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맞수
전생의 업으로 만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축구 시합한다.
교체 선수는 없다. 감독도 코치도 없고, 심판도 없다.
아무리 심한 반칙을 수십 번 해도 퇴장은 없다.
한번 경기장에 들어선 이상 끝까지 뛰어야 한다.
전반전은 0 대 0, 후반전도 0 대 0
똥볼 차고 헛발질만 하다가 득점 없이 무승부다.
누구 편도 아닌 관중 두 명이 꽃보다 더 아름다운 관중 한 명씩 데려왔다.
눈에 너어도 아프지 않을 토끼 같은 치어리더 세 명까지 생겼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영원한 맞수는 늘어난 관중의 뜨거운 응원에 더욱 신나게 똥볼 차고 헛발질한다. 지금은 백발 휘날리며 연장전 중이다.
40여년을 얼굴맞대고 살아 온 우리 부부의 이력서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서 아무런 다툼 없이 살아간다면 애정도 미움도 없는 동거인 이었을 것이다. 가끔은 서로 죽고 못 살아 할 정도로 다정한 부부를 본다. 그러나 아무리 무던한 부부지간에도 말다툼쯤은 있게 마련이다.
부부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영원한 맞수다. 누가 이기면 뭐하며 누가 저준들 손해볼 것 없는 것이 부부의 다툼이다. 때로는 똥볼도 차보고 헛발질도 해보지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남편 나의 아내라는 관심과 애정이 있기 때문일것이다.
현자들은 말하기를 부부란 용광로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이것 저것 부부 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쓸어 담아 너도 나도 아닌 그 어떤 하나의 모양으로 녹여 내어 그들만의 독특한 삶을 창조하는 것이 부부라고 했다. 그러나 현자들의 말처럼 부부관계가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타고난 성별에 따른 사고방식이 다르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에 삶의 방식도 다를 수 있다. 이런 엄연한 차이를 극복하기란 그렇게 녹녹하지만은 않다. 같은 방향으로 바라볼 수만 있어도 아름다운 동행이 아닐까?
세세생생(世世生生)하여도 부부가 되기를 바라는 천생연분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결혼식장에 참석하는 하객들은 이구동성으로 신랑신부를 보고 천생연분이라고 덕담을 건낸다. 하기야 이세상에 수십억명중에 단 두사람으로 만났으니 하늘이 맺어주지 않고서야 만날 수 없을범도 하다. 그러나 나는 지난 날을 돌이켜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 봐도 영원한 맞수와는 천생연분이 아닌 것 같다. 아마 하늘이 실수했는지도 모를일이다. 나는 비록 넉넉하지 못한 가세이지만 위로 누나가 네명이나되는 귀한 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고, 아내는 넉넉한 집의 맞딸로 태어나 부족함이 없이 자랐다. 그런데 젊은 시절에는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이라는 고로한 사고 방식을 가진 나였다. 그런데 결코 땅만 되고 싶지 않은 아내에게 나의 사고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한 세상 살아온 지금 생각하니 오히려 아내는 하늘이고 남편은 땅이란 현실을 미쳐 알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까지 나의 방식에 따라 용광로에 아무리 녹여봐도 나는 나로, 너는 너로 둘이 그대로 일뿐이였다. 이제 밉다가도 곱고, 곱다가도 미운것이 수천번을 더하여 미운정 고운정이 쌓이고 쌓여 태산이되었으니, 연리지(連理枝)처럼 두손 꼭 잡고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기찻길처럼 살아야겠다. 또 측은지심이라고 했다. 늙어 갈수록 서로 안스럽고,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아까우니까 천생연분이 아닐지라도 남은 세월만이라도 서로 조금더 아껴주고 보듬어며 살아가야겠다.
지금은 응원단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무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니 편안한 마음으로 신나게 연장전을 해야 겠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니 하늘이 대리려 오는 날 까지 넘어지면 일어커주고 힘들어하면 부축해 가면서 연장전도 득점없이 무승부로 끝나길 바랄 뿐이다.
친구들과 술한잔 하는 날에는 부부에 대한 말들이 술안주같이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그중에 졸혼이니 별혼이니 하고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현실에 따라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어딘가 섭슬한 말들이 오간다. 남녀가 만나 결혼할 때 반듯이 하게 되는 의식중에 결혼 선서가 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않으나 “남편은 000을 아내로 맞이하여 기쁠때나 슬플때나 변함없이 사랑하며 평생을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까?”라는 주례선생님의 물음에 “예”라고 큰소리로 대답했던 것 같다. 사나이 대장부로서 일구이언을 할 수 없지 않은가.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맹세 했으니 별혼이나 졸혼은 먼 남의 이야기다. 또 아직 연장전 중이니 졸혼을 할 수는 없지않는가? 졸혼을 하면 이렇게 즐거운 축구시합은 누구하고 해야하나.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옛날보다 더 풍요로운데도 이혼하는 부부는 늘어나는 추세다. 이혼을 하게되면 가장 많은 휴유증을 앓는 사람은 자녀들일 것이다. 특히 미성녀자인 자녀들에게는 바람직한 인격 형성에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부부가 화목하게 잘 살아 가라는 뜻에서 부부의 날을 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부부의 날은 가정의 달(5월)에 둘(2)이 하나(1)이된다는 뜻으로 5월 21일이다. 1995년 5월 5일 어린이날 “우리 엄마아빠가 함께 사는 게 소원”이란 한 어린이의 인터부에서 감명받은 경남 창원의 권재도 목사 부부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2007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정해져 올해로 10년째다. 그러나 아직 부부의 날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알고는 있어도 그냥 지나치는 부부가 대다수가 아닐까싶다. 나 역시 부부의 날이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으나 그날을 무관심하게 지나쳤다. 부부의 날에 대한 유래를 알고나니 두 사람이 하나같이 알콩달콩 사는것도 중요하지만, 그 어린이의 소원처럼 어떤 어려움이 있드라도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생활한다면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많이 늦었지만, 하얀 안개꽃은 죽음을 붉은 장미꽃은 사랑을 뜻한다는데, 영원한 맞수에게 죽도록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아 하얀 안개꽃의 붉은 장미꽃 바구니를 선물해야 겠다. 2016.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