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명품 유적지의 매화를 찾아 조선시대 많은 학자를 키워내고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던 안동으로 떠난다
우리고유의 문화를 가문의 전통과 자긍심으로 지켜낸 이들이 있었기에 안동은 조선시대 목조건축의 보고라고 말한다.
병산서원과 묵계서원,
그리고 매화사랑으로 꼽히는 퇴계 선생의 숨결이 담겨 있는 도산서원으로 길을 재촉한다 서원은 제사와 학문의 기능을 겸비한곳이다
유교건축의 아름다운 미를 느낄수 있는 곳, 목조건축의 아기자기함, 그리고 고운선들, 막힘없는 열린공간속에 수직과 수평적인 질서가 숨어있는 곳,
그곳을 지키며 지조있는 선비의 절개와 지조있는 여인의 아름다운 향기를 품고있는 매화를 찾아간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
*** 병산서원 ***
들판은 파 헤쳐져 있었다 아름다운 산과 강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기심에 산촌초목이 몸살을 앓으며 변해가고 있다 가느다란 낙동강 물줄기 사이로 억새빛과 버드나무의 애잔한 연둣빛이 어우러져 곱기만하다
서원으로 가는 길은 옛길 그대로 구불 구불, 흔들 흔들 흙길이다 이곳 만이라도 밖의 시끄러움과 단절시킨 이 길을 가며 난 왜 그리 흐믓했던지...
하회마을을 끼고 돌아가는 낙동강을 앞에두고 병풍처럼 둘러 싸인 병산을 바라보며 서원은 자리잡고 있었다 옛 양반들은 자제들의 학문을 위해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그리고 마음을 흔들수 있는 경치가 좋은곳도 피했다 한다.
사적 제260호인 병산서원은 1572년, 고려때 부터 풍산읍에 있던 풍악서당이 주위에 시끄러운 환경으로 다른 곳을 찾던중 서애 류성룡 선생의 뜻에 따라 이곳으로 옮겨와 병산서당이라고 고쳐부르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각종 문헌 1,000여종과 3.000여책이 소장되어 있다.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다시 중건하였고, 서애 류성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는 사당인 존덕사를 건립하면서 향사의 기능을 갖는 서원이 되었다.
조선시대 5대 서원의 하나인 병산서원은 철종 14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헐리지 않고 건재했던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건축물로 한국건축사를 장식하고 있는 곳이다
`내가 이곳에 들어가기 전에 예를 지킨다’라는 복례문을 들어서는 순간 눈길이 가기전에 먼저 향기가 나를 맞이한다 홍매는 아름다운 자태로 다소곳이 입교당의 앞 마당을 지켜주고 있었다
신을 벗고 부드러운 통나무의 숨결을 느끼는 순간의 행복감, 펼쳐지는 빛깔만큼이나 고운 바람결과 햇살 만대루에 올라서서 바라본 병산과 연둣빛 물결로 흐르는 낙동강의 여유로운 봄풍경이 아지랑이 처럼 피어 오른다
사계절, 그리고 시시각각 다른 채색으로 물들이며 11칸의 누각으로 들어오는 풍경은 천연의 자연이 예술적으로 흘러 들어와 승화 됨으로 병산서원을 완성시켰다고 무심재님은 말씀하신다
만대루는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으로, 유생들이 행사 때 한자리에 모이던 대강당이며 건축과 조형미를 인정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뒤를 이어 학생들과 그리고 중국인 학생들이 들어오며 입교당과 안뜰은 곧 혼잡해졌다 조용한 여행을 즐기던 나는 매화앞에서 입교당 뒷편에서 서성이며 이 공간을 느끼고 싶었지만 역 부족이었다
이곳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건축의 미와 공간의 미를, 바람결에 스쳐지나는 매화의 향기를 여유롭게 느낄수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뒤뜰을 서성인다
후일 숙박코스로 다시 찾자는 무심재님의 말에 위안을 받으며 봄날의 아련한 빛깔을 담은 낙동강을 다시 한번 바라다 보다 길벗들의 아쉬움을 보고 말았다
무심재님 경상도에 오면 식사 걱정을 하시지만 자주 찾으시는 그곳에서의 안동고등어와 냉이무침과 갖가지 나물들이 입맛에 맞아 행복한 식사를 할수 있었다 이곳에서 후식으로 나오는 안동식혜는 좀 특별한 별미다
*** 묵계서원 ***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한다 이번 여행길에 가장 관심이 있었던 묵계서원의 홍매가 잘 피었을까 사진에서만 보았던 입교당 안뜰을 환하게 물들이던 그 홍매가 겨울을 잘 이겨 냈을까
안동시내에서 길안천을 따라 영천으로 가는 호젓한 길, 묵계종택인 보백당을 먼저 들러본다.
`우리 집엔 보물이 없다. 있다면 청렴이 있을 뿐이다(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라는 유훈을 남긴 보백당 김계행 선생은 무오사화때 심한고초를 겪고 나이 70세때 또 다시 구금되었다 풀려난후 묵계리로 내려와 만휴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그곳에서 87세까지 지냈다
잘 보존 되어있는 보백당의 목조 건축물들과 정원들, 이곳의 매화도 추운 겨울을 이겨 내느라 힘이 들었던지 명맥을 유지하며 피어 있었다
담장의 개나리와 안뜰의 진달래가 화사한 모습으로 우리들의 눈길을 끌고 정원의 뜰은 햇살을 가득 안은채 나그네를 맞이하고 있었다
푸른 소나무에 둘러 쌓인 묵계서원의 담장너머로 홍매와 눈을 마주치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사진속의 홍매가 아니었다
수령이 그리 많지 않지만 서원마당의 멋을 살려 준다는 그 홍매가 가지를 많이 잃어 버리고 말았다 무슨일 일까? 작년에 너무 많이 추웠던 탓 일까? 병이 난 탓 일까?
조심히 들어 가 입교당에 앉았다 설레임으로 찾았던 묵계서원 홍매의 자태는 많이 수척해 있었다
그 풍요로움과 아름다운자태는 오 간데 없이 여린 숨을 조용히 품어 내고 있는듯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짙은 분홍색 빛깔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멀리서 안쓰러히 바라보다 곁으로 닥아갔다 어느새 피었다 쓰러지는 꽃잎들, 무더운 여름 견디고 춥고 추웠던 겨울을 견디었을 홍매는 그래도 고운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남겼을것이다
처음 찾은 서원이건만 내가 좋아하는 목조건축, 세월의 무게속에 고즈넉하게 낡아가는 묵계서원의 모습은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고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잃어버린 홍매를 바라 보다가 그렇게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무거운 발걸음에 얹어놓고 내려왔다
*** 도산서원 ***
잠시 흐렸던 하늘의 빛깔이 청명해지고 하루의 고단함을 느끼는 해는 순한빛으로 도산서원의 고즈넉함을 더 여유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한 도산서원은 퇴계선생이 관직을 버리고 낙향후 10년만에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곳에 도산서당을 지었고 퇴계선생 사후에 제자들이 스승의 학덕을 기리기위해 서당위에 서원을 새로 지은것으로 이 둘이 한 울타리안에 있어 편의상 도산서원이라 알려져 있다한다
선조 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현판을 사액(賜額) 하였다한다
퇴계선생이 제자들을 기르치던 도산서당 암서헌의 곁에 백 매화 한그루가 품격있는 향기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퇴계선생이 생전에 많은 사랑을 주었다는 매화가 모진 세월을 이기며 대를 이어오고 있다
퇴계선생과 매화의 이야기속에서 빗겨 갈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단양군수 시절에 두향이 퇴계선생에게 바쳤던 매화 한그루로 맺었던 두 사람의 인연은 새 임지로 떠나며 긴 이별을 하지만 퇴계선생이 임종을 앞두고 남긴말 '저 매화에 물 줘라'라는 말로 애잔하게 이어오던 퇴계선생의 진정한 마음을 읽을수 있다
두향의 매는 도산서원으로 옮겨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세월의 고단함이 나무결을 거칠게 뻣뻣하게 고목으로 만들었지만 그 고목등걸이에서 피어나는 다섯장의 하얀꽃잎과 향기는 서원의 공간을 향기로 가득채우고 있다
매화를 찍어 보겠다고 매화곁을 서성거려 보지만 도산서당 암서헌에서 들려오는 무심재님의 강의를 포기한것에 한가닥 아쉬움이 남는다
전에는 매화향기 퍼지는 암서헌 툇마루에 앉아 퇴계선생의 학문과 자연사랑을 그리고 무심재님이 들려 주시는 퇴계선생의 매화 시를 들었는데...
천천히 전교당을 향해 올라가 본다 곱게 단청을 한 전교당은 보물210호로 도산서원의 강당에 해당되는곳이다
빈공간을 두고 아기자기 질서 정연하게 나열되어 있는 서원의 깔끔한 모습, 전교당 뒷편의 열려진 쪽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져 있다
청초한 흰 목련이 부드러운 저녁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 들이고 있었다 한컷 한컷 담아 보다 문득, 저 담이 흙담이었드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전교당에서 새어나오는 선생님의 설명은 공간을 떠 도는 봄바람에 실려 퍼지는데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것은 어리석고 어려운 일이다.
명뭄유적지인 서원과 고매들을 찾아 나섰던 탐매여행
자연속으로 스며들어 간 우리의 목조문화 그 건축물에 사상을 부여하고 자연을 끌어 들여 예술로 승화시킨 유교건축의 미 를 느낄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인 병산서원,
사람도 살지 않던 묵계리에 낙향한 선비들의 후손이 재실과 서원을 세우면서 가문을 일으키는 전형적인 모습을 볼수 있다는 묵계서원,
한국서원의 종가로 일컬어지는 도산서원, 그리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매화향기
"한국건축은 건물이 아니다" 라는 그 말에 마음이 흡족한 하루였다
행정명은 광덕리(廣德里)이지만 광덕리의 옛 지명은 형호(衡湖)였다.
형호(衡湖)는 저울 형(衡)자로 이 지역의 모습이 저울 모양의 호수를 닮았는가 보다.
‘저울’->‘저울리’->‘저우리’로 발음이 변해 온 것 같다.
저우리에 관하여 여러 이야기가 있다.
“비가 저울에 단 것만큼 정확하게 와야지 많이 오면 물난리가 나고 적게 오면
가물어서 농사가 안 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저우리라고 했다고도 한다.
“하회와 하회의 맞은편 형호가 저울처럼 중심의 끝에 매달려 있다”는 지형적인 의미로 형호(저우리)라고 했다고도 한다.
설중매 (1) 쪼르르 쪼르르 동막새가 날아와 겨울 동백인 줄 알고 매화 나뭇가지에 앉네 봄기운 찾아 나섰던가 향기 진하여 찾아왔던가 아니야 아니야 가만히 오는 봄만 맞지 않고 거친 발길 험한 발길 내딛는 세한삼우(歲寒三友) 친구 찾아왔다네.
설중매(雪中梅)눈속의 매화
***** 내고향 안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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