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셨다” 고 말한다 (12절,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다” 고 말하는 10절도 원문은 같다.)
다윗이 첫번째 찬양시에서 노래한 “여호와의 큰 구원” (22:51)과 두 번째 예언시에서
노래한 “나의 모든 구원” (23:5)은 실제로 이들 용사들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이루셨다.
그들의 용감한 전투와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주심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늘도 우리
자신에게 약함을 볼지라도, 여호와께서 이루시는 큰 구원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직분을 다하자. 우리의 작은 수고에 복을 주셔서 성령님이
우리 삶에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
두 번째 3명의 영웅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떠 온 물을 다윗은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 드렸다.” (16절)
전제를 드리는 것을 말한다 (민 28:7). 야곱은
전에 에서를 피해서 도망할 때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그 벧엘에 다시 돌아와서
감사의 전제를 드린 적이 있다 (창 35:14). 다윗은
전제를 드리는 것을 통해, 전쟁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다윗의 용사들의 마지막 이름으로 우리야를 기록한다. 사무엘하를 기록한 성령님은 다윗의
경건함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살인과
간음죄를 저질렀던 죄인으로 기억하기를 원하신 듯하다. 다윗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었다. 다윗의
선함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성경의 핵심 주제다.
우리 같은 죄인들을 불러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새 나라를 이루어 가심을 감사하자. 우리의
죄인됨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살아가자.
믿고 복종할 일
우리가 이룬 작은 선행 때문에 교만하지 말자. 우리의 엄청난 죄성 때문에 낙담하지도 말자. 오늘도 우리의 소망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에 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 우리의 작은 이야기를 엮어 가는 하루를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