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소망을 품으라
(빌3:10-14)
시작하는 말
사도 바울은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능력을 체험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고, 그분과 같이 죽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빌3:10-11 쉬운성경).
부활의 확실한 소망을 품으면 사람이 180도 달라진다. 어제의 내가 아니다. 어제의 사울이 오늘에 바울로 변한다. 어제의 죄인괴수가 오늘에 의로운 종으로 변한다. 어제의 겁쟁이 베드로가 오늘엔 쿼바디스 베드로로 달라진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알라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 나사렛 동네의 청소년 예수님,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역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든 전도자 예수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아는 것은 들어서 알고, 배워서 아는 지식에 불과하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체험(경험)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이전의 예수님이 아니라 십자가 이후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아는 신령한 영적인 지식과 체험을 말한다. 지식적인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가슴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우리 주님은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❶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❷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❸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❹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선지자, 목회자, 교회의 중직자들, 직분자들이라고 예수 그리스도가 알아주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후 그들(제자들) 중 둘이 엠마오(예루살렘에서 약25리, 11km, 7miles, 60stadia)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의 멘탈은 허탈함 그 자체였다. 그 즈음 느닷없이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마을까지 동행하셨다. 동행하시는 동안 대화를 나누셨고, 함께 그들의 거처에 들어가셔서 축사하시고 성찬을 나누셨다.
성찬 중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24:32).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과 함께 동행하시면서 제자들의 눈을 밝혀 주셨고, 마음을 열어 주셨다. 그들과 성찬을 함께 하셨다.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라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주위에서 죽은 시체를 찾고 있었다. 그때에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요20:16). 마리아가 급히 달려 이 소식을 전달했다. 마리아는 부활의 능력을 예수님의 무덤곁에서 체험했다.
사울이라는 바리새인 청년이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압송하려고 가고 있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그에게 빛이 비추었다. 그 찰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9:4-5)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능력을 체험한 후 바리새인 사울이 사도 바울로 변했다.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면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고 부활의 소망이 넘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라
사도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3).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의 두라 평지에 금신상(고27m, 폭2.7m)을 만들어 놓고 제국의 백성들로 경배하게 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의 명을 거절하고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 분노한 왕이 풀무 불을 칠배나 더 뜨겁게 하여 세사람을 던졌으나 잠시 후 네사람이 풀무불을 거닐고 있었다(단3:26).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함께 동행하여 주신다.
히브리서는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히 11:35).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라
사도 바울은 “❶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❷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❸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❹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❺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말만큼 쉽지는 않다. ❶배신자 가룟유다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은30냥에 팔아넘기고 나중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죽었다(행1:18). ❷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으나 가슴이 아파 곤두박질치며 회개 하고 돌아섰다(마26:75). ❸다른 제자들은 시국이 하수상하여 모두 잠수타고 말았다. ❹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사랑하는 제자”(요19:25-6)가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육신의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아니다. 갈보리 언덕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혼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6:7).
우리의 옛사람을 영문판 성경에는 “our old sinful selves(NLT), our old being(GNT), our old self (NIV), Our old way of life(MSG) ”와 같이 표현했다. 부활로 가는 길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이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4). 물세례는 성령세례(불세례)의 예표라고 할 수 있다.
세례요한은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3:11)라고 선언했다.
끝맺는 말
부활의 소망은 내가 품는다고 품어 지는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의 과정을 생략하지 않고 하나하나 밟아 나갈 때에 아기가 엄마에게 품어지듯이 성령의 역사로 품어 지는 것이다. 부활의 영광은 절대 저절로(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승자가 되려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어라”
(To be a winner,
all you have to give is
all you have.)
(마이크 리트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