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하동신문-지리산에서 만난 사람들
새해, 푸른 말의 설레임
해마다 1월 1일이 되면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풍경을 방송에서 보곤 하는데 걸맞지 않은 간지(干支)에 대한 표현이다. 양력으로 1월 1일은 지지(地支)에서 보면 아직 해가 바뀌지 않은 것인데 올해도 양력 1월 1일에 태어난 아이를 두고 청말 띠의 첫아이라며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고 호들갑을 떨어대니 이것이 과연 맞는 말일까? 어른들은 농사 달력인 음력을 더 선호하여 잘 알고 계시니 나처럼 이상하다고 하실 것이다. 그러니 청말 띠인 갑오년은 1월 1일이 아니고 1월 31일부터라고 봐야한다. 이날부터가 새해인 것이다.
이제 비로소 갑오년의 새해가 밝아온다. 갑오년(甲午年)은 천간(天干)에서 갑(甲)이 푸른색 바로 청색이니 올해가 바로 푸른 말의 해이다. 말(午)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역동적인 모습이다. 뛰는 말에게서 느끼는 건 건강함이고 건강하면 얻게 되는 것이 부이고 성공이니 사주에서 말은 복을 의미한다.
내 주변에 말띠를 가진 이는 누가 있을까? 둘러보니 악양에 사는 농부 도용주 형이 떠오른다. 그는 귀촌귀농 바람이 불기 바로 전에 먼저 악양으로 들어왔다. 악양은 하동의 다른 곳에 비하면 일찍 귀농자들이 들어온 곳이다. 너른 평야와 완만한 산간이 도시에서 갑갑하게 살던 이들의 눈에는 매력적으로 보인 탓인지 모르겠다.
농사를 짓겠다고는 왔지만 그도 별 수 없는 초보 농사꾼, 책으로만 보던 것을 직접 하겠다고 도시를 떠나왔지만 막막했으리라. 농사라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 몇몇의 귀농학교가 고작이던 때 말처럼 역동적인 마음으로 막상 왔지만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던 어른들도 농사에 관해서는 장담을 못하는데 젊은 사람이 오죽하였겠는가!
게다가 생태농업을 하겠다는 포부로 화학비료나 농약 없이 농사를 지으려는 시도는 당시 어른들 눈에는 얼마나 걱정이 되어 보였을까! 많은 수가 이주해서 들어오다 보니 더러 지역민과 갈등이 있다고 해도 농사를 짓는 청년들에게 어른들은 그동안 알고 있던 노하우를 알려주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는 유대가 피어난다. 서로를 경계하기보다 의지하고 의논할 일이 더 많은 것이다. 더구나 그는 약식으로 먹거리를 조달하기 위하여 텃밭을 메는 귀촌인이 아니고 직업이 당당히 농업인 농사꾼이다. 그는 땅을 임대받아 매실과 대봉감 농사를 주로 한다.
“악양은 사철 쉴 수가 없어요.”
그는 이 겨울도 대봉으로 만든 곶감을 포장하여 밖으로 내고 매실나무를 전정하고 대봉감나무에 거름을 주고 있다. 봄이면 모내기를 하고 여름이면 매실과 고추를 따고 가을이면 대봉감을 거두는 그에게 나 같은 글쟁이는 어쩌다 감이라도 얻어먹는 날이면 그 노고가 얼마나 고된 줄 알기에 미안하기 그지없다.
가끔 시골에서는 뭐 해서 먹고 사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요즘 같은 때 농사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내려가서 살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어 미리 탐문하여 둘 요량으로 묻는 이들이 많다.
그도 농사를 짓는 중간에 하동군청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하기도 했고 그의 아내는 하동보건소에서 방문간호사로 집집마다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돌보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바쁘게 말처럼 뛰며 제 할 일을 한 덕에 몇 년 전에는 집터도 얻고 집도 지었다. 이제 어엿하게 하동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 내지 않는다.
한동안 귀촌귀농의 바람이 불고 이곳도 땅값이 들썩이고 사람들의 이동이 잦더니 이제 한풀 꺾어지는지 요즘은 자주 걸려오던 귀농 상담의 전화가 가끔 오고는 한다. 그러나 여전히 방송이나 책을 통해서 이곳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귀촌귀농에 대하여 묻는 첫 질문은 땅값, 생활비 등 돈에 관한 것이다. 물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돈 없이 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골 살이라는 게 돈으로만 다 되는 게 아니다. 이곳에서는 먼저 사람 사는 의리가 더 중요하고 부지런하고 믿을 만한 심성이 우선이다. 누군가 농사를 업 삼아 이곳으로 온다면 그를 찾아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제 곧 초보농사꾼도 연륜이 깊은 농부도 바빠지는 계절이 온다. 새해 특별히 다를 건 없다고 해도 어쩐지 새해라고 하면 새롭게 시작해도 될 것처럼 각오가 새삼스러워지는 날이다. 새해에도 어김없이 전정가위와 낫을 들고 들판으로 나서는 농부처럼 말처럼 뛰어서 새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올해, 누가 이곳으로 와서 새 삶을 꿈꿀까? 또 누가 이 하동을 위하여 새로운 마음을 가질까? 앞으로 모든 게 궁금하고 설렌다.
자, 이제 진짜 새해다! 우리도 농부처럼 올 한해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자!
신희지
차와문화 인터뷰작가
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2월3일자 하동신문
첫댓글 우선 쌤한테 공통질문 해야겠습니다 ㅎㅎ
ㅋㅋ
물으시게!^^
워매!
매스컴에도 오르고 전화통 불 나겄네요.
우찌 울 마눌보다 더 잘 안디요?
강소농의 꿈이 영글어 가게 해준 굠처장님
고마버 ㅋㅋ
복받을겨^.^